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漢)에서 시작된 코로나19 사태가 어느덧 반년쯤 진행됐다. 세계 각국은 위기 단계의 시차가 있지만 한편으론 방역․의료, 한편으론 경기진작이라는 두 개의 난제를 해결하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런 가운데 세계 금융시장은 최근 실물경제와 달리 V자형 곡선을 그리며 빠르게 회복되고 있다. 한국도 주식시장 지표들은 이미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올라섰다. 가장 큰 원인은 주요 선진국들의 막대한 재정 투입과 양적 완화이지만 코로나19 이후 세상을 낙관하는 시각도 작용하고 있다. 5월 중순까지 주요 선진국들은 국내총생산(GDP)의 8.1%에 달하는 재정을 쓰겠다고 발표했다. 2008년 금융위기 때보다 세 배나 큰 규모다.
<피렌체의 식탁>은 금융 칼럼니스트로 활약하는 이종우 전 아이엠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의 글을 싣는다. 그는 2003년부터 5곳의 증권사 리서치센터장을 맡아 직업이 '센터장'이라는 말을 듣는다. 금융시장이 한국형 뉴딜과 경기부양책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실물경제는 장차 어떻게 변화할지, 정부 정책은 어떻게 펼쳐야 할 것인지 살펴본다. [편집자]

#시대 흐름을 바꾸는 건 '기술 진보'
 전염병이 세상 바꾼 사례는 페스트뿐
#가장 큰 변화는 온라인 소비의 증가
  플랫폼·콘텐츠 산업, 눈부신 성장 예상
#K-방역, 바이오산업에 영향 제한적
  원격진료 등 새로운 영역 개척 필요 
#그린 뉴딜-디지털 뉴딜 간에 시너지 기대
  소프트웨어·친환경, 정부가 선도해야

코로나19 이전과 이후 세상이 다를 거란 얘기가 많다. 전염병으로 경제활동이 멈춰서는 흔치 않은 경험을 한 만큼 앞으로 사람들의 행동이 바뀔 거라는 의미다. 먼저 이 부분부터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변화가 실제 일어날 것인가? 지금은 ‘당연히’라고 얘기할 것이다. 코로나19의 한복판에 있어 모든 사고가 코로나19 위주로 짜여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사를 보면 다른 결론이 나온다. 전염병이 세상을 바꾼 사례는 중세시대에 페스트 말고는 거의 없었다. 20세기 초 스페인독감으로 전 세계에서 5000만 명이 사망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바꾸지 못했다. 1968년 발생한 홍콩독감도 100만 명에 달하는 사망자가 나왔지만 이후 세상은 그대로였다.

앞으로 세상을 바꿀 기술이 나오더라도 이는 코로나19보다는 기술 발전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일 가능성이 높다. 전염병 때문에 특별히 빨라진 게 아니라는 얘기다.
1990년에 PC가 본격 보급된 후 30년 만에 정보통신기술(ICT)이 보편화됐고, 이 기간을 흔히들 3차 산업혁명기라고 얘기한다. 당시엔 규모가 큰 대기업도 겨우 286 PC 몇 대를 갖고 있었지만 요즘엔 보통 사람들도 손에 대용량 컴퓨터(예컨대 핸드폰)를 들고 다닌다.
그럼에도 그 속에 살던 사람들은 변화를 크게 실감하지 못했다. 변화가 일상이 되면서 사람들이 기술 진보에 둔감해졌기 때문이다. 대신 1990년 특정 시점과 지금을 1대1로 비교하면 엄청난 변화를 쉽게 알 수 있다. 코로나19로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 거란 믿음도 이런 단절적인 역사를 가정하고 하는 말이 아닐지 의심스럽다. 전염병이 세상을 바꿀 걸로 보느냐는 각자의 판단에 따른 문제인 것 같다.

가장 큰 변화는 온라인 소비에서 발생

코로나19로 세상이 달라진다면 영향을 많이 받는 쪽은 소비다. 특히 온라인 소비가 가장 큰 변화를 겪을 가능성이 높다. 지난 1분기 미국의 이커머스(e-Commerce) 소매판매가 작년 동기에 비해 14.8% 늘었다. 우리나라도 지난 2~4월에 오프라인 매출은 3개월 연속 줄어든데 비해 온라인 매출이 두 자릿수로 늘었다. 코로나19 확산이 가장 심했던 3월, 4월에도 온라인 매출이 16.9%, 12.7% 증가할 정도였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본격화되기 전에도 온라인 소비 비중이 꾸준히 높아지고 있었는데 코로나19로 확장 속도가 더 빨라진 것이다.

