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렌체의 식탁’은 2020년, 21세기의 세 번째 10년(decade)를 맞이해 매주 1편의 기획물을 게재합니다. 이 시대를 사는 디시전 메이커(decision maker)의 사고를 넓히고 품격을 높이기 위한 콘텐츠입니다. 첫 번째로 <박상현의 ‘리더의 말과 글’>을 싣습니다. 영어권의 리더들은 어떤 내용으로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지 현장감 있는 인사이트를 더해줄 것입니다. 박 선생은 3주 간격으로 미국·영국에서 공개된 격조 있는 문장들을 소개합니다. 이어 <강원국의 ‘리더가 말하는 법’>, <한승동의 ‘아사히로 세상 읽기’>를 싣습니다. [편집자] 역사적 순간, 세 번째 탄핵 추진 미국 하원의장 낸시 펠로시가 지난 5일 하원의 민주당 리더들에게 탄핵소추안(articles of impeachment)의 작성을 시작하라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지난 몇 주 동안 진행된 탄핵 관련 청문회에서는 다양한 증인들의 발언과 문답이 확보됐다. 이를 통해 밝혀진 사실들은 각각의 죄목과 그 증거 나열을 통해 이제 하나의 기소장 형태로 작성된다. 미국 역사에서 대통령이 탄핵에 직면한 것은 트럼프가 세 번째다. 1868년의 앤드류 존슨 대통령, 그리고 1998년 빌 클린턴 대통령이 탄핵당했다. (흔히 리처드 닉슨이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탄핵을 당했다고 알고 있지만, 사실은 탄핵에 직면한 닉슨이 스스로 사임했기 때문에 엄밀하게 탄핵은 아니다) 여기에서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내용이 있다. 탄핵과 파면의 구분이다. 우리나라도 박근혜 전 대통령 때 겪은 일이기 때문에 모두 기억하겠지만, 국회가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의결했지만, 탄핵의 최종여부, 즉 파면은 헌법재판소에서 결정했다. 미국에서도 흔히 탄핵(impeachment)이라고 하면 파면을 의미하는 것으로 오해하지만, “탄핵되었다/탄핵당했다(impeached)”는 말은, 엄밀하게는 “탄핵소추되었다”는 말이다. 앤드류 존슨과 빌 클린턴이 ‘탄핵되었다’는 것은 그들이 탄핵소추되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미국은 한국과 달리 탄핵의 최종 결정 여부, 즉 파면 여부는 상원이 결정한다. 한국에선 대통령의 파면을 헌법재판소, 즉 법원이 결정하는 법적인 절차인데 비해, 미국에선 의회가 결정하는 정치적인 절차라고 보는 게 맞다. 다만, 그 과정을 대법원장(Chief Justice)의 주재 하에 기소·변론 등의 과정이 일어나는 재판의 형태를 하고 있다. 미국 대통령이 상원 재판까지 간 경우는 두 번밖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탄핵은 아주 역사적인 사건이다. 따라서 하원의장인 펠로시는 탄핵을 주도하는 하원의 민주당 리더들에게 단순히 기소장 작성을 시작하라는 전화를 하는 대신, 5일 오전에 기자회견을 열어 탄핵소추안 작성을 공식적으로 명령하는 짧은 연설을 했다. 오늘 소개할 글은 바로 그 연설문이다. “탄핵 추진, 헌법적 위기 때문” 펠로시는 그날 두 번의 기자회견을 했다. 첫 번째 회견에서는 준비한 연설문을 읽었고, 몇 시간 후에 열린 기자회견에서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답하는 순서를 가졌다. 그런데 두 번째 회견에서 약간의 잡음이 생겼다. 문답을 마치고 회견장을 나서는 펠로시에게 한 기자(제임스 로젠)가 “대통령을 미워하시는 겁니까?(Do you hate the president?)”라는 질문을 던진 것이다. 상대방의 기분에 상관없이 질문을 던지기로 유명한 미국 기자에게서 나올 수 있는 질문이기는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친(親)트럼프 진영에서 민주당 리더에 대해 가진 편견을 그대로 담고 있는 프레임이었기 때문이고, 그 기자가 트럼프의 입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한 폭스뉴스(FoxNews) 소속이었기 때문이다. https://www.newyorker.com/magazine/2019/03/11/the-making-of-the-fox-news-white-house 낸시 펠로시는 차분하면서도 단호한 어조로 대답했다. “나는 아무도 미워하지 않습니다. 나는 가톨릭 집안에서 자라났고, 우리는 아무도 미워하지 않습니다.” 살짝 미소까지 머금은 표정이었지만, 화가 난 것은 분명해보였다. 다만 오랜 의원 생활을 통해 산전수전을 다 겪은 펠로시는 기자에게 화를 낼 급수가 아니었기 때문에 화를 내는 대신, 발걸음을 돌려 다시 연단으로 올라가서 (이런 일은 아주 드물다) 기자를 교육시키기로 작정한 듯했다. “대통령은 겁쟁이”라고 말한 뒤 그 이유를 설명했지만, “그건 선거에 관한 일이다. 그건 선거문제로 이야기할 내용”이라면서 “하지만 (오늘 이야기한 탄핵 문제는) 헌법의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펠로시는 지난 몇 달, 아니 몇 년 동안 대통령을 탄핵하라는 당내 요구를 계속 거부해왔다. 트럼프를 탄핵하려고 시도하는 순간, 민주당은 단 하나 남은 보루인 하원을 공화당에 빼앗길 수 있다는 위험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펠로시가 탄핵 절차를 밟기로 한 이후, 자신이 왜 탄핵 요구에 응하지 않았는지를 설명할 기회가 생기면 항상 꺼낸 이야기가 바로 ‘헌법’이다. 