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관계가 좀체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아베 신조 총리가 두 번째 집권한 2012년 이후 한일관계는 보수·진보 정권에 관계없이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지난해 여름 일본이 한국에 대해 전격적으로 수출규제를 가한 이후 한국의 반일감정, 일본의 혐한감정은 더욱 거세져 국내외적으로 해법을 거론하기조차 어려운 현실이다.
아베 정권은 왜 한일관계를 파탄으로 몰고 가고 있을까? 한일관계 충돌이 한반도정세에 어떤 변수로 작용하고 있나? 한국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피렌체의 식탁>은 이종원(李鍾元·67세) 와세다대 교수에게 한일 격돌의 원인과 해법을 물었다. 인터뷰어(interviewer)로는 국제문제 전문가인 한승동 기획주간이 나섰다. 이 교수는 서울대 재학 중이던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투옥, 제적된 뒤 1982년부터 일본에서 국제정치학을 공부했다. 특히 미국의 아시아정책, 전후 일본-아시아 관계사 등을 중심으로 연구 활동을 펼쳐왔다.
이종원 교수는 중장기적 관점에서 역사문제와 경제, 안보 등의 쟁점영역을 각각 분리해서 대응하는 다(多)트랙 구도를 추구하고, 한반도 평화체제의 경제적 이익의 가시화를 통해 일본의 한반도 관여라는 경제적 접근을 유도하는 게 유리하다고 말했다. 이번 인터뷰는 지난 7월 말부터 이달 중순까지 온라인 서면 인터뷰 형태로 진행됐다. [편집자]

“한일관계를 일종의특수관계’로 인식해 온 이제까지의 구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 즉 한국 정부 및 사회의 역사문제 제기를 ‘역사 카드’로 폄훼하고 이를 배제하며, 물리적 힘에 입각해서 한일관계를 ‘재편’하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일본 아베 신조 정권의 대외전략은 전후(戰後) 일본이 유지해 왔던 경제 중시, 다자주의의 ‘미들파워 외교’ 구도를 벗어나 ‘보통대국화(化)’를 지향하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위 발언은 한반도 및 한일관계, 동아시아 정세분석 등에서 탁월한 역량을 발휘해 온 재일 한국인 정치학자 이종원 와세다대학 교수(아시아태평양연구과)가 최근 일본 외교의 기본흐름을 압축한 것이다.

이종원 교수의 관점으로 한일관계의 최근 변화에 적용하면 다시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아베 정권은 그 하위개념으로 상정한 한일관계를 ‘격하’하고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견제하면서 한국과의 ‘거리 두기’,  (신냉전 체제 속에) ‘한국 가두기’를 시도하고 있다.”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징용공)에 대한 배상을 명한 한국 대법원의 확정판결에 반발하면서 지난해 7월 한국에 대한 첨단소재 부품 수출 규제, 화이트리스트 배제, 한일 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GSOMIA)을 둘러싼 갈등으로 이어진 최근의 심각한 한일 간 알력 내지 갈등도 일본 외교·안보 역사에 정통한 이 교수의 이런 관점(분석틀)으로 바라보면 흐릿했던 시야가 일거에 맑아질지 모른다.

이 교수의 관점으로 아베 정권 외교안보전략의 지향성을 좀 더 구체적으로 정리하면 ①미일동맹을 발판으로 한 ‘대국주의 외교’, ②주요국과의 안보협력 확대, ③중·러에 대한 일정한 독자외교 모색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는 외교의 경제적 수단을 강조하고 지역협력 등 다자주의를 중시했던 종래와는 달리, 군사적 역할 확대, 다자협력보다는 주요국과의 양자관계를 중시하는 경향인데, 이 교수는 이를 “중국의 부상에 대비한 ‘신냉전’ 체제 구축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한편으로는 중국에 적극적으로 접근하는 듯 보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미국 트럼프 정권의 대중국 봉쇄전략에 적극 가담하고 있는 아베 정권의 기묘한 대중국 외교전략, 모호해 보이는 대러시아 외교전략, 그리고 대미국 전략도 이 교수의 분석틀로 보면 그 정체가 좀 더 분명히 드러나 보인다.

아베 정권의 최근 한반도 정책변화 경향을 이 교수의 관점에서 더 구체적으로 정리하면 ①한일관계의 ‘재조정’ 또는 ‘격하’, ②한반도 유사사태(전쟁 등 급변사태)에 적극적 관여, ③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대한 견제와 대비로 요약된다.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미일동맹을 축으로 삼아 대국(大國)간 틀 만들기를 우선하면서 한일관계는 그 하위개념으로 상정하고, 한일관계를 일본 국익에 맞게 물리적 힘을 동원해서라도 바꾸겠다는 것이다.

한반도 상황변화가 무력사태로 나아갈 경우 일본은 적극적으로 개입해 영향력을 확보하며, 남북화해 등 한반도 평화체제 진전은 가능한 한 방해한다. 이는 한국 ‘가두기’라고도 할 수 있다. 달리 말하면 한국 정부가 대등한 한일관계를 전제로 지향해온 동아시아 안보 조정자·균형자 역할을 거부하고, 일본이 우위에 서는 일본 중심의 과거 권력정치(power politics)식의 대국주의로 돌아간다는 얘기다.

관건이 되는 것은 일본 대외전략에 절대적 영향을 끼치는 미국의 동향인데, 이 교수는 지금의 미국 동아시아전략과 국제정치 상황은 아베 정권의 대외전략에 유리한 국면으로 전개되고 있다고 본다. 중국의 급부상을 견제하는 영국과 유럽도 일본의 역할증대를 지지하고 있다. 한국에겐 매우 불리할 수도 있다. 이를 제대로 봐야 한다. 하지만 일본 국내상황을 보면, 아베 정권 외교전략이 일본의 부담만 키워 실익은 없고, 실현 가능성도 낮다는 비판이 나오는 등 녹록치 않다.

◇일본에서 폐기된 전통의 ‘미들파워 외교’

-아베 정권 핵심부, 내셔널리스트 포진
-미일동맹 강화한 '대국주의'로 회귀

▲한승동 주간

한반도 정책을 포함한 아베 정권의 최근 대외정책 행보가 바뀌고 있는 것 같다. 특히 미중 무역분쟁이 격화하면서 한때 양국 정상 교환방문을 성사시키는 듯 보였던 일본의 적극적인 대중국 접근 정책이 미중 분쟁과 ‘홍콩 사태’ 이후 반중 내지 중국 견제 쪽으로 선회하고 있는 모양새다. 한일관계도 그런 기조 위에 재조정되고 있다고 봐야 할까? 일본 외교는 어디로 가고 있나?

