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의 연설 스타일이 세간의 화제다. 발단은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의 저격 발언이었다. “(문 대통령이) 남이 써준 연설문을 그냥 읽고, 탁현민이 해준 이벤트를 하는 의전 대통령이란 느낌이 든다"고 했다. 이에 더불어민주당 윤영찬 의원(전 국민소통수석)이 “진 전 교수의 뇌피셜(망상)”이라고 맞받아쳤다. 하승창 전 시민사회수석, 최우규 전 연설비서관도 거들었다.
<피렌체의 식탁>은 강원국 작가를 만나 역대 대통령들의 글쓰기 및 연설문에 얽힌 비화를 들어봤다. 《대통령의 글쓰기》를 쓴 강 작가는 김대중(DJ), 노무현 전 대통령을 보좌하며 8년간 스피치 라이터로 일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등장한 7명의 대통령들은 연설문 스타일에서 독특한 개성을 드러냈다. 그중 DJ와 노 전 대통령은 자신의 말과 글을 치열하게 갈고닦은 것으로 평가받는다. 강 작가는 12일 인터뷰에서 “노 전 대통령은 말(구술)로써 글(연설문)을 쓴 반면 DJ는 글(원고)로써 글(연설문)을 썼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연설문 작성 과정이나 스타일을 보면 문 대통령은 뜻밖에도 DJ와 아주 똑같다”고 평가했다. DJ는 청중 앞에 설 때 준비된 원고를 갖추는 게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했는데 문 대통령도 그렇다는 것이다. [편집자]

#야인 시절에 책 추천사 부탁 받고
  친필로 원고 써줄 만큼 열정적 자세
#문재인·노무현의 글쓰기 스타일
  필체까지 같을 만큼 서로 닮았다
#DJ는 준비된 원고로 연설하는 게
  국민에 대한 기본적 예의라 생각 
#노무현, 참모에게 구술한 다음
  글로 써오면 거듭 구술하며 고쳐
#문 대통령 진면목을 알게 하려면
 국민과 접촉 기회를 더 많이 만들라

-진중권 전 교수의 발언을 어떻게 생각하나?
▲그가 무슨 근거로 그렇게 주장하는지 궁금하다. 그냥 인상, 느낌으로 말하지 않았나 싶다. 청와대의 연설문 작성 메카니즘을 잘 이해하지 못했거나, 청와대를 잘 모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평소 글을 쓰는 자세와 열정은 어떤가?
▲그분이 민정수석, 비서실장을 하던 무렵 몇 년간 그분을 겪어봤고 대통령 취임 후에도 제 직업상 주요 연설문을 빠짐없이 관찰해왔다.
제가 겪은 경험담부터 얘기하자면, 문 대통령은 글을 꼼꼼하게 쓰고 공 들여 다듬는 스타일이다. 노무현 청와대에서 비서실장을 할 때 <대통령 연설문집>을 발간하느라 서문을 부탁드린 적이 있다. 1년에 한번 내는데 관례적으로 비서실장이 썼다. 큰 의미가 있는 게 아니어서 제가 초안을 써서 드렸는데 뜻밖에도 그걸 꼼꼼하게 고치고 또 고치더라. 자기 이름으로 나가는 자기 글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문 대통령이 야인(野人) 시절에 제가 아는 지인이 ‘책 추천사를 써 주십사’ 부탁했다고 하더라. 그런데 좀체 허락을 못 받다가 간신히 성사됐는데, 문 대통령이 처음부터 끝까지 친필로 원고를 써줬다는 것이다.
저도 그렇지만, 보통은 책 추천사를 쓸 때 출판사, 저자에게 먼저 초안을 달라고 한다. 원래 책을 다 읽고 자기가 처음부터 쓰는 게 맞겠지만, 형편상 초안에다 살을 좀 붙이는 정도로 추천사를 써주곤 한다. 그래서인지 문 대통령이 친필로 써준 그 원고를 갖고 다니며 자랑하더라. 저도 그걸 본 적이 있다.

