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치미디어>는 최근 ‘힘의 역전2, 달라진 세계’를 주제로 제2회 메디치포럼을 개최했다. 이 행사에선 문정인 통일외교안보 특보를 비롯해 모두 7명의 연사가 강연했다. <피렌체의 식탁>은 그중 이원재 LAB2050 대표가 ‘가장 큰 정부가 가장 자유로운 시민을 만났을 때’란 주제로 강연한 내용을 소개한다.
이 대표는  “초강대국, 선진국들이 코로나19 앞에서 무력함을 보이고 있다”며 “국가를 평가하는 성적표의 기준을 바꾸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누구를 위해 일할 것인지 관점을 바꿔야 하고, 혁신이 불평등을 심화시킬 때 발상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국가의 새로운 역할과 관련해 ‘큰 정부’가 ‘자유로운 시민’을 만날 때 새로운 국부(國富)가 커진다고 주장했다. 그동안 한국 사회의 발전을 추동해온 산업화, 민주화 같은 '북극성'을 잃어버리면 사람들은 보수화되고 개인 삶은 더 힘들어질 거라는 얘기도 잊지 않았다. [편집자]

#GDP 1위 미국, 잘 사는 나라?
  수치에는 안 잡히는 삶의 질 달라
#'빅브라더' 국가는 현재진행형
  국가의 미션과 역할 달라졌을 뿐
#19세기 이후 '작은 정부'는 없었다
  나라 빚 늘며 공공지출 계속 확대
#마이너스 성장 시대 행복하려면
  국가, 민주사회 위한 안전망 역할

  '사회적 가치' 중심으로 고민해야

제가 어릴 때 바닷가에 몇 년 동안 살았습니다. 바닷가에 나가서 하루 종일 혼자 해수욕 같은 걸 했어요. 사람이 별로 살지 않는 섬이었거든요. 모래성을 쌓아놓으면 파도가 쳐서 모래가 싹 쓸려나가잖아요. 그게 모래성 바깥에 있는 저에겐 잘 보였어요. 그런데 모래성 안에 제가 살고 있으면 바로 대응을 할 수 있을까요? 파도가 오는 게 보여도 성(城)이 무너질지 저는 모르는 거죠.
오늘 제가 얘기할 주제는 ‘국가의 귀환’입니다. 코로나19를 계기로 국가가 갑자기 커져서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서 돌아왔다는 게 아니라, 국가가 제대로 귀환하지 않으면 이 성은 유지될 수 없을 뿐더러 성 자체가 없어질 수도 있다는 의미입니다.

국가라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조지 오웰의 《1984년》에서 국가는 ‘빅브라더’로 표현됩니다. 어쩐지 부정적인 느낌이 들죠? 국가가 우리를 감시하고 통제하고 옥죄일 것 같은 느낌이죠. 2020년에도 빅브라더가 있습니다. 우리가 TV에서 친숙하게 매일 볼 수 있는 얼굴, 바로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입니다. 사실 본질은 똑같다는 얘기를 드리려는 겁니다.
우리는 언제나 국가의 역할을 기대하고 국가의 역할은 점점 더 커지고 있습니다. 다만 좋은 국가와 나쁜 국가가 있을 뿐입니다. 좋은 국가란 뭘까요? 돈은 엄청 풀리고 노동은 사라지는 이 시대에 좋은 국가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해야 합니다.

2014년에 제가 미국 워싱턴DC에서 방문연구원으로 일할 때 당시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첫째 아이와 설전을 벌인 적이 있어요. 아이가 미국 공립학교를 다녔는데, 다른 애들하고 말도 잘 안 통하는데 함께 어울린 거예요. 아이와 식사를 하면서 제가 “세상에서 잘 사는 나라가 어디냐”고 묻자 아이가 “한국은 좀 잘 사는 것 같고, 미국은 별로인 것 같다”고 대답하는 거예요.

