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았던 옛날이여! (Die gute alte Zeit!)”
나의 독일어 선생인 스위스인 G가 말했다. 둘이서 스위스의 인종차별에 대해 독일어로 얘기하던 도중이었다.
“내가 어릴 땐 인종차별이란 말 자체가 없었어요. 그때 스위스엔 스위스 사람만 살았거든요. 요샌 사실을 그대로 말했다간 정치적 올바름이니 뭐니 하는 이유로 마녀사냥을 당하죠.”
G는 예순다섯 살이다. 그가 말하는 어릴 때란 50여 년 전이다. 나는 돌직구를 던지기로 했다.
“그럼 지금은 어때요, 스위스에 인종차별이 없다고 생각해요?”
G는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
“있다, 없다 중에서 고르라고 한다면, 난 스위스에 인종차별이 없다고 말할 겁니다. 설사 있다고 해도, 미국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죠.”

#무어인의 머리

우리가 이 대화를 시작한 건 최근 스위스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어느 초콜릿 과자를 둘러싼 논쟁 때문이다. 달걀 흰자위와 설탕으로 만든, 달콤하고 하얀 속 부분을 까만 초콜릿이 감싸고 있는 이 둥근 과자의 이름은 모렌코프(Mohrenkopf·사진)다. 독일어로 ‘모렌’은 무어인을, 코프는 머리를 뜻한다. ‘무어인의 머리’가 과자 이름인 셈이다.

무어인은 북아프리카의 피부색이 어둡고 주로 이슬람교도인 사람들을 폭넓게 일컫던 말이다. 둥글고 까만 과자를 흑인의 머리에 비유한 제품 이름 때문에 모렌코프는 그동안 툭하면 인종차별 논란에 시달려왔다. 최근 전 세계적인 인종차별 반대 시위의 영향으로, 이 제품의 이름을 바꾸든지 판매를 금지하라는 항의 물결이 다시 시작됐고, 스위스 최대 슈퍼마켓 체인인 미그로는 지난 6월 10일 모렌코프를 판매 품목에서 제외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한 G의 생각은 이렇다.
“까만 머리처럼 생긴 과자를 까만 머리에 비유한 게 무슨 잘못인가요. 누가 하얀 초콜릿으로 똑같은 과자를 만들어서 ‘스위스인의 머리’라고 이름을 붙인다 해도 나는 전혀 신경 안 쓸 겁니다.”

G의 반응은 예외적인 게 아니다. 스위스 대표 일간지 NZZ는 모렌코프 논란을 연이어 보도하면서, ‘언어 청소부(Sprachsäuberer)들이 불합리한 주장으로 소모적인 전쟁을 일으키고 있다’고 표현했다. 심지어 인터넷 커뮤니티엔 ‘언어 경찰(Sprachpolizei)’이라는 말도 등장했다.

미그로가 판매 중단을 발표한 뒤 스위스의 모렌코프 제조사인 두블러(Dubler) 공장 앞에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이름 변경에 반대하고 두블러에 ‘연대’한다는 의미로 사람들이 공장에서 모렌코프를 직접 사서 먹기 위해 길게 줄을 선 것이다. 실제로 모렌코프 판매량이 최근 급증했고 이 공장은 추가 생산에 들어갔다.

모렌코프라는 과자 이름은 인종차별적인가, 아니면 과장된 것인가.
이를 위해 먼저 무어인을 둘러싼 역사적 배경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북아프리카의 아랍인과 베르베르인 등으로 구성된 무어인은 711년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 유럽의 이베리아반도를 침략했다. 이들은 이후 약 800년 가까이 스페인을 지배했다.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에 있는 알함브라 궁전이 무어인의 유산이다.

스페인은 오랜 국토수복운동 끝에 1492년 마지막 이슬람 세력을 몰아내고 스페인 왕국의 통일을 이룬다. 로마 가톨릭을 국교로 삼아 통일을 이룬 스페인은 이때부터 이슬람교도, 유대교도 등 이단을 색출해 화형(火刑)하거나 추방한다. 유럽에서도 가장 잔혹하기로 악명 높았던 스페인의 종교재판(Spanish Inquisition)이 그것이다.

