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렌체의 식탁>은 2017년 8월부터 지난 1월까지 기재부장관 정책보좌관으로 일했던 박지웅 변호사의 글을 싣는다. 그는 이른바 ‘어공’(‘어쩌다 공무원’의 줄임말)으로서 2년5개월 남짓 기재부 조직 생활을 체험했다. 박 변호사는 “기재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재부의 현재와 미래, 바뀌어야 할 지점의 단서를 찾아보았다”고 밝혔다.
한국 경제가 위기의 터널을 지나고 있지만 경제사령탑 역할을 찾기 힘들다는 비판은 곳곳에서 터져나온다. 코로나19 경제위기 속에서 4.15 총선이 치러지고 177석 과반의석을 확보한 집권여당은 문재인 정부의 후반전을 준비하고 있다. 디지털과 환경, 4차산업혁명 분야를 중심으로 한 한국형 뉴딜이 첫 번째 과제로 부상했다.
밖으로는 미중 패권경쟁 격화, 글로벌 공급망의 재편성, 중국의 제조업 추격 등으로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들다.
국내외 환경이 격변하는 만큼 기획재정부와 홍남기 경제부총리를 향한 기대도 커지고 있다. 기재부가 자기혁신을 통해 면모들 일신해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한 이유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은 “코로나19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3차 추경안을 조속히 편성해 달라”고 지시했다. IMF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그랬지만 정부가 위기 극복의 주체가 될 수밖에 없다. 일자리와 사회안전망 확충, 한국형 뉴딜을 추진하려면 결국 정부가 뭉칫돈을 풀어야 한다는 얘기다.
여기서 제기되는 게 재정건전성, 즉 국가채무비율 및 국가신인도 문제다. 대규모 재정적자를 감수하더라도 급한 불을 꺼야 한다는 주장과 미래세대에 빚더미를 물려줄 수 없다는 주장이 팽팽하다. 재정건전성 논리의 선봉엔 홍남기 부총리가 서있다. 심지어 '기재부 상왕론(上王論)'까지 꺼내들고 홍 부총리를 비판한 정치권 인사도 있었다. 
이 글은 기재부를 비난하려는 게 아니다. 내부자 겸 관찰자의 시각에서 기재부 관료조직의 현실과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 싣는 것이다. 기재부를 혁파하려면 순혈주의에 의존하는 인사제도를 고치고 도전정신 고취와 개방형 인사를 확대하자는 내용을 담았다. [편집자]

#긴급재난금 지원 놓고 당청과 이견
  민심 등한시하다 정무적 판단 놓쳐
#전문성·소통능력·정치력 'T자형 리더'
  '관료 경험+시장 이해' 부총리 필요
#경제·금융 정책조합 힘든 경직된 구조
 순혈주의로 '작은 리더십'에 그쳐
#집단 동질성 강하면 집단 확신 오류
  도전정신과 개방형 확대로 껍질 깨길

# 재난지원금 논쟁과 기재부의 소외

지난 2월부터 심화된 코로나19 위기 과정에서 수많은 중소기업, 소상공인, 자영업자들이 생사기로에 섰다. 지금도 대한민국은 코로나19 위기란 기나긴 터널의 한복판에 서있다. 1차 추경안(11조7000억원)을 통해 확대된 금융 지원 및 고용유지지원금은 무서운 속도로 소진됐다.
(※코로나19와 관련한 추경안 규모는 1차 11조7000억원, 2차 12조2000억원이었다. 6월 중에 통과될 3차 추경안은 약  30조원 규모로 추정된다. 재정지출에다 한국형 양적완화까지 감안하면 200조원 넘게 풀릴 전망이다)

