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기본소득, 전 국민 고용보험, 최저생계비 보장…
2022년 대선을 앞두고 여야 차기 주자들은 코로나19 위기, 4차 산업혁명, 디지털 자본주의 시대라는 격변기에 맞춰 사회복지와 관련한 어젠더를 찾고 있다. 예컨대 이재명 경기지사는 기본소득을, 박원순 서울시장은 전 국민 고용보험을 간판 상품으로 내걸었다. 여기에 미래통합당의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기본소득 논란에 가세했다,
우리 사회는 최근 중대한 두 개의 실험을 시작했다. 코로나19 경제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일회성인 긴급재난지원금(총예산 14조원)을 전 국민에게 나눠 주었다. 4인가구 기준으로 100만원이었다. 당초 소득 하위 70%에게만 지원하자는 정부안을 누르고 전 국민에게 지급하자는 더불어민주당 안(案)이 관철됐다. 2022년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은 기본소득제도를 둘러싼 논쟁을 계속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실험은 ‘전 국민 고용보험’이다.
정부는 이를 위한 예열 단계로 지난 3월 말 특수고용직(특고)과 프리랜서, 영세자영자를 돕기 위해 긴급 고용안정지원금 2346억원을 풀었다. 고용보험 사각지대에 있는 취약계층에게 월 50만원씩 최대 2개월간 지급했다. 4월 하순엔 1조5000억원의 예산을 추가 배정했다. 지원 대상은 93만 명, 기간은 3개월로 확대됐다. 플랫폼 경제라는 시대흐름을 감안해 이제는 직장 아닌 소득에 기반해 고용보험 제도를 운용해야 한다는 게 또 하나의 대안이다.   
해외에선 스페인의 좌파 연립정부가 빈곤층 85만 가구(약 230만 명)에게 최저생계비를 지급하기 시작했다. 대상은 빈곤층 85만 가구(약 230만 명). 매월 462~1015유로를 지급한다. 선별복지 차원에서 주목할 만한 모델이다.
<피렌체의 식탁>은 한국형 사회복지의 새 모델이 될 전 국민 고용보험을 둘러싼 쟁점과 정책과제를 살펴본다. 필자인 장지연 박사는 오랫동안 복지제도 및 사회안전망과 관련한 연구 활동을 펼쳐왔다. [편집자]

#사회안전망 '고용보험' 가입 못해
   특수고용직 220만명 사각지대 방치
#디지털 시대, 고용-실업 상태 빈번
  직장 아닌 소득 기반 '고용보험' 필요
#돈 많이 든다? 연 1조5000억이면 가능
  소득 파악 위한 인프라 구축은 과제
#기본소득제, 월 10만원씩 지급할 경우
  연 62조원 들어가 재원 조달에 한계 
#폐업한 자영자도 '실업' 간주해
  실업보험 '당연 적용'으로 전환해야

복지국가는 몇 가지 제도의 조합으로 소득보장체계를 구축한다. 우리나라는 국민기초생활 보장제도, 고용보험, 아동수당, 기초연금, 국민연금 등으로 구성된 체계를 갖고 있다. 이것들은 빈곤 구제 및 예방, 그리고 소득 재분배를 통한 불평등 완화 같은 가치를 추구한다. 소득의 공적 이전(public transfer)은 소비 진작 효과도 낳는다.

근로연령대 인구를 위한 소득보장제도는 실업보험인데, 한국에선 고용보험이다. 사회안전망과 자동안정화장치의 기능이 두드러진다.
실업보험은 일자리를 잃었을 때 일정 수준의 생계를 보장하는 한편 직업훈련, 구직활동을 도와준다. 실직을 해도 생계가 나락으로 떨어지는 게 아니라, 인생의 다음 커리어를 준비할 수 있게 해준다. 그런 의미에서 사회안전망이다. 기술 변화가 빠르고 산업구조가 거대한 전환의 시기를 맞을 때 더욱 절실해진다. 최저생활을 보장해 주는 안전망이 튼튼할 때 민간기업 차원에서 새로운 시도나 혁신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고용보험은 실업자에게 일정 수준의 소득을 보장한다. 따라서 경기하강 국면에서는 자동적으로 시장에 더 많은 돈이 풀리게 만드는 자동안정화장치로도 작동된다. 고용보험이 제대로 설계되어 있다면, 지금 같은 경제위기 때 위기 강도를 완화해 주는 복지제도이자 경제제도로 기능한다.

