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소경제, 수소에너지는 요즘 ‘그린 뉴딜’의 핫 이슈 중 하나다. 지구온난화 위기가 심화되면서 에너지 전문가들은 미래 에너지와 관련해 “핵융합기술이 상용화되고, 재생에너지 경제성이 제고되면서 이것들이 주 역할, 그리고 수소가 보조역할을 하는 형태가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래서인지 요즘 주식시장에서 수소관련주가 각광받는다. 지난 주말엔 미국의 수소트럭 스타트업이 현대자동차에 공개적으로 협업 의사를 밝혀 화제가 됐다.
이런 현상을 유토피아적 낙관론이라고 비판하는 이도 적지않다. 하지만 몇 해 전부터 기상이변이 부쩍 잦아지고 코로나19 같은 감염병이 출현함에 따라 화석연료의 대안을 찾는 작업도 빨라지고 있다. 제러미 리프킨 같은 석학은 ‘인류 문명의 생존이 걸린 문제’라고 주장해왔다.
<피렌체의 식탁>은 문재도 전 산업통상자원부 차관의 글을 싣는다. 문 전 차관은 30여 년간 산업, 에너지, 통상 분야에서 일했다. 최근에는 서울대에서 개도국 공무원들을 상대로 에너지 정책을 전수하는 한편, 수소융합얼라이언스추진단 회장(비상근)을 맡고 있다. 필자는 이 글에서 수소에너지 관련 기술개발 경쟁을 소개한 뒤 수소경제가 성공하기 위한 몇 가지 조건들을 짚어본다. [편집자]

#독일 필두로 일본, 호주, 중국 적극적
  우리 정부도 법·제도 정비 본격화
#수소차 2040년께 290만대로 증가
  원전 8기에 맞먹는 전력 생산 기대
#대량 생산·소비 뒷받침할 인프라 
  '녹색 수소' 기술로 안정성 확보해야
#해외에서 액화수소 도입할 네트워크
  기술 국제표준 등에도 신경을 써야 

오늘날 인류는 과학기술의 발달과 이를 뒷받침하는 에너지 사용 확대를 통해 편리하고 윤택한 삶을 영위하지만 기후변화와 같은 환경문제로 생존을 위협받고 있다. 특히 산업혁명 이후 값싸고 안정된 에너지로 자리 잡은 화석연료가 기후변화의 주범으로 손꼽힌다.

현대과학은 화석연료를 대신할 에너지원을 아직 찾지 못했다. 석탄, 석유, 천연가스 같은 화석연료는 여전히 우리 생활에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다. 가정에서의 난방용 연료를 비롯해 자동차, 선박, 항공 등 운송 연료, 그리고 전기 및 상품의 생산 등 모든 영역에서 화석에너지를 빼면 아예 생활이 불가능하다.

1970년대 중동 산유국들이 자원민족주의를 무기로 발동한 두 차례 석유파동이나 21세기 들어 중국 경제의 급부상에 따른 국제유가 급등이 한국 경제에 미친 영향을 되돌아보면 그 영향을 짐작할 수 있다.

#쥘 베른이 140년 전 꿈꾼 에너지

그렇다면 화석연료를 다른 에너지로 대체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 어려운 도전을 극복하기 위한 에너지 생태계 전환은 이미 시작됐다. 세계 각국은 태양광, 풍력을 중심으로 한 재생에너지 확대를 추진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장기간 저장·운송이 용이한 수소(H)에 주목해왔다.

1878년 쥘 베른은 공상과학소설(SF) <신비의 섬>에서 수소의 대량 사용을 언급한다. 당시로선 꿈에서나 있을 법한 이야기였다.
"그래, 친구들아, 나는 물이 언젠가는 연료로 사용될 것이고, 물을 구성하는 수소와 산소가 무한한 열과 빛의 원천을 제공할 것이라고 믿는다. 물은 미래의 석탄이 될 것이다!"

