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을 160여일 앞두고 야권에 투쟁 강풍이 몰아쳤다. 이번 겨울은 ‘황(黃)의 전쟁’이라고 할 수 있다. 황교안 대표는 총선 고지를 넘어, 안정적 대권주자를 굳힐 것인가, 아니면 중도 낙마할 것인가. 황 대표는 20일 무기한 단식 농성의 이유를 지소미아 파기 철회, 공수처법 포기, 연동형 비례대표제 선거법 철회, 세 가지로 밝혔지만 긴장 조성을 통한 정면 돌파라는데 해석이 일치한다. 정치권의 관심은 또한 ‘왜 그렇게 빨리 초강수를 두었을까’ 하는데 모아진다. 단식은 시작의 수가 아니라 끝내기 수인데 빨라도 너무 빨랐다는 지적이 여의도 정가의 대체적 평가다. 왜 그랬을까. 그리고 단식 외의 다른 수는 없었을까. 황 대표 체제의 존속 여부, 보수 통합의 결과에 따라 내년 총선 구도는 크게 달라질 것이다. 민주당은 표정을 감추며 예의주시하고 있다. 황교안, 유승민, 홍준표의 야권 3국지, 안철수 전 대표를 제외한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따라가 봤다. [편집자] ‘탄핵의 江’, 보수 통합 좌우할 화두 황교안 대표는 내년 4월 총선까지 건너야 할 강(江)이 여러 개 있다. 하나하나가 역대급 야당 총재의 내공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청와대와 민주당, 상당수 야당이 동조하고 있는 패스트트랙(선거법·공수처법)을 저지하는 게 1번, 공천 물갈이와 당의 쇄신·혁신이 2번, 야권 통합과 대세론 확보가 3번이다. 그런데 이 모든 걸 관통하는 키워드는 유승민 의원이 야권 통합의 전제 조건으로 내건 ‘(박근혜) 탄핵의 강’으로 압축할 수 있다. 박근혜 탄핵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제1야당을 개혁 보수로 바꾸어낼 것인가. 탄핵 찬성파와 반대파가 공존하는 현재의 당내 구도를 유지한 채 투쟁을 통한 장악력 강화를 이뤄낼 것인가. 3년 전 박근혜 탄핵의 겨울과 봄은 한국당 안에서는 적어도 살아있는 현재다. 황 대표가 ‘탄핵의 강’을 어떻게 건너느냐에 따라 그의 앞에는 ‘빅 텐트’와 ‘빈 텐트’라는 양극단의 상황이 기다리고 있다. ‘빅 텐트’란 유승민계, 안철수계를 끌어안고 보수 통합을 성사시켜 민주당과 정면승부를 벌이는 구도다. 양당 주변에 정의당, 우리공화당(조원진·홍문종 의원 등)이 있겠지만 대결의 주체는 전통적인 제1, 2당이다. 거꾸로 ‘빈 텐트’는 보수 통합이 무산되고 대신 우리공화당과 ‘탄핵 부정 세력’을 보듬는 수준에 그치는 것이다. 한국당 입장에선 2017년 대선 구도, 즉 두 개의 보수 정당으로 선거를 치르는 필패 구도가 될 수 있다. ‘빅 텐트 vs. 빈 텐트’의 정반대 결과 김세연 의원이 돌연 등판해 ‘한국당은 존재 자체가 적폐’라고 했을 때 다들 아연했다. 주류는 찻잔 속의 태풍으로 치부하려 했다. 늘 입을 여는 오세훈, 홍준표를 빼고는 대부분 입을 다물었다. 황 대표가 돌연 단식 투쟁이라는 초강수를 두면서 들불은 타올랐다. 황 대표 진영에서는 어차피 불 붙을 것 일찌감치 들판을 다 태워버리자는 청야(淸野) 작전의 계산도 했음직하다. 지금은 아파트 유리창이 깨질 정도의 강풍이라는 데에 대부분 동의한다. 우선 등장하는 수습 시나리오는 황 대표의 전략적 퇴진, 비대위 체제 구성, 보수 통합 추진의 수순으로 가보는 것이다. 주류, 비주류가 대체로 동의하는 시나리오다. 황 대표 진영으로서는 7부 능선쯤에 방어선을 구축하면서 비주류나 당 밖 늑대들의 분열을 기다려볼 수 있다. 친황 진영에서는 그러면서 비대위원장에 ‘중립적’ 인사를 모시려 할 것이고, 당선이 목마른 의원, 위원장들은 ‘덜 중립적, 더 개혁적’ 인사에 눈길을 줄 것이다. “황 대표부터 험지에 출마하라” 첫 번째 전투가 당의 직인을 둘러싼 것이라면 두 번째 전투는 공천, 사람의 문제다. 