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여야 정치권이 연일 격돌하고 있다. 특히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골자로 한 선거법 개정안을 놓고 그야말로 한 치의 양보 없는 샅바싸움을 벌여왔다. 자유한국당은 자신들이 반대하는 선거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면 ‘비례한국당’이란 위성정당을 만들겠다는 구상을 밝히고 있다.

이번 총선에서 보수·진보 진영은 어떤 운명을 맞이할 것인가? 총선 결과에 따라 향후 4년간 여의도 권력의 향방은 물론 차기 대권구도까지 좌우될 것으로 보인다.

그런 가운데 2016년 20대 총선 때부터 정치지형이 보수 쪽에서 진보 쪽으로 기울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각종 여론조사를 분석해 보면 그 전까지는 보수 35%, 진보 30%, 중도 25%, 무응답 10%로 보수 우위 분포를 나타났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주간지 <시사IN>의 천관율 기자는 데이터 저널리즘의 선구자라고 평가받는다. ‘20대 남자’, ‘천관율의 줌아웃’이라는 책을 쓴 천 기자는 그동안 호흡이 긴 기획기사에 강점을 발휘해왔다. 그는 최근 ‘힘의 역전’을 주제로 열린 제1회 메디치포럼에서 ‘2020 한국의 민주주의는 역전될 것인가’를 주제로 향후 한국 정치지형을 추적해봤다.

그는 보수 진영이 취약해졌다고 하지만 정치지형이 본격적으로 바뀌려면 유권자들의 재배열, 즉 리얼라인먼트(realignment)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예컨대 120여년의 미국 선거 역사에서도 딱 두 번 이런 현상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1932년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 1964년 배리 골드워터가 보수의 부흥을 이끌어냈을 때였다.

천 기자는 아울러 세계 각국의 ‘우파 포퓰리즘’ 정당들이 글로벌 차원의 리얼라인먼트 흐름을 타고 있다고 진단한다. 한국에서도 좌우 이념대립 못지않게 울타리(기득권) 게임의 바깥에 있는 유권자들이 언젠가 세력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본다. 2020년 총선의 승자가 되려는 정당은 ‘목소리 없는 유권자 그룹’을 찾아내 결속시켜야 한다고 충고한다. [편집자]


천관율 :
<시사IN>에서 기사 쓰는 천관율 기자입니다. 제가 말씀 드릴 주제는 ‘한국의 민주주의는 역전될 것인가?’입니다.

저는 오늘 리얼라인먼트(Realignment), 약간 낯선 단어를 갖고 말씀 드리려 합니다.

정당이랑 유권자 사이에는 정렬(整列, alignment) 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선거 때 찍는 정당을 잘 안 바꿉니다. 우리가 정치 저널리즘, 정치 기사를 보면 마치 사람들이 그때 그때 이슈에 따라서 이 당 찍고 저 당 찍고 하는 것 같지만 사실 잘 안 그렇다고 해요.

장기적으로 연구를 해보면, 유권자들은 생각보다 투표 성향을 잘 안 바꿉니다. 미국으로 치면 공화당 찍던 사람은 평생 공화당 찍고 민주당 찍던 사람은 민주당을 찍습니다.

그런데 왜 선거 결과는 들쭉날쭉 하느냐? 공화당 찍던 사람들이 ‘아무리 그래도 이번에 쪽 팔려서 못 나가겠다’ 하고 투표장에 안 나가고, 민주당 찍던 사람들이 ‘이번에 진짜 바꿔야겠다’며 안 나가던 사람들이 나가고 이런 차이 때문에 발생하는 거지, 사실은 사람들이 정당을 그렇게 쉽게 바꾸지 않는다고 합니다.

한번 생긴 유권자들의 ‘정당 일체감’은 상당히 오래 간다고 합니다. 그럼 리얼라인먼트라는 건 뭐냐? 이 정렬(alignment), 기본적으로 안정적인 이 정렬이 흔들리고 뒤바뀌는 순간이 있습니다. 아주 드물게 있어요.