제가 기가 막혀서, “야, 네가 경제를 몰라서 그러는 거야, 잘 봐, GDP를 봐, 미국이 제일 크지? 한국이랑 캐나다랑 비슷해” 그랬더니 아이가 이렇게 받아치더라고요.
“아니, 근데 학교 급식이 별로야. 급식을 돈 내고 먹어야 하고 전부 차가운 음식만 나오고, 한국에서는 급식 공짜에다가 따뜻한 밥이랑 국이랑 같이 줬어. 그리고 흑인 친구들이 있는데 얘들은 급식을 제대로 못 먹어. 초코 우유 하나 먹고서 점심을 때워.”

저는 교육 차원에서 아이에게 끝까지 주장했죠. 미국엔 실리콘밸리란 곳도 있고,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같은 큰 기업들이 많으니 미국이 부자나라라고요. 그런데 속으론 아이의 말에 공감을 많이 했죠.
요즘 코로나19 위기 이후 대응을 잘한 나라의 맨 뒤에 미국이 있죠. 확진자, 사망자가 가장 많고 심지어 조지 플로이드 사건으로 흑백 갈등이 심화돼 아주 난리가 났어요. 미국이란 나라가 흑백갈등, 인종차별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말한 지 벌써 50년도 더 지났잖아요. 미국은 GDP 상으론 잘 사는 나라이고 경제도 좋아 보여요. 그러나 이런 문제들을 보면 잘 사는 나라가 아닌 것처럼 느껴지죠. 의심을 품게 되었잖아요?


그런데 학교 급식이 잘 나오느냐가 아이에겐 중요해요. 한국에서 학교 급식은 어떻게 나오나요? 국가가 세금을 걷어서 무상급식을 했던 거죠. 그게 아이에겐 좋았던 거예요. 미국의 어떤 아이는 점심을 제대로 못 먹어요. 이건 어디에서 차이가 나는 거죠? 국가가 세금을 걷어서 어떻게 분배하느냐에 달려있어요. 국가가 어떤 역할을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거죠. 그리고 이런 차이는 많은 경우에 GDP 같은 전통적 수치에 잡히지 않는 곳에서 발견됩니다.

국가의 역할과 관련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면, 아까 제가 조지 오웰이 쓴 《1984년》 속에서 빅브라더 세계와 2020년 정은경 본부장의 빅브라더 세계를 구분하지 않고 말했지만 사실은 구분이 됩니다.
예를 들어 1970년대 박정희의 국가가 있었죠. 굉장히 강력한 미션을 가지고 있었고 전체 사회를 이끌어나가려 했어요. 큰 역할을 하려 했던 정부였죠. 지금 정은경의 국가도 마찬가지예요. 많은 역할을 하려 한다는 점에서요.
그런데 미션이 다를 수 있는 거죠. 국가가 어떤 역할을 하느냐가 굉장히 중요하다는 겁니다. 오랫동안 경제성장을 위한 역할과 GDP란 지표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 왔는데요. 거기에 대해 다른 질문을 던져볼 수 있겠다는 걸 다음 그래프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1990년대 이후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은 세 배로 늘어났죠. 이 자리에 젊은 분들이 많이 오셔서 잘 모르겠지만, ‘우리나라가 한국병에 걸려서 국민소득 1만 달러를 못 넘길 것’이라는 기사가 경제지에 자주 실렸던 게 90년대 중반입니다. 그리고 다시 10년이 지나니까 ‘한국병에 걸려서 2만 달러를 못 넘긴다’는 기사가 많이 실렸어요. 또 10년이 지나니까 이번엔 3만 달러를 넘긴다고들 예측했어요.


한국은 그 사이 엄청난 경제성장을 했지만 놀랍게도 자살률도 그만큼 높아졌죠. 흔히 자살률이란 수치가 어느 사회에서 가장 어려운 분들이 현재 사회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를 보여준다고 합니다. 지금 눈앞의 현실이 너무 고통스러워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는 거죠.

