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중국 간 첩보전이 냉전시대의 미국-소련 첩보전을 방불케 할 정도로 치열해지고 있다. 옛 소련 몰락 이후 중국의 고도성장으로 2000년대 초 미중 패권경쟁이 시작되면서 양국 정보기관의 첩보전은 본격화했다. ‘미국 우선주의’를 내건 도널드 트럼프 정부 들어 영화를 떠오르게 할 만큼 극적인 요소를 갖추었다.

중국의 스파이 공세에 대한 경계심은 미국뿐만 아니라 한국, 일본, 호주 등으로 확산되고 있다. 2017년 4월 일본 시사주간지 ‘슈칸다이슈’는 “일본 내 중국 간첩이 5만 명에 달한다”며 이들이 상사 주재원, 유학생, 요식업·유흥업 종사자 등 다양한 직업으로 신분을 위장해 활동하고 있다고 폭로한 바 있다.

한국에서도 다양한 신분으로 활동하는 중국인이 수천 명에 이른다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중국공산당의 '한국 침투'를 증언하는 목소리는 곳곳에서 들린다. 서울의 한 대학교수는 "중국에 불리하거나 비판적인 내용을 강의하면 그걸 항의하거나 교수를 설득하려는 학생들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산업 스파이 사건은 일일이 거론조차 어려울 만큼 빈발한다. 서울은 미·중·일·러 4강의 새로운 정보전쟁이 펼쳐지는 곳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중국 우한(武漢)과 후베이(湖北)에서 코로나19 감염자 수가 1만 명에 육박하던 올해 1월 30일, 도널드 트럼프 정부는 전격적으로 미국인의 중국 입국을 전면적으로 금지했다. 이는 2019년 12월부터 코로나19의 실상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미 중앙정보국(CIA) 등 정보기관 요원들이 활약한 성과 덕이라고 한다.

미국은 코로나19, 12월 초순 알았다

미국은 12월 초순 이미 우한에서 원인불명의 폐렴 환자들이 발생했고, 리원량(李文亮) 등 현지 의료진들이 이를 SNS에 올린 사실을 포착했다. 그 글들은 중국 검열당국에 의해 인터넷상에서 곧 사라졌으나 우한의 미국총영사관과 CIA 정보담당자들이 재빨리 정보를 수집한 뒤, 현지 의료관계자들을 접촉해 상황을 파악했다고 한다. 이 보고를 받은 트럼프 정부는 중국입국 금지 조치를 선제적으로 발동함으로써 코로나19 대처를 위한 준비시간을 6주가량 벌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자연 소멸할 것이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근거 없는 낙관 때문에 방역 대비를 소홀히 함으로써 미국 정부는 사태를 그르쳤다.

그에 앞서 지난해 11월. 미국 법정에선 중국계 CIA의 전직 요원 제리 춘 싱 리(Jerry Chun Shing Lee) 사건에 대한 공판이 열렸다. 그의 중국 이름은 리전청(李振成). 1994년에 발각된 앨드리치 에임스 사건을 방불케 한 그 사건으로 제리는 징역 19년형을 선고받았다. 앨드리치 에임스 사건이란, 1994년에 발각된 CIA 공작본부 중앙유라시아부 방첩총괄부장이던 앨드리치 에임스(Aldrich Hazen Ames)의 이중스파이 행위다. 옛 소련 내 미국 정보기관 협력자들 다수가 무자비하게 처벌당한 악명 높은 사건이다. 그는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뉴욕타임스와 미국 언론에 따르면, 2010~2012년 사이에 미국 정보기관이 구축해 놓은 ‘중국 정보망’이 교란되고 중국 내부의 CIA 협력자 10여 명이 살해당했다. 정보 제공자는 제리 춘 싱 리. 2019년 11월 22일 BBC방송은 제리가 중국 쪽에 넘겨주었을 수많은 정보로 인해 20여 명의 정보원(중국 내의 미국 정보기관 협력자)이 처형당하거나 구속됐다며, 그것은 미국의 최근 첩보활동 역사에서 가장 처참한 사건이라고 보도했다. 제리는 징역 19년형을 선고받았다.

