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2년 전에 제2의 ‘한강의 기적’을 도모하는 방안으로, 국회의사당을 세종시로 이전하고, 여의도를 4차산업혁명 캠퍼스로 만들자고 제안한 바 있다. 그 사이에 두 가지 변화가 생겼다. 하나는 민주당이 4.15 총선에서 180석 가까운 의석을 얻어 책임정치를 할 수 있게 됐다. 또 하나는 그간에 국회세종의사당 건립에 관한 국회 차원의 용역이 진행되었고 찬반 여론지형이 변했다.

먼저 국회의사당 이전과 관련한 구상은 이렇다.
제1단계는 헌법재판소 판결을 뒤집지 않는 최대 범위, 즉 국회 본회의장과 의장실만 남기고 모든 기능을 세종시로 이전하되 헌법재판소의 재(再)판결 또는 단계적 개헌을 통해 신행정수도 건설을 완성하는 것이다.
국회는 본회의 선서로써 임기를 시작하고, 본회의 표결로써 각종 법안, 예산안, 인사안을 처리한다. 본회의가 국회의 시작이자 끝이다. 따라서 본회의를 주관하는 국회의장의 집무실과 본회의장만 서울에 남아있으면 헌재 판결을 위배하지 않는 것이다.

국회 상임위 전부 이전하는 게 최선

이런 유권해석을 전제로 국회 차원의 용역도 18개 상임위 중 11개, 13개, 17개의 상임위를 이전하는 세 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이는 입법부와 행정부의 분리에다 다시 입법부를 분리하는 패착이 된다. 그래서 본회의장, 의장실만 남기고 18개 상임위를 전부 이전하는 게 최선의 방책이다.

그런데 지금 정부여당이 추진하는 방식과 전략이 무엇인지 손에 잡히지 않는다. 제각각이다. 헌재 위헌 판결 때 ‘관습헌법’으로 서울을 수도로 규정한 이유는, 조선시대 한양 천도 이래 이곳이 수도라는 계속성과 항상성이 있었고, 국민 뇌리에 인식되어있는 명료성과 합의가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네 가지 근거에 사정상의 중대 변경이 있거나 국민투표를 통해 개헌을 하지 않는 한, 청와대와 국회의사당과 대법원의 이전은 불가능하다. 현재 거론되는 전략 중에 국민투표 실시 방안은 헌법상 그 요건이 외교, 국방, 통일 등의 중대한 사안으로 제한돼 있어서 사실상 추진할 수 없다.

원포인트 개헌을 주장하는 이들도 있는데, 그렇다면 2018년 문재인 대통령의 개헌안을 왜 야당이 거부했는지를 돌아볼 일이다. 개헌은 국가 미래에 관한 것이지만, 권력구조를 놓고 당사자 이해충돌이 격렬한 사안이다. 만약 지금 원포인트 개헌을 하자고 하면, 야당으로선 부동산시장에서 국민 시선을 돌리려는 여당의 꼼수에 들러리를 서는 꼴이 된다. 자칫 '부동산 실패'의 책임을 나누어 갖게 된다. 따라서 원포인트 개헌으로 미끼를 던져서 ‘전부개헌’으로 가기 위한 것‘이라는 등 온갖 이유를 들어 반대할 게 뻔하다.

'전부개헌'보다 '순차개헌'이 적절

그래서 이른바 ‘순차개헌’이 필요하다. 2032년은 국회의원과 대통령의 임기가 일치하는 해다. 이때부터는 4년중임제로 가든 내각제로 가든 양쪽의 임기를 맞출 수 있다. 자연스럽게 지방선거가 중간선거로 된다. 2022년에 여야 합의로 개헌안을 국민투표에 부치되 그 발효시점을 2032년으로 하는 게 순차개헌의 요체다.
그때쯤 어느 정당에게, 어느 주자에게 새 헌법이 유리하게 작용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개헌 논의가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고, 이런 분위기에서 수도 위치는 법률에 위임할 수 있다.

따라서 국회 기능을 최대한 이전시켜 사정변경을 만들고, 이를 기초로 헌재의 판결 변경을 기대하고, 청와대·대법원을 이전함과 동시에 순차개헌을 통해 궁극적으로 수도 이전 완성을 꾀하는 게 가장 합리적이라고 생각된다.

