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경청’하고 인정하는 자세
   스스로 성장하게 도와준다 
②늘 누군가를 ‘칭찬’한다
   우회적으로 할 때 훨씬 효과적
③적절한 ‘보상’으로 격려를
   공로 나누며 성취감 끌어올려
④‘비전’ 분명할 때 주인의식 발휘 
   너무 쉽거나 너무 어렵지 않게

나처럼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까지 버는 경우는 드물다. 조직에 몸 담고 있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조직에서 하는 일의 대부분은 무엇인가. 조직에 도움은 되지만 구성원들이 싫어하는 일이다. 이런 일을 하게 만드는 사람이 리더이다. 장관이건 사장이건 과장이건 팀장이건 말이다. 조직에 도움이 안 되는 일은, 구성원이 좋아하건 싫어하건 상관없이 오래 가지 못한다.
조직에 도움이 되고 구성원도 좋아하는 일이라면 리더의 역할이 중요하지 않다. 구성원들이 알아서 할 테니까. 불행하게도 이런 일은 많지 않다.

일이란 자고로 싫어해서 ‘일’이다. 그렇지 않으면 놀이다.
“나는 평생 하루도 일하지 않았다. 그것은 모두 재미있는 놀이였다.” 이건 에디슨이나 하는 말이고, 직장인들은 대부분 싫어하는 일을 한다.
싫어하는 일을 잘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리더십이란 게 필요하다. 리더십은 싫어하는 일을 잘하게, 좋아한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능력이다. 다른 말로 동기부여 역량이다. 동기는 말로써 부여된다. 리더는 말을 통해 일을 잘하고 싶게 만드는, 즉 동기를 부여하는 사람이다.

어느 직원은 상사가 던진 한 마디에 '내 인생을 회사에 걸어보겠다'고 마음먹을 수 있고, 또 어떤 직원은 상사의 말에 실망해서 회사를 떠나기도 한다. 상사의 말 덕분에 일에서 보람을 느끼기도 하고, 상사의 말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나도 조직에 모든 것을 걸고 신명나게 일했던 적이 있었다. 네 유형의 상사와 만나 일했을 때다.

첫째, 경청해주는 상사를 만났을 때다. 잘 들어주는 것으로 나를 인정해주는 상사와 일할 때 신이 났다. 내가 무슨 말을 하면 이분의 반응은 늘 이랬다. “도대체 너는 어떻게 그런 생각을 다하니? 그것 참 좋은 생각이다. 한번 해보자.” 해봐서 잘 되면 공을 나눠주고 잘못되면 책임을 져줬다. 나는 아무런 부담 없이 마구 던졌다. 그를 통해 나를 실현했다. 친구와 술 마시다 좋은 생각이 나거나 친구에게 새로운 정보를 들으면 가장 먼저 그분이 생각났다. ‘내일 출근해서 이분에게 말씀드려야지.’ 아침 출근길이 가볍다 못해 날아갈 듯했다. 일찍 출근해 그분이 오기를 기다렸다. 그분에게 제출할 기획안을 쓰기 위해 밤을 새도 힘들지 않았고, 더 나은 아이디어를 담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을 통해 하루하루 성장했다.

잘 들어준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 오죽하면 김대중 전 대통령은 시계에 ‘경청’이라고 쓰고 다녔을까. 노무현 전 대통령이 “맞습니다. 맞고요”란 말을 자주 하게 된 배경에도 들어줘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을 것이다. 들어주기 힘든 이유는 제안 내용이 신통치 않기 때문이다. 아랫사람은 경험과 정보가 많지 않기 때문에 그 말이 처음부터 좋을 수 없다. 자꾸 들어주다 보면 스스로 성장해서 리더나 조직에 도움이 되는 아이디어를 내놓는 것이다.

대부분 그때까지 참고, 믿고 기다려주지 않는다. “됐어. 쓸데없는 소리 말고 내 말대로 해. 그것 안 돼.”
리더는 또 이렇게 말한다. “이리 가져와, 차라리 내가 하고 말지, 답답해서 견딜 수가 없네.” “결국 내 손을 거치지 않으면 되는 일이 없다니까. 나 없으면 어쩌려고 그래.” “도대체 당신들 뭐하는 사람이야.” “왜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사는지 원…” “역시 나 아니면 안 돼.” 모름지기 리더는 이래야 한다고 생각하며 산다.

이럴수록 유능하고 실력 있다는 소리를 듣는다. 애사심인지 공명심(功名心)인지 모르지만, 아무튼 책임감이 강해 보인다. 그들은 '일중독'인 경우가 많다. 여유가 없고 인내심이 부족하다. 직원들을 믿지 못한다. 직원들에게 의견을 피력할 기회나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주지 않는다. 조직에서 흔히 보는 리더의 전형이다. 이론과 실무에 밝은 게 무에 그리 자랑인가. 오래 다녀서 거저 얻은 것 아닌가. 많이 알고 일솜씨가 좋은 것은 윗사람들이 보기에 훌륭한 것이지, 리더의 덕목이라고는 할 수 없다.

둘째, 칭찬이다. 이것만큼 손쉽고 효과적인 동기부여 방법도 없다. 어느 날 아내와 함께 아내 친구를 만났다. 아내가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아내 친구가 내게 이렇게 말한다. “연선이가 친구들 만나면 늘 원국 씨 칭찬하는 것 아세요? 저는 저런 애 처음 봤어요. 글쎄 남편을 존경한다고 하더라고요.”
나는 그날 이후 180도 바뀌었다. 이는 마치 KTX에서 널브러져 자고 가다가 옆 좌석 예쁜 처자가 “작가님 맞으시죠? 팬이에요”라고 말한 이후 책을 읽기 시작한 것과 같다. 이렇게 칭찬은 바람직한 행동을 유발하는 힘이 있다.