▲이종원 교수
1945년 패전 이후 일본 외교의 기본적인 틀은 “경무장 경제중시”를 주된 내용으로 하는 ‘요시다 시게루(吉田茂, 1878~1967. 패전 직후 장기간 총리 역임) 노선’으로 요약할 수 있다.
패전국으로서 평화헌법을 제정하는 한편, 안전보장 면에서는 미일동맹(미일안보조약)에 의존하는 모순된 구조 하에서 현실적인 타협책으로서 선택된 것이 ‘보수 본류(本流)’의 요시다 노선이다. 이에 반발한 좀 더 우파적인 보수 방류(傍流)세력이 거듭 자주국방, 자주외교를 주장했지만 좌절당했다.
그 배경에는 일본 국내에 뿌리내린 반전(反戰) 평화주의와 더불어 일본 군국주의 부활에 대한 미국 등 국제사회의 경계가 있었다. 이런 흐름을 바탕으로 최근까지의 일본 외교는 ‘미들파워(middle power) 외교’로 특징지울 수 있다.
‘미들파워 외교’는 ‘중견국 외교’로 번역될 수 있는데, 국제정치학에서 이는 단순히 국력의 규모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전통적인 대국 중심의 권력정치(power politics)와는 다른 외교의 패러다임을 추구하는 것으로 정의된다. 이는 ‘비대국주의 외교’로도 지칭할 수 있는데, 구체적으로는 분쟁의 평화적 해결, 안전보장의 비군사적 수단 중시, 국제기관 및 지역기구 등 다자주의 지향 등을 그 내용으로 한다.
일본은 1980년대에 경제대국으로 떠오른 이후에도 안전보장의 경제사회적 측면을 강조한 ‘총합안전보장’, ‘인간안보’ 개념을 제창했으며, 호주와 더불어 APEC(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을 창설하고 김대중 대통령과 협력해 ‘ASEAN+3’를 토대로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 및 한중일 삼국협력에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는 등 ‘미들파워 외교’의 특징을 보여 주었다. 실제로 소에야 요시히데(添谷芳秀) 교수의 저작 <일본의 미들파워 외교>는 일본 외교를 설명하는 틀로 널리 논의되고 수용되었다.

▲한승동 주간
그러니까 이베 정권 이전의 일본 대외정책은 ‘미들파워 외교’ 전략을 기조로 하고 있었다는 얘기고, 다수의 사람들이 대체로 지금껏 알고 있는 일본 외교도 그런 것인데, 아베 정권 이후에는 완전히 달라졌다는 얘긴가?

▲이종원 교수
1980년대 말 미·소 냉전이 종결된 뒤 탈냉전기의 일본 외교는 세계적 안전보장 환경의 불안정화 속에서 점차 현실주의 및 국가주의적 경향으로 기울기 시작했으며, 현재 아베 정권의 외교는 전통적 ‘대국주의 외교’로의 회귀를 지향하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탈냉전기 일본 외교의 흐름은 크게 3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①리버럴: 시민강국(civilian power)론/ 통상국가(trading state)론
②리얼리스트(현실주의자)의 보통국가론: 국제협력파/ 미일동맹 강화파
③내셔널리스트(국가주의자)의 전통국가론: 미일동맹 활용파/ 반미 자주파
리버럴한 외교 지향 중에서 전통적 진보세력은 탈냉전 초기에 ‘시민강국론’을 제창했다. 반면에 보수 본류 중 온건파는 ‘통상국가론’을 국가 이념으로 제시했다. 그 뒤 걸프전쟁으로 국제적 안전보장에 대한 일본의 역할을 주로 미국 등으로부터 요구받게 되자 리얼리스트 지향성이 주류로 부상했으며 이들은 ‘보통국가’를 슬로건으로 내세웠다.
그 구체적 내용을 둘러싸고 유엔 등 국제기구를 토대로 한 국제협력 중시 그룹과 미일동맹 틀을 강조하는 그룹으로 나뉘게 된다. 자민당 간사장으로 보통국가론을 제창한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는 미일동맹 강화와는 거리를 두는 국제협력 중시 그룹에 속한다.
종래에는 자민당 보수 정권하에서도 주변적 세력이었던 내셔널리스트 그룹이 점차 권력의 중심에 자리잡고 대내외 정책에서 일종의 ‘전통국가’로의 복귀 지향성을 보이게 된다. 이들 중에서도 가장 우파적인 세력은 반미 자주적 역사관을 가지고 있으나 현실적인 그룹은 미일동맹 강화를 통한 일본의 지위 상승을 도모한다.
현재 아베 정권은 총리를 비롯한 정권의 핵심부에 내셔널리스트들이 포진하고 있다. 이들의 역사관은 전쟁 책임을 부정하는 반미 자주파적 인식을 계승하나 현실적 선택지로 미일동맹 활용을 통한 국가주의적 어젠다의 실현을 지향한다. 외교 정책의 브레인으로 미일동맹 강화파 리얼리스트들이 중용돼 외교 안보전략을 체계화하고 있는데, 그 지향성은 ‘보통국가’를 넘어서 ‘보통대국’으로서, 국제정치의 중심무대로의 ‘복귀’를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한승동 주간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 등 최근 일본의 한반도 정책변화도 그런 전체적 구도, 맥락 위에서 보면 한결 더 명확하게 그 의미를 포착할 수 있을 것 같다.
전후 일본의 한반도 정책은 분단의 현상유지, 즉 사실상의 ‘두개의 코리아’ 정책이 기조를 이루어 왔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의 동아시아 냉전전략 체제 아래서 한국을 지원하면서도 북한과 일종의 ‘정경분리’ 형태로 정당 사회단체 및 민간 접촉은 유지해 왔다. 냉전 종결 이후에도 일본은 1990년 9월의 한·소 국교수립 결정에 대응해서 같은 달에 자민당 부총재 가네마루 신(金丸信)이 이끄는 대표단이 방북해 북일국교정상화 교섭을 개시하는 등 한반도 현상유지를 위한 균형정책을 계속 추구했다. 미국 부시 정권의 네오콘(neocon. 미국 제일주의를 지향한 신보수주의자들)들 압박정책으로 북한에 위기의식이 고조됐던 2002년에 고이즈미(小泉純一郞) 총리가 방북해 북일 평양선언에 합의한 것도 한반도 상황의 급격한 변화를 억제하려는 균형정책의 연장선상으로 볼 수 있다.