또한 출산율은 보통 젊어서 아이를 낳고 경제활동을 활발하게 하는 분들이 미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보여준다고 합니다. 작년만 해도 연간 출생아 수 30만 명대가 곧 무너질 것 같아서 국가 위기가 올 것 같다고 얘기했는데 말 그대로 1년 만에 27만 명 수준으로 떨어졌습니다.
거슬러 올라가면 5년 전에 연간 40만 명이 넘었어요. 해마다 뚝뚝 떨어지고 있는 거죠. 공교롭게도 딱 저 기간이 우리나라 경제가 계속 성장할 때입니다. 1인당 국민소득이 상대적으로 빠르게 높아지는 기간에 저랬다는 겁니다.

국가란 존재는 작아진 적이 없다고 얘기를 하면 굉장히 반동적인 것처럼 들릴 수 있어요. 1980년대에 신자유주의 시대가 왔다고 모두를 말했어요.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대처 영국 총리가 국영기업을 민영화하고 복지 규모를 줄이면서 국가의 역할도 줄였죠.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에 케인지언(Keynesian)들이 다시 득세하면서 국가가 돌아오고 있다는 논의가 많이 나왔는데, 이것도 사실이 아니에요.

제가 OECD 자료에서 뽑은 수치 중 공공지출이 GDP에서 어느 정도 비중을 차지하는가를 국가별로 비교한 게 있습니다. 그래프가 복잡한데, 프랑스, 이탈리아, 스웨덴, 그리스, 독일, 일본, 네덜란드, 영국, 미국, 오스트레일리아 어느 나라든지 공공지출은 끊임없이 늘었습니다. 영국이나 미국도 계속 늘었어요. 신자유주의 시대라는 그 시기에도요. 다만 방식이 달랐던 거죠.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이야기해요. 영국과 미국은 1980년대에 국영기업을 민영화하며 감세정책을 펼치지 않았느냐, 그럼 국가 역할이 작아진 거 아니냐 하는 거죠. 그런데 세금을 줄인 건 사실이지만 국가 역할이 줄어들진 않았어요. 세금 수입을 보더라도 GDP 대비 세금 수입 비중이 줄지는 않았습니다.
프랑스, 스웨덴처럼 많이 쓰는 나라들은 계속 늘었고 영국, 미국은 일정 시기 이후에는 유지가 되었습니다. 물론 세금은 안 늘어났죠.
그런데 미국의 연방부채비율을 보면, 세금을 걷지 않는 대신 나라 빚을 계속해서 늘렸습니다. 세금을 안 걷은 나라는 빚 내서 쓰고, 빚을 안 낸 나라는 세금 걷어서 썼습니다. 공공지출을 더 많이 쓰고 싶은 나라들은 세금도 걷고 빚도 내서 썼습니다.

어떤 국가든지 국가의 역할은 19세기 말 이후 끊임없이 확대됐습니다. 특히 앞에서 제가 보여 드린 공공이익을 위한 사회지출, 국가가 개인 삶을 보호하기 위해 쓰는 지출은 전체 소득 중에서, GDP 중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계속 늘어왔습니다. 돈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다르게 보일 뿐이지, 작은 국가와 큰 국가가 원래 있었던 건 아니라는 겁니다.

국가부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니 홍남기 경제부총리께서 하신 말씀이 떠오르네요. 홍남기 부총리가 경제부총리답지 않게 도덕적인 이야기를 하셨어요. 요즘 논의된 기본소득제를 도입하든, 어떤 정책을 하느라 돈을 너무 많이 쓰든 나라 빚이 늘어나면 후손에게 죄를 짓는 거다, 이렇게 말씀하신 겁니다. 굉장히 도덕적인 교훈을 담고 있죠. 그렇지만 경제 얘기만 하셨으면 더 좋을 뻔 했어요.

나라 빚이 늘어나면 후손한테 왜 죄를 짓는 거죠? 국가에서 국채를 발행하면 돈을 걷잖아요. 빚을 지고 있는 건 국가이지만 그냥 빚을 지고만 있는 게 아니라 그 돈을 다시 분배해요. 재분배의 결과가 있어요. 그 결과가 후손에게 물려지는 거죠.
불평등한 세상을 평등하게 만든 다음에 그 세상을 후손에게 물려준다면 후손들은 평등한 세상을 물려받는 것이고, 불평등한 세상을 그대로 물려주면 그런 세상을 물려받는 거죠. 돈 많이 버는 사람이 세금을 많이 내고 돈 적게 버는 사람은 세금을 적게 내는 구조를 만들어서 물려주면, 후손 중에서도 돈 많이 버는 후손들이 돈을 내서 나라 빚을 갚아요. 그러니까 후손들을 걱정할 필요는 없어요.


