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만 구설수에 오르거나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 자신의 밑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의도적으로 저지르는 잘못이나 부정에 끌어들이거나 자신이 하는 실수를 함께 방어하게 만든다. '우크라이나 이슈'가 터졌을 때 나온 뉴스에 따르면 미국 국무부(한국의 외교부에 해당)에서는 내부에서 아끼는 인재들이 고위직으로 올라가거나 백악관과 함께 일하지 못하도록 막는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부하들에게 부정을 저지르도록 강요하는 트럼프의 지시를 거부하지 못하고 그냥 따랐다가 장차 국무부를 이끌 실력있는 사람들의 경력이 끝장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각 분야에서 수십 년간 일해온 사람들이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순서가 되었을 때 그 자리를 피하거나 고사하기는 힘들다. 자기 경력의 정점을 찍을 위치를 포기하는 것도 원하지 않을 뿐 아니라, 트럼프 대통령이 잘못된 결정을 내리지 않도록 조언해야 하는 책임감도 느낀다고들 한다. 그런 자세로 정부에서 일하게 된 사람들은 트럼프 옆에서 그와 함께 선을 넘지 않도록 몹시 조심한다. 문제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트럼프의 행동에 완벽하게 대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데 있다.

대표적인 일이 지난 1일 월요일에 트럼프가 즉흥적으로 계획한 교회 앞 사진촬영 행사였다.

여론의 비판 대상이 된 사진 촬영

'흑인' 조지 플로이드가 폭력 경찰의 무릎 아래에서 살해된 이후 미국의 거의 모든 대도시에서는 경찰의 흑인에 대한 폭력행위와 인종차별을 방조하는 트럼프 정권에 항의하는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시위가 격화된 5월 29일 금요일, 시위대가 백악관을 둘러싸자 트럼프는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경호원들과 함께 백악관 지하벙커로 피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처음에 트럼프는 그런 사실을 부인했다. 전 세계에서 자유를 위해 싸웠다고 자부하는 미국인들에게 벙커로 피신하는 리더는 전쟁에 패배했거나, 국민들이 등을 돌린 독재자라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트럼프의 백악관은 정보가 잘 새나가는 걸로 유명하다. 결국 사실을 숨길 수 없게 되자 “벙커를 점검(inspection)하기 위해 아주 잠깐 들렀을 뿐”이라고 둘러댔다.

하지만 너무나 구차한 변명이었던 탓에 “벙커 보이(bunker boy)”라는 별명과 함께 “국민이 무서워서 백악관에 숨어있는 겁쟁이"라는 조롱이 쏟아졌다. 대통령이란 자리는 원래 비난과 조롱을 받는 게 다반사이기 때문에 그냥 무시하고 말면 될 일이지만,  비판에 민감한(이를 영어로 thin skin이라 부른다) 트럼프는 자신이 밖으로 나오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월요일에 백악관 북문을 걸어나와 근처에 있는 성요한 교회(St. John’s Church) 앞으로 가서 성경을 들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트럼프는 시위대로 인해 워싱턴 DC가 파괴되고 있고, 그래서 그 교회도 피해를 막기 위해 널빤지로 창문 등을 봉쇄하고 닫혀 있음을 지적하기 위해 거기로 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트럼프의 의도를 모르는 사람들은 없다. 시위대가 겁나서 백악관에서 나오지 못한다는 조롱을 반박하고, 자신의 지지기반 중 하나인 개신교도들에게 점수를 따기 위한 행동이었다. <가디언지 6월 3일자 보도 내용 참조>

그런데 문제는 사진이 언론에 공개된 후에 일어났다. 트럼프가 그 교회로 이동하기 위해 당시 백악관 근처 라파예트 광장에서 평화롭게 시위를 하고 있던 사람들을 향해 경찰이 최루탄 등을 쏘아대며 강제로 해산시켰기 때문이다. 평화로운 시위는 시민의 자유로운 의사표현인데, 트럼프가 사진 촬영을 위해 이들을 공격했다는 비판이 쏟아진 것이다.