◇일본 외교의 두 가지 흐름

-우파적 역사수정주의 이념 전면 표방
-비판 받자 국제협력 통한 위상 강화

2000년대 들어 한반도의 탈냉전 모색과 더불어 중국의 부상으로 인한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변화가 본격화되면서 일본의 한반도 정책에는 두 가지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그 하나는 보수 본류의 지향성으로, 한국과 연계해서 한반도 탈냉전과 중국의 부상으로 인한 동아시아 신냉전에 대한 적극적인 관여를 모색하는 정책인데, 오부치(小淵惠三) 정권에서 고이즈미 정권까지는 기본적으로 여기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반해 한반도 탈냉전과 동아시아 신냉전을 상호 연관된 안전보장상의 불안정 요인으로, 나아가 위협 요인으로 간주하고 이에 대한 견제와 대비에 중점을 두는 더 우파적인 또 다른 정책 흐름이 대두되고 있다. 아베 정권은 바로 이런 지향성을 체계화하고 있다.

▲한승동 주간
최근 아베 정권의 대(對)한반도 정책 변화는 호주, 인도 그리고 동남아를 엮어 중국 견제 내지 봉쇄 태세를 강화하고 있는 듯 보인다. 한반도 정책과도 밀접히 연결돼 있을 아베 정권의 이런 전략 변화는 미국의 중국 견제전략과도 밀접히 연계돼 있는데, 유독 한국에 대해서는 배제에 가까운 무관심을 의도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 같다. 왜 그런가?

▲이종원 교수
아베 정권의 외교안보 전략상 전반적인 구도와 논리는 제1차 정권기(2006~2007년)와 제2차 정권기(2012년 이후)에 크게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제1차 정권기에는 ‘전후 체제의 탈각’을 중심적 슬로건으로 내건 사실이 보여주듯이 우파적 역사관과 이념을 전면에 표방했다. 전후 체제란 도쿄(전범)재판(1946~1948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1951~1952년)을 의미하는 것으로, ‘평화헌법’을 비롯한 전후 일본이란 나라의 골격을 미국의 점령지배의 산물로 인식하고 그것의 극복을 지향하는 논리다.
이런 ‘역사수정주의’에 대해 미국의 비판이 고조되면서 아베는 집권 1년 만에 건강을 이유로 정권을 포기하게 된다. 이런 실패를 교훈삼아 2012년 12월 정권에 다시 복귀한 이후에는 수정주의적 역사관의 대외적 표출을 억제하고, 외교정책 슬로건으로 ‘적극적 평화주의’, ‘가치관 외교’, ‘지구의를 부감하는 외교’, ‘주장하는 외교’, ‘세계의 중심에서 빛나는 일본’ 등 보편적이고 국제협력적인 개념을 통한 일본의 위상 강화 및 확대에 중점을 두는 쪽으로 방향을 바꿨다.

◇주목해야 할 아베의 미 의회 연설내용

-2차 대전 전범국? "냉전체제 전승국" 
-대외정책 우선순위서 한국 위치 격하

지금의 아베 외교의 지향성과 논리구조를 집약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2015년 4월 29일 아베 총리가 미국 의회 양원합동회의에서 한 연설을 들 수 있다. 이 연설은 아베 총리가 정권에 복귀한 뒤 2차 대전 종결 70주년을 맞아 미 의회에서 한 것이다. 아베 정권의 총리 연설이나 강연 등은 이전 내각 관료들의 형식적·수사적 작문과는 달리 측근 외교 브레인들에 의해서 작성되며, 외무성 등 관료조직의 문서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면밀히 분석할 가치가 있다.
이 연설에서 아베 총리는 “미국과 일본은 냉전을 함께 싸워서 승리한 국가”라고 규정했다. 그 함의는 2차 대전을 기준으로 하면 일본은 패전국이 되지만, 냉전기를 기준으로 하면 일본은 미국과 더불어 ‘전승국’이 된다는 논리다. 따라서 일본은 미일동맹을 기축으로 하면서 “호주, 인도와 전략적 관계를 심화”하고 “아세안 각국 및 한국과 다면적 협력”을 통해서 “태평양에서 인도양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의 질서 구축을 선도할 것임을 천명했다.

▲한승동 주간
2차 대전 패전 뒤에도 전범국 일본은 미국에 의해 사실상 전승국 대우를 받아 왔지만, 냉전체제 해체를 기해 사회주의체제와의 차가운 전쟁에서 이긴 ‘진짜 전승국’으로 거듭나겠다는 발상이 놀랍고, 이를 토대로 중국 견제를 위한 신냉전 체제 구축을 주도하는 나라가 되겠다는 발상은 더욱 놀랍다. 한국은 설 자리가 없어 보인다. 일본 뒤에 줄을 세우겠다는 것인가.

▲이종원 교수
이 연설에 나타난 일본 대외정책의 우선순위에서 한국의 위치가 저하되고 있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일관계의 위상을 낮추는 경향은 제2차 아베 정권 들어 일관된 경향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런 구도와 논리는 매년 1월 정기국회 개회 시에 제시되는 시정방침연설의 외교정책 부분에서도 기본적으로 반복되면서 체계화되고 있다.
시정방침연설 내용은 외무성이 매년 발간하는 외교청서의 틀을 규정하고 있는데, 2017년 연설에서는 미일동맹을 축으로 “기본적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과 연계”를 제시하면서 구체적으로는 “아세안, 호주, 인도”를 언급했다.
한국은 ‘근린제국과의 관계개선’, 즉 인근 국가들과의 현안을 지적하는 항목에 포함시키고, 그 중에서도 러시아, 한국, 중국, 북한 순으로 나열해 한국을 뒤로 뺐다. 시정방침연설과 외교청서 등에서 2014년까지는 한국에 대해 “기본적 가치를 공유”한다는 표현이 사용되었지만, 2015년 이후엔 “전략적 이익 공유”로 바뀌었다가 2017~2018년 이후에는 이 표현조차 삭제됐다. 2018년 시정방침연설에서는 미일동맹을 축으로 “유럽, 아세안, 호주, 인도”와의 연계가 표방되고, 근린국가와의 관계에서는 중국, 한국, 러시아 순으로 언급됐다.
가장 최근인 2019년 1월 연설에서는 미일동맹 이외에는 개별 국가에 대한 언급 없이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 태평양” 구상이 포괄적으로 제시됐다. 반면에 동북아 지역에 대해서는 “종래 발상에 구애받지 않는 새 시대의 근린외교”를 내걸면서 중국, 러시아, 북한과의 관계 개선 및 대화 의지를 표명한 반면 한국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을 하지 않은 점이 주목을 받았다.

