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다로운 규칙‧절차 뜻 ‘red tape’
  트럼프, 비상사태 선포하며 철폐 약속
#상업어음, 실물경제와 직결되는데
  은행은 절차 따지며 대출 지지부진
#기업 채무부담 줄인 ‘8·3조치’처럼
  목표 단순화한 긴급지원 정책 필요
#美연준은 민생안정 위해 직접 여신
  은행들, 실물경제 살릴 방안 찾아라

3월 13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마침내 손을 들었다.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해서 느긋하던 태도를 버리고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다. 그때 그는 의료행정의 ‘빨간 끈(red tape)’을 철폐하겠다고 약속했다. ‘빨간 끈’은 번거롭고 까다로운 규칙이나 절차를 말한다. 옛날 서양에서는 행정관청의 공문서를 빨간 끈으로 묶어서 보관했는데, 그 서류들은 많은 결재 단계를 거치면서 아주 더디게 처리되었다. 그래서 ‘빨간 끈’은 비효율, 관료주의의 상징이다. 트럼프의 말은, 목숨이 경각을 다투는 상황인 만큼 기존의 의료행정절차를 뜯어고치겠다는 뜻이다.

서양의 ‘빨간 끈’이 은유법이라면, 동양의 번문욕례(繁文縟禮)는 직유법이다. 번(繁)은 수북한 실타래를 말하고, 욕(縟)은 오랜 기간 정교하게 멋을 부린 자수를 말한다. 규칙이 실타래 같이 복잡하고, 절차가 수놓듯이 더딘 모습을 상상해 보라.

번문욕례를 만들고 지키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것이 매우 의미 있고, 하나도 버릴 게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한 발 물러서서 보면 코미디다. 그 코미디는 눈물과 한숨으로 끝난다. 1532년 스페인 침략군이 잉카 제국의 마지막 황제 아따왈빠와 조우했을 때 그랬다.

스페인군은 이교도와 전투하기 전에 항상 상대방에게 ‘요구서(Requerimiento)’를 낭독했다. 교황청의 명령이었다. 그 요구서는 하나님과 교황에 관하여 설명하고, 가톨릭교도들이 이교도에게 갖는 권리를 나열한 뒤, 이교도가 주권, 재산권, 사법권을 넘기지 않을 경우 ‘정당한 전쟁’이 시작된다는 선전포고다. 오랜 기간 이슬람교도와 싸우면서 다듬어진, 정교한 신학이론이자 번문욕례였다.

장황한 요구서가 스페인어로 낭독될 때 아따왈빠 황제와 원주민은 어이가 없었다. 더운 날 희한한 복장의 백인이 엄숙한 표정으로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는 동안 처음의 호기심과 불안은 웃음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지루한 요구서 낭독이 끝나는 순간 그 웃음은 울부짖음으로 변했다. 침략자들이 갑자기 총과 칼을 뽑아들고 도륙과 약탈을 시작한 것이다. 번문욕례로 시작된 신대륙의 잔혹한 정복사를 스페인은 ‘검은 전설’이라고 미화한다. 역사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잔인해서다.

상업어음 할인, 실물경제와 직결

교황청의 번문욕례는 강요하는 것도 많았지만, 금지하는 것도 많았다. 대부업이 그중 하나였다. 그러나 대부업자들은 머리를 짜내서 그 규제를 용케 풀었다. 무역상에게 운전자금을 공급하는 건 성경이 금지하는 대부업이 아니라고 교황청을 설득한 것이다.

이유는 이렇다. 이탈리아 무역선이 지중해를 빠져나가 대서양으로 나간 뒤 스웨덴에서 물건을 팔고 돌아오기까지 1년이 걸린다. 그동안 무역상은 먹고 살 길이 막막하다. 그러니까 그들이 버틸 수 있도록 자금을 대주는 것도 무역의 일부라고 보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결국 만기 1년 미만의 상업어음 할인은 교황청의 금지 목록에서 제외되었다. 다만 그 어음이 무역과 관계있다는 사실을 연대해서 보증해야 했다. 거래에 관계된 사람들이 어음에 연대배서하고 합동으로 책임을 지도록 했다. 그 원칙은 오늘날 각국의 어음법에 그대로 살아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의 어음법에는 배서의무(제11조), 부분배서의 금지(제33조), 어음채무자의 합동책임(제47조) 등이 열거되어 있다. 미국, 영국, 일본 등의 어음법도 마찬가지다. 오늘날 어음거래의 글로벌 스탠더드는 중세 대부업자가 남긴 유산이다.