우리 고용보험제도에는 실업보험뿐만 아니라 고용유지지원금도 포함되어 있다. 회사가 어려워도 일자리를 유지할 수 있도록 고용주를 지원하는 제도다. 고용보험에 가입돼 있으면 고용유지 가능성도 높아지고, 혹여 실업자가 되더라도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고용보험 제도는 사회안전망으로도 자동안정화장치로도 모두 부실하다. 가장 큰 원인은 커버리지의 불완전성에 있다. 고용보험 가입자의 범위가 너무 좁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코로나19 위기를 계기로 기존 제도의 허점을 극적으로 드러내며 우리 사회에 다시 한 번 경종을 울렸다.

#코로나19가 드러낸 고용보험 취약계층

바이러스는 약한 고리를 귀신같이 잘 알고 공격한다. 포스트 산업자본주의 시대의 공장이라 하는 콜센터를 습격하더니, 물류센터의 일용노동자와 배달업 종사자들을 무차별로 괴롭혔다.
이들 직종은 방역에만 취약한 게 아니다. 자신이 일하는 회사로부터 직원으로 인정받지 못해서, 근로기준법상 보호대상이 되는 ‘근로자’가 아니다. 요즘 용어로 ‘플랫폼 노동자’라고 불린다. 우리 주변에선 언제부턴가 ‘노동자’를 부러워하는 불완전 취업자들이 급증하고 있다. 이는 고용보험을 비롯한 4대보험의 혜택 때문이다.

그래도 콜센터 직원, 배달업 종사자는 코로나19 때문에 일거리가 줄어드는 업종이 아니다. 그나마 다행이라 해야 할까? ‘물류센터에서 확진자가 늘어나고 있다’는 뉴스가 쏟아지는 와중에도 일거리를 구하려는 사람들이 새벽부터 길게 줄을 서 있다.
비(非)대면 소비가 급증하면서 이런 업종에 인력 수요가 많은 것은 사실이다. 진입장벽이 낮아선지 다른 업종에서 일자리를 잃은 구직자들이 더 많이 흘러들어온다. 그러다 보니 배달 한 건당 보수 단가는 오히려 떨어졌다는 소식도 들린다. 더 오랜 시간 일해야만 예전만큼 돈을 벌 수 있다는 뜻이다. 택배기사를 포함한 배달노동자의 업무에 과부하가 걸려서 과로사까지 발생하는 게 요즘 현실이다.

코로나19 이후 일감이나 소득이 줄어들어 생계를 위협받는 사례는 일일이 나열하기조차 어렵다. 식당이나 소매업을 하는 자영자는 물론이고, 학원 강사, 가사서비스 종사자, 돌봄 노동자, 대리운전, 행사도우미, 공연예술 종사자… 
놀랍게도, 이들의 공통점은 고용보험 적용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떤 이유로 또 다시 경제위기가 닥친다면 이들은 곧장 실업이나 폐업, 소득감소의 위험에 내몰릴 수 있다. 그럼에도 이들은 고용보험의 도움을 받지 못한다.

전체 실업자 중에서 실직 때 도움을 받는 실업급여의 수급률은 코로나19 위기 이전에 약 45%였다.(2018년 기준) 통계상 비(非)경제활동인구로 잡히는 구직 포기자와 소극적 구직자가 많다는 점을 고려하면 실질적인 수급률은 이보다 훨씬 더 낮다고 봐야 할 것이다.

