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이철희 의원은 재사(才士)로 손꼽힌다. 김대중 정부 시절에 청와대 행정관으로 출발했는데, 정치 감각이나 말솜씨가 남다르다는 평가를 받는다. TV 프로그램에서 구수한 입담을 자랑하는가 하면, 당내에선 소신 있는 기획·전략 전문가로 인정받는다.

이 의원이 20대 국회에 비례대표(전국구)로 입성했을 때 적잖은 사람들이 그의 활약을 기대했다. 하지만 그는 의원 임기 막판에 “국회의원을 한 번 더 한다고 해서 우리 정치를 바꿔놓을 자신이 없다”며 불출마를 선언했다. ‘좌절’의 변(辯)이다.

이 의원은 과연 국회를 떠난 후 어떤 활동을 펼칠까. 한국 정치의 ‘대안’을 찾는 속내는 무엇일까. 그의 솔직한 고백을 들어봤다. [편집자]

 

노태우, 3김 때 ‘4당 국회’ 잘 돌아가

20대 국회에 대해 ‘최악의 국회’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17대 국회가 떠오른다. 열린우리당의 4대 개혁입법이 야당의 저항에 무너졌다. 반면 18대 국회에서 한나라당은 미디어법을 끝내 관철시켰다. 20대 국회에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아직 뚜렷한 성과를 못 냈다. 패스트트랙에 올라가 있는 검찰개혁과 선거법 개정은 통과될 수 있을까?

“패스트트랙 법안은 결국 통과될 것이라고 본다. 민주당에서도 마지못해 하는 건 아니다. 상당한 의지가 있다. 표 대결만 보면, 과반 확보는 어렵지 않은데, 선거법 개정은 합의로 통과시킨다는 전례 때문에 자유한국당이 합의 안 한 상태로 통과시켜야 하느냐 하는 부담 정도만 남아 있다. 선거법 개정을 통해 민주당이 이익을 보는 거라면 합의 없이 강행 처리했을 때 역풍이 불겠지만, 사실 연동형 비례대표제 강화란 게 민주당이 손해를 보는 개혁이기 때문에 강행해도 된다는 여론도 크다. 자유한국당이 끝까지 거부해도 나머지 정당들과 손잡고 처리하게 될 것이다.”

선거법이 개정되면 극한대결의 정치지형에 변화가 있을까?

“있다. 다당제가 제도화된다. 지금은 큰 틀에서 양당제 구조인데, 지난 수십 년 동안 ‘제3당’이 있기도 했고 없기도 했다. 선거연합을 통해 1대1 구도로 선거가 치러진 적도 많다. 선거법이 개정되면 적어도 ‘3당 체제’는 될 것 같다. 원내교섭단체가 3개이고, 원내에 진입하는 작은 정당도 더 생길 것이다. 이렇게 되면 어느 한 정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하는 게 불가능해진다. ‘연정’까지는 아니어도 ‘연합정치’가 일상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어서 정치가 많이 달라질 것이다. 지금처럼 ‘네가 죽어야 내가 산다’는 식의 사생결단, 제로섬 정치는 아닐 것이다. 지금은 정치가 아니라 전투다. 아무 것도 되는 게 없다.”

과거에 제3 원내교섭 단체가 있을 때 지금보다 정치가 더 나았다고 보나?

“1988년 총선에서 노태우, YS(김영삼), DJ(김대중), JP(김종필)가 4당 체제를 만들었을 당시, 그 시대만의 독특한 성격이 있기는 하지만, 국회가 가장 잘 돌아갔다고 볼 수 있다. 최근에는 정의당과 평화당이 공동교섭단체를 구성해 잠깐 4당 체제였던 때가 있었는데, 워낙 짧게 끝나 평가하기 어렵지만 그래도 그 때가 괜찮았다. 3당 체제에서는 제3당이 캐스팅보트를 쥐게 돼 셈법이 조금 복잡해진다. 원내 4당 체제가 그보다 안정적이라고 본다.”

다음 국회 위해 선진화법 손 봐야

21대 총선을 통해 국회가 다당제 체제로 바뀐다면 손 봐야 할 국회법도 많을 것 같은데.

“가장 심각한 게 선진화법이다. 헌법상 국회 표결은 대통령 탄핵, 개헌 등 중대 사안이 아니면 다수결 원칙에 따르게 돼 있다. 그런데 선진화법에 상임위 통과 시 ‘5분의 3 찬성’ 조항을 넣어 놨다. 이 법이 통과될 때 보수 언론에서도 ‘식물국회가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 말대로 정말 식물국회가 제도화됐다. 다음 국회에서는 누가 다수당이 될지 모르니, 지금 바꿔야 한다. 여야 의원들끼리 이야기해보면 모두들 동의는 하는데 움직이질 않는다.”