중요한 것은 상업어음을 누가 갖고 있건, 맨 처음에 그것은 물품의 생산과 구매, 유통을 위해서 탄생했다는 사실이다. 그렇지 않은 어음도 있다. 약속어음은 물품의 생산·구매·유통과 상관없이 자금 융통을 목적으로 발행된다. 그래서 약속어음은 법률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채권과 똑같다. 영어로도 약속어음과 단기채권은 둘 다 bill 또는 note라고 부르며, 차이를 두지 않는다.

반면 상업어음(신용장이라고도 한다)은 물품의 생산·구매·유통과 직결된다. 그래서 상업어음을 할인하는 일은 실물경제를 뒷받침하는 활동이다. 그것이 바로 중세 대부업자들의 주장이었다. 따라서 은행이 상업어음만 잘 할인해 주면, 실물경제는 잘 굴러간다. 이런 생각을 진성어음(상업어음)주의라고 한다. 과거 은행업을 지배했던 금융철학이다.

금융과 실물경제 간극 벌린 은행들

그런데 20세기 들어서 그 원칙이 잊혀졌다. 대신 은행들은 담보부 대출과 채권 매매에 뛰어들었다. 위험이 적고 이익은 많다는 이유였다. 대신 실물경제활동과 거리는 멀어졌다. 은행업의 문제는 거기서 생겼다.

오늘날 은행에서 대출을 받으려면 여기저기서 재무제표, 확인서, 증명서, 감정서들을 수북이 떼어서 제출해야 한다. 실물경제활동과 대출의 관계가 멀어진 데서 오는 번문욕례다. 그 번문욕례가 귀찮은 직장인들은 높은 금리를 감수하며 대부업체를 찾는다. 직장인이 감내하는 높은 금리는, 제도권의 번문욕례를 벗어나려는 고비용이나 다름없다.

관공서에서 발급하는 각종 서류의 최종 목적지는 다른 관공서다. 그런 점에서 은행들은 관공서나 다름없다. 은행은 지자체나 중소벤처기업부 등 관공서에서 발급한 서류를 받는다. 그 서류를 뒤적이며 시간을 보내지만, 실물경제활동과의 관계는 살피지 않는다. 오로지 대출자격과 담보가치만 따진다. 실물경제에 기여하는 것보다는 원리금 회수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굳이 이런 현상을 금융이론으로 설명하자면, 상업은행이 투자은행화 되었다고 한다)

코로나바이러스로 타격을 입은 사람들에게도 은행은 아직까지 업무방법을 바꾸지 않는다. 그래서 자금이 급한 사람들은 신용보증기관으로 몰려가고, 신청서류가 밀려서 10% 밖에 처리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은행감독규정과 내규 때문이다. 그런데도 은행은 보증기관을 탓한다. “보증기관의 보증서 발급이 늦어져서 대출실행이 안되는데, 은행이 대출을 안 해주는 것처럼 비춰져서 답답하다”고 억울함을 호소한다. 적반하장이다.

