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태가 심각하다. 국가적 위기상황이다. 김대중(DJ)·노무현 대통령 시절에도 크고 작은 위기가 잇따랐다. 두 대통령은 시작부터 위기였다. 김대중 대통령은 IMF 외환위기 상황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북핵 및 카드채 위기 속에서 출범했다. 두 대통령의 위기대응 방식과 위기관리 소통은 어떠했을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전화위복(轉禍爲福)’이다. DJ는 이 단어를 자주 썼다. 그의 삶 자체가 전화위복을 증명하는 여정이었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고난과 역경을 희망과 기회로 만들었다. 그에게 다섯 번의 죽을 고비는 곧 ‘김대중’이란 이름 석 자를 세상에 알리는 기회가 됐다.

그는 위기에 봉착했을 때 세 가지를 생각했다. 첫째, 시련은 영원하지 않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 희망을 놓아선 안 된다. 반드시 어려움의 끝은 온다. 둘째, 그 끝이 왔을 때 스스로 부끄럽지 않도록 하자. 미진함은 있어도 후회는 없도록 하자.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자. 셋째, 위기에서 기회 요인을 찾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역사는 반드시 기회를 준다. 그 기회는 위기의 옷을 입고 온다. 그 기회를 포착하고 선용하는 민족은 흥하고 그렇지 않으면 쇠락한다. 4대국 사이에 끼어 있는 우리나라는 위기이면서 기회다. 잘못하면 찢기고 당할 수 있지만 잘만 하면 색시 하나를 두고 신랑감 넷이 프러포즈하게 만들 수 있다.”

리더란 위기 안에서
기회를 보고 희망 찾는 사람

노무현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모든 일은 안 좋은 면만 있지 않다고 생각했다. 안 좋은 일은 좋은 일과 함께 오고, 위기 안에는 반드시 기회가 있다고 봤다. 위험하다고 회피하는 사람에게는 기회도 없다고 믿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연설문을 작성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도전하면 성공과 실패 확률은 반반이다. 하지만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100% 실패다. 위기(危機)’는 위태로움을 뜻하는 ‘위(危)’자와 기회를 의미하는 ‘기(機)’자의 합성어다. 위기란 위험이기도 하지만 거기에는 기회도 내포되어 있다.”

두 분은 본디 낙관주의자이다. 타고난 성품인지는 모르겠다. 매사를 낙관적으로 보는 것은 틀림없다. DJ는 사형선고를 받고도 내일을 위해 책을 읽었다. 칠흑 같은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얘기했다. “감옥 생활은 내게 다시없는 교육 과정이었다. 정신적 충만과 향상의 기쁨을 주는 지적 행복의 나날이었다.”

노무현 대통령 역시 지지율이 곤두박질하고 재·보선 때마다 판판이 질 때도 의기소침하거나 낙담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태양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 앞에는 그늘이 지지 않는다고 했든가. 난관에 부딪칠 때마다 오히려 밝은 모습으로 구성원들을 격려했다. 실망하기는 해도 결코 비관하지 않았다.

나는 늘 걱정과 근심 속에서 산다. 매사에 부정적이다. 소심하고 간이 콩알만 하다. 잘 안 될 것이라고 가정하고 대비한다. 그 힘으로 근근이 버티고 최악의 상황은 면한다. 하지만 나 같은 사람이 리더가 되면 곤란하다. 주변 사람까지 조마조마하고 움츠리게 만든다. 생각해보라. 리더가 위기상황에서 ‘큰일 났다. 어쩌면 좋냐.’고 걱정하면 구성원이 얼마나 불안하겠는가.

낙관과 함께 자신감을 가져야
스스로와 구성원에 대한 믿음을

두 분에게는 낙관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자신감이 함께 있다.
자신감의 기저에는 두 가지가 있다. 그 하나는 자신감의 근거이고, 다른 하나는 구성원들에 대한 믿음이다. 그저 잘 될 것이다가 아니다. 이렇게 해왔고 이런 역량이 있기 때문에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며 근거를 제시한다. 또한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없다는 것을 안다. 구성원의 저력을 믿는다. 그런 믿음이 자신감의 원천이다.