한 마디로 실업급여 수급의 사각지대는 고용보험 적용을 받지 않거나 아예 가입을 못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우리나라 전체 취업자 중에서 고용보험 미(未)가입자는 의외로 많다. 고용보험 가입대상이지만 가입하지 않는 경우가 13.8%(약 380만 명)다. 여기에 적용대상 자체가 아닌 취업자는 비(非)임금 노동자와 적용제외 임금노동자를 합쳐 31.3%(약 860만 명)나 된다. 결국 고용보험 제도의 사각지대에서 취업자의 45.1%(1240만 명)가 일하고 있다는 얘기다. <아래 그림 참조>
고용노동부 조사에 따르면 특수형태근로(특수고용직, 이하 특고) 종사자는 최대 220만 명으로 추산된다. 이 중 약 50만 명은 통계청 조사에서 임금노동자로 포착되고 나머지 170만 명은 비임금 노동자로 분류된다. 

#디지털경제 시대의 실업 위험에 20세기적 해법

실업보험제도는 임금노동자들이 겪는 사회적 위험에 대응하기 위해 19세기 말부터 도입돼 20세기에 정착된 해법이다. 고용주와 노동자가 각기 기여금을 내고 국가가 보증하는 보험 방식으로 갑작스러운 소득 단절에 대응하도록 돕는다.
문제는 한 세기란 긴 시간이 흐르면서 고용구조의 변화로 이 제도에 부합하지 않는 고용형태가 많아졌다는 것이다. 이른바 자영업과 ‘플랫폼 노동’의 확산이다. 이것은 단순히 고용이 불안정한 노동자가 많아졌다는 문제를 넘어선다.

현행 고용보험 제도는 고용주를 특정하지 못하는 노동자에겐 적용하지 못한다. 고용주는 이 제도에서 두 가지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나는 자신이 고용한 노동자를 위해 고용보험료의 절반을 내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특정 노동자가 회사 사정으로 인해 소득활동이 중단되었음을 보증해주는 것이다.

그럼에도 일자리 구조가 바뀌면서 점점 더 많은 노동자가 고용주를 특정하지 못하는 게 요즘 현실이다. 우리 사회는 10여 년째 이 문제를 붙들고 씨름해 왔다. 특고 종사자가 이 논란의 중심에 있다. 이들은 형식적으로 개인사업자처럼 보이지만 특정 사업주로부터 업무지시를 받는 종속관계 특성을 갖는다.

지난 20대 국회에선 특고 종사자에게도 고용보험을 적용하는 법 개정안이 제출됐으나, 결국 처리되지 못했다. 21대 국회에서 어떻게든 다시 논의하는 게 불가피하다. 대통령과 국무총리, 고용노동부 장관 등 문재인 정부의 책임 있는 당국자들은 한목소리로 ‘특수형태근로 종사자의 고용보험 적용 확대는 올해를 넘기지 않고 추진돼야 한다’고 언급했다. 특고 종사자를 고용보험에 포함시키는 일은, 기존 제도의 틀을 크게 흔들지 않고 적용 범위를 단순 확대하는 것이므로 서둘러 시행하는 게 마땅하다.

물론 이것만으로 모든 실업에 대응하는 사회안전망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고용주를 특정하지 못하는 노동자는 여전히 보호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영자가 점차 줄어들 것으로 여겼던 산업화 시대의 관점에서 보면 이 문제는 큰 쟁점이 아니었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다. 지금도 전체 취업자의 4분의 1이 자영자이고, 그 중 상당수는 임금노동-자영의 특징을 모두 갖고 있다. 게다가 이러한 일자리 불확실성은 점점 더 확산되거나 심화될 것이다. 디지털 경제와 플랫폼노동을 앞세운 인력시장의 변화는 임금노동자를 보호해왔던 전통적인 실업보험의 한계를 뚜렷하게 드러내고 있다.

#패러다임 전환: 소득 기반의 고용보험으로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고용-실업 상태를 빈번하게 넘나드는 사람이 많아진다. 패자부활 기회가 보장되어야 기업들도 혁신을 위한 도전이 가능해진다, 그런 점에서 사회안전망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따라서 새로운 일자리 방식의 노동자를 사실상 보호하지 못하는 고용보험 체계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칠 필요가 있다.

필자가 제시하려는 새로운 패러다임은 ①모든 근로소득과 사업소득에 보험료를 부과하고 ②종사하는 일을 따지지 않고 모든 취업자에게 고용보험을 적용하며 ③모든 실업자에게 실업급여를 지급하는 것이다. 소득이 있을 때 기여하고, 여기서 발생한 자격을 근거로 소득이 없을 땐 실업급여를 받는다는, 그야말로 실업보험의 고갱이만을 남기는 것이다.

