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11월 ‘신남방’ 정책을 발표했다. 2018년 8월에는 ‘신남방정책특별위원회’를 출범시켰고, 그해 11월 싱가포르에서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를 개최하기도 했다. ‘신남방’은 아세안 10개국(브루나이,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라오스, 말레이시아, 미얀마, 필리핀, 싱가포르, 태국, 베트남)에 인도를 더한 10개국을 말한다. 신남방 국가는 인구만 20억 명에 이르고 소비시장은 연평균 15%씩 성장하고 있다. OECD는 2030년에는 세계 중산층 소비의 59%가 동남아시아에서 이뤄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수출중심 대외지향적 경제구조를 가진 우리나라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시장이다. 특히 미국-중국 중심의 G2 패권 경쟁과 균열로 인해 동남아시아 지역 블록이 더욱 주목받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11월 인도네시아를 시작으로 신남방 11개 국가를 이미 모두 순방했을 정도로 의욕적으로 신남방 정책을 추진 중이다. 그런데 국가적 어젠다 치고 국민들이 체감하는 정도는 낮다. <피렌체의 식탁>은 신남방 정책 성공을 위한 제언을 연속적으로 다룬다. 첫 번째로 고한석 서울디지털재단 이사장의 인도네시아 탐방기를 2회에 걸쳐 싣는다. [편집자]

커피

지난 추석 연휴, 내가 탄 자카르타 행 비행기가 이륙한지 30분쯤 후 승무원은 기내식 주문을 받기 시작했다. 옆자리에 앉은 청년은 닭고기를 주문했다. 겉보기에는 분명 한국 청년 같았는데 한국어 말투가 약간 어색했다. 밝고 쾌활한 인상이었으며 예의 바른 태도였다. 그가 승무원에게 다시 뭔가 물어보는데 이번에는 영어를 사용하였다. 한국인과 구별하기 힘든 인상착의로 보아 중국인이 아닐까 생각했다. 어차피 6시간이나 비행해야 했기에 나는 지루한 시간도 달랠 겸 영어로 그에게 말을 걸었다.

카이스트 대학원에서 기계공학을 공부하는 인도네시아 청년이었고 추석 연휴라 고향에 가는 길이라고 하였다. 한국에 유학 온지 1년 반 밖에 안 되어서 한국어는 아직 서툴렀다. 카이스트에서 수업은 영어로 진행되어 별 문제가 없었지만 수업 외 시간에 한국 학생들이 영어로 의사소통하는 것을 기피하여 좀 힘들다고 하였다.

커피를 좋아하는 나는 인도네시아 커피를 언급하였다. 동네에 인도네시아 만델링 커피 원두를 수입‧판매하는 커피 가게가 있어서 종종 그 맛을 즐기던 터였다. 인도네시아는 아시아 최대의 커피 생산국이기에 청년 역시 커피 마니아였고, 내게 지역별 커피 특색을 알려주었다. 인도네시아는 1만7000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나라이지만 주요하게는 수마트라, 자바, 칼라만탄(보르네오), 술라웨시, 서(西)뉴기니 등 5개의 큰 섬이 있다. 수마트라의 서북쪽 끝에 위치한 아체에서는 가요(Gayo), 수마트라 중부에서는 만델링(Mandheling), 자바에서는 물론 자바(Java), 술라웨시에서는 토라자(Toraja), 뉴기니에서는 블루마운틴 계열 커피가 유명하다. 내가 신맛 커피를 즐긴다고 이야기하자 토라자 커피를 권하면서 만델링은 흙맛, 자바는 쓴맛, 토라자는 신맛이 특징이라고 하였다. (지금 내 옆에는 토라자의 부드러운 커피향이 흐르고 있다.)

인도네시아에 도착, 커피를 마시기 위해 자카르타 시의 북쪽 구 시가지인 코타 투아 중심부에 있는 파타힐라(Fatahillah) 광장의 유명한 바타비아(Batavia) 카페를 찾아갔다. 네덜란드 식민지 시절이던 1830년대에 지어진 2층짜리 유럽식 레스토랑 건물이며 카페는 약 30년 전인 1991년에 문을 열었다고 한다. 나는 광장이 내려다보이는 2층 창가에 자리를 잡고 커피를 주문하였다.

