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전인대(국회 격)가 28일 ‘홍콩 보안법’을 끝내 통과시켰다. 이에 맞서 미국은 홍콩의 특별지위 박탈과 대중국 제재조치를 가할 태세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코로나19 위기 국면에도 불구하고 또 한 번 ‘홍콩의 중국화’ 강행 의지를 과시했다. 중국의 3대 핵심이익(국가주권, 안전, 발전이익)을 앞세워서다.
미중 사이에 신(新)냉전 기류가 격렬해지고 있다. 트럼프 정부는 2년 전 화웨이(華爲) 제재를 시작으로 대중국 공세를 늦추지 않는다. 미중 무역전쟁, 인도·태평양 전략의 부활, 대만 위상 격상, 글로벌 공급망(supply chain) 재편에 이르기까지 대치 국면을 거듭해왔다. 미국에선 중국과의 탈동조화(decoupling)를 본격화할 움직임이다. 유럽 주요국들도 ‘중국 때리기’에 가세한다.
그런 가운데 한국 외교는 미중 사이에서 ‘제3자 강요’(third-party coercion)란 불편한 현실을 마주하게 됐다. 정부 차원에서는 그동안 민감한 현안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NCND 정책을 펼쳐왔다. 홍콩 반중 시위엔 ‘내부 문제’라는 시각이 우세했고, 미중 경제전쟁엔 ‘기업이 알아서 판단할 문제’라 언급하는데 그쳤다. 그러나 미중은 조만간 선택을 요구할 것이다. 국익을 위해 원교근친 스탠스를 유지할 묘안을 찾아야 할 순간이다. 미중이 격돌하는 네 개의 주요 이슈를 중심으로 주요국의 대응 사례를 살펴본다. [편집자]

#미중, 舊냉전과 달리 경제·외교 연계
  군사력 격차 크고 美 우방이 더 많아
#신냉전의 네 개 전선
  ① '홍콩 보안법' 강행에 대한 대응
  ② 미국의 화웨이 제재 확대와 참여
  ③ 중국을 뺀 글로벌 공급망 재편성
  ④ 대만의 국가위상 인정 움직임
#미중 사이 선택의 기로에 놓인 한국
  원칙·논리 세워 국제적 연대 강화를


중국은 지난달만 해도 미국의 압박 공세에 대해 ‘세계화 추세에 역행해 중국과의 관계를 끊는 것이 바람직하지도 가능하지도 않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그러나 지난 25일 왕이(王毅) 외교담당 국무위원(부총리 격)은 “미중 관계가 신냉전으로 가는 것을 ‘경계’한다”고 밝혔다. 바람직하지 않지만 그 가능성을 인정한다는 뜻을 내비친 것이다.
미중 신냉전이란 단어는 ‘미소 구(舊)냉전’과 어떻게 다를까. 첫째, 미중 관계는 세계경제의 틀로 복잡하게 얽혀있다. 둘째, 미중 관계는 각 분야에서 외교적으로 연계되어 있다. 셋째, 미중 사이엔 군사력 격차가 클 뿐만 아니라 미국의 동맹국과 우방들이 중국을 둘러싸고 있다.

그럼에도 미중 신냉전은 대한민국에 위협이자 위험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미중이 자국의 경제적 이익을 희생하면서까지 맞붙을 경우 양국과의 다양한 연계구조를 가진 한국으로선 타격을 받는 게 불가피하다.
외교안보 분야의 경우 우리가 구상하는 북핵 문제 해결과 동아시아 평화공동체 구상에도 걸림돌이 된다. 냉전구도, 분단체제를 극복하기 위해 다자간 협력체제를 발전시켜야 되는데, 대중 관계를 대결 모드로 전환하겠다는 미국의 전략적 구상과 어긋나기 때문이다.

미중 양국은 중국 인권, 중·대만 관계, 남중국해 문제에 대해 한국 정부나 기업의 스탠스를 묻고 있다. 싱하이밍(邢海明) 주한 중국대사는 최근 ‘(홍콩 보안법 논란과 관련해) 한국이 중국 입장을 존중해 달라’고 공식적으로 언급해 논란거리가 됐다.
도날드 트럼프 대통령은 미중 무역전쟁 초기만 해도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며 다른 나라 도움 없이 중국을 상대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과시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미국 주도의 반(反) 화웨이 전선에 주요 선진국들의 지지와 동참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미중 신냉전의 네 개 전선

미중 신냉전의 전선은 네 개로 압축된다. 당장 눈앞에 닥친 현안은 홍콩 보안법 제정과 미국의 맞대응 조치다. 1989년 톈안먼 사태 당시 발동했던 제재조치를 연상시킬 만큼 미국 정부의 기세가 만만치 않다. 둘째는 기술패권전쟁 양상을 보이는 화웨이 제재다. 셋째는 글로벌 공급망의 재편이다. 넷째는 대만의 국가 위상을 둘러싼 격돌이다.

