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렌체의 식탁’은 2020년, 21세기의 세 번째 10년(decade)를 맞이해 매주 1편의 기획물을 게재합니다. 이 시대를 사는 디시전 메이커(decision maker)의 사고를 넓히고 품격을 높이기 위한 콘텐츠입니다.

그동안 이메일 뉴스레터로만 부정기적으로 발송하던 <한승동의 ‘아사히로 세상 읽기’>를 웹사이트에 발행하고 카카오톡 뉴스 메시지로도 보냅니다. 일본의 많은 언론 중 가장 '정론'에 근접한 신문으로 평가 받는 곳이 아사히신문(朝日新聞)입니다. 아사히를 통해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을 들여다 봅니다. 더불어 일본 주류 지식 사회는 세상의 변화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도 엿볼만 합니다.

이밖에 <박상현의 ‘리더의 말과 글’>, <강원국의 ‘리더가 말하는 법’>이 매주 번갈아 연재됩니다. [편집자]

중국의 국영 반도체업체인 푸젠진화(JHICC, 福建省晋华集成电路有限公司)가 올해 인력채용 공고에 ‘10년 이상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엔지니어 경력자 우대’를 명시했고, 중국 1위 배터리 업체 CATL(Contemporary Amperex Technology, 福建省寧徳時代新能源科技)은 한국 인재들에게 기존 연봉의 3~4배를 주겠다는 파격적인 조건을 공개적으로 내걸었다는 보도가 화제가 됐다. 이른바 중국의 ‘한국 첨단기술 인력 빼가기’를 걱정하는 얘기들이 나온 건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중국이 겨냥하는 건 물론 한국 ‘인재’만이 아니다.

도널드 트럼프 정권으로부터 집중 견제를 당해 더욱 유명해진 네트워크 및 통신장비 공급업체 화웨이(華為技術有限公司)가 올해 채용한 한 러시아 학생에게 주기로 한 연봉은 1500만 루블(약 2억6000만 원)이라고 <아사히신문>은 전했다.(11월 30일) 이 회사는 미국 예일대, 영국 캠브리지대, 일본 도쿄공업대 등 세계 유명 대학들 연구실과 제휴관계를 맺고 아낌없이 기술과 자금을 지원하면서 우수한 학생들을 자사에 끌어들이고 있다.

<아사히>에 따르면, “구글과 인재 쟁탈전을 벌이고 있다”고 공언한 이 회사 최고경영자(CEO) 런정페이(任正非)는 지난 6월, “올해 전 세계에서 20~30명의 천재소년을 모집한다”면서 “내년에는 200~300명”이라고 했단다. “봉급 수준은 구미 기업보다 훨씬 높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수한 인재가 오지 않는다”고 그는 말했다. 중국의 ‘디지털 굴기’를 경계하는 트럼프 정부의 견제로 어려움에 처해 있지만, 전 세계에서 고급 인력을 끌어들이는 노력에는 변함이 없다고 했다.

“AI·5G…기술패권 위해 인재 쟁탈전- 세계에서 수백만명 부족, 중국은 추격에 전력투구”.

<아사히>가 이런 제목으로 국제면 한 면을 통째로 채운 11월 30일치 기획 연재기사(‘미중 쟁패’)에 따르면, 화웨이의 일본법인 초임도 일본 대기업의 그것보다 많다. ‘화웨이기술 일본’에 따르면 내년(2020년) 봄에 졸업하는 이공계 대졸자 중 이 회사 신규채용자의 초임은 약 400만 원, 석사 학위 소지자는 430만 원, 연구직은 450만 원(일본 엔 대 원 환율을 1 대 10으로 놓고 환산한 값)이다.

화웨이는 2017년에 응모자 약 15만 명 중에서 8000~1만 명을 채용했는데, 그들 중 약 600명이 박사, 5600명 이상이 석사 소지자였다. 화웨이 백서에 따르면, 그 해에 중국이 IT(정보통신) 산업분야에서 추산한 인재부족 규모는 무려 765만 명에 달했다. 그럼에도 매년 관련분야의 중국대학 졸업생 수는 100만 명이 채 되지 않는다(이것도 어마어마한 수이지만)고 한다. 칭화대, 베이징대 등의 명문대를 나온 최고급인재 쟁탈전은 그래서 갈수록 더 치열해지고 있고, 이런 사정 때문에 외국 인재 쪽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세계 전체가 AI, 5G 등 차세대 산업(4차산업) 고급인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그것도 수백만 명 단위로.

중국 최대 검색엔진 바이두(百度) 채용 담당자는 “세계 일류대학에서 관련 학위를 받는 사람은 연간 약 5만 명밖에 안 된다. 업계에 지금 필요한 고급인력은 그 100배”라고 했단다.

중국, 4차산업 인재 싹쓸이

고급 AI 인재들이 세계 어느 지역에 어떻게 분포돼 있는지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아사히> 기사 속의 일러스트를 보면 미국이 46.0%, 중국 11.0%, 영국 6.5%, 독일 4.1%, 캐나다 3.6%, 일본 3.5%로 표시돼 있다.(캐나다 ‘엘레멘트 AI’ 집계). 한국도 아시아에서 중국, 일본, 인도 다음 순으로 제법 큰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다.