직원이 전통 드립 방식인 코피 투브룩(Kopi Tubruk)을 원하느냐고 묻기에 호기심 많은 나는 일단 오케이를 하였다. 잠시 후 큼직한 유리잔에 담긴 커피가 나와서 한 모금 마셨는데 갑자기 입안에 커피 가루가 가득 씹혔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서 퉤퉤 뱉어내고 커피 잔에 스푼을 넣어보니 잔 밑의 1/4은 커피 가루가 묵직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설마 이걸 먹으라는 건 아닐 터, 커피가루가 완전히 바닥에 가라앉기를 기다려서 윗부분의 커피 물만 마셨다. 적도의 느긋함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아하’의 순간이 왔다. 인도네시아에서 커피가 생산되기 시작한 것은 300년 전부터. 당연히 그 시절에는 현대적인 여과지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커피를 타 먹는 방법은 차를 우려내듯 그냥 커피 가루를 담은 잔에 뜨거운 물을 부어 커피를 우려낸 후 윗부분의 커피 물만 마시는 방법이 가장 적합하였을 수밖에.

신남방과 아시아 리터러시

최근 청와대는 ‘신남방 정책’을 내세워 드라이브를 걸고 있지만, 정작 정부 부처들은 별다른 구체적인 움직임이 없다. 개인적으로는 동남아 국가들 대부분을 방문해 본 경험이 있지만 유독 인도네시아를 방문할 기회가 없었는데 마침 이런 저런 이유로 여름휴가를 못가고 있던 터라 추석 연휴를 맞아서 인도네시아를 방문해보기로 작정하였다. 한마디로 신남방 시찰기의 일환이었다.

인도네시아는 세계 4위 인구대국이자 명목 국민총생산은 15위이지만 구매력 기준 국민총생산은 7위(한국은 명목 GDP 11위, 구매력 기준 GDP 14위)에 이른다. 나의 방문 목적이 관광이 아니었던 까닭에 인기 있는 해변 휴양지 발리나 문화유적지가 많은 족자카르타 대신에 구경할 곳이라고는 거의 없는 대도시 자카르타를 행선지로 삼았다. 건물이나 경관보다는 사람과 제도를 느끼기 위해서 한 도시에 최소한 일주일 정도 머무는 것이 내 여행 스타일이었기에 자카르타에서는 6일을 머물렀다.

2012년 호주 정부는 “아시아의 세기와 호주”라는 백서를 발간하였다. 그리고 2013년에는 그 후속작업으로 “실행계획”을 발표하여 2025년까지 “아시아를 잘 아는”(Asia capable) 호주가 되기 위한 ‘로드맵’을 제시하였다. 호주 정부는 교사와 학교, 교과과정에 이러한 국가적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서 주도적 역할을 하는 임무를 부여하였다. 즉 정규 교과과정에 아시아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한 내용을 집어넣겠다는 것이다. 이때부터 ‘아시아 리터러시’(Asia literacy) 즉 ‘아시아 이해도’는 호주 교육계에서 열띤 논쟁의 주제가 되었다.

그런데 정작 아시아 국가인 한국은 ‘아시아 리터러시’가 낮은 편이며 제도 교육 내에서 관련 교육이 거의 없는 수준이다. 물론 가까운 이웃나라인 중국과 일본에 대해서는 다양한 경로를 통해서 어느 정도 이해를 하고 있고 베트남에 대한 관심도 여행 및 기업진출로 조금 높아진 편이다. 하지만 40억 명의 아시아 인구 중에서 중국 13억8000만 명과 일본 1억2000만 명, 베트남 9000만 명 등 15억 명을 제외한 25억 명이 살고 있는 곳에 대해서는 여행 관광지로서 외에는 별달리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이 없는 형편이다. 학교 교육과정은커녕 여행안내 책자를 제외하면 동남아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에 대해서 소개한 책들은 가뭄에 콩 나는 수준에 불과하다.

우리는 세계 각 지역에 대해서 세계사, 세계지리, 외국어 등 지식영역별로 나뉘어진 교과과정을 통해서 단편적이고 형해화된 지식을 습득한다. 하지만 한 나라, 한 지역은 그 모든 것의 총체이고 그 지역 사람들의 생활 터전이다. 대학에서는 이미 지역학 연구 체제로 많이 변화하고 있으나 초중고에서는 여전히 단편적 지식 습득만이 가능하다. 글로벌 시대를 맞이하여 지역을 중심으로 한 지역학 체계로 초중고 수업을 바꿀 필요가 있다. 차라리 ‘세계 지역 연구’라는 과목을 만들어 어렸을 때부터 유럽, 북미, 남미, 동북아, 동남아, 서남아, 아프리카 등 지역별로 해당 지역의 정치 경제 역사 문화를 종합적으로 가르치는 것이 세계인으로 살아가는데 훨씬 도움이 될 것 같다. 그 중에서도 우리의 이웃이자 미래의 중심이 될 아시아에 대한 이해 즉 ‘아시아 리터러시’는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람이 없다.