미국 정치에 익숙하신 분들이 많을 것 같은데 이 리얼라인먼트라는 개념을 조금 더 보겠습니다. 유권자들이 선거 때 한두 번 왔다갔다 해서 이걸 리얼라인먼트라고 부르진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연구자들은 보통 한 세대 전(前) 선거를 보면서 ‘아, 그때가 리얼라인먼트였구나’ 하고 말합니다.

이를테면 1950년대에 가서 “1932년에 미국 정치에 뭔가 일이 있었구나” 이런 얘기를 시작합니다. 그러면 어느 정도의 출렁거림을 얘기하는 거냐? 이를테면 영남이 더불어민주당 지지로 쫙 찍는다, 30대 대졸자들이 자유한국당 지지블록으로 바뀐다, 이런 정도의 심대하고 구조적이면서 오래 가는 변화. 이런 걸 보통 연구자들이 리얼라인먼트라고 부릅니다.

미국 정치를 아는 분들은 ‘1896 대선’ 지도를 보면 무척 낯익으실 겁니다. 동해안이랑 서해안을 한 정당이 먹고 남부 및 중부를 다른 정당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아는 거랑 비슷하죠?

그런데 딱 하나가 다릅니다. 뭐가 다르죠? 색깔이 바뀌었습니다. 여러분들이 공화당 지지블록이라고 알고 있는 지역이 당시엔 다 민주당이고요, 민주당 지지블록이라고 알던 지역이 다 공화당입니다. 이게 1896년 미국 정치 지형이었습니다.

1896년은 굉장히 중요한 선거로 평가됩니다. 동부의 좀 잘살고 고학력층인 산업화 지역들, 오대호 주변 산업화 지역들은 다 공화당을 찍은 반면 남부, 중부 이런 데들은 민주당 찍는 구도가 쭉 갑니다.

이게 언제 바뀌냐? 1924년 선거가 되게 전형적인데요, 민주당은 완전히 남부 정당으로 몰락하죠. 이것이 1932년 선거 때 크게 바뀝니다. 이때는 1929년 대공황 이후 선거입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IMF 위기 이후 치른 1997년 대선을 상상하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 때 프랭클린 루즈벨트가 처음 집권을 하는데 물론 이때는 공화당이 나라를 말아먹은 다음이니까 민주당이 전국에서 다 이기는데, 이때 중요한 변화가 생깁니다. 동부•서부 해안가들이 민주당 지역으로 넘어갑니다.

1960년 대선 무렵이 되면 우리가 익숙한 지도에 슬슬 가까워지기 시작합니다. 뉴욕 주(州) 제일 인구 많은 북동부가 민주당 지역이 됩니다. 그런데 1964년 대선에서 재미있는 일이 일어납니다. 남부가 공화당으로 넘어가죠. 100년을 민주당 찍었던 곳입니다. 언제부터 100년이요? 남북전쟁 때부터 100년간 찍었습니다. 이게 드디어 공화당으로 넘어가요.

그리고 이제 여러분들도 많이 봐왔던 지도가 나옵니다. 2000년 대선, 2012년 대선의 정치지형입니다. 미국은 지금도 기본적으로 이 구도입니다.

지금까지 제가 보여드린 지도에선 리얼라인먼트가 두 번 일어났습니다.

한번은 1932년 루즈벨트 당선 때 북동부 산업 지대가 공화당 지역이던 구도를 뒤집은 선거입니다. 이게 ‘뉴딜 체제’라고 연구자들은 부릅니다. 또 한번은 1964년 선거부터 시작된 긴 흐름입니다. 배리 골드워터라는 보수의 부흥을 이끈 공화당 지도자가 남부를 돌파하고 공화당의 전략 지역들을 확장하죠. 골드워터는 대선에서 참패했지만 이게 다시 공화당 시대를 열어가는 출발이 됩니다.

