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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국의 리더가 말하는 법] 내가 설득을 당하는 다섯 가지 경우

by | 2020년 8월 3일 | 강원국의 '리더가 말하는 법', 기획 · 연재


거의 모든 말은 설득이다. 리더는 설득하기 위해 말한다. 대화, 제안, 주장, 부탁, 사과, 당부, 모두 설득을 위한 것이다.
설명도 설득을 위한 수단이다. 서사(敍事, narrative)도 그 안에 담긴 메시지를 통해 사람 마음을 움직이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 연설, 광고, 변론, 협상은 말할 것도 없다.
리더십을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과정이라고 정의할 때 상대가 자신의 말을 따르게 만드는 힘, 즉 설득력은 리더에게 필수불가결한 역량이자 리더십의 핵심일 수밖에 없다.

나는 무수히 설득당해 왔다. 늘 누군가의 참모, 비서였기에 더욱 그랬다. 설득되지 않고는 그 사람을 모시기도, 그 조직을 위해 충성하기도 힘들다. 청와대를 나오자마자 갔던 대기업을 한 달여 만에 그만둔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반대로 나는 충분한 설득이 이루어지면 열과 성을 다한다. 열심히 할 뿐 아니라 신명나게, 보람과 성취감을 만끽하며 일한다.

어디 나뿐이겠는가. 사람은 누구나 그렇다. 자신이 하고 싶거나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일과 실제로 하는 일이 일치하거나(그런 일은 없지만), 그 차이가 별로 없으면 일이 즐겁고 재미있다. 취미나 봉사 활동도 어찌 보면 일인데, 그것이 고단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반대로 자신이 바라는 일과 실제 하는 일 사이에 격차가 크면 불편하고 힘들다. 학교 다닐 적에 공부가 싫었다면, 지금 회사에서 하는 일이 재미없다면 바로 그런 불일치 때문이다. 리더의 설득 능력은 이런 불일치의 간극을 좁혀준다. 구성원으로 하여금 조직생활을 하는 의미와 명분을 제공해준다.

리더 자체에게 설득력을 느껴야 

가장 바람직한 것은 리더 자신에게 설득력을 느끼게 만드는 것이다. 설득은 그 내용이나 방법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설득하는 그 사람이다. 누가 설득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확연히 달라진다. 우리는 설득하는 내용보다 설득하는 사람이 좋아서 설득당하곤 한다.

내가 고등학교 2학년으로 올라갈 때 문과로 갈 건지 이과로 갈 건지를 정해야 했다. 당시에는 문과 지원 학생은 많았고 문과는 두 반(班)뿐이었다.
담임선생님이 조회시간에 말씀하셨다. “오늘 중으로 문과, 이과를 결정해야 하니 쉬는 시간에 번호 순대로 교무실에 와서 내게 설득당하도록. 이상.”
실제로 우리는 줄줄이 설득당했다. 선생님은 1970년대 말 당시로선 진보적인 시를 쓰는 시인이었다. 그런 선생님을 우리는 좋아하고 존경했다. 선생님은 존재 자체가 설득력이었다.

나에게 설득력 있는 리더는 이런 조건을 갖춘 사람이다.
우선, 내 편이어야 한다. 나와 생각이 비슷하고 이해관계가 맞는 사람이어야 한다. 나와 대립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은 아무리 설득력 있게 말해도, 그의 말에 설득당하지 않는다. 치졸하지만 어쩔 수 없다.
다른 하나의 조건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내편이라고 다 좋아하진 않는다. 내편 중에서도 싫어하거나 그저 그런 사람도 많다. 좋아하는 이유는 각양각색이다. 그 사람이 내게 잘해줘서 그럴 수도 있고, 그 사람의 언행이 모범적이어서 그럴 수도 있다. 아무튼 내가 좋아하고 믿을만한 사람이 이야기하면 절반은 설득당하고 시작한다. 메신저가 메시지인 셈이다.

메신저가 메시지가 되는, 존재 자체가 설득력인 경우는 흔하지 않다. 누구에게나 그런 존재는 다섯 손가락을 넘지 않는다. 리더의 설득이 쉽지 않은 이유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남의 주머니에 있는 돈을 내 주머니로 옮겨놓는 것, 내 머릿속 생각을 남의 머릿속으로 옮겨 놓는 것이라고 하지 않든가.

설득 메시지에 들어가야 할 다섯 가지

메신저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메시지, 즉 내용이다. 설득하는 메시지에 들어가야 할 내용은 다섯 가지다.
첫째, 이유와 근거가 있어야 한다. 이유는 근거로 뒷받침될 때 설득력을 갖는다. 이유가 근거로 증명되지 않으면 거센 반박과 반발에 부딪히고, ‘막무가내’란 소리를 듣게 된다.