◇일본의 대국주의 외교

-영·프 등 주요국과 안보협력 강화
-‘집단적 자위권’ 법제 정비로 뒷받침

▲한승동 주간

아베 정권의 외교안보 전략상 지향성을 미일동맹을 발판으로 한 ‘대국주의 외교’ 시도, 주요국과의 안보협력 확대, 중·러에 대한 일정한 독자외교 모색으로 요약하면서 이를 일종의 전통적인 권력정치(power politics)적 국제정치관으로의 회귀 경향으로 봤는데?

▲이종원 교수
‘대국주의 외교’ 지향성은 아베 총리가 정권에 복귀한 이후 첫 번째 미국방문 때 했던 연설에 집약적으로 표현돼 있다. 2013년 2월 22일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에서 한 연설의 제목은 “일본이 돌아왔다”(Japan is Back)인데, 이 연설에서 아베 총리는 “일본은 현재에도 또 앞으로도 2류국가(Tier-2 country)가 되지 않을 것”이라 선언하고 아시아태평양 및 인도태평양 지역의 질서 구축에서 일본이 “주도적 지위”를 차지할 것임을 천명했다.
실제로 2006년 아베 정권이 들어선 뒤, 특히 2012년 말 이후의 제2차 정권에서는 ‘미들파워 외교’ 논의는 서서히 후퇴했으며, 대신에 ‘주요국’ 개념이 중심이 되는 경향을 보인다. 또 종래의 ‘미들파워 외교’의 주요한 축이었던 동아시아 지역협력에 대한 정책적 관심과 관여도 현저히 저하되고 있다.
‘대국주의 외교’의 구체적 실천방안으로는 미일동맹 강화를 토대로, 이른바 주요국과의 안보협력 체제 확대에 주력하고 있다. 제1차 정권기인 2007년에 미국 이외에는 최초로 호주와 안보공동선언 및 ‘2+2’ (국무·국방 합동각료회의)를 창설했으며, 호주의 정권교체에 따라 약간의 변동은 있으나, 양국 간 합동훈련 등 안보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호주와의 안보협력은 미국의 부시 정권 후기부터 시작된 미국 중심 지역동맹의 지역적 확대정책의 일환으로 일본 민주당 정권 때도 계속 추진된 것이지만, 제2차 아베 정권 들어 한층 더 가속화됐다. 2014년에 프랑스와 ‘2+2’를 개시한 뒤, 2015년에는 영국, 2019년에는 인도와도 같은 협의체를 창설하는 한편 이들 국가와 합동 군사연습, 군사기술 협력, 전투기·미사일을 비롯한 첨단병기 공동개발 등으로 확대해 안보협력을 심화시키고 있다.
영국, 프랑스는 중국과의 경제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안보 면에서 자신들도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동아시아 지역에 대한 중국의 군사적 확대를 견제하는 틀로서 일본과의 안보협력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영국은 EU 이탈 이후 동아시아 지역의 영향력 확보라는 관점에서 일본과의 안보협력을 가속화하고 있어 언론에서 “제2차 영일동맹”이라 평가하기도 했다.
인도 역시 중국에 대한 견제라는 점에서 유사한 동기를 지니고 있다. 2015년의 안보법제, 즉 해석개헌을 통해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용인하는 법률체제 정비도 이같은 ‘대국외교’를 뒷받침하는 조치로 해석할 수 있다. 당시 아베 정권의 한 정책브레인은 안보법제의 의미에 관해 당장 해외에서 전쟁에 관여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안전보장 외교에 근육을 제공해 이를 뒷받침하는 조치”라고 설명한 바 있다.

◇신냉전과 對중국 전략

-美와 신냉전 동맹체제 구축하되
-中과 외교관계 개선 적극 추진

▲한승동 주간

아베 정권의 최근 대중국 행보가 감을 잡기 어려울 정도로 변화무쌍하다는 지적도 있다. 중국과의 관계에서 일본 외교가 진짜 노리는 것은 무엇이라고 보나?

▲이종원 교수
주요국과의 안보협력 확대가 중국의 부상에 대비하기 위한 ‘신냉전’ 체제 구축의 일환인 것은 명확하다. 하지만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군사적 견제와 병행해서 독자적인 외교를 시도하고 있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베 정권의 대중국 정책은 이중적 구도를 지니고 있다. 군사·안전보장 측면에서는 미국 군부의 중국 견제 정책과 연계하면서 대중국 대항 동맹체제 구축 및 일본 자신의 방위력 증강에 주력하고 있다.
이를 토대로 외교 면에서는 중국과 일정한 대국간 관계 형성을 추진하고 있다. 민주당 정권기였던 2010년 센카쿠열도 (중국명 댜오위다오) 주변 어선 충돌사건, 2012년 일본의 센카쿠 국유화 조치 등으로 중일관계가 ‘국교정상화 이후 최악’의 상태로 치닫는 가운데 아베 정권은 ‘중국 위협론’을 내세워 2015년에 집단적 자위권을 인정한 안보법제를 제정하는 등 신냉전적 체제정비를 추진하는 한편, 그 직후부터 중국과의 외교적 관계개선을 시도해 오고 있다.
2017년에 아베 총리와 리커창 총리가 일련의 정상회담에서 양국 군 사이의 우발적 충돌방지를 위한 ‘해상공중 연락메커니즘’ 설치, 양국 관계 격상을 위한 전략적 소통 및 경제협력 강화에 합의한 데 이어, 2018년 10월에는 아베 총리와 시진핑 국가주석이 중일관계 발전을 위해 ‘경쟁에서 협조’, ‘상호 위협이 아닌 파트너’ 등의 원칙을 제창했다.
기본적으로 아베 정권이 중국과 일종의 대국간 관계설정을 시도한 것이 배경에 있으나, 트럼프 정권 출현 이후 자국 제일주의 및 보호주의 추세가 대두된 것이 중국 측의 적극적인 자세를 촉발시킨 것으로 분석된다. 중국으로서는 미중관계의 전반적 악화 속에서 외교적인 압력을 분산할 수 있는데다, 일본의 환경기술 등 중국의 경제적 필요에 따른 동기에서도 일본에 접근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에 대해 일본도 미국의 동아시아지역 관여의 장래 불확실성에 대한 대비, 외교적 입지 강화라는 관점에서 중일관계 개선에 적극적으로 임하고 있다. 내년 초 시진핑 주석의 국빈 방문이 이뤄질 경우 이를 계기로 양국 관계 강화를 다면적으로 시도할 것이다. 중국이 요청하는 일대일로(一帶一路) 구상 참여에 대해서도 일본은 제3국 협력이라는 형태로 호응할 의사를 표명하고 있다.