문제는 소비였다. 1분기 경제성장률이 △1.4% 수준인데, 민간소비는 △6.4%(전기 대비)까지 떨어졌다. 소비심리가 완전히 얼어붙었다. 집권여당 중심으로 소비진작 방안이 논의되기 시작했다. 박원순 서울시장, 이재명 경기지사, 김경수 경남지사는 이른바 ‘재난기본소득’을 제안했고, 지자체 자체 예산으로 지급하기 시작했다.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21대 총선을 앞두고 이를 확장한 긴급재난지원금 2차 추경안을 정부에 제안했다. 청와대, 정부와의 실랑이 끝에, 기재부는 소득기준으로 하위 70%까지 100만원(4인 가구 기준)을 지급하는 방안에 잠정 합의했다. 하지만 집권여당 내부에선 총선 국면에서 애매모호한 기준으로 지급대상을 한정하는 것을 감당할 수 없었다. 결국 이해찬 대표는 총선 일주일을 앞두고 100% 지급을 제안했다.

기재부는 당초 재정건전성과 코로나19 위기의 불확실한 상황을 이유로 하위 70%를 고수했다가 민주당의 압박을 못 이겨 전 국민 100% 지급에 동의했다. 그 과정에서 기획재정부는 체면을 구길 대로 구겼다. 마스크 수급대책부터 중소기업․자영업 금융지원 대책 마련까지 코로나19 위기의 소방관 역할을 다해온 것을 생각할 때 안타까운 일이다.

물론 재정건전성도 중요하고, 2차 팬데믹에 대비할 ‘재정 실탄’ 확보도 중요하다. 산소 부족 위기를 알리는 ‘탄광 속 카나리아’ 같은 역할 없이 기재부가 존재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대다수 국민들은 왜 기재부의 그런 진정성을 몰라준 것일까?

지난 4.15 총선에서 국민들은 문재인 정부의 위기대처능력에 힘을 실어줬다. 민생부터 살려야 한다는 게 민심의 뚜렷한 흐름이었다. 하지만 기재부는 이 대목에서 정무적 판단을 놓쳤다. 민심의 흐름과 집권여당의 재난지원금 관철 의지에 안일하게 대응했다.

#경제부총리의 조건, T자형 리더십

어느 조직이든 리더의 결정과 판단력이 중요하다. 대한민국 경제정책의 리더는 누구일까? 물론 대통령이 최고책임자이지만, 대통령-국무총리의 권한을 위임받아 대한민국 GDP(약 1900조원)와 국가예산을 책임지는 경제 사령탑은 바로 경제부총리다. 경제부총리는 기재부장관이 겸임하는 데, 경제정책에 관해선 국무총리의 명을 받아 중앙행정기관을 총괄·조정한다.(정부조직법 제19조) 경제관계장관회의와 녹실회의,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 대외경제장관회의 등 수많은 경제관련 회의를 주재하고 정책 결정을 내리는 중요한 자리다.

그렇다면 경제사령탑의 역할은 무엇일까?
첫째, 전문성이다. ‘경제’를 모르는 사람을 부총리로 앉힐 수는 없다. 둘째, 소통능력이다. 소위 부처 장악력(grip)이라고 말한다. 조직을 관리할 줄 알고, 각종 경제정책을 둘러싼 분야별 이해와 경험치를 축적하고 있어야 한다. 셋째, 정치력이다. 시장을, 국회와 청와대를, 각 부처의 관심사를, 국민 관심사를 두루 이해할 줄 아는 공감(共感) 능력이다. 이 세 가지를 갖추면 가장 이상적인 경제부총리 상(像)일 것이다. 이렇게 전문성을 바탕으로 폭 넓은 교양․경력, 공감능력을 두루 갖춘 스타일을 T자형 리더라고 표현해두자.