1. 중국의 ‘홍콩 보안법’ 강행에 대한 대응


중국은 일찍부터 홍콩특구의 반중·반체제 인사들을 처벌할 수 있는 법안을 관철시키려 시도해왔다. 2003년엔 친중 성향의 홍콩 정부가 헌법 격인 기본법 23조의 내용을 담은 ‘국가안전법’을 통과시키려다 그해 7월 70만 시위를 촉발시켰다. 결국 이 법안은 좌절됐고 행정장관(홍콩특구 수장)이 물러났다.
지난해 3월, 홍콩 정부는 기본법 23조를 바탕으로 범죄인의 ‘중국 송환’을 골자로 한 ‘범죄인 인도법’을 발의했다. 홍콩 시민 100만여 명은 다시 한 번 최장·최대 시위를 전개했다. 미중 무역전쟁에 나섰던 트럼프는 지난해 8월부터 중국 정부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11월에는 미국 의회가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홍콩 인권법’에 서명했다. 홍콩 보안법(중국)과 홍콩 인권법(미국)의 충돌을 예고한 것이다.

유럽 주요국들도 비난 공세를 펼쳤다. 당시 영국 총리는 “범죄인 인도법은 중영 공동선언의 이행과 밀접히 관련된 사안이며 (영국은) 홍콩의 자유를 지지해야 할 특별한 책임이 있다”고 발언했다. 영국 총리는 또 중국 지도부에 직접 우려를 제기했다고 공개했다. 독일의 메르켈 총리 대변인은 조금 더 낮은 톤으로 ‘홍콩 상황을 우려하고 평화가 유지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G20 오사카 정상회의(6월 28일)를 위해 방일한 시진핑 주석을 향해 ‘홍콩의 자유롭고 개방적인 번영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당시 한국은 중립적 입장을 지켰다. 중국 언론은 지난해 12월 하순 베이징 한중 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홍콩 문제는 중국의 내정문제’라고 밝혔다고 보도한 바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시진핑 주석이 먼저 홍콩 문제를 화제로 꺼냈고, 문 대통령은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중국 측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대답 회피’를 과장 왜곡 보도했다는 논란을 낳았다.

28일 통과된 홍콩 보안법 사태는 지난해 '범죄인 인도법'과 아주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지난 22일 중국 전인대가 이 법안을 처리하겠다고 밝히자마자, 미국에선 즉각 “홍콩에 약속한 고도의 자치권에 대한 종말(death knell)을 의미하는 것”(폼페이오 국무장관), “홍콩 인권법에 따라 홍콩이 갖는 경제적 특수지위를 조정하는 게 불가피하다”(오브라이언 백악관 국가안보 보좌관) 등으로 반응했다.

만약 미국만 제재조치를 가할 경우 홍콩·중국이 받을 타격은 막대하지 않을 것이다. 홍콩이 국제경쟁력을 자랑하는 무역·금융·서비스 분야에서 허브 역할을 계속할 수 있다. 이걸 알고 있는 미국은 다른 국가에도 협조를 구하거나, 세컨더리 보이콧(제3자에 대한 2차 제재)으로써 주요국들의 참여를 강제할 움직임을 보인다. 이럴 경우 한국 정부로선 미국쪽 요구를 회피하기 힘들다. 하지만 미국이 주요국들에 ‘요청’ 형식으로 제재조치 동참을 요구한다면 우리 입장은 난처해질 수 있다.

2. 미국의 화웨이 제재 확대와 참여

화웨이 제재를 둘러싼 미중의 신냉전은 몇 년 전부터 시작됐다. 2010년 이후 중국은 단순 제조업을 넘어 최첨단 산업에 진출했고 화웨이는 통신장비업계의 글로벌 선두주자로 떠올랐다. 화웨이는 4차 산업혁명의 뼈대가 될 5G장비를 대량 생산하고 있는데, 세계 각국은 가격경쟁력 때문에 화웨이 장비 도입을 검토하거나 추진해왔다.

