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7월 24일~8월 9일 열릴 예정인 제32회 도쿄 하계올림픽이 예정대로 열릴 수 있을까?

이 문제는 아베 신조 정권의 향후 정치적 명운은 물론 일본경제 나아가 일본 국가의 향배와도 밀접하게 얽혀 있는 문제다. 최근 코로나바이러스 사태(COVID-19) 발생 이후의 상황 전개로 보건대 도쿄올림픽은 연기 내지 중지(취소)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후생노동상과 도쿄도 지사를 역임한 마스조에 요이치(舛添要一)는 지난 16일 자신의 유튜브에서 “도쿄올림픽 개최, 중지, 연기의 확률은?”이라 자문하고는 이런 답을 내놨다. “개최는 10%, 중지는 50%, 연기는 40%.”

그에 앞서 12일 아베 총리와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 지사의 회동 때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일본올림픽위원회 쪽에서 연기 또는 중지 사실을 통고했으며 발표만 5월로 미루고 있다’는 관측까지 나왔다. (에모리캐피털 매니지먼트 주식회사 대표이사 에모리 데쓰(江守哲), <머니 보이스>) 일본 내 여론조사에서도 응답자의 60% 이상이 연기해야 한다고 보고 있고(취소까지 합하면 80%가 넘는다<아사히신문 보도>), 예정대로 개최돼야 한다는 응답자는 많아야 20%대에 지나지 않는다.

18일 아소 다로(麻生太郎) 부총리 겸 재무상의 “저주받은 올림픽” 발언도 어딘가 불길해 보이는 일본 내의 그런 분위기를 반영한다. 아소 재무상은 올림픽에 “40년마다 문제가 일어났다”며 “(코로나 감염 확대가) 일본만도 좋아진다고 해도 다른 나라에서 참가하는 사람이 없다면 열 수 없다”고 했다.

1940년에 열기로 돼 있던 도쿄올림픽이 일본의 중일전쟁 도발로 취소됐고,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은 냉전체제하에서 당시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데에 반발한 서방 쪽이 불참했다. 다시 그 40년 뒤인 올해 도쿄올림픽이 그런 저주에 걸려들었다는 것인데, 책임호도용인지는 모르겠으나, 두 번이나 일본 도쿄가 그런 구설수에 올랐다는 건 기구하다고 해야 하나.

도쿄올림픽 연기 또는 중단 결정이 내려지면 막대한 방송 중계권료나 입장료 환불 문제, 광고·후원 문제, 장소·시설 임대료 문제 등을 둘러싼 매우 복잡한 문제들이 발생하고 엄청난 경제적 손실을 감수할 수밖에 없게 된다. 올림픽 준비를 위해 투자한 최대 4조엔(약 40조원)에 이르는 투자분의 직접손실을 포함해서, 일본의 국내총생산(GDP)이 1.4%, 기업이익은 24.4% 주는 등 경제적 손실이 7조 8천억 엔에 달할 것이라는 계산도 나왔다. (SMBC닛코 증권)

‘2020 도쿄 올림픽’은 디플레이션 함정에 빠진 ‘잃어버린 30년’을 종식시켜 일본경제를 ‘정상적인’ 성장궤도에 올려놓겠다는 이른바 ‘아베노믹스’를 완성하고, 그것을 발판으로 삼아 정권의 최종 목표라고도 할 수 있는 개헌을 완수하겠다는 아베 총리와 그를 뒷받침하고 있는 최대 우파조직 ‘일본회의’가 이 모든 ‘성공’을 위해 설정한 그야말로 일생일대의 이벤트다. 만일 엄청난 에너지를 투입해 온 이 거대 이벤트가 실패한다면, 일본은 정치·경제적인 파산 위기에 내몰릴 수도 있으며, 아베 정권의 존속도 위태로워질 것이다. 개헌도 물 건너갈 공산이 크다.

아베 총리로선 최악의 경우 내년 9월까지의 자민당 총재 임기(=총리대신 임기)를 채우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벌써 후계 구도에 대한 설왕설래들이 매스컴에 등장하는 빈도가 잦아지고 있다. 그럴수록 이베 총리와 일본회의로서는 올림픽 ‘성공’에 더욱 미련을 가질 수밖에 없지 않을까. 일본정부가 발표하는 이례적인 코로나19 감염 추세 통계치 등 코로나 위기를 둘러싼 일본 안팎의 논란들은 모두 아베 정권 및 일본회의의 이런 정치적 욕망 또는 이해타산과 밀접하게 얽혀 있다.