감독당국과 은행은 기존의 업무방식이 지극히 ‘정당한 절차’라고 생각한다. 옛날 신대륙의 스페인군이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한 전쟁’이라고 생각했듯이. 감독당국과 은행은 서류 하나하나가 중요하고, 하나도 버릴 것이 없다고 믿는다. 그러나 위기에 처한 사람들에게는 눈물과 한숨거리일 뿐이다. 한시가 급한 사람을 마냥 기다리게 만들면서 은행원들이 정교한 번문욕례를 준수하는 모습은, 무방비 상태의 아따왈빠를 세워두고 스페인 침략군이 ‘요구서’를 장황하게 떠벌인 것과 다르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이 ‘빨간 끈’을 없애겠다고 한 날, 문재인 대통령은 “전례 없는 대책”을 당부했다. 하지만 은행실무에서는 “전례 있는 대책”이 정답이다. 번문욕례가 없어도 실물경제를 잘 떠받쳤던 과거의 대부업이 힌트다. 중세의 대부업자들은 어음 한 장만 보고도 금방 돈을 빌려 주었다. 옛 대부업자의 후예인 상업은행들은 투자은행을 넘보기 전에 자신들의 출발점을 돌이켜 봐야 한다. 온고지신(溫故知新).

긴급금융지원은 속도가 생명

그럼 무엇을 고쳐야 할까? 햄릿처럼 고민할 시간이 없다. 간단히 말하면, 정책당국의 목표부터 단순화해야 한다. ‘민생 지원’이라는 원대한 목표는 정부가 국회를 설득한 뒤 재정자금으로 돌파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러나 남의 돈, 즉 민간자금이 동반되는 금융지원은 목표를 아주 구체화해서 하나만 해결한다는 자세로 나가야 한다.

1971년 8·3조치가 그 예다. 10년간 연평균 성장률이 10%를 넘을 정도로 호황을 유지하면서도 기업들은 사채 의존도가 높아서 당시 매일 부도를 걱정해야 했다. 이른바 흑자도산이었다. 그때 정부는 모든 사채를 신고토록 한 뒤 신고된 사채계약에 법정금리를 적용했다. 그나마 3년 거치, 5년 분할 상환토록 했다. 사채의 족쇄에서 벗어난 기업들은 그때부터 생산과 수출에 전력 질주했다. 수익성이 좋아진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것이 오늘날 재벌의 탄생을 도왔다.

그때 정부의 목표는 아주 분명했다. 기업의 채무부담 경감. 다른 거창한 목표를 내세우지 않았다. 그리고 절차도 간단했다. 지금처럼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확인증이나 증명서를 떼어오지 않아도 됐다. 사채계약서 한 장만 은행창구에 제출하면 됐다. 그래서 전국의 사채 신고가 1~2주일 만에 끝났다.

요즘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에겐 걱정거리가 아주 많다. 그중에서도 임대료 걱정이 크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안다. 그래서 임대료를 깎아주는 ‘착한 임대료’ 운동이 자발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정부도 ‘착한 임대인’에게는 인하분의 50%만큼 소득세와 법인세를 감면키로 했다.

하지만 현재 상황에서는 정부의 도의적 설득은 또 다른 번문욕례다. 임대인을 설득하고 인하 폭을 흥정할 시간도 아깝다. 일정 면적 이하의 가게를 운영하는 사람이 임차계약서를 은행에 제시하면, 그것을 근거로 은행이 임대인 계좌로 임대료를 입금하는 방법을 쓰면 된다. 대출자격과 용도를 확인하기도 쉽고, 돈이 다른 곳으로 샐 염려가 없다. 신용카드사가 바로 이런 방식을 쓴다. 신용카드사가 판매자에게 우선 돈을 지급하고, 구매자에게 한 달 뒤 청구한다.

요컨대, 정부가 임대인을 불러 ‘착한 임대인’이 되도록 설득하는 과정은 그 다음이다!

한국은행도 실물경제 회복의 한 축

한국은행도 거들 수 있다. 진성어음주의에 입각해서 상업은행들의 ‘임대료 대출’ 재원의 일부를 공급하는 것이다. 물론 귀찮고 힘들다. 무수한 소상공인과 영세 자영업자의 임차계약서를 어떻게 일일이 확인하겠는가? 불안하기도 하다. 그러나 미 연준(Fed)은 그렇게 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뿐만 아니라 이번 코로나19 위기에서도 TALF(Term ABS Loan Facility)라는 특별대출 프로그램을 가동했다. 상업은행이 취급한 온갖 구질구질한 대출채권, 즉 자동차 할부금, 학자금 융자, 신용카드  할부금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파생금융상품(ABS)을 담보로 대출한다. 다만 금년 9월 말까지만.