-문 대통령과 노 전 대통령이 친구 사이였던 만큼 글 스타일도 비슷할 것 같다.
▲제가 깜짝 놀랐던 게 두 분의 필체가 너무 똑같다. 글 쓰는 스타일도 비슷하다. 아마 두 분이 부산 법무법인에서 오랫동안 같이 일하면서 서로를 닮아갔던 것 같다. 변호사란 직업이 늘 글을 써야 된다. 말로 일하는 거 같지만 법원에 낼 글을 먼저 써야 한다. 제가 문재인 대통령이 자필로 쓴 추천사를 보고 ‘어떻게 두 분이 이렇게 똑같은 문체를 갖고 있을까’ 생각했던 적이 있다.
또 하나 기억은, 문 대통령이 2012년 총선 당시 부산에 출마했을 때였다. 명색이 연설비서관 출신이어서 제가 연설문 작성을 도와드리려 초안을 하나 써드렸더니 아예 그걸 제쳐놓더라. 제 마음속으로 ‘이 분이 글에 대해선 되게 엄격하구나, 기대수준이 높구나’ 그런 걸 느꼈다.
리더 가운데 남의 글을 보고선 좋은 걸 아는 사람이 있고, 자기가 직접 쓸 수 있는 사람이 있다. 적어도 문 대통령은 글을 직접 쓸 수 있는 사람이다. 수십 년 동안 변호사로서 변론을 써왔으니까.

-강 작가가 연설비서관으로서 글을 쓸 때, 문재인 당시 비서실장이 개입하진 않았나?
▲자기를 드러내는 걸 별로 안 좋아하는 분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연설문을 작성하기 위해 여러 차례 독회(讀會)를 열곤 했다. 비서실장, 수석들이 모여서 얘기하는데 (문 비서실장은) 그 자리에선 다른 말을 안 했다. 모두들 대통령 앞에서 뭐라도 한 마디 더 하려 기를 쓰는데 유독 침묵을 지켰다. 당시엔 ‘이 분이 대통령과 가까워서 자신을 어필할 필요가 없구나’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회의가 끝나고 어떨 땐 저를 따로 불렀다. 그러곤 이 부분은 사실과 다르고 이 부분은 이렇게 고치는 게 좋겠다고 조언을 하더라. 예컨대 연설문에서 ‘뭐가 많다’고 표현하면 구체적으로 정확한 수치를 주는 식이었다. 두루뭉술하게 쓰지 말라는 지적이었다. 그런 적이 몇 번 있었다.
또 ‘글을 고치다가 혹시 궁금한 게 있으면 안 가고 있을 테니까 내게 연락하라’고 당부하곤 했다. 대통령 앞에서 실컷 떠들어 놓고 “어~ 고생해, 나 먼저 가요” 했던 사람들과는 달랐다.

-진중권 전 교수의 발언을 보고 느낀 점은?
▲고약하게 생각되는 부분이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 때는 막말 시비가 1년 내내 계속됐다. 막말 시비 프레임은 간단하다. 막말을 왜 하냐, 못 배워서 그렇다, 대학을 못 나와서 그렇다, 뭐 그런 속내가 깔려있다. 
그런데 대놓고 그렇게 얘기한 사람은 없었다. 막말 하면 떠오르는 게 무식하다는 이미지인데, 막말은 위험한 거고 그런 사람이 국정을 운영하는 걸 믿을 수 없다, 그런 악의적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이번에도 교묘하게 느껴지는 게 ‘써주는 대로 읽는다’, 이 말은 어찌 보면 문재인 대통령에겐 권력의지도 없고, 그래서 누군가 국정에 개입했을 거다, 허수아비처럼 내세웠을 거다, 이렇게 상상을 하게 만들 수 있다는 거다. 실제로 써주는 대로 읽는 걸 (진 전 교수가) 본 적도 없고 근거도 없이 이렇게 얘기하면 곤란한 것 아닌가.
일반 국민들이 언론매체를 통해 문 대통령을 볼 땐 공식석상에서 늘 읽는 모습을 많이 봐왔을 것 아닌가. 그래서 이게 어느 정도 설득력 있게 먹힐 수 있다는 거다. ‘의전 대통령’ 이미지를 만들려 하는 건 노 전 대통령에게 ‘막말 대통령’ 이미지를 씌운 것과 다르지 않다. 