함께 사진 찍혀 난처해진 군인들

그 어처구니 없는 행사를 직접 생각해낸 트럼프야 어떤 비판을 받아도 상관없겠지만, 백악관에서 열린 회의에 참석했다가 영문도 모른 채 트럼프가 가자는 대로 백악관 밖을 나선 참모들은 몹시 난처해졌다. 그 중에서 특히 군(軍) 관련 인사들이 문제가 되었다. 트럼프는 각 주의 주지사, 시장들이 시위대를 엄중 처벌하지 못하면 군을 동원하겠다고 큰 소리를 쳤기 때문이다.

헌법을 수호하는 것을 맹세한 미국 군인들은 정치적 중립을 생명처럼 생각한다. 매년 초 의회에서 열리는 미국 대통령의 연두교서(State of the Union Address) 연설 도중에 의원들이 박수, 혹은 기립박수를 해도 그 자리에 참석한 군인들은 절대로 박수를 치지 않는 전통이 있다. 군은 정치에 중립을 지킨다는 원칙의 표명이다.

그런데 트럼프는 문 닫은 교회를 방문하러 가는 과정에서 참모들과 군 장성들을 “거느리고” 걷는 사진들을 찍었다. 본인에게는 리더의 모습으로 포장할 수 있는 멋진 사진일지 모르지만, 그 자리에 있던 마크 에스퍼(Mark Esper) 국방장관은 이날 트럼프와 함께 사진촬영을 한 게 문제가 되자 “나는 우리가 교회로 가는 것인 줄 몰랐고" “사진촬영이 있는 줄도 몰랐다”면서 “정치적인 행보로 보일 수 있는 일을 최대한 피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에스퍼 장관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트럼프가 시위대를 체포하기 위해 반란법(Insurrection Act)를 활용해, 군을 동원하는 문제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나중에 나온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는 그 말을 듣고 에스퍼 장관을 경질하려고 했다 한다) 이는 2016년 한국의 촛불시위 때 청와대에서 계엄령이 논의되었다는 이야기에 비견할 수 있는 일로, 자칫하면 헌법을 위반하는 범죄행위가 될 수도 있는 엄중한 사안이다. 에스퍼의 입장에서는 트럼프 눈치를 볼 상황은 아니었을 것이다.

더 난처한 것은 사진 속에서 유일하게 군복을 입고 있는 마크 밀리 미 합참의장(Chairman of the Joint Chiefs of Staff)이다. 시위대를 강제로 쓸어낸 길거리에서  군복을 입고 걸어가는 장면은 군의 중립성을 심각하게 위반하는 정치적 제스처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여러 곳에서 많은 비난을 받았을 마크 밀리 합참의장이 입을 연 것은 그로부터 열흘이 지난 6월 11일, 미국 국방대학(National Defense University)의 졸업식 연설에서였다.

군의 원칙과 장군의 사과

요즘 졸업시즌을 맞은 미국의 각급 학교들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예년과 같은 오프라인 행사를 취소하고 온라인 졸업식을 채택하는 일이 흔하다. 이 경우 졸업식 연설은 (지난번에 소개한 오바마 전 대통령의 졸업식 연설처럼) 영상으로 녹화되어 유튜브로 공개된다. 밀리 장군이 자신이 트럼프와 교회 앞으로 걸어가는 정치적인 사진에 대해 사과한 건 바로 졸업식 연설을 통해서였다.

하지만 밀리 장군은 단순히 그 일을 사과하는 데 그친 것이 아니라, 현재 미국을 흔들고 있는 흑인의 인권문제, 제도적 인종차별의 문제를 연설문의 주제로 삼았다. 트럼프 대통령과 그의 지지자들이 시위에 대해 비판적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단단히 각오한 연설이다.