그랩과 고젝

자카르타 거리에는 항상 차량이 꽉 차있다. 그 사이사이로 초록색 헬멧과 자켓을 입은 고젝 기사들이 탄 오토바이들이 마치 물 속의 물고기가 헤엄쳐 다니듯 빠져나간다.

인도네시아에는 공유차량이 허용되고 있다. 공유차량으로는 그랩(Grab)과 고젝(Gojek)이 있는데(경쟁이 치열한 이 두 회사의 창업자들은 사실 하버드 경영대학원 동기들이었다) 말레이시아에서 창업한 그랩은 손정의로부터 투자를 받았다. 동남아에서 치열한 경쟁 끝에 우버를 제치고 시장을 장악하였으며 결국 손정의의 또 다른 투자회사였던 우버와 합병하였다.

재미있는 것은 고젝이다. 그랩이 승용차에 중점을 둔 반면 고젝은 오토바이에 중점을 두었다. 인구가 1000만 명(수도권 전체로는 3000만 명)이 넘고 교통체증으로 악명이 자자한 자카르타에는 오젝(Ojek)이라는 오토바이 기사들이 십만 명 넘게 있다. 꽉 막힌 차들 사이로 요리조리 빠져나갈 수 있기 때문에 승객들에게 인기가 높았지만 별도의 면허나 규제가 없고 미터기가 없으니 가격은 흥정하기 나름이었고 손님이 많은 특정지역에만 몰려 있었으며 여성 승객의 안전에도 문제가 있었다.

창업자 마카림은 처음부터 택시보다는 오토바이를 타깃으로 삼았다. 그렇기에 브랜드도 오젝과 비슷한 고젝이라고 이름지었고 모바일 앱은 Go-Bike, Go-Send, Go-Food으로 시작하였다. 즉 오토바이에 최적화된 라이딩, 서류 등의 퀵배송, 음식 배달로 사업을 시작하였는데 이는 교통체증이 심각한 대도시에서 사람이 이동하기 위한 수단을 찾아주는 공유차량보다 차라리 물건을 가져다주는 배송서비스를 플랫폼 서비스로 제공하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지금은 무려 18가지 서비스로 확장되어 Go-Mart(식료품 구매 대행), Go-Clean(출장 청소), Go-Glam(출장 머리손질 및 화장), Go-Massage(출장 마사지)까지 생겼으며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이 모든 서비스를 결제할 수 있는 Go-Pay, 즉 모바일 결제 서비스까지 진출하였다. 고젝은 현재 100만 명의 기사와 월간 2500만 명의 사용자로 1억 건 이상의 거래를 처리한다.

혁신에는 기술형 혁신이 있고 시장형 혁신이 있다. 실리콘 밸리에서 일어나고 있는 혁신은 주로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내는 기술형 혁신이지만 많은 지역에서는 해당 지역의 시장에서 기존 서비스가 가지는 문제점을 해결하는 시장형 혁신이 더 주종을 이룬다. (지리적으로 새로운 시장에 진출하는 것도 시장형 혁신의 하나로 볼 수 있다.) 대개는 우버가 기술형 혁신은 아니지만 시장형 혁신이라고 평가를 한다. 하지만 여기에는 한 가지 구분이 더 필요하다. 과연 한국 시장형 혁신인가 하는 질문이다. 인도네시아의 경우 그랩이나 우버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인도네시아 최대의 전국적 택시 업체인 블루버드 택시가 도시 전체에 넘쳐나게 많이 운행 중이고 카카오택시와 같은 자체 모바일 앱을 개발하여 탑승 및 요금, 결제 등에서 그다지 불편함이 없고 가격도 저렴하기 때문에 나는 자카르타 체류 중에 거의 100% 블루버드 택시 앱을 사용하여 택시를 탔다. 게다가 교통체증이 있는 상황에서는 그랩이든 우버든 블루버드 택시든 제자리걸음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택시 서비스의 요소는 크게 탑승, 요금, 결제, 차량, 기사로 나눌 수 있다. 우버가 미국에서 인기를 끌 수 있었던 요인은 미국의 택시 서비스가 매우 낙후되었기 때문이었다. 미국에서 택시는 숫자가 적고 전화로 부르면 한참 지나서야 도착하고, 요금이 비싸고, 대부분 현금 결제이고, 팁을 주어야 하며, 대부분 낡고 불결하며, 기사는 불친절하고 이민자 출신 기사는 영어로 소통하기도 쉽지 않다.