IOC, 올림픽 연기‧취소를 이미 통보?

아베 총리는 지난 16일 주요 7개국(G7) 정상들의 화상회의 뒤 “인류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를 극복한 증거로 도쿄올림픽을 완전한 형태로 실현하겠다는 데에 G7이 지지를 보내줬다”고 말했다.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17일 올림픽을 당초 예정대로의 일정, 규모로 열겠다고 다시 확인했다. 아사히 등 일본 매스컴이 전한 스가 관방장관의 멘트는 “예정대로의 대회 개최를 향해 준비를 해나가고 싶다”였다. 하기우다 고이치 문부과학상은 “무관객 같은 것(경기)은 하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예정대로의 흔들림 없는 강행의지를 밝힌 것 같지만, “완전한 형태”로 경기를 하는 데에 G7이 지지를 보냈다는 아베 총리의 얘기나 “무관객” 경기는 하지 않겠다는 하기우다 문부상의 얘기는 ‘완전한 형태’의 경기가 불가능해질 경우 올림픽이 예정대로 열리지 않을 수도 있다는 해석들을 낳았다.

아베 총리의 발언이 나온 바로 그날 마스조에가 띄운 올림픽 개최 확률론은 예정대로 개최가 10%밖에 안 되는 이유를 이렇게 얘기한다. “코로나19 위기로 초토화된 이탈리아와 유럽, 긴급사태를 선언하고 엄청난 돈 풀기에 나선 미국을 봐라.” 마스조에가 연기보다 중지(취소) 확률이 더 높은 이유로 꼽은 건 “연기가 그렇게 간단하게 되는 게 아니다”는 것. 내년에도 여름의 세계수영대회, 세계육상대회 등 빅 이벤트 예정들로 꽉 차 있어 스케줄 조정이 어렵다는 것이다.

<다이아몬드 온라인>의 13일 기사도 도쿄올림픽의 향후 운명이 ①관객 없이 예정대로 개최 ②올해 가을 이후로 연기 ③내년 7월 이후로 연기 ④중지(취소) 중의 하나일 것으로 예측했는데, ①은 가장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봤다. ①과 ④로 갈 경우 물어줘야 할 티켓 값만 최대 900억 엔(약 1조원)이고, ②와 ③의 경우도 마스조에의 지적처럼 시설 임대료, 중개·중계료, 방영권료 정산 등의 문제들이 결코 간단치 않다. 연기할 경우 국제방송센터 장소와 발전소 임대료 등의 유지비만 해도 엄청난데, 일본 조직위 수입의 절반이 넘는 일본 국내 스폰서로부터 받을 돈 3480억 엔은 어떻게 되나. 중지든 연기든 차라리 일찌감치 결정해 버리면 500억∼1000억 엔을 절약할 수 있다는데, 올림픽에 미련이 많은 아베 정권은 마지막까지 결정을 미루면서 개최 가능성을 찾으려 할 것이다.

아베 총리의 16일 발언은 G7 정상들의 요구 내지 요청을 감안한 것이라고 봐야 할 텐데, IOC의 17일 성명과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의 말까지 합쳐 보면 G7 정상회의 분위기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IOC는 17일 임시이사회 뒤에 발표한 성명에서 예정대로 준비를 진행한다면서 “대회까지 4개월 이상 남은 지금 시기에 중요한 결단을 내릴 필요는 없다”고 했다.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은 “도쿄올림픽에 참가하고자 하는 사람들 모두의 몸 컨디션과 건강이 최우선이다. 선수나 코치, 서포트 팀을 지키기 위한 모든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고 했다.

평화의 제전인 올림픽에서 참가자들의 건강은 당연히 최우선 관심사일 수밖에 없는데, 이를 새삼 강조한 것은 물론 코로나19 사태 때문이다. 바흐 위원장이 “WHO(세계보건기구) 쪽 판단에 따르겠다”고 한 것도 같은 맥락. 대회 개최 일까지는 아직 4개월 이상 남았으니 지금 당장 개최하느냐 마느냐 여부를 결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은 결국 코로나 사태의 진행 추이를 좀 더 지켜보고 결정하자는 얘기다. 그런데 어조가 낙관적이지 않다. 개최 의지를 꺾지 않고 있는 아베 총리에게 일단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라고는 했지만, ‘개최 불가’ 쪽으로 이미 내부 결정이 내려져 있는 게 아니냐는 느낌을 준다.