그 다음에 우리가 할 고민은, 국회가 세종시로 옮긴 뒤 여의도와 서울에 대해 어떤 대안을 마련해야 할지, 국토균형발전은 어떻게 완성돼야 할지, 세종시는 신(新)행정수도로서 대국민 관계를 어떻게 구축해 나갈지 등이다.

일각에서는 국회의사당의 세종시 이전을 부동산정책과 연결시켜 비판하는데, 행정부와 입법부가 이전한다고 서울 부동산값이 잡히는 것도 아니고 청와대·국회 부지를 아파트 공급 용도로 쓸 일도 아니다.
이 점은 순수하게 국토균형발전이란 관점으로 접근해야 한다. 국회의사당은 오랫동안 대중들의 뇌리에 ‘권위와 권력’의 상징이었다. 이런 건축물의 상징성을 180도 전환하는 일대 사건을 만들었으면 한다.

국회 부지를 4차산업혁명 심장부로

필자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국회의사당을 4차산업혁명 캠퍼스로 활용하고, 의원회관을 창업센터로 제공하고, 국회도서관을 데이터거래소로 만들자는 것이다. 이것들이 여의도 금융 네트워크와 만나게 되면 온갖 아이디어와 꿈과 열정이 어우러지게 된다.
여의도에서 일하다 힘들면 배를 타고 홍대 앞으로 가서 여가를 즐기거나 용산공원에 가서 조깅을 할 수도 있다. 전 세계에서 4차산업혁명을 가르치고 배우고 창업하고 싶은 사람들을 여의도로 모으는 거다. 이 클러스터가 발전하면 마포 창업단지부터 구로동 가산디지털센터까지 남북으로 창업 생태계가 만들어진다.

혁신성장이란 무엇인가? 미래를 앞당겨 쓰는 것이다. 우리 국민소득이 수백 달러에 불과할 땐 자동차를 만들고 선박을 제조하고 철강을 생산하는 게 꿈이었다. 그 당시 잘 나가던 가발공장, 신발공장을 더 만드는 것과 중공업입국을 지향하는 것은 경제발전 전략상 하늘과 땅 차이였다. 중공업 발전전략은 당시로서는 미래를 앞당겨 쓰는 것이었고 그 결과 한국은 세계 4대 제조업 강국이 됐다.

1997년 외환위기로 국가부도사태에 빠졌을 당시 한국 사회는 역시 미래를 앞당겨 썼다. 첫째도 브로드밴드, 둘째도 브로드밴드, 셋째도 브로드밴드라며 IT 벤처 붐을 일으켰다. 그 결과 IT 강국이 되었고 그나마 지금 같은 디지털 플랫폼 기업들이 탄생했다. 지금 우리가 미래를 앞당겨 쓰려는 것은 AI와 빅데이터를 중심으로 신성장 동력을 키우기 위해서다.

대한민국이 G20 국가가 되고 G10 회의에 초대를 받았다고 해도, 청년 세대는 특별한 감동을 느끼지 못한다. 청년실업률은 높고 미래의 삶은 불투명하다. 중국 청년들은 베이징대학과 칭화대학 사이에 있는 ‘창업 클러스터’ 중관촌에서 세계시장을 목표로 창업에 몰두하고 있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같은 또래들은 안정된 삶을 좇아 공무원시험에 집중한다면 10년 후, 20년 후 두 나라 미래가 어떻게 되겠는가? 그래서 발상의 개벽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문재인정부가 추격경제(fast follower)에서 선도경제(first mover)로 도약하겠다고 했는데 진정 그럴 의지가 있다면 역량의 집중, 규제의 혁신, 청년의 꿈을 키워주는 대변화와 대사건이 필요하다. 필자는 그런 의지의 상징으로써 국회의사당을 4차산업혁명 기지로 전환하자는 것이다.

국회의사당, 더 나아가 청와대가 세종시로 이전하면 국토균형발전은 저절로 될 것인가? 그렇지 않다. 수도권으로 인구, 경제력 등 모든 국가자원이 집중돼왔고 앞으로 30년이 지나면 그 집중도는 70~80% 정도로 치솟게 된다. 수도권은 수도권대로 삶의 질이 떨어지고 지방은 지방대로 소멸 위기에 빠지고 있다. 지방의 성장 잠재력과 생태계는 무너지고 SOC, 산업시설, 혁신도시에 대한 투자가 무용지물이 될 가능성이 크다. 국토 전체적으로 과잉체중, 고도비만의 만성질환에 접어들게 됨을 뜻한다.