선거법이 개정돼 비례대표 제도가 강화되면 20~30대 청년을 대거 국회에 진출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선거법이 개정되면 75석 정도가 비례대표로 배정된다. 다음 총선에서 민주당만 청년세대 영입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자유한국당도 그럴 것이다. 흐름을 타면 비례 의석의 절반, 얼추 30~35석은 청년에게 배정될 것이라고 본다. 민주당은 특히 그래야 한다고 본다. 비례대표 공천을 하면 순번이 25번 정도까지 정해질 텐데, 적어도 절반은 청년 몫으로 배정해야 한다. 이것은 의지의 문제다.”

이 의원은 비례대표다. 유감스럽지만, 직능 대표로 들어온 비례대표들이 정치적으로 제 역할을 못 한다는 비판도 많다.

“제도적 문제가 있다. 비례대표가 되면 한 번 임기로 끝내는 게 아니라 정치를 계속할 뜻을 품고 지역구 출마를 노리게 된다. 이런 분들은 총선 후 1년이 지나면 각기 지역구 하나씩 잡아서 활동을 시작한다. 그러면 자신이 대표하는 비례대표로서의 정체성이 아니라 지역구 의원의 정체성으로 활동하게 된다. 이렇게 뿔뿔이 흩어지다 보니 집단적 목소리를 내기 어려워진다. 차라리 비례대표를 잘해서 연임이 가능하다면, 자기 전문성을 살려 의정활동에 주력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우리 정치에서 비례대표는 지역구에서 당선되기 어려운 정치 신인의 등용문, 사회적 약자 배려 등의 기능을 해왔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따라서 비례 의석을 늘려 다양한 사회적‧정치적 요구를 반영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비례대표에 청년공천 적극 활용해야

내년 4·15 총선의 큰 화두가 ‘청년세대 영입’인 것 같다. 그런데 정치 혐오 정서가 높아져 유능한 청년 영입이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정치인들이 반성해야 할 대목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 노력해야 한다. 사회가 어떻게 운영될 것인지 룰을 정하는 것이 정치다. 그런데 지금의 정치에서는 20~30대 목소리가 배제돼 있다. 20~30대가 힘들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그들의 정치적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는다면 그들에게 불리한 결정이 나올 수밖에 없다. 20~30대에게 정치적 기회를 주자는 것은 단지 20~30대 표심을 잡아야 한다는 차원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사회가 지속가능한 사회로 가느냐 마느냐의 기로에 서 있기 때문에 그렇다. 이 부분이 정당의 책무다. 유명한 명망가들을 모아 놓는다고 정당이 돋보이는 게 아니다. 정치 불신이 심각하지만 많은 청년들이 정치의 의미를 발견하고 있다고 본다. 관건은 여야 정당이 통로를 활짝 열어 주는 것이다. 젊은 층도 자기 세대의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의사결정에 참여하도록 도와줘야 한다. 여야 정당 차원에서도 청년 세대의 힘으로 낡은 관행에서 벗어나 훨씬 건강한 체질로 바뀔 수 있다.”

지금까지는 왜 문이 안 열렸다고 생각하나? 어떻게 하면 문호 개방의 폭을 넓힐 수 있을까?

“제도적인 문제도 있다. 소선거구제는 정치 신인들, 특히 청년층에게 불리하다. 지역사회 커뮤니티는 주로 중·장년층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선거법도 불리하다. 법정 선거운동 기간에만 선거운동이 가능하기 때문에 젊은 신인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하다. 시대 변화상도 반영 안 돼 있고, 현직 의원에게만 유리한 희한한 선거제도다. 지금까지는 비례대표 수가 워낙 적어 직능 배분만으로도 모자랐다. 그런데 지금은 청년들이 ‘분노’수준의 사회·경제적 고통을 받고 있다. 문을 조금만 열어도 봇물 터지듯 들어올 것이다. 이들에게 문을 열고자 하는 의지만 있으면 된다.”

스펙과 정치력은 반비례…linkage가 중요

자유한국당이 ‘당번병 갑질’로 논란이 됐던 박찬주 예비역 대장을 영입1호 인사로 선정했다가 보류하는 해프닝이 있었다. 보수 진영은 전통적으로 관료, 법조계 인사들이 주된 인력 풀이었고, 지금도 변함이 없는 것 같다. 이에 비해 민주당은 이른바 86세대 운동권을 중심으로 사회‧노동‧시민운동 출신 인사들이 주축이었다. ‘86세대 퇴진론’도 나오고 있는데, 민주당에게 새로운 인력 풀이 있을까?

