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병역제도는 항상 뜨거운 이슈다. 복무기간 단축은 물론 병사 봉급, 대체복무, 군 가산점, 여성 징병제 등을 놓고 매번 찬반 논쟁이 뜨겁게 펼쳐진다. <피렌체의 식탁>은 최근 <역사와 쟁점으로 살펴보는 한국의 병역제도>를 출간한 김신숙 박사의 글을 싣는다.
김 박사는 ‘지속가능한 국방’을 모토로 의무병 감축과 장기복무 전문병사의 확대를 제안한다. 또한 직업군인 강화와 복무여건 개선, 여군 확대와 군의 다양화를 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병역제도에 있어 지난 50여 년간 효율성, 형평성을 중시했다면 이젠 지속가능성을 더 고민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 주변에선 요즘 10년, 20년 동안 군 복무를 하다 전역했지만 제대로 된 일자리를 찾지 못해 쩔쩔 매는 중장년 남성들이 적지 않다. 반면 군 내부에선 병역자원 감소, 복무기간 감축 등으로 인해 인력운용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군 병력 수급을 놓고 군과 사회 사이에 ‘미스 매치’(miss match)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이 글은 김신숙 필자의 개인적 소견이며 국방부의 공식 입장이 아님을 밝혀둔다. [편집자]

#저출생으로 인한 의무병력 감소
  저성장 시대, 국가 재정 부담 증가
  과학기술 고도화로 전문성 요구 
#'지속 가능한 국방' 위한 주요 전략 
①직업군인, 평균 복무기간 늘려야
②계약형 전문병사에 하사 수준 봉급
③중간계급의 진급 및 정년 재설계
④임용연령 제한과 자격요건 완화
⑤장교·부사관에 여성 충원 확대
⑥정예화 위한 무기체계·장비 보강

병역제도는 국가안보의 핵심 정책이면서 항상 민감한 이슈였다. 군 복무기간, 병사 봉급, 병역특례, 모병제, 여성징병제 등 쟁점별로 찬반이 극명하게 갈리는 문제가 대부분이다.
많은 이들이 말하지만, 막상 병역제도가 핫이슈로 떠오르면 그 민감성으로 인해 제대로 논의도 못한 채 물밑으로 가라앉거나 정쟁의 대상이 되기 일쑤였다. 병역제도는 섣불리 개선하기도 어렵고, 반대로 이상적인 개혁만 외치다가는 우리의 군사력과 전투준비태세에 회복하기 어려운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지금까지 한국은 병역제도를 매개로 국방 영역과 일반 사회 영역이 치밀하게 연결돼 왔다. 저출산·고령화로 인해 인구감소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두 영역을 연결하고 있던 끈이 다시 팽팽해지고 있다. 이 점을 상기한다면, 병역제도를 논의할 때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왜 하필 지금이냐(Why now?)”가 아니라, “왜 지금이면 안 되는가(Why not now?)”일 것이다.

#우리 군을 위협하는 3대 변수

우리 사회의 미래 변화를 이끄는 거대한 물결은 저출생, 저성장 그리고 과학기술의 고도화로 압축할 수 있다. 이미 한국은 이 물결의 한가운데에 서 있다.

첫째, 인구구조에서 시작된 밖으로부터의 변화가 지금 우리 군을 위협하고 있다. 2018년 <수축사회>를 쓴 홍성국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인구-경제가 같이 성장하던 팽창사회가 점차 끝나고 사회시스템이 수축사회로 전환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국가에 따라 전환의 속도와 양상은 조금씩 다르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똑 같다. 바로 인구구조의 변화다. 한국의 출산율은 1970년 4.5명, 2000년 1.51명으로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지난해 가임여성 1명당 합계출산율은 급기야 0.918명으로 떨어졌다. 이렇듯 출산율, 생산가능인구, 고령화지수 등 모든 인구통계지표가 일관되게 2020년대 이후 한국의 청년인구가 급감하고, 2060년대까지 인구감소 추세가 계속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최근 범부처 인구정책 TF의 발표에 의하면 20세 남자 인구는 2016년 36만 명으로 정점을 찍은 뒤 2020년 32만여 명에서 급감하기 시작해 2025년 즈음에는 21만여 명 정도가 된다고 한다. 불과 5년 만에 15만 명이 줄어드는 것이다. 이후 20만~21만 명 수준을 유지하다가 2038년 15만여 명으로 다시 급감할 전망이다. 2020년 한 해 동안 병역의무로 군에 들어가는 군인들이 약 21만 명 정도이니 이대로 놔두면 목표병력을 채우는 게 얼마나 어렵게 될지 짐작할 수 있다.

