“나치 수법을 배우자.”
아베 신조 제2차 정권이 출범한 지 반년이 좀 더 지난 2013년 7월 29일, 아베의 정치적 동맹이자 정권을 떠받치는 기둥 가운데 하나였던 아소 다로 부총리 겸 재무상이 한 강연장에서 내뱉었다는 이 말이 한때 꽤나 회자됐다.
산케이신문과 더불어 아베 정권의 우군이었던 요미우리신문이 전한 그 말을 그대로 인용하면 이랬다. “독일 바이마르 헌법은 모르는 사이에 바뀌어갔다.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는 사이에 바뀌었다. 그 수법을 배우면 어떨까?”
제1차 세계대전 뒤에 만들어진 패전국 독일의 바이마르헌법은 제2차 세계대전 뒤에 만들어진 패전국 일본의 이른바 ‘평화헌법’과 비견될 만한 민주적이고 평화적(不戰)인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 바이마르 헌법을 나치가 뒤엎었듯이 지금의 일본 헌법을 그런 수법으로 바꾸자(개헌)자는 것이니, 스스로 나치가 되겠다는 얘기인지…

#맥밀란 교수 '역사로부터 경고'
  패권 싸움, 코로나19, 대공황 조짐
  1·2차 대전 직전 상황과 닮았다 
  전쟁·파국 막을 정치 리더십 필요
#트럼프는 세계전쟁級 위기 촉발
  남중국해 사소한 충돌 일어나도

  파국적인 연쇄반응 발생 가능성
#강대국 주도 질서는 절대선인가?
  한반도 입장에서 묻고 고민할 때  

<포린 어페어즈>는 2020년 9·10월호에 역사학자 마거릿 맥밀런(사진, Margaret MacMillan) 토론토대학 교수의 기고문을 실었다. “Which past is prologue?-Heeding the Right Warnings From History”이란 글 가운데 이런 내용이 있다.
“독일 바이마르공화국은 1933년에 반민주 보수수의자들(antidemocratic conservatives)이 나치당 지도자(히틀러)를 총리 자리에 앉히는 바람에 수치스러운 종말을 맞았다. 그들은 어리석게도 히틀러를 자신들 뜻대로 움직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오히려 히틀러가 그들을 이용하고는 내버렸다.”

아소 다로는 나치의 이 토사구팽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할까?
그 무렵 일본에선 극우민족주의 군부세력(ultranationalist militarists)이 권력을 장악했고, 이탈리아에서는 한때 평화의 수호자를 자처했던 베니토 무솔리니가 세상 바람이 어디로 불어 가는지를 살피다가 독일·일본의 추축국 쪽에 가담하는 기회주의적 처신을 했다.
그리하여 1차 대전 이후 다시는 서로 싸우지 말자며 만들었던 국제연맹을 먼저 일본이 탈퇴하고(1933년 3월) 나치 독일이 뒤를 이었으며(그해 10월), 무솔리니의 이탈리아도 1937년에 탈퇴했다. 일본은 1931년 만주침략에 대해, 이탈리아는 1935년의 에티오피아 침략에 대해 국제연맹이 문제를 삼자 탈퇴했으며, 나치 독일은 탈퇴 뒤 1936년 라인란트 합병, 1938년 오스트리아 합병, 체코 부분합병 등을 거쳐 1939년 폴란드를 침공했다.

일본은 1936년 황도파(皇道派) 청년장교들의 쿠데타(2·26사건), 그 다음해의 중국 본토 침략을 거쳐 제국주의 팽창전쟁으로 매진한다. 그리하여 1차 대전이 끝난 지 20년 만에 전 세계는 다시 2차 대전의 수렁으로 빠져 들어갔다.

패권 싸움, 코로나19, 대공황 조짐

맥밀런 교수는 지금의 불안정한 세계가 2차 대전 전의 그 1930년대, 그리고 1차 대전 전의 1910년대와 닮았다고 얘기한다. 그때나 지금이나 사회·경제적 불안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고 복수의 강자(강대국)들이 국제무대에 등장해 힘겨루기를 하면서 일부는 기존질서를 뒤엎으려 하고 있다.