돈에 팔린 CIA 요원의 이중스파이 행각

홍콩 태생의 미국 시민권자 제리 춘 싱 리(56)는 1994년부터 CIA 특수요원으로 도쿄·베이징 등에서 근무했다. 13년 뒤인 2007년에 CIA를 떠난 그는 2010년 4월, 중국 정보기관 요원과 접촉해 자신이 요원으로 활동하며 획득한 미국 쪽 기밀을 건네주고 수십만 달러를 받았다. 그가 건네준 정보는 CIA 공작원이나 중국 내 협력자 명단, 특수 암호를 활용한 통신방법 등이었다.

바로 그해 2010년부터 2년간에 걸쳐 10여 명의 중국 내 CIA 협력자들이 살해되고 정보망이 파괴되는 변고가 발생했다. 그때 희생당한 이들 중에는 본보기로 중국 정부청사 안마당에서 사살당한 경우도 있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중국 쪽의 은밀한 ‘숙청’의 실마리를 제리가 제공했다는 점을 미중 양국 정보관계자들 모두가 인정하고 있다고 아사히신문((4월 12일자)은 전했다.

이 사건은 냉전시대에 미국과 옛 소련 간에 벌어진 “미국 역사상 최악의 스파이 사건”이라는 앨드리치 에임스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1941년생인 앨드리치 에임스는 1963년 시카고대학 문학부를 졸업하고 CIA에 들어간 뒤 1994년, 그러니까 제리가 CIA 특수요원이 됐던 그해에 이중스파이 혐의로 미 연방수사국(FBI)에 체포될 때까지 30여 년간 CIA 공작 간부로 활동했다, 그는 그 기간에 CIA 공작본부 소련·동유럽부에서 근무한 뒤 뉴욕, 멕시코시티 근무를 거쳐 다시 공작본부 소련·동유럽부, 그 다음엔 로마에서 활약했다.

러시아어를 할 줄 알았던 그는 뉴욕 근무시절 CIA의 협력자인 옛 소련 외교관 2명을 맡았다. 그는 공작본부 소련·동유럽부 두 번째 근무시절에 스스로 옛 소련 국가보안위원회(KGB)에 거액의 보수를 요구하며 그 협력자가 됐다. 당시 CIA의 소련인 협력자 확보·운용공작 등 모든 것을 알고 있었던 에임스는 거액을 받고 10명 넘는 최고위급 CIA 협력자 명단을 건네줬다. 그 결과 옛 소련 내 협력자는 전원 모두 체포됐고 대부분 처형당했다. 그 일로 CIA 활동은 괴멸적인 타격을 받았다. 9년간이나 이중스파이 행각을 벌이던 그는 CIA본부로부터 계속 의심을 샀지만 1994년에야 체포됐고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받고 복역 중이다.

그러니까 제리 춘 싱 리 사건은, 1990년대 초 옛 소련 붕괴 뒤 수그러든 미소 간의 그런 치열한 첩보공작이 20여 년 만에 미중 간에 유사한 형태로 되풀이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그것은 곧 미중 패권경쟁이 냉전시대의 미소 경쟁을 닮아가고 있다는 것이고, 달리 말하면 냉전체제가 무너진 지 30년이 된 지금 다시 신냉전이 시작되고 있음을 알리는 것이다.

DIA 요원과 기업 직원도 넘어가

2019년 한 해 동안 미국에서는 제리 외에, 다른 두 건의 중국 관련 스파이 혐의자들에 대한 판결이 나왔다. 하나는 중국 정보기관에 국가방위(national defence) 기밀을 팔아넘긴 전직 CIA 직원에게 20년 징역형이 선고된 사건이고, 또 하나는 역시 중국 정보기관에 군사비밀을 팔아넘긴 전직 국방정보국(DIA) 직원인데 그에겐 징역 10년형이 선고됐다.

아사히신문이 정리한 바로는, 7년 전인 2013년에는 자신이 사귀고 있던 중국인 여성에게 미군의 미사일 등과 관련한 군사기밀정보를 누설한 미국 육군의 전직 장교가 기소됐다. 2014년에는 원전건설 대형업체인 웨스팅하우스 등에 해킹 공격을 시도한 중국 군부 당국자가 기소됐으며, 2017년에는 중국 통신기기 업체인 화웨이 직원이 미국 휴대전화업체의 기기를 반출한 데 따른 피해사실이 미국 법원에서 인정을 받았다. 2018년에는 베이징행 여객기에 탑승하려던 미국 애플의 전직 사원이 무인차 자율운행 관련 데이터를 반출하려 한 혐의로 체포당했다.