일찍부터 “황교안 대표와 측근 그룹의 험지 출마나 불출마 등 자기희생 없이 한국당의 인적 쇄신은 불가능할 것이다.”(김병준 전 비대위원장)라는 날선 비판이 등장했다. 김 전 위원장은 그러면서 ‘탄핵에 책임 있는 인사들은 이번 총선에서 빠질 것’을 주문했다. 한국당 총선기획단장인 박맹우 사무총장은 21일 국회 브리핑을 통해 “21대 총선에서 현역 의원의 절반 이상을 교체하는 개혁 공천을 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현역 의원 3분의 1 이상에 대해 컷오프를 실시한다는 원칙도 덧붙였다. 민주당이 밝힌 ‘현역 하위 20%’에 비해 물갈이 비율을 훨씬 높게 잡은 것이다. 황 대표의 단식이 현역 물갈이와 당내 반발을 의식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시계를 며칠 되돌려보면 김세연의 일격에 황 대표가 대응할 수 있는 카드는 단식 밖에 없었을까. 김 의원은 뭐라 했던가. 김세연 불출마 선언의 핵심은 ‘파괴’다. 그는 “완전히 새로운 기반에서, 새로운 기풍으로, 새로운 정신으로, 새로운 열정으로, 새로운 사람들로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지금 한국당 상황으로선 어떤 새로운 기획도 불가능하기 때문에 파괴가 선행되어야 하고 그 빈 공간에서 새로운 모색이 시작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일종의 ‘빅 텐트론’이 깔려 있다. 그 말을 액면대로 받아들였다면? 김세연이 불출마의 변으로 내놓은 ‘파괴적 혁신’을 쇄신과 통합의 화두로 활용했더라면, 즉 김세연의 발언을 거부하는 게 아니라 그가 만든 바람에 올라탔더라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었다. 황 대표가 오대산 같은 데를 찾아가 침묵 수행을 며칠 했더라면 온 정치권은 그의 말 한마디에 귀를 쫑긋했을 것이다. 홍준표보다 유승민을 더 견제? 황 대표는 2017년 대선 당시 8%를 얻은 유승민 의원을 너무 의식한 것 같다. 그는 대선 직후부터 ‘제1야당의 후보가 되지 않는 한 차기 대선에 나서지 않겠다’고 공언해왔다. 당시 한국당 후보로 나와 24%를 받은 홍준표보다 혼자 뛰어서 8%를 받은 유승민은 잠재적 경쟁자 1번이었다. 유 의원과 가깝다는 점에서 김세연의 공격을 유의 공격으로 당연시한 것이다. 중립적 관측통들은 부산에서 열리는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와 ‘제1차 한·메콩 정상회의’도 지적한다. 언론의 관심이 그쪽으로 쏠릴 것을 우려한 황 대표 진영이 초강수를 서둘렀다는 것이다. 지금 한국당은 한쪽에서는 유승민 배후론이, 한쪽에서는 ‘(단식투쟁) 측근 밀실 급조론’이 돌아다닌다. 야당 지도자의 무기는 배짱이다. 황 대표가 YS나 DJ처럼 보름 이상 단식을 끌고 가면, 즉 유승민, 홍준표와의 배짱 싸움에서 밀리지 않으면, 패스트 트랙을 12월 10일쯤까지 막아내면, 그러면서 당내 수습안을 만들어내는데 성공하면, 섣부른 승부수에도 불구하고 배짱으로 이를 극복한 대표가 될 것이다. 흔히들 1994년 정계 복귀를 서두른 김대중 아태재단 이사장에 맞서 12.12 투쟁에 나선 이기택 당 대표에 비유하지만, 그때와 달리 당 대표의 경쟁자들은 분산돼 있다. 황 대표는 카리스마적 리더가 아니다. 그럼에도 사실은, 가진 게 많은 당 대표다. 당내에선 황 대표에게 맞서는 유의미한 비주류 세력이나 대안적 리더가 크게 돋보이지 않는다. 