그랩이 동남아에서 인기를 끌 수 있었던 것도 동남아의 택시는 대체로 작고, 과거 한국 택시처럼 탑승 시 흥정을 하는 경우가 많고, 외지인에게는 길을 돌아가며 바가지를 씌우고, 현금결제만 가능한데 잔돈이 없다고 우기며 떼먹고, 외국인의 경우에는 영어로 의사소통이 안 된다는 문제가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요금이 사전에 대체로 정해지고 부르면 금방 오고 의사소통이 필요 없으며 카드로 자동결제 되는 우버는 미국 시장형 혁신이고 그랩은 동남아 시장형 혁신이라고 할 수 있다. 블루버드 앱은 자체 소속 택시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앱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플랫폼’ 서비스가 아니지만, 기존 택시 서비스의 문제점을 일부 해결하였음으로 시장형 혁신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공유차량’이라는 개념을 단순히 승용차로만 한정짓지 않고 이동수단으로 넓힐 경우 인도네시아에서 오토바이를 이용한 고젝이야말로 진정한 인도네시아 시장형 공유차량 혁신이다.

반면에 현재 한국의 택시 서비스는 매우 편리하다. 출근 시간과 심야를 제외하고는 오히려 빈 택시가 많고 특히 카카오택시 앱이 나온 이후 택시 잡기는 매우 쉬워졌고, 택시 요금은 해외와 비교할 때 저렴하며, 결제는 다양한 카드로 가능하고, 차량 크기는 적절하고 청결하며, 기사들의 서비스 태도는 많이 개선되었다.(물론 여전히 개선의 여지는 있다.) 이러한 한국의 시장 상황에서 공유차량 서비스가 과연 시장형 혁신이지, 기존 택시와 비교해서 소비자에게 얼마나 큰 부가적 효용가치를 주는지는 사뭇 의심스럽다.(다만 그것을 과연 법으로 억제하고 기소하고 처벌까지 해야 하는지는 별개의 이슈이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숙소를 고르는데 애를 먹었다. 자카르타 시가 관광지가 아닌 탓에 대부분의 호텔은 5성급 호텔로 1일 숙박비가 15~20만 원 이상이었다. 10만 원 이하의 호텔은 위치가 도심과는 거리가 있거나 시설이 좋아 보이지가 않았다. 에어비앤비를 이용해서 검색해보니 도심에 위치한 중고급 아파트의 1일 숙박비용이 3~4만 원에 불과했다. 가장 유명한 쇼핑몰인 그랜드 인도네시아와 플라자 인도세니아 바로 옆에 있는 탐린 시티라는 주상복합형 아파트의 원베드룸 집을 1일 4만 원에 6일간 예약하였다. 입구에 프런트 데스크가 있어서 안전했고 헬스장과 실외 수영장, 자쿠지가 있는 아파트였으며 도심과 가까워 만족도가 매우 높았다. 에어비앤비가 미국이나 동남아 시장에서 인기가 있는 이유는 택시와 유사하게 기존 시장에서 제공해주지 못하는 서비스를 제공해주는 시장형 혁신이다.

반면에 한국의 경우를 보면 특히 지방도시의 경우 1박에 4만 원짜리인데도 대형 TV에 초고속 인터넷은 기본인 모텔들이 널려 있고 월풀 욕조가 있는 경우도 있다. 미국에서, 동남아에서, 중국에서 혁신이라고 한국에서도 혁신인 것은 아니다. 한국에서는 혁신이 아니라 오히려 후진적인 이동통신 선불요금 사용자를 위한 잔액조회 앱으로 인도 시장에 진출하여 선풍적인 인기를 얻으며 최근에는 인도 소액대출 시장까지 진출하여 소프트뱅크와 네이버로부터 거액의 투자를 받은 한국 스타트업 트루밸런스의 경우를 봐도 혁신이란 시장 상황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

