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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등장은 재앙?

“한국 보수세력에게 트럼프 대통령은 ‘내 편(ally)’인 것처럼 보였다. 북에 대한 그의 험한 말투, 군사주의적 시각과 진보(liberal) 정치에 대한 경멸 등 모든 것이 지난 수십 년간 한국을 지배해 온 생각(사상)과 완벽하게 맞아떨어졌다. 하지만 트럼프가 집권한 지 약 1년 반이 지난 지금 수세에 몰린 한국 보수 운동에게 그는 재앙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지난 15일 <워싱턴 포스트>는 오래도록 북에 대한 깊은 적대감과 한미 군사동맹 지지를 토대로 한국을 지배해 온 정치적 우파세력이 트럼프-김정은 싱가포르 회담 때문에 ‘정체성 위기(identity crisis)’에 빠졌다고 전했다.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가 “나는 아직도 (그 회담을) 이해할 수 없다”며 했다는 다음과 같은 말이 그것을 압축적으로 드러낸다. “미국 정부가 한국 좌파 정부를 도와줄 것이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문재인 정부를 굳이 ‘좌파’로 규정하면서 참혹했던 지방선거 패배의 책임을 미국 탓으로 돌리려는 면피성 의도도 엿보이지만, “상상도 할 수 없었다”는 말에서 느낄 수 있는 당혹과 혼란은 과장만은 아닐 것이다.

그런 당혹과 혼란, 즉 정체성 위기 징후를 16일 <아사히 신문>에서도 확인했다.

“‘북조선(북한)에 최대한의 압력을 계속 가한다는 데 미국과 완전히 일치했다’고 강조하던 아베 총리가, 3월에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미 대화 쪽으로 기울자 ‘북조선의 변화를 평가한다’고 환영 자세로 전환했다. 그런데 5월에 미국이 예정됐던 북미회담 중지를 발표하자 세계에서 가장 먼저 ‘트럼프 대통령의 판단을 존중하고 지지한다’는 뜻을 표명했다. 하지만 북미회담이 다시 추진되자 ‘회담에 기대를 건다’고 했다. 이게 전략인가 맹신인가. 철저한 대미 추종은 GHQ(패전 직후의 일본을 통치한 미 점령군사령부) 점령 때보다 더 심해 보인다.”

미국 눈치만 보며 우왕좌왕하는 ‘아베 외교’가 도대체 어디로 가고 있느냐며 질책하는 사토 다케쓰구 <아사히> 편집위원의 칼럼(‘정치단간’)이다. “모든 옵션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있다”며 전쟁 불사까지 외쳤던 미국을 일관되게 지지했던 아베의 말 바꾸기와는 좀 다르긴 했으나, 한국의 보수세력 역시 애초부터 출구 없는 대북전략을 고집했다. 그 때문에 트럼프 등장 이후의 정세 급변에 제대로 대처할 수 없게 된 점은 일본과 판박이처럼 닮았다. 아베 정권의 대북정책 실패를 통해서 보면 한국 보수세력의 대북정책 실패가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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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대북정책 실패를 보면 한국 보수의 실패가 보인다

2002년 9월에 고이즈미 준이치로 당시 일본 총리가 평양을 전격 방문해 북일 정상회담을 열고 국교정상화 추진 등을 담은 ‘평양선언’을 발표했다. 2000년의 6·15 남북 정상회담과 그에 이은 북미대화가 몰고 온 충격파에 대한 일본 나름의 대처였다. 고이즈미 정권의 시도는 그러나 그 다음달인 10월 미국 대북 특사 제임스 켈리 국무부 차관보가 평양 방문중에 터뜨린 북의 ‘농축우라늄’ 개발 소동 여파로 좌초된다. 그때 그 북일 드라마 파탄의 주역이 당시 고이즈미 총리를 수행한 지금의 아베 총리다.

아베가 북일 접근을 가로막는 데 활용한 무기는 ‘일본인 납치’문제.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고이즈미 총리에게 일본인 납치 사실을 처음으로 직접 털어놓으면서 좌익 맹동분자의 소행이었다며 사죄하고 재발 방지까지 약속했다. 북 ‘최고 지도자’의 그 파격적인 ‘고백’은 북일 수교로 가겠다는 강렬한 의지의 표명이었다. 뿐만 아니라 북은 13명의 피랍인 중에 생존자 5명을 일본에 일시 귀환시키는 데도 동의했다. 납치문제는 북과 일본이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국교 정상화 노력과 병행해 갈 경우 해결될 가능성이 충분히 있었다.

