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베를린 외곽 서쪽에 그뤼네발트 숲이 있다. 이 숲은 베를린의 허파라고 불린다. 지난해 11월 그곳을 찾아갔다. 218번 2층 시내버스는 그뤼네발트 숲 한복판을 통과한 뒤 반제(Wannsee) 호수까지 갔다. 숲의 향기가 버스 안에서도 느껴졌다. 숲길을 걷는 사람, 뛰는 사람들이 이따금씩 보였다. 나무는 키가 컸다.

그곳을 찾은 건 막스 플랑크(1858~1947)라는 독일 물리학자의 숨결을 느껴보고 싶어서였다. 막스 플랑크는 오래 전 어느 날, 그뤼네발트 숲을 아들과 걸으며 이런 말을 했다. “아빠가 뉴턴에 버금가는 중요한 발견을 한 것 같다.”
그냥 중요한 발견이 아니다. ‘뉴턴에 버금가는 중요한 발견’이라는데 주의해야 한다. 막스 플랑크의 발견은 1900년 12월 14일에 있었다.

오늘날 물리학 교과서에선 그가 ‘양자 물리학’ 시대를 열었다고 말한다. 독일이 자랑하는 세계적인 과학연구소를 비롯해 86개의 과학 관련 기관에 그의 이름이 붙어 있는 건 그런 공적이 감안됐다. 그런데 막스 플랑크는 ‘열복사 방정식’을 발견했을 때 자신의 연구가 뭘 의미하는지 정확하게 잘 몰랐다. 베를린의 운터 덴 린덴 거리의 프로이센 아카데미에 앉아있던 독일 물리학계의 별들도 마찬가지였다.

19세기 말 독일 물리학자가 매달리던 연구 대상은 빛의 문제였다. 독일은 조명산업의 국제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광원(光源)의 일반적인 물리학적 특징을 알고자 했다. 가령, 대장간에서 쇠를 달굴 때 쇠 표면의 색깔과 거기서 나오는 빛의 밝기는 달궈지는 정도에 따라 다르다. 무엇이 이 빛의 색깔과 세기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일까? 어떤 온도에서 어떤 파장의 빛이 얼마나 방출되는지 수학으로 정확히 말하고자 한 게 독일 물리학계에 주어진 시대적 과제였다.

그 문제를 푼 사람은 막스 플랑크다. 그는 복사법칙을 만들면서 ‘양자’(quantum)를 도입해야, 아귀가 들어맞는 걸 발견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양자라는 개념을 사용했다. 양자라는 개념을 도입한다는 건 그전에 사용해왔던 물리학과의 결별을 뜻했다. 그 물리학은 영국인 아이작 뉴턴(Isaac Newton, 1642~1727)이 시작했고, 고전물리학이라고 불린다. 그래서 막스 플랑크는 훗날 자신의 발견을 ‘뉴턴에 버금가는 발견’이라고 말했던 거다.

양자라는 용어를 이 글을 읽는 사람은 들어봤을 거라고 본다. 그 뜻이 무엇인지 혹시 설명할 수 있으신지? 쉽지 않다. ‘양자물리학의 아버지’인 플랑크도 그 자신이 만든 ‘에너지의 양자화’가 무엇을 뜻하는지 몰랐다.

플랑크가 수식으로 만든 ’에너지의 양자화‘라는 개념이 물리세계에서 뭘 말하는지를 가르쳐준 건 아인슈타인이다. 1905년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빛의 입자인 ’광자‘라는 개념을 내놓았다. 광자가 에너지를 운반하며, 광자 하나는 어떤 양(hv)의 정수 배만큼의 에너지만을 가질 수 있다고 했다. (hv에서 h는 플랑크 상수, v는 진동수)
다시 말하면 광자는 1hv, 2hv, 3hv와 같이 정수 배의 에너지만 갖고 있으며, 1.5hv, 1.6hv와 같은 정수 배가 아닌 크기의 에너지를 가질 수 없다는 거다. 아인슈타인의 이 같은 생각은 ’광양자‘설에 담겨 있으며, 이걸로 그는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그래서 아인슈타인은 ’양자물리학의 어머니‘가 되었다.