대통령, 혹은 대통령직은 국민이 선출한 가장 막강한 헌법기관이다. 그런 기관을 다른 헌법기관인 의회가 탄핵하는 것은 민주주의 국가의 중대한 위기이고 좋지 않은 선례를 남기는 일이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탄핵(소추)을 한다는 것은 그냥 넘어갈 경우 더 나쁜 선례가 남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탄핵소추를 한다고 해서 민주주의 정치에 충격이 가지 않는 건 아니다. 미국은 앞으로 이 일로 인한 후유증을 수십 년, 아니 수백 년 동안 겪게 될 것이다. 펠로시는 그런 고민을 한 후에 내린 결정에 대해 “대통령을 미워하느냐”는 무례한 질문을 던진 기자에게 분노한 것이다. 트럼프측 당파싸움 프레임 맞서 ‘건국의 아버지들’ 얘기로 설득력↑ 물론 펠로시가 진행 중인 탄핵절차에 대해 “워싱턴에선 흔한, 증오에 의한 당파싸움”으로 치부하려는 시도는 폭스뉴스의 기자만 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친트럼프 진영이 좋아하는 게 그런 시각이다. 그냥 증오에 찬 당파싸움으로 치부할 경우, 트럼프가 저지른 온갖 헌법파괴행위들이 가려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펠로시가 5일 오전에 준비한 연설문은 바로 그런 시각을 정면으로 공략해야 했다. ‘이것은 절대로 흔한 당파싸움이 아니며, 대통령은 헌법을 무시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분명하게 전달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펠로시는 그 방법을 미국 역사에서 찾았다. 아래 연설문과 설명에서 소개하겠지만, 펠로시가 탄핵절차가 시작된 후에 미국 역사 이야기를 꺼낸 것은 처음이 아니다. 펠로시는 각종 행사와 인터뷰에 등장할 때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Founding Fathers)’ 이야기를 꺼냈다. 뿐만 아니라 탄핵 청문회에 등장한 증인들 역시 모두연설에서 미국 역사를 이야기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펠로시는 특히 ‘군주정(monarchy) vs. 공화국(republic)’이라는 프레임으로 트럼프 탄핵의 의미를 설명했다. 본문을 한 번 읽어보자:


Let us begin where our founders began in 1776. When in the course of human events it becomes necessary for one people to dissolve the political bonds which have connected them with another. With those words, our founders courageously began our Declaration of Independence from an oppressive monarch, for among other grievances the king’s refusal to follow rightfully passed laws. 미국을 건국한 분들이 1776년에 시작한 지점에서 이야기를 시작해보겠습니다. 그들은 ‘인간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한 국민이 자신을 타인에게 얽매이게 하는 정치적 속박을 끊어야 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이라는 말로 용기 있게 독립선언문을 시작했습니다. 압제적인 군주로부터의 독립이었고, 많은 원성이 있었지만 특히 왕이 정당하게 통과된 법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In the course of today’s events, it becomes necessary for us to address, among other grievances, the president’s failure to faithfully execute the law. When crafting the constitution, the founders feared the return of a monarchy in America. And having just fought a war of independence, they specifically feared the prospect of a king-president corrupted by foreign influence. 현재 일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많은 원성 중에서도 대통령이 신뢰 있게 법을 집행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건국의 아버지들은 헌법을 작성하면서 아메리카에 군주정이 되돌아올 수 있다는 두려움을 가졌습니다. 이제 막 독립전쟁을 끝낸 그들은 특히 제왕적 대통령이 외세에 의해 부패할 수 있을 가능성을 두려워했습니다. During the constitutional convention, James Madison, the architect of the constitution, warned that a president might betray his trust to foreign powers which might prove fatal to the republic. Another founder, Gouverneur Morris, that a president may be bribed by a greater interest to betray his trust. He emphasized that this magistrate is not the king. The people are the king. 