미 연준은 이밖에도 여러 가지 긴급 대출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PMCCF, SMCCF, MMLF, PDCF, CPFF 등이다. 이것들은 모두 금융시장 안정을 위한 것인데 비해, TALF는 순전히 민생 안정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래서 건당 대출한도가 1억 달러에 불과하다.

중요한 것은 정부가 담당해야 할 민생문제 해결에 미 연준이 발을 담갔다는 점이다. 이것을 두고 “미 연준이 준 재정활동(quasi-fiscal activity)을 한다”고 비판하는 미국 시민과 경제학자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것을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은 코로나19 이전(BC)의 세계관에 갇혀있는 사람이다.

TALF를 더 적극적으로 옹호할 수도 있다. 그것이야말로 중앙은행 본연의 업무에 충실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중앙은행이건 상업은행이건, 자금공급의 기준은 운전자금이다. 예를 들어 한국은행법에는 대정부여신을 포함한 모든 여신의 만기를 1년으로 제한하고, 은행법에서도 상업금융업무, 즉 1년 이내의 예금과 대출을 은행업무의 근간으로 삼는다. 그런 시각으로 보면, TALF는 한국은행법과 은행법 취지에 부합한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중앙은행들이 늘 해 왔던 일, 즉 채권을 매입하는 것이야말로 법률 취지에서 벗어나는 면이 있다. 만기 1년 이상의 채권 매입은 사실상 설비자금 공급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 연준법(Section 14)에서는 채권의 매매를 ‘조작(operation)’이라고 낮추어 부른다. 채권의 매입을 어음할인이나 단기대출보다 떳떳치 못한 일로 보는 것이다.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 대부분의 중앙은행들이 요즘에는 환매조건부채권매매(RP) 방식을 활용한다)

요컨대, 민생을 살리기 위한 중앙은행의 단기여신, 즉 운전자금 공급을 부정적으로 볼 필요가 없다. 지금까지 그런 일을 하지 않은 것은 지금까지 미 연준이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세상이 달라지고 있다!

규정 까다로우면 정책 성공 어려워

다시 상업은행에 초점을 맞춘다. 은행 업무에서 번문욕례를 없애야 한다. 그것을 없애지 않으면 돈은 필요한 곳으로 흐르지 않는다. 엉뚱한 곳으로 샌다. 1930년대 대공황 당시 케인즈는 은행의 대출행태를 보고 “컵과 입술 사이에도 물 샐 구멍은 많다(There’s many a slip twixt cup and lip)”고 꼬집었다. 물을 퍼붓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목표하는 곳으로 물꼬를 터야 한다.

대출자격과 담보가치를 심사하는 것은 대출자금의 용도를 전혀 모를 때나 하는 번문욕례다. 지금처럼 지원해야 할 부문과 용도가 뻔히 보이고, 그 기간이 한시적일 때는 거기에 맞는 방법이 필요하다.

그 방법을 찾는 데 한국은행과 금융위원회만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은행 스스로 그 방법을 찾아야 한다. 치과의사들은 치료부위에 맞는 정교한 도구들을 스스로 고안하지 않는가? 의료당국이 치과도구까지 설계하지 않는다.

서민을 위한 정부대책과 금융지원 노력이 ‘빨간 끈’이 되어서는 안 된다. 코로나19 위기로 타격을 입은 사람을 두 번 울리는 ‘검은 전설’이 되어서는 더욱 안 된다.


차현진 필자

금융전문가. 서울대와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유펜) 와튼스쿨에서 공부했다. 대통령비서실, 미주개발은행(IDB)과 한국은행 워싱턴사무소장, 기획협력국장, 금융결제국장, 부산본부장을 거쳤다. 저서로는 <애고니스트의 중앙은행론>, <숫자 없는 경제학>, <금융오디세이>, <중앙은행 별곡>이 있으며 그동안 여러 매체에 칼럼을 써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