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통합당이 2일 국회 등원을 전격 결정하고, 문재인 대통령은 국토부장관을 불러 특단의 부동산시장 대책을 주문했다.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여권의 압박도 거세졌다. 4.15 총선 이후 느슨하게 돌아가던 정국 운영의 시계가 다시 빨라지는 느낌이다. 코로나19 이후 세상은 빛의 속도로 변화하고 있는데 당·정·청이 4.15부터 6월 말까지 두 달 반을 느슨한 태도로 즐기다가 문제를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국내 정치는 물론 한반도 정세, 코로나19 경제위기가 답답한 상황이다. 노사정 대타협 무산, 부동산정책 실패를 둘러싼 비판도 적지 않다. 국정쇄신 차원에서 통일부, 국정원, 외교부 등 외교안보라인은 물론 기획재정부, 산자부 등 경제라인, 그리고 청와대의 비서진, 정책실, 안보실 등 3실(室)을 망라한 대대적 인적 교체론이 나오는 배경이다.
물론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를 1년 10개월여 남겨놓고 청와대나 정부가 전반적 국정운영 구상을 가다듬고 있긴 하다. 문제는 그 노력이 국민들에게 체감되지 않는다는 거다. 그 저간의 사정을 들어봤다. 자유롭고 솔직·발랄한 토크를 위해 역시 필명으로써 5명의 대화 내용을 전한다. [편집자]

#여당, 잇단 악재에도 게으른 대응
  검찰개혁, 윤석열 압박엔 한목소리  
#행정부 대응능력도 수준미달 비판
  돈줄 쥔 기재부, 수구적 태도 아쉬워
  관료들의 냉소 대상 된 장차관 많아
#청와대 역점과제는 한반도 종전선언
  미 대선서 바이든 집권 땐 대책 필요
  강경화 장관의 주미대사설 배경 
#기재부, 586 중심 여당이 걸림돌?
  레임덕 막으려면 국정 전반 쇄신해야

◇국정 책임 공방과 인적 개편

▲깍쟁이
최근 두 달간 문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 여론이 급격히 나빠졌다. 갤럽 조사 기준으로 긍정 평가가 19%포인트(71%→52%), 리얼미터 기준으로 12.6%포인트(62%→49.4%) 떨어졌다. 그런데 당·정·청에서 이를 어떻게든 극복하고 돌파하려는 긴장감이 보이질 않는다. 정의연 때도 그렇고, 인천국제공항 사태, 국회 상임위 구성 때도 그랬다. 집권여당이라면 불리한 지형과 전선이 펼쳐질 때 그걸 바꾸거나 최대한 빨리 빠져나와야 되는데, 국민 여론을 살핀다는 명분아래 대응을 게을리 했다는 지적이 많다.

▲가오리
국정운영이란 게 사실은 입법부보다 행정부가 하는 거다. 그런데 행정부의 준비나 능력이 수준미달이라는 비판이 많다. 요즘 관가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지지부진 그 자체다. 우선 장관 충원의 3대 루트인 ▲교수 출신 ▲관료 출신 ▲정치인 출신 가운데 교수나 관료 출신에 대한 실망감이 크게 나타나고 있다. 예전에는 교수 출신 장관의 업무추진력, 핵심 이해력을 걱정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는데, 요즘은 행정의 맥락을 잘 안다는 관료 출신 장관에 대해서도 같은 지적이 나온다.
구체적으로 기획재정부와 문화체육관광부 같은 데가 꼽힌다. 어떤 부처에선 장관이 간부회의 때 “새로운 게 안 올라온다”고 화만 낸다는 얘기도 있고, 기재부 경우에는 몇몇 보수 언론을 빼고는 어느 곳에도 우군이 없어서 홍남기 부총리의 리더십이 내부적으로 의심받고 있다. 누군가는 “현재가 최악, 누가 와도 개선”이라는 말로 기재부의 맥 빠진 분위기를 전한다.

▲양자
장차관이 ‘새로운 게 없다’고 화라도 내면 그나마 다행이다. 어떤 부처에선 교수 출신 장관이 취임 1년이 다되도록 현안을 파악하지 못해 보고를 하는 직원들이 ‘허탈하다’고 말한다. 전문가 출신의 어떤 차관은 업계 사람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하는 간단한 인사말조차 밑에서 써준 걸 또박또박 읽는데 그쳐 차관 업무에 대해 뭘 아는지 의구심을 던져준다. 장차관 업무평가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반반
공무원들이 일을 안 하는 풍토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작용하는 거 같다. 첫째로 동기부여가 안 된다. 관가에서도 주52시간 근무나 워라밸 흐름이 있지만 그것 때문만은 아니다. 전체적으로 장관도 부처도 핵심 공무원도 키 높이와 스케일이 작아졌다. 문제는 코로나19 이후 문재인 정부는 더 큰 일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 점에서 현실과 기대가 서로 엇나가고 있다.