헌법을 기초한 제임스 매디슨은 헌법을 작성하는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대통령이 신뢰를 저버리고 외국의 열강들과 손을 잡을 수 있음을 경고했습니다. 그렇게 될 경우 공화국은 치명적인 타격을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건국의 아버지 구버너 모리스는 대통령이 더 큰 이익에 매수되어 신뢰를 저버릴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그는 이 직책이 왕이 아님을 강조했습니다. 국민이 왕입니다. They, therefore, created a constitutional remedy to protect against a dangerous or corrupt leader: impeachment. Unless the constitution contained an impeachment provision, one founder warned, a president might, “spare no effort or means whatsoever” to get himself re-elected. Similarly, George Mason insisted that a president who procured his appointment in his first instance through improper and corrupt acts might repeat his guilt and return to power. 따라서 그들은 위험한, 혹은 부패한 지도자로 부터 (공화국을) 보호할 수 있는 헌법적인 해결책을 만들어냈습니다. 바로 탄핵입니다. 한 건국의 아버지는 만약 헌법에 탄핵조항이 없으면 대통령이 재선을 위해 “어떤 노력과 수단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조지 메이슨은 부적절하고 부패한 행위를 통해 대통령이 된 사람은 같은 불법을 반복해서 권력을 다시 차지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During the debate over impeachment at the constitutional convention, George Mason also asked, shall any man be above justice? Shall that man be above it who can commit the most extensive injustice? 헌법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탄핵에 관해 토론하던 중, 조지 메이슨은 누군가 정의 위에 존재할 수 있는지, 가장 큰 불의를 저지른 사람이 정의 위에 군림할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In his great wisdom, he knew that injustice committed by the president erodes the rule of law, the very idea that a fair justice, which is the bedrock of our democracy. And if we allow a president to be above the law, we do so surely at the peril of our republic. In America, no one is above the law. 현명했던 그는 대통령이 저지른 불의는 법치를, 우리 민주주의의 기초가 되는 공평한 정의라는 생각 자체를 약화시킬 것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만약 대통령이 법 위에 있게 허용한다면 우리 공화국이 위험에 처할 것임도 알고 있었습니다. 미국에서는 그 누구도 법 위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Over the past few weeks, through the intelligence committee working with the foreign affairs and oversight committees, the American people have heard the testimony of truly patriotic career public servants, distinguished diplomats and decorated war heroes – some of the president’s own appointees. 지난 몇 주 동안 (하원의) 정보위원회가 외교위원회, 감독위원회와의 협업을 하는 과정에서 미국 국민들은 진정으로 나라를 사랑하는 직업공무원과 뛰어난 외교관, 그리고 훈장을 받은 전쟁 영웅들의 증언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들 중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임명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The facts are uncontested. The president abused his power for his own personal political benefit at the expense of our national security, by withholding military aid and a crucial Oval Office meeting in exchange for an announcement of an investigation into his political rival. 아무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들입니다. 