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년간 신남방 정책을 의욕적으로 펼쳐왔다.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10개 회원국과 인도를 대상으로 정상 외교, 순방 외교, 공공 외교를 통해 4강(미·일·중·러) 못지않게 공을 들여왔다. 11월 하순 부산에서 열린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와 제1회 한·메콩 정상회의는 우리 정부의 외교 역량을 결집한 성과였다. 아세안은 나라에 따라 편차가 있지만 연평균 5∼6%의 경제 성장률을 자랑한다. 향후 10년간 세계 경제의 기관차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사회간접자본(SOC) 투자 규모만 해도 연 200억 달러를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신남방의 역동성은 20억 인구의 평균연령이 20대 후반이라는 사실에서 압축적으로 드러난다. 그뿐 아니다. 아세안·인도는 또한 디지털경제 네트워크와 스마트 시티를 구축하는데 적극적이다. 한국과의 협력 분야가 확대될 여지가 많다. 신남방으로 지칭되는 ‘아세안+인도’는 중동, 아프리카, 중남미 등과 함께 지난 70여 년간 한국 외교의 사각지대나 다름없었다. 그래서인지 신남방 지역과의 협력 강화를 위해선 제도나 시스템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동아시아 협력청’(가칭)을 설치하자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편집자] 한국 경제의 성장 둔화는 ‘경향적’ 박근혜 정부 당시 한국 경제의 연평균 성장률은 3%안팎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모든 정부는 ‘바로 직전 정부’에 비해 연평균 성장률이 1%포인트씩 떨어져 왔다는 점이다. 쉽게 말해, 박근혜 정부 땐 약 3%, 이명박 정부 땐 약 4%, 노무현 정부 땐 약 5%, 김대중 정부 땐 약 6%였다. 이를 시간 순으로 표현하면, 6%(김대중) → 5%(노무현) → 4%(이명박) → 3%(박근혜) → 2%(문재인)이다. 즉, 대통령과 정부의 이념 성향이 진보·보수에 관계없이 한국 경제는 ‘경향적’으로 성장률이 저하됐다. 이는 성장 둔화가 단지 개별 정권의 잘잘못이 아님을 방증한다. 뭔가 ‘구조적인’ 원인이 작동하고 있다. 그게 뭘까?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성장률을 떨어뜨린 세 가지 원인 첫째, ‘국제 교역의 축소’이다. 한국 경제의 성장 동력은 수출이었는데, 1990년대 중반 이후 중국 경제의 고도성장 덕에 우리의 수출·성장도 호조를 보였다. 그러다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전환점으로 국제 교역이 위축되는 상황을 맞이했다. ‘세계의 공장’ 역할을 했던 중국은 그 무렵 부품·소재 및 중간재를 국산화하기 시작했다. 특히 2년 전부터 미중 무역전쟁이 격화되면서 보호무역주의 장벽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국제 교역의 축소로 인해 경제가 삐걱거리는 나라는 한국뿐만 아니다. 독일, 싱가포르, 대만처럼 대외의존도가 높고, 제조업 비중이 높은 나라들은 예외 없이 압박과 타격을 받고 있다. 둘째, ‘산업구조의 성숙화’이다. 생명체처럼, 하나의 산업 역시 생로병사(生老病死) 단계를 거친다. 초기에는 비약적인 성장을 하다가 일정 단계를 지나면 성장 둔화를 맞이하게 된다. 산업구조의 성숙기에 성장 둔화 상태가 되는 이유는 ‘수요의 포화’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산업구조의 성숙화→수요의 포화→성장률 둔화’로 이어지는 메커니즘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는 국내 자동차 수요의 둔화 추세다. 국내 자동차 보유대수의 연도별 증가율 추이를 보면, 1981년 7%에 불과했으나 1985년 16%, 1990년 30%로 치솟았다. 