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오대호 중 하나인 미시건 호수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강해서 ‘Windy City’라는 별명을 가진 시카고. 이 도시가 가진 또 다른 유명한 별명이 'Second City'다. 그런데 왜 이런 별명이 붙었는지에 대해서는 두 가지 주장이 있다.

하나는 1871년 대화재 이후에 새롭게 지어진, 다시 시작한 도시라는 의미에서 두 번째 도시라고 불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무려 사흘이나 계속된 이 화재는 시내의 건물 1만7500여 채를 태웠고, 10만여 명의 주민들이 삶의 터전을 잃은 대참사였다. 하지만 동시에 도시가 재탄생하는 계기가 돼 19세기 후반부터 시카고는 새로운 양식을 자랑하는 건축물의 실험장이 되었다.

하지만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지지하는 주장은 시카고가 뉴욕에 이은 두 번째 규모의 도시라서 Second City라고 불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1984년 이후로 L.A.가 시카고를 제치고 두 번째로 큰 도시가 되었지만, 시카고는 20세기 대부분을 뉴욕과 경쟁하는 미국의 2위 도시였다.

이매뉴얼 시장이 3선을 포기한 이유

그런 이유로 미국 정치에서 시카고가 차지하는 비중은 작지 않다. 뉴욕시 역사에서 피오렐로 라과디아, 에드 코치, 루디 줄리아니, 마이클 블룸버그 같은 시장들이 유명하다면 시카고에는 리처드 J. 데일리와 아들 리처드 M. 데일리 같은 전설적인 역대 시장들이 있다. 데일리 부자는 각각 20년 넘게 시장 직을 수행하면서 민주당의 중진으로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또한 시카고가 정치적인 고향인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초대 비서실장이었던 람 이매뉴얼도 비서실장 자리에서 내려온 후 시카고 시장(2011~2019년)을 지냈다.

미국의 대도시들이 대개 그렇지만, 일리노이 주는 부패한 정치인들(참고)이 많기로 소문난 곳이고, 일리노이 주지사 중 여섯 명이 범죄혐의로 기소되고, 그 중 네 명이 실형을 산 곳이다. 그런 일리노이 주의 최대 도시 시카고는 각 선거구에 뿌리 깊은 지역정치인들이 진을 치고 있는, 터프한 도시의 대명사다. 일찍이 1920년대에는 알 카포네가 악명을 떨치던 곳이다.

그런데 그렇게 터프한 곳에서 2019년에 흑인 레즈비언인 로리 라이트풋(Lori Lightfoot)이 시장이 된 것은, 비록 대대로 민주당에서 시장을 배출한 도시임을 고려해도 놀라운 일이다.
이 도시에서 첫 여성 시장이 나온 것은 1979년, 첫 흑인 시장이 나온 것은 1983년의 일이다.
흑인 유권자들의 힘이 강한 곳이기 때문에 흑인 시장이 선출되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지만, 바로 그러한 이유로 커밍아웃한 성소수자가 시장에 당선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미국 흑인 커뮤니티는 전통적으로 성소수자에 적대적(기사)이기 때문이다.

고교 학생회장부터 시카고 정치판까지

로리 라이트풋은 체구가 작은 여성이다. 158센티미터가 조금 넘은 키에 항상 커 보이는 수트를 입고 있으면 마치 아버지의 옷을 빌려 입고 나온 것처럼 보이는 게 사실이다. 연단에 설 때는 발밑에 상자 따위의 받침대를 깔고 있어야 청중에게 보인다.(아래 사진)


하지만 그런 라이트풋이 입을 열면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변신한다. 상대방을 몰아치는 논리적인 말솜씨와 호소력, 그리고 그의 표현력을 뒷받침하는 개인적인 카리스마는 어떻게 이렇게 자그마한 여성이, 험하고 거친 시카고 정치판에서 시장이 될 수 있었는지 설명해준다.

라이트풋은 1962년, 오하이오 주 작은 한 도시의 블루컬러 노동자였던 부모에게서 막내로 태어났다. 작은 키에도 학교 농구팀에서 포인트가드로 활동하고, 학년 회장에 세 번이나 당선되었다. 미시건 주립대학에서 정치학을 공부하고 졸업할 때까지 7개의 알바를 하고, 여름방학 동안에는 공장에서 일을 하며 학비를 벌었다고 알려져 있다.