브릭 미츠 클릭(Brick Meets Click)의 자료에 따르면 코로나19 확산 후 미국에서 4000만 가구가 온라인 식료품 배달이나 픽업 서비스를 이용한 걸로 조사됐다. 이는 2019년 8월 1600만 가구보다 두 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이에 따라 아마존, 월마트 그로서리 등 온라인 배송 및 픽업 서비스 매출이 작년에 비해 최소 60% 이상 증가했다.
이런 상황은 우리나라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글로벌 고객 데이터 분석 기업 ‘던험비’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코로나19 발생 이후 한국의 온라인쇼핑 이용률이 54%로 높아져 중국에 이어 세계 두 번째로 올라섰다.

어떤 이유에서든 온라인의 편리성을 경험한 사람은 앞으로도 계속 이용할 가능성이 높다. 이 덕분에 유통업에서 온라인 비중은 더 빨리 높아져 조만간 유통의 핵심으로 자리 잡을 걸로 전망된다.
온라인 소비 증가는 전자지급결제대행(PG) 시장의 확대를 가져올 것이다. 온라인 거래는 지불 방법이 반드시 따라붙어야 하는데 전자지급결제가 이를 대행하게 되기 때문이다. 온라인쇼핑 및 간편결제 시장의 성장에 힘입어 지난 1분기 전자결제 규모가 작년 동기보다 20% 넘게 증가했다. 현재는 신용카드에 기반한 전자결제가 전체 결제 시장의 80%를 차지하고 있지만, 온라인 거래 규모가 더 커지면 다른 결제 수단도 등장할 것이다.

전자결제 증가와 함께 마이데이터 사업도 활발해질 것이다. 마이데이터 사업은 개인이 자신의 정보를 관리·통제하는 건 물론 이 정보를 신용·자산 관리 등에 활용하는 사업을 말한다. 지금은 마이데이터 사업이 개인신용정보 통합조회서비스 수준에 머물고 있지만 앞으로 카드, 대출 같은 은행거래나 보험·증권의 금융 신용정보를 종합적으로 모아 맞춤형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데까지 영역이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플랫폼 비즈니스, 국내시장만으론 규모 작아

두 번째는 플랫폼(Platform) 비즈니스다. 플랫폼은 많은 이용자가 사용하는 컴퓨터 프로그램이나 모바일 앱, 웹사이트를 뜻하는데, 이를 기반으로 영업을 하는 산업을 플랫폼 산업이라 한다. 애플, 구글, 아마존 등 세계 최고 기업들이 모두 플랫폼 기업에 속한다. 애플은 아이폰의 소프트웨어인 앱을 외부 자원을 통해 해결하고 있고, 아마존은 처음부터 물건을 사고 파는 걸 연결해 주기 위해 만들어진 회사다.
우리도 비슷하다. 삼성전자 역시 필요한 앱의 대부분을 외부에서 제공받고 있는 반면, 네이버는 검색 엔진만 제공할 뿐 스스로 콘텐츠를 만들지 않는 플랫폼 회사다.

과거에는 인구 증가로 유효 수요가 항상 존재했기 때문에 기업들은 대량의 물건을 얼마나 싼 가격에 만들어 내느냐가 관건이었다. 생산만 가능하면 물건을 파는 데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공급 부족보다 과잉 공급, 고령화로 인한 수요 감소가 문제다. 따라서 대중적인 소비 이상으로 맞춤형 소비가 중요한데 플랫폼을 통해 이에 적합한 업체를 찾을 수 있다.

10년 전에 미국의 스탠다드앤푸어스(S&P) 500지수에서 플랫폼 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2%밖에 되지 않았다. 2020년이 돼도 해당 비중이 5%를 넘지 않을 거라 예상했지만 이미 애플과 아마존 두 회사의 시가총액만으로도 전체의 8%를 넘는다. 그래서 지금은 2040년에 미국 상장기업의 전체 이익에서 플랫폼 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50%를 넘을 거란 전망이 이상하게 들리지 않는다. 지난 10년간 S&P 500지수 안에 있는 플랫폼 기업의 이익이 330% 증가했는데 앞으로 그 절반만 늘어도 예상 수치를 맞출 수 있다.

