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교육개혁’은 모든 국가적 이슈의 시작과 끝이라 일컬을 만하다. 예컨대 최근 불거진 수도권 과밀화, 부동산값 폭등, 지방 균형발전 같은 난제를 놓고도 “결국 교육이 문제야!”라는 식으로 대화가 흐른다.
<피렌체의 식탁>은 스위스에서 두 자녀를 키우는 김진경 필자의 글을 싣는다. 30대 후반인 필자는 최근 한국에서 전개된 독일(유럽) 교육을 둘러싼 논쟁을 보고, 에세이 형식으로 칼럼을 써 보냈다. 필자는 “유럽식 교육과 관련한 논쟁의 연장선상에서 경험담 위주로 썼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한국에선 김누리 중앙대 교수(독어독문학과)가 독일 교육을 모델로 삼아 한국 교육의 개혁 방향을 제시했다. 한겨레신문은 “[세상읽기] 대한민국 새 100년, 새로운 교육”이란 제목으로 칼럼을 실었다.(6월 8일자) 김 교수는 이 글에서 ▲대학 입시 폐지 ▲대학 서열 폐지 ▲대학 등록금 폐지 ▲특권학교 폐지를 주장하며 “이것은 꿈이 아니다. 유럽에서는 상식이자 일상이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최성수 연세대 조교수(사회학과)는 “[왜냐면] 김누리 교수 칼럼에 부쳐: 독일 교육에 대한 오해”(6월 23일자)를 통해 “(독일에서) 무경쟁 교육과 입시는 다수의 학생을 대학 입시에서 배제하면서 귀결되는 독일 시스템의 특징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이후 김종영 경희대 교수(사회학과)가 김 교수의 주장을 지지하는 글을 썼고, 최 교수는 재반론을 내놨다. <피렌체의 식탁>은 김진경 필자의 글과 함께, 세 논객의 칼럼을 읽을 수 있도록 인터넷 페이지를 칼럼 말미에 연결해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다. [편집자]

#유럽 모델 향해 질문 제대로 던져야
  한국선 장점만 부각, 현실 진단 부족
#스위스, 대학 진학 위한 ‘김나지움’
  초교 때부터 경쟁 몰려 사교육 유행
#학업-직업 계열로 나눈 ‘투 트랙’ 
  도제식 교육, 기능·기술에 너무 치중
#인구당 노벨상 수상자 가장 많지만

  소수 엘리트 집중돼 보통사람과 무관
#일 잘하는 시민? 성숙한 시민?
  ‘백년대계’ 교육, 목적이 뚜렷해야

스위스 알프스 산맥에서 8000년 된 빙하가 녹아 흘러 취리히호수를 만들어냈다. 남동쪽에서 북서쪽으로 길게 뻗어 있는 이 호수 끝에 자리 잡은 도시가 스위스 최대 도시이자 경제 수도인 취리히시다. 호수를 중심으로 생겨난 마을이 총 162개에 이르는데, 취리히시와 이 마을들을 모두 묶어 ‘칸톤(Kanton) 취리히’라고 한다. 스위스 연방을 구성하는 26개 칸톤 중 하나다.

요즘처럼 날씨 좋은 여름날엔 어른아이 모두 호수에 뛰어들어 수영을 한다. 코로나19 걱정도 스위스 사람들의 호수 사랑을 막지 못하는 듯하다. 유서 깊은 스위스 일간지 NZZ 건물과 오페라하우스도 취리히 호숫가에 있다. 내가 아는 NZZ의 어느 기자는 아침 출근 전에 호수에서 수영을 하고 하루 업무를 시작한다고 했다. 헤엄치다 호수 물을 그냥 마실 정도로 깨끗하다고 그는 자랑스럽게 말했었다.

이 맑고 아름다운 호수의 양쪽 연안을 스위스 사람들은 특별한 이름으로 부른다. 기다란 호수 동쪽은 ‘골트퀴스테(Goldküste, 금빛 연안)’, 서쪽은 ‘질버퀴스테(Silberküste, 은빛 연안)’다. 스위스 산악 기후에선 햇빛이 귀한데 질버퀴스테 쪽은 산 때문에 해가 더 일찍 진다. 조금이라도 햇빛이 더 많이 드는 쪽이 골트, 그늘진 쪽이 질버가 된 것이다. 당연히 골트퀴스테의 집값이 더 비싸고, 고소득층이 더 많이 거주한다.