지난 40년간 힘을 키운 중국이 요즘 패권국 미국에 도전하고 있는 상황은 1910년대에 헤게모니를 쥐고 있던 영국에 대해, 후발 자본주의국 독일과 일본, 미국이 힘을 키워 도전하던 상황을 방불케 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세계경제를 파국적 상황으로 몰아가고 있는 지금의 코로나19 사태도 1920년대 말에 시작돼 2차 대전 발발의 동인이 된 1930년대의 대공황(Great Depression)과 닮았다고 맥밀런 교수는 얘기한다.

이런 상황이 전쟁 또는 파국적 상황으로 가느냐 아니냐를 가르는 핵심 요소가 제도적 장치들 못지않게 정치적 리더들의 지혜와 능력, 즉 리더십이다. 이것이 맥밀런 교수 기고문의 중심 메시지다. 미중 패권경쟁이 ‘투키디데스의 함정’에 빠지느냐의 여부를 가르는 결정적 요소도 바로 이 정치적 리더십이다.
그런데 지금 이 리더십에 문제가 있고, 특히 가장 큰 영향력을 지닌 미국의 리더십에 문제가 있다는 인식이 맥밀런으로 하여금 기고문을 쓴 기본 동기라고 할 수 있다.

“만일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이 1914년 6월 사라예보에서 암살당하지 않았다면, 제1차 세계대전은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맥밀런 교수의 이 말은 대(大)세르비아주의 신봉 ‘애국청년’이 그날 암살을 감행하기까지의 짧지 않은 세월 동안, 그 사건 촉발로 이어질 전조 같은 긴장들과 수많은 사건들이 있었음에도 당대의 주요국 리더들이 그 긴장을 해소하고 사건들을 제대로 조정·처리하지 못했기 때문에 결국 그 사건이 일어났고, 그런 리더십 부재 속에 일어난 암살사건은 전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는 의미다.

그런 리더십 부재 속에서는, 지금 미중 양국의 함정이나 항공기들이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 남중국해에서 그들 간에 사소한 충돌이 일어나더라도 전쟁으로 가는 파국적인 연쇄반응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맥밀런 교수는 경고한다.

"역사는 종종 유사하게 반복된다"

<톰소여의 모험> 등을 쓴 마크 트웨인이 이런 말을 했단다.
“역사는 꼭같이 되풀이되진 않지만, 종종 유사하게 반복된다.(History doesn't repeat itself, but it often rhymes.)”

다소의 문제는 있었지만, 도널드 트럼프 정권이 등장하고 미중 무역전쟁이 불거지기 전까지 지구촌은 세계화 물결 속에 평화와 번영을 구가하는 듯 보였다. 1차 대전 전에도 국제정세를 좌우하던 열강들의 세계는 엄청난 성취 속에 평화와 번영을 구가하고 있었다. 그들은 세계를 지배하고 있었고 부는 엄청나게 불어나고 있었으며 나폴레옹 전쟁 뒤의 빈조약체제하의 평화가 길게 지속되고 있었다. 이를 두고 오스트리아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Stefan Zweig)는 “안보의 황금시대(the Golden Age of Security)”라고 했단다.

하지만 한편으론 각 나라마다 국내외적으로 모순이 축적되고 있었다. 정치와 계급의 분화와 대립, 노동의 불안정, (공산주의) 혁명운동, 민족운동 등이 특히 다민족 국가인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러시아, 영국을 흔들고 있었다. 그럼에도 아프리카와 아시아를 분할한 열강들의 제국주의 확장 야욕은 만족할 줄 몰랐고 마침내 중국과 오스만제국까지 분할하려는 기세였다. 제국체제는 그 감당할 수 없는 욕심과는 반비례로 구멍이 숭숭 뚫려 있고 허술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정세 하에 대국들의 통제력이 약화되면서 대세르비아주의 세력의 대두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대한 저항, 세르비아를 지원하는 러시아, 러시아를 동맹으로 삼고 있던 프랑스, 그리고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동맹인 독일, 이들 간의 단합과 대립이 점차 격화되면서 군비확장이 가속됐고, 언론매체들은 서로의 원한과 증오, 민족의 영광을 부채질하며 대중들의 심리를 전쟁 쪽으로 몰고 갔다.
당시 우승열패(優勝劣敗)의 사회적 다윈주의의 유행도 생존과 영광을 위한 전쟁을 정당화하는데 큰 영향을 끼쳤다. 전쟁 동원령의 최종 결정권자는 민간 리더들이었지만, 그들은 호전적인 분위기 속에 군비확장을 계속해 온 군부 등 호전주의자들을 통제할 능력이 없었고 우유부단했다.