온라인 콘텐츠도 관심을 기울여야 할 부분이다. 포털, 모바일 메신저, 디지털 광고, 영상 콘텐츠, 웹툰, 커머스 등이 이에 해당한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주식시장에서 네이버, 다음카카오의 위상이 올라간 데서 보듯 코로나19를 계기로 눈에 띄게 성장한 분야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 PwC는 세계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시장이 2019년 452억 달러에서 2023년 727억 달러로 60%나 증가하는 등 해당 부문이 빠르게 확장될 걸로 전망했다.

문제는 플랫폼과 온라인 콘텐츠 모두 선두 기업의 지배력이 심한 섹터라는 점이다. 아마존처럼 네트워크 구축이 완료돼 시장 지배력을 가질 경우 신규 가입자를 만들어낼 때 별로 돈이 들어가지 않는다. 만약 그 만큼을 오프라인에서 새로 만들어 내려면 세계 여러 지역에 땅을 사서 새로운 점포를 짓는 등 막대한 비용을 치러야 했을 것이다, 그래서 이미 있는 플랫폼 업체에 도전할 때에는 굉장히 새로운 아이디어가 있어야 하는데 그게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K-방역, 바이오산업 전반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

코로나19와 관련해 빼놓을 수 없는 산업이 바이오 분야다. 코로나19 극복과정에서 우리 의료체계에 대한 국제 사회의 인식이 크게 달라졌다. 위기 초기 단계에 확진자가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났던 다른 나라와 달리 우리는 공격적인 검사, 진단을 통해 전염병 확산을 막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여러 의료 부문 중 특히 눈길을 끈 곳이 방역시스템, 진단키트, 의료기기, 마스크, 손세정제 등이다.
K-의료의 위상 변화는 이미 수출입 실적에서 확인되고 있다. 코로나19 여파로 지난 4월 전체 수출이 24% 넘게 줄어든 반면 진단키트 수출은 20배나 급증하는 등 의료·방역물품의 실적이 크게 늘었다.

앞으로가 문제다. 국내 많은 제약·바이오 회사들이 앞 다퉈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나섰다. 이 대열에는 코스닥에 있는 작은 바이오 기업까지 뛰어들고 있다. 코로나19 치료제 개발에 성공하면 엄청난 돈을 벌 수 있어 너도나도 나서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치료제·백신 개발의 혜택은 최초 개발자만이 볼 수 있다. 두 번째 이후 개발자는 비용만 치르고 수익은 얻지 못한 채 끝날 수 있다. 이런 특성 때문에 치료제·백신 개발은 기술과 자본의 여유가 있는 세계적 제약사가 중심이 될 수밖에 없다. 모두가 이런 한계를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국내 제약사들이 치료제·백신 개발을 거론하고 나서는 건 자기네 주가를 부풀리는 과정일 수 있다.

우리 제약사들은 개발 능력과 자금 면에서 한계가 많다. 지금 진행 중인 신약도 잘 개발하고 여기에 코로나19 관련 제품까지 추가로 만들 능력을 갖추고 있지 않다. 제한된 자원을 코로나19 관련 치료제와 백신 개발에 집중하다 개발 경쟁에서 밀려나거나 임상을 통과하지 못할 경우 낭패를 볼 수 있다.

1999년 국내 제약사가 처음 신약을 개발한 이후 현재까지 30개 가까운 신약이 만들어졌다. 결과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 신약 개발 허가가 난 후 주가가 다른 제약사에 비해 두드러지게 오르지 않았고, 신약 개발에 성공한 후 엄청난 이익을 낸 곳도 없다. 과거 주식시장에서는 신약을 개발하면 모두 아스피린과 같은 메가 히트작이 된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폭발적인 이익 증가가 없었고, 이익이 현실화될 때까지 시간도 많이 걸렸다.

원격진료처럼 새로운 의료 영역이 더 유망

코로나19로 입증된 K-방역 능력을 신약 개발 등으로 연결하는 건 무리가 있다. 이보다는 원격진료 등 새로운 분야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원격의료는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해 멀리 있는 환자에게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걸 말하는데, 아직은 우리 의료법상 불법이다.
그렇지만 많은 나라에서 원격의료를 시행하고 있는 만큼 우리도 조만간 허가가 날 가능성이 있다. 농어촌의 의료서비스 공급 부족과 낮은 의료 접근성을 해결하는데 원격의료만큼 좋은 도구가 없기 때문이다.