대통령은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국가 안보를 희생해가면서 자신의 권력을 남용했습니다. 군사 원조와 함께 대통령 집무실에서의 중요한 (정상)회담을 보류하면서 자신의 정적을 조사하겠다는 발표를 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Yesterday, at the judiciary committee, the American people heard testimony from leading American constitutional scholars who illuminated without a doubt that the president’s actions are a profound violation of the public trust. The president’s actions have seriously violated the constitution, especially when he says and acts upon the belief “Article 2 says I can do whatever I want.” No. His wrongdoing strikes at the very heart of our constitution. A separation of powers, three co-equal branches, each a check and balance on the other. “A republic, if we can keep it,” said Benjamin Franklin. 국민들은 어제 법사위원회에서 미국의 주요 헌법학자들의 증언을 들었습니다. 그들은 대통령의 행위가 국민의 신뢰를 근본적으로 침해했다는 사실에 추호의 의심도 없었습니다. 대통령의 행위는 헌법을 심각하게 위반했습니다. 특히 대통령이 “헌법 제2조에 따르면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의 범법행위는 우리 헌법의 근간을 흔들었습니다. 권력의 분립, 세 개의 동등한 권력이 서로를 견제하고 균형을 잡는 것 말입니다. 벤자민 프랭클린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공화국이오, 여러분이 지킬 수만 있다면.” Our democracy is what is at stake. The president leaves us no choice but to act because he is trying to corrupt, once again, the election for his own benefit. The president has engaged in abuse of power undermining our national security and jeopardizing the integrity of our elections. His actions are in defiance of the vision of our founders and the oath of office that he takes to preserve, protect and defend the constitution of the United States. 우리의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했습니다. 대통령이 또다시 자신의 이익을 위해 선거에 부정을 저지르려 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대통령은 권력을 남용하여 우리의 국가안보를 위협하고 선거의 공정성을 위협했습니다. 그의 행동은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이 가졌던 비전에 반하고, 그가 미합중국의 헌법을 유지하고, 보호하고, 지키겠다고 맹세한 대통령직 선서에 위배됩니다. Sadly, but with confidence and humility, with allegiance to our founders and a heart full of love for America, today I am asking our chairmen to proceed with articles of impeachment. I commend our committee chairs and our members for their somber approach to actions which I wish the president had not made necessary. 오늘 저는 슬픔을 안고, 그러나 동시에 확신에 찬, 겸손한 태도로, 건국의 아버지들에 대한 충성과 미국에 대한 가슴 가득한 사랑을 가지고 의장들에게 탄핵소추안 작성을 부탁드립니다. 저는 (하원 위원회) 위원장들과 소속 의원들이 대통령이 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행위들을 진지한 자세로 살핀 데 찬사를 보냅니다. In signing the Declaration of Independence, our founders invoked a firm reliance on divine providence. Democrats, too, are prayerful, and we will proceed in a manner worthy of our oath of office to support and defend the constitution of the United States from all enemies, foreign and domestic, so help us God. 건국의 아버지들은 독립선언서에 서명하면서 신의 은총을 굳게 의지했습니다. 민주당원들 역시 기도하는 마음으로, 그리고 우리가 한 의원 맹세에 합당한 자세로 미합중국의 헌법을 지지하고 국내외 모든 적으로 부터 지키려 합니다. 그러니 신이여, 우리를 보호하소서.