미국만 봐도 이렇게 빚을 많이 내서 국가의 역할을 키우고 있습니다. 큰 국가냐 작은 국가냐, 빚을 내느냐 세금을 더 걷느냐 그런 차원의 문제가 아니에요. 어차피 (국가의 역할은) 다 커지고 있어요. 우리나라만큼 안 키우고 있는 곳이 없습니다. 다만 누구를 위해서 그 돈을 쓰느냐, 어떻게 쓰느냐에 대해 고민해야 합니다.


위 그래프는 쉽게 말해서 전체 국민소득 중에서 개인 주머니로 들어오는 비중이 굉장히 낮다는 겁니다. 주황색, 제일 낮은 나라가 한국입니다. 한국은 총 국민소득 중에서 가계소득 비중이 가장 낮은데 더 낮아졌다는 겁니다. IMF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더 낮아졌다는 겁니다.

그러나 아래 그래프에서 보다시피 기업소득 비중은 높아졌습니다. 우리나라는 주요 나라들 중에서 높은 편이고, IMF 외환위기, 2008년 금융위기를 거친 이후에 더 높아졌어요. 결국 소득이 누구에게 가느냐, 이게 문제라는 거죠.


흔히 국가의 귀환을 이야기할 때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국가가 돌아온다, 다시 큰 정부가 온다, 큰 정부를 막고 작은 정부로 가야 한다, 큰 정부로 가더라도 재정건전성을 잘 유지해서 후손에게 빚을 물려주지 말아야 한다, 이런 이야기들은 제가 보기에 중요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어차피 국가는 커지는 방향으로 가게 돼있기 때문이에요.

물론 국가의 역할이 커지면서 전혀 다른 종류의 국가들이 등장할 수 있습니다. 《1984년》 조지 오웰의 국가는 개인을 보호하는 역할이 굉장히 작으면서도 개인을 감시·통제하는 역할은 굉장히 큽니다. 개인의 자유도 작고 국가의 역할도 굉장히 작은 국가입니다.
반면 2020년의 국가와 관련해선 국가 역할도 굉장히 크고 개인의 자유도 크게 하라고 주장하는 분들 중에 보수 세력이 많습니다. 보수·진보란 개념이 헷갈리고, 미래통합당의 대표가 기본소득을 내걸어서 더 헷갈리긴 하지만, 대체로 시장주의자들이 그렇게 이야기해왔죠. 그러나 그렇지 않아요. 국가의 크기가 작으면서도 감시·통제를 하는 국가일 수 있고, 시장주의자들이 이야기하듯 방임하는 국가일 수도 있는 거죠. 

이렇게 미리 말씀드리고 싶어요. 2020년에 우리는 어차피 큰 국가를 맞이할 거고 앞으로 점점 더 커지는 국가를 맞이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까 제가 GDP에서 정부 세입이 차지하는 비중을 보여드렸죠.
선진국들은 다 20% 이상이고, 30%가 넘는 곳도 있는데 우리나라는 15~20% 사이입니다. 아직 갈 길이 굉장히 멉니다. 국가의 역할이 커질 수밖에 없는데 결국 어떻게 키울 거냐가 문제입니다.