다시 말하면, 개최 여부는 아직 미정이고 다음 달까지의 상황을 보고 결정하자는 게 아니라, 이미 예정대로의 개최는 어렵다는 결론을 내려 놓고 아베 총리나 일본의 국내 사정을 고려해 5월까지 코로나19 사태를 ‘올림픽이 개최 가능한 상황’으로 바꿀 수 있을지 일단 기다려 보고 만일 바꾼다면 결정을 번복할 수 있다고 IOC는 통지하지 않았을까.

드니 마세글리아 프랑스올림픽위원회 위원장이 <로이터 통신> 인터뷰에서 ‘5월까지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되지 않으면 올림픽을 열기 힘들 것’이라고 했고, 각국 올림픽 관계자들의 유사한 발언들이 잇따르고 있다. 늦어도 5월이라고 못 박는 이유는 예컨대 올림픽 참가 선수들을 비롯한 관계자들이 그때까지는 개최 여부 문제가 매듭지어져야 제대로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때까지도 결정되지 않으면 선수들부터 헛고생이 될지도 모를 훈련을 계속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코로나 사태는 5월은커녕 올림픽 개최일인 7월 24일이 돼도 수습될 것 같지 않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16일 코로나 사태가 “7, 8월까지 갈 수 있다”고 했다. 미국의 보건의료 전문가들이 그렇게 판단하고 있다는 얘기다.

아사히 등의 언론 보도에 따르면, 올림픽 참가 선수는 총 1만1000명쯤 되는데 지금까지 출전자 명단이 확정된 것은 57% 정도. 나머지 43%는 아직 미정이다. 축구, 농구, 복싱, 테니스, 배드민턴, 골프 등 많은 경기종목들이 코로나19 사태 때문에 아직 예선전조차 끝내지 못했다.

하기우다 문부상 얘기대로 ‘완전한 형태’의 경기에는 관중도 그 요소로 포함돼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되지 않아 관객이 안심하고 경기를 관전할 수 없는 상황일 경우에도 올림픽은 예정대로 열리지 않을 것이고, 아베 총리의 발언을 두고 보건대, 그것도 선수단의 신체적 안전 확보 문제와 더불어 G7 정상들이 한결 같이 요구한 올림픽 개최의 필수 전제조건이었을 것이다.

日정부의 괴이쩍은 코로나 감염 셈법

일본이 이런 개최 조건들을 충족시킬 수 있을까? 회의적이다. 지난 16일 오전 9시 현재 일본의 코로나19 감염 확진자는 1520명으로 전날 대비 34명이 늘었고, 사망자는 모두 31명이었다. 그런데 17일 밤 9시 현재 아사히신문 ‘코로나 감염 정보’ 종합란에 떠 있는 일본인 확진자는 859명, 사망자는 29명이다. 아사히를 비롯한 일본 매스컴이나 정부 발표 공식통계에선 이처럼 크루즈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 내의 감염 및 사망자 수는 포함시키지 않는다. 뉴욕타임스도 지적했듯이 아베 정권에 “고분고분한” 일본 언론의 이런 보도 행태는 가능한 한 올림픽 개최에 불리한 상황이나 통계 수치를 드러내려 하지 않는 아베 정부의 의지이자 일본 국민 대다수의 바람을 반영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미 1500명대를 넘어선 확진자와 그 증가 추세만으로도, 이를 저지하지 못할 경우 예정대로의 대회 개최가 어려울 만큼 사태는 엄중하다. 그런데 CNN 등도 보도했듯이 일본의 실제 확진자 수와 코로나 감염 실태는 발표치의 10배 이상에 이를 것이라는 관측들이 많다. 아베 총리가 일본이 중국, 한국, 이탈리아, 이란과 달리 코로나19 사태에서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주장한 근거는 인구 1만 명당의 감염자 수였다. 그에 따르면 일본은 인구 1만명당 0.06명으로 그들 나라보다 훨씬 적다.

