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외교의 사령탑인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아프리카에서 뻗어나가고 있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취임 이후 처음으로 사하라 이남 지역 순방에 나섰다. 하지만 오히려 중국의 대단한 존재감만 확인했다고 뉴욕타임스가 1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폼페이오는 지난 15일부터 이틀 동안 세네갈, 앙골라, 에티오피아 등을 찾아갔다. 뉴욕타임스는 “(폼페이오가) 미국과 손잡는 게 더 낫다는 얘기를 했지만 정작 투자나 원조, 개발 프로그램을 제안한 건 없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이 신문은 “그가 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아바바에 갔을 때 중국 자본이 확장 공사를 해준 공항에 내려 중국 자본으로 건설된 고속도로를 통해 중국이 건설한 산업시설, 지하철, 지부티 행(行) 철도를 둘러봤다”고 덧붙였다.

미국 주류 언론이 도널드 트럼프의 공화당 정부와 좋은 관계가 아니라지만, 자국 국무장관의 외교행보를 바라보는 시선이 몹시 신랄하고 냉소적이다. 아프리카에서 중국의 존재감이 압도적이라는 현실은 새삼스런 얘기는 아니다. 20년 이상 공을 들여왔고 지금은 성과를 내는 단계에 들어갔다. 아프리카 국가들이 미국보다 중국을 선호할 수밖에 없는 또 다른 이유도 있다. [편집자]

아프리카엔 美보다 中체제 더 필요

뉴욕시립대 대학원 석좌교수인 브랑코 밀라노비치(Branko Milanovic)에 따르면 빠른 경제성장을 통해 빈곤에서 서둘러 탈출하는 게 국가 최우선 과제의 하나인 아프리카 개도국들에 있어 그들의 욕구를 충족시켜 줄 가능성이 높은 나라는 미국이 아니라 중국이다. 여기에는 국제정치 현실, 지정학, 중국의 대외정책 등 여러 가지 요소들이 작용하겠지만 중국이 대표하는 ‘자본주의 체제’ 자체가 미국식 자본주의 체제보다 아프리카의 빈곤 탈출에 더 효과적이라는 체제의 차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포린 어페어즈(2020년 1·2월호)에 기고한 ‘자본주의들의 충돌-글로벌 경제의 미래를 건 싸움’(The Clash of Capitalism-The Real Fight for the Global Economy's Future)에서 밀라노비치 교수는 이른바 ‘중국특색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중국 경제도 자본주의의 한 갈래로 본다. 마치 기독교가 동방/서방 교회로 나뉘고 다시 가톨릭/개신교로 나뉘는 것처럼, 그리고 이슬람교가 시아파/수니파로 갈리고 사회주의가 옛 소련형(레닌-스탈린주의)/중국형(마오쩌둥주의)으로 갈린 것처럼, 중국도 미국과 같은 줄기를 지닌 자본주의의 한 갈래로 본다.

서구형(이라기보다 미국형)의 자유경쟁 자본주의(liberal meritocratic form of capitalism), 중국이 대표하는 정치적 자본주의(political model of capitalism)가 그것인데, 지금 진행 중인 미중 무역전쟁도 자본주의의 미래를 놓고 벌이는 두 체제의 경쟁으로 보는 것이다. 따라서 ‘자본주의=자유민주주의’라는 등식은 성립하지 않는다.

밀라노비치 교수는 중국과 베트남의 20세기 ‘사회주의 혁명’이, 부르주아지를 봉건 귀족과 국왕, 특권적 사제계급에서 해방시켜 자본주의의 길을 연 18세기 프랑스혁명과 같은 역할을 한 것으로 본다. 지금의 중국과 베트남을 명목이야 어떻든 진짜 사회주의체제로 보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미중, 자본주의 체제의 갈래가 다를 뿐

미중의 두 자본주의 체제 경쟁에서 어느 쪽이 이길까? 결론은 예측불허인데, 두 체제는 각기 장단점이 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미국형 자유경쟁 자본주의는 1980년대 글로벌화가 진행되면서 등장한, 말하자면 신자유주의 자본주의인데, 사회의 활동성(유동성)을 높이고 이익을 만들어내는데 효율적이다. 하지만 금융자산의 90%를 상위 10% 부유층이 차지하고 있는 미국의 예에서 보듯 극단적 부의 편중, 부익부 빈익빈의 심화 내지 가속화라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부유층은 교육과 문화시설 등을 독과점하고 그들끼리 교류하면서 정책 입안과 법 집행도 자신들에게 편의를 봐주고 유리한 쪽으로 끌어가는 일종의 계급적 특권층을 형성하는데, 그것을 반(半)영구화해 나간다.