골트퀴스테, 질버퀴스테의 차이는 일조량과 집값에서 그치지 않는다. 학생들의 김나지움(Gymnasium,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는 인문계 중고등학교) 진학률에서도 뚜렷하게 차이난다.
2019년 통계에 따르면 칸톤 취리히의 장기(6년제) 김나지움 진학률 평균은 15%인데 비해, 골트퀴스테의 진학률은 21%였다. 단기(4년제) 김나지움까지 포함하면 차이는 더 벌어진다.
칸톤 취리히 평균은 27%인데 골트퀴스테의 진학률은 두 배 가까운 50%나 된다. 골트퀴스테에서 대학에 가려고 김나지움에 진학하는 학생 수가 지역 전체 평균의 두 배쯤 된다는 게 무슨 의미일까?

내가 사는 스위스와 독일의 교육 시스템에는 공통점이 많다. 박근혜 정부는 스위스의 ‘도제 교육’ 시스템을 벤치마킹해 한국에 적용하려 했다. 김누리 교수, 김종영 교수를 비롯해 한국 사회에서 유럽 교육을 이상화하는 학자가 많은데 이따금 구체적인 현실 진단이 빠져 있다는 느낌을 받곤 한다. 장점만 부각하느라 그 시스템에서 희생되는 부분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다.

나는 스위스에서 아이 둘을 키우는 동안 ‘유럽 교육’에 대한 환상이 사라졌다. ‘경쟁이 적고 아이들이 행복한 교육’이라는 게 사실이 아니기도 하지만, 그보다 스위스 교육의 궁극적 목적이 ‘자유롭고 책임감 있는 성숙한 시민’을 키우려는 것인지, 아니면 ‘국가를 효율적으로 운영하는데 필요한 일 잘하는 시민’을 만들려는 것인지 늘 의문을 품고 있다.

나는 몇 가지 키워드 중심으로 그 의문의 이유를 찾아보려 한다. 스위스 학교 시스템의 세부 사항은 각 칸톤 별로 다르지만 전반적인 방향은 비슷하다. 여기서는 칸톤 취리히를 중심으로, 대학뿐만 아니라 초·중등교육도 포함해 설명해 보겠다.

1. 경쟁과 사교육

칸톤 취리히의 의무교육 기간은 유치원 2년,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등 총 11년이다.
교육의 첫 단계인 공립 유치원 교육의 특징 중 하나는 ‘학업 부재’라고 할 수 있다. 읽고 쓰는 것을 가르치지 않는다. 대신 어른의 도움 없이 혼자 걸어 통학하는 법, 안전하게 길 건너는 법, 자기 물건 잘 챙기는 법 등을 배운다. 독립성을 중시하는 스위스 교육 방침이 유치원부터 확실히 적용된다. 초등학교 1학년이 되면 처음으로 철자와 20까지의 숫자를 익힌다.

그렇다고 스위스 교육이 ‘널널하다’고 착각해선 안 된다. 학습이나 생활 태도에 있어 뒤떨어지는 아이들은 진급하지 못한 채 같은 학년을 되풀이해야 하는데, 이런 유급이 유치원 단계부터 생긴다. 내 딸이 초등학교 2학년에 올라갈 때, 같은 반 친구들 중 두 명은 1학년에 그대로 남아야 했다. 20명 정원의 10%다. 그때 처음으로 스위스 학교가 시키는 건 별로 없어도 평가엔 가혹하다는 생각을 했다. 초등학교 2학년부터는 성적표가 나온다. 예고 없이 치른 시험들을 종합한 결과다.

한국에 살다 스위스로 이민 온 한국인 여성을 만난 적이 있다. 아이들은 한국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를 다니다가 오게 됐다고 한다. 이 여성에게 아이들이 스위스 학교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는데 ‘스위스 학교가 한국 학교보다 훨씬 지루하다’는 느낌을 전해줬다.
한국에선 자연(과학) 시간에 다양한 재료로 실습을 많이 했는데 스위스에선 그런 게 부족하단다. 체육 시간에 운동을 배우는 방식도 한국이 훨씬 다양하다고 했다. 두 나라의 교과서, 학습지만 비교해 봐도 한국 것이 훨씬 생생하고 깊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스위스 아이들에게 진짜 ‘헬(hell)’이 찾아오는 건 초등학교 5학년 무렵이다. 그때까지의 내신 성적을 바탕으로 김나지움 진학 시험을 볼지 말지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김나지움은 한국의 인문계 고등학교와 비슷하지만 그보다 더 무거운 의미를 갖고 있다.
중학교 졸업 후 인문계와 실업계가 나뉘는 한국과 달리, 스위스에선 초등학교 졸업 후 처음으로 갈라진다.(‘처음’이라고 한 건 나중에도 계열을 옮길 기회가 있기 때문이다)  전체 초등학생의 약 20% 정도만이 중·고등학교가 합쳐진 6년제 장기 김나지움에 진학할 수 있다.