칭찬은 대놓고 하는 것보다 우회적으로 할 때 훨씬 효과적이다. A가 B에게 C를 칭찬해, B를 통해 C의 귀에 들어가게 하는 방법이다. 당구 용어로 ‘쓰리 쿠션’ 같은 것이다. 누군가에게 한 칭찬은 반드시 당사자의 귀에 들어가게 돼 있다. 그러니까 늘 누군가를 칭찬하고 다니면 된다. 우회적으로 칭찬하는 다른 방법도 있다. “나는 별로 칭찬하고 싶지 않은데 누군가가 너를 이렇게 칭찬하더라”라며, 자신은 빠지고 남의 입을 빌려 쿨하게 말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말하면 객관성이 확 올라간다. 칭찬받는 사람의 기분도 쑥 올라간다.

칭찬에 인색한 리더가 있다. 나무에 물은 주지 않으면서 좋은 열매가 열리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 “잘하고 있어. 너는 잘해낼 거야.” 그렇게 해도 잘할까 말까다. 나는 칭찬을 갈구한다. 칭찬이 에너지다.
“아이고 잘하네. 어디서 이런 사람이 나왔을꼬. 또 해봐, 또 해봐.” 내가 청소나 설거지할 때 아내가 하는 말이다. 속셈을 알지만 싫지 않다. 장롱 문이 뻑뻑하다 해서 잡아 여는데, “이렇게 힘도 세? 도대체 못하는 게 뭐야.” 해서 과하게 힘을 주다가 장롱을 절단 낸 적도 있다.
나는 남이 해주지 않으면 스스로 칭찬한다. ‘자뻑’이라고 비웃어도 상관없다. 나는 세상 누구와도 견줄 수 없는, 가장 소중한 존재니까.

셋째, 보상이 주어질 때도 열심히 일했다. 보통 보상 하면 성과급이나 승진을 떠올리지만, 나는 이보다 더 기분 좋은 보상을 경험했다. 회사 과장 시절, 그때만 해도 거래처나 협력업체에서 금품을 받는 일이 관행이었다. 당시 부서장은 돈이나 상품권을 받으면 그때그때 서무 직원을 불러 맡겨뒀다가 분기에 한번 분배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부서원 전원이 참여해 사다리를 탄 후, 부서 회식을 했다.
“모두가 여러분 덕분입니다. 나는 여러분이란 바다 위에 떠 있는 돛단배입니다. 여러분이 띄워주면 뜨고 가라앉히면 가라앉습니다.” 회식이 끝나면 새벽 2~3시에 부서장 집으로 몰려갔다. 넥타이를 머리에 묶고 식탁 위에서 노래를 부르면서 이분과 함께라면 못할 게 없었다. 함께 일하는 것이 그렇게 행복하고 자랑스러울 수 없었다.

청와대 연설비서관 시절에는 그 부서장 흉내를 내기도 했다. 일 년에 두 차례 나오는 성과급을 차등 없이 나누자고 우리 방 식구들과 합의했다. 효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남보다 더 많은 성과급을 받기 위해 경쟁하기보다는 인센티브 총액을 늘리기 위해 함께 협력하는 방식이 성과가 더 좋았다. 성과급을 주는 목적과 취지를 더 충실하게 달성한 것이다. 비서관실 분위기가 좋았던 것은 물론이고, 나는 행정관들이 저어주는 배 위에서 날로 먹는 비서관이었다.

끝으로, 분명한 비전이 보였을 때도 열과 성을 다했다. 기업에서 임원으로 일할 때 회장께서 이렇게 얘기했다. “자네도 계열사 사장 한번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 순간부터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주인의식을 갖고 일한다는 게 이런 것이구나’ 생각하며 일했다. ‘계열사 사장’은 비전이 갖춰야 할 조건을 두루 구비했다.

비전은 너무 쉽게 달성할 수 있어도 곤란하고, 너무 어려워서도 안 된다. 너무 쉬우면 목표 의식이 생기지 않고, 너무 어려우면 도전하지 않는다. 있는 힘껏 도전하면 이룰 수 있는 수준이어야 한다. 비전은 또한 너무 막연해서도, 너무 구체적이어서도 안 된다. 너무 구체적이면 설렘이 없고, 너무 막연하면 손에 잡히질 않는다. 회장이 제시한 비전은 이런 조건을 충족했다.

그러나 중요한 한 가지가 빠졌다. 비전에는 옹색하지 않을 정도의 명분과 정당성이 있어야 한다. 내가 사장이 되면 이런 일을 해서 회사를 이렇게 발전시키겠다든가, 구성원을 위해 이런 일을 하고 싶다든가 하는 게 내게 없었다. 그러나 그것까지 회장이 만들어줄 순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나는 비전을 이루지 못하고 회사를 그만뒀다.

이제 나는 조직에 속해 있지 않다. 스스로 비전을 만들고 내 말을 경청하고, 칭찬하고, 보상해준다.
매일매일 내가 나에게 동기를 부여한다. 나 자신이 나의 리더다.


강원국 필자

작가다.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증권회사 홍보실, 대우그룹 회장비서실 등을 거쳐 대통령의 스피치라이터로 8년간 일했다. 저서로 『대통령의 글쓰기』, 『강원국의 글쓰기』, 『회장님의 글쓰기』가 있다. 최근에는 강연 등을 통해 ‘좋은 글쓰기’를 전파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