이에 비해 중국형 자본주의는 공산당원인 기술관료들이 주도하는 일종의 국가자본주의로, 일단 전체적으로 조율된 정책은 반대 없이 일사분란하게 집행됨으로써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다. 기성체제를 뒤엎고 혁신적인 정책을 펴는데 매우 유리하다. 하지만 정책 결정 특권을 지닌 소수 기술관료들이 그런 정책 결정과 법 집행을 그들 내부의 합의에 따라,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자의적으로 하는데 따른 폐단이 크다. 그 때문에 대규모 내부 부패가 만연하게 되며 이 체제 역시 새로운 특권계급이 출현할 가능성이 높다. 또한 잘못된 결정도 정치적 책임문제 때문에 수정하기 어려워진다.

밀라노비치는 미국형의 경우 엘리트들의 특권과 부의 편중을 없애고 사회구성원 다수에게 그것을 재분배하는 일종의 인민자본주의(people's capitalism)로 가야 되고, 그것을 위한 방안의 하나로 부유세 신설 등을 통해 더 많은 세금을 걷어 모든 계층이 공유하는 사회적 자산을 늘리는 쪽으로 가야 한다고 본다.

중국형도 약점이 있긴 마찬가진데, 소수 기술관료들은 자신들 손에 정책 결정권 등의 특권을 쥐었지만 대신 그 지위를 유지하려면 인민들에게 끊임없이 일자리와 소득을 안겨줄 성장을 지속해야 한다. 다른 한편으론 상대적으로 우위인 서구형 생활에 현혹되지 않도록 감시와 선전활동도 게을리 해선 안 된다.

양쪽 다 ‘특권·금권 정치’로 수렴

밀라노비치는 ‘경제력은 스스로 자기이익을 증대시키는 쪽으로 자신을 해방해간다’는 카를 마르크스의 이론까지 거론하면서 중국형 자본주의가 자본의 자기증식을 위해 움직여 가는데, 지금 같은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강권적이고, 개인숭배형인 공산주의 일당독재체제가 걸림돌이 될 것으로 본다.

중국은 자칫 개인소득 1만 달러대에서 장기간 정체하는 이른바 ‘중진국의 함정’에 빠질 수 있고, 빈곤에서 탈출한 사회구성원들이 그런 억압체제 너머의 세계를 희구하는데서 오는 체제 불안정이 초래될 수도 있다. 이를 돌파하려면 서구형 대의제 민주주의를 활용해야 할 것으로 밀라노비치는 본다.

결국 미국형의 경우 10대90, 20대80의 극단적 불평등이 확대재생산 되면 소수 부유층이 특권을 누리는 독점적 금권정치가 만연하게 될 것이다. 중국형 역시 기술관료들이 자신들의 특권에 갇혀 유사한 소수 과두 금권정치로 갈 가능성이 있다. 말하자면 두 체제는 이대로 가면 어느 쪽이 이기기보다는 결국 좋지 않은 결말로 상호 수렴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미중 무역전쟁, 파국까진 못 간다

CNN의 TV프로그램 ‘파리드 자카리아 GPS’의 호스트인 인도계 미국인 저널리스트 파리드 자카리야(Fareed Zakaria)는 같은 책에 쓴 ‘새로운 중국 공포’(The New China Scare-Why America Shouldn't Panic About Its Latest Challenger)에서 작금의 미중 무역전쟁이 결국 패권국-도전자 간의 파국적 전쟁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에 동의하지 않는다. 미국 내 여론조사에서 60%가 트럼프 정권의 대중 강경대응에 동의하는 것으로 나타나, 공화·민주 정파를 초월해 절대 다수가 충돌 불사의 강경 자세를 갖고 있지만 결국 둘 다 손해 보는 일을 하진 않을 것으로 본다.