그러나 일본은 5명을 일단 다시 북으로 돌려보내기로 했던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대대적인 반북 캠페인을 벌이면서 식민지 지배 사죄, 국교 수립, 그리고 그 뒤의 경제협력(배상금 포함) 등에 합의한 ‘평양선언’을 사실상 파기해버렸다. 그것을 주도한 사람이 아베 부장관이었다. 그는 빌 클린턴 정권이 추진했던 경수로 건설(케도=한반도 에너지개발기구) 등의 북미 접근을 일방적으로 파기한 미국 조지 부시 정권(2001~2009)의 대북 강경책에 편승했다. 아베는 납치 문제를 전면에 내건 대북강경책을 정치적 출세의 기반으로 삼아 2006년에 총리 자리에 올랐다.(제1차 아베 내각) 개헌을 포함한 강력한 우경화 노선을 표방했던 아베는 1년 뒤 총리직에서 물러났다가 2012년 제2차 내각을 꾸렸고 지금까지 장수 총리로 군림하면서 납치문제 해결 3원칙을 고집하고 있다.

“(아베는) 납치문제를 ‘우리나라의 가장 중요한 과제’로 선언하고(제1원칙), ‘납치문제의 해결 없이는 북조선과의 국교 정상화도 있을 수 없다’(제2원칙)며 평양선언을 휴지조각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납치문제는 (이미 해결됐다는 북의 주장과 달리) 미해결이며, 피랍자는 전원(13명)이 생존해 있다, 그들 모두를 즉각 귀국시키도록 요구한다(제3원칙)는 폭론(暴論)을 방침으로 세웠다.”(와다 하루키 ‘북미 정상회담-무엇을 시작해야 하나’, <세카이> 2018년 7월호)

와다 교수는 이 아베 3원칙으로 “북일 국교정상화 교섭은 끝장났고”, 북과의 외교교섭을 정지시킨 것은 “북조선의 붕괴를 기다리겠다는 것이나 같다”고 지적했다. 당시에도 납치문제는 북과의 대화를 지속하면서 국교 정상화와 병행해야 해결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이 있었으나 아베는 묵살했다. 그는 지금까지 3원칙을 고집하면서 피해자 가족들에게 자신만이 납치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해왔으나 16년이 지난 지금까지 전혀 진전이 없다. 오는 9월의 자민당 총재선거에 또 출마해 제3기 내각을 만들 구상을 하고 있는 아베가 출마의 변으로 앞세우고 있는 것도 자신만이 납치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아베는 애초에 대화를 통한 납치문제 해결 방식은 생각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와다 교수가 지적했듯이 그는 북이 붕괴하기를 기다리거나, 북이 계속 ‘악마적’ 적대세력으로 남아 자신의 집권과 일본 재무장에 유리한 환경이 조성되는 것을 즐겼을지도 모른다.

 

비핵개방 3000과 대박론

2008년 7월 금강산 관광객 사망 사건을 계기로 얼어붙기 시작한 남북관계는 북의 경직된 자세 탓도 크지만, 남쪽의 대응도 지혜롭진 못했다. 이명박 정권이 핵심 국정과제로 내세웠던 대북정책이 ‘비핵 개방 3000’이다. 북이 핵을 폐기하고 개방하면 10년 안에 북한주민 1인당 소득을 3000달러로 올려주겠다는 것이었는데, 선핵폐기 후경제지원은 아베 정권이 내세운 일본인 납치문제 3원칙과 골격이 닮았다. 이쪽이 요구하는 선행조치를 북이 먼저 완수해야만 이쪽이 움직이겠다는 논리구조다. 이는 어떤 식으로든 북을 대화에 끌어들여 문제를 해결하겠다기보다는 자신들이 요구하는대로 북이 먼저 변하거나, 붕괴하기를 기다리겠다는 것이다. 버락 오바마 정권도 그런 자세를 고수했다. 박근혜 정권의 ‘대박’론도 그 연장이었다.

‘선핵폐기 후경제지원’은 ‘선핵폐기 후제제완화’라는 지금의 미국, 일본과 한국의 대북 강경론자들 논리와 다르지 않다. 북으로부터 “무조건 일방적인 무장해제부터 하라니 우리가 패전국이냐”는 반발을 산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 조건부의 일괄 타결이 그것이다. 트럼프 정권조차 실행 불가능한 그 방식을 포기하고 단계적 쌍방 동시행동식, 즉 북이 비핵화를 향한 조치들을 단계적으로 취해나가는 것과 비례해서 미국도 대북 제재조치를 단계적으로 완화해가는 쪽으로 방침을 바꾸고 있는 듯하다.

