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잘한다’고 하면 흔히 말주변이 좋다거나, 청산유수 같은 달변(達辯), 빠른 속도로 많이 말하는 다변(多辯)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달변은 잘 생긴 얼굴처럼 쉽게 질리기 쉽습니다. 어릴 적 동네 어른들이 ‘약장수 같다’고 했던 것처럼 다변은 다른 사람에게 신뢰감을 주기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말하는 게 좋을까요? 강원국 필자는 말을 잘하는 사람의 특징을 네 가지로 압축합니다.

"첫째, 자기 콘텐츠가 있어야 한다. 둘째, 말을 잘하고 싶은 욕구, 말을 잘해야 하는 필요가 있어야 한다. 셋째, 말에서 진정성이 느껴져야 한다. 넷째, 자신이 잘할 수 있는 말에 집중해야 한다." 왜냐하면 리더의 말이란 듣는 사람으로부터 반응, 변화, 결실 같은 무엇인가를 끌어내는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편집자]

 

버릇 하나가 생겼다. 풀어야 할 숙제가 있으면 그걸 껴안고 잠에 든다. 잠들기 전 그 문제에 골몰한 후 잠자리에 든다. 그러면 꿈을 꾼다. 꿈에서 열심히 문제를 푼다. 어떤 때는 새벽 2시, 또 어느 땐가는 새벽 4시 30분에 답을 찾아 잠에서 깬다. 그다지 신통한 답은 아니다. 하지만 뭣이든 찾는다. 이런 경험이 늘어날수록 더 자주 더 좋은 답을 찾는다. 스스로가 대견하다. 도대체 나란 사람은, 나의 역량의 끝은 어디까지란 말인가.

신경정신과 의사인 친구에게 이 얘기를 했다. 그 친구 대답은 간단했다. “그거 불면증이야. 나이 먹어서 그래.” 이것도 친구라고. 이 친구 말이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렸다. 나이 들어서 그런 건 맞다. 하지만 불면증은 아니다.

쉰 살이 넘으면서 생각이 많아졌다. 고민이 많아진 게 아니고, 불현듯 떠오르는 생각이 많아졌다. 길을 걷다가, 운전하다가, 샤워하다가 문득 생각이 난다. 화장실에서, 지하철에서, 승강기 안에서 돌연, 갑자기 생각이 난다.

어린 시절 기억이 뜬금없이 떠오른다. ‘그래, 그런 일이 있었지.’ 모르고 지나쳤던 의미가 파악되기도 한다. ‘아, 그때 그래서 그랬구나. 배경과 맥락이 이것이구나.’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연상하기도 한다. 연상의 끝에서 예상과 추론이 가능해진다. 예측하고 전망한다. 혹은 본질이 파악된다. ‘그래 그것은 이것이구나.’ 혼자 정의를 내리고 명제를 만든다. 개똥철학이 생기고 나만의 관점과 시각이 만들어진다. 또 어떤 때에는 해법이나 대안이 찾아진다. ‘아, 이러면 되겠구나.’

즐겁게 들어주는 사람 있어야

떠오른 생각을 메모해뒀다가 써먹을 데를 찾는다. 어디에 써먹을까. 말밖에 없다. 글이 있지만 그건 너무 멀다. 말을 기다린다. 호시탐탐 말할 기회를 엿본다. 밥을 먹을 때 커피를 마실 때 말할 타이밍을 찾는다. 말하는 게 즐거워졌다. 옳은 말을 옳은 방식으로 말하면 그게 꼰대라고 하던데. 그러건 말건. 나는 말하고 나면 우쭐하다. 내 존재를 과시했다. 뿐만 아니라 남에게 도움을 주고 영향을 미쳤다. 존재감을 느낀다. 나의 존재 의미와 가치를 발견한다.

나만 즐거워해서는 말을 지속할 수 없다. 즐겁게 들어주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다행히 지금까지는 순조롭다. 나의 착각이 아니다. 방송이나 강의는 피드백이 빠르고 분명하다. 평가가 좋다. 나보고 말을 잘한다고 한다. 명강사 소리를 듣는다. 방송도 재밌게 잘한다고 난리다. 나는 말에 관해 말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

달변·다변, 말 잘하는 게 아니다

말을 잘한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청산유수 같이 달변인 사람이 말을 잘하는 것일까. 대개 이런 사람에게 ‘언변이 좋다’, ‘입심이 좋다’, ‘말주변이 좋다’고 한다. 그런데 이게 좋은 뜻이기만 할까. 말이 매끄럽다는 뜻일 뿐, 그다지 긍정적인 의미는 아닌 것 같다. 나는 말이 어눌하다. 하지만 그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전화위복이다. 달변은 잘 생긴 얼굴처럼 쉽게 질린다. 뭔가 부족한 사람에게 동정표를 주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다. 나 같이 딱히 잘생긴 데는 없는데 이유 없이 끌리는 사람 말이다. 그게 매력적이다.

그렇다면 단위 시간 당 쏟아내는 말의 양이 많은 다변가를 말 잘하는 사람이라 해야 할까? 아니다. ‘말이 많다’, ‘입만 살았다’, 수다쟁이라는 소릴 듣기 십상이다. 주변 사람을 피곤하게 만들 뿐이다.