◇신냉전과 對러시아 전략

-러일관계, 中 영향력 확대 견제장치
-북방영토 문제 해결은 교착 상태

▲한승동 주간

러시아와의 관계도 간단하지 않아 보인다. 아베 총리는 이른바 ‘북방영토’ 귀속 문제 해결을 중심으로 일러 관계를 재정립하겠다는 의욕을 보였지만, 별다른 진전이 없는 것 같다. 중국을 겨냥한 신냉전 체제에서 일본의 대러시아 정책은 무엇인가?

▲이종원 교수
러시아에 대해서는 더 적극적인 관계강화를 추진해 왔다. 정권 복귀 직후인 2013년 4월 일본 총리로는 10년 만에 러시아를 공식 방문한 것을 비롯해, 제1차 정권을 포함해서 아베 총리는 푸틴 대통령과 2019년 말 현재 모두 27차례나 정상회담을 했다. 2014년 초 우크라이나 사태 및 크리미아반도 합병으로 미국과 유럽이 대러시아 제재를 하는 가운데, 2016년 아베 총리는 오바마 대통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방문을 강행해 러일 간 경제협력을 제안하는 등 일종의 대러 독자외교를 끈질기게 추구하고 있다. 직접적으로는 북방영토 문제 해결을 자신의 역사적 업적으로 하고자 하는 정치적 의욕과 야심이 그 배경에 있다.
러일 접근은 양국의 전략적 이해관계가 다르지 않다는 사실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러시아로서는 푸틴 대통령이 중시하는 신동방정책, 즉 낙후된 러시아 극동지역의 발전에 일본의 경제력을 활용하려는 목적이 있다. 또한 양국 모두 중국의 영향력 확대에 대한 균형장치로서 러일관계를 상정하는 발상도 눈여겨볼 만하다. 아베 정권이 작성한 ‘국가안전보장전략’(2013년 12월) 문서는 러일관계 강화를 중국의 부상에 따른 동북아 안보정세 변화에 대한 대응책의 하나로 제시하고 있다.
러일 양국은 2013년부터 ‘2+2’를 설치해 영토문제뿐만 아니라 북핵 등 동북아 지역의 안전보장 문제에 관해서도 협의하는 체제를 갖추고 있다. 북방영토 문제 해결에 대한 러시아의 소극적인 자세로 현재 러일관계는 교착상태지만, 전략적 협조를 모색할 동기와 구도는 상존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한승동 주간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보다 아베 정권이 훨씬 폭넓게, 그리고 적극적으로 대외정책을 펼치면서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종원 교수
살펴본 대로 아베 정권의 외교안보 전략은 경제 중시, 다자기구를 통한 지역협력 등을 특징으로 하는 종래의 ‘미들파워 외교’와는 질적으로 다른 차원으로 전환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군사적 관여를 포함한 안보협력 중시, 다자주의보다 양자주의 중시, 힘을 기반으로 한 외교 등 전통적인 권력정치적 ‘대국 외교’로의 회귀를 추구하는 경향이 점차 뚜렷해지고 있다. 이른바 ‘보통국가’를 넘어서 ‘보통대국’을 지향하는 전략이라고 이를 요약할 수 있다.