아내는 매일 집안 청소를 한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내게 청소기를 돌리거나 걸레질을 하라고 성화다. 나는 매일 왜 그래야 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누군가 집에 오기로 했다면 그럴 수 있다. 그런데 그것도 아니다. 매일 청소하지 않으면 건강에 심각한 위협이라도 되는 것인가. 그런 근거가 있는가. 지금 화가 나 있는 게 아니다. 귀찮아서 그런 것도 아니다. 이해가 되지 않아서다.

물론 느낌과 감상을 말할 수 있다. “요즘 우리 경제가 최악이야.” 몸으로 느끼는 경기가 그렇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설득력이 있으려면 수치를 근거로 말해야 한다. 또 추측으로 말할 수도 있다. 내 짐작이라고 말하고 얘기하면 된다. 하지만 이런 추측도 추론이나 유추 수준이 되기 위해서는 근거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억측에 불과하다.

둘째, 이익과 손해가 들어가야 한다. 사람 마음을 움직이는 가장 확실한 동력은 이해득실이다. 내가 입게 될 이익과 손실이 분명할 때 마음이 움직인다.

술을 끊으라는 아내의 말은 그런 점에서 설득력이 있다. 나는 술을 마시면 얻는 게 많다. 글도 잘 써지고 말도 술술 나온다. 과하지만 않으면 인간관계에도 도움이 된다. 무엇보다 기분이 좋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술 마신 후 집에 들어가서 겪어야 할 고통과 수난이다. 얼마 전 술을 마시고 있는데 아내에게 문자메시지가 왔다.
“너 주둥이에서 술 냄새 조금이라도 나면 집에 들어올 생각 마. 이 인간이 천지분간을 못해. 밖에서나 셀럽이지 안에서도 그런 줄 알아? 길게 말 안한다. 단디 해라.”
원문에 충실하기 위해 휴대전화를 꺼내 확인했다. 다시 봐도 한마디 한마디가 쏙쏙 박히고 마음을 후벼 판다. 이런 문자를 받고도 술맛이 나면 그건 알코올 중독이다. 잠시 더 즐기는 술자리의 이익과 두고두고 겪어야 할 손실의 무게가 확연하게 비교된다. 설득력 있는 메시지다.

셋째, 명분과 도리이다. 그 일을 하는 의미를 강조하면 말은 설득력을 갖는다. ‘당연히 해야지’란 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다.

아내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한 달에 두 번은 시부모님을 찾아뵈려고 노력한다. 오히려 내가 문제다. 토·일요일에 할 일이 많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아내가 말한다. “당신은 집에만 계셔야 하는 아버님, 어머님이 불쌍하지도 않아? 얼마나 답답하시겠어. 그러고도 당신이 자식이야?”
내가 일정을 취소하고 아내의 말을 따르지 않으면, 나는 측은지심도 없고 자식 노릇 못하는 천하의 불효막심한, 인간 말종이 되고 만다. 이처럼 “명색이 ~라는 사람이… 사람 구실을 해야지.”란 말은 사람의 마음을 옥죈다. 정의, 효도, 우정, 사랑과 같이 지고지순한 말을 내세우면 뿌리치기 힘들다. 억지로라도 마음이 움직인다.

넷째, 이해와 공감이다. 업무와 관계라는 두 측면에서 리더 유형은 세 가지라고 한다. 업무와 관계 모두 관여도가 높은 ‘지시형’, 업무와 관계 모두 관여도가 낮은 ‘위임형’, 업무는 낮고 관계 관여도는 높은 ‘설득형’이 그것이다. 관계 관여도가 높다는 것은 아랫사람의 처지나 심정을 잘 안다는 뜻이다. 잘 알 뿐 아니라 이해하고 공감해준다는 의미다.

사람은 저마다 다르다. 의향, 성향, 취향, 지향이 다르고 각자의 사정이 있다. 그리고 자신이 우선이다. 이렇게 다른 사람을, 자기중심적인 사람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 필요하다. 상대의 감정이나 욕구, 사정에 대한 역지사지 없이는 설득이 가능하지 않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말을 잘 들어주고 자신을 잘 이해하는 사람에게 마음의 문을 연다.

달포 전 창원에 1박2일 강의를 갔다. 이튿날 아침, 강의 시간에 맞춰 일어나 샤워를 하는데, 물이 욕실 밖으로 튀지 않도록 통유리문을 닫는 순간, ‘끽’ 소리를 내며 문이 꽉 끼었고, 나는 본능적으로 갇혔다는 확신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문은 요지부동 열리지 않았다. 나는 알몸이었고 휴대전화를 갖고 있지 않았다.
전날 강의가 늦게 끝나 호텔에 들어가며 “늦게까지 잘 테니 청소를 천천히 해줄 수 있느냐.”고 묻기까지 했다. 설상가상 변기가 막혀 물이 내려가지 않았다. 물 내리는 버튼을 누를수록 변기는 오물을 욕실 바닥에 쏟아냈다. 강의 시간은 시시각각 다가오는데 언제 사람이 올지 기약할 수 없는 상황. 또 사람이 와도 문제였다. 호텔방 청소하는 아주머니가 오실 터인데.