그러나 이는 너무 뻔한 눈속임이다. 각국의 감염자 수는 해당 나라들이 얼마나 제대로 감염 여부를 확인하고 사실대로 공개하느냐에 달렸다. 많이 조사하면 할수록 감염자는 당연히 늘어날 수밖에 없고, 적게 조사하면 할수록 그 반대가 된다. 일본 정부는 이제껏 감염 조사에 적극성을 보인 적이 없다. 그런 문제점에 대한 지적들이 일본 안팎에서 제기되자 일본 정부도 하루 3600명을 검사할 수 있다고 했지만 실제 검사 횟수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하루 최대 900회였다. 이는 뉴욕타임스 등이 지적한 대로 한국의 20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

한국과 일본이 비슷한 조건임을 상정해서 이를 토대로 일본의 확진자 수를 추정해 본다면 일본 확진자 수는 적어도 3만 명 이상이 돼야 한다. 서방 언론들이 일본 정부가 발표한 코로나19 확진자 및 사망자 수는 실제의 10분의 1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며, 일본이야말로 코로나 사태의 ‘핫스팟’일 수 있다고 추정한 데에도 그런 의심이 작용했을 것이다. 물론 이런 단순 환산은 비교를 위한 편의적 계산 결과일 뿐 실제가 아니다.

그럼에도 그런 의심이 불식되지 않는 데에는, 예컨대 체온 37.5도 이상의 열이 3일 이상 지속될 경우에만 코로나19 검진을 받을 수 있다거나, 그런 고열 상태가 3일이 지났다 하더라도 실제로 코로나19 감염 여부를 진단받을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사례가 허다하다는 보도들을 통해 짐작할 수 있는 일본의 실상과 정보의 불투명성, 그로 인한 불신이 배경에 있다.

한마디로 일본 정부는 코로나19 감염 조사를 가능한 한 억제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도쿄올림픽 개최를 위해!
그런데 이런 뻔한 통수가 통할 리 없다. 공영방송 NHK 간부들을 친(親)아베파 인사로 채우는 등의 언론 길들이기, 내각·여당 내의 반대파 배제를 통해 올림픽 연기(취소) 목소리를 잠재운 일본 국내에서나 통할 얕은 수가 국제사회에서 통용되긴 어렵다. 이 문제는 심각해서 “일본을 민주주의 국가라고 할 수 없다”는 얘기들이 일본 내부에서조차 나오고 있다.

사망 원인, 일반 폐렴? 코로나19 폐렴?

혹자는 그럼에도 일본의 코로나19 감염 사망자 수가 저렇게 낮은 것은 확진자 수가 조작이 아니라 실제상황에 가깝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 아니겠느냐는 식의 주장을 펴기도 한다.

하지만 거기에도 허점이 있다. 일본의 원인별 사망자 수 통계에서 3위를 차지한다는 폐렴 사망자의 경우, 사망 직후 부검 없이 곧바로 화장 처리했다는 사례들이 최근 보도되고 있다. 15일 사망자 시신 처리를 업으로 삼는 일본의 염습사(납관사)가 폭로하고 일본 누리꾼들이 SNS에 올려 국내에도 전해진 일본 정부지침을 보면, 지금 폐렴 사망자의 경우 코로나19 감염 여부 진단검사도 없이 24시간 내 일괄 화장하도록 하고 있다.

코로나19 사망자일 경우 24시간 내에 친족 5인 이내의 입회 아래 신속하게 화장 처리하는 것은 전염을 막기 위한 합리적 조치일 수 있지만, 문제는 그렇게 처리되는 시신들 중엔 코로나 감염 여부를 확인하지 않은 미진단 시신들이 많이 포함돼 있다는 점이다.

일반 고령자의 경우에도 폐렴 사망자가 많지만, 코로나19에 가장 취약한 사람 또한 고령자 그룹이다. 이제까지 조사된 바로는 30대 이하 코로나19 감염자의 치명률은 1%도 안 된다. 하지만 고령자들은 5~9%에 이르고 나이가 많을수록 그 비율은 높아진다.