▲피터팬
공무원들은 위에서 일을 하라고 다그치면 뭔가 규제를 만들어오는 경우가 많다. 사실 규제 신설은 쉽다. 최근 몇몇 법안을 보더라도 명분론이 강한 한국 사회에서는 어떤 사건이 터지면 여론이 들끓고, 그러면 한 건 만들려는 국회의원, 일하는 체하는 공무원이 상호 합작해 매우 강한 강도의 규제 법안을 신설하거나 개정한다. 이런 법안들을 다 날림이라고 말할 순 없지만 정책의 숙성과 발효가 부족한 법안이 많이 나와서 금세 재개정 논의가 대두된다. 굳이 사례를 들지 않더라도 이 글을 읽는 독자라면 뭔 말인지 금방 아실 거다.

▲깍쟁이
공무원들이 사안의 맥락을 짚고 제도를 개선하려는 노력, 즉 법안과 예산이 수반되는 작업에 선뜻 나서지 않는다. 행정부 전체의 속도를 떨어뜨린 주범으로 기획재정부가 꼽힌다. 다른 부처의 국장들이 무슨 제안을 해도 기재부 사무관의 벽을 못 넘은 채 아이디어 수준에서 접어버리는 일이 많다. 비교적 진보적인 정권, 코로나19 이후라는 두 가지 특징이 중첩된 현 시국에서 기재부가 보여주는 ‘수구적’ 행동 양태는 대단한 연구사례다.
일선 부처 공무원들을 만나보면 “기재부가 기성체제 최후의 보루처럼 보인다”고 하소연한다. 새로운 견해나 아이디어에 부정적 태도로 일관한다는 말이다. 물론 기재부 사정도 이해는 간다. 기재부 쪽에선 “건물주가 바뀌고, 동네에 큰 불이 났는데 모두 와서 돈을 달라고 손을 내민다. 제한된 인원으로 그 진위를 감별할 여유가 없다”고 변명한다. 하지만 외부에서 보는 시선은 다를 거다. 한마디로 바뀐 시대에 제대로 적응할 실력이 없는 것 아닌가.

▲가오리
기재부는 여전히 국민에게 돈을 직접 지원하는데 동의하지 않고 있다. 항간에선 이 정부가 문재인 정부가 아니라 서울대 경제학과 출신으로, 행정고시 재경직에 합격한 500명 수준의 호방(戶房)들이 움직이는 정부, ‘호방 정부’라고까지 일컫는다.
노동 유연화는 통합당보다 민주당과의 당정 협의가 더 큰 문제다. 학생운동권 출신의 진보성향 중진의원들도 노동 유연화에 심정적으로 반대한다. 오히려 초선 의원들이 실용적 자세다. 문제는 그들도 이해찬 대표의 군기잡기에 눈치를 보느라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거 같다.

▲양자
윤석열 총장에 대한 추미애 장관의 ‘검언유착 의혹’ 수사와 관련한 지적을 신호탄으로, 검찰개혁은 이미 시작됐다고 본다. 민주당에선 김두관 의원이 공개 퇴진을 요구한데 이어 윤호중 법사위원장이 “자신이 충성해온 조직을 위해 결단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며 압박하고 나섰다.
여권 관계자는 “지금의 검찰은 ‘검찰의, 검찰에 의한, 검찰을 위한 검찰’이라고 볼 수 있다, 이걸 국민을 위한 검찰, 정부 여러 외청(外廳) 중 하나인 검찰로 바꿔내라는 게 총선 민심”이라고 말하더라. 공수처가 만병통치약은 아니지만 권력형 기관들의 월권, 특혜를 줄이는 결정적 장치가 되어야 한다는 거다.
공수처가 그런 역할을 얼마나 해낼지 모르지만 범여권 180석이 힘을 모으면 일단 이달 말에 책임자 내정까지는 가지 않을까.

▲피터팬
차기 경쟁에서 선두를 달리는 이낙연 의원도 2일 검찰개혁과 관련해 “이 개혁을 거부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말했다. 다분히 ‘윤석열 검찰’을 겨냥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이 의원은 또 “그분들이 거부하면 할수록 국민의 개혁요구는 높아진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검찰개혁 앞에서 여당 차원에선 일단 대열 정비를 끝냈다고 생각된다.

▲깍쟁이
다들 알다시피 이낙연 의원의 포털 연관 검색어는 '엄중히'다. 어떤 사안을 물어도 엄중히 보고 있다는 대답이 나온다. 입장을 물어봤는데, 방법론을 제시한다. 두 달 사이에 대선후보 지지율이 떨어진 이유일 거다. 이거야말로 엄중히 봐야 한다.
정치인에게는 설명 책임(accountability)이 있다. 그래서 이낙연 의원이 당 대표가 되더라도 그 이후가 더 걱정이다. 당 차원에서 '입장 없음'을 입장으로 갖게 되는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 스티븐 스미스 교수는 마키아벨리의 메시지를 이렇게 한 줄로 정리했다. "열기를 참을 수 없다면 부엌에서 나가라." 당 대표 경선 과정에선 이 의원이 좀 달라지길 기대한다.