빛은 무엇일까? 태양에서 오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그 무엇, 이게 인류가 품어온 오래된 생각이다. 밤이 되면 빛은 사라지고, 아침이 되면 빛이 찾아왔으니까. 태양을 숭배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모르면 신비하다고 생각하는 게 인간이다. 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인류는 결코 알아낼 수 없을 것이라고 얘기하던 시절이 있었다. 가볼 수가 없으니까.

하지만 20세기 중반에 태양이 왜 그렇게 빛나는지를 인류는 알아냈다. 한스 베테(1967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 카를프리드리히 폰 바이츠체커가 발견자다. 두 사람은 수소와 수소가 만나 헬륨을 만드는 핵융합 반응 과정을 정확히 알아냈다.
그러면 햇빛은 왜 나올까? 수소와 수소를 합해 헬륨을 만들 때 필요하지 않은, 즉 남는 질량이 좀 있다. 질량이 에너지로 바뀐다는 건 아인슈타인이 우리에게 가르쳐줬다. 질량과 에너지는 같다, 즉 질량-에너지 등가법칙이라고 하는 법칙이다. 이렇게 생겼다. E=mc^2. 남는 에너지는 빛으로 방출된다.

태양의 중심에서 일어나는 핵융합반응으로 나오는 빛은 감마선이다. 감마선은 빛 중에서 가장 세다고 생각하면 된다. 엄청나게 많은 에너지를 가진 빛이다. 감마선은 태양 중심부에서 만들어진 뒤 태양을 빠져나오느라 내부에서 좌충우돌한다. 시간이 아주 오래 걸린다. 그러면서 에너지를 많이 잃는다. 태양 표면으로 탈출할 때쯤 되면 가시광선이 된다. 그리고 8분 후 지구 표면에 도착한다.

지구의 낮을 밝히는 빛은 그렇다 치고, 지구의 밤을 밝히는 전등의 원리는 무엇인가?
전등에서 나오는 빛을 정확히 알기 위해서도 양자역학을 알아야 한다. 원자 속을 들여다 봐야했다. 여기서부터는 원자핵 주변에 있는 전자에 대한 이해가 필요했다. 전자의 거동에 대한 원리를 처음으로 알아낸 건 덴마크 물리학자 닐스 보어(1922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다. 닐스 보어는 막스 플랑크, 아인슈타인과 함께 양자물리학의 토대를 놓은 인물이다.

보어는 원자에 빛을 쪼이는 등 에너지를 가하면 원자핵 주변을 도는 전자가 본래의 안정된 궤도를 벗어나 그 위의 궤도로 옮겨간다는 걸 알아냈다. 이른바 전자가 ‘바닥 상태’에서 ‘들뜬 상태’가 된다. 바닥 상태에서 들뜬 상태로 조금씩 올라가는 게 아니라, 어떻게 옮겼는지 모르게 그냥 달라진다.
이걸 표현하는 게 ‘양자 도약’이고, 한때 일상어로도 많이 쓰였던 ‘콴텀 점프’(Quantum Jump)다. 콴텀 점프를 한 전자는 아주 짧은 시간 뒤에 에너지적으로 안정된 ‘바닥 상태’로 돌아오는데, 이때 궤도 차이만큼의 에너지를 원자 밖으로 내보낸다. 이 에너지가 빛이다. 우리의 밤을 밝히는 네온사인이나 LED 등이 다 이런 원리를 이용하고 있다.

전기, 즉 에너지를 네온 원자가 가득 들어있는 네온전등에 집어넣으면, 그 주입된 에너지로 인해 네온 원자들 속의 전자가 들뜬다. 그리고 전자들은 들뜸 상태가 되었다가 곧바로 바닥상태로 내려온다. 그러면서 빛을 낸다.
어느 원소의 원자 속에서 ‘바닥 상태’와 ‘들뜸 상태’ 사이를 오르내렸느냐에 따라 빛 스펙트럼의 색깔이 달라진다. ‘바닥 상태’와 ‘들뜸 상태’의 에너지 크기 차이가 다르기 때문이다. 때문에 네온 원자를 사용하면 녹색의 네온 빛이 나온다.