이런걸 리얼라인먼트라고 부릅니다. 선거 한두 번의 출렁거림이 아니고, 지형도를 바꾸는 선거를 리얼라인먼트라고 부릅니다. 2000년쯤 되면 이제 다 익숙한 지도죠. 여기서 한두 개 주(州)가 민주•공화 지지로 왔다갔다 이렇게 됩니다.

그렇다면 한국의 유권자 지형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요? 이것을 관심 있게 보는 연구자들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보수 우위 지형이 흔들렸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게 일시적인 거냐? 사실 정치 분석가들은 대부분 일시적이고, 결국 원상 복귀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어떤 연구자들은 이런 현상에 대해 단순히 2016년 탄핵 촛불의 여파가 길어진 게 아니라 2016년 총선부터 보수 유권자 지형이 흔들렸다, 이런 가설을 세우고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2016년 총선부터 보수의 분열들이 감지되고 보수에서 이탈되는 유권자 블록이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입니다. 아까도 말씀 드렸지만 한 세대는 지나야 누가 맞는지 판단할 수 있습니다. 일단 데이터로 좀 보겠습니다.

먼저 대선을 보자면, 2007년 대선 때 보수권 후보는1505만표를 얻습니다. 이명박 후보랑 이회창 후보의 득표 합산입니다. 2012년에는 박근혜 후보가 1577만표를 얻었고, 2017년 대선에선 1006만표입니다. 이건 홍준표 후보, 유승민 후보의 합산입니다. 1577만표에서 1006만표로 급격한 하락이 보이죠.

총선이 더 핵심적인 정보인데요. 2008년 (비례대표)투표에서 한나라당과 친박연대를 합치면 868만표입니다. 2012년 새누리당이 913만표를 얻고 2016년 총선, 그러니까 촛불집회 이전입니다. 총선 득표에서 새누리당이 796만표로 빠집니다. 이러면서 의외로 총선 패배를 당하고 그 뒤로 탄핵 사태까지 이어지죠.

이 당시를 기억하는 분들이 적지 않겠지만, 총선 직전에 ‘(새누리당이) 개헌 의석까지 간다’, ‘180석 간다’ 이런 얘기가 나돌던 선거입니다.

지방선거는 광역의회 비례 득표로 보여드리겠습니다. 2010년 이명박 정부가 완전히 망했다는 지방선거에서 822만표를 얻었습니다. 2014년엔 1100만표 얻었고요. 그리고 바로 작년 지방선거였죠? 701만표로 추락합니다.

그러니까 사실 자유한국당, 새누리당 계열로만 본다면 최근 세 번의 전국 선거에서 700만표대를 빠져나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전에는 1000만표 받았던 정당이에요. 이런 징후를 본다면, 일단 보수의 지형이 매우 취약해졌다는 거는 사실인 것 같아요.

그리고 박근혜 탄핵에 대해서 긍정적인 여론은 여전히 70%를 상회합니다. 대통령 지지율이나 정당 지지율이 들쑥날쑥 하는 거랑 다르게 꽤 안정적으로 관찰됩니다.

우리는 앞에서 1932년 미국 대선 때 뉴딜 체제로의 변화를 봤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루즈벨트 정부의 한국판이 될 수 있을까요? 한국 정치에서 가장 흥미로운 질문 중 하나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루즈벨트의 첫 당선이 공화당 정권의 경제 실패, 대공황 때문이라는 점에서 출발은 상당히 비슷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당시에 루즈벨트가 만들어낸 리얼라인먼트는 공화당의 실패를 반사이익으로 챙긴 걸로 끝난 게 아닙니다. 이 시기에 미국의 2차 산업혁명도 성숙기에 들어서서 대도시라는 게 성숙하고 특히 앞 세대에서 이민자들이 미국으로 굉장히 많이 밀려왔어요. 이민의 물결이 쫙 들어왔는데 이 사람들에겐 투표권이 없었죠. 그런데 이 사람들이 자녀를 정말 많이 낳았습니다. 이민자들의 출산율은 상대적으로 더 높죠. 이 이민자 2세들이 성인이 되고, 투표권을 행사하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현실 정치에 있던 사람들은 이런 유권자들이 안 보였습니다. 괄호 안에 들어가 있었어요. 왜냐고요? 기존 문법에 없는 사람들이니까요. ‘산업 대도시’라는 것도 사실 거의 괄호 안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산업 노동자가 대규모로 형성된다는 것도 포착하지 못했습니다.