무어인을 뜻하는 스페인어 모로(moro)는 이런 역사적 과정을 거치며 부정적인 의미를 갖게 됐다.
짙은 색, 악마, 이교도, 순수하지 않은 것 등이 다 ‘모로’와 엮인 이미지다. 세례를 받지 않은 아이도 모로, 물을 타지 않은 진한 포도주 원액도 (물 뿌리는 세례 행위를 받지 않았다는 뜻에서) 모로다. 속어로 ‘모로에 내려간다(’Bajarse al moro)’는 건 ‘마약을 거래하러 북아프리카에 간다’는 뜻이다.
무어인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는 이후 스페인으로부터 유럽대륙 전체로 퍼져나갔다.

#백인 산타와 흑인 시종


악마화된 무어인의 이미지가 유럽인의 생활 속으로 장난스럽게, 그러나 확고하게 스며든 것이 바로 유럽의 가장 큰 명절인 크리스마스에 등장하는 성 니콜라스(산타클로스)의 ‘시종’ 캐릭터다.
네덜란드에선 12월 5일 저녁이 크리스마스이브에 해당한다. 그 몇 주 전부터 신터클라스(산타클로스의 네덜란드 버전)가 주택가, 학교, 상점 등을 돌아다니며 아이들에게 크리스마스 쿠키와 사탕 등을 나눠준다.

이때 신터클라스를 따라다니며 옆에서 그를 돕는 시종이 있다. ‘츠바르테 피트(Zwarte Piet, ‘검은 피트’라는 뜻)’라고 불리는 그는 검은 얼굴에 곱슬머리, 두껍고 붉은 입술로 분장한 모습으로, 신터클라스를 도와 사탕을 나눠주거나 아이들을 웃겨주는 역할을 한다.
외모가 전형적인 아프리카계 흑인인 것은 그가 스페인을 거쳐 네덜란드로 온 무어인이라고 전해져서다. 백인 신터클라스와 그를 돕는 흑인 츠바르테 피트의 주종 관계는 과거 유럽과 아프리카 사이의 식민지-피식민지 관계를 암시하기 때문에 오랫동안 비판의 대상이 되어 왔다.

네덜란드인 상당수는 여전히 ‘츠바르테 피트는 흑인을 비하한 캐릭터가 아니고 선물을 전해줄 때 굴뚝을 통과해 내려가기 때문에 얼굴에 재가 묻어 까만 것’이라며 이 전통을 계속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굴뚝의 재 때문이라면 왜 머리카락은 곱슬이고 입술은 두껍고 붉은지 설명이 되지 않는다.

네덜란드의 츠바르테 피트가 스위스로 가면 슈무츨리(Schmutzli, ‘더러운 것’이라는 뜻)가 된다. 매년 12월 6일, 사미클라우스(Samichlaus, 산타클로스의 스위스 버전)가 아이들에게 견과류와 귤을 나눠줄 때 그 옆에서 모자를 푹 뒤집어쓰고 한 손엔 빗자루를 든 채 시커먼 얼굴로 아이들을 무섭게 쳐다보는 게 슈무츨리다.

내 딸이 세 살 때쯤 이 슈무츨리를 봤는데, 어찌나 겁을 먹었던지 내내 내 품에 안겨서 얼굴을 파묻고 있는 바람에 사미클라우스에게 아무 선물을 받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슈무츨리의 역할은 그 해에 부모 말을 잘 듣지 않았던 아이를 빗자루로 때리거나, 심할 경우 등에 짊어지고 있던 자루에 아이를 넣고 납치해 가는 것이다. 물론 납치가 실제로 일어나는 일은 아니고 요즘은 슈무츨리도 더 친근하게 바뀌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검은 악마’ 역할을 하는 것엔 변함이 없다.