만일 코로나19 감염에 따른 폐렴 때문에 사망했는데도 이를 일반 폐렴사로 처리해 버린다면, 코로나19 감염으로 인한 사망자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고령자 사망통계가 크게 왜곡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일본의 코로나19 사태의 진상 파악과 그것을 토대로 한 제대로 된 대처방안을 기대하긴 어렵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과연 지금까지의 일본 정부 발표를 곧이곧대로 믿을 수 있을까?

코로나19 소극 대처는 의도적 선택

만일에 일본 정부가 ‘올림픽 성공’에 지나치게 집착한 나머지 실제 상황과는 다른 통계를 발표하고 있다면, 일본은 조만간 감염자 및 사망자의 기하급수적인 증가를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다. 서방 언론들이 일본을 코로나19 감염의 핫스팟이라 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그런 비극적 사태가 설사 현실화하더라도 통계상으로는 그런 현실이 상당 부분 감춰지거나 누락될 수 있는 구멍이 뚫려 있다. 그것은 앞서 얘기한 통계 조작을 통해서도 가능하지만, 코로나19 감염병 자체의 특성이 그런 착시를 야기할 수 있다.

코로나19 감염병은 전파 속도가 매우 빠르지만 치명률은 그다지 높지 않다. 젊은 사람들은 1% 이하이고 전체 평균 치명율도 2~4% 정도다. 고령자들에게는 가혹할 수 있지만 인구의 대다수가 감염되더라도 가볍게는 감기를 앓는 정도의 불편만 감수하면 코로나19의 유행을 사실상 방치하는 게 오히려 득이 된다고 볼 위정자들이 없지 않을 것이다. 많게는 자국민의 60~80%가 코로나19에 감염될 것으로 예측하면서도, 그런 감염률을 낮추기 위해 확진자를 적극적으로 찾아내는 노력을 기울이기보다는 그냥 그 높은 감염률을 감수하면서 유증상자, 중증 감염자 치료에 주력하는 것이 비용 대비 효과 측면에서 훨씬 더 유리할 수도 있다.

지금 확진자 검색에 상대적으로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영국이나 북유럽 국가들이 실제로 그런 선택을 하고 있다. 이것도 나름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다. 고령자들의 희생만 어느 정도 감수한다면 최대 60~80%의 감염자들이 감기·독감 정도의 불편이나 고통, 비용으로 코로나19 항체를 갖는 면역능력을 갖춤으로써 사회적 비용을 엄청나게 줄일 수 있다는 건 대단한 유혹일 수 있다. 이런 선택에는 예컨대 한국과 같은 전면적인 조기 신속대처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국가적 대비태세나 역량상의 한계도 작용할 것이다.

일본 조야가 한국이나 이탈리아의 코로나19 감염 폭증 사례를 지목하면서 한국, 이탈리아의 적극적인 확진자 검색 노력이 ‘의료 붕괴’를 자초하는 것이라며 일본의 소극적 대처를 열심히 옹호하고 있는 것도 크게 보면 그런 선택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일본 조야는 한국처럼 적극적으로 확진자를 조기 검색해 내려는 노력 때문에 이들 국가의 지역별 대처 가능한 의료 수용능력을 초과하면서 일어나는 일시적 대처불능 상태를 ‘의료 붕괴’라 지칭하면서 아베 정부의 소극적 대처가 오히려 현실적이고 현명한 선택이라 주장한다.

하지만 영국 등의 선택 방향에는 몇 가지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무엇보다 상대적으로 과도한 고령자들의 희생을 뻔히 예측하면서도 방치하는 인권·윤리상의 중대한 문제가 있다. 이는 고령자들을 사회적 생산력이 떨어지고 비용만 상대적으로 큰 존재로 규정하면서 그들을 합법적으로 ‘폐기처분’하는 현대판 ‘고려장’(실제로 존재하지 않은 허구라는 이견이 있지만)을 연상케 하는 냉혹하고 비인간적인 야만일 수 있다.

무책임 요행주의로 국민 생명 위협

그리고 무엇보다 아직 아무도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사태의 끝을 경험해 보지 못했다는 문제가 있다. 이 사태가 그들 나라나 당국자들이 예측하거나 바라는 정도의 손실 내지 희생만 내고 끝날 것이라는 아무런 보장도 없다는 사실을 먼저 직시해야 한다. 그렇게 사실상 방치했을 때 감염자가 인구의 최대 60~80%선에서 멈출지, 고령자들의 희생이 그 정도 선에서 정말로 그칠지, 확산과정에서 새로운 변종에 의해 훨씬 더 위험한 감염이 복합적으로 진행될지 끝까지 가보지 않고는 그 결과를 정확하게 알 수 없다.