◇아베 정권, 한반도 전략 재설정과 한국 격하

-한일 관계를 '대국외교 하위개념'으로
-경제력 같은 물리적 힘으로 재편 시도

▲한승동 주간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아베 정권의 한국 견제 강화 또는 한국 무시, 압박 움직임이 노골화하고 있다. 수출규제뿐만 아니라 트럼프 대통령의 한국 G7회의 초청이나 유명희 장관의 WTO 사무총장 도전, 군함도 세계유산 등재 및 개방 과정 등과 관련해 일본 정부가 보인 태도, 그리고 코로나19 사태 이후 평행선을 달려온 한일 양국의 대결적(?) 자세 등은 한일관계가 다른 차원으로 이행하고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하는데, 그것을 주도하고 있는 쪽은 일본이다. 그 배경에 일본의 한반도전략에 근본적인 변화가 깔려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종원 교수
아베 정권의 이런 대외전략 구도 하에서 한반도 정책에도 일정한 변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그것은 ①한일관계의 ‘재조정’ 또는 ‘격하’, ②한반도 유사(급변사태 등)시 적극 관여, ③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진전에 대해서는 견제와 대비 등 3가지로 요약할 수 있겠다.
먼저 한일관계 전반에 관해서 얘기하자면, 앞서 얘기한 대국주의 외교라는 틀 속에서 한일관계를 그 하위개념으로 ‘격하’시키려는 경향이 아베 제2차 정권 들어 더욱 두드러진다. 이는 말하자면 역사적 관계 및 냉전기의 지역구도 등을 배경으로 한일관계를 일종의 ‘특수관계’로 인식해 온 이제까지의 구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아베 총리 및 정권 핵심부에 역사수정주의적 사고가 강한 것도 그 배경으로 작용한다. 즉 한국 정부 및 사회의 역사문제 제기를 ‘역사카드’로 폄훼하고 이를 배제하며, 물리적 힘에 입각해서 한일관계를 ‘재편’하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대외전략에 관한 일련의 문서들에서 한일관계를 ‘격하’하려는 움직임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 강제동원 피해자(징용공) 배상판결 등의 역사문제가 외교 쟁점화하는 것과 비례해서 강화되어 왔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시정방침연설 등 아베 총리의 주요 연설에서도 시간의 경과와 더불어 대외정책에서 차지하는 한국의 위치가 지속적으로 저하되어 왔으며, 외무성이 발간하는 외교청서에서도 같은 경향이 나타난다. 제2차 아베 정권 출범 이후 2013년 12월 일본이 최초로 발표한 ‘국가안전보장전략’ 문서에서는 미일동맹에 이어 “보편적 가치와 전략적 이익을 공유하는 국가”들과의 협력을 제시했고, “한국, 호주, 아세안, 인도” 순으로 열거했다.
이 문서는 당시 야치 쇼타로(谷內正太郞) 국장을 중심으로 국가안전보장국이 작성한 것인데, 현실주의적 외교안보 브레인의 전략적 사고가 반영된 것으로 평가됐다. 이를 토대로 외교청서 2013년 및 2014년판에서는 한국에 대해서 “기본적 가치와 이익을 공유하는 중요한 이웃국가”라는 표현이 사용되었으나, 2015년판 이후 “기본적 가치 공유” 표현이 삭제되고 “중요한 이웃국가” 또는 “전략적 이익을 공유” 등으로 ‘격하’되었다.
직접적으로는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위안부 문제 등으로 한일 마찰이 고조되는 한편 시진핑 주석의 북한에 앞선 공식 방한(2014년 7월),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 전승 70주년 기념행사 참석(2015년 9월) 등 급속한 한중 접근이 그 배경에 있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로 인해 아베 정권 내에서 현실주의파보다 역사수정주의파의 영향력이 증대된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이후인 2018년판에서는 “한일 양국의 연계와 협력이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평화와 안정에 불가결하다”는 표현에 그쳤으며, 2019년판에서는 한일관계에 대한 “한국 쪽의 부정적 움직임”을 비판하는 내용으로 크게 바뀌었다.
2019년 7월 이후 일본이 징용판결에 대한 보복조치로 반도체 핵심부품에 대한 수출규제, 백색국가(화이트리스트) 제외 등 경제적 압박 카드를 꺼낸 것도 물리적 힘으로 한일관계를 재편하려는 의도가 드러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조치는 일본이 한국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전후 일본 외교역사상 처음으로 경제력을 외교적 압력수단으로 행사한 사례로 평가됐다. 당시 아베 총리 관저와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관계자들을 중심으로 비공식 석상에서는 “이번 기회에 힘으로 한일관계 양태를 바꿔야 한다”는 논의가 거침없이 제기되기도 했다.

◇“한일관계를 힘으로 바꾸겠다”

-한반도 긴장감 고조시 군사행동 시사
-평화 프로세스는 '견제'와 '대비' 전략

▲한승동 주간

한일관계를 힘으로 바꾸겠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얘기인가? 군사력이라도 동원하겠다는 뜻인가?

▲이종원 교수
한반도 정책 전반에 관해서는 두 가지 상황 전개에 대응하는 전략적 선택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한반도에서 긴장이 고조되어 군사적 충돌 또는 급변사태 등이 발생하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아베 정권은 군사행동을 포함해 미국과 함께 적극적으로 관여함으로써 한반도에 대한 발언권과 영향력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실제로 2015년 무렵부터 미국을 중심으로 '참수작전' 등 북한에 대한 군사행동 가능성이 논의되었을 때 일본도 미일 협의를 긴밀히 진행했으며, 1.5트랙 차원에서 중국 등 역내의 관련국과도 유사한 협의를 시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2017년 트럼프 정권 출범 이후 대북 군사공격 가능성이 본격화되었을 때에는 미국의 강경정책을 전면적으로 지지하는 수준에 그치지 않고 아베 총리 자신이 전쟁 발발에 대비한 외국인 피난 조치에 대한 준비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무력충돌을 오히려 야기하는 듯한 자세를 취했다.
아베 정권이 대북 군사행동을 적극적으로 기대했는지는 확인할 수 없으나, 미국이 행동을 취할 가능성이 높을 경우 이에 주도적으로 가담하는 것이 일본의 영향력 확보에 유리하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아베 총리 자신도 종래 일본인납치 문제 해결과 북핵 위협 제거를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북한의 체제변화가 필요하다는 지론을 거듭 밝힌 바 있으며, 일본 정부 및 자위대 일각에는 군사행동 불가피론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가와노 가쓰토시(河野克俊) 당시 자위대 통합막료장(한국의 함참의장에 해당)은 퇴임 후 미국의 군사행동에 대비해 일본도 나름의 계획을 준비했는데, 이를 실행하지 않고 트럼프 정권이 북미교섭으로 전환하는 바람에 문제해결을 지연시키고 있다는 견해를 일본 미디어 등에 서슴없이 밝히고 있다.

▲한승동 주간
<일본은 왜 몰락하는가>를 쓴 일본의 경제학자 모리시마 미치오는 근대 이후 일본이 한국전쟁, 베트남전쟁에 이르기까지 전쟁을 통해 성장해온 국가라고 지적하면서, 일본 정치의 무능으로 경제적 곤경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될 경우 다시 전쟁이 나기를 바랄 것이라고 했는데, 최근 일본 우파들 얘기를 들으면 그것을 실감하게 된다.

▲이종원 교수
남북대화 및 북미교섭을 통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전개에 대해서는 ‘견제’와 ‘대비’가 주된 대응이라 정리할 수 있다. 우선 남북관계의 급속한 진전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한·미·일’ 틀을 강조함으로써 한국의 움직임을 억제하는 한국 ‘가두기’가 정책적 선택지가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진전될 경우에는 한국과 ‘거리두기’가 본격화될 가능성이 있다. 현재 일본의 대한국 정책은 견제를 위한 ‘가두기’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대북 제재의 이행 감시를 영국 등과 협력해 어느 나라보다도 열심히 실행하면서, 그 위반 사례를 언론을 통해 상세히 공개하거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의 유지를 강조하는 것 등이 그 일환이다.
일본 정부의 공식문서는 아니지만, 아베 정권 및 외무성과 긴밀한 관계에 있는 외교안보 전문가 그룹이 작성해서 공표한 정책제안서 <미일동맹을 재구축한다>(2017년 발간)에서 “한국 정부가 너무나 급속히 또는 일방적으로 남북관계 개선에 나설 경우 미국과도 협력하면서 브레이크를 밟을 필요가 있다”고 공언한 것도 이같은 사고를 반영한 것이다.
아베 정권은 기본적으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즉 한반도의 긴장완화가 주한미군 감축 및 철수 등으로 이어져, 중국과의 신냉전에 대비하는 일본 자신의 안전보장체제에 부정적 영향을 주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한국 가두기’

-통일 한반도와 중국과 연계 경계 극심
-안보 놓고 ‘신(新)애치슨 라인' 논의도

▲한승동 주간

일본에게 유리한 신냉전 구도를 확립하기 위해 남북화해, 즉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는 저지돼야 한다는 논리는 마치 한반도가 일본을 겨냥한 비수(匕首)라거나 그대로 내버려 두면 러시아에 먹혀서 일본 침략의 발판이 될 것이라며 한반도 침략과 식민지배를 정당화했던 과거 구한말 당시 군국주의 세력, 정한론자들의 재래를 보는 듯하다. 아베 정권하의 일본의 정신구조는 그때와 별로 바뀌지 않은 것 같다.