국민들에게 “이거 하세요, 저거 하세요”라고 말하는 국가가 될 것이냐, 아니면 국민 개개인에게 뭔가를 보장해주면서 “자유롭게 뭔가를 해 보세요, 그렇지만 안전망은 저희가 제공할 게요”라고 말하는 국가가 될 것이냐, 이 주제를 놓고 토론해야 할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기본소득제 같은 얘기들이 앞으로 우리가 토론해봐야 할 중요한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아시다시피 모든 사람에게 현금을 정기적으로 조건 없이 지급해야 된다는 게 기본소득제입니다. 그런데 이 논의에서 중요한 건 ‘조건이 없다’는 겁니다. 코로나19 위기로 재난지원금을 받아서 쓸 때 아무런 조건이 없었기 때문에 마음대로 쓸 수 있었던 것처럼 국가가 개인에게 마음껏 사용할 수 있는 자유를 보장해주는 거죠. 그게 기본소득제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일자리가 사라지고 불평등이 커지고 있는데, 국가가 개인 자유를 증진하는 방식으로, 개인에게 직접 뭔가 보장할 수 있음을 이번에 재난지원금 지급을 통해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 기본소득 역시 필연적으로 자유를 보장해줄 수 있는 제도입니다.

그리고 사회적 가치에 대한 논의입니다. 미국처럼 GDP가 높다고 해서 살기 좋은 나라라고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습니다. 왜 그렇죠? GDP에 단순히 잡히는 재무적 가치, 경제적 가치를 넘어서는 뭔가가 있고 우리는 그걸 잡아내야 합니다.

우리는 코로나19 때문에 전 세계가 락다운(lockdown) 되어 돌아다니지 못하니까 경제가 위축되고 어려움을 겪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미세먼지가 사라지고, 대기가 맑아지고, 못 보던 동물들이 뛰어다니고,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현대사회가 시작된 이후로 최초로 전 세계적으로 감소할 수 있는 기회를 맞게 되었습니다.
기회라고 하니까 너무 이상하게 들리시죠. 왜냐하면 우리는 지금까지 이산화탄소나 미세먼지가 줄어드는, 이런 것들을 가치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저 부가적인 가장자리의 것, 주변부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던 거죠.

이제 그래서는 안 됩니다. 그럴 경우 우리는 어차피 지금부터 맞게 되어있는 ‘마이너스 성장 시대’에 너무 불행해집니다. 이제 경제성장률도 마이너스일 것이고, 인구도 감소할 것이고, 국제 간 교류도 줄어들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얻는 게 있겠죠. 그걸 저는 ‘사회적 가치’라고 통칭합니다. 인권이나 환경적 가치 같은 다양한 사회적 가치가 있을 거라고 보고 이 모든 것이 통합되어서, GDP만큼 중요한 지표가 되고 이를 중심으로 국가를 운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까 모래성과 파도의 얘기를 했는데, 그것보다 하나하나의 모래알이 사실 굉장히 중요합니다. 모래알 같은 개인들이 과거와는 달리 촛불혁명 이후에 특히 인터넷과 유튜브 등을 통해 훨씬 힘을 얻고 있습니다. 그 힘이 좋은 방향으로 가야겠죠. 학습된 개인들의 민주주의라고 생각합니다. 학습이 되어야 합니다. 반드시 누가 가르쳐야 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개인들이 경험을 통해서 얻을 수도 있고, 정보를 검색해서 스스로 지식을 찾을 수도 있습니다. 시민 개인의 역량이 신장되지 않으면 사회가 유지될 수 없는 상황이 올 거예요. 저는 학습사회와 민주주의에 대한 논의가 더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북극성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요. 산업화 때 ‘잘 살아보세’를 외쳤고, 민주화 때는 ‘독재를 물리치고 민주화를 이룩하자’는 생각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게 없어요. 북극성이 없으면 자꾸 사람들이 보수화됩니다. 본인이 진보적이라 생각했던 많은 분들도 요즘 그런 상황일 것 같아요. 더 이상 갈 곳이 없으니 이 정도에서 그냥 잘 하면 되지 않겠냐는 거죠. 그러나 저는 거기서 그치면 개인들의 삶이 더 어렵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리=한은지 기자


이원재 대표

경제평론가.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한겨레신문 경제부 기자로 일했다. 2018년 다음세대 정책실험실 <LAB2050>을 설립했다. 싱크탱크 <여시재> 기획이사, 희망제작소 소장, 한겨레경제연구소장,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등을 지냈다. 저서로는 《국가가 할 일은 무엇인가》, 《주식회사 대한민국 희망보고서》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