그러나 화웨이의 조직과 수익구조가 중국공산당, 중국군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어 오랫동안 외국 정보기관들의 의심을 샀다. 실제로 화웨이는 사용자 정보를 빼돌리는 백도어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미국·영국 정보기관이 화웨이 장비·제품 사용금지를 권고해온 주요한 이유다. 요즘에는 경제뿐만 아니라 안보 및 정보전 분야도 최첨단 ICT 기술에 의존하기 때문에 화웨이 5G장비와 관련된 논쟁은 계속 확산되고 있다.

미국은 2018년 5월 미군기지 내 중국산 휴대전화의 사용을, 그해 8월엔 정부기관의 화웨이 통신장비 사용을 각각 금지시켰다. 급기야 그해 12월, 미국의 요청에 의해 캐나다에서 멍완저우(孟晚舟) 화웨이 부회장이 체포되면서 화웨이 사태는 미중 기술패권전쟁이란 화두를 낳았다. 이 무렵부터 전 세계가 화웨이라는 세계 최대 5G장비 업체를 경계했고, 결국 외교안보 이슈로 부상하게 된 것이다.

유럽연합(EU)과 동아시아 국가들은 화웨이 5G장비 도입을 놓고 고민에 빠졌다. 호주와 일본은 일찍이 2018년부터 금지 결정을 내렸으나 유럽 주요국은 결정을 유보하다가 지난해 말에야 몇 나라가 승인 결정을 내렸다. 동아시아 및 동유럽의 국가들은 대부분 화웨이 장비 도입을 허가했거나 민간기업의 선택에 맡겼다.

그러자 미국은 화웨이 공격 수위를 급상승시켰다. 지난 2월 뮌헨 안보정상회의 때만 해도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연설을 통해 동맹국과 협력국에 대해 화웨이 장비 사용금지를 강력히 ‘권고’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그러다 5월 16일, 미국 기업들에 국한되었던 화웨이와의 거래금지조항은 미국 기술을 쓰는 제3국 기업으로 확대됐다. 화웨이에 부품을 공급하는 협력업체들을 제재함으로써, 주요국들의 동참을 강제하고 화웨이의 독주를 막으려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대만 TSMC는 올 9월부터 화웨이와의 거래를 중단하고 미국 애리조나에 공장을 짓겠다는 결정을 내리게 된다. 화웨이 5G장비 도입에 이미 찬성했던 영국도 재검토 의사를 밝혔다.

한국은 미국의 강경 입장이 나오기 전인 2018년 8월 LG가 이미 장비 도입을 결정해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상황이다. 한국 정부는 지난해 6월, 민간기업의 선택에 맡긴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또한 삼성전자는 자체 기술·장비로 첨단 반도체를 제작할 수 있어 미국 제재를 우회하거나 협력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화웨이 전선’은 중국의 다른 첨단 기업·산업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지금은 미국이 화웨이 한 곳만 제재하지만 앞으로는 미국을 앞지르거나 미국 국익을 위협하는 중국 기업에도 제재를 가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중국의 드론(DJI), 감시장비(하이크비전) 같은 분야의 간판 업체들이 소수민족 탄압, 인권 침해를 이유로 제재 대상 후보로 거론된다.

3. 중국을 제외한 글로벌 공급망 재편

화웨이보다 더 큰 틀에서 신냉전이 펼쳐지는 분야는 글로벌 공급망 재편이다. 1980년대 개혁개방 이후 중국은 글로벌 가치사슬,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에 참여해 40여 년간 고도성장을 거듭해왔다. 노동집약적 상품을 제작하는 저부가가치 산업에서 벗어나 정보통신기술(ICT) 같은 첨단 분야에서 경쟁력을 자랑하고 있다.

미국은 중국의 WTO 가입(2001년) 때만 해도 중국 경제가 발전하면 미국 국익에도 도움이 되고 인권·민주주의 발전에도 기여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중국은 2013년 시진핑 집권 이후 권위주의체제와 국수주의를 강화하는 한편, 대외적으로 신흥 패권국의 면모를 과시하기 시작했다. 제2 경제대국의 몸집을 바탕으로 5G설비, AI(인공지능), 드론 등의 분야에서는 미국의 아성을 넘보았다. 미국의 패권을 2050년까지 따라잡겠다는 '중국몽'을 숨기지 않았다.