일본과 한국의 보수우파세력은 트럼프-김정은 만남 자체를 이해할 수 없었겠지만, CVID를 포기하는 것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의 정체성 위기와 당혹스런 갈짓자 대북 행보가 거기서 비롯됐다.

 

 

바뀐 세계구조, 선택지는 하나뿐

2007년에 오스트레일리아 국립대 아시아태평양학연구소의 개번 매코맥 명예교수가 <종속국가 일본>이라는 책을 냈다. 한마디로 일본은 미국의 ‘속국’이라는 얘긴데, 1970~80년대 잘 나가던 시절의 자민당 정권 핵심인물 고토다 마사하루도 “일본은 미국의 속국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을 남겼다. 속국이란 식민지의 다른 표현일 수 있다. 매코맥 교수는 일본 보수우익의 민족주의·국가주의 강화가 이런 대미 종속성을 감추거나 얼버무리기 위한 것이라고 갈파했다.

일본이 미국의 속국이면, 그 미국의 종용으로 일본과 수교하고 ‘경제협력자금’ 형식으로 일본 돈을 받아 경제개발을 시작한 군사정권 시절의 한국은 어찌 되나.

<영속 패전론>을 쓴 일본 정치학자 시라이 사토시는 일본이 속국이지만 전쟁범죄를 부인하고, 미국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민족주의를 강화하면서 아시아에서 미국 다음의 2인자로 군림할 수 있었던 것은 “냉전”과 아시아에서 비교대상이 없었던 막강한 경제력을 토대로 한 “일본 국력의 돌출성” 덕이었다고 했다.(<일본 열화(劣化)론>, 2014) 그는 냉전 붕괴에 이어 일본 국력의 아시아내 절대우위가 사라지고, 미국 일극주의도 무너진 지금 보수우파세력의 기존 세계관이나 전략이 더는 통하지 않게 됐다고 본다. 시라이와 대담한 가사이 기요시도 민주당 정권이든 공화당 정권이든 미국의 대일정책, 대아시아 정책은 변했다면서 이렇게 얘기한다. “미국의 동아시아나 일본에 대한 자세는 명백히 변하고 있다. 미국이 자의적으로 변한 게 아니라 세계구조 자체가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베는 이런 사실을 (제대로)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

트럼프 등장 이후의 미국 변화에는 트럼프의 개성도 작용했겠지만 그런 세계구조의 변화가 짙게 반영돼 있다. 트럼프에게 중요한 건 이념이나 가치가 아니라 거래와 이익이다. 가치도 따지고 들어가면 반성 않는 전범국 일본보다는 그에 맞서 싸운 중국과 미국이 더 오히려 더 가까울 수 있다고 시라이는 지적했다.

아베 정권이 납치문제를 앞세워 남북대화나 북미 접근을 사사건건 방해하면서 대북 제재 강화를 주창해 온 ‘관성’은 시라이 등이 이미 몇 년 전에 지적한 그런 상황변화에 대한 무자각 증세 탓이라고 할 수 있다. 예전에는 그렇게 해도 북에겐 일본 자금과 기술을 받아들이는 것 외에 다른 선택지가 거의 없었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일본의 상대적 약화와는 반대로 거대 중국과 민주화된 산업국가 한국의 등장 등은 기존 구조를 흔들어 놓았다. 북미 정상회담 이후 당황한 아베 정권이 자신들이 끊어버린 북과의 접촉통로를 다시 만들려고 애쓰지만 북은 납치문제 등의 전제조건 철회를 요구하면서 쉽게 응하지 않을 것이다.

한국 보수세력의 위기구조도 일본의 그것과 닮았다. <워싱턴 포스트>의 지적대로 한국 보수세력에겐 진행 중인 북미대화가 실패로 끝나 보수가 재결집하거나, 미일동맹 의존 일변도의 반북·반공정책을 포기하고 변화된 세계구조를 수용하는 두 가지 선택지가 남았을 수 있다. 하지만 세계구조 변화가 불가역적인 점을 생각하면, 설사 북미대화가 실패로 끝나더라도 기존 형태로의 보수 재결집은 이미 불가능하지 않을까. 특히 한국의 젊은층은 과거로의 회귀를 결코 바라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남은 선택지는 한 가지뿐이다.

 

한승동/ 본지 편집인, 전 <한겨레> 국제부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