그런데 화석연론 고갈 시나리오가 일반화될 무렵인 21세기 초 세계 각국은 다시 수소 에너지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2002년 제러미 리프킨은 <수소경제>에서 “수소가 미래 인류문명을 재구성하고, 세계 경제와 권력구조를 재편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2005년 네델란드의 반 하툼 영화감독은 그의 다큐멘터리에서 “태양과 풍력 에너지는 저장하기 어려운 것이 문제다. 자연에 의존하기 때문에 저장 기능을 가져야 한다. 풍력 발전소는 에너지를 버릴 수 없기 때문에 발전이 중지되고 있다. 반면 수소는 에너지를 완벽하게 저장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현대 과학은 재생에너지가 가진 약점을 보완한 ’에너지 캐리어‘로서 수소의 역할에 주목한다. 특히 수소는 연료전지 같은 활용 기술이 급속히 발달됨에 따라 경제성, 친환경성을 높여나가고 있다. 더구나 수소는 액화 상태로 운반·보관이 편리할 뿐만 아니라, 같은 무게일 때 천연가스의 3배 가까운, 힘 좋은 에너지로 인식된다. 우주선을 쏘아 올리는 로켓의 연료로나 쓰이던 수소의 용도가 과학기술 발달로 점차 확대돼 나가는 양상이다.

#유가 하락, 미래 에너지전쟁 촉발

전 세계는 2014년 국제유가 하락을 계기로 미래 에너지전쟁을 새롭게 시작하였다. 산업혁명 이후 화석연료 확보 전쟁이 벌어졌다면, 이제는 친환경 에너지의 효율을 높이는 기술경쟁으로 판이 바뀌었다. 지역에 따라선 태양광, 풍력 같은 재생에너지를 활용한 전력의 생산이 화석연료보다 오히려 높은 경쟁력을 갖게 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친환경 에너지사회로의 전환이 더 이상 상상이 아닌 것이다.

그동안 수소에너지의 가장 큰 문제는 생산비용이었다. 하지만 재생에너지에서 생산된 전기가 빠른 속도로 경제성을 높이고, 배터리 기술이 발달됨에 따라 재생에너지는 에너지 시장의 '게임 체인저(game changer)'로 부상했다. 물론 약점도 있다. 바로 생산지-소비지 간의 지리적 거리를 해소할 송전망 건설과 자연환경에 따른 생산의 간헐성이라 할 수 있다. 수소는 바로 이런 난제를 극복하고 친환경에너지 전환을 가능하게 해주는 소위 ‘인에블러(enabler)'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주요 선진국들은 수소 관련 기술을 선점하고 미래 산업에 대한 투자를 계속 확대해왔다. 미국의 경우 이미 수소 연료전지를 사용한 지게차를 아마존, 월마트 등 물류시스템에서 3만2000여 대나 운영 중이다. 캘리포니아 주를 중심으로 수소 전기차 약 8000대, 수소충전소 70기를 보급해 세계에서 가장 큰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유럽에선 수소충전소 건설, 수소 택시 및 버스 운행, 재생에너지를 이용한 수소생산(P2G) 등 ‘수소 실용화 프로젝트’를 대대적으로 진행 중이다.
특히 독일의 경우 지난 6월에 ’국가수소전략’을 발표해 현재의 화석에너지를 대체할 미래비전을 선보였다. 수소기술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 수소 시장의 형성과 글로벌 협력 분야에 90억 유로(약 12조6000억원)를 투자하는 청사진을 제시한 것이다.
호주는 10년 후에는 현재의 천연가스처럼 재생에너지에서 생산된 수소를 액화하여 한국과 동북아 시장에 팔기 위한 국제협력 사업에 적극 나서고 있다.

그 중 일본과 중국의 움직임은 우리의 눈길을 끈다. 일본은 내년 도쿄올림픽에서 “일본의 수소사회 진입”을 과시하기 위해 올림픽선수촌을 수소도시로 건설하고 있다. 이미 가정용 수소연료전지를 30만 대 이상 보급했으며, 수소전기차도 3600여 대, 수소충전소 130여 기를 운영하고 있다.
중국은 출발이 늦었지만 자동차 제조업체들이 수소전기차를 부지런히 개발 중이다. 2030년까지 버스, 트럭 같은 상용차 중심으로 수소차 100만 대를 보급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해부터 수소경제로의 이행을 위해 발 빠르게 움직여왔다. 작년 1월 발표된 ’수소경제 활성화 로드맵‘은 수소 산업의 새로운 이정표라고 평가된다. 이어 수립된 제3차 국가에너지 기본계획(6월)에선 수소가 비로소 에너지원으로 포함되었고 ’수소기술개발 로드맵‘, 수소전기차를 포함한 ’미래차 전략‘이 잇달아 발표되었다. 지난 1월엔 이런 정책들이 차질 없이 추진되도록 세계 최초로 ‘수소경제 육성 및 안전에 관한 법률’을 만들었다. 다른 나라 못지않게 법적, 제도적 정비를 갖춘 셈이다.

