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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국의 ‘리더가 말하는 법’] “리더의 말에 있어야 할 세 가지”

by | 2019년 12월 24일 | 강원국의 '리더가 말하는 법', 기획 · 연재

‘피렌체의 식탁’은 2020년, 21세기의 세 번째 10년(decade)를 맞이해 매주 1편의 기획물을 게재합니다. 이 시대를 사는 디시전 메이커(decision maker)의 사고를 넓히고 품격을 높이기 위한 콘텐츠입니다.

이번에 소개할 연재는 <강원국의 ‘리더가 말하는 법’>입니다. 강원국 작가는 대우그룹 회장비서실,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의 스피치라이터로 일하는 등 리더의 말과 글에 관한 전문가입니다. 3주 간격으로 리더들의 소통법에 대한 인사이트를 전합니다.

이밖에 매주 <박상현의 ‘리더의 말과 글’>, <한승동의 ‘아사히로 세상 읽기’>가 번갈아 연재됩니다. [편집자]

어쩔 수 없이 주례를 섰다. 공중파 메인뉴스 앵커와의 인터뷰가 발단이었다. 그와 저녁식사 약속을 했다. 그가 여성 한 분과 함께 나왔다. 같이 일하는 아나운서라고 했다. 나는 세 사람이 함께 찍은 사진을 에스엔에스(SNS)에 올렸고, 누군가의 추적에 의해 두 사람이 연인 관계라는 사실이 밝혀졌으며, 나는 비밀 연애 발설자가 됐다.

주례사를 잘 하고 싶었다. 나는 주례 선생님에게 무슨 얘기를 들었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발군의 기억력과 섬세함을 자랑하는 아내도 마찬가지다. 적어도 신랑 신부에게는 기억나는 주례사를 하고 싶었다. 설교말씀은 신앙심으로라도 듣는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말씀으로 듣는다. 주례사는 반드시 들어야 할 이유가 없다.

기억나는 주례사 하는 방법을 찾았다. 신랑과 신부에게 각기 상대에게 바라는 점 세 가지씩 알려달라고 했다. 주례사를 통해 상대가 이런 걸 원한다고 하객 앞에서 공표했다. 들어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못하겠다고 할 리 만무하다. 잊을 수도 없다. 여기에 덤으로 주례의 당부 세 가지를 20초 이내로 말한다. 어차피 기억하지 못할 테니.

말에는 세 가지가 들어가야 한다. 화자(話者)가 하고 싶은 말, 청자(聽者)가 듣고 싶은 말, 해야 하는 말. 신랑, 신부가 상대에게 바라는 말 속에는 서로에게 하고 싶은 말과 듣고 싶은 말이 들어 있다. 주례가 하는 말은 해야 하는 말이다. 누군가에게 말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을 때 세 가지를 떠올리자. 해야 하는 말, 듣고 싶은 말, 하고 싶은 말.

먼저, ‘해야 하는 말’은 의례적인 말에 가깝다. 진부하기 십상이다. 이 말이 길어지면 ‘아주 연~설을 하고 있네.’란 소릴 듣는다. 뻔한 소리라는 것이다.

하지만 아예 없으면 섭섭하다. 식당 밑반찬과 같다. 밑반찬 먹으러 식당에 가진 않지만 밑반찬이 부실하면 서운하다. 왠지 대접 못 받는 느낌이다.

밑반찬은 어디서나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다른 곳과 비교도 된다. 밑반찬 수준이 식당의 품격에 영향을 준다. 밑반찬 때문에 손님이 붐비는 식당은 많다. 해야 하는 말은 최대한 짧되 맛깔나야 한다. 깔끔하고 참신해야 한다.

핵심은 ‘하고 싶은 말’이다. 하지만 길어지면 ‘꼰대’라는 소리를 듣는다. 준비와 연습이 필요하다. 준비는 할 말을 정리하는 것이다.

한 마디 또는 세 마디로 정리하는 게 좋다. 한 마디는 직렬식이다. 한 마디로 규정하고, 그렇게 말하는 이유를 대고, 근거를 달고, 비유와 사례와 예시로 부연 설명한다. 세 마디는 병렬식이다. 첫째, 둘째, 셋째로 말한다. 하고 싶은 말은 명료하고 자신 있어야 한다. 군더더기가 없어야 한다. 전제조건을 달거나 말끝을 흐리거나 사족을 붙이거나, ~같다는 표현은 삼가는 게 좋다.

하고 싶은 말은 평소에 만들어둬야 한다. 복기와 질문과 메모가 필요하다. 읽은 내용이나 들은 정보에 관해 떠올려보는 되새김질이 필요하고, 누군가 나에게 ~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보면 뭐라고 답하지? 자문자답해봐야 하고, 그런 결과를 메모해둬야 한다. 이런 습관을 통해 하고 싶은 말을 만들어둬야 한다. 그 말을 할 때 가장 즐겁고, 그 말은 10시간이라도 할 수 있고, 그래서 사람을 만날 때마다 그 말을 하고, 그 말에 관해서는 누구보다 자신 있는 바로 그 말을 찾아야 한다. 말해야 할 때 그 말을 찾으면 이미 늦다.