대학 캠퍼스를 지방거점도시로 이전하자

세종시가 신행정수도로 완성되더라도 이는 국토균형발전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국회와 청와대가 이전하고, 서울에 남은 정부 기능도 모두 옮기고, 서울에 주재하는 각국 외교공관들도 따라갈 수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지방의 축소와 소멸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노무현·문재인 정부는 그동안 공기업의 절반 가까이를 지방으로 옮겨 혁신도시를 조성한 데 이어 2차 공기업 이전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공기업 이전은 지나치게 분산적인 데다, 혁신도시는 거주인구나 민간기업 유치가 충분치 않아서 제대로 된 생태계를 조성하지 못하고 있다. 결국 지방 중핵도시를 전략적으로 발전시키거나 제대로 된 혁신도시를 조성해야 한다.

필자는 여기서 서울과 6개 광역도시의 대학을 지방거점도시로 이전하되 대학과 공기업을 묶어 독자적인 생태계를 조성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싶다. 대학 연구기능과 연계된 민간기업 이전을 촉진할 계기를 마련하자는 거다.

이렇게 조성될 대학도시는 가장 이상적인 미래형 도시로 만들어져야 한다. 지금의 세종시를 스마트시티 시범지역으로 지정해 녹색성장 공유도시 등 4차산업혁명의 선도 역할을 맡겨야 한다.
세종시의 경우 애초부터 무늬만 녹색 도시가 아니라 본질이 녹색인 도시로 만들 수는 없었던 것일까? 자동차 없는 도시, 대중교통과 자전거로 이동할 수 있는 도시, 쓰레기 없는 도시 등은 오늘날 스마트시티라는 개념이 정립되기 전에도 가능했던 일이다.
30년 후에 다시 돌아본다면 지방중핵 대학도시를 그 정도로밖에 설계하지 못했을까 하는 후회가 따르겠지만, 지금으로선 삶의 질과 기후변화 위기를 최대한 해결하는 것을 목표로 설계돼야 한다.

지방의 대학거점 중핵도시는 선택과 집중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몇몇 대학과 공기업들을 각 도시의 특색에 따라 묶어야 할 것이다. 10개가 될지, 많으면 20개가 될지 모르나 중핵이 될 수 있는 선택과 집중은 필수일 것이다. 그리고 물과 공기와 에너지, 교통과 자원 등에서 스마트시티의 모든 것을 실험하고 구현할 수 있어야 한다. 코로나19 같은 팬데믹 상황에서도 완벽에 가깝게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대학에선 수업을 통해 얻는 것도 있지만 인간관계를 형성해주는 중요한 공간이다. 그래서 온라인수업이 대학 기능을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다. 전 세계적으로 미네르바스쿨 같은 혁신모델 대학에서도 100% 온라인 수업을 하지만 반드시 기숙사 생활을 하게 하는 것도 공동체 생활을 통해 배우는 것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지방거점 중핵도시로 국토균형발전 모색
 
일각에서는 국립대학인 서울대도 세종시로 이전시키자고 한다. 그런데 서울대가 수도를 구성하는 요소가 되기라도 한다는 말인가? 서울대에 아파트를 지으면 공급난이 해결되고 부동산값을 잡을 수 있는가?
이런 얘기들을 중구난방으로 하니까 부동산시장 때문에 수도 이전 이슈를 들고 나왔다는 의혹을 받거나, 국토균형발전이 아니라 대전-충청권 특혜로 오해를 받게 된다. 국토균형발전 1단계는 세종시를 행정수도로 완성하는 것이고, 2단계는 지금의 소규모 혁신도시를 지방거점 중핵도시로 만드는 것이다. 그런 큰 틀에서 서울대 이전 문제도 논의되어야 한다.

대학과 공기업 등을 묶어 지방거점 중핵도시를 만들고 국토균형발전을 꾀하자는 발상은 너무 파격적이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이 난제를 풀 길이 없다. 파격적인 만큼 거기에 제기되는 지적이나 비판도 많을거다.
중핵도시는 몇 개가 적당하며 그 생태계는 어떻게 조성하나? 대학 당국과 구성원의 동의는? 학령인구 감소 등에 따른 대학구조조정과 모순되는 점은? 대학 주변의 상권과 반발은? 대학 구성원의 거주지는? 학생들의 거주비는? 재원 마련은? 그리고 대학이 떠난 후 대학부지는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이런 무수한 의문들이 제기될 것이다.