전당대회 득표 2위였던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여전히 지역구에 묶여 있고, ‘잠룡 급 인사’들의 시선도 ‘원내 복귀’에 맞춰져 있다. 홍준표 전 대표가 끊임없이 메시지를 발신하고, 유승민 의원이 ‘변혁’이란 이름 아래 세력화를 시도하고 있지만 제1야당 대표가 쳐다보지 않으면 모두 스스로 빛을 내지 못하는 미(未)발광체라고도 할 수 있다. 보수 통합 시나리오 예단 못해 황교안 체제는 왜 이런 곤경에 빠지게 됐을까. 길게 보면 ‘박근혜 탄핵’ 이후 제대로 파괴적 혁신을 못했기 때문이고, 가깝게는 ‘조국 정국’의 반사이익에 취해 낙관론에 젖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한국당, 나아가 보수 진영의 통합 시나리오를 지금 예단하기란 매우 어렵다. 과거의 여러 사례들과 너무 달라서다. 보수의 혁신 사례는 적지 않았다. 1990년 3당 합당, 1996년 신한국당 창당, 1997년 한나라당 창당은 재구성에 속한다. 2004년 천막당사, 2012년 새누리당 당명 채택은 혁신으로 분류할 수 있다. 다섯 번의 변신은 리더십, 기획력, 시대정신이라는 삼박자를 갖췄기 때문에 가능했다. 적대적인 혹은 이질적인 세력들의 이해관계가 조정된 결과물이었다. 예컨대 이회창 전 대표는 YS에게 하극상을 감행하며 조순과 꼬마민주당을 끌어안아 한나라당을 창당하고 보수 진영의 ‘중시조’로 자리매김했다. 2012년 4월 총선, 12월 대선을 앞두고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한나라당을 놓아줬다. 남경필· 유승민이 앞장서서 홍준표 대표 체제를 붕괴시키고 박근혜를 간판으로 다시 세웠다. 박근혜는 한나라당이라는 문패를 내렸고 ‘빨간 점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총선·대선에서 승리했다. 시대 변화에 조응했지만 이면에는 단단한 기획과 결단이 있었다. 지금의 한국당은 2007년 대선을 앞둔 열린우리당을 떠올리게 된다. 당·청의 갈등과 대치 속에 ‘백년 정당’이라던 열린우리당이 깨진 뒤 호남계가 합류하고 한나라당의 손학규도 건너왔다. ‘대통합민주신당’을 차렸다. 그러고도 정동영 후보는 520만 표 차이의 대패를 당했다. 이후 민주당의 당권은 한나라당 출신 손학규가 쥐었고, 유시민은 딴 살림을 차렸으며, 이해찬은 탈당했다. 2007년 민주 진영과 상황 비슷 2007년의 진보 진영과 마찬가지로 한국당과 보수진영도 총선 전에 ‘대통합’을 할 가능성과 시간은 남아있다. 패배의 두려움은 사람들을 뭉치게 만들기 때문이다. 통합이 성사되지 못할 경우 ‘영남당’과 ‘비영남 구락부’로 쪼개져 총선을 치를 수도 있다. 그런데 현 상황에선 보수 진영의 여러 세력이 빅 텐트로 모이든, 아니면 각자도생을 위해 흩어지든 4월 총선에서 민주당을 이기기란 만만치 않은 일이다. 그렇다면 진보 진영의 2007년 대통합민주신당은 어떻게 흘러갔을까?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극, 몇 번의 이합집산, 대선에서의 연이은 패배, 그러고 나서야 더불어민주당으로 변신했다. 그리고 정권을 되찾았다. 시간이 약이었던 셈이다. 현재 한국당과 보수 진영의 상황은 2007년 대선 전후의 민주당보다 좋다고 할 수 없다. 여러 차례의 통합 시도와 기획이 실패한 다음에야 3당 합당, 신한국당 창당, 한나라당 창당에 버금가는 재구성이 가능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지금은 파괴할 때’라는 김세연의 주장엔 통찰이 담겨 있는 게 분명하다. 깨져야 새로운 것을 시도할 수 있고, 실패의 경험이 쌓여야 성공의 문을 열 수 있다.

윤태곤 / 더모아 정치분석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