1998년 일본 대중문화 개방 당시 많은 사람이 우려를 표했지만 DJ는 우리 문화의 저력을 믿고 과감하게 개방했다. 그 결과 20여 년이 지난 지금, 우리가 일본의 문화식민지가 되기는커녕, 일본이 한류(韓流)에 열광하고 있다.

리더는 이렇게 자신할 만한 근거와 구성원에 대한 신뢰를 통해 막연한 비관을 합리적인 낙관으로 바꾼다. 그들의 마음을 ‘잘 될 거야. 잘할 수 있어.’, ‘까짓 것 한번 해보는 거야.’라는 상태로 만든다.

자신감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위기에 내몰리면 위기만 보이고, 위기에 매몰되기 십상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희망의 증거를 찾고 자신감을 불러일으키는 사람이 필요하다. 자신감 있는 사람은 모든 것이 가능해 보이고, 자신감 없는 사람은 모든 것이 불가능해 보인다. 불가능해 보이면 도전하지 않고, 도전하지 않고 이룰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 자신감이 있는 사람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위험을 감수하고 도전한다. 이를 위해 구성원의 힘을 하나로 결집한다. 바로 리더가 해야 할 일이다.

김대중 대통령의 취임사는 이렇게 끝난다.
“국민 여러분, 오늘의 위기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읍시다. 우리 국민은 해낼 수 있습니다. 6·25의 폐허에서 일어선 역사가 그것을 증명합니다. 제가 여러분의 선두에 서겠습니다. 우리 다 같이 손잡고 힘차게 나아갑시다.”

노무현 대통령의 취임사는 이렇게 시작한다.
“국민 여러분. 우리는 해낼 수 있습니다. 우리 국민이 힘을 합치면, 못할 것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 저력으로 우리는 외환위기를 세계에서 가장 빨리 벗어났습니다. 지난해에는 월드컵 4강 신화를 창조했습니다.”

희망을 현실로 만드는 비결
목표, 계획, 실행의 적합성 갖춰야

리더가 단지 낙관적으로 접근하고 자신만만하게 밀어붙이는 것으로는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 기적은 기다린다고 오지 않는다. 희망을 현실화해야 한다. 그것이 리더의 책무다. 이를 위해서는 명확한 목표, 치밀한 계획, 주도면밀한 실행이 뒷받침돼야 한다. 목표와 계획과 실행이라는 이 세 가지의 적합성 여부에 따라 위기는 더 큰 위기가 되기도 하고, 변화와 혁신, 새로운 도약의 기회가 되기도 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6년 당시로선 먼 미래인 2030년까지의 발전 전략인 <국가미래 전략비전 2030>을 발표했다. 예상되는 사회 변화와 위기 요인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장기 계획과 목표를 담았다. 이를 수립하고 기뻐하던 모습이 생생하다. 그것이 제대로 실행되었다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갈등과 위기의 수위는 많이 낮춰졌을 것이다.

정치적 인기에 연연하지 않고 국민연금 재정개혁을 단행한 사람도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이다. 1988년 시행 초기부터 이대로 가면 다음 세대의 부담이 가중되고 연금 고갈이 예상되는 상황이었다.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누구도 손댈 엄두를 내지 않았다.

세상은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밝기도 하고 어둡기도 하다. 리더는 보는 것으로 그쳐선 안 된다. 어두운 면도 밝게 만드는 사람이어야 한다. 위기에 책임지는 자세를 가지고 스스로가 위기를 해결해야 할 당사자임을 자처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신속 정확한 소통, 위기관리의 시작과 끝
위기관리 메시지에 담을 여섯 가지

빠르고 정확한 소통은 위기관리의 시작이자 끝이다. 위기는 메시지에 의해 관리된다. 위기관리 메시지는 여섯 가지 내용을 담는다.