일단 진학을 결정하면 6학년 2학기에 치를 시험을 준비해야 한다. 시험 과목은 수학과 독일어인데, 학교 수업만으로 이 시험에 대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각 초등학교 내에서 김나지움 대비반을 만들고, 한국의 학원 같은 사교육 업체가 존재한다. 개인 과외교사를 고용하는 사람도 많다. 시내 서점에 가면 김나지움 대비 교재 섹션이 따로 있다.

며칠 전 나는 외국인을 위한 스위스 교육시스템 설명회에 참가했는데, 주최자인 교육 전문가는 스위스 교육시장에 불문율(unwritten law)이 하나 있다고 말했다. “김나지움에 아이가 합격하길 바란다면 반드시 사교육을 따로 시켜야 합니다. 아무도 대놓고 말하지 않지만, 모두가 아는 사실이죠.”

사교육이 합격의 주요 변수라는 건, 소득이 높아서 사교육 비용을 댈 수 있는 집 아이가 더 유리하다는 뜻이다. 앞에서 얘기한 골트퀴스테, 질버퀴스테의 김나지움 진학률 차이가 그런 결과일 것이다.

스위스 정부도 이 점을 모르는 게 아니다. 칸톤 취리히의 고등교육 정책 담당자인 니콜라우스 샤츠만은 NZZ 인터뷰에서 “김나지움 진학에선 종종 부모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이 진학률 격차를 줄이기 위해 공교육 시스템을 보완해야 한다는 주장이 10여 년 전부터 나오고 있지만 그게 현실화된 방안은 아직 없다.

어린 시절의 교육 격차는 장기적으로 부모 계급이 세습되는 사회적 문제를 낳는다. 한국과 스위스 중, 부모의 재산이나 교육수준이 자녀의 사회 계급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나라는 어디일까?

2018년 세계은행이 낸 ‘세대 간 교육 및 경제 이동성 (Intergenerational educational and economic mobility)’ 보고서에 따르면, 계급 사다리 이동이 더 자유로운 나라는 뜻밖에도 한국이다. 이 보고서는 1980년대에 하위 50%의 가정에서 태어나서 성인이 된 후 상위 25%에 속하게 된 아이들의 비율을 조사했다. 수치가 클수록 계급 이동이 더 쉽다는 뜻이다. 한국은 17%, 스위스는 14.9%다. 다음은 다른 주요국들의 수치다.


언젠가 스위스 언론에 ‘어느 김나지움 학생 아빠의 고백’이라는 기사가 실린 적이 있다. 자기 딸의 김나지움 진학 과정을 솔직히 쓴 글인데, 마치 한국의 고3 부모가 쓴 글 같았다. 아이가 너무 긴장한 나머지 잠을 못 잘까봐 수면제를 알아보고, 기출 문제를 전부 찾아 풀고, 경쟁자인 다른 아이의 부모와는 입시 정보를 나누지 않고, 합격 발표가 나는 날 우편함 앞에서 초조하게 기다리고….
게다가 경쟁을 뚫고 시험에 붙는다고 다 끝난 게 아니다. 입학 후 6개월 정도 수습 기간이 있는데, 수습 기간의 시험 성적에 따라 일정 비율의 학생들은 김나지움을 떠나야 한다. 이게 만 12세 아이가 겪는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스위스 교육은 매우 경쟁적이다. 한국과의 차이라면 그것이 몇 년 더 일찍 시작된다는 게 다를 뿐이다.