과거의 경제관료 사이에선 이런 철인상(哲人像)이 롤 모델이었다. 초창기 관료사회는 T자형 리더를 배출하기에 좋은 조건이었다. 경제규모가 작다 보니, 젊은 관료가 여러 현안을 파악해 나라 살림살이를 좌지우지했다. 짧은 시간에 다양한 경제정책의 수립·집행을 경험할 수 있었다. 불혹(不惑, 40세) 이전에 경제정책 운용의 핵심이라 할 예산, 재정, 금융을 두루 경험해본 인물이 많았다.
장기영 부총리처럼 배짱이 두둑하거나, 김학렬 부총리 같은 괴짜도 있었다. 3공(共) 시절 장기영은 한국은행(당시 조선은행) 부총재, 한국일보 사장을 역임하고 부총리에 발탁됐다. 김학렬은 나이 마흔에 경제기획원 차관, 46세에 경제부총리가 됐다. 경제개발시대에나 가능한 일이었다.

5공 시절 전두환 전 대통령이 “경제는 당신이 대통령이야”라고 말해준 김재익 경제수석은 또 어떠한가? 한국은행 조사역으로 금융통화정책을 경험하고, 30대 후반에 경제기획원 국장, 40세에 차관보를 거쳐 42세에 청와대 경제수석이 됐다. 물가안정, 수입자유화, 정보화 투자, 금융실명제 같은 굵직한 정책을 추진했다.

경제관료 중엔 노무현 정부 시절의 이헌재 부총리를 이상적으로 꼽는 이도 많다. 재무부 관료로 일하다가 대우그룹, 한국신용평가(금융사)에서 실물․금융 시장을 경험한 후 김대중 정부 때 금융감독위원장, 재경부장관으로 활약했다. 그의 다양한 필드 경험이 IMF 위기 당시의 경제회생과 기업구조조정을 뒷받침했다. 결국 ‘다양한 경험’과 ‘시장의 이해’, ‘뚝심’이 제대로 일을 해내는 원동력이다.

# T자형 리더가 사라진 기재부

①기재부 내부의 구조적 변화

요즘처럼 복잡한 세상에서 관료의 경험, 시장의 이해, 공감의 정치력, 이 세 가지를 다 갖춘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솔직히 말해 이명박 정부부터는 이런 리더십을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개인 역량 차이가 아니라 구조적인 변화 때문이다. 경제규모가 커지면서 어느 한 분야의 전문성을 쌓기도 버거운 현실이다.

최근 기재부 관료들을 보면 사무관에서 과장급 서기관이 되기까지 거의 20년 넘게 시간이 걸린다. 이 과정에서 기재부의 다양한 분야와 정책들을 경험해 보기도 어렵다. 과장이 되고 나선 더욱 치열한 경쟁에 부닥친다. 수석과장(총괄과장) 밑에 차석-3석-4석 과장. 이렇게 몇 단계의 과장 보직을 밟아야 ‘총괄과장’자리를 차지한다. 총괄과장이 되지 못하면 국장 승진에 유리하지 않다. 과장 보직에서 예산을 맡던 사람이 재정 파트로 보직을 옮긴다? 세제(稅制)를 하던 사람이 경제정책으로 보직을 옮긴다? 그런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괴짜 또는 인사경쟁에서 밀린 사람으로 취급 받는다.

이렇다 보니, 민간 기업으로 나가서 시장 경험을 쌓고 오는 ‘이헌재 모델’은 꿈 꾸기조차 어렵다. 오히려 두려워한다. 시장 경험이나 사회적 가치를 익히는 게 중요하지만, 내부에서 제때 승진하기 위한 최소한의 보직 경험도 채우기 힘들다.

그 결과는 기재부 내부의 순혈주의 강화로 연결된다. 한두 분야의 경제정책에 대해선 아주 잘 알고, 뛰어난 전문성을 보이지만, 다른 경제정책의 툴(tool)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상당하다. 특히 경제정책과 금융정책은 서로 정책조합(policy mix)이 되어야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는데, 기재부-금융위원회 간의 인사 교류도 거의 찾아보기가 어렵다. 경제정책의 다양함과 가변성을 모두 이해하고 경험해 봐야 T자형 리더십이 생길 텐데, 부처 내부적으로 이런 기회를 갖기란 쉽지 않다. 그렇다 보니, 행정고시 합격자 중 재경직(財經職)의 수석 내지는 앞 순위를 차지하는 중간간부들이 현실에 안주하거나 우물 안 개구리가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기재부 내부에서도 이런 문제점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 경제정책-세제-국제금융을 담당하는 1차관 라인, 예산-재정을 담당하는 2차관 라인 사이에 국․과장 인사 풀(pool)을 섞기 위해 최근까지 여러 가지 개선방안을 시도해왔다. 하지만, 화학적 결합이 잘 되지 않거나, 새로운 커리어를 설계하지 못한 채 결국 자기가 많이 경험한 분야로 되돌아오는 사례가 많다. 기재부의 일하는 방식과 인사제도를 혁파할 근본적인 해결책을 못 찾고 있는 것이다.