-연설문을 그대로 읽는다는 측면에서 문 대통령과 DJ, 노 전 대통령을 비교하면 어떤가?
▲제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건 DJ는 문 대통령보다 더 심하게 연설문 원고 그대로 읽었다는 거다. DJ는 미리 준비한 연설문을 읽는 게, 청중에 대한 예의고 국민에 대한 도리라고 생각했다. 빈손으로, 준비 없이, 털레털레 가서 연설하는 것은 기본적인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에 비해 노무현 전 대통령은 누가 써준 걸 갖고 가서 읽는 걸 되게 싫어했다. 청중과 눈을 마주치고 서로 교감하면서 말을 하는 게 맞다고 믿었다. 노 전 대통령의 말은 계속 변화하고 발전한다. 예를 들면 똑같은 상황에 대해서도 언제나 다른 예시를 들려 했다. 말이 살아서 움직인다. 대상이 다르면 달리 얘기해야 한다는 자세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은 DJ 쪽에 훨씬 가까운 스타일이다. 노 전 대통령과 오랫동안 같이 일했지만 연설 스타일은 아주 다르다. 자기철학이 분명하고, 고집이 있고, 메시지를 계속 반복해서 강조하는 분이라고 들었다. DJ는 “내가 어떤 걸 100번 얘기해도 그걸 듣는 사람은 처음이다”는 자세를 갖고 연설문을 만들었다. 글을 써주는 사람으로선 재미가 좀 없어진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대통령이 읽는 연설문을 누가 작성했느냐다. 제가 아까 얘기했던 책 추천사라든가 <대통령 연설문집> 서문이라든가 몇몇 사례를 봤을 때, 연설을 준비하는 참모 입장에선 문 대통령이 노 전 대통령보다 훨씬 더 모시기 힘들 것이다. 연설문 초안을 써 가면 한 30%쯤 고친다고 들었다. 새벽 2~3시까지 계속 고친다는 거다. 말과 글의 중요성을 안다는 걸 단적으로 보여준다.

-연설문 작성 과정도 많이 달랐을 것 같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저를 불러서 구술을 했다. 구술 내용을 글로 바꿔서 갖다 드리면 그걸 읽고 다시 또 구술을 했다. 이런 과정을 몇 차례나 거쳤다. 그러니까 말로 글을 쓰는 스타일인 거다. 그런데 DJ는 철저하게 글을 보고 글을 또 고쳤다. 저희가 써드린 원고를 보고 마음에 들 때까지 그 글을 고쳐서 주셨다.
문재인 대통령도 연설문을 준비해서 읽는 스타일인데, 연설문 작성과정 역시 DJ와 똑같다고 들었다. 이 대목에서 묻고 싶은 게 DJ는 과연 남이 써준 글을 그대로 읽은 사람이었냐 하는 거다. 제가 볼 때 문 대통령은 DJ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른 게 있다면 DJ는 정치를 오래 하셔서 말씀을 잘하고 권력의지도 강한 분이셨다.
사실 문 대통령은 두 분만큼 말을 썩 잘하지는 못한다. 그래서 더 준비를 열심히 하는 게 아닐까 싶다. 문 대통령이 집권 전반부에 새벽 2~3시까지 글을 고칠 때마다 주변에선 너무 그러지 말라고 건의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다.
임기 후반부로 갈수록 대통령과 참모진 사이에 호흡이 잘 맞춰지게 된다. 굳이 오래 많이 글을 고치고 그럴 필요가 없어진다. 취임 후 3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호흡을 못 맞추고 있다면 그건 참모들의 문제다. 대통령의 콘텐츠를 완전히 이해하고 무슨 얘기를 하고 싶어 하는지 잘 알아야 한다. 참모들이 미리 대통령의 생각을 연설문에 담고 맞춰주는 거다.
그런데 청와대 바깥에서 이런 시스템들을 잘못 알고서 ‘주는 대로 읽는다’고 비판한다면, 그건 ‘대통령 연설’의 진정한 의미를 잘 모르는 거다.

-문 대통령은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에 비해 신중하고 샤이(shy)한 스타일 같다. 대국민 소통 방식에서 앞으로 보완할 점이 있다면.