임금노동자 입장에선 사실상 지금과 달라지는 게 없다. 자영자는 임금노동자보다 높은 보험료율의 적용을 받으면서 원하는 사람만 가입하는 현행 제도와는 달리, 임금노동자와 같은 수준의 보험요율로 '당연 가입'을 하게 된다. 자신의 고용주를 특정하지 않고도 소득활동 이력의 확인, 실업 상태의 확인을 근거로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기업이나 사업주 입장에선 어떨까. 고용보험금에 기여하는 방식은 피고용자 임금에 비례하는 방식이 아니라 이윤 비례 방식으로 바꾸는 것이 소모적인 다툼을 줄이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사업주가 자신이 고용한 노동자 아무개의 몫으로 고용보험료의 절반을 낸다는 개념은 사라지게 된다. 기업들이 고용보험기금에 기여하는 총액에는 변함이 없다. 다만, 상대적으로 노동자를 적게 고용하면서 많은 이익을 내는 기업의 기여분(부담)은 커지게 될 것이다. 이익 규모가 작은 중소기업들의 부담은 줄어들 수 있다.

고용보험의 지급기간, 지급률 등 구체적인 제도설계는 기술적인 문제다. 여기서는 전 국민 고용보험이 도입돼도 현행 제도의 요건을 유지하는 게 가능하다는 정도만 언급하겠다. 다만, ‘지난 18개월 중에서 180일(약 7개월) 이상 고용보험에 가입되어 있을 것’이란 조항을 ‘지난 18개월 동안 최소 얼마 이상의 소득을 올리는 경제활동에 종사하였을 것’으로 실업급여 수급요건을 바꾸는 게 필요하다.

#다른 복지제도들과의 관계

①실업부조와의 관계

‘구직자 취업 촉진 및 생활안정지원을 위한 법률’이 국회에서 통과돼 이제 우리나라도 실업부조의 첫 발을 내딛게 되었다. 이 법안의 주요 내용은 기준 중위소득의 60% 이하인 저소득층 구직자에게 취업지원 서비스와 함께 최대 6개월까지 생계비 일부를 지원한다는 내용이다.
모든 국민에게 고용안전망을 제공하려 할 땐, 가능한 한 실업보험제도를 포괄적으로 설계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게 하더라도 여전히 실업부조 제도는 필요하다. 실업보험의 보호대상을 확대하고도 여전히 실업급여를 못 받는 구직자가 발생할 수 있어서다.

실업부조의 취지는 고용보험 가입 이력이나 실업 이전의 고용형태와 상관없이 일정한 가구소득을 밑도는 모든 구직자에게 지급하자는 것이다. 일종의 최저생계비를 단기적으로 보장하는 개념이다. 노동시장에 처음 나오는 청년층, 오랫동안 노동시장을 떠나있던 경력단절 여성, 그리고 실업급여 수급기간이 모두 끝나고도 재취업에 성공 못한 장기실업자에게 필요하다.

실업부조가 실업보험을 보완하는 형태로 가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실업보험을 잠식하는 정도로까지 가는 것은 위험하다. 실업보험은 소득이 있을 때 기여금을 내고, 소득 단절 땐 혜택을 받는 제도다. 이에 비해 실업부조는 조세를 재원으로 하여 저소득층에 지급한다.
그런데 독일, 영국 같은 몇몇 국가의 사례를 보면 실업자 가운데 실업보험 급여를 받는 사람보다 실업부조 급여를 받는 사람이 훨씬 더 많은 지경에 이르렀다. 누구는 보험료를 내고 급여를 받는데, 누구는 보험료를 내지 않을 경우 실업보험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실업보험 대상을 넓히는 방향으로 개혁하지 않고 실업부조에 의존하다 보면, 실업보험 제도 자체가 위태로워진다.