게다가 다중의 대인접촉 기피나 보수적 소비심리를 더욱 악화시켜 총체적인 경제·사회적인 대붕괴를 초래할 수도 있다. 말하자면 영국식 대처는 이제까지의 숱한 바이러스 유행 사례에서 착안한 아주 영리한 선택일 수 있고 성공할 가능성이 아주 없다고 할 순 없지만, 그럴 가능성이 희박한 매우 위험한 도박일 수 있다. 미증유의 비극으로 가는 무책임한 요행주의일 수도 있는 것이다.

게다가 일본의 지금 선택은 애초에 그런 생각과 계산, 즉 나름의 철학과 구상을 가지고 시작한 것이 아니라, 도쿄올림픽이라는 큰 정치적 이벤트를 어떻게든 성사시켜야 할 필요에 쫓긴 무리한, 대책 없는 선택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만일 아베 정권이 처음부터 영국식 대처방식을 선택지로 고려했다면 크루즈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의 승객 3700여 명을 그렇게 무대책으로 봉쇄해서 방치할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육지로 하선시켜 각자 알아서 하도록 내버려뒀어야 하지 않을까.

한국과 이탈리아에서의 ‘의료붕괴’ 주장도 애초에 그런 사태를 예견해서라기보다는 그렇게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일본의 현실, 또는 <뉴욕타임스> 등이 지적했듯이 아베 정권의 무능과 오판을 호도하고, 실패를 정당화하기 위한 방편일 가능성이 짙어 보인다. 게다가 한국과 이탈리아의 코로나19 대처방식은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이탈리아는 초기에 확진자 검색에 적극적이었다는 점에서는 한국과 닮은꼴이었다. 하지만 이탈리아는 감염자가 급증하자 진원지를 봉쇄하고 유증상자 및 중증 감염자들의 치료에 주력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 적극적인 검색으로 초지일관한 한국과는 다른 길을 갔다. 그 결과는 미국 당국자들도 공개적으로 거론하고 있는, 확산 억제에 성공한 ‘한국형’과 확산을 가속시킨 ‘이탈리아형’ 대처방식으로 갈라졌다.

만일 일본에서 확진자와 사망자 수가 급증하거나, 또는 그렇지 않더라도 지금 같은 대처방식에 대한 의심이 불식되지 않는다면 설사 통계수치가 낮더라도 도쿄올림픽 경기장에 관객들이 몰려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런 불신 속에서 외국 선수와 관객들이 안심하고 올림픽 경기를 치르거나 보려고 일본으로 갈까? 자칫 적게는 수십 명에서 많게는 수천 명에 이를 선수단들이 도쿄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로 무장(감염)하고 마치 점령군단처럼 파견국에 진군해 오는 상황을 사람들은 상상하게 될지도 모른다. 전염되지 않을 것이라는 안전성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사람들은 도쿄로 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미국,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영국 등 주요국에서 코로나19 확산세가 멈추지 않는다면 그들 나라가 자국 선수단을 꾸리고 파견할 여력이 없을 것이다. 아소 다로 재무상이 얘기했듯이 설사 일본 정부가 자국 내 코로나 사태를 5월까지 완전히 제압한다 하더라도 주요국들이 선수단을 파견할 처지가 못 된다면 당연히 올림픽은 열릴 수 없거나 열리더라도 반쪽짜리 대회가 될 수밖에 없다.

트럼프 대통령도 얘기했듯이 7, 8월 이전에 지금 한창 코로나19 확산 국면을 맞고 있는 유럽연합(EU)의 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 독일, 그리고 영국 등이 사태를 수습할 수 있을까. 더욱이 5월까지 개최 여부를 확정해야 한다면 그 시한이 몇 주밖에 남지 않았다.