민주당 성향의 세계관을 지녔다고 봐야 할 자카리아는 두 경쟁자가 전쟁을 벌일지 모른다는 그레이엄 앨리슨의 ‘투키디데스의 함정’ 얘기나, 중국이 1949년 공산화 이후 세계를 정복하기 위해 주도면밀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전직 미 국방부 관료 마이클 필스버리의 ‘중국, 백년의 마라톤’ 얘기를 완전히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실제로 그럴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

옛 소련과 미국의 이른바 동서냉전 때처럼 두 체제가 이념적으로도 다르고, 경제적으로도 분리돼 있었던 것과는 달리 지금의 미중 경쟁은 자본주의 체제 내의 경쟁이어서 이념 문제가 없고 양국 경제 역시 밀접히 서로 얽혀 있다. 서구의 지금 체제와 다르거나 낯선 중국식 제도나 독단적인 관행들은 중국만의 것은 아니다.

19세기의 ‘먼로 독트린’도 그렇지만 미국이 상대적으로 아직 약했을 때는 자기 영역에 경쟁자들이 들어오는 것을 일방적으로 막았으며, 장하준의 <사다리 걷어차기>(부키) 등의 책에서 보듯 미국도, 독일도, 영국도 자국이 상대적 약자였을 때는 고율 관세를 앞세운 보호무역을 옹호하다 자국이 상대적 우위에 도달한 뒤 자유무역 쪽으로 선회해 추격자들을 따돌렸다.

일본도 마찬가지였다. 일본, 독일과 마찬가지로 한국도 미국의 가장 가까운 동맹국으로 자리잡았지만 이들 세 나라가 강해지고 영향력을 키우는 과정에서 미국과의 사이가 늘 양호했던 것은 아니라고 자카리아는 지적한다. 그런 점에서 중국이 그 큰 덩치 때문에 좀 다르긴 하나 유독 ‘중국 공포’를 과장하는 식으로 대응하는 건 과잉행동이라는 것이다.

중국은 지금의 세계무역체제 덕에 지금의 중국으로 성장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고, 미국도 여러 어려움과 위기에도 어떻게든 미국이 주도한 지금 체제를 유지하고 개선하는 게 낫기 때문에 자카리아는 봉쇄와 충돌보다는 ‘관여'와 ’억제‘로 파국을 막을 수 있다고 본다. 중국 역시 파국보다는 미국 내의 이런 시각에 기대를 걸고 있을 공산이 크다.

유럽 포퓰리즘, 글로벌 경쟁 심화 탓

밀로노비치에 따르면, 1978년 덩샤오핑(鄧小平)이 개혁개방을 시작했을 때 중국경제는 공적 부문 비중이 100%였으나 지금은 20% 이하로 떨어졌다. 생산수단도 대부분 사유화돼 있으며, 생산 품목도 생산물 가격도 대부분 민간부문이 결정한다. 그리고 사상 처음으로 서구와 아시아의 소득수준이 서로 접근하고 있는데, 1970년대에 전 세계 총생산에서 서구 비중은 56%, 아시아는 19%였으나 지금은 각각 37%, 43%로 역전됐다. 그리고 소득불평등 수준을 나타내는 ‘지니계수’도 세계 전체의 경우 1990년대 0.70에서 지금은 0.60으로 내려갔다. (지니계수는 1이 완전불평등, 0이 완전평등이며 수치가 내려갈수록 더 평등한 수준을 나타낸다)

하지만 특정 국가 내의 소득 불평등은 더 악화됐다. 미국은 1979년에 지니계수가 0.35였으나 지금은 0.45다. 잘 살았던 서구 국가들의 지니계수가 대체로 상승했다. 이는 아시아의 급속한 성장과 무관하지 않고 서로 엮여 있다. 불평등 심화로 더 불리해지는 쪽은 저소득층이며, 유럽에서 포퓰리즘이 유행하고 이민자들에 대한 적대감이 고조된 것도 이런 변화 탓이 크다. 2017년까지 27년간 미국의 평균 성장률은 2%였으나 중국과 베트남은 각각 8%, 6%였다. 하지만 중국의 지니계수는 1985년 0.30에서 2010년 0.50으로 높아졌다. 국부는 크게 늘어났지만 개인소득 격차는 미국보다 더 심각해졌다는 얘기다.