이슬람과 히잡의 실용미학

세계에서 이슬람 신자가 가장 많은 나라는 뜻밖에도 중동 아랍 국가가 아니라 인도네시아이다. 인구 2억5000만 명 중 약 80%가 이슬람교를 믿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슬람이 국교로 정해진 것은 아니며 카톨릭, 개신교, 힌두교 신자들도 신앙의 자유를 누리고 있다. 자카르타 중심부에는 대통령궁, 내무부 등 관공서, 국립 박물관, 국립 역사박물관 등으로 둘러싸인 광활한 모나스 광장이 자리 잡고 있다. 바로 그 옆에는 세계에서 3번째로 큰 이슬람 사원인 이스티크랄(Istiqlal)(아랍어로 ‘독립’을 의미한다) 모스크가 있다. 그런데 거기서 100여 미터 떨어진 곳에 자카르타 대성당이 세워져 있고, 거기서 500미터 떨어진 곳에는 임마누엘 교회라는 커다란 개신교 교회가 있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인도네시아는 이슬람의 나라이다. 하루에 5번씩 드리는 예배(salat) 때마다 여기 저기 사원에서 들려오는 코란 낭송소리인 아잔(adhan)을 매일 접하다보니 며칠 지나지 않아 ‘아, 3시구나, 5시 반이구나, 7시구나’ 하면서 시간을 알게 되었다.

소리로 가장 이슬람 국가에 와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 아잔이라면, 눈으로 가장 많이 느끼게 해주는 것은 여성들의 히잡이다. 온몸을 가린 부르카를 입은 여성들도 간혹 보이기는 하지만 대개의 경우는 머리와 어깨 부분만을 감싸고 얼굴은 드러낸 히잡을 입고 있었다. 단조로운 색상으로부터 매우 화려한 무늬와 색상을 지닌 히잡까지 다양하였으며 여성들은 이를 패션의 한 도구로 생각하는 듯하였다. 쇼핑몰과 시장에는 히잡 전문 패션상점들이 수두룩하였다.

함께 여행을 간 아내는 처음에는 아름다운 히잡을 보며 자신도 하나 착용해보고 싶다고 말하였다. 그런데 자카르타 거리를 걷다보니 단순히 멋을 위해서가 아니라 작렬하는 적도의 태양으로부터 피부를 보호하고 체온을 낮추기 위해서라도 히잡이 필요하다는 것을 곧 깨닫게 되었다. 특히 히잡의 머리 위쪽 앞부분은 마치 뱃머리처럼 살짝 들려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이러한 착용 방식은 뜨거운 햇살이 수직으로 내리 꽂히는 상황에서 얼굴 부분에 그늘을 만들어주기 위한 것으로 보였다. 마치 여과지가 도입되기 이전에 커피를 마시는 방법을 고안하였듯이, 햇빛을 가려주는 양산이라는 신문물이 도입되기 이전에 태양으로부터 신체를 보호하기 위한 방법을 고안한 것이다. 돼지고기 금지, 빈자 구빈 및 상부상조 원칙 등 이슬람 신도들이 지켜야 하는 여러 가지 생활수칙들도 상당부분은 열대 사막과 유목민으로서의 생활 속에서 공동체의 지속가능한 생존를 위해서 생겨났다고 보여진다.

맺는 말

결국 현장에 가보고 사람을 만나고 과거를 알아야 그 나라를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사전에 배경을 이해하면 현실을 더욱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기에 ‘아시아 리터러시’를 높이기 위한 노력은 매우 중요하다. 신남방 정책은 단순히 우리 물건 몇 개 더 팔아보자는 것이 아니라 G2 중심으로 변화하는 세계 체제에서 대한민국이 발전을 지속하기 위해 필요한 국제적 관계를 전략적으로 구축하는 것이 그 목적이다. 그렇다면 그러한 과제는 단순히 정부기관 정책담당자 몇 명의 노력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시아에 대한 전략적 접근은 청와대 담당 비서관의 기자회견이나 외교부, 산업통상자원부의 정책발표만으로는 불가능하다. 국민 전반적 차원에서 아시아에 대한 인식의 폭과 깊이를 더해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정규교육 체계 내에서 새로운 국제질서의 변화를 반영한 내용이 포함되어야 하고 아시아에 대한 인식과 교류를 국민적 캠페인으로 조직화할 필요도 있다.

고한석 / 서울디지털재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