우익 달래려 한‧중 입국규제 강화한듯

지난 3월 초에, 그때까지 코로나 사태에 거의 손을 놓고 있는 듯했던 아베 정부가 별안간 예고나 관련 부서와의 사전 협의도 없이 전국 초중고교 휴교조치를 내렸다. 학사 일정이 흔들려버린 학교의 교사와 학생들, 아이들을 어딘가에 맡겨야 하는 맞벌이나 홀로 아이를 키우는 학부모들의 혼란과 반발 등을 전혀 감안하지 않은 아베 총리 쪽의 일방적이고 전격적인 결정이었다.

그리고 뒤이어 한국인과 중국인들에 대해 3월 말까지의 사실상 일본입국 전면 금지조치를 발표하고 이런 조치들을 정당화하는 특별조치법(개헌을 위한 최후의 시도를 염두에 둔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의 국회 통과 등 중요한 조치들을 한꺼번에 쏟아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요인이 작용했을 것이다.
먼저 이런 움직임엔 올림픽 개최 여부를 둘러싼 일본과 IOC 간의 논의가 밀접하게 연관돼 있지 않았을까. 예컨대 만일 그 즈음 일본의 현 상태로는 도쿄올림픽은 ‘개최 불가’라는 쪽으로 논의가 수렴됐고, 그런 변화들이 감지됐을 때 아베 정권 수뇌부는 설사 부작용이 있더라도 일종의 충격요법을 써서 그렇게 대처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하지 않았을까. 상황을 바꾸기 위해 일본 정부가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대내외에 과시하면서 논의 흐름을 바꿀 시간을 벌려고 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미 너무 늦었다. 아베 정부는 코로나19 발생 초기에 움찔하며 긴장한 듯했지만, 중국에서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자 당혹감 속에 대처 방향도 없이 우왕좌왕하다 시간을 허비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아베 정권이 구상한 도쿄올림픽 이벤트와 그 이후 일본의 대내외정책에서 중국이 차지하게 될 막강한 비중 때문에 더욱 피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도쿄올림픽의 최대 ‘고객’이 중국인일 것이고, 그런 점을 더욱 뚜렷이 부각시킬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일본 국빈방문이 4월로 예정돼 있었으며, 이런 일련의 대형 행사 및 정치 이벤트들을 실마리로 미중 패권경쟁 속에 존재감을 잃어가는 일본의 위상을 제고하고, 효력을 다해가던 ‘아베노믹스’에 중국의 인적·물적 자원을 끌어들임으로써 쇠퇴해가는 일본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자 했을 ‘중국의 효용가치’가 아베 정권의 눈을 멀게 했을 것이다.

지난해 10월 소비세 인상(8%→10%) 이후 더욱 확연해진 소비 위축과 경기 침체 기미도 가세했을 것이다. 그것은 코로나19의 치명률이 낮아 유행성 감기나 독감 정도로 지나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요행 쪽에 더욱 기대게 만들지 않았을까.

그런 기대는 3월 6일자 <뉴욕타임스>도 지적했듯이, 지난 2월의 <다이아몬드 프린세스> 처리와 관련한 오판과 무능으로 국내외로부터 비판과 비난이 쏟아지면서 산산이 깨어지기 시작했다. IOC 입장에서도 이미 그때부터 ‘개최 불가능’ 쪽으로 가닥을 잡기 시작하지 않았을까. 알고 보니 아베 정권은 올림픽을 성사시킬 만한 아무런 무기도 대안도 없었던 것이다. 코로나19뿐만 아니라 지난해 몇 차례의 태풍이 일본열도를 휩쓸면서 불거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의 현재진행형인 방사선 오염문제도, 아베 총리가 올림픽 유치 때 호언장담했던 ‘언더 컨트롤’ 상태가 아닐 공산이 커졌다.

아베 정권 강경조치의 또 한 가지 이유는, 아베 장기집권의 토대라고 할 수 있는 우익세력 지지 다지기라는 지적들이 많다. 아베 지지와 반대가 ‘40 대 40’으로 갈리는 일본 정치지형에서 이른바 우파 ‘집토끼’를 놓칠 경우 정권차원에서 위기를 맞을 수 있다.