②기본소득제와의 관계

‘긴급재난지원금’에 대한 긍정적 여론에 힘입어 기본소득제도 도입 논의가 다시 시작되는 분위기다. 기본소득은 ‘임금노동-자영’의 경계가 희미해지는 디지털 자본주의 시대에 적합한 소득보장제도라는 게 장점으로 강조된다. 이런 측면에선 전 국민 고용보험제와 같은 조건이다.
기본소득제의 강점은 전 국민 고용보험제에 비해 소득 파악에 들어가는 행정비용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본소득제를 하려면 돈이 많이 들어간다. 모든 국민에게 월 10만원씩만 주려 해도 연간 62조가 넘는 예산이 필요하다. 아픈 사람, 가난한 사람, 일자리를 잃은 사람에게 충분한 복지를 제공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온 국민에게 월 10만원씩 나누어 주는 게 급하냐는 반론이 만만치 않다.
이에 비해 전 국민 고용보험을 비롯한 사회보험의 경우, 평소에 돈을 나누어주는 것은 아니지만, 개인이 필요로 할 때 사회 전체가 그것을 제공해줄 것이라는 믿음을 깔고 있다.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인사들을 보면 좌파도 우파도 있다. 좌파는 다른 사회복지제도를 축소하지 않은 채 기본소득제를 함께 실시하자는 쪽이다. 반면 우파는 다른 제도에 들어가는 예산을 줄여 기본소득 재원을 마련하자는 쪽이다. 만약 기존 제도를 병행하면서 새 제도를 도입하려 할 경우엔 어떨까? 예컨대 전 국민 고용보험제와 함께 기본소득 도입을 추진할 수 있을까? 먼 훗날 국가예산이 넉넉해지면 달라질 수도 있으나, 적어도 당분간은 기본소득제와 전 국민 고용보험은 서로 경합하는 제도가 될 수밖에 없다.

#예상되는 질문들

①돈이 많이 들지 않겠는가?

2018년에 실업급여로 지출된 금액은 약 8조원이다. 2019년부터는 실업급여 수급기간이 늘어났기 때문에 약 9조원가량 들어갈 것으로 추정된다. 현행 제도 하에서 고용보험 피보험자 중에서 실업 발생 비율은 연간 0.9%다. 이 비율을 자영자와 특고 종사자에게 적용해 추가 지출액을 추계하면 약 2조8000억원이다. 이들이 보험료로 낼 돈은 1조2400억원이기 때문에 보험료-지출액 사이 차액은 1조5000억원쯤 될 것이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고용보험 적용 확대를 전제로 보험료 소폭 인상을 감수할 용의가 있다고 연대 의사를 표명한 바 있다. 여기에 기업이 매칭(matching) 방식으로 냈던 금액을 인상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진다면 차액 1조5000억원은 크게 무리하지 않고도 마련될 수 있다. 만약 이런 합의가 성사되지 못할 경우엔 당분간 재정을 투입해서라도 운영해 나갈 수 있다. 연간 1조5000억원이란 금액은 우리 사회가 감당 못할 수준은 아니다.

자영자의 경우 임금노동자보다 실업 확률이 높아서 추가 비용이 많지 않겠냐는 의문도 생긴다. 여러 가지 연구 결과를 보면, 특고를 포함한 전체 자영자의 고용지위 유지 확률은 상용근로자에 근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임시근로자나 일용근로자보다 유지율이 더 높다.

②소득 파악 인프라가 부족하다는데?

임금노동자에 비해 자영자의 소득 파악 수준이 낮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국세행정 역량이 다른 나라에 비해 현저히 뒤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2018년 귀속 국세 통계에 따르면 소득세를 신고한 인원은 3000만 명을 넘는다. 이는 15~75세 인구의 72%에 해당한다.

국가적 차원에서 정확한 소득 파악과 소득 확인 주기를 단축해야 한다는 과제는 분명하다. 조세행정 발전을 위해서, 세금을 걷기 위해서, 건강보험 같은 다른 사회보험료 부과체계를 합리화하기 위해서, 그리고 무엇보다 근로장려금(EITC) 등 각종 복지급여를 효과적으로 지급하기 위해서 개인·법인의 소득 파악은 반드시 필요하다. 만약 소득파악 수준이 완벽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장차 세금도 걷고, 복지급여도 지급해야 하는 것이라면 우리가 이미 실시하는 각종 제도들의 존립 근거부터 의심해야 할 일이다.