2. 효율성

독일이나 오스트리아와 마찬가지로, 스위스 교육시스템도 ‘이중 트랙(duales System)’으로 구성돼 있다. 김나지움에서 대학진학 준비를 하는 ‘학업 계열’, 대학진학 대신 직업교육을 받는 ‘직업 계열’로 크게 양분된다.
김나지움에 진학하지 않은 학생들 대부분은 3년제 일반 중학교(Sekundarschule)를 마친 뒤 직업 교육(Berufliche Grundbildung) 루트를 택한다. 편의상 이를 ‘직업고등학교(직업고)’라고 부르겠다. 박근혜 정부가 벤치마킹하려고 했던 ‘도제 교육’ 시스템이 이것이다.

직업고 학생들은 일주일에 하루만 학교에서 수업을 받고 나머지는 중소기업 현장에서 실습생 자격으로 업무를 배운다. 자동차 정비공에서 정원사까지, 훈련 받을 수 있는 직업의 종류가 200여 개에 이른다. 실습생에겐 급료도 주어지는데, 고용주 마음이 아니라 가이드라인에 따라야 한다.

예를 들어 제빵사 실습생은 1학년 때 월급이 800스위스프랑(약 104만원)이다. 실력이 쌓임에 따라 월급도 늘어나서, 3학년 졸업 즈음엔 1100스위스프랑(143만원)을 받을 수 있다.
학교에 다니면서 돈 받고 일을 배우는 이 제도에 대한 학생들의 만족도는 높은 편이다. 졸업 후 바로 취직할 확률도 높다. 스위스의 청년(15~24세) 고용률이 유독 높은 이유가 바로 직업교육 덕분이다.(왼쪽 표 참고)

학생들 입장에선 책상 앞에 앉아 문법 규칙을 외우는 대신, 현장에서 실용 기술을 배우고 그게 안정적인 일자리와 연결된다는 점은 매력적이다. 하지만 그것을 한국 현실에 대입하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우선 양질의 직업교육을 할 수 있는 다양한 중소기업들이 스위스만큼 충분하지 않다. 스위스의 직업교육 루트에 해당하는 게 이명박 정부 시절에 만들어진 마이스터고다. 마이스터(Meister, 장인)라는 이름에서부터 독일, 스위스의 시스템을 본 딴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취지와 달리 한국에선 경제적으로 어려운 학생들이 주로 진학하고, 실습생으로서 적정 임금을 받기는커녕 안전장치도 없이 위험한 현장에 투입된다. 한국의 산재 발생률은 OECD 국가 중 최고 수준인데, 이중에 고교 실습생들도 포함돼 있다.

또 다른 문제는 교육의 내용이다. 직업고 학생들은 일주일에 하루만 학교에 가기 때문에 직업 훈련 말고 다른 과목을 배우는 수업시간이 절대적으로 적다. 그 내용도 주로 언어와 일반사회 과목으로 한정돼 있다.
김나지움에서 3개 국어와 수학, 자연과학(생물학, 화학, 물리학), 역사, 지리 등을 고루 배우는 것과 크게 차이난다. 3년간 다닌 직업고에서 배운 내용으로 구할 만한 일자리가 많긴 하지만, 이보다 더 깊이 있는 지식이 요구되는 직책이나 다른 직종의 일자리를 구하려면 추가 교육이 필수적이다.

그러다 보니 스위스에선 뒤늦게 대학에 가거나 평생교육(Weiterbildung)을 받는 사람들이 많다. 고교 졸업 후 바로 대학에 가는 비율은 한국이 훨씬 높지만, 25세 이후 추가 교육을 받는 비율은 오히려 스위스가 더 높은 이유다.

다음은 나이별로 고등교육(종합대학, 전문대학, 고교 졸업 후 직업교육 등을 모두 합친 것)을 받는 비율이다. 한국은 19~20세에 등록하는 비율이 71%나 되지만 스위스에선 겨우 16%에 그친다. 20대 중·후반에 직장인이 학습 필요성을 느껴 추가 교육을 받을 땐, 커리어와 연관된 실용 학문이지 문학, 철학, 기초 과학일 가능성은 작다.