독일의 카이저 빌헬름 2세는 예전의 분쟁에서 양보한 전력 때문에 겁쟁이 소리를 들을까봐 더는 물러설 수 없었고, 러시아의 니콜라스 2세는 왕위와 러시아의 영광에 집착하고 있었으며,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프란츠 요제프 황제는 늙고 병들고 고립돼 장군들을 제압할 수 없었다.
그 결과, 앞서 얘기했듯이 사라예보의 암살사건 이후 열강들은 속수무책으로 세계대전의 파국으로 치닫는다. 그리하여 유럽에선 승자(영국도 가담)도 패자도 모두 힘을 잃고 예전 같지 않은 상태로 전락(프란츠 요제프와 니콜라스 2세는 전쟁 중에 죽었고, 빌헬름 2세는 네덜란드로 망명한다)하는 대신 미국과 일본 등 비(非)유럽 열강이 힘을 키우게 된다.

"트럼프가 만든 세계"

전쟁이 어떻게 세계를 만들어 왔는지에 줄곧 관심을 기울여 온 맥밀런 교수는 ‘위기는 곧 기회이기도 하다’며, 신구 기독교도들 간의 피비린내 나는 30년전쟁 뒤 베스트팔렌조약(1648년)으로 주권국가들이 등장하면서 평화가 이어졌고, 나폴레옹전쟁 뒤 성립된 빈체제(1815년)하에서도 유럽은 전례 없는 장기 평화를 누렸다고 지적한다. 2차대전 뒤에도 새로운 이념들이 발흥하고 국제연합과 브레턴우즈체제 등 수많은 국제기구들이 등장해 대립을 피하고 협력하는 시대가 이어졌다고 그는 본다.

그러면서 트럼프 정권(“2021년에 끝날지, 2025년에 끝날지, 아니면 그 중간에 끝날지는 모르겠지만”) 이후의 역사에서 세계의 리더들은 지금의 단층선들을 더 깊게 파는 쪽으로 세상을 끌고 가거나, 평화와 안정 쪽으로 이끌고 갈 것이라며, 트럼프 시대를 세계전쟁 급의 위기와 동렬에 놓는다.
트럼프 시대를 이처럼 위기의 시대로 보는 것은 맥밀런 교수의 관점이기도 하지만, 이런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룬 포린 어페어즈의 시각이기도 하다. 이 잡지의 이번호 표지 타이틀이 “트럼프가 만든 세계(The World Trump Made)”다.

이번 특집을 기획한 <포린 어페어즈>의 편집자 기드온 로즈(Gideon Rose)는 ‘트럼프가 만든 세계’의 문을 열면서 첫 페이지를 이렇게 시작한다.
“역사가들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집행해 온 미국 외교정책에 대해 어떤 판정을 내릴까? 마거릿 맥밀런은 이번 특집 제1장에서 호의적으로 쓰지 않았다. 거의 4년에 가까운 격동 뒤 나라의 적들은 더 강해졌고, 친구들은 더 약해졌으며, 미국 자신은 점점 고립되면서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하고 있다.”

전쟁-평화를 가르는 정치적 리더십

1차 대전 뒤에도 2차 대전 뒤와 유사한 새로운 진보와 평화, 안정이 유지됐으나, 결국엔 오래가지 못했다. 그것은 1930년대의 대공황 때문인데, 앞서 살펴봤듯이 대공황으로 경제가 파탄상태에 빠지고 정치적 리더들이 신뢰를 상실하면서 좌우 양극화, 계급대립과 혼란 속에 각국에선 군부와 극단주의자들이 권력을 잡게 된다.

히틀러는 자신을 전면에 내세우고 뒤에서 실권을 쥐려 했던 ‘반민주 보수세력’을 토사구팽한 뒤 독일에게 굴욕을 강요한 베르사이유 체제를 폐기하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독일 내지는 ‘아리안 민족’의 세계지배(그게 안 되면 유럽지배만이라도)를 실현하려 했다. 무솔리니 역시 제2의 로마제국 건설을 꿈꾸었고, 일본의 극우민족주의자들은 민족의 영광과 대동아공영권 건설을 꿈꾸었다.