첫째, 사실과 현황을 있는 그대로 숨김없이 공개한다. 은폐와 축소, 왜곡은 불에 기름을 붓 듯 위기를 걷잡을 수 없게 만들 수 있다.
둘째, 사건이나 사태의 성격을 규정한다. 위기의 원인은 무엇이고 그 본질과 쟁점은 무엇이며, 심각성 정도는 어떠한지 밝힌다.
셋째, 위기가 미칠 영향과 파장 등에 관해 설명한다. 피해나 부정적인 영향은 어느 수준과 범위이고, 예상되는 최악의 상황은 무엇인지 상세히 밝힌다.
넷째, 정부가 현재 취하고 있는 조치와 진행 상황을 알린다. 아울러 잘못 대처한 점이 있으면 인정하고 사과한다.
다섯째, 앞으로 사태를 해결해나갈 방안과 각오를 밝힌다.
끝으로, 국민이 해야 할 일을 소상히 알리고 협조를 당부한다.

노무현의 위기관리 3원칙:
①남에게 책임전가 않는다
②발등의 불을 끄는데 급급 않는다
③위기를 부풀리거나 조장 않는다

노무현 대통령은 위기와 관련해서 세 가지 원칙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첫째는 책임을 전가하지 않았다. 정치자금을 비롯해 어떤 위기에서도 자신에게 먼저 책임을 물을망정 남에게 전가하거나 회피하지 않았다. 인정할 건 인정하고 책임지는 자세를 보였다.

둘째,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는데 급급해서 더 큰 화를 자초하는 선택을 하지 않았다. 당장은 어려움을 겪더라도 긴 안목으로 위기에 대처했다. 예를 들어 경제가 어렵다고 미봉책으로 부동산 경기를 부양하지 않았다. 대신 고통을 분담하고 감내하자고 호소했다. 인위적 부양책을 쓰면 당장의 어려움은 모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다음 정부가 부담을 안게 될 것이 분명했다. 그는 도리어 양극화, 저출산 문제와 같이 당장은 문제 되지 않지만 장차 위기로 다가올 문제들을 의제화 했다. 멀리 내다보고 앞날을 생각하는 역사의식과 확고한 원칙이 없으면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셋째, 위기를 부풀리거나 조장하지 않았다. 양치기 소년 같이 ‘늑대가 나타났다’고 위기감을 조성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해방 이후 줄곧 위기 아닌 때가 없었다. 비상사태의 연속이었다. 늘 단군 이래 최대 위기였다. 심지어 정략적인 목적으로 위기를 침소봉대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야당에게 국가는 부도 직전 상태다. 마치 그러기를 바라기라도 하는 것처럼 주문을 외운다. 저주하고 야유한다. 이런 무분별하고 과장된 위기론이야말로 향후 전망을 비관 일색으로 몰고 가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진짜 위기를 불러올 수도 있는데도 말이다.

코로나19 사태 덕분에 나도 한 달 넘게 쉬고 있다. 설날 연휴 이후 대부분 강의가 취소됐다. 하지만 걱정하지 않는다. 세상에는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해도 안 되는 일이 있다. 이번 일은 후자에 속한다. 걱정해봤자 내가 해결할 수 없는 일이다.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일도 있다. 강연 대신 책을 쓰는 일이다. 언젠가 코로나는 물러간다. 그때쯤에는 나의 네 번째 책이 출간을 앞두고 있을 것이다. 전화위복이다.


강원국 필자
작가다.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증권회사 홍보실, 대우그룹 회장비서실 등을 거쳐 대통령의 스피치라이터로 8년간 일했다. 저서로 『대통령의 글쓰기』, 『강원국의 글쓰기』, 『회장님의 글쓰기』가 있다. 최근에는 강연 등을 통해 ‘좋은 글쓰기’를 전파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