필자가 보기에 서울과 6대 광역시에 있는 대학교는 아주 이상적인 소도시나 마찬가지다. 가령 연세대타운, 이대타운, 경희대타운을 연상해보자. 숲길도 있고 운동장도 있고 대학본부는 커뮤니티센터로 활용할 수 있다. 캠퍼스타운에서는 자전거나 개인이동수단(personal mobility)으로 옮겨다닐 수 있다. 대학의 원형을 보존하면서 캠퍼스타운을 만든다면 캠퍼스 당 적게는 1만 명, 많게는 10만 명이 거주하는 자연친화적인 미래도시를 만들 수 있다.

대학 측은 캠퍼스타운을 활용해 재원을 일부 마련하고, 여기에 중앙정부의 일부 지원, 지자체의 이전부지 제공 등을 생각할 수 있다.
필자가 대학의 지방이전을 주장하는 이유는 지금껏 말한 대로 국토균형발전이라는 목표도 있지만 기존 대도시를 재편하는 전략의 일환이기 때문이다. 기존 대도시 안에 작은 녹색스마트도시가 조성된다면 중장기적으로 도시 재편 방향이 보이게 되고 국민적 공감을 얻을 수 있다.

부동산, 세금 높이되 좋은 집 공급도 늘려야 

이 대목에서 요즘 핫이슈가 된 부동산 문제를 다루지 않을 수 없다.부동산은 국민들에게 삶의 기반이고, 욕망의 사다리다. 역대 정부에는 신뢰와 평가의 문제였다. 그래서 우리 정부는 부동산을 세 가지 수단으로 관리해왔다. 첫째는 조세를 통한 수요억제, 둘째는 유동성을 조절하는 금융통화정책, 셋째는 다양한 공급정책이다.

먼저 수요억제정책을 보자. 주택은 투기수단이 아니라 주거수단이어야 하다. 실거주자 중심으로 공급하고 지대수익을 최소화해야 한다. 우리나라 조세정책이 국민정서와 통치이념에 따라 오락가락 하는 바람에 일관성과 철학이 없어 보이는데 이제 근본을 바로세우고 사회적 합의를 끌어낼 때가 되었다고 본다.

필자는 늘 일세(稅)를 줄이고 놀세(稅)는 늘리는 게 사회정의에 부합한다고 말해왔다. 즉 일자리를 늘리는 기업들에 대해서는 그만큼 세금을 줄여줘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반대로 반기업 정서라고 말할 만큼 기업 세금을 늘리려 한다. 반면 부동산과 주식 등에서 발생하는 지대수익과 자본수익에 대해선 상대적으로 소홀했는데 수익의 상당 부분을 세금으로 걷는 게 맞다.
특히 토지가 갖고 있는 공공재적 성격에 비추어 토지에서 발생하는 불로소득에 대해서는 과감한 조세 징수를 원칙으로 해야 한다. 이는 보수정권이든 진보정권이든 일관되게 지켜야 할 원칙이 돼야 한다.

부동산 관련 세금은 취득등록세, 보유세, 양도소득세가 있다. 취득등록세는 부동산을 매입하는 '입구', 보유세는 부동산을 갖고 있는 ‘복도’, 양도소득세는 부동산 매각의 '출구'를 관리하는 수단이다.
정책당국이 생각하기에, 다주택자의 양도소득세를 대폭 늘리면 다주택자들이 당장 집을 내놓을 것 같지만 집값 상승 기대감과 정권 교체, 경기 동향 등의 변수가 작용해 주택 매각을 주저한다.
반면 입구를 조인다면 어떻게 될까? 10억 원 이상을 부담해 두 채 이상을 갖는 다주택자한테 최고 세율을 부과하면 당연히 매입을 꺼리게 된다. 주택을 구입 때 2억~3억원의 취득등록세를 내라고 한다면 기대이익이 웬만큼 크지 않고선 다주택자가 되기를 꺼려할 것이다. 그래서 다주택자를 겨냥한 출구보다는 입구를 확실히 틀어막아야 한다.

그런데 기존 다주택자에게는 이 방식이 잘 먹히지 않을 수 있다. 다주택자에 대한 보유세(재산세+종부세)를 현실화해야 하는 이유다. 우리나라 재산세는 다른 나라에 비해 세율이 지나치게 낮다.
우리나라 토지주택의 시가총액이 1경을 넘는데 보유세 실효세율은 0.9%에 불과하다. 게다가 종부세는 헌법재판소 판결에 따라 인별 과세를 하다 보니 법인이나 주택임대사업자로 등록해 회피하는 사례가 많다. 이를 막기 위해 건별 과세 방식으로 가면서 다주택자 누진세 구간을 확대 적용해야 한다.