미국이 불신하는 중국 千人계획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미중 정보전은 관(官)과 민(民)의 경계를 넘어 그 전선이 확대되고 있으며, 주전장(主戰場)은 첨단기술을 둘러싼 산업분야라 할 수 있다. 미국은 이 때문에 2018년 중국 측 정보수집활동을 단속하기 위한 전문팀인 ‘중국 이니셔티브’를 미 사법당국 안에 설치했다. 그러고 기업, 대학, 연구기관을 상대로 스파이 단속활동을 벌여왔는데, 지난 1월 3명을 적발해 위법사실을 발표했다.

적발된 3명은 모두 명문대학이 몰려 있는 동부 매사추세츠주에 살고 있었다. 29살의 중국인 여성은 중국군 중위 신분을 숨긴 채 보스턴대학에 들어가 미군의 조직, 로봇공학 전문가와 관련된 정보를 수집했다. 민간 의료센터에서 암세포를 연구하고 있던 중국 국적자인 30살의 남성은 연구실에서 DNA를 넣은 작은 병을 훔쳐 중국으로 밀반출하려다 붙잡혔다. 나노테크놀로지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인 하버드대학 화학생물학부장 찰스 리버(Charles Lieber)도 걸렸다. 미국 국방부 등으로부터 연구자금을 받고 있던 리버는 외국으로부터 자금을 받을 경우 그 사실을 알려야 하는 의무를 지고 있음에도 그걸 숨겼다는 혐의를 받았다.

미국 사법당국은 이들이 중국의 국가적 프로젝트인 ‘천인계획(Thousand Talents Plan)’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파악하려 했다. 중국의 ‘해외 고급인력 초치 계획’이라고도 하는 천인계획은 중국 국무원이 과학연구, 기술혁신, 기업가(창업) 정신 분야의 세계적인 고급 인력을 스카우트하기 위해 2008년에 수립했다. 아사히신문은 그렇게 모아들인 세계 일류 인재들이 중국인과 화교들을 중심으로 8000명이 넘는다고 설명했다.

미국 당국의 발표에 따르면 리버는 2012년에 중국 우한이공대학의 교수로부터 e메일을 받았다. 그 교수는 e메일에서 월급 5만 달러(약 5500만원) 외에, 주거비와 생활비로 연간 15만8000달러를 따로 주겠다고 했다. 리버 교수는 금방 계약을 맺었다. 웬만한 사람에겐 ‘최고급 인재’라는 타이틀과 함께, “당신은 천인계획에 뽑혔습니다. 생활비와 연구비를 지급하겠습니다”라는 통지가 날아오고, 그 즉시 이행되는 계약을 뿌리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중국 정부는 이와 관련해 “해외에서 뛰어난 인재를 초치하는 것은 국제경쟁력 향상을 위한 전략적 임무”라며 정당한 정책임을 주장한다. 리버 교수가 그 대가로 중국에 무엇을 제공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엄청난 돈과 시간을 들여 키워낸 인재를 그가 지닌 기술, 정보와 함께 몽땅 빼앗아가 버린다면, 글쎄, 지구상에서 화를 내지 않을 나라가 과연 있을까?

얼마 전 삼성 및 한국 대기업에서 일했거나 일하고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중국인 평균임금의 몇십 배나 되는 봉급을 주겠다며 중국 기업들이 공개적으로 채용 광고를 하고 있다는 언론보도가 있었는데, 어디 한국뿐이랴.

산업스파이 혐의 62%가 아시아계

그런데 따지고 보면, 글로벌 체제의 신자유주의를 부르짖는 서방 주요국들이 중국 정부의 정책을 ‘스파이 행위 조장’ 불법행위쯤으로 처벌하는 것도, 자칫 자가당착이 될 수 있다. 그들 나라, 이른바 자본주의 선발국들도 과거 한때는 모두 자신들보다 경제발전 수준이 앞선 나라에서 그렇게 인재와 기술과 정보를 때론 훔치고, 때론 빼앗고 또 높은 값에 사들이지 않았던가.

아사히신문 기사는 그런 식으로 쌍방의 상호불신 연쇄가 깊어질수록 미국에도 득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그러면서 2015년 필라델피아의 템플대학 물리학부 시샤오싱(郗小星) 교수에게 닥친 일을 사례로 들었다. 그해 어느 날 시 교수는 자택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깜짝 놀라 문을 열었다. 갑자기 건장한 차림의 10여 명이 와장창 밀고 들어와 총을 겨눴다.
“FBI다. 손 들어.”