(피렌체의 식탁에서 소개하고 있으니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 연설은 아주 잘 쓴 글이다. 현재 미국이 당면한 문제를 피하지 않고 용감하게 꺼냈을 뿐 아니라, 그것을 자신의 정치적인 입장이 아닌, '미국의 군대'라는 헌법 기관의 원칙이라는 점과 연결시켜 설명한다. 글을 써본 사람들은 잘 알고 있지만, 민감한 문제에 대한 입장 표명을 하면서 개인의 입장이 아닌 원칙에 충실하기는 쉽지 않다. 자신의 생각을 말하면 독자의 공감을 불러오기 용이하지만, 원칙을 이야기하면 뻔하고 권위적이고 지루한 글이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민감하게 변하는 상황을 반영하기 힘들어진다.

마크 밀리 장군의 연설문이 뛰어난 것은 그 둘을 모두 해냈기 때문이다. 자신의 입장이지만, 그것은 동시에 자신이 속한 조직의 오랜 원칙이라는 것. 이렇게 할 경우 그 글은 난공불락이 된다. 시위대의 입장에서도, 그를 미워하게 될 트럼프의 입장에서도 비난의 근거를 찾아내기 힘들다. 아래에서는 그가 연설문에서 심혈을 기울인 바로 그 부분을 살펴본다. (연설문의 전문은 여기에서 읽을 수 있고, 연설 영상은 위에서 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지난 2주 반 동안 미국이 극도로 어려운 시기를 지나고 있음을 목격했습니다. 저는 조지 플로이드가 부문별하고 잔인하게 살해된 것에 분노합니다. 그의 죽음은 많은 미국인들이 매일매일 겪어야 하는 고통과 분노, 그리고 공포를 극명하게 보여주었습니다.
But we have also seen over the last two and a half weeks an especially intense and trying time for America. I am outraged by the senseless and brutal killing of George Floyd. His death amplified the pain, the frustration, and the fear that so many of our fellow Americans live with day in, day out.

뒤이은 시위는 그의 죽음에 관한 것인 동시에 수 세기 동안 미국의 흑인들에게 가해진 불의에 관한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지금 목격하고 있는 것은 401년 전 제임스타운에서 시작된 우리의 원죄가 드리운 긴 그림자입니다. 남북전쟁을 통해 노예로부터 해방되었지만 100년이 지나 1965년이 될 때까지 흑인들은 법 앞에 평등하지 못했습니다.
The protests that have ensued not only speak to his killing, but also to the centuries of injustice toward African Americans. What we are seeing is the long shadow of our original sin in Jamestown 401 years ago, liberated by the Civil War, but not equal in the eyes of the law until 100 years later in 1965.

우리는 지금도 인종주의와 씨름하고 있습니다. 인종주의와 차별, 구조적인 특혜, 패턴화된 학대, 무언의, 그리고 무의식적인 편견은 미국에 존재해서는 안 되고, 미군 내에 존재해서도 안 됩니다.
We are still struggling with racism, and we have much work to do. Racism and discrimination, structural preferences, patterns of mistreatment, and unspoken and unconscious bias have no place in America and they have no place in our Armed Forces.

우리는 지금 보다 더 잘해야 하고, 더 잘할 수 있고, 더 잘할 것입니다.
We must, we can, and we will do better.

뒤이어 나오는 아래의 내용은 트럼프의 시위에 대한 접근법과 정면으로 부딪히는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는 대목이다:

그리고 우리는 시위대의 대다수가 평화로운 시위를 하고 있다는 사실에 자랑스러워야 합니다. 평화로운 시위는 미국의 자유가 잘 작동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저는 미국의 주(州) 방위군 병력들의 대응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30개가 넘는 주에서 주지사들의 지휘 아래 지역의 법 집행기관들을 훌륭하게 지원하고 있습니다.
And we should all be proud that the vast majority of protests have been peaceful. Peaceful protest means that American freedom is working. And I’m also proud of the response of our National Guard forces, who provided excellent support to local and state law enforcement under the control of state governors in more than 30 states across the country.

우리는 연방군병력을 미국 도시에 보내지 않았습니다. 주 방위군과 법 집행기관이 연합해서 폭력을 억누르고 극도의 긴장상황을 누그러뜨리는 데 성공한 결과입니다. 우리 모두는 미국의 시스템이 완전하지 않고, 열정적인 논쟁으로 가득하며,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 군은 미국 시민의 권리와 자유를 계속해서 지킬 것입니다.
We never introduced federal troops on the streets of America as a result of the combined efforts of the Guard and law enforcement at quelling the violence and de-escalating very very tense situations. We all know that our system in the United States is imperfect, full of passionate debate, and continually evolving, and we in the military will continue to protect the rights and freedoms of all the American people.