②작은 리더십의 안착

이명박 정부 이후 경제부총리들의 면면을 보면 리더십 약화 현상이 두드러진다. 누군가는 특정 학교 출신이어서 됐고, 누군가는 특정 분야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발탁됐는데, 정작 경제부총리로서의 역할을 해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현오석 부총리(기재부 관료, KDI 원장 출신), 유일호 부총리(KDI 교수, 조세재정연구원 원장 출신)의 경우 전문성을 근거로 발탁됐지만 부처 간 소통이나 장악력에 문제가 있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정무적인 역할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요즘엔 특히 재정(財政) 라인에서 부총리가 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역시 전문성은 있으나 T자형 리더십을 갖췄다고 말하긴 어렵다.

작은 리더십이 큰 조직에 안착·안주를 하게 되면 결국 실무 관료들도 창의적인 커리어 설계보다는 한 분야의 성공을 바탕으로 임명권자를 찾아 학연, 지연, 혈연을 강조하는 정실주의(情實主義)에 매달리게 된다. 이런 성공사례가 소문나면 그 조직은 멍들 수밖에 없다.

기재부 내부에선 자조적으로 ‘정치인’ 장관이 오기를 바라는 분위기도 있다. 그 이유는 다양하다. ‘국회나 청와대의 경험을 바탕으로 강한 리더십이나 소통을 발휘할 수 있을 테니까’, ‘강한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부처 조직을 더 늘리거나 내 인사문제를 풀어줄 수 있을 테니까’ 등이다.

실제로 정치인 장관 중에선 집권여당과 청와대가 자신에게 준 역할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자기 역할을 십분 발휘하려 노력하는 이가 많다. 하지만 모든 것엔 일장일단(一長一短)이 있다. 박근혜 정부에서 최경환 부총리를 거친 다음에는 정치인 장관에 대한 일종의 터부시가 있다. 부동산 경기부양책을 통한 ‘최경환노믹스’로 인해 커다란 후유증을 남긴 데다 국정원 특수활동비 유용사건으로 유죄판결까지 받았기 때문이다.

# 순혈주의 깨고 개방형 인사를 확대하자

아일랜드에는 1845∼1851년 대기근이 닥쳐 100만 명 가까이 굶어죽고, 100만여 명은 조국을 떠나야 했다. 당시 주식(主食)이던 감자의 생산량을 높이기 위해 단일품종 재배에 매진하다가, 잎마름병(blight)이 돌자 파종할 감자 씨조차 말라버리는 참담한 결과를 낳았기 때문이었다.

1900년대 동일한 유전종(種)인 그로 미셸 바나나를 재배했던 중남미의 농장들은 급작스런 전염병(파나마 병)으로 모두 황폐화 되었다. 단일 품종의 바나나만 키우다 보니 어느 한 곳에만 전염병이 돌아도, 전국의 모든 농장으로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아일랜드 감자와 그로 미셸 바나나, 둘 다 단일 종만을 재배하다 벌어진 비극이었다.