맥밀런 교수가 보기에 이런 모든 사태 전개에는 제도적 측면 못지않게 정치적 리더들의 성향, 성품, 능력, 야심 등 개인적 특성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 그는 좋은 시절에는 웬만한 ‘악당’이 나타나도 큰 문제가 없지만, 좋지 않은 시절에 좋지 않은 리더(악당)가 등장하면 치명적인 결과를 빚게 될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코로나19 사태가 세계를 휩쓸고 있는 지금, 2차 대전 뒤 새로운 평화체제가 성립된 지 75년이 지나 다시 그 이전 상황으로 되돌아가고 있는 듯한 지금이 바로 그 좋지 않은 시절이라고 맥밀란 교수는 지적한다. 경제지표들이 바닥을 향하고 있고 기존의 모든 관계들이 흔들리고 신뢰가 위기에 처한 지금은 2차 대전 전의 1930년대 대공황과 같은 시기라는 얘기다.

실물경제, 리먼 쇼크 때보다 훨씬 심각

9월 3일자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미국, 유럽연합(EU), 일본 등 세계경제 주축들의 중앙은행이 국채매입 등으로 정부의 돈주머니 노릇을 하면서 최근 반년 간 새로 발생한 정부·지자체 빚만 총 618조엔(약 6800조원, 약 5조7000억달러)이라고 전했다. 일본중앙은행만의 지난 8월 말 총자산잔고(정부 부채)는 약 683조엔(약 7500조원)이나 됐다. 이는 코로나19 영향이 심각해지기 전인 2월 말에 비하면 98조엔(17%)이나 늘었다. 일본중앙은행이 국채매입으로 정부 재정적자를 메워준 것, 즉 새로 풀어 놓은 돈이 최근 반년 간에만 약 1078조원이나 된다는 얘기다.

미국과 일본의 주가상승률과 실질성장률을 2008년의 금융위기(리먼 쇼크) 때와 비교한 것을 수치로 살펴보면, 일본은 리먼 쇼크 때 주가가 42% 떨어졌으나 지금은 오히려 9% 상승했다. 반면 실질성장률은 리먼 쇼크 때 9.4% 떨어졌지만 지금은 무려 27.8%(연율 환산)나 떨어졌다.
미국도 리먼 쇼크 때 주가가 39%나 떨어졌으나 지금은 12% 상승했다. 실질성장률은 리먼 쇼크 때 8.4% 내려갔으나 지금은 31.7%나 떨어졌다.(일본 내각부, 미국 상무부 자료)
이는 이번 코로나19 사태가 경제에 준 충격이 리먼 쇼크 때보다 훨씬 더 심각하지만, 엄청난 돈을 풀어 주가를 떠받치는 비정상 상태, 실물경제와 금융 간의 갭이 비정상적으로 크게 벌어져 있는 상태임을 보여준다.

이런 사태가 언제 끝날지 아직 알 수도 없다. 역사에 남을 ‘대공황적 상황’에서 정치적 리더들이 히틀러나 무솔리니, 도조 히데키 같은 ‘악당’들의 등장을 막지 못하거나 적절히 제어하지 못할 경우 전쟁으로 갈 수 있다는 것이 역사학자 맥밀런 교수의 경고다.
크림반도를 강제 병합한 러시아의 푸틴, 골란고원과 서안지구 점령지를 합병하고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공인해 준 트럼프 대통령과 그의 전폭적 지원을 받고 있는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인도-중국 국경 충돌, 미중 간 남중국해 분쟁 등을 제어하지 못하면 다른 수많은 연쇄반응을 야기해 기존질서가 무너질 것이다.

트럼프의 황당해 보이는 상황인식

문제는 1930년대 대공황 당시에는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리더십을 통해 나름 대처할 수 있었지만, 21세기의 대공황은 도널드 트럼프라는 리더가 문제를 해결하는 주체가 아니라 문제를 만들어내는 주체로 존재한다는 점이다.