헌법에 명시된 미국의 자유를 보장하는 근본가치는 누구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은 자유롭고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가치를 군의 맥락에서 이야기하려 합니다.
The foundational value that underpins American rights embedded in the Constitution is that all people, no matter who you are, are born free and equal, and I want to address this value in the context of our military.

우리 군은 평등의 문제에 관해 엇갈리는 평가를 받아왔습니다. 정작 자신들은 본국에서 누리지 못하는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 외국에서 싸워야 했던 터스키기 항공대(흑인들로만 구성된 조종사들로, 2차대전에서 싸웠다)는 한 예에 불과합니다. 미군 내 인종분리정책은 1948년에 종식되었고, 오늘날 군은 미국의 힘인 우리나라의 다양성을 반영하게 되었습니다.
Our military has a mixed record on equality. We fought World War II with a racially-segregated military. The Tuskegee Airmen are just one example of courageous men who fought for freedoms they themselves did not enjoy at home. Racial segregation of the armed forces ended in 1948, and today the military has come to reflect the diversity of our nation – the strength of our nation.

밀리 장군의 아래와 같은 설명은 군인의 입에서 나온 것으로 믿기 힘들 만큼 진보적이다. 마치 구조적 불평등을 해결하려는 인권운동가의 말처럼 들린다. 막연하게 문제를 지적하는 게 아니라 구체적인 숫자를 들면서 불평등과 갭(gap)을 보여준다. 합참의장의 입에서 나온 이런 말은 결국 각 군의 참모총장들에게 이 문제를 해결하라는 지시와 다를 바 없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수백 만의 육군, 해군, 공군, 해병, 해안경비대원들은 다양한 인종과 젠더, 종교, 지향성을 가지고 전 세계에서 평화와 전쟁의 임무를 수행해왔습니다. 우리 군은 다양성의 결과로 더욱 강해진다는 사실을 매일매일 증명하고 있습니다. 다양성은 이 나라의 핵심적인 강점 중 하나이고, 따라서 우리 군의 핵심 강점입니다.
In recent decades, millions of Soldiers, Sailors, Airmen, Marines, and Coast Guardsmen have been part of cohesive teams consisting of people of different races, genders, religions, and orientations working to accomplish their mission in peace and war, all over the globe. Our troops demonstrate every day their ability to thrive as a result of their diversity. The diversity of America is one of the core strengths of our nation, and therefore, it is a core strength of our military.

우리 군이 포용성을 통해 민간사회에 모범이 되고 있기는 하지만, 우리 역시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 더 잘 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미군의 흑인병사 비율은 민간사회의 비율보다 높지만, 장교 중에서 흑인 비율은 7%에 지나지 않습니다. 해군과 해병대에서는 별 두 개 이상 중에 흑인이 없고, 육군에서 별 네 개인 흑인장교는 한  명뿐입니다.
And while the military sets an example for civil society through our inclusiveness, we too have not come far enough. We all need to do better. For example, although the United States military has a higher proportion of African Americans serving in our ranks than in society at large, only 7% of our flag and general officers are African American. The Navy and Marine Corps have no African Americans serving above the 2-star level, and the Army has just one African American 4-star.

(~중략~)
그리고 자신의 열흘 전 처신에 대해 반성의 말을 시작한다.

간단한 조언 두 가지로 말을 마치려고 합니다. 이 조언은 저의 지난 40년 군생활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제 장교가 되려는 여러분에게 유용할 것입니다. 첫째는 항상 상황인식(situational awareness)을 날카롭게 유지하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선임 리더인 여러분의 행동을 자세하게 지켜볼 것입니다. 저도 예외가 아닙니다.
Let me conclude with two simple pieces of advice, based on 40 years in uniform, that you may find useful as many of you will surely go on to be flag officers. First is always maintain a keen sense of situational awareness. As senior leaders, everything you do will be closely watched. And I am not immune.