둘째, 인구구조의 변화는 경제성장과 국가재정에 직접적 영향을 미쳐 성장률 정체와 복지재정 부담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은행(2017년)에 따르면, 지금 같은 고령화 추세가 이어질 경우 2000~2015년 연평균 3.9%였던 성장률이 2016∼2025년에는 연평균 1.9%, 2026년 이후에는 연평균 0.4%까지 하락할 것이다.
반면, 고령화 추세와 맞물려 연금, 복지, 의료 등 재정 수요는 더 늘어날 것이다. 청장년들의 노인 부양 부담도 급격히 상승한다. 노인 1명을 부양하기 위해 필요한 경제활동인구인 부양자 수가 2005년 8명이었던 것이 2022년 4명, 2037년에는 2명으로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청장년 2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하게 되는 셈이다. 여기에 더해 지구적 수준에서 코로나19 같은 감염병 확산이나 기후·환경 변화에 따른 자연재해 때문에 국가 재정의 우선순위가 지금과는 근본적으로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과학기술이 고도화되면서 ‘기술 군’ 강화의 요구도 더 높아지고 있다. 무기체계가 첨단화되면서 화력이 증가하고 사거리 및 작전 반경이 늘어나는 추세다. 정보통신기술(ICT) 및 디지털 영상기술이 발전하면서 군은 능동적 감시정찰 능력을 보강함과 동시에 레이더 피탐률을 낮추는 노력을 하고 있다.
과학기술과 첨단장비에 기반한 ‘기술집약형 군대’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군인들의 숙련도가 높아지고 한층 더 전문화되어야 한다. 아울러 우리 안보환경이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은 상황에서 전통적 안보 위협에 더해 인간안보 등 비(非)전통적 위협이 부가되면서 국가와 국민을 지켜야 하는 군으로서는 고민이 깊지 않을 수 없다.

#정책 제안: 새로운 전략의 방향

우리 군은 다양한 안보 위협에 대비하여 튼튼한 국방력을 유지해야 한다. 전투력 유지는 군으로서는 타협할 수 없는 목표일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저출생, 저성장 추세에 따른 외부환경 변화를 무시할 수도 없다.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사회적 여건 변화, 경제성장률의 안정적 둔화, 안보 환경의 불확실성 속에서 지속가능한 국방을 향한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까지 ‘충분한 인구’ 덕분에 병역제도의 혜택을 가장 많이 받아온 군이 이제 ‘인구 감소’의 타격을 가장 먼저, 직접적으로 받게 될지도 모른다.

①직업군인과 평균 복무기간을 늘려야

병역제도 변화의 기본 방향은 강한 군대를 만들기 위한 군인의 전문화와 정예화에 있다. 이를 위해 현재 군 병력 중 직업군인의 비중을 더 늘리고, 이들의 평균 복무기간을 늘려야 한다.
인구 감소를 반영해 병력을 점차 감축함과 동시에 전문화되고 숙련된 군인을 오랫동안 복무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편으로는 병사 복무기간을 줄이라고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오래 복무한 숙련 군인이 필요하다고 하는 이 상황은 얼핏 보면 모순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요구는 사실 같은 맥락의 문제이다. 우리 군 전체에서 병역의무로 입대하는 병사 비율은 65% 정도로 매우 높은 편이다. 때문에 병 복무기간이 중요해지는 것이다. 오래 복무하는 직업군인의 비율이 낮다 보니 짧게 근무하는 병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반면, 군병력은 줄어들고 첨단장비가 계속 늘어나니 적정 복무기간이 중요해진다.

따라서 중장기적으로 군병력 구조의 재구조화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인적 구성을 바꿔 복무기간이 짧은 의무병의 규모는 점차 줄이고, 계약에 의해 복무기간이 긴 지원병이나 직업군인 규모를 확대하는 방식이다.

②계약형 전문병사에겐 하사 수준 봉급을

필자는 병(兵) 집단에서는 현재 의무병 100%로 된 구조를, 복무기간이 짧은 일반병과 복무기간이 긴 계약형 전문병사 집단으로 나누는 방안을 제안한다. 병 집단을 이원화한 후 복무기간이 짧은 의무병의 규모를 점차 줄이되, 자발적 지원에 의해 3~4년 이상 복무하는 전문병사나 직업군인 규모를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일반병과 전문병사의 분리기준은 군에서 전투 임무, 전방 근무, 기술 숙련도 등 임무 기준으로 분리할 수 있다. 계약형 전문병사는 병(兵)일 때부터 하사 수준의 봉급을 주고 안정적으로 운용할 필요가 있다.

외국의 경우도 ‘복무기간을 단축해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와 ‘복무기간을 늘려야 한다’는 군의 요구가 대립해왔다. 대부분은 병력 규모 자체를 줄이면서 병 집단에서 의무병을 줄이고 지원에 의한 전문병사를 단계적으로 늘려나갔다.
의무병의 복무기간 단축으로 생기는 공백은 전문병사가 2~4년 이상 복무하면서 보완해 나갔다. 일견 대립적으로 보이는 복무기간 문제도 머리를 맞대면 점진적으로 풀어나갈 수 있다는 것을 외국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다.