정부 부동산대책 발표를 전후해 일각에선 결국 전월세 가격 상승을 우려한다. 중산층·서민 임차인만 피해를 입는다고 주장한다. 이 역시 투기 실익이 없을 정도로 누진세 방식을 확대하거나 표준임대료 제도 등으로 임차인을 보호해야 한다. 다주택자들이 세금 인상분을 전월세로 전가하는 것도 시장원리상 한계가 있다. 결국 부동산 정책도 시장기능을 살리는 쪽에 무게를 둬야 한다.
정부여당 일부에서는 다주택자 중과세 정책으로 공급물량을 늘릴 수 있다고 낙관하는데 필자 생각에는, 수요억제와 공급정책은 별개로 접근해야지 이를 동일시하면 안 된다.

지금처럼 초저금리가 일상화되고, 정부 재정을 풀어 경기를 살려야 하는 현실에서는 넘쳐나는 유동성을 관리하기가 쉽지 않다. 문재인 정부는 부동산경기의 고점 진입 시기에 임기를 시작했다. 뭉칫돈이 생산적인 분야로 흐르게 하도록 증권거래세 인하, 사모펀드 규제완화 등 다양한 자본시장 육성정책을 내놓았지만 사모펀드의 경우 부작용만 두드러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선 부동산 관련 대출을 제한하고 실거래가 등록제를 강화하는 것도 필요하다. 다만 생애 첫 주택구입 희망자들에게 내 집 마련의 꿈을 제한하는 쪽으로 작용해선 곤란하다.


결국 문제는 공급확대, 즉 어떤 공급을 어떻게 하냐는 문제로 압축된다. 우리나라 주택보급률은 이미 100%를 넘었지만 자가 보유율은 서울은 40%, 전국적으로는 50% 정도다. 자가 보유율은 선진국 평균과 비슷하다. 북유럽 국가에서 사회주택을 20%까지 끌어올리려는 목표를 추진하는 이유는 하위 20% 계층이 한평생 주택을 보유할 수도 없고 그런 희망도 없기 때문이다. 이들에게는 양질의 공공임대주택을 제공하는 게 주거복지차원에서 최선이라는 거다.

그 다음으로 집을 갖고 있는 상위 40~50%, 그리고 집이 없지만 내 집 마련 꿈을 가진 그 다음의 30~40% 계층을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당연히 공급에도 종류가 있다. 가격을 안정시키는 공급, 일시적으로 가격을 상승시키는 공급으로 나뉠 수 있다. 또 소득수준에 따라서 원하는 주택의 질이 다르다.

직주 근접 좋은 낙후 지역엔 고밀도 개발 

강남의 재건축·재개발도 공급확대수단의 하나이겠지만 단기적으로 주변 집값을 폭등시킬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고 개발을 무제한 억제할 수도 없다.
정책적으로 부동산경기 하강 시기에 재개발을 승인해 가격인상 전염효과를 최소화하는 게 바람직하다. 또 개발이익을 철저하게 환수하되 그 이익을 강남·북에 걸쳐 두루 쓰도록 해 지역격차를 줄여야 한다. 재개발 허가 땐 공공임대를 의무화하고 이것이 실수요자에게 적절하게 배분될 수 있도록 원칙을 세워 관리감독을 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강남을 대체할 수 있는 양질의 공급물량을 확대하고 다양화해야 한다. 국민소득이 높아지고, 젊은 세대의 전문직 맞벌이가 늘어나면서 더 좋은 집을 찾는 수요는 늘어나고 있어서다. 강남4구 및 마포, 용산, 성동, 영등포 등지의 가장 큰 이점은 직주 근접성이다. 이런 강점을 품고 있는 다른 지역을 찾아 개발을 촉진해야 한다.

1980년대엔 상계동, 목동, 강남의 집값 차이가 크지 않았다. 강남의 메리트는 당시 강북 명문고의 이전에 따른 8학군 효과였고 경부고속도로 진입이 용이하다는 것이었다. 여기에다 법조 관련 기관과 대기업들이 옮겨가고, IMF 위기 때 벤처 붐이 일어나면서 좋은 직장이 강남으로 쏠리게 됐다. 교육열에다 직주 근접이란 변수가 작동해 강남북 사이에 집값 차이가 벌어졌고 소득격차, 교육격차는 더욱 확대됐다.