밀리 장군이 말을 빙빙 돌리지 않고 얼마나 군인답게 직설적으로 사과하는지 보라.

이 자리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목격했겠지만, 지난 주 라파예트 광장에서 찍힌 사진은 시민사회에서 군의 역할에 대한 전국적인 논쟁을 일으켰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 있어서는 안되었습니다. 그 시점, 그 환경에서 저의 존재는 군이 국내정치에 개입한다는 인상을 심어줍니다. 유니폼을 입은 장교인 제게 그것은 실수였습니다. 저는 그 실수를 통해 배움을 얻었고, 우리 모두가 배울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As many of you saw, the result of the photograph of me at Lafayette Square last week, sparked a national debate about the role of the military in civil society. I should not have been there. My presence in that moment and in that environment created a perception of the military involved in domestic politics. As a commissioned uniformed officer, it was a mistake that I have learned from, and I sincerely hope we all can learn from it.

국가의 옷을 입는 우리는 국민으로부터 나옵니다. 그리고 우리는 비정치적인 군이라는 원칙을 철저히 지켜야 합니다. 그 원칙은 우리 공화국의 핵심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이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시간을 들여 애써 노력해야 하는 일이지만, 우리 개개인이 하루하루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We who wear the cloth of our nation come from the people of our nation, and we must hold dear the principle of an apolitical military that is so deeply rooted in the very essence of our republic. And this is not easy. It takes time, and work, and effort, but it may be the most important thing each and every one of us does every single day.

최고의 대목은 여기다. 군이 통수권자인 대통령을 섬기는 게 아니라 헌법을 섬기는 존재임을 명확하게 하는 이 대목은 다시 한 번 (트럼프의) 정치와 군 사이에 긋는 굵고 분명한 선이다. 쿠데타를 통해 집권한 장군들이 독재자가 되어 나라를 이끌었던 한국에 없었던 것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말인 동시에, 미국은 합참의장이 마치 헌법학자처럼 국가의 정체(政體), 공화국의 의미를 설명할 수 있는 나라임을 보여주는 문장들이다. 흔들리는 미국에 희망이 있다면 바로 이런 든든한 기둥들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제 두번째 조언은 아주 단순합니다. 헌법을 받아들이고, 여러분의 심장 가까이에 두십시오. 헌법은 군이 가져야 할 북극성이고, 더 나은 미래로 이끌 지도입니다.
And, my second piece of advice is very simple: embrace the Constitution; keep it close to your heart. It is our North Star; it is our map to a better future.

비록 완벽한 연합은 아니지만 미합중국에 대한 믿음을 가지십시오. 우리나라를 신뢰하고, 여러분의 군대를 신뢰하고, 우리가 가진 목적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미국처럼 더 큰 선(善)을 향해 변화한 나라는 찾기 힘든 이유는, 권리와 가치가 우리 헌법에 깊숙히 자리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헌법으로 우리에게 보장된 자유 때문에 국민들은 변화를 요구할 수 있습니다. 평화로운 시위대들이 전 미국에서 요구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가 군에서 봉사하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Though we are not a perfect union, believe in the United States, believe in our country, believe in your troops, and believe in our purpose. Few other nations have been able to change for the greater good, and that is because of the rights and values embedded in our Constitution. The freedoms guaranteed to us in the Constitution allow people to demand change, just as the peaceful protestors are doing all across the country. That is why we serve in the military.


박상현 필자

뉴미디어 스타트업을 발굴, 투자하는 ‘메디아티’에서 일했다. 미국 정치를 이야기하는 페이스북 페이지 ‘워싱턴 업데이트’를 운영하는 한편, 조선일보, 서울신문, 세계일보에 디지털 미디어와 시각 문화에 관한 고정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아날로그의 반격≫, ≪생각을 빼앗긴 세계≫ 등을 번역했다. 현재 사단법인 코드의 미디어 디렉터이자 미국 Pace University의 방문연구원으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