③중간계급까지 진급·정년을 재설계

아울러 군인의 직업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중장기 복무를 최대한 보장해줄 필요가 있다. 우리 군인들은 지금 계급별로 정해한 시한에 진급을 못하면 규정에 따라 전역해야 하는 사실상 비정규직의 처지와 크게 다를 바 없다.
30대 초중반의 소령이 자녀가 막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 즈음 전역한다거나, 중위·대위 및 중사들이 20대 후반이나 30대 초반에 사회로 나가 잠재적 실업자가 되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군 본연의 임무에 전념하기가 쉽지 않다. 적어도 군의 허리인 중간계급까지는 안정적으로 복무할 수 있도록 진급과 정년제도의 합리적 설계를 고민할 때다.
군인 가족의 잦은 이사와 육아 문제, 부부 군인의 근무지역 조정, 전역 후 취업 설계 등 섬세하게 살펴볼 사항이 많다. 국가가 군인들에게 직업 안정성을 충분히 보장해줄 때 이들도 열과 성을 다해 국방에 헌신할 수 있다.

④임용연령 제한과 자격요건 완화

인구감소로 인해 이제 선택권은 청년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청년들이 원하는 직업이 되려면 군도 스스로 매력적인 직장이 되어야 한다. 군 간부 지원율이 떨어지고 상황을 개선하려면 군인의 직업 안정성을 보장함과 동시에 엄격한 임용연령 제한과 자격요건도 완화할 필요가 있다.
육군에서는 최근 10년 이상 복무를 보장하는 ‘장기복무 부사관’ 모집제도를 도입하였다. 채용 결과, 평균 경쟁률이 8.5대1에 달해 복무 기간을 10년 보장하는 것만으로도 경쟁률이 두 배 넘게 오른 것을 확인하였다. 직업군인의 신규임용 연령도 더 올릴 수 있다. 이미 경찰·소방 공무원은 신규임용 연령제한을 40세로 풀었다. 유독 군인만 20대 청년이 시작할 수 있는 특별한 직업인지 진지하게 되묻지 않을 수 없다.

⑤장교·부사관 자리에 여성 충원 확대

여군 확대도 거스를 수 없는 추세다. 우수 여성인력을 확보하기 위해 군이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 한국이 여군 1만 명 시대를 맞았다고는 하나, 이는 우리 군 간부(장교, 부사관)의 6.2%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군인 전체로 보면 여군 비율은 겨우 2% 수준에 불과하다.
2020년대 이후에는 청년·남성 인구 자체가 줄어들기 때문에 장교와 부사관 자리에 여성 충원을 적극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여군 확대는 남성 병역자원 감소 추세에 대한 해결책이자, 사회적으로는 새로운 일자리를 확대하는 효과가 있다. 양적인 확대뿐만 아니라 질적으로도 여성들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다양한 가능성을 살펴봐야 한다.
이 과정에서 최전방 경계 및 전투임무, 잠수함 근무 등 보직과 임무 면에서 남녀의 구분 기준을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남녀의 신체적 조건과 보직을 어떻게 합리적으로 조정할 것인지 군 안팎에서도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다.

⑥정예화 위한 무기체계, 장비·설비 보강

우리 군은 무엇보다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 위협이 상존하고 있는 현실을 무시할 수 없다. 따라서 무기체계, 장비 및 설비의 현대화가 필수적으로 보강되어야 한다. 군인의 정예화를 위해 개개인이 하나의 전투단위로 기능할 수 있도록 장비와 네트워크 통신을 보강해야 한다.
또한 군사전략, 국방개혁과 예산 등 제반 요인을 고려해 병력 규모를 합리적으로 조정함과 동시에 예비군 훈련과 동원시스템을 내실화해야 한다. 사실 상비군의 정예화, 예비군의 강화는 동전의 양면이라고 할 수 있다. 평상시 예비군 동원훈련 체계가 확고히 자리 잡고 있지 않으면 상비군을 줄이기 어렵기 때문이다. 예비군 훈련 체계를 과학화하고, 매년 일정 기간 실질적인 군사훈련을 이수하게 함으로써 유사시 비상동원 체제를 평상시 체계적으로 구축해야 한다.

이제 전혀 다른 시대가 오고 있다. 지금까지 한국의 병역제도는 효율성과 형평성 사이에서 변화를 모색해왔다. 1970~1980년대 효율성 차원에서 각종 병역특례나 대체복무가 만들어졌다면, 2000년대를 전후로 병역이행의 형평성이 더 강화되는 쪽으로 변화돼왔다고 말할 수 있다.
2020년대에 들어선 지금은 지속가능성 가치가 추가되어야 한다. 군과 사회 양 측면에서 지속가능해야 할 뿐만 아니라, 지금 우리 사회에 맞는 것이 과연 우리의 자녀들, 미래 세대에서도 지속가능할 것인지 살펴봐야 한다.


김신숙 필자

고려대와 미국 조지타운대학에서 각각 정치학 석사, 안보정책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2000년 행정고시에 합격해 산업자원부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국방부, 청와대 국가안보실에서 일했다. 현재 국방부 전력정책관실에서 무기체계 획득 정책 및 방위사업법을 담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