▲피터팬
이낙연 의원의 신중 모드는 좀체 바뀌지 않을 거다. 이 의원은 문재인 정부의 성공이 곧 자신의 경쟁력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최장수 총리였는데 당·정·청과 차별화를 꾀한다면 자승자박이 아니겠는가.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는 문재인 정부의 레임덕 우려와도 연관돼 있다. 이 총리는 사석에서 이를 ‘이중 권력’이라는 단어로 완곡하게 표현하더라. 차기 주자가 설치다가 결국 지지 세력의 분열을 초래하고 이것이 권력재창출을 막는 사례가 한두 번이었나. 그래선지 답변하기 곤란한 현안에 대해 ‘엄중히’란 표현을 쓴다고 생각된다.

◇청와대의 임기 후반 구상

▲가오리
청와대는 임기 말에 구현하려는 몇 가지 목표를 내부적으로 정해놓고 있긴 하다. 당면과제인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비롯해 ▲한반도 평화 정착과 종전선언 추진 ▲검찰개혁과 공수처 설치 ▲반도체, 바이오헬스, 미래차 등 신산업 육성 등을 꼽을 수 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추진해왔던 어젠다이긴 하지만 문 대통령의 임기를 22개월 남겨놓고 다시 한 번 당·정·청의 정치적 에너지를 집약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실행력 여부는 좀 더 두고 보아야 한다.
청와대는 늦어도 내년까진 한반도 종전선언을 끌어내는 걸 최대 역점과제로 잡은 것 같다. 완전한 평화구조의 정착은 힘들어도 문 대통령 임기 중에 전쟁을 끝냈다는 평가를 만들어내려는 거다.
트럼프 등장 이후 남북미 간에 논의된 평화협정, 대규모 대북 경협 프로젝트 등에 비하면 목표가 작아졌다. ‘문 대통령 임기 중 남북정상회담만 세 차례 했는데 그래서 무슨 성과를 거두었나?’ 이런 질문과 비판이 퇴임 후에 나올 것을 의식하고 있는 것 같다.

▲양자
문제는 미국이다. 11월 대선에서 민주당의 조 바이든이 당선된다면 민주당 주류세력의 외교안보 정책으로 회귀할 것이다. 그럴 경우 종전협정 정도는 가능하겠지만 대북제재 해제나 비핵화 진전 같은 사안은 전망이 불투명하다. 무엇보다 미국의 차기 정부가 한반도 문제에 얼마나 우선순위를 둘지 알 수 없다.

▲반반
그래서 미국과 유엔 사정에 밝은 강경화 외교부장관 같은 사람을 주미대사로 파견하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미국 대선에서 누가 당선되든 향후 2년 정도를 염두에 두고 대미 외교의 포석을 깔아놓자는 것이다. 강 장관의 친화력, 인지도, 전달력이야 누구도 인정하는 만큼 한반도 정세의 키를 쥔 대미관계에 있어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피터팬
코로나19 위기가 우리 경제에 심각한 내상을 가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에 떨어진 발등의 불이자 최대 현안이 아닐 수 없다. 코로나19 방역체제 장기화로 인해 항공, 여행, 숙박, 서비스 분야의 불황은 물론 2차, 3차 내수업종의 타격이 크다. 위기의 파장은 경제사회 전반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국제사회에서 K-방역을 인정받긴 했지만 전염병 확산이 장기화, 구조화되는 것은 누구에게도 좋지 않다.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해 김상조 정책실장이 사령탑 역할을 맡아 동분서주하고 있지만 결국 돈줄을 쥐고 있는 기재부, 노동 유연성과 관련된 입법을 해야 할 국회, 두 기관의 협조가 없으면 의미 있는 변화를 추진하기 어렵다고 본다.

▲양자
노사정 대타협을 끝내 무산시킨 건 민주노총의 강경세력이다. 정말 아쉬운 대목이다. 기재부와 586 중심의 민주당, 두 곳이 문재인 정부 개혁의 걸림돌이란 얘기인가? 대통령의 국정 장악력이 예전 정부처럼 떨어질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역대 대통령의 4년차에 비교하면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높은 편이다, 그럼에도 레임덕을 여전히 걱정하다면 결국 이는 국민 지지에 비해 국정 능력이 미흡하다는 얘기 아닌가. 국정 전반의 각성과 쇄신이 필요한 시점이다.

▲가오리
국정 주요 현안에 대한 조기 진단과 대처방안의 집행, 고위직 인사 요인 발생 시 재빠른 검증과 교체, 국정 주요 과제의 치밀한 준비 및 홍보, 어젠다 주도 능력 등이 없으면 지지층부터 실망할 수 있다. 집중력과 속도를 높일 때다. 청와대·내각의 인사와 관련해 낯익은 사람과만 같이 일하려는 대통령의 평소 자세도 이 기회에 달라져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