반면 서울 동북부나 서남부 같은 경우에는 고소득 직장이 거의 없다. 일종의 베드타운이나 마찬가지다. 낮 시간에는 젊은이들의 이동을 찾기 힘들다. 강남과는 대조적이다. 서울시 자체도 지역균형발전이 필요한 것이다. 그간 서울시가 추진해왔던 창동 음악산업, 이문동 바이오산업, 마곡 연구단지사업 등이 있는데, 이런 곳도 직주근접이 가능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아울러 원도심에서 부도심에 이르는 낙후지역도 시대에 맞게 고밀도 개발을 해야 한다. 서울 주변에 신도시를 짓고 연결해 나가다 보면 교통난이 심해져 훗날 GTX 같은 SOC에 엄청나게 투자해야 된다. 신도시가 난립하면 20~30년 후 저출산·고령화로 엄청난 후유증에 시달릴 수 있다. 일본에서 신도시 공동화현상이 발생해 집값이 폭락하는 현상을 목도하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필자는 원도심과 역세권의 고밀도 개발을 주장한다. 다만 미래 흐름을 읽고 새로운 직주근접 모델을 개발하자는 거다. 우선 고밀도 개발을 위해 모듈러 주택을 제안한다. 대량생산방식이고 단기간에 건물을 지을 수 있어서 제작단가, 금융비용을 낮출 수 있다.
상대적으로 싼값에 주택을 짓되 절감된 비용으로는 에너지 제로(0) 주택과 녹지 조성, 스마트팜 등을 결합해 스마트시티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1층은 상가, 저층에는 사무공간, 중고층에는 주택으로 쓰게 되면 직주근접도 이루어진다. 이것이 녹색성장이고 그린뉴딜일 거다.

20~30년 로드맵 갖춰 개발정책을 짜야

우리가 살아온 도시의 역사를 30년씩 끊어서 보아도 미래도시의 변화와 발전을 예상하기란 쉽지 않다, 해방 이후의 빈곤, 1970년대 산업화, 1990년대 신도시 개발, 21세기 변화 속도가 각기 다르다. 그 예측이 완벽한 것은 아닐망정 기후변화와 팬데믹의 일상화, 4차산업혁명의 도전을 상상하면서 도시를 개조해야 한다. 그 대안은 원도심, 부도심, 역세권을 미래형으로 개발하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대학의 이전도 국토균형발전 차원에서 제안한 것이지만 그 또한 미래도시의 모습을 포함하고 있다. 대학캠퍼스의 원형을 보존한 채 주거지역으로 전환시키면 20~30년 후 도시는 더 다양하고 더 쾌적한 삶의 질을 만들어낼 수 있다.

공공임대주택의 확대 보급과 '도시 재생'도 중요하다. 다양한 주택 수요가 있듯이 다양한 공급도 있어야 한다. 재개발을 한다며 전월세 살던 주민들을 쫓아내지 말고, 보증금과 관리비만 내면 영구적으로 살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이를 위해 행복주택뿐 아니라 노후주택 개량을 통한 셰어하우스 공급 등도 필요하다. 경기도에서 제안한 바와 같은 기본주택도 늘리는 게 맞다.

한꺼번에 여러 주제를 펼쳐놓았다. 국토균형발전, 미래도시, 부동산 등을 섞어서 얘기했는데 이제는 좀 더 멀리, 넓게 보는 로드맵을 갖춰 정책을 짜야 한다. 대학중핵도시, 원도심 스마트시티 개발 등은 그런 사례일 뿐이다. 우리 사회가 상상력을 갖고 미래도시 논의를 발전시켜 나가길 바란다.


민병두 객원기자

전직 3선 의원, 1958년 강원도 횡성 출생. 성균관대 진학 후에는 민주화운동으로 인해 두 차례 옥고를 치렀다. 문화일보 정치부장, 워싱턴특파원으로 활약하며 빼어난 필력을 자랑했다. 2004년 국회에 처음 등원했으며 19대, 20대 총선 때 서울 동대문(을)에서 당선됐다. 사회적 약자를 위한 입법과 경제민주화, 양극화 해소를 위해 줄곧 노력해왔다. 저서로 <웰빙이 아니라 웰리타이어링이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