내가 욕실에서 어떻게 나왔는지는 다음에 말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이 얘기를 꺼낸 건 일촉즉발의 내 얘기를 들은 아내의 반응을 말하기 위해서다.
“당신은 잘못이 없네.” 그게 무슨 소리냐고 묻자, “그 사람이 잘못했네.” 그 사람이 누군데? “당신 전에 일을 본 사람.” 왜 그 사람이 잘못이야? “당신은 설사잖아. 변기가 막혔다면 그 전에 누군가의 소행이야. 당신은 잘못이 없어.”
이렇게 설득력 있게 말하다니. 나는 순간 아내와의 깊은 유대감을 느끼면서, 이 사람 말이라면 팥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믿고 말겠다는 전의를 불태웠다.

다섯째, 설득에 있어야 할 것은 논리다. 아무리 좋은 생각도 논리적으로 타당하지 않으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우리는 논리정연한 말에 설득당한다.
그렇다면 논리적으로 말한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가장 우선해야 할 것은 ‘사실성’이다. 논리는 사실에 바탕 해야 한다. 사실이 아닌 걸 논리적으로 말하면 ‘사기 친다’고 한다.

다음으로 ‘객관성’이다. 사실도 사람에 따라 다르게 해석된다. 자신의 이해나 경험에 치우쳐 주관적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아야 객관성을 확보한다.
그 다음으로 ‘개연성’이다. 사실과 객관에 기반하더라도, 실제로 그럴 것이라는 믿음이 들지 않으면 설득되지 않는다. 원인과 결과, 즉 인과관계가 맞아떨어지고, 흐름이나 연결이 자연스러워야 한다. 이야기가 설득력 있는 것은 개연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밖에 ‘날이면 날마다 오는 게 아니다’며 희소성을 강조하고, ‘당신에게만 특별 대우한다’며 차별성을 제시하고, ‘요즘 이것이 대세다’며 화제성을 표방하면 설득이 용이하다.

설득 내용 못지않게 설득 방법도 중요 

설득하는 내용 이상으로 방법도 중요하다. 사람들은 설득당하는 것 이상으로 복잡한 것을 싫어한다. 그러므로 선택지를 너무 많이 줘선 안 된다. 두세 가지의 선택지를 놓고 장단점과 강약점을 분석해줘야 한다. 우선순위까지 정해주면 더 좋다.

그렇다고 설득하는 사람이 주인공이 돼선 안 된다. 설득당하는 사람을 그 자리에 앉혀줘야 한다. 좋은 리더는 일하는 사람이 자신에게 선택과 결정의 권한이 있다고 믿게 만든다. 결정은 위에서 하고 일은 아래에 떠넘긴다는 느낌을 갖게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미 결정된 일이라도 구체적으로 말해줌으로써 아랫사람을 설득한다.
“상황이 이러저러하고, 이런 배경과 취지에서 이 일을 하는데, 이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은 이렇다”고 말한 후, “당신 의견은 어떠하냐?”고 묻는다. 이로써 듣는 사람은 자신이 선택권을 가졌다고 착각한다. 결국 말한 사람의 의도대로 설득당한 셈인데 말이다.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설득할 때도 마찬가지다. 설득하려 말고 설명을 잘해줘야 한다. 설득하려는 의도가 드러나면 윗사람은 방어 태세부터 취한다. 그리고 어떻게든 설득당하지 않으려고 발뺌한다. 그러면서 속으로 이렇게 말한다. ‘어딜 감히 나를 설득하려고 달려들어. 내가 호락호락 넘어갈 것 같아? 판단은 내가 할 테니 당신은 설명만 잘해주면 돼.’

또한 단박에 설득하고야 말겠다는 성급함도 주의해야 한다. 설득은 한 번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여러 번에 걸쳐서 일관성 있게 꾸준히, 한발 한발 들여놓을 필요가 있다.
원초적인 설득 과정인 구애를 떠올려보라. 상대를 처음 만난 날, 결혼 얘기부터 꺼낼 순 없는 노릇 아닌가. 아울러 시간과 장소에도 각별히 신경 써야 한다. 언제 어디서 프러포즈할지 사소한 데까지 얼마나 세심하게 살피는가.

글을 마무리하면서 아내에게 물었다. “당신은 나를 설득할 때 어떤 방법을 사용해?” 아내가 답했다. “설득 방법이 왜 필요해? 그냥 내 맘대로 해버리면 되지.”


강원국 필자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증권회사 홍보실, 대우그룹 회장비서실 등을 거쳐 대통령의 스피치라이터로 8년간 일했다. 노무현 청와대에서는 연설비서관을 맡았다. 말과 글보다 미소 짓는 표정이 더 인상적이다. 저서로 『대통령의 글쓰기』, 『강원국의 글쓰기』, 『회장님의 글쓰기』가 있다. 각종 강연을 통해 ‘좋은 글쓰기’를 전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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