이번 호 <포린 어페어즈>의 또 다른 기고자인 리처드 하스(Richard Haass) 미국외교협회(Council on Foreign Relations) 회장의 기고문 “Present at the Disruption-How Trump Unmade U.S. Foreign Policy”에는 다음과 같은 트럼프 대통령 말이 인용돼 있다.
“수십 년간 우리는 미국 산업을 희생시키고 외국 산업을 살찌워 왔으며, 다른 나라들 군대에 보조금을 주면서 매우 슬프게도 우리나라 군대를 소모시켰다. 우리는 다른 나라들 국경을 지켜주면서 우리나라 국경 수비는 거절해 왔다. 그리고 수조에 수조 달러를 해외에서 쓰는 동안 미국의 인프라는 황폐해지고 삭았다. 우리는 다른 나라를 부유하게 만들어 주면서 우리나라의 부와 힘, 자신감은 수평선 너머로 사라지게 만들었다.… 이제부터는 오직 아메리카 퍼스트로 갈 것이다.” (2017년 대통령 취임사)

트럼프의 세계인식에는 정말 문제가 많아 보인다. 그는 미국의 해외 파병이나 진출이 자국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마치 외국을 위해 자선사업이라도 벌인 것처럼 인식하거나, 그게 아닌 줄 알면서 유치한 억지 주장을 펴고 있다. 미국은 과연 자국의 손해를 감수하면서 필리핀을 위해 필리핀을 식민통치했고, 일본을 위해 주일미군을, 한국을 위해 주한미군을 주둔시키고 있는가?

트럼프의 황당해 보이는 상황인식이나 세계관은 3년 반이 더 지난 지금도 전혀 바뀌지 않았다.
“미국 군인이 해야 할 일은 다른 나라들을 재건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를 외적으로부터 지키는-강력하게 지키는 것이어야 한다는 기본 원칙들을 우리는 되살리고 있다. 우리는 끝없는 전쟁들을 끝낼 것이다. 대신에 미국의 사활적 이익을 지키는 데에 새롭게, 총명하게 초점을 맞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들어보지도 못한 먼 나라의 오래된 분쟁들을 해결하는 것이 미군의 임무가 아니다. 우리는 세계의 경찰이 아니다.” (2020년 6월 웨스트포인트 육군사관학교 졸업식 연설)

강대국 주도 세계질서, 절대선인가?

트럼프에겐 맥밀런 교수가 세계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보는 리더십이 결여돼 있다. 트럼프는 ‘아메리카 퍼스트’를 위해 기존질서를 대안도 없이 파괴하기만 했다. 창조의 리더십이 아니라 파괴(분열)의 리더십이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맥밀런 교수가 생각하는 세계질서 유지가 절대선일 수는 없다. 옛 질서의 파괴는 위험하긴 하지만 누구에게는 새로운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예컨대 패전국이자 전범국인 일본을 제대로 된 전범 처리도 없이 사실상의 전승국으로 만들어 대(對)소련 반공체제의 축으로 삼은 2차 대전 이후의 미국 주도 질서 유지가, 국토를 분단당한 채 그 하부 종속체제로 편입당한 한반도의 우리에게 앞으로도 무조건 지켜야 할, 무너지면 다시 복원해야 할 절대선일 수 있을까? 맥밀런 교수의 글은 그런 문제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만든다.

##덧: 마거릿 맥밀런(Margaret MacMillan)

1943년 생. 캐나다 역사학자. 역사와 국제관계, 특히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의 ‘대영제국’과 20세기의 국제관계 전문가. 제1차 세계대전 때 영국 총리(재임 1916~1922)를 지낸 자유주의 정치가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의 증손녀.
토론토대학을 나와 옥스퍼드의 세인트 앤터니(St. Antony) 칼리지에서 박사학위. 옥스퍼드대학과 라이어선대학, 토론토대학에서 강의했다.
주저 <Peacemaker: The Paris Peace Conference of 1919 and Its Attempt to End War/ ‘Paris 1919: Six Months That Changed the World>로 더프 쿠퍼 상(Duff Cooper Prize) 등을 받았다. 한국에선 <피스메이커: 1919년 파리 평화회의와 전쟁 종결 노력>이란 제목으로 번역돼 출간됐다.  2018년 BBC가 각 분야를 이끄는 저명인사에게 의뢰하는 연례 라디오 강좌 ‘리스 렉쳐(Reith Lecture)’에서 ‘카인의 표지(The Mark of Cain)’ 타이틀로 전쟁에 관해 5차례 강의했다.
<평화를 끝장낸 전쟁(The War That Ended Peace: How Europe Abandoned Peace for the First World War)>(2013), <닉슨과 마오(Nixon and Mao:The Week That Changed the World)>(2008), <역사 속의 사람들(History’s People: Personalities and the Past)>(2015) 등 다수의 저서.

                                                                                      한승동/ 메디치미디어 기획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