▲이종원 교수
중국에 대한 ‘신냉전’ 구도 하에서 일본이 한국과의 관계를 중시해야 한다는 주장이 종래 일본의 보수 주류 내에서는 다수파였고 아직도 현실주의파 사이에는 남아 있다.
그러나, 아베 정권에서는 이에 대한 회의적 견해가 대두되고 있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한국을 ‘한·미·일’의 신냉전 구도에 가두는데 중점을 두고, 중일 사이에서 한국에 독자적인 외교의 여지를 주는 것은 오히려 일본에 부담이 되므로, 중국에 대해서는 일본이 직접 양자 간 대국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상책이라는 논리다. 즉 한국의 ‘균형자’적 역할 모색에 대한 견제라 할 수 있다. 이 점에도 아베 정권의 전통적 대국외교 지향성을 엿볼 수 있다.
그와 병행해서 남북관계 및 북미교섭 진전에 따른 한반도 평화체제에 대한 대비로서 한국과 일정한 거리를 두려는 움직임도 보이기 시작했다. 한일관계의 ‘격하’ 시도도 그를 위한 포석이라는 측면이 있어 보인다.
이전부터 ‘통일 한반도’에 대한 불안감은 일본 대외정책 관계자나 전문가들 사이에서 때로 표명되고 했지만, 가네마루 방북단이나 고이즈미 총리 방북에서 보듯이, 남북한 공존체제에 적극적으로 관여하는 게 일본의 국익에도 도움이 된다는 견해가 보수 정권 내에서도 주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아베 정권하에서는 그런 사고가 후퇴하고 경계감이 보다 확산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최근의 일례로 외무차관과 주미 일본대사를 역임한 사사에 겐이치로(佐佐江賢一郞) 일본국제문제연구소 이사장은 11월, 일본 언론이 주최한 심포지엄에서 한반도 미래와 관련해서 “가장 바람직하지 않은 것은 통일된 조선이 핵을 보유하고 반일적으로 중국의 확장정책 파트너로 존재하는 상황”이라고 공언했다.
“핵보유”를 이유로 들고 있으나, 실제로는 “통일 한반도와 중국과의 연계”에 대한 경계감이 핵심이라 생각된다. 공식적인 표명은 적지만,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대한 경계감은 아베 정권뿐만 아니라 일본의 외교안보 관계자들 사이에 상당히 공유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연장선상에서 한일 간의 안보관계에 대해 ‘신(新)애치슨 라인’적 발상이 논의되고 있는 것에도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구체적 내용을 담은 자료적 근거는 없으나 일본 전문가 및 관계자들과의 토론 등에서 유사한 논의를 접할 수 있다. 부시 정권이후 추진되어 온 미군 재편 과정에서 일본이 동아시아의 군사적 거점으로 강화되어 왔고, 한반도 평화체제 진전에 따라 주한미군이 재편될 가능성이 대두된 것이 직접적 배경이라 할 수 있다.
2018년 12월부터 2019년 1월에 걸쳐 발생한 일본 초계기와 한국 구축함 사이의 마찰을 둘러싸고 일본 총리 관저가 의도적으로 대립을 확대하고 공식화함으로써 한국을 “안전보장상 신뢰할 수 없는 국가”라는 프레임을 만들고, 2019년 7월 이후 백색국가(화이트리스트) 제외 과정에서도 같은 논리를 전개한 것도 ‘거리두기’적 정책지향의 한 표현이라 할 수 있다.

▲한승동 주간
통일된 한반도가 중국 쪽으로 기울면 일본은 치명타를 입게 될 것이니, 한반도는 분단돼 있는 게 낫다는 일본 쪽의 한반도 현상유지론이 힘을 얻는 이유가 더 분명해지는 것 같다. 일본 우파는 한반도에서 전쟁이 나더라도 한반도 통합이 아니라 다시 분단체제를 유지하는 쪽으로의 전후처리를 바랄 것 같다.

▲이종원 교수
아직 구체적 내용이 정리되어 있지는 않은 것 같으나, 남북 및 북미관계가 진전되어 한반도 평화체제가 실현될 경우, 한국과의 밀접한 협력 아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적극적으로 관여하기보다, 한국과 거리를 두고 오히려 북한과 관계 형성을 시도함으로써 전통적인 균형정책을 통해 한반도 상황 전개에 대한 영향력을 확보하는 선택지를 고려할 가능성이 있다.
기본적으로 한반도 긴장이 완화될수록 한국은 일본과 멀어져 중국에 다가갈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이 배경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한반도 평화체제가 진전되더라도 북한이 한국 및 중국에 대해서 가지는 경계감을 발판으로 새로운 형태의 ‘두 개의 코리아’ 정책을 시도할 여지가 있다는 판단도 엿보인다.
이런 구도는 내가 아베 정권과 가까운 것으로 평가되는 전문가들과 벌인 토론 과정에서 일종의 브레인스토밍 형태로 몇 차례 제기된 적이 있다. 낮은 차원이지만 2014년 7월 시진핑 국가주석이 한국을 먼저 방문하는 등 한중 양국이 급속히 접근했을 때, 거의 동시에 북일 간에 납치문제 타개를 위한 스톡홀름 합의를 전격 추진한 것은 유사한 구도의 대응행동이라 할 수 있다.

◇한일관계의 전망과 과제

-국제정치 상황은 아베 정권에 유리
-국내선 외교·경제 놓고 불신감 커져

▲한승동 주간

코로나19 사태 이후 아베 총리의 지지도가 많이 떨어지면서 포스트 아베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는 것 같다. 아베 총리가 물러나면 일본 주류 세력의 이런 생각이 바뀔까?