현상은 이미 존재하는데 그 사람들을 유권자로 묶어내고 불러내고 정체화하고 정당과 결속시키고, 이런 과정들을 아직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바로 이 때 이 사람들을 민주당의 공고한 득표블록으로 동원한 게 소위 루즈벨트 혁명의 본질이라고 평가 받습니다.

그냥 유권자들이 등장한 게 아니에요. 이 사람들에게 정당 일체감을 준 겁니다. ‘나 평생 민주당 찍는 사람이야’. ‘민주당이 나를 대변하는 정당이야’. ‘이 당이 내 정당이야’. 이러면 이게 자녀 세대까지 흘러갑니다. 미국 학계에서는 ‘다른 정보를 몰라도 부모의 정당 정보를 알면 자녀의 투표를 얼추 예측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나와있습니다.

그러니까 이탈, 어떤 정당을 찍던 사람들이 그 정당을 떠나거나 심지어 전향해서, 공화당 찍던 사람들이 민주당을 찍거나, 이것만으로 리얼라인먼트를 얘기하기는 부족합니다. 즉 새로운 유권자들을 불러내고 결속시키고 정체화하고 소위 정렬시키는 것, 이걸 재정렬이라고 연구자들은 부릅니다.

그래서 얕은 리얼라인먼트, 깊은 리얼라인먼트라는 표현을 제가 만들어 봤습니다. 기존에 있는 표현이 아니에요. 전혀 검증 안된 표현입니다.

한국에서 만약 리얼라인먼트를 얘기할수 있다면 지금은 이탈과 전향 단계에 아주 얕은 단계라고 볼 수 있습니다. 기존 투표 블록 내부에서 보수 정당 블록이 흔들렸어요.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그런데 깊은 리얼라인먼트라고 말하려면 새로운 연결과 정체화가 발견돼야 합니다. 도대체 보이지 않는 새로운 유권자는 누구일까요? 저 큰 미국땅에서 보이지 않는 유권자가 있다 치고, 한국에도 그런 게 있을까요? 우리나라 투표율이 얼마나 되죠? 대선 투표율은 70% 정도 되고, 총선 투표율이 50~60%일 겁니다. 이렇게 낮은 투표율을 보면 누군가가 제대로 대변되지 않고 있다는 뜻이죠.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지금 대학 진학률이 80%를 정점으로 찍고 70%아래로 내려 왔습니다. 일단 70%라고 생각해보죠. 그러면 매년 고졸자의 30%는 대학을 가지 않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 사람들이 어디 가서 무슨 일을 하고, 어떻게 살고 정치에 어떻게 관심을 갖게 되고 어떤 커뮤니티에 들어가는지, 우리는 잘 몰라요.

지방정부, 중앙정부에 계신 분들도 이런 질문에 대해 정확히 대답하라고 하면 자신 없어 합니다. 이를테면 이런 사람들은 누구를 찍는가? 정치적으로 활성화돼 있는가? 어떤 정당에 애착을 느끼는가? 이런 질문들이 빈 채로 있는 거죠. 대공황 시절에 이민자 자녀들에 대한 이런 질문들이 비어있던 것처럼 말이죠. 어떻게 이 사람들을 정의하고 불러내고 묶어낼 거냐? 이게 사실 고전적인 의미에서 깊은 리얼라인먼트를 만드는 결정적인 관계입니다.