스위스의 일부 민속학자는 ‘슈무츨리는 인종차별과 아무 상관이 없다. 완벽함과 신성함을 상징하는 하얀색과 대조되는, 악마와 황폐함을 상징하는 검은색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바로 그것이 포인트다.
하지만 얼굴에 검은색을 칠한 사람이 신성한 백인 사미클라우스 옆에서 악마 역할을 하며 아이들에게 겁을 주기 때문에 흑인에 대한 부정적 편견을 심는다는 문제의식은 여전히 다수 의견이 아니다. 스위스의 전통문화라는 이 행사는 매년 되풀이되고 있다.


#누가 검은 남자를 무서워하나

산타의 존재를 믿던 어린 시절에 슈무츨리 때문에 한번 충격을 받았던 아이들이 좀 더 커서 학교에 들어가면 새로운 종류의 ‘무서운 흑인’을 만나게 될 수도 있다.

유럽의 독일어권 지역에서 어린 아이들이 하는 일종의 술래잡기 놀이 ‘누가 검은 남자를 무서워하나?(Wer hat Angst vorm Schwarzen Mann?)’가 그것이다.
놀이 규칙은 이렇다. 넓은 공터에서 술래 한명과 나머지 아이들이 멀찍이 떨어져 마주보고 선다. 술래가 ‘검은 남자’다.

먼저 술래가 “누가 검은 남자를 무서워하지?”라고 외치면 아이들이 “아무도 안 무서워하지!”라고 맞받아친다.
다시 술래가 “검은 남자가 거기로 가면?”이라고 하면 아이들은 “그럼 우리도 가지!”라고 한다.
그와 동시에 술래와 아이들이 서로를 향해 반대편 벽에 닿을 때까지 뛰기 시작한다. 엇갈리는 순간 술래의 손에 닿은 아이들은 다 술래 편이 된다.
반대쪽에 서게 된 양 팀은 다시 놀이를 시작한다. ‘검은 남자’가 점점 많아지고 그 손에 잡히지 않은 아이가 한 명만 남으면 놀이는 끝난다.

2013년 스위스 서남부 발레주의 한 학교에서 체육시간에 하는 이 놀이가 도마 위에 올랐다. 학부모인 스위스인과 미국인(흑인) 부부가 그것이 인종차별적이라고 금지해줄 것을 요청했기 때문이다. 학교 측에선 고심 끝에 놀이는 유지하되 이름을 ‘누가 늑대를 무서워하나’로 바꿨다. 그럴 법한 요구이고 합리적인 문제해결로 보인다.

흥미로운 것은 이 문제에 대한 스위스연방 인종차별철폐위원회의 반응이다.
당시 위원회 회장 게오르그 크라이스는 이렇게 말했다. “아이들 놀이에서 ‘검은 남자’라는 표현을 금지하는 게 옳은 결정이라고 보지 않는다. (인종차별 해결을 위한) 노력을 잘못된 곳에 쏟아 붓고 있는 것 같다. 그것보다 더 중요하고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어떤 이들은 놀이의 ‘검은 남자’가 흑인이 아니라, 14세기에 유럽 인구의 3분의 1을 사망하게 한 흑사병을 일컫는 것이라 애써 강변하기도 했다. 흑사병은 독일어로 ‘검은 죽음(der Schwarze Tod)’이다. 피부가 까맣게 썩어 들어가며 죽는다고 붙여진 이름이니 흑인과는 관계가 없다. 술래가 건드리는 아이들이 모두 술래가 된다는 점에서 접촉하자마자 전염이 되는 흑사병과 비슷한 점도 적잖이 있다.

하지만 빨라야 19세기에 시작됐다고 알려진 아이들의 놀이 이름이 정말로 흑사병에서 유래했다고 단정 지을 수도 없거니와, 설사 그렇다고 해도 놀이 이름 ‘검은 남자’에서 중세 흑사병을 유추할 아이들이 얼마나 될 것인가. ‘누가 검은 남자를 무서워하지’라고 소리치며 달리는 아이들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전염병이 아니라 흑인일 확률이 훨씬 더 크지 않을까.