<아사히>가 인용한 영국의 헤드헌팅 업체 헤이즈(Hays)에 따르면, 중국에서 AI나 빅데이터 인재 수요는 매우 높아서 음성인식이나 자연언어 처리 등의 인재는 도처에서 서로 먼저 데려가려고 난리다. 급여도 천정부지. 지난해 AI관련 분야 봉급은 그 전해에 비해 30~50%나 올랐다. 올해 1~10월 헤이즈가 올린 인재소개 실적을 토대로 주요국의 고급인력 봉급수준을 보면, 데이터 처리 전문가의 연봉은 일본이 8000만~1억2000만 원, 중국은 7700만~1억5400만 원. 최고정보책임자(CIO)의 경우 일본이 1억7000만~2억5000만 원인데 비해, 중국은 2억3300만~4억6600만 원으로, 2억1800만~3억8200만 원인 미국마저 넘어섰다. 미국 중국 모두 이런 급등에 따른 반동으로 약간씩 도로 내려갔다고는 하나 이런 급등추세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최첨단 분야의 고급 인력을 둘러싼 국가들 간의 치열한 쟁탈전은 최첨단 산업 패권을 차지한 쪽이 경제 전반을 제패할 가능성이 높고, 그렇게 되면 군사·안보 분야 등 다른 모든 분야에서도 앞설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발전도상국이나 신흥국에서 디지털화를 서두르는 것은 그것이 일련의 립프로그(leap frog, 긴 뒷다리를 가진 개구리의 광폭 뛰어넘기 같은 도약), 산업과 사회 전반의 연쇄적 ‘뛰어넘기’ 효과를 가져다 줄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다.

“왜 뛰어넘기식 발전이 일어날까. 생각할 수 있는 하나의 가설은 공업화 시대에도 논의돼 온 ‘후발 주자의 우위성’이다. 후발 주자이기 때문에 이른바 ‘레거시(legacy) 자산’(물려받은 유산)’이 아니라 최첨단 시스템 패키지를 도입해 한꺼번에 갱신해버릴 수 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오히려 일본을 비롯한 이른바 선진국에서 디지털화 대응이 늦을 가능성에 대한 지적도 나오고 있다. 통화 위조나 돈세탁 문제가 있으니까 현금 없는 결제 필요성과 신뢰가 오히려 더 생긴다는 설명은 중국에서도 나오고 있지만, 인도의 고액 지폐 폐지와 전자머니 도입 추진도 비슷한 논리적 배경을 갖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앞 세대의 인프라 투자가 없었기 때문에 최신 세대 인프라로 바로 업데이트할 수 있는 점은 고정전화기 시대 없이 휴대전화 시대로 건너 뛰어버린 신흥국에서 흔히 관찰할 수 있다. 은행계좌 없이 통신회사 거래장부가 사실상의 개인 결제계좌가 돼 신용정보를 축적함으로써 금융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된 케냐의 M-PESA의 사례는 (디지털) 결제정보가 지닌 파급효과를 보여 준다.”

상대적으로 불리한 선진국

도쿄대 사회과학연구소의 이토 아세이伊藤亜星 준교수가 <중앙공론>(2019년 12월)에 ‘디지털 신흥국론’이란 제목으로 쓴 글의 일부다. 이 글에서 이토 교수는 일본인이어서 그랬는지 몰라도 일본 등의 자본주의 선발 국가들이 디지털화 대응이 ‘늦을 수도 있다는 지적도 있다’고 에둘러 얘기했지만, 한때 세계를 리드했던 일본 반도체·통신업체들의 몰락과 낙후된 행정전산화와 전자결제 시스템 등 최근의 여러 정황으로 보건대 일본은 이미 늦었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신흥국 내지 개도국의 뛰어넘기가 만능은 아니어서, 아날로그적 인프라 단계를 제대로 거치지 않고 건너뛴 데에 따른 부작용과 취약점도 만만찮지만, 최첨단 산업 분야 선점 내지 패권 장악이 경제뿐만 아니라 사회전반을 도약으로 이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의심할 수 없는 증거를 중국의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많은 취약점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첨단산업 육성을 통해 이미 많은 것을 성취했으며, 중장기적 목표이긴 하나 이제 패권국 미국을 따라잡으려는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인 2021년 샤오캉(소강)사회 완성, ‘2025 제조 중국’, 건국 100주년이 되는 2049 세계최강을 꿈꾸는 중국이 그 목표 달성을 위해 기대고자 하는 건 ‘레거시 자산’이 아니라 AI, 5G 등의 첨단 디지털 산업이다.

“10년 전까지 세계의 주요 인터넷 플랫폼은 모두 미국기업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톱10 중 여섯(6)이 중국기업이다.”