양자물리학은 빛에 관한 이해를 근본적으로 가능케 했다. 그렇기에 양자물리학은 ‘빛의 물리학’이라고 얘기되기도 한다. 가령, 아인슈타인의 그 유명한 상대성이론도 빛에 관한 이해가 시작점이다.
특수상대성이론을 낳은 아인슈타인의 유명한 빛의 사고실험은 이렇다. ‘빛에 몸을 싣고 광속으로 날고 있다고 해보자, 한 손에는 거울을 들고 있다, 그리고 그 거울을 쳐다본다. 거울에 나 아인슈타인의 얼굴이 보일까?’

아인슈타인도 거울도 광속으로 달리고 있다. 그러면 아인슈타인의 눈을 떠난 빛이 거울에 닿을 수 있을까? 아인슈타인은 그걸 알고 싶었다. 아인슈타인이나, 아인슈타인이 손에 들고 있는 거울은 같은 속도로 달리고 있다, 그렇기에 그의 눈에서 출발한 광자는 빛보다 빨리 갈 수 없기에 광속으로 가는 거울 표면에 닿을 수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면 아인슈타인 얼굴은 거울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 아인슈타인은 거울에 자기 얼굴이 보일 거라고 생각했다. 빛은 아인슈타인과 나란히 바로 옆에서 같은 속도로 우주를 달리는 게 아니며, 광속으로 운동하는 아인슈타인에 대해서도 광속으로 움직일 거라고 봤다. 여기에서 상대성이론이 탄생했다.

이후 빛을 조련시킨 물리학자들은 새로운 빛도 만들어냈다. 레이저다. 레이저는 광통신, 디스플레이, 광(光)저장 장치 등등으로 사용된다. 빛에서 파장이 가장 긴 게 마이크로파다. 마이크로파라는 게 있다는 걸 알았기에, 오늘날 집집마다 마이크로웨이브가 보급돼 음식을 데워먹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태초의 빛이 마이크로파 형태로 우주 곳곳에 퍼져 나갔고, 지금도 그걸 검출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우주배경복사를 찾아내면서 인류는 빅뱅으로 세상이 시작되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양자물리학 시대는 플랑크의 복사법칙과 함께 소리 없이 왔다. 빛에 대한 이해를 근본적으로 가능하게 함으로써 20세기는 ‘빛의 물리학’ 시대가 되었다. 빛의 물리학 시대가 시작된 지 120년이 되었다.
이제 새로운 시대가 오고 있다. 어둠의 물리학 시대다. 빛이 어둠에 자리를 물려주고 있다. 어둠의 물리학의 한복판에 암흑물질이 있다. 암흑물질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 빛에 반응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암흑물질 문제는 하늘에서 내려왔다. 천문학자들이 우주에 이상한 것이 있는 게 틀림없다고 20세기 초·중반부터 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세기 후반에 오면 암흑의 물리학은 주류 물리학에 진입하게 된다. 이탈리아, 미국, 일본이 암흑물질 연구의 최전선이다.

한국의 암흑물질 연구도, 이론-실험 두 분야에서 활발하다. 지난달 이탈리아 중부의 그란 사소에 있는 국립연구소가 이상한 신호들을 잡아냈을 수 있다는 발표를 했다. 물리학자와 천문학자는 암흑물질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나 해서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그란 사소 국립연구소는 지하 1km 깊이에서 ‘제논 1톤‘ 실험을 하고 있다. 이 제논 액체에서 배경잡음이 아닐 수 있는, 제논 원자에서의 전자 이탈이 있었다고 했다. 암흑물질의 정체를 밝혀내면 바로 노벨물리학상이다. 세상이 또 뒤집힐 것이다. 120년 전 베를린에서의 그날이 그랬던 것처럼. 어둠의 물리학이 우리 곁에 바짝 다가오고 있다.


최준석 과학 작가/주간조선 선임기자

<나는 과학책으로 세상을 다시 배웠다>(2019년)를 썼다. 과학책을 읽다가 과학책에 빠져 과학책을 썼다. 그래서 과학 작가가 되었다. 30여 년간 신문사 기자, 주간지 편집장으로 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