한국의 정치지형에서 구조적인 조건은 보수정당의 지지층이 흔들렸다, 그래서 아마 한국 정치 역사에서 처음으로 소위 진보다수파가 형성될 수 있는 계기와 토양이 갖춰졌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결코 진보다수파가 형성됐다는 뜻이 아닙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 같은 분들은 이 계기와 토양이 없어서 아주 험난한 고비를 여러 번 넘겼고, DJP연합 같은 정치공학적 시도까지 하면서 이것들을 극복해보려고 애썼습니다. 그에 비하면 지금은 진보의 토양 자체가 굉장히 많이 바뀐 건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 토양에서 깊은 리얼라인먼트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또 다른 문제입니다. 이건 정치의 영역이고 정치가의 역량 문제일 수 있겠죠.

이게 왜 중요한 질문이 되느냐? 한국형 리얼라인먼트 이슈가 우리에게 핵심이라면, 글로벌 차원에서 리얼라인먼트라고 부를만한 흐름이 지금, 같은 시간의 축 위에서 존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포퓰리즘의 시대라고 하죠 요즘?

이 포퓰리즘을 만들어내는 핵심 동력은 진보정당을 찍던 저학력, 산업 노동자, 공공부문 하위직 노동자가 주축입니다. 이 사람들이 우파 포퓰리스트 정당을 찍습니다. 트럼프를 시작으로 브렉시트(Brexit), 프랑스의 국민전선(FN), 독일을 위한 대안당(AfD), 북유럽의 각종 우파 포퓰리즘 정당들이 계속 집권 블록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이게 보여주는 게 뭘까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세계적으로 굉장히 안정적인 좌우 경쟁체제가 50년 넘게 이어졌습니다. 우리는 그 나라 사정을 잘 몰라도 어느 정당의 진보•보수 성향을 알면 대충 어떤 아이디어를 내겠구나, 그걸 알 수 있던 시대를 살았어요. 그런데 이 안정적인 좌우 경쟁의 시대가 끝나는 것 같습니다.

이걸 도대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좌우 축이 아니라, 이를테면 ‘개방 대(對) 국경’, 즉 '세계화 대 국경 보호'의 축으로 설명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다른 여러 설명도 있습니다. 리처드 리브스라는 작가는 ‘유리 바닥’이라는 개념을 제안했는데요, 소위 상층 엘리트들이 하층으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 바닥에 안전망을 치는 걸 말하는 개념입니다.

‘21세기 자본’으로 유명한 토마 피케티는 ‘상인 우파 대 브라만 좌파’라는 개념을 썼습니다. 상인 우파란 우파들의 부자 정당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브라만 좌파란 좌파 정당들이 가난한 사람을 대변하는 포지션을 점점 이탈하면서 고학력자, 지식인의 정당이 되어간다는 뜻입니다.

이와 비슷한 개념입니다만, 미국에서 공화당과 민주당 대결이 ‘부자 대 지식인 계급’으로 재편되면서 갈 곳 없던 하층 노동계급들이 소외되고 분노한다고 분석합니다. 토마스 프랭크는 이 얘기를 심지어 트럼프 현상이 나타나기 전에 썼습니다.

아난드 기리다라다스라는 이름의 저널리스트는 ‘엘리트 독식사회’라는 책을 썼습니다. 이 분이 한 얘기가 재미있어요. “이런 컨퍼런스에 와서 이런 얘기를 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은 모두 브라만 좌파, 지식인 계급이다, 그러니까 여기서 담론을 주도하고 있는 현상 자체가 위기를 보여주는 증거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이 그래픽은 글로벌 리얼라인먼트를 보여줍니다. 그래픽의 꺾은선은 대졸 유권자가 좌파 정당에 투표한 비율에서 고졸 이하 유권자가 좌파 정당에 투표한 비율을 뺀 값입니다. 미국, 영국, 프랑스의 사례를 보면 나라가 달라도 일관된 추세를 볼 수 있습니다. 아주 단적으로 말해서 좌파 정당이‘고학력자의 당’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전세계적으로요.