트럼프 정부는 2017년 11월 인도·태평양 전략을 다시 꺼내들었다. 전통적인 동맹국인 호주, 일본에다 비동맹 그룹의 맏형인 인도까지 포함시켜 미-일-호주-인도 ‘쿼드’ 구도를 형성하기 위한 것이다. 미국은 자유롭고 개방적인 인도·태평양을 위해 네 나라가 공동 노력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그러나 이 전략이 국가 대전략으로 상정되기에는 여러모로 모호하다는 지적이 많다. 중국을 겨냥한 포위 전략이 아니냐는 세간의 분석도 분분하다.

지난 5월 초, 미국은 자유진영(Free World) 내에서 국민을 보호하는 공급망을 확대하고 다각화하기 위한 경제번영 네트워크(Economic Prosperity Network)를 제안했다. 구체적인 내용이 제시되지 않은 가운데, 미국이 ‘자유진영’을 언급한 것으로 봐서 권위주의 국가(중국)를 배제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고 보여진다. 오바마 정부가 추진하다가 트럼프 정부에서 탈퇴를 선언한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구도를 연상시킨다.

그런데 미국 국방부는 이런 의문에 화답하듯 보다 직설적인 대중국 전략보고서를 의회에 제출했다. 주된 내용은 ‘중국이 미국의 경제, 가치, 안보를 위협하고 있음’을 적시한 뒤 경제, 외교, 안보 분야의 다양한 수단을 동원해 중국의 도전에 맞서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아세안, 일본, 인도, 호주, 한국, 대만과 긴밀하게 협조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 보고서에 대해 "미중 신냉전의 시작을 알리는 X파일"이라고 비유한 국제문제 전문가도 있다.

미국이 제안한 경제번영 네트워크는 과연 반(反)중국 전선을 구축하기 위한 것일까? 거칠게 말하자면 중국에 진출한 외국 기업들의 탈중국을 유도하는 방향으로 가동될 수 있다. 예컨대 11월 대선을 앞두고 코로나19 위기로 궁지에 몰린 트럼프가 이들 기업을 미국에 유치하겠다는 아이디어를 '깜짝 카드'로 내놓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극단적인 내용이라면 각국의 정부나 민간기업들이 거부할 수밖에 없다. 좀 더 온건한 방식으로는 외국기업들의 탈중국 대안으로 인도, 인도네시아, 베트남 카드를 활용할 수 있다.

여기에는 아세안 국가들의 참여가 관건이다. 태국을 뺀 동남아 국가들은 대부분 미국의 전략 구상에 참여하려는 분위기다. 중국과의 해양영토 갈등이 심각한 데다 경제적으로 중국 입김이 너무 커져 동남아 국가들로선 TPP에 참여했듯이 경제번영 네트워크도 지지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은 그동안 한국에 대해 인도·태평양 전략, 항행의 자유 작전에 참여하도록 거듭 요청해왔다. 이번에도 경제번영 네트워크 참여를 제안했다. 여태껏 항행의 자유 작전엔 일본만 참여했고 호주는 참여하지 않았다. 한국의 선택 폭이 상대적으로 넓은 편이었다. 하지만 대다수 동남아 국가들이 경제번영 네트워크에 참여한다면 한국 입장이 난감해질 수 있다.

4. 대만의 국가 위상을 둘러싼 논란

미국은 닉슨 정부 이후 ‘하나의 중국’ 원칙을 지키면서 양안(兩岸, 중-대만) 관계와 대만 국가위상 문제를 가급적 건드리지 않았다. 그러나 트럼프는 대만 카드를 흔들면서 중국을 노골적으로 자극하고 있다. 홍콩 사태 못지않게 신냉전 전선의 가장 위험한 불씨다.

2017년 1월 취임한 트럼프는 미중 수교 이후 미국 대통령으로는 처음 대만 총통과 전화통화를 한 데 이어 ‘하나의 중국’ 원칙에 구속될 필요가 없다는 발언도 불사했다. 트럼프는 미중 갈등 수위가 높아질 때마다 대만 카드로 압박 수위를 높여갔다.

2018년 3월, 미국은 ‘대만 여행법’을 통과시켜 미국-대만 간 고위급 교류의 물꼬를 텄다. 이를 근거로 차이잉원(蔡英文) 총통은 2018년 8월, 2019년 7월 두 차례의 남미 순방 길에 각각 미국 도시를 ‘경유 방문’했다.
급기야 지난해 6월, 미국 국방부는 대만을 ‘국가’라고 칭해 국제사회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인도·태평양 전략보고서에서 싱가포르, 뉴질랜드, 몽골과 나란히 대만을 언급한 것이다.