日평론가가 고민하는 3개 키워드
아시아 급성장, AI화, 저출산·고령화

일본의 평론가 데라시마 지쓰로(寺島実郎)는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의 GDP(국내총생산) 실질 성장률이 앞으로 20년간 평균 6%를 유지해 일본의 15배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지금은 4배 정도다. 일본의 교역총액에서 아시아 비중도 지금의 50%에서 20년 뒤에는 70%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세카이> 2020년 3월호)

이런 추세라면 머지않은 장래에 데라시마가 걱정하는 미일관계뿐만 아니라 미중관계, 한미관계, 한일관계, 그리고 미국-아시아 관계, 미국의 아시아정책이 근본적으로 바뀔 가능성이 높다고 봐야 한다. 데라시마는 이런 정세 변화 속에서 일본의 진로와 관련해 고민해야 할 핵심 키워드 세 가지를 들었다. 바로 아시아의 급성장, 디지털화, 저출산·고령화다. 우리도 참고할 만하다.

무엇보다 일본은 아시아와의 상호 이해·교류 수준을 크게 높여야 할 상황이다. 근대 이후 일본은 전통적으로 탈아입구(脫亞入歐), 탈아입미(脫亞入美)의 구호 아래 서구 지향 자세를 줄곧 취해왔다. 서구 중에서도 영국(1902~1923년 영일동맹), 미국(1951년 미일 강화조약과 안보동맹 체결) 등 당대의 패권국 앵글로색슨 국가들과 동맹을 맺고 그야말로 ‘올인’해 왔다. 데라시마가 보기엔 이젠 그렇게 가다간 위험해진다.

미중 손잡고 일본이 고립될 때
전쟁에서 지고 경제는 파산했다

데라시마는 150년의 동아시아 근대사에서 미국과 중국이 손을 잡고 일본이 고립됐을 때 일본은 전쟁에서 패배하고 파산했다고 갈파한다. 미국에는 중국계 미국인이 500만 명이나 되고 중국인 30만 명가량이 매년 유학을 가는데, 미중 두 강국이 만일 손잡게 될 경우를 상정하면 ‘미국 일극’으로의 ‘올인’은 지극히 위험한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것은 한국도 마찬가지다. 최근 일본 집권당 내의 우파세력까지 포함한 보수우파 세력의 일부가 시진핑 국가주석의 올해 봄 ‘국빈 방일’을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으나, 한국 우파들의 ‘반중·친미’ 편향은 그보다 훨씬 더 고질적이다. 트럼프의 등장으로 미국이 변한 게 아니라 트럼프의 등장이 미국의 그런 변화의 반영이요 결과로 봐야 한다. 미국은 앞으로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트럼프 등장 이전으로 돌아갈 순 없을 것이다.

일본은 따라서 앞으로 아시아 국가들과 잘 지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비핵 평화, 민주주의, 투명성, 그리고 높은 산업기술과 문화, 창의성 등을 갖춘 ‘일본 모델’을 창출해야 한다. 데라시마가 지적하진 않았지만 여기에는 과거사 청산, 국수적 민족주의 탈피 등이 전제돼야 할 것이다. 이는 한국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두 번째의 디지털화, AI화는 미국·중국에는 물론이고 최근엔 한국에도 뒤처지고 있다는 말을 듣고 있다. 데라시마는 디지털화, AI화로 많은 기술직종이 사라지겠지만 또 새로운 직종도 생겨나는 만큼 특정 일자리들은 없어지더라도 그 분야 전체 고용은 줄지 않을 것이라는 인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본다.

세 번째로 저출산·고령화, 특히 고령화의 경우 65세 이상의 고령자를 ‘비생산 연령인구’로 보는 것은 공업(제조업) 위주의 산업화 시대의 도시공업 생산력 모델 기준에 따른 것으로 본다. 도시 신(新)중간층인 그들이 향후 도시 근교형 고령자가 되면, 그들을 생산자로 참여시킬 플랫폼을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인학’은 ‘고령화 사회공학’이 돼야 한단다.

데라시마는 그 하나의 대안으로 공업사회가 죽여 온 농업을 되살려야 한다고 본다. 1960년에 79%였던 일본의 식량자급률(칼로리 기준)은 1990년엔 48%로 떨어졌다. 미국과 프랑스는 식량자급률이 130%이고, 독일은 최근 그 비율을 높여 95%, 일본을 빼고는 선진국 중 낮은 편인 영국이 65%이다. 그에 비해 일본의 경우는 위험 수준이라고 했다. 우리는 이 분야에서 일본보다 사정이 더 좋지 않다.

한승동 / 메디치미디어 기획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