지난 10월 워싱턴 강연에서 페이스북 CEO 마크 저커버그는 그러면서 “표현의 자유에 큰 가치를 부여하는 미국 플랫폼이 계속 이기리라는 보증은 어디에도 없다”며 중국의 약진에 위기감을 나타냈다고 <아사히>는 전했다. 이 신문이 취재한 바에 따르면, 10월에 하와이에서 열린 미국 인공지능학회(AAAI) 총회에 세계 각국에서 수천명의 AI연구자들이 모여들었는데, 발표자의 절반 이상을 중국계 연구자들이 차지한 세션이 여럿이어서 회장 내엔 중국어로 떠들썩했다. 회장 내 취직설명회에서도 아마존, 구글, IBM 등 미국 기업들과 디디추싱, 텐센트 계 인터넷은행 등 중국세가 우수인재 선점을 위해 경합을 벌였다. 그 자리에서 바이두의 채용담당자는 “AI 일을 하는 데는 우리가 세계최고의 환경”이라며 “연구에서 사용할 수 있는 컴퓨터 처리능력이나 손으로 처리할 수 있는 방대한 데이터는 중국기업이 강하다. 봉급이나 복리후생도 지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기술과 돈으로 안 되는 것

저커버그도 걱정했듯이 지금 쫓기는 쪽은 미국이다. 중국의 기세는 무서울 정도다, 하지만 미중간의 인재 쟁탈전에서 중국이 더 많은 돈을 쏟아 붓는다고 해도 마냥 유리한 건 아니다. 중국기업 부스에 모여 있던 10여 명의 사람들에게 <아사히> 기자가 개별적으로 물어봤더니 거의 전부가 “가능하다면 미국기업에서 일하고 싶다”고 하더란다.

음성인식 AI ‘알렉사’ 개발에 관심을 가진 싱가포르대학 연구자는 말했다. “중국기업에 비해 미국기업은 다양성이 풍부하다. 한정된 배경의 연구자들하고만 사귀는 것보다 다양한 분야나 문화를 지닌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좋은 걸 만들어내고 싶다.” 아사히 기자가 보기에 미국 대형 IT기업들이 지니고 있는 장점은 이런 것이다. “미국 외의 출신자들이 창업하거나 간부 자리로 올라가는 데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다양성이 조직의 가치에서 그 근간을 이룬다. 그래서 재능 있는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힘이 여전히 압도적이다.”

듀크대의 빈센트 코니차 교수는 말한다. “AI와 관련해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나라가 갖고 있는 컴퓨터 처리능력이나 경제규모가 아니다. 누가 거기에 있느냐, 그 ‘인적 자본’에 전적으로 달렸다.”

바로 중국이 부족한 점이다. 통제사회는 얼핏 효율성이 높아 보이지만, 창의와 자율성이 요구되는 고차원 단계로 올라갈수록 ‘컴퓨터 처리능력이나 경제규모’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과제들이 많아진다. 적합한 비유가 아닐지도 모르겠으나, 대중문화 분야에서조차 신장된 국력에 걸맞은 세련된 걸작들이 중국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어쩌면 그런 약점을 커버하기 위해 더 많은 돈을 뿌리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건 돈만으로는 해소할 수 없는 요소다.

트럼프와 아베의 퇴행

그렇다고 미국이 늘 잘하고 있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동서냉전 붕괴 뒤 한때 ‘아메리카의 세기’를 구가하며 사회주의권 붕괴에 따른 반사적 이익을 향유하는 듯했던 미국 일극주의는 이라크·아프간 전쟁과 테러와의 전쟁 등 패권 유지에 과도한 에너지를 투입하면서 오래가지 못했다. 냉전에서 이긴 뒤 오히려 급속히 기울어 가던 팍스 아메리카나가 디지털 혁명과 함께 다시 힘을 되찾는 듯했으나 트럼프 정권 등장 이후 또다시 전망 불투명 상태로 빠져들고 있다. ‘아메리카 퍼스트’를 부르짖는 강권주의와 고립주의적 행태는 적어도 글로벌 교역체제에서만큼은 시진핑 체제 하의 중국보다 오히려 더 퇴보한 듯 보이기도 한다.

트럼프 정권 등장 이후 이민 유입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면서 연구자들에 대한 비자 발급도 예전보다 어려워졌다고 한다. “어렵사리 누리게 된 강점을 스스로 허물어뜨리고 자박자박 파멸을 향해 가고 있는 듯하다”고 앨런 인공지능연구소를 이끌고 있는 오런 에치오니(Oren Etzioni) 소장은 경고했다고 한다.

뜬금없이 반도체·디스플레이 첨단소재 대 한국 수출 규제와 화이트리스트 배제를 들고 나온 일본 아베 신조 정권에 대해서도 트럼프 따라하기냐는 비판과 함께 비슷한 경고들이 잇따르고 있다. 아베의 조치는 일본 관련 산업의 수출과 기술발전을 막고 한국의 탈일본화를 가속시켜 일본 반도체산업을 몰락으로 이끌 것이라던 반도체 미세가공분야 전문가 유노가미 다카시 교수의 경고가 이미 현실화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한승동 / 메디치미디어 기획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