이런 연장선상에서, 미중은 대만의 국가위상 문제를 놓고 격렬하게 대치할 전망이다. 지난 3월, 미 의회는 ▲대만의 외교관계 복원 ▲국제기구 가입 지지 ▲대만을 위협하는 제3국 제재 등을 담은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 중 주목할 건 제3국 제재를 규정하는 조항이다. 차이잉원 총통이 미국을 처음 방문했을 때, 중국은 엘살바도르를 압박해 대만과의 외교관계를 단절시켰다. 이런 사태를 의식해 대만의 안보·번영을 침해하는 국가에 대해 미국과의 관계를 조정할 수 있다는 조항을 추가했다. 또한 대만이 다른 나라와의 외교관계 및 비공식관계를 강화하는데 지지 의사를 표명했다.

최근 국제사회에선 대만의 코로나19 방역 성과를 평가하며 세계보건기구(WHO) 옵저버 지위 회복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거세졌다. 그 결정은 올해 말로 연기됐지만 대만의 국제기구 참여 문제는 앞으로 다양하게, 빈번하게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

대만은 아시아에서 민주주의 성숙도가 높은 편이고, 탈핵 정책에서는 지구촌을 리드하고 있다. 국가 규모는 작지만 중국의 권위주의체제에 도전장을 내밀 수준을 갖춘 것이다. 만약 유엔 총회에서 대만의 외교적 지위 회복과 관련된 결의안이 미국 주도로 제기될 경우 유럽 선진국들도 동조할 가능성이 높다.
한국 정부로선 아시아 중견국가, 유럽 선진국과의 협력·연대를 강화해 이런 상황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미중 신냉전은 외교역량 실험의 場

미중 신냉전이 본격화할 경우 한국은 미국 쪽에 가담해야 할까? 우리 의지와는 무관하게 제3자 강요의 기로에 서있다. 네 개의 이슈가 결코 간단치 않다.

홍콩 사태, 화웨이 제재의 경우 만약 미국 쪽에 서게 된다면 한국이 받을 경제적 타격은 상대적으로 작겠지만 중국이란 거대 시장 및 공급망에 대한 접근성을 상당 부분 포기해야 한다. 반대로 중국 입장을 지지할 경우 여러 분야에서 미국의 직간접 제재와 불이익을 초래할 수 있다.

경제번영 네트워크, 대만의 국가위상과 관련해서는 다른 국가들과의 협력·연대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
우선 미국 주도의 경제블록 추진 구상에 대해선 동아시아 차원에서 연대해 의문을 제기해야 한다. 트럼프는 이미 ‘자국 우선주의’를 외치며 TPP 탈퇴 선언을 한 바 있다. 대중국 전선에 함께 설 것을 요구하는 지금도, 한국과 동맹국들을 향해 상거래를 하듯 자유무역협정(FTA), 방위비분담금 등에서 겁박 자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 외교는 앞으로 국가 이익과 인류보편가치 사이에서 균형을 맞춰야 한다. 눈앞의 경제적 이익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뒷받침할 논리와 원칙이 중요하다. 그래야 미중 어느 한쪽을 선택하더라도 양쪽을 모두 납득시킬 수 있다.
한국은 아시아의 민주주의 모범국가답게 국제사회와 연대하고 인류보편가치를 증진시킬 책임을 갖고 있다. 그러면서도 권위주의 국가들과는 상호존중을 바탕으로 경제협력 확대, 평화체제 정착을 이끌어내야 한다.

한국 내부에서도 정부 차원으로만 움직여서 될 일이 아니다. 민간기업, 비정부기구(NGO)도 기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홍콩 사태와 관련해 청와대나 외교부 차원에서 한계가 있다면, 국가인권위원회와 NGO, 언론이 나서서 국제사회 연대에 힘을 실어줄 수 있다. 화웨이 5G장비 도입과 관련해 보안문제가 있다면 미국처럼 안보 관련 부서가 목소리를 내거나 소비자단체가 안전성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이렇듯 미중 신냉전은 커다란 위기 요인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우리의 입체적 외교역량을 실험하고 단련하는 장(場)이 될 것이다.

민현종 / 자유기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