우리나라에선 최근 세계 최고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수소전기차 보급을 필두로 초기 시장이 급속히 확대되고 있다. 현재 7000대 넘는 수소전기차가 보급됐으며 수소충전소 41개소를 운영 중이다. 수소전기차는 2022년까지 6만7000대로 늘어나고 2040년께 290만대까지 급증할 것으로 예상한다. 수소충전소도 2022년이면 310기까지 늘어나 전국 어디에서든 20분 내에 충전소를 찾아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수소 연료전지를 사용한 발전설비는 2018년 307MW에서 2022년이면 원자력발전소 1기와 맞먹는 1GW로 늘어난다. 2040년 무렵엔 8GW까지 증가할 전망이다. 요컨대 우리나라도 미래 수소사회로의 진입을 시작한 것이다.

#탄소제로사회, 2050년께 도달 가능

그렇다면, 화석에너지 전체를 재생에너지 및 수소를 기반으로 한 ’탄소제로(0)사회‘로 전환하는데 얼마쯤 시간이 걸릴까?
에너지 전문가들은 현재의 기술개발 속도를 감안할 때 선진국들은 2050년께 달성 가능할 것으로 본다. 이 때 우리가 이용하는 대부분의 에너지는 전기와 수소로 변환될 것이며 그 중 수소가 10~15%의 비중을 차지할 것으로 추정된다.


수소는 표에서 보듯이 자동차뿐만 아니라 선박, 철도, 비행체와 같은 수송부문에서부터 석유를 사용하는 내연기관을 대체해 나갈 것이다. 이산화탄소 배출 규제가 강화되고 수소의 경제성이 확보되면 철강, 화학 등 산업부문으로도 확대될 것이다.
이처럼 산업 전 분야에서 수소 수요가 증가할 경우 2050년께 수소 산업은 전 세계적으로 연 2조50000억 달러(약 3000조원)의 부가가치를 창출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를 위해선 수소전기차의 경우 충전 인프라의 한계, 낮은 경제성을 극복해야 할 것으로 지적된다.

수소차는 순수 전기차에 비해 짧은 충전시간, 긴 주행거리 등 강점을 갖고 있다. 차량 중에선 버스, 트럭, 지게차 등 디젤엔진 상용차를 가장 먼저 대체할 것으로 보여진다. 최근 수소 연료전지를 사용하여 트럭을 생산할 계획인 미국 업체의 주가가 급상승한 것은 이런 평가를 금융시장이 받아들인 것이다.

승용차의 경우에도 충전 인프라가 확충되고 차종이 다양화되면 개인 수요가 급격히 늘어나 규모의 경제에 도달할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내연기관 차량이 휘발유·디젤 엔진 방식으로 구성되었듯이 전기차, 수소차도 차량 기능에 따라 두세 가지 에너지가 병존하는 방식으로 갈 것이다.

#수소경제 성공을 위한 과제들

수소 경제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문제도 많다.
첫째, 수소를 경제적이고 친환경적이며 안전하게 대량으로 생산·사용할 수 있도록 인프라를 구축하는 게 절실하다. 수소는 가장 가벼운 원소이며 세상에 홀로 있지 않고, 석유·석탄 같은 탄소화합물, 암모니아 같은 질소화합물, 또는 산소와 결합하여 물에 존재한다. 이러한 화합물에서 수소를 추출하기 위해서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더욱이 물 분해가 아니면 생산 과정에서 탄소, 질소산화물 같은 환경오염 물질이 발생한다.
그래서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 질소산화물을 포집해 다시 사용하거나 영원히 격리하는 방식을 연구 중이다. 또한 에너지로 쓰려면 고압을 가해 수소의 밀도를 높여야 한다. 수소는 연소 과정에서 오염물질을 발생시키지 않는 청정에너지원이지만 그 생산 과정을 둘러싸고 논란이 끊이지 않는 이유 중 하나다.