국민의 80% 가까이가 중학교 졸업 후 실용 학문만 배운다는 게 어떤 의미일까.
유럽에서 코로나19 확산과 관련한 인종차별이나 마스크 착용 논란, 안티 백신 운동 등이 심각한 배경에, 이처럼 기초학문의 부실한 교육이 작용하지 않았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당장 5~10년 뒤만 해도 인공지능(AI) 발달이나 기후 변화, 신종 감염병 때문에 세상이 어떻게 바뀔지 알 수 없는데, 현장 실습 위주의 직업교육만으로 불확실한 미래에 대비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스위스는 전체 교육기간에 걸쳐 일관되게 언어와 수학에 집중한다. 전체 커리큘럼의 70%가 언어와 수학이다. 국가 공용어가 4개나 되고 수업 시수(時數)도 많다 보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두세 개 언어는 기본적으로 한다. 아이들은 초등학교 3학년부터 영어를, 5학년부터 프랑스어를 배운다. 하지만 이것은 언어 스킬(skill) 얘기고, 문화적 텍스트를 깊이 있게 이해하는 능력과 반드시 연결되는 건 아니다. 스위스의 직업고 커리큘럼엔 문학이 아예 없다.

2018년 피사(PISA) 읽기 영역에서 스위스는 484점을 받아 OECD 국가 중 28위, 평균(487점) 이하였다. 한국은 514점으로 9위를 기록했다. 업무나 생활에 필요한 도구로서의 언어 교육에 있어 스위스의 방식은 분명 효율적이지만, 우리가 장기적으로 지향해야 할 교육이 이런 방식일지는 깊이 고민해야 한다.

스위스의 ‘인구당 노벨상 수상자 수’가 세계 최고라며 그것을 스위스 교육과 연관시키는 시각도 있다. 그런데, 노벨상은 전 국민에 대한 보통교육의 수준과는 별 관련이 없다.
차라리 스위스는 ‘될성부른’ 소수 엘리트에 집중한다고 보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노벨상 수상자 숫자가 세계 1, 2위인 미국과 영국에서 공립학교보다 사립학교의 경쟁력이 더 강하다는 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스위스의 도제식 교육은 직업 훈련이란 측면에서 매우 효율적이고 국가경제 기여도가 크지만, 한국 현실이나 교육정책의 목적을 고려한다면 무조건 본받고 따라야 할 시스템은 결코 아니다.

한국의 교육현실엔 그야말로 개선해야 할 게 많다. 치열한 입시경쟁과 사교육 시장, 값비싼 등록금, 대학 서열화 등 일일이 거론하기 힘들 정도다.
하지만 김누리 교수 말대로 한국이 ‘제대로 된 교육을 해본 적이 없다’거나, ‘사회적 정의가 유린’되는 교육(한겨레신문 칼럼 내용)이라는 건 잘못되거나 과장된 주장이다. 더구나 ‘유럽 대다수 나라들이 하는 대로 정의로운 교육을 실천하면 된다’며 그것을 따라야 할 좌표로 삼는 건 위험하기조차 한 결론이다.
‘백년대계’라는 교육정책을 제대로 세우려면, 먼저 제대로 된 질문을 던져야 한다. 교육의 목적은 효율적인 일꾼을 기르는 것인가, 성숙한 시민을 키우는 것인가. 누구나 골고루 교육의 혜택을 볼 수 있는가. 우리의 교육방식으로 미래 사회를 대비할 수 있는가.

※칼럼 내용과 관련된 주요 인터넷 사이트 [편집자 제공]

▲김누리/ 중앙대 독어독문학과 교수
[세상읽기] 대한민국 새 100년, 새로운 교육으로/ 한겨레신문, 6월 8일자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948251.html

▲최성수/ 연세대 사회학과 조교수
[왜냐면] 김누리 교수 칼럼에 부쳐: 독일 교육에 대한 오해/ 한겨레신문, 6월 23일자
http://www.hani.co.kr/arti/opinion/because/950488.html

▲김종영/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
[왜냐면] 김누리 교수를 반대하는 이들에게/ 한겨레신문, 7월 14일자
http://www.hani.co.kr/arti/opinion/because/953498.html

▲최성수/ 연세대 사회학과 조교수
[왜냐면] ‘교육개혁’ 논쟁 2라운드: 개혁은 구호가 아니다 / 한겨레신문, 7월 23일자
http://www.hani.co.kr/arti/opinion/because/954795.html


김진경 필자

한국에서 일간지 기자로 일했다. 미국에서 만난 스페인 출신의 남편과 2011년부터 스위스 취리히에서 두 아이를 키우며 살고 있다. 한국 및 스위스 매체에 문화 다양성(cultural diversity)에 대한 글을 쓴다. 여전히 정체성을 고민 중이고, 심리적 이방인의 새로운 시각을 글에 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