③자영자 실업, 임금노동자 실업과 같게 볼 수 있나?

임금노동자는 자신이 원해서 실업자가 되는 것이 아니지만, 자영자는 자신이 원할 때 폐업 방식으로 실업을 ‘선택’할 수 있다. 그래서 자영자의 실업을 공적으로 보호할 수 없다는 의견이 있을 수 있다. 이 문제는 자발적 실업자에게 실업급여를 지급하느냐를 둘러싼 논쟁과 같은 차원의 문제제기다.
누구나 자발적으로 퇴직을 하거나 폐업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자발성 여부가 그리 분명한 것인가? 또한, 퇴직 시점에서는 회사가 싫어서 나왔다고 할지라도 한동안 구직활동을 해도 다른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다면 이런 상태를 자발적 실업상태라고 할 수 있는가? 그래서 대부분 국가에서는 자발적 이직자에게도 실업급여를 지급한다. 다만, 얼마간의 대기기간을 추가할 뿐이다.

현행 고용보험 제도는 임금노동자일 경우, 일용근로자에게도 단기계약직 근로자에게도 고용보험을 적용하고 있다. 이들 중에는 일을 시작하는 단계부터 이미 고용 종료 시점을 예상할 수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럼에도 이들에게 왜 실업보험을 적용하느냐고 아무도 따지지 않는다. 디지털 자본주의 시대에는 기업들의 노동력 충원 방식이 급격히 바뀌고 있다. 정말 바람직하지 않지만, 특고, 프리랜서, 단기계약직 노동자가 늘어나는 추세다. 언제까지 고용주에게 이 사람이 ‘진정한 실업자’인지를 물어 확인을 받을 것인가. 누구든 소득이 없고 일자리를 구하고 있다면 실업으로 간주해야 하지 않을까.

④다른 나라도 자영자에게 실업보험을 적용하는가?

많은 국가에서 자영자에겐 실업보험을 ‘임의가입’ 방식으로 운영한다. 원하는 사람만 가입하게 한다는 뜻이다. 당연히 실업위험이 높은 사람만 가입하는 ‘역(逆)선택’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이를 막기 위해 보험료를 높게 책정하고 실업급여액은 낮게 유지한다. 역선택의 매력이 떨어지게 설계하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실제로 가입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 우리나라도 딱 이런 경우다. 자영자에게 고용보험 가입의 길을 열어놓고 있으나 가입 비율은 0.38%에 불과하다. 사회보험은 본질적으로 임의가입과 양립할 수 없다.

북유럽 국가들은 자영자에게도 실업보험을 적용한다고 볼 수 있다. 예컨대 덴마크의 경우, 형식적으로는 ‘임의가입’이지만 꼭 그렇게 볼 수 없는 게, 임금노동자도 임의가입이고, 실업보험 가입 여부와 상관없이 ‘노동시장 분담금’을 사업소득이나 근로소득에 똑같이 부과한다. 이미 분담금을 세금처럼 냈기 때문에 보험료는 월 회비에 가깝고, 가입하지 않으면 자기만 손해다. 가입하지 않는 사람은 정말 간헐적으로 일하거나 소득수준이 낮아서 실업부조를 받으려는 사람뿐이다. 사실상 전 국민 실업보험 제도를 운영한다고 볼 수 있다.
프랑스도 최근 자영자를 포함한 모든 취업자에게 실업보험을 ‘당연적용’하는 개혁을 단행했다. 프랑스는 그동안 우리나라와 매우 유사한 제도를 운영했는데, 그런 점에서 우리가 프랑스의 성과를 타산지석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장지연 필자

미국 위스콘신대학에서 사회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9년부터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주요 관심분야는 소득불평등, 복지국가, 일·생활 균형, 여성노동시장 등이다. 요즘엔 사회안전망 관련 연구를 진행 중이다. 함께 펴낸 저서와 연구보고서로 <글로벌화와 아시아 여성(2007)>, <노동시장구조와 사회적 보호체계의 정합성(2011)>, <디지털기술발전에 따른 새로운 일자리 유형과 정책적 대응(2017)>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