#골리바와 콩기토스


다시 모렌코프로 돌아가 보자. 모렌코프 제조사인 두블러의 회장 로베르트 두블러(72세)는 언론 인터뷰에서 이렇게 당당히 말했다.
“흑인 차별이 걱정되면 아프리카의 기아문제 해결에 기부라도 좀 하라. 남의 제품 이름이나 바꾸라고 하는 건 돈 들이지 않고 쉽게 하는 일이다. 그런 사람들이 밤에 발 뻗고 자라고 제품 이름을 바꿀 생각은 없다.”
아프리카 기아문제 해결에 기부하지 않은 사람은 일상적으로 보는 인종차별적 제품 이름을 바꾸라고 요구할 자격이 없는 걸까.

모렌코프 같은 사례가 스위스에만 있는 건 아니다. 아일랜드에서 1957년부터 판매된 아이스크림 골리바(Golly Bar)는 포장지에 흑인 비하 이미지인 ‘골리웍(Golliwog)’을 넣었다가 오랜 논란 끝에 1992년에야 포장을 바꿨다. 나중엔 골리웍을 연상시키는 아이스크림 이름도 ‘자이언트바(Giant Bar)’라고 고쳤다.

스페인의 초콜릿 입힌 땅콩 과자 콩기토스(Conguitos)는 30개 넘는 나라에서 매년 3000만개 이상 팔리는 인기 제품인데, 이름 뜻이 ‘작은 콩고 아이’라는 뜻이다. 포장지에 그려진 캐릭터는 까맣고 둥근 몸에 입술이 두껍고 빨간, 흑인 아이를 연상시키는 모습이다.

영국 축구팀 맨체스터시티 선수 베르나르도 실바는 지난해 9월 자신의 트위터에 팀 메이트인 흑인 선수 벤야민 멘디의 어릴 적 사진과 함께 콩기토스 이미지를 나란히 올렸다가 트위터 유저들에게 몰매를 맞고 축구협회에서 징계를 받았다.
맨체스터시티 감독인 펩 과르디올라가 실바를 감싼답시고 “실바는 흑인을 비하하려는 의도가 아니었다. 멘디와 콩기토스는 꽤 비슷하게 생겼다”고 하는 바람에 사태가 더 악화됐었다. 이 때문에 콩기토스는 의도치 않게 전 세계에 ‘인종 비하 과자’라는 광고를 톡톡히 한 셈이 됐다.

한순간에 그동안 알아온 세상이 완전히 뒤집어지는 경험도 있지만, 작은 습관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삶을 장악해 버리기도 한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매일 하는 놀이, 사람들이 자주 사먹는 과자, 매년 크리스마스에 등장하는 캐릭터는 거부감 없이 쉽게, 또 끈질기게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더 위험할 수 있다.
그럼에도 단지 흔하다는 이유로, 오래됐다는 이유로 의심의 대상이 되기 어렵다. 그것에 대항하려면 마찬가지로 쉽고 끈질긴 방법을 택해야 한다.

나는 G에게 물었다.
“스위스에 인종차별이 없다는 당신 생각이 바뀔 수도 있을까요?”
“글쎄, 이 나이에 생각을 바꾼다는 건 쉽지 않겠지만 내가 그어놓은 선의 위치가 조금 움직일 수는 있겠죠.”
내가 고른 쉽고 끈질긴 방법은 매주 독일어 수업 때마다 G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차별 문제를 해결하는 건 차별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니까. 그의 선이 움직일 수도, 나의 선이 움직일 수도 있다.
내가 생각해 둔 첫 번째 질문은 이거다.
“흑인 가까이 살거나 함께 일하는 걸 싫어하는 백인들에게, 흑인 캐릭터를 이용한 과자 마케팅이 먹히는 이유는 뭘까요?”


김진경 필자

한국에서 일간지 기자로 일했다. 미국에서 만난 스페인 출신의 남편과 2011년부터 스위스 취리히에서 두 아이를 키우며 살고 있다. 한국 및 스위스 매체에 문화 다양성(cultural diversity)에 대한 글을 쓴다. 여전히 정체성을 고민 중이고, 심리적 이방인의 새로운 시각을 글에 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