코로나19가 본격 확산된 후 미국, 중국에서 원격의료 온라인 플랫폼 방문과 사용자 수가 크게 늘었다. 이에 따라 규제 완화와 제도 보완에 속도가 붙었는데, 미국에선 코로나19 사태 이후 원격의료 범위를 확대했고, 일본 역시 원격의료 대상 범위를 기존의 재진(再診)에서 초진(初診) 환자까지로 넓혔다.
국내에서도 코로나19 기간 동안 한시적으로 원격의료를 허용했다. 이 같은 제도 개선이 ICT 인프라 확충과 만날 경우 글로벌 원격의료의 성장이 가속될 걸로 보인다.

그린 뉴딜, 디지털 뉴딜과 만나 시너지 낼 듯

코로나19는 자연 및 생태계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일깨우는 계기가 됐다. 생태계 파괴 및 기후변화가 초래한 위험이 코로나19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각국 정부는 그린 뉴딜을 정책 목표로 설정했다. 물론 기후 변화에 대한 대응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동안 지구온난화와 관련해 신재생 에너지 개발에 힘쓰는 등 각국은 국가적 차원에서 에너지환경 정책을 추진해 왔다.

그럼에도 이번 그린 뉴딜 정책이 두드러지는 건 디지털 뉴딜 정책에다 대규모 재정 투입까지 더해져 그게 현실화될 가능성이 과거보다 훨씬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런 추세에 맞춰 우리 정부도 그린 뉴딜 정책을 표명하고 나섰다. 우선 3차 추경에 디지털 인프라 투자, 그린 뉴딜의 관련 예산을 편성했고 이달 안에 세부 사항을 완성할 계획이다.

코로나19를 경험하면서 생존의 문제, 특히 환경의 중요성을 새삼 인식하게 된 만큼 그린 뉴딜 정책은 앞으로 크게 탄력을 받을 것이다. 디지털 뉴딜과 그린 뉴딜 사이에 교집합이 만들어지는 분야에 주목해야 한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경기부양책이 자본재 투자 중심으로 이뤄졌다면 이번 부양책은 디지털·그린 뉴딜정책이 핵심이다.

소프트웨어·친환경 기술 개발에 정부가 앞장서야

코로나19가 본격 확산된 이후 우리 정부는 몇 차례에 걸쳐 경기부양책을 내놓았다. 이를 통칭해 ‘한국판 뉴딜’이라고 얘기한다.
부양책의 내용을 보면 우리나라가 다른 선진국보다 더 낫다. 지난 5월 중순 미국 하원에서 통과된 5차 경기부양책은 가계에 대한 2차 현금 지원과 지방정부 지원책으로 이뤄져있을 뿐 신규 수요 창출을 위한 조치는 찾아 볼 수 없다.
반면 우리 부양책은 유동성 지원, 사회안전망 강화를 넘어 향후 경제구조를 바꿀 수 있는 방안이 다수 포함돼 있다. 언택트(비대면) 산업과 친환경 중심의 정책 지원부터 디지털 인프라 구축까지 다양하다. 정책 방향도 코로나19 이후 트렌드와 일치한다.

언택트 시대가 다가옴에 따라 기술력이 국가 경쟁력에 미치는 영향은 더 커질 것이다. 우리나라는 미국, 일본 다음으로 유망한 ICT 특허를 많이 갖고 있다. 문제는 우리가 보유하고 있는 기술이 대부분 하드웨어에 집중돼 있다는 점이다.
AI(인공지능) 등 소프트웨어가 대단히 취약한 상태인데 이 부문이 향후 국가경쟁력을 좌우한다는 점을 감안해 하루 빨리 첨단기술 수준을 끌어올려야 한다. 이 부분이 이번 재정을 통한 경제 활성화 방안에도 들어가 있다.

그린 뉴딜을 포함한 환경 부문도 마찬가지다. 친환경 기술력은 앞으로 산업 경쟁력을 좌우하겠지만 당장 기업이익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다. 당연히 민간 투자가 미진할 수밖에 없는데 정부가 선제적으로 수요를 창출해 미래 산업의 선점을 주도해야 한다.


이종우 필자

대학에서 쥐꼬리만큼 배운 경제학으로 30년을 우려먹으면서 지금까지 주식시장과 경제 분석을 하고 있다. 매일 움직이는 주가를 보면서 사람들이 욕망 앞에서 얼마나 나약한지 깨닫고 정상적인 투자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일을 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오랜 시간 증권회사에서 연구를 해왔고 지금은 자유 선수로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