콘텐츠·욕구·진정성·집중이 필요

말을 잘하는 사람에게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자기 콘텐츠가 있다. 나의 콘텐츠는 ‘글쓰기에 관해 말하는 것’이다. 글을 잘 쓰진 못하지만 글쓰기에 관해선 누구보다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나는 글쓰기를 통해 세상을 보고 세상을 해석한다. 글쓰기가 나와 세상을 연결한다. TV에서 노래 경연하는 프로그램을 보면서 글쓰기와 노래를 연결한다. 산에 오르면서 등산이 글 쓰는 과정과 다르지 않다는 걸 깨닫는다. 글쓰기가 세상을 은유하는 거점이자 나만의 생각 진지다.

관심이 글쓰기에만 머물지 않는다. 단단한 돌멩이를 눈밭에 굴리면 눈덩이가 되듯 글쓰기는 말하기, 소통, 리더십 등으로 확장한다. 눈덩이는 커지면 커질수록 커지는 속도가 빨라진다. 책을 읽을 때는 물론이고 남의 말을 듣거나 술을 마시다가, 꿈속에서 난데없이 생각이 난다.

그런 경험을 하고 있는 사람의 눈에서는 번득임이 나온다. 우리는 그것을 통찰, 직관, 영감이라고 한다. 이게 있어야 말을 잘할 수 있다. 당연하다. 말은 생각이 지원돼야 한다. 생각이 계속 떠올라야 말을 이어갈 수 있다. 그 떠올림의 진원지가 필요하다. 그러니까 자기만의 단단한 돌멩이 하나, 그런 콘텐츠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둘째, 말을 잘하고 싶은 욕구, 말을 잘해야 하는 필요가 있어야 한다. 나는 강의를 시작하면서 말을 해야 했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보면서 말을 잘하고 싶었다. 이런 동기와 계기가 없으면 굳이 말을 잘하려고 않을 것이고, 그런 경우 아무리 좋은 콘텐츠를 가지고 있다 한들 써먹을 수 없다. 말을 잘하려면 ‘나도 말을 잘하고 싶다’, ‘말을 잘할 수 있다’, ‘말을 잘하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불태워야 한다.

셋째, 말을 잘하는 사람의 말에서는 진정성이 느껴진다. 어떤 말이 진정성을 느끼게 할까. 우선 진심이어야 한다. 가짜, 거짓, 위선이어선 안 된다. 이것이 필요조건이다. 충분조건도 있다. 듣는 상대를 위하는 마음이 있어야한다. 내 말을 통해 상대를 도우려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상대가 모르는 걸 알려주든지, 상대를 즐겁게 해주든지, 상대에게 용기를 주거나 상대를 위로해주든지, 상대에게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주든지, 상대로 하여금 통찰을 일으키게 하든지 무언가 도움이 되는 말이어야 한다. 이것을 듣는 사람은 안다. 꼰대라는 소리를 듣는 것은 이것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꼰대는 마음으로 말하지 않는다. 머리만 굴린다. 머리만 쓰는 것이 아니라 마음까지 쓴다고 여길 때 진정성을 느낀다.

넷째, 자신이 잘할 수 있는 말에 집중한다. 그것이 말 잘하는 방법이다. 모든 말을 잘할 수 없다. 그럴 필요도 없다. 말의 종류는 많다. 토론, 보고, 발표, 대담, 연설, 대화에 이르기까지. 또한 말하는 목적에 따라 사실과 정보를 전하는 말하기, 친교를 위한 말하기, 위로하고 격려하는 말하기, 원인 분석과 문제 해결을 위한 말하기도 있다.

혹은 논리적으로 주장을 잘할 수도, 감성적인 말을 잘할 수도, 비판적인, 혹은 해학적인 말을 잘할 수도 있다. 지적으로 해박한 말, 정곡을 찌르는 말, 조곤조곤 설명하는 말, 아니면 이야기나 잡담을 잘할 수도 있다. 누구나 이 가운데 하나는 있다. 그것을 잘하면 된다. 잘하는 게 하나만 있으면 그것으로 시작하자. 조금씩 넓혀 가면 된다.

나는 발제하고 주장하는 말보다는 해석하고 설명하는 말, 질문보다는 대답하는 말을 잘한다. 주도하는 말이 아니라 받쳐주고 띄워주는 말, 빈정거리고 깐죽대는 말을 잘한다. 따라서 진행자보다는 패널이 적합하다. 엄숙하고 딱딱한 자리에서는 말을 잘 못한다. 가볍고 들뜬 자리에서 말이 잘 나온다. 그러므로 정중하고 깍듯하게 말해야 하는 자리에서는 침묵하거나 분위기 자체를 바꾸려고 노력한다.

말하는 이유와 목적이 명확해야

말은 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있다. 말하는 사람이 이끌고 듣는 사람은 따른다. 말하는 사람이 리더이고 듣는 사람이 팔로어다. 따라서 말은 본질적으로 리더의 말이다. 하지만 말한다고 모두 리더가 되는 것은 아니다. 리더의 말은 결과를 만들어내야 한다. 반응이나 변화나 결실, 이끌어내는 소산이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말하는 사람이 말을 하는 이유와 목적을 명확히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말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 꿈이나 비전의 수준에 가까울수록, 간절하고 절실할수록, 그것으로 인해 영향 받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나는 매일 밤 꿈을 꾼다. 글쓰기 고통에서 인류를 구원하는 방법을 찾고 있다. 조문도석사가의(朝聞道夕死可矣).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

강원국/ 작가


강원국 필자
강원국은 작가다.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증권회사 홍보실, 대우그룹 회장비서실 등을 거쳐 대통령의 스피치라이터로 8년 일했다. 저서로 『대통령의 글쓰기』, 『강원국의 글쓰기』, 『회장님의 글쓰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