학부를 마치고 시카고대학 법대 대학원을 졸업한 라이트풋은 연방검사가 되어 6년 동안 활동하게 되는데, 자신의 집안사람 중 한 명이 1920년대에 KKK단에 의해 살해된 것을 들면서 흑인 커뮤니티를 위해 일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연방검사로 활동한 후 로펌에서 일하던 라이트풋을 다시 공직으로 끌어들인 것은 당시 시카고 시장이던 람 이매뉴얼이었다. 이매뉴얼은 라이트풋에게 경찰의 직권남용을 조사하는 위원회를 맡겼는데, 이 위원회는 고발된 경찰의 72%를 해고하는 강력한 결정을 내렸다.

요즘 미국에서 큰 사회문제가 된 경찰의 폭력, 특히 흑인들을 상대로 한 폭력을 처벌하기 힘든 것은 막강한 경찰노조(police union) 때문이다. 그런데 이미 2015년, 2016년에 라이트풋은 이 문제를 지적하며 개혁을 촉구했던 것이다. 그러던 중 이매뉴얼 시장은 2017년에 경찰개혁을 위해 트럼프 행정부와 협상을 하는 과정에서 라이트풋과 의견 충돌을 일으켰고, 시장과 대립각을 세운 라이트풋이 시장 자리를 노린다는 소문이 돌았다.

소문처럼 2018년, 라이트풋은 이매뉴얼 시장에 맞서 시장선거에 출마해선 돌풍을 일으켰다. 몇 달 후 이매뉴얼은 3선 도전을 포기해버린다. 그렇게 흑인이자 레즈비언이라는 ‘더블 마이너리티(double minority)’의 핸디캡을 가진 라이트풋은 시카고 시장이 되었다.

흑인-레즈비언 시장의 단호한 경고

최근 라이트풋이 언론의 주목을 받은 것은 시카고 시의회에서 남성 시의원들(aldermen)을 호되게 꾸짖는 발언(영상)을 했기 때문이다.

일의 발단은 이렇다. 시카고 시는 외부업체들과 계약을 할 때 마이너리티, 즉 소수인종과 여성들이 운영하는 기업에 일정 계약을 할당하는 제도를 운영해왔다. 라이트풋 시장은 이 제도를 오너가 LGBTQ(성 소수자를 총칭하는 약자)인 기업들에게도 확대하는 게 적절한지에 대한 연구를 제안했다. 시의회는 그 제안을 두고 가부 투표에 앞서 토론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일부 시의원들이 이 제도의 확대에 거부감을 표시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
“그 영화 있지 않습니까, 소방관 두 명이 게이라고 속이는 영화. 결국 그 사람들이 혜택을 받으려고 게이라고 속인 거다,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누가 게이이고 레즈비언인지 어떻게 구분할 수 있나요?”

시의원들은 왜 이런 말을 했을까?
앞서 이야기한대로 흑인 커뮤니티는 성소수자, 특히 게이 남성에 대한 강한 편견을 가지고 있다. 이는 전반적인 소수인종, 즉 비(非)백인 커뮤니티에 만연한 특징이기도 하다. 그렇다보니 이런 커뮤니티에서는 커밍아웃을 하는 일이 백인 커뮤니티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고, 그 결과 'LGBTQ=백인들’이라는 등식이 성립되는 거다.

그런데 라이트풋 시장이 확대하자고 제안한 제도는 원래 흑인과 같은 소수인종 및 여성이 운영하는 업체를 대상으로 한 것. 이 흑인 시의원들은 자신들의 커뮤니티에 돌아올 계약, 즉 돈이 LGBTQ, 즉 백인 커뮤니티로 갈 거라고 의심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걸 이야기하면서 애덤 샌들러가 주연한 코미디 영화 'I Now Pronounce You Chuck & Larry'(영상)를 근거랍시고 꺼낸 것이다. (이 영화는 두 명의 남성 소방관이 법적 동거인 혜택을 노리고 게이 커플로 속이는 내용으로 구성돼 있다).
“결국 백인 남자들이 흑인과 ‘진짜’ 여성들(real women)에게 갈 혜택을 속여 빼앗으려는 거 아니냐”는 주장에 다름 아니었다.

이 대목에서 분노한 라이트풋 시장은 다음과 같은 발언을 한다.

저는 (시장으로서) 시의회의 논의 중에 발언을 잘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발언할 수 있는) 시장의 특권을 자주 사용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문제에 관해서만은 반드시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I don’t normally speak during city council debate, and I won’t use this privilege often, but I feel compelled to speak to this issue.