‘건국-트럼프-결단’ 세 부분 구성 프린스턴대학에서 정치사를 가르치는 줄리언 젤리저(Julien Zelizer) 교수가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나와 설명한 것처럼 이 연설문은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총 12개의 문단 중 처음 6개의 문단은 건국의 아버지들의 헌법 작성 의도, 특히 그 중에서도 탄핵조항을 넣은 의도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 뒤에 이어지는 3개의 문단은 현직 트럼프 대통령을 탄핵하려는 이유가 되는 지난 몇 주 동안의 과정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마지막 3개의 문단은 미국의 역사와 현실을 종합한 결단을 이야기한다. “트럼프, ‘제왕적 대통령’처럼 행동” 앞서 이야기했듯, 펠로시는 트럼프의 행동이 ‘공화정의 대통령이 아니라 제왕적 대통령(king-president)’ 같은 것이며, 그것이야말로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이 헌법을 만들면서 경고했던 것임을 설명하고 있다. 앞서 있었던 로버트 멀러 특별검사의 조사 등이 트럼프와 러시아 사이의 관계에 관한 조사였다면, 이번에 탄핵을 시도하는 이유는 트럼프가 헌법을 위반한 데 있음을 분명히 하려는 태도다. 그리고 그것을 무엇보다 잘 보여줄 수 있는 게 ‘군주국 vs. 공화정’ 프레임이다. 미국은 (영국의) 왕정을 탈피해서 세워진 국가라는 것, 그러니 우리가 군주국인지 공화정인지를 결정하라는 것이다. "공화국이오, 여러분이 지킬 수만 있다면." 마지막 두 부분을 연결하는 것은 벤자민 프랭클린의 말이다. “A republic, if you can keep it.” 이 말은 낸시 펠로시가 탄핵 절차에 들어간 후로 자주 인용하는 구절로, 미국 역사에서 자주 등장하는 일화이다. 이 연설문에 등장한 ‘헌법을 작성하는 모임(Constitutional Convention)’에 벤자민 프랭클린이 참석한 뒤 밖으로 나오자 당시 시민들은 ‘(헌법에 따르면) 어떤 종류의 정부가 만들어지느냐’고 물었다. 거기에 대한 답이 바로 “공화국이오, 여러분이 지킬 수만 있다면”이다. 프랭클린은 왜 “우리(we)”라는 단어가 아닌 “여러분(you)”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을까? 건국에 적극 개입한 리더답지 않게 국민과 자신 사이에 거리를 두는 태도처럼 보이는 단어를 사용한 이유가 뭘까? 1776년 당시 평균나이 44세에 불과했던 건국의 아버지들 중에서 70세였던 그는 단연 최연장자였다. 그럼에도 가장 자유로운 사고를 하던 프랭클린은 젊은이들이 모여서 야심차게 세운 국가가 과연 군주제로 돌아가지 않고 버틸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을 수 있다. (그는 프랑스에 대사로 가서 외교를 이유로 왕실 사람들과 어울리며 귀족처럼 행복하게 살던 사람이다. 오죽했으면 제퍼슨이 현지에 가서 충격을 받았을까.) ‘미국이 군주국 될 위기’를 경고 프랭클린은 기독교를 비롯한 전통적인 사상과 권력에서 자유로운, 진정한 계몽주의자답게 인류 역사에서 처음 이뤄지는 새로운 실험이 뜻밖의 어떤 방향으로 끝날 수도 있다는 태도였을 것이다. ‘제도는 만들어두었지만, 당신들이 그걸 지킬 수 있겠느냐’는 질문이자, ‘당신들처럼 젊은 사람들과 그 후손들이 지키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유지되지 않는다’는 경고였던 것이다. 펜실베이니아대학의 리처드 비먼 교수는 민주주의 공화국은 단순히 국민 합의에 의해 세워지는 게 아니라, 국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알려고 하는 태도를 통해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한다. 즉, 국민이 지킬 수 있을 때까지만 공화국인 것이다. https://constitutioncenter.org/learn/educational-resources/historical-documents/perspectives-on-the-constitution-a-republic-if-you-can-keep-it 펠로시는 프랭클린의 경고를 전달받은 공화정의 후손으로서, 자신의 연설문을 통해 국민들에게 선조의 말을 다시 한 번 일깨워 주었다. 공화국이란 존재도, 국민이 끊임없이 지켜내지 못하면 언제든지 군주국으로 돌아간다는 것이고, 미국은 바로 그렇게 될 위기에 처했다는 경고다.

박상현 / 미디어 디렉터, 사단법인 코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