▲이종원 교수
아베 정권이 추구해 온 ‘보통대국화’ 노선은 2021년 아베 총리의 임기 종료 이후에도 기본적 구도로서 지속될 가능성이 적지 않아 보인다. 가장 큰 요인은 중국의 부상을 견제할 신냉전 체제 구축을 추진하는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이 그것을 뒤에서 받쳐 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뿐만 아니라 영국, 프랑스 등 주요 국가들도 같은 이유에서 국제적 안전보장 분야에서 일본의 역할 확대를 지지하고 일본과의 연계를 강화하고 있다. 따라서 국제정치의 구조적 요인은 아베 정권의 대외정책 지속에 유리한 상황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일본 국내적으로는 아베 외교 노선에 대한 비판과 회의가 점차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일본 국내에서도 중국의 부상,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등 외부요인에 대한 위협의식과 일본 국력의 상대적 후퇴에 대한 보상심리 때문에 ‘강한 일본’을 내거는 아베 외교에 대한 ‘심정적’ 지지가 여전히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점차 그 실제적 효과에 대한 회의적 평가와 더불어 그 부담에 대한 우려도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실제로 ‘외교의 아베’를 자임하면서 화려한 외교 행각을 벌여온 것에 비해 대미, 대러, 대북 등 주요 과제에서 구체적 성과를 확실히 거둔 게 없다. 오히려 미국의 시장개방 압력, 방위비 분담금 인상 요구 등 자국의 부담만 초래했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아베 정권에 대한 대중적 지지의 중요한 기반인 경제부흥정책 ‘아베노믹스’의 전망에도 불투명감과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아베 후계 구도는 아직 불투명하나 후계 정권은 외교·내정 양면에 있어 좀 더 현실적인 정책을 취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 특히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 등의 조치에 대해서는 아베 정권이 정치적 고려만을 선행시켜 한일 간의 밀접한 상호의존 현실, 한국의 경제적 비중 및 한국 기업의 대응능력을 과소평가하는 오산을 범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한국과 ‘거리두기’는 아베 정권 핵심 관계자나 주변 전문가들 사이에서 논의되는 것으로 판단되지만, 이는 아베 총리 및 측근 그룹의 수정주의적 역사관과 이에 입각한 한국에 대한 수직적 시각(한국에 대한 우월의식)으로 인해 다소 ‘감정적’으로 증폭된 측면이 없지 않으며, 현실적인 선택지로서는 많은 한계가 있다.
한반도 평화체제가 진전되어 일본이 이에 거리를 두는 정책을 취하려 해도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 구도에 한국이 포함되어 있는 한 실제로 실행되기는 어려운 점이 있다. 따라서 한국과 ‘거리두기’라는 선택지는 한일관계 ‘격하’의 감정적 표현이라 할 수도 있다.

◇한국, 어떻게 해야 할까?

-아베 이후 중장기적 대일정책 틀 재구축 필요
-아세안과 연계, 日을 '미들파워 외교' 끌어들여야

▲한승동 주간

그렇다면 한국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이종원 교수
한국으로서는 아베 이후도 시야에 두면서 중장기적 시각에서 대일정책의 틀을 재구축할 필요가 있다. 기본적으로 역사문제와 경제, 안전보장 등 쟁점 영역을 각기 분리해서 대응하는 다(多)트랙 구도를 추구해야 한다고 본다. 아베 정권이 역사문제에 대해 경제 카드를 구사함으로써 이들 영역이 일거에 연동되는 상황이 되었지만, 일본 내에서도 이에 대한 비판이 있어서, 원상회복 가능성이 있다.
역사문제에 대해서는 위안부와 강제징용판결 등 현안별로 한일이 수용 가능한 타개책을 모색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으며, 역사인식의 기본적 괴리는 장기적 과제로 범사회적 차원에서 별도로 대처할 필요가 있다.
경제면에서는 핵심 기술 및 산업의 국산화와 다변화를 추구하면서도 경제 및 사회의 전반적 상호의존관계는 오히려 확대하는 게 바람직할 것이다. 수출규제를 둘러싼 과정에서도 보이듯 한일 간의 밀접한 상호의존 상황이 일본의 일방적 행동을 억제하는 구조적 요인으로도 작용한다. 일본의 폭넓은 소재·부품 생산 분야의 중소기업과 기술자들을 적극적으로 한국에 유치하는 것도 유용한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안전보장 전략 면에서는 ‘탈냉전’을 지향하는 한국과 ‘신냉전’에 대비하는 일본 사이의 괴리가 작지 않으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경제적 이익이 더 가시화되면 일본 재계와 사회의 인식도 바뀔 잠재적 가능성이 있다. 이를 통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일본을 적극적으로 관여시키는 외교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아울러 동아시아 지역외교 측면에서는 일본이 ‘대국주의 외교’ 지향으로 동아시아 지역협력에 대한 관심과 관여가 후퇴한 현실에서, 미중 간의 대립과 균열을 회피하고자 하는 아세안 역내 국가들과의 연계 아래 일본을 다시금 ‘미들파워 외교’로 끌어들이는 구상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이종원(李鍾元) 교수

1953년생. 재일(在日) 한국인 정치학자. 국제정치학 전공. 특히 미국의 아시아정책, 전후 일본·아시아 관계사, 현대 한국정치 등 동아시아 국제정치 연구 전문. 서울대 공학부 재학 중이던 1974년 유신 독재체제에 항거한 ‘민청학련’ 사건으로 투옥, 제적된 뒤 1982년 일본으로 갔다. 국제기독교대학 졸업, 도쿄대 석사 수료(정치학) 뒤 박사학위(법학) 취득. 도쿄대 조교를 한 뒤 도호쿠대(東北大) 조교수, 릿쿄대(立敎大) 교수를 거쳐 2012년 와세다대 대학원 아시아태평양연구과 교수로 재직 중. 1998~2000년 미국 프린스턴대학 객원교수. 지금은 아사히신문 아시아네트워크 객원연구원. 저서로 <동아시아 냉전과 한미일 관계>(오히라 마사요시 기념상 수상), <일조교섭-과제와 전망>(강상중·미즈노 나오키와 공저), <전후 일한관계사>(기미야 다다시 등과 공저) 등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