제가 어릴 때는 인종차별을 숨기지 않던 시절이었습니다. 사람들이 흑인아이인 제가 있는 자리에서 모욕적이고 해로운 말들을 하는 것을 많이 듣고 목격했습니다. 저는 아이였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몰랐고, 발언권도 없었고, 소리 내어 말할 힘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때 침묵하고 있었던 제 자신에 대한 수치심을 지금도 갖고 삽니다.
When I was a child, I grew up at a time when racial discrimination was very much on the table. And I heard and witnessed and experienced a lot of offensive, harmful things said in my presence as a black child. As a child, I didn’t have the words, the voice, or the strength to speak up. And I bear the shame of my silence to this day.

제가 커밍아웃을 했던 20대 때는 사람들이 저를 어떻게 생각할지 걱정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제 앞에서 게이와 레즈비언에 대해서 끔찍한 말을 하는 것을 듣고도 침묵했습니다.
When I was coming out in my 20s, similarly, I was worried about how I would I be perceived, and I let people say terrible things about gays and lesbians in my presence and I was silent.

저는 사람들이 모욕적이고 인종주의적인 말과 행동을 할 때 더 이상 침묵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제가 지금을 입을 열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끼기 때문에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I will be silent to no more on any issue when people say and do things that are offensive and racist. I feel like I have an obligation to speak, and so I am.

질문을 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닙니다. 질문의 내용, 질문할 때 사용하는 모욕적인 말투, 그리고 질문이니, “걱정”이니 하시는 것들이 문제입니다. 저는 리더로서, 저의 모든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흑인 게이 여성으로서, 이 위원회 논의 성격과 오늘 논의의 성격을 우려스럽게 생각합니다.
It’s not the questions that are the problem. It is the content of the questions, and the offensive nature of the tone and the questions and the ‘concerns,’ – in quotes – that were expressed. And as a leader, as a black gay woman proud on all fronts, I have to say I’m disturbed by the nature of the committee discussion and the nature of discussion today.

우리는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사람을 사랑하는지를 두고 다른 사람의 관용이나 인내, 용서나 승인을 구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고 제가 이 자리에 있는 한,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We need not ask anyone’s indulgence, patience, or forgiveness or acceptance to be who we are and who we love, and that will never happen as long as I am in this body.

그리고 차별받는 커뮤니티에 속한 사람들이 타인이 한 모욕적인 표현을 듣고만 있다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입니다. 이는 어떤 의미에서 더 나쁜 행위입니다.
And it’s also shameful for any member of a discriminated community to give indulgence to offensive words spoken by someone else. In some ways, that’s even worse.

동료 여러분, 파이는 충분히 크기 때문에 여러 다른 방법으로 자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요청하는 것은 데이터이며, 우리가 지금 어디쯤 있는지를 결정하는 연구입니다. 맞습니다. 우리는 다른 문제들에 대해서도 노력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에게 돌아올 파이 조각의 크기가 걱정된다고 해서 우리의 입에서 나오는 말로 다른 사람들을 해치거나, 나쁘게 묘사하거나, 차별해서는 안 됩니다.
My friends, the pie is big enough to slice it in lots of other ways. What we are asking for is data; a study to determine where we are. And, yes, of course we need to work on other issues, but we need not victimize, demonize, and discriminate through our words against anyone else, because we are worried about what the size of the pie is going to be for me.

여러분, 제발 부탁드립니다. 우리의 아이들이 보고 있습니다. 이 의회에서는 말을 조심해서 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리더들입니다. 사람들은 우리를 바라봅니다. 그들은 우리의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그래야 합니다. 제가 드리는 말씀은 여러분이 의사표현을 하실 때 신중하게 하시라는 겁니다. 물론 질문은 하셔야 합니다. 심의기구가 하는 일이 그것이니까요. 하지만 사람들을 나쁘게 묘사하거나 해쳐서는 안 됩니다.
So please, our children are watching. Please choose your words carefully in this body. We are leaders. People look to us. They will take our word seriously, as they should, and I will just say be careful in how you express yourself. Of course, ask questions, that’s what a deliberative body does, but do it in a way that doesn’t demonize or victimize anyone else.

라이트풋 시장의 제안은 47대1로 통과되었다.


박상현 필자

뉴미디어 스타트업을 발굴, 투자하는 ‘메디아티’에서 일했다. 미국 정치를 이야기하는 페이스북 페이지 ‘워싱턴 업데이트’를 운영하는 한편, 조선일보, 서울신문, 세계일보에 디지털 미디어와 시각 문화에 관한 고정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아날로그의 반격≫, ≪생각을 빼앗긴 세계≫ 등을 번역했다. 현재 사단법인 코드의 미디어 디렉터이자 미국 Pace University의 방문연구원으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