아베가 최근 들어 중국에 적극 추파를 던지는 행위는 골수 지지 세력인 극우파의 반발을 샀다. 극우세력은 시진핑의 일본 ‘국빈방문’ 형식에 극도의 거부감을 갖고 있는데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전면적인 중국인 입국금지 조치를 줄기차게 요구해 왔다. 이 점은 한국 우파와 판박이처럼 닮았다. 한국 우파와 이데올로기적 동지인 일본 우익은 식민주의 잔재인 종족적 우월감을 앞세우고 줄기차게 한국과의 국교 단절까지 주장하는 혐한의 본거지다. 한국인에 대한 갑작스런 사실상의 입국금지는 그런 우익들의 요구까지 계산에 넣은 조치였을지도 모른다.


‘포스트 아베’에도 희망 없는 자민당

올해 도쿄올림픽 개최가 무산될 경우 닥쳐올 정치·경제적인 충격파를 아베 정권이 견뎌내기는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시진핑 방일이 무산되고 뒤이어 도쿄올림픽의 기대도 무너지고 경제마저 코로나19 사태의 글로벌 충격파로 더욱 휘청거린다면, 뉴욕타임스가 인용한 마스조에 요이치의 지적처럼 정권 내부의 모든 반대 목소리를 죽이고 관료들을 안주하게 만듦으로써 부패하고 낡고 무기력해진 아베 정권의 장기집권 폐해 속에서 현상을 타파할 동력을 기대하긴 어려울 것이다. 오직 다른 대안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온갖 스캔들로 얼룩진 아베 정권이 상당한 지지율을 확보할 수 있었던 시절도 지나가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분열된 일본 야당은 여전히 지리멸렬하고 언론은 정권에 철저히 길들여져 있는 민주주의 부재 속에서, ‘포스트 아베 시대’의 대안도 없다면 그나마 익숙해진 ‘악마’를 따라갈 수밖에 더 있겠느냐는 브래드 글로서먼(Brad Glosserman) 다마대학 교수의 탄식도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미국 컬럼비아대학의 일본정치 전문가 제럴드 커티스(Gerald Curtis) 교수도 무능한 야당이 이런 상황을 유리하게 활용할 가망도 없고 집권당 내에서도 유권자들의 냉소 및 불신과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이런 엄중한 난국 속에 정권을 떠맡겠다고 나설 인물이 없을 것이라고 본다. 아베 외에 마땅한 대안이 없는 현실이야말로 자민당을 낙후와 퇴락으로 몰고 가는 고질적인 문제이자 오늘날 일본 쇠락의 원인이자 그것을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병증일 수 있다.

지난 12∼13일 이틀에 걸쳐 아사히신문에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를 ‘후계 총리’로 앉히고,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내각 관방장관이 그와 제휴해 아베 정권에서처럼 실세가 되게 만든다는 스가-기시다의 제휴 구상에 대한 기사가 실렸다. 기시다가 지금 회장을 맡고 있는 자민당 내 유력 파벌 고치카이(宏池会) 명예회장인 고가 마코토(古賀誠)가 이 제휴 가능성을 띄워 올리고 있다.

최근 일련의 돌출적인 아베의 조치들이 취해진 과정에서 아베의 최측근이면서도 철저히 배제당한 것으로 알려진 스가는 그 자신이 차기 총리로 거론돼 온 아베 내각의 실세이다. 아베 내각에서 외무대신, 방위대신을 역임했고 지금은 당 정무조사회장을 맡고 있는 기시다를 스가와 함께 엮은 차기 정권 구상이 거론되는 것을 보면 이미 올림픽 무산 이후 정계 변화를 염두에 둔 작업들이 구체화되고 있는 게 아닐까.

고가 마코토는 반대의견을 용납하지 않는 아베의 장기집권체제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지닌 것으로 알려졌으나 그가 미는 스가-기시다 제휴가 성사되더라도, 과거지향의 낡아가는 아베 자민당 우파지배체제 하에서 어떤 차별성을 지니고 있을지, 회의적이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둘째 아들 고이즈미 신지로(小泉進次郎)가 신세대 정치리더로 각광을 받고 있으나 아베 내각의 환경대신이 된 뒤 그의 행보도 별로 새로울 게 없는, 일본정치에서 흔해빠진 세습정치인의 또 하나 사례에 지나지 않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결국 아베든 ‘포스트 아베’든 적어도 상당 기간 일본에서 급변하는 시대를 선도하는 정치적 쇄신이나 최소한 거기에 부합하는 새로운 대내외 전략을 기대하긴 어렵지 않겠는가.

한승동 / 메디치미디어 기획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