▲메시지(연설문)와 메신저(대통령)를 나눠서 생각해보면, 노 전 대통령은 (기존 언론매체를 통해) 메시지 자체가 전달되지 못했다. 쉽게 말해 계속 편지를 썼는데 우편배달부가 전해주지 않았다.
지금은 그보다는 상황이 나아져서 메시지 자체는 전달이 된다. 그렇지만 메신저를 좀 더 많이 보여줄 필요가 있다. 국민들이 메신저를 많이 보지 못해 이번처럼 근거 없는 얘기가 나오면 ‘아, 그런가?’ 하며 헷갈려하는 거다. 국민들이 직접 보고 판단하게 만들어야 하는데 그럴 기회가 너무 적다. 문재인 대통령을 직접 보고 나면 사람들의 평가는 더 좋아진다. 메신저를 많이 보일수록 이득인 셈이다.
어쩌면 ‘샤이하다’는 평가도 문 대통령이 자주 안 나오니까 그렇게 비춰지는 것일지 모른다. 그건 대통령의 의지라기보다는 청와대 참모들이 그런 기회를 적극적으로 만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설사 대통령이 그걸 선호하지 않더라도, 국민들이 직접 접촉하고 판단할 수 있는 자리와 접점을 많이 만드는 게 중요하다. 제 생각엔, 노무현 전 대통령 옆에서 말 때문에 고생하는 모습을 많이 보면서, 혹여 말을 안 하는 게 더 나을 거라는 피해의식을 갖게 됐을지도 모른다.
저는 문 대통령의 진면목을 국민들에게 직접 많이 보여 주면 좋겠다. 가끔 한 번씩 하게 되면 대통령이 갖고 있는 것들을 정확히는 못 보여준다. 일상적으로 하다 보면 국민들이 대통령의 진정성과 역량, 콘텐츠를 알아줄 것이다,

-세 분 대통령의 권력의지가 다르다는 점도 작용하는 거 같다.
▲좋은 지적이다. 더 정확히 표현하면 대통령으로서 하고 싶은 말이 얼마나 많으냐의 차이 같다. 노 전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너무 차고 넘쳐, 매주 토요일마다 막 춘추관으로 달려가려 했다. 그건 결국 성정(性情)의 문제라고 생각된다. 저는 문 대통령이나 DJ는 말을 해야 될 때라고 판단해야 비로소 말을 하는 진중한 스타일이라고 본다.

-대통령과 참모진 사이에 바람직한 팀워크가 있다면?
▲문 대통령은 직접 글을 쓰는 분이다. 박근혜, 이명박 전 대통령처럼 자기 글을 직접 못 쓰는 리더가 아니다. 그렇지만 대통령은 글을 쓸 수 있어도 바쁜 스케줄 때문에 오랫동안 쓸 시간이 없다. 그렇지 않은가? 대통령이 작가도 아니고 왜 앉아서 연설문을 써야 하는가. 당연히 참모진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청와대 비서실의 존재 의미가 없다.
연설문은 연설비서관 손끝에서 마무리되지만, 그 과정에서 전 비서실이 동원된다.
비서실이란 대통령이 말로써 국정을 운영할 때 그 말을 뒷받침하는 조직이다. 대통령의 판단, 선택, 결정에 도움을 주면서 대통령의 말을 보좌한다. 비서진의 의견수렴과정을 거치고, 대통령과 비서진이 의견을 나누는 과정 속에서 대통령의 말과 글이 최종적으로 만들어진다. 그게 바로 시스템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향해 ‘시스템대로 움직이지 않고 막말과 애드립을 일삼는다’고 비난했던 사람들이, 이제 와서는 문 대통령을 향해 ‘시스템대로 움직인다’고 뭐라 하는 것처럼 들린다.

대담 및 정리=한은지 기자


강원국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증권회사 홍보실, 대우그룹 회장비서실 등을 거쳐 대통령의 스피치라이터로 8년간 일했다. 노무현 청와대에서는 연설비서관을 맡았다. 말과 글보다 미소 짓는 표정이 더 인상적이다. 저서로 『대통령의 글쓰기』, 『강원국의 글쓰기』, 『회장님의 글쓰기』가 있다. 각종 강연을 통해 ‘좋은 글쓰기’를 전파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