시 교수는 이유도 모른 채 아내와 자식 앞에서 수갑을 찼다. 그가 어릴 적 겪었던 문화대혁명 당시의 기억이 살아났다. 그에게 씌워진 혐의는, 초전도 소재 개발에 사용하는 ‘포켓 히터’라는 기기의 설계도를 중국에 보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가 보냈다는 것은 이미 발표돼 있던 논문이나 기술뿐이었다. 시 교수는 “포켓 히터는 이 분야의 연구자라면 누구나 알고 있다. FBI는 과학적 지식이 전혀 없었던 모양”이라고 말했다. 학교 동료들도 그의 무죄를 증언했고, 4개월 뒤에 사법부는 소송을 기각했다.

재미 중국계 연구자들에 대한 압박은 트럼프 정부 들어 한층 더 심해졌는데, 일각에서는 그런 현상이 지나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단다. 재미 중국계 연구자들이 만든 어느 단체는 2017년에 “산업스파이 혐의로 기소된 사건 당사자 중 62%가 중국계 등 아시아계였는데, 그 중 22%는 아무 죄가 없었다”고 지적했다. 이 기사를 쓴 가토리 게이스케(香取啓介) 워싱턴 주재 아사히신문 기자는 “미중은 서로 연구논문을 함께 쓰는 최대 공저 국가이며, 코로나19 같은 전염병 연구 등 세계적인 과제들에 함께 도전해 왔다”며 “연구자의 산실인 재미 유학생의 3분의 1을 중국 출신이 차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상호배제 움직임은 건전한 지적 교류를 방해할지 모른다”고 주장했다. 그는 애리조나대학 제니 리 교수의 다음과 같은 경고로 기사를 끝냈다. “관계를 단절하면, 미국에겐 득보다 실이 더 많을 것이다.”

백년 마라톤’, 美 과연 속고 있나?

어쨌든 미국에선 요즘 중국이 기술・정보를 빼내가는 행위를 스파이, 즉 간첩행위로 보고 CIA와 총영사관, 보건위생기구, 해외주재기관들을 총동원해 조직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미중 패권경쟁이 심화되면 될수록 그런 유형의 행위를 처벌하는 ‘죄질’은 점점 더 무거워질 것인데, 그에 따른 위험 증대만큼이나 상대국에 정보를 넘기는 경쟁국 내부의 협력자들, 즉 스파이들의 몸값도 올라가지 않을까.

미국은 자국 경제력이 절대적 우위에 있을 땐 미국 주도 질서를 유지하는 방법으로 ‘관여(engagement) 정책’을 구사해 왔으나, 중국을 패권 도전자로 여기는 요즘엔 대결 자세로 대중국 불신과 제재(압박)를 확대해 나가고 있다. 이런 경향은 트럼프 정부 이후 특히 심해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CIA 국장이던 마이크 폼페이오를 국무장관에 임명하고, 국방부 고문이던 마이클 필스버리(Michael Pillsbury)를 중용하는 게 모두 다 그런 바탕을 깔고 있다. 보수성향의 랜드연구소 애널리스트 출신인 중국 전문가 필스버리는 국방부와 CIA의 의향대로 중국이 어떻게 미국을 속이고 있는지에 대해 조사했다.

그의 주장을 압축하면 “미국은 중국에게 속아왔다”는 것이다. 그가 쓴 책 <백년의 마라톤>(The Hundred-Year Marathon-China’s Secret Strategy to Replace America as The Global Superpower)은 중국이 2049년 공산정권 수립 100년 때까지 미국을 제치고 초강대국이 되려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 비밀전략을 세워놓고 착착 나아가고 있다, 그는 ‘속지 말라’고 경고한다. 매우 강력한 중국 견제론, 중국 혐오론을 바탕에 깔고 있다.

그렇다면 당연히 중국의 대응도 점점 거세지지 않을까. 코로나19 위기에 대한 중국 측 발표가 ‘사실을 축소한 날조’라는 미국의 비난에 대해, 중국은 “당신들이나 잘 하라”며 최악의 팬데믹 위기를 겪고 있는 미국의 아픈 곳을 찌르고 있다.

한승동/ 메디치미디어 기획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