집단 동질성이 강하면 강할수록 집단적 확신의 오류가 생긴다. 게다가 엘리트 집단에 속할수록 자신이 소속한 준거집단 속에다 스스로를 가두는 경향이 있다. 동료와의 경쟁에 매몰돼 외부 시각에서 사고하기가 쉽지 않다.
특히 엘리트 집단에서 나타나는 비교 의식, 경쟁 심리는 일반인들의 상상을 초월한다.‘쟤는 과거에 행시와 연수원 성적이 얼마였다더라, 쟤는 누구 라인이어서 총애를 받는다더라’ 등등.

기재부뿐만 아니라 정부 부처마다 인사철이면 이른바 ‘복도통신’이 성행한다. 거기엔 관료들의 사고방식을 이해할 단서가 깔려 있다. 복도통신과 실제 인사가 어긋나는 경우가 많지만, 인사를 둘러싼 관심이 얼마나 지대한지를 알 수 있다.

기재부에선 최근 몇 년 새 선호 부서가 엇갈리는데, 과장급 사이에선 예산실, 사무관급 사이에선 국제금융국과 세제실이 가장 인기를 끌고 있다. 여기에서도 우리 사회의 변화상을 엿볼 수 있다. 다음 자리가 보장된 보직! 그것이 리얼 트렌드가 되어가고 있다.

기재부에서 과장급들의 희망부서가 다시 예산실로 쏠리는 이유는 뭘까? 한국 경제의 성장률이 2% 안팎에 그침에 따라, 성장 기여도에서 정부 소비·지출이 차지하는 비중, 즉 재정의 역할이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예산실의 힘과 위상은 옛날보다 훨씬 더 막강해져 예산실의 실무책임자인 과장급 인사를 놓고선 매번 치열한 경쟁을 거듭한다. 개인 인맥과 지역 연고가 총동원되다시피 한다. 결코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다. 특정 분야의 전문성만 추구하는 인사 관행으론 T자형의 균형 있는 리더십을 육성하긴 어려울 것이다.

지금 기재부에는 집단의 동질성보다 이질성이 필요하다. 부처 안팎의 인사이동이 더욱더 자유로워져야 한다. 도전정신을 가진 관료가 뛰쳐나가 민간을 경험하다 돌아와야 하고, 관료사회를 경험하려는 민간 경력자가 들어올 다양한 루트를 개발해야 한다. 개방직을 크게 늘려 민간 전문가도 경제정책을 경험할 공간을 제공해야 한다. 정치인, 교수, CEO도 관료사회의 중심에 들어가 다양한 경험을 쌓아야 T자형 리더를 육성할 수 있다. 언제까지 공무원 인사에서 행시 몇 기, 연수원 몇 기가 등장하는 후진적 관행이 반복돼야 하는가?

순혈주의가 계속되면 능력과 도전정신을 갖춘 사람들이 뻗어나갈 공간은 사라진다. 시장과 국민, 시대흐름에 관심을 쏟기보다, 자기네 울타리를 높게 치고 그 울타리를 지켜내는데 똘똘 뭉치게 만들 뿐이다. 한국 경제의 규모와 범위는 이미 글로벌 수준으로 확장됐다. 그런 만큼 시야가 넓고, 시장의 파급력과 영향력을 알고, 국민의 관점에 공감하는 T자형 리더십이 정말 중요하다. ‘철인’까진 기대할 수 없어도, ‘기술자’들을 발탁해서는 안 된다. 정부든 민간이든 경제리더십이 살아날 때, 대한민국 경제와 국민이 다시 한 번 도약할 수 있다.

이번 긴급재난지원금 사태는 기재부 안팎에 중요한 교훈을 남겼다. 그에 대해 설왕설래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인사의 구조’다. 새가 껍질을 깨야 태어나듯, 변화는 조직의 낡은 껍질을 깨야 시작된다. 아일랜드의 대기근, 중남미 그로미셀 바나나의 멸종이 가르쳐주는 교훈이다.


박지웅 변호사

더불어민주당 조세 전문위원, 문재인 정부의 국정기획자문위 전문위원을 거쳐 기획재정부 장관정책보좌관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세금, 알아야 바꾼다(공저)>가 있다. 현재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대한민국 디자인에 힘을 보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