할 말이 준비되면 그 다음은 연습이다. 하고 싶은 말을 빈 종이에 낙서하듯 써보고 외운다. 통상 10개 미만이다. 그 단어가 내 말의 이정표다. 그래야 길을 헤매지 않는다.

다음으로 산책하면서 혼자 말해본다. 카페에서 해봤는데 사람들이 이상하게 본다. 걸으면서 말할 때 생각도 더 잘난다. 처음에는 할 말 하나하나, 다시 말해 써놓은 단어 하나하나에 관해 말해본다. 이어서 말할 단어의 순서를 정한다. 단어와 단어를 이어보는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졸가리가 타지고 애초에 없던 생각도 길어 올려진다.

그 다음으로는 청중이나 청자가 앞에 있는 상황을 그리면서 이미지 트레이닝 한다. 이때는 내 말을 듣는 사람의 반문이나 질문, 반응까지 염두에 두면서 말해본다.

강연이나 연설할 때는 장소에 일찍 도착한다. 주최 측이 도착하지 않은 객석에 홀로 앉아 단상을 바라본다. 행사 시작 직전에는 내 말을 들을 사람에게 한두 마디 말을 건네 본다. 그러면서 현장에 적응하고 스며든다.

준비하고 연습하면 말이 두렵지 않다. 말이 기다려진다. 내 강의가 호평 받는 이유도 준비와 연습이다.

듣고 싶은 말은 다섯 군데에서 찾는다. 첫째, 상대가 알고 싶어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궁금해 하는 게 있다. 내가 아는 걸 말하는 게 아니라 상대가 궁금해 하는 것, 상대의 질문에 답해줘야 한다. 가려운 곳을 긁어줬을 때 시원하다고 한다. 지식과 정보가 바로 그런 것이다.

둘째, 상대가 공감하는 말이다. 상대의 입장이나 처지, 사정, 심정, 마음을 헤아려주고 배려하는 말을 하면 된다.

셋째, 호감을 사는 말이다. 상대를 칭찬하고, 상대의 기쁨과 슬픔에 동참하고, 상대와의 공통점을 찾는다. 상대는 이런 말을 듣고 싶어 한다. 그러면 점수를 딴다. 말하기 전보다 호감과 친밀도가 올라간다. 말을 하는 중요한 목적 중 하나를 달성한다.

넷째, 상대에게 도움이 되는 말이다. 이것을 하면 이런 이익이, 이를 하지 않으면 무슨 손해가, 이런 문제는 이렇게 해결하라고 조언해준다. 조심해야 할 것은 조언이 참견으로 비춰지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이런 의미가 있다고 말하는데 그치거나, 상황이 이러하니 네가 판단하고 결정하라고 선택지만 제시하거나, 우리 함께 해보자고 하는 것도 방법이다.

끝으로, 말을 멈추고 듣는 것이다. 끼어들고 싶은 욕구(나라고 생각이 없는 줄 알아?)나 반론하고 싶은 충동(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변론하고 싶은 마음(그건 너의 오해야!)을 자제하고 듣는 것이다.

리더는 본질적으로 말하는 사람이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 못 견뎌야 한다. 안하고는 못 배겨야 한다. 말할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말할 기회가 생겼을 때 기뻐하는 사람이다. 말로 어젠다를 던지고, 의제를 설정하고, 논란을 만드는 사람이다. 그런 말을 준비하며 들뜨는 사람이다.

하지만 리더의 이런 말은 듣는 사람을 불편하게 한다. 설득하고 가르치려 든다. 문제를 들춰내고 숙제를 만든다.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심리적 방어기제를 작동하게 만들어 점수를 잃는다. 듣고 싶은 말을 해서 이를 만회해야 한다. 칭찬이 됐든 공치사가 됐든 선물이 됐든 점수 따는 말을 해야 한다.

그래서 리더는 힘들다. 앞장서 걸으면서 이끌어야 하고, 때로는 한 발짝 뒤에서 걸으면서 앞사람을 챙겨야 한다. 하고 싶은 말과 듣고 싶은 말의 균형이 맞춰야 한다. 하고 싶은 말은 열정과 사색에서 나온다. 듣고 싶은 말은 배려와 공감에서 찾아진다. 두 가지를 잘 배합하는 사람이 진정한 리더이고 프로페셔널이다.

젊은 시절, 언젠가 주례를 서보고 싶었다. 살면서 누군가에게 월급을 줄 수 없으면, 단 한 사람이라도 누군가의 생계를 책임지지 못한다면, 평생 남의 돈만 받고 살다 갈 거라면, 주례라도 서야 하지 않겠는가. 누군가에게 주례 서달라는 요청 한 번 못 받은 인생은 얼마나 허무한가. 더욱이 리더라면 말이다.

강원국 / 작가


강원국 필자
강원국은 작가다.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증권회사 홍보실, 대우그룹 회장비서실 등을 거쳐 대통령의 스피치라이터로 8년 일했다. 저서로 『대통령의 글쓰기』, 『강원국의 글쓰기』, 『회장님의 글쓰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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