여기서 정점을 찍은 후 2000년 7%, 2008년 3%로 추락한다. 한국 자동차 산업은 국내 수요의 포화 현상을 ‘해외 수출’로 만회하고 성장 동력을 이어나갔다. 2018년 기준으로 ‘현대차+기아차’의 내수 합계는 125만2778대인 데 비해, 수출 합계는 614만6197대였다. 수출 합계가 내수 합계의 4.9배에 이르게 됐다. 셋째, 인구 구조 변화와 고령화 추세다. 세간의 오해와 달리 고령화 자체가 경제 성장에 미치는 영향은 상대적으로 미미하다. 고령화가 경제 성장을 둔화시키는 방식은 정부 및 제도와의 연결 때문이다. 특히 중요한 것은 세금-복지-일자리의 상호관계라고 할 수 있다. 고령화가 될수록 세금 납부자는 적어지고, 복지 수혜자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세금 납부자의 개별 세율도 올라갈 것이다. 예컨대 A국가에선 (경제 활동을 하는) 세금 납부자가 10명, (65세 이상) 복지 수혜자가 5명라고 가정하자. B국가에선 거꾸로 세금 납부자가 5명이고, 복지 수혜자가 10명이다. 부양 비율로 따지면 A국가는 50%(5명/10명), B국가는 200%(10명/5명)이다. 세금 부담을 보면 B국가에서 경제 활동을 하는 사람은 A국가보다 4배나 많은 세금을 부담하게 된다. 현재 한국은 A국가에서 B국가로 ‘이동 중’이다. 역대 정부의 성장률이 꾸준히 둔화돼온 이유 중 하나다. 한국 경제를 살릴 역동성 갖춰 종합해보면, 성장률이 경향적으로 하락하는 세 가지 원인은 ①국제 교역의 축소 ②산업 구조의 성숙화 ③고령화로 인해 세금-복지-일자리에 관한 비효율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성장 둔화의 해법도 ①(내수 발전도 추진하되) 새로운 수출시장 확대 ②규제 개혁을 통한 경제적 역동성 강화 ③고령화 시대에 적합한 종합적인 제도개혁으로 정리할 수 있다. 신남방 정책은 ‘수출시장 확대’란 관점에서 중요하다. ‘아세안+인도’에 포함된 11개 국가의 최근 경제성장률, 인구, 총GDP, 1인당 GDP를 정리하면 [표]와 같다.

‘인도+아세안’ 인구는 20억7000만 명이다. 총GDP는 5조7000억 달러이다. 참고로 한국의 총GDP(2018년)는 약 1조7000억 달러, 일본은 4조9000억 달러, 중국은 13조6000억 달러, 미국은 20조5000억 달러이다. ‘인도+아세안’의 총GDP는 한국의 3.3배, 중국의 0.4배인 셈이다. 주목할 부분은 ‘성장 잠재력’이다. 연평균 성장률 5~7%를 유지하는 흐름이다. 경제가 약 7%씩 성장할 경우, 10년가량 지나면 경제 규모는 두 배가 된다. ‘인도+아세안’의 총GDP는 2030년쯤 10조 달러를 넘을 것으로 기대된다. 미·중 충돌의 전략적 요충지 각광 둘째, 외교안보적 중요성이다. 1980년대 ‘아시아의 4마리 용’이라고 하면 한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를 가리켰다. 흥미롭게도 4마리 용의 공통점은 ①지정학·지경학적으로 냉전의 접경지대에 있었고 ②미국의 우방국가였고 ③수출중심 국가였다. 향후 수십 년간 글로벌 무대에서 미국과 중국은 정치·경제·군사 분야의 주도권 싸움을 벌일 것이다. 아세안과 인도는 미·중의 힘이 ‘맞부딪치는’ 지역, 이른바 전략적 요충지다. 동남아시아의 지정학적-지경학적 지위는 앞으로 더욱 중요해질 가능성이 크다. 선거 용어를 빌리자면, 신남방 지역은 미국 대선에서 승부를 결정하는 경합 주(Swing State)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임기 초반부터 신남방 정책에 많은 공을 들였다. 2017년 11월 신남방 정책을 발표하고, 2018년 8월에는 신남방 경제특위를 신설했다. 신남방 정책은 신북방 정책과 함께 추진됐다. 동남아 국가와 동북아 국가를 한데 묶은 이유는 신남방 정책이 ‘한반도 평화체제’의 연장선상에서 추진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제 협력 관점에서 볼 때, 동남아 국가들과 동북아 국가들은 이질성이 강하다. 따라서 신남방 정책에 대해선 ‘경제협력’ 성격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무엇이 필요할까? 신남방 정책 목표 분명히 하자 첫째, ‘정책 목표’를 분명히 해야 한다. 