그러나 이른바 ‘녹색 수소’가 현실화되면 이런 문제들을 뛰어넘을 수 있다. 녹색 수소란 태양광, 풍력 같은 재생에너지에서 생산된 전력량이 계속 늘어날 경우 이를 활용하여 생산되는 수소에너지다. 예컨대 독일에선 재생에너지 비중이 늘어나 생겨난 여유전력으로 수소를 생산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제주도에서 재생에너지 비중이 15%를 넘어서서 불가피하게 ‘제약 발전’을 하고 있는데 앞으로 이렇게 남는 전기를 수소 생산에 활용하는 연구에 착수했다. 우리나라에서 수소차나 발전에 필요한 수소는 현재 연간 13만톤 정도로 추정된다. 하지만 2040년 무렵엔 연간 526만톤으로 급증할 전망이다.

둘째, 수소 수요가 급증하면 다른 나라처럼 국내 재생에너지를 활용한 녹색수소 생산을 늘리는 한편, 해외에서 수소를 수입하는 방안을 함께 강구해야 한다.
현재 수소 생산 과정을 보면, 자원 재활용과 미세먼지 발생 등 환경 대응 차원에서 과도기적으로 석유화학 공정에서 발생하는 부생수소나 천연가스를 개질하여 얻은 추출수소를 활용하고 있다. 그러나 호주, 뉴질랜드 등 재생에너지 잠재력이 큰 나라들은 미래 수출 자원으로 수소를 주목하고, 물 분해 및 수소 액화와 관련된 기술개발을 적극 추진 중이다. 호주에선 현재의 기술개발 속도를 고려하여 향후 10년 이내에 화석연료와 경쟁할 수 있는 가격으로 수소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한 국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6월 산업자원통상부가 주관해 민관 합동으로 ‘그린수소 해외사업단’을 구성했는데, 장차 호주 같은 나라에서 녹색수소를 도입할 상황에 맞춰 출범한 것이다. 수소의 국제적 거래는 액화천연가스(LNG) 시장과 유사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1980년대 인도네시아에서 LNG를 도입하기 위해 인수기지 건설, LNG 수송선 건조 등에 7년가량 걸린 점을 감안하면 지금부터 준비를 해야 할 시점이다.

셋째, 수소경제 선도국가가 되려면 기술개발에 주력해야 한다. 우리는 현재 수소산업 생태계 가운데 수소전기차, 연료전지 발전 등 주로 활용 분야를 고심하고 있으나 장차 다른 분야의 기술개발에 주력할 필요가 있다.
일례로 현재 우리가 구축 중인 수소충전소의 주요 부품들은 대부분 수입에 의존해왔다. 액화수소를 대량 운송할 특수선박도 일본에서 이제 막 시험선이 제작돼 운영되기 시작했다. 이렇게 수소 관련 산업이 새롭게 출현하는 만큼, 기술의 국제표준화도 시급하다.

또한 수소충전소 등 고압 수소를 취급하는 설비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수소에너지에 대한 일반 국민들의 이해와 인식도 개선되어야 한다. 수소 경제가 우리의 미래전략산업으로 성장하고 일자리를 창출하려면 정부의 선도적 투자와 함께 민간 투자를 촉진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해방 이후 나무, 석탄을 사용하다 1970년대 공업화 과정에서 석유가 주종 에너지가 되었으며, 1980년대 이후 석유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석탄, 원자력, 천연가스를 확대했다. 지금의 다변화된 에너지 공급 구조를 구축하는데 최소한 30년 가까운 시간이 걸린 셈이다. 이제는 환경, 안전 등 여러 문제들을 감안해 재생에너지의 비중을 늘리며 수소경제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수소차 보급 등을 통해 국민적 관심도 커지고 있다.

수소 경제가 제대로 자리 잡고 산업 생태계로 완성되려면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그린 뉴딜은 그야말로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경제발전 과정에서 에너지 공급구조를 성공적으로 전환한 경험을 갖고 있다. 그런 만큼 민관이 수소 생태계 조성을 일관성 있게 추진한다면 수소 경제의 글로벌 선도국가가 되는 게 결코 꿈이 아닐 것이다.


문재도 필자

에너지 전문가. 수소융합얼라이언스추진단 회장(비상근)으로 일하는 한편, 서울대 공대에서 개도국 공무원을 상대로 에너지 관련 정책을 강의하고 있다. 서울대,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공부한 뒤 산업통상자원부, 대통령비서실에서 일했다. 주로 산업, 통상, 에너지 분야를 담당했다. 여유시간에는 늦게 배운 그림에 푹 빠져 자신의 작품을 가끔 SNS에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