‘울타리 게임’이라는 표현을 제가 기사에 쓴 적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한테 정치라고 하면 좌우로 갈린 세계가 익숙한데, 점점 더 울타리 안과 울타리 밖으로 갈린 균열이 정치의 핵심 균열이 되어가고 있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듭니다.

이게 정말 우리 시대에 가장 중요한 전환이 아닐까요? 우울한 얘기죠.

왜냐고요? 옛날에는 울타리 안팎, 부자와 가난한 자, 이 갈등을 좌우 진영이 다 포괄했습니다. 좌파•우파, 진보•보수, 이 대결이 울타리 안팎의 게임을 다 포괄하는 갈등이었는데 사람들이 대학에 가기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진보정당, 좌파정당 뭐 어떻게 부르든 좋습니다. 그 정당의 핵심 지지층도, 정당 지도자들도 그렇게 변했죠.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좌우 갈등이 울타리 안에서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상위 20%, 괜찮은 대학을 나오고 괜찮은 일자리를 갖고 상위 20% 소득을 갖고 큰 도시에 사는 중산층들이 이 울타리 안에서 좌우 대결을 벌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자기들도 모르게…

그러면서 울타리 밖의 사람들이 거대한 ‘실망 유권자’로 쌓이고 이 사람들을 점화하는 데에 성공한 포퓰리스트들이 전세계 곳곳에서 집권을 하거나 집권에 가까이 다가서고 있습니다. 이것을 글로벌 리얼라인먼트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도 울타리 게임의 징후가 있을까요? 이 그래프는 상위 10%가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연도별로 추적한 겁니다. 2017년에 50%를 돌파했네요.

상위 10%로 끊든 20%로 끊든, 이것을 울타리라고 부르든 유리바닥이라고 부르든, 정치적 갈등이 좌우 대결에서 울타리 안팎 대결로 전환되는 징후들은 한국에서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국내 언론이 최근 광화문 집회와 서초동 집회가 매주 맞대결하는 장면을 열심히 보도했습니다. 이 대결에 울타리 밖 사람들이 얼마나 관심이 있었을까?, 생각을 계속하게 됩니다. 이걸 어떻게 보여드릴 수 있을지 아직 잘 모르겠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질문 자체를 놓치고 갈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문제는 한국 상황에서 소위 진보다수파가 형성될 수 있느냐입니다. 루즈벨트가 했던 것처럼, 혹은 공화당이 1960년대에 했던 것처럼 그런 깊은 리얼라인먼트로 나갈 수 있느냐입니다. 문재인 정부는 역대 진보정권 가운데 지지 기반, 즉 토양이 가장 좋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정부에서 만약에 깊은 리얼라인먼트를 구축하는데 실패한다면, 안정적 다수파를 만드는 데에 실패한다면 과연 과거의 보수 우위가 복원될 수 있을까요? 그것보다는, 우리나라도 글로벌 유행을 따라갈 가능성이 더 있지 않을까 짐작합니다. 사실은 민주시민이라면 별로 선호하지 않은 미래이겠지만, 우리만 세계적 조류에서 예외가 될 수 있을 거라고 믿기도 어렵습니다.

그래서 사실은 이 질문이 오늘 제 얘기의 핵심이 될 겁니다. 2020년 총선에서 과연 목소리 없는 유권자는 누구일까요? 이들이 투표장에 안 나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좌우 정당들은 기존 지지층을 동원하면서 과거처럼 적절하게 의석 배분을 하겠죠.

그런데 이 사람들이 언제 어떻게 어떤 계기로 점화될지는 사실 알 수 없는 주제일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징후적 사건을 2012년 대선 당시 ‘안철수 현상’에서 본 바가 있습니다. 어떤 적절한 외부적 자극과 내부에 쌓여있는 에너지가 극적으로 합쳐질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이미 한번 경험한 것입니다.

천관율 / 시사IN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