새로운 수출시장 확보, 기업의 해외투자 및 서비스시장 진출 촉진, 중소기업의 수출기업화 지원 등이 중요하다. 특히 중소기업의 수출기업화 지원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중요하다. 기업에게 고부가치화의 가장 중요한 방법은 ‘규모의 경제’이다. 수출은 시장 사이즈에서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는 경우이고, 대기업은 기업 사이즈에서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는 경우이다. 중소기업의 수출기업화 지원정책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불균형 해소, 중소기업 경쟁력 강화, 부품·소재 산업의 육성, 청년의 중소기업 취업 촉진 등에 큰 도움이 된다. 신남방 지역의 성장 잠재력이 높음을 감안하면 더욱 중요하다. 각 부처 업무 총괄하는 조직 필요 둘째, 강력한 정책 추진을 위해선 ‘동아시아 협력청’(가칭)이 필요하다. 대외경제협력을 강화하려면 정부 차원에서 다양한 정책 수단들이 결합돼야 한다. 정상회담, 공적개발원조(ODA) 지원, 문화 교류, 인적 교류, 정책 대화, 기업진출 지원,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등이 결합돼야 한다. 이에 필요한 업무들은 외교부, 산업자원통상부, 법무부, 교육부, 중소기업벤처부, 고용노동부 등 다양한 부처들에 흩어져 있다. 예를 들어, 중소기업들의 진출을 지원하기 위해 신남방 지역에 한국형 산업단지 건설을 추진한다고 하자. 이를 위해선 공장부지 확보, 건설 프로젝트 발주, 파이낸싱, 인력 양성, 아세안 유학생들의 국비 지원, 산업연수생 증원 등 다양한 정책 수단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럴 경우 각 부처별로 정책을 추진하는 것보다 하나의 사령탑에서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일해 나가는 게 효율적일 것이다. 신남방 정책과 관련해선 지금까지 ‘신남방 경제특위’가 컨트롤 타워 역할을 맡아왔다. 위원회 조직의 특성상 각 부처에서 파견한 공무원을 중심으로 구성된 ‘임시’ 조직이다. 특위 위원장을 청와대 경제보좌관이 맡고 있지만 겸직의 한계가 뚜렷하다. 그래서 동아시아 협력청(가칭)이란 정부 상설 조직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현재 신남방 경제특위 방식으로 둘 것인지, 동아시아 협력청(가칭)을 만들 것인지 국가 전략 차원에서 결정할 문제다. 가장 바람직한 방안은 동아시아 협력청(가칭)을 신설하되, 청와대 경제보좌관과의 긴밀한 협력체계를 구축해 신남방 정책을 다양한 정책수단으로 뒷받침할 필요가 있다. 각국별로 맞춤형 협력 실천해야 셋째, 신남방 국가들의 입장에서 경제 협력을 추진하거나 국내 시장 개방 및 인적 교류 확대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아세안 국가 중에는 한국보다 훨씬 경제가 발전된 싱가포르 같은 선진국이 있는가 하면 1인당 GDP가 1000달러대인 나라도 있다. 역사적으로 미국, 중국, 스페인, 일본과 싸워 그들을 물리칠 만큼 강고한 민족의식을 가진 나라도 많다. 문화적으로나, 종교적으로나 인류 문명을 주도한 땅이다. 그런 만큼 각 분야에서 쌍방향 교류·협력이 중요하고 각국에 대한 맞춤형 경협 전략이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미·일이나 중국에 비해 진출 시기도 늦었을 뿐더러 경제지원 규모 역시 상대적으로 작은 편이다. 인도의 경우 선진국들의 경제 침탈을 우려해 개방의 폭과 속도를 조절하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한국 경제가 60여 년간 쌓아온 발전 경험과 노하우를 전수하고 서로 윈윈하겠다는 자세를 잊지 말아야 한다.

최병천 /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 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