“사실, 없다. 과거에 물줄기를 끌어오는 방식으론 불가능하다. 기존의 저수지가 말랐다면 이제는 세대 차원으로 접근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세대 안에도 다양한 삶의 형태가 있다. 세대라는 저수지 안에서 잘 발탁하는 게 중요하다. 한 가지 경계해야 할 것은 ‘스펙 공천’이다. 선거에서 이기려면 인지도가 중요하지만, 이름이 알려진 인물이고 스펙이 좋다고 해서 정치를 잘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반비례하는 것 같다. 인재를 발탁할 때는 스펙이나 인지도보다는 사회적 약자나 사회의 다양한 분야와 잘 연결(linkage)돼 있는 인물을 눈여겨봐야 할 것이다. 가장 바람직한 것은 지방선거를 통해 기초, 광역을 거쳐 정치적으로 성장하게 하는 것이다. 지금은 선거 승부에 너무 집착하기 때문에 뿌리가 부실하다. 선거에 이겨 선출직이 많아졌다고 해서 당이 튼튼해지는 건 아닌 것 같다. 당의 외형은 커졌는데 오히려 당의 정체성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의 발언권이 커져 응집력이 모래알 같을 때가 많다.”

한겨레신문의 성한용 선임기자는 “현실적으로 국회의원이 아니면 정치에 기여할 방법은 거의 없다. 따라서 두 사람(이철희, 표창원)은 이제 정치를 은퇴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했다. 동의하나?

“동의하지 않는다. (하하하) 2016년 복당하면서 쓴 글에 ‘왜 정치를 국회의원이 독점하느냐’고 말한 적이 있다. 정치의 상당 부분을 국회의원이 담당하는 것은 맞다. 국가적 어젠다를 국회의원이 다루고, 일상의 정치가 국회의원 중심으로 돌아가는 측면이 있다. 그런데 국회의원의 힘만으로 돌아가는 정치는 내부 기득권으로 변질되고 관성의 정치에 빠지게 된다. 외부로부터 정치개혁 압력이 필요하다. 줄탁동시(啐啄同時)라고 하지 않나. 외부에서 대중의 정치적 관심과 압력을 일으키는 역할도 정치의 중요한 영역이다. 거기에 내 역할이 있을 것이다.”

‘정당이 너무 원내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불만도 비슷한 맥락인 것 같다.

“당원들이 뽑아 놓은 당 대표도 국회의원들이 의원총회를 열어 비대위원장으로 바꿔버리지 않나. 작은 위기만 와도 노상 비대위 체제였다. 지구당을 없앤 게 가장 큰 원인이라고 본다. 현역 국회의원의 힘만 더 세졌다. 지구당이 ‘돈 먹는 하마’라는 이유로 노무현 대통령 때 정치개혁의 일환으로 폐지했는데, 사실 지구당은 시민사회와 동네정치의 뿌리를 만드는 조직이다. 동네에 가보면 보수 진영은 관변단체 등 먹고 살만한 사람들끼리 네트워킹이 잘 돼 있다. 오히려 약자들의 네트워킹이 잘 안 돼 있다. 지구당을 중심으로 다양한 네트워킹을 만드는 게 진보 진영에 굉장히 중요하다. 뼈아픈 실책이다. 빨리 되살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치인 정부 진출 통로 구조화 해야

‘정치=국회의원’이라는 등식을 깨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국회의원 직을 마치 정치의 정점, 종착역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초선 국회의원 경험을 바탕으로 내각이나 청와대 참모, 지방자치단체, 공기업 등에서 실력을 발휘할 기회가 더 많아져야 하는 건 아닌가.

“‘가재는 게 편’이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국회의원 출신 장관들이 좀 더 나은 것 같다. 법안 단어 하나를 갖고도 논쟁하고 토론을 해본 사람이라 이슈의 맥락도 잘 잡는 것 같다. 우리 사회에 필요한 어젠다도 관료적 발상이 아니라 사회적 발상에 익숙하다. 장·차관 자리는 관료 마인드가 아니라 큰 틀에서 시대 과제를 정확하게 짚어내는 역량이 필요하다. 차관 자리도 더 열어줄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에선 국무위원(장관)직만 겸직할 수 있는데, 초선 의원들은 차관을 할 수도 있다. 차관 경험을 쌓아 장관으로 올라가는 것도 방법이다. 그렇다고 3권 분립 체제에서 모든 장관을 국회의원이 겸직하자는 것은 아니다. 고위 공무원들이 정치권에서 정치적 훈련을 받아 당·정·청 요직을 맡을 수도 있다. 의원내각제인 독일이나 일본은 이런 식으로 운영된다.”

현역 의원이 아니더라도 유능한 정치인에게 행정부 직책을 더 개방해야 한다는 요구도 있다.

“논공행상을 경계하는 것인데, 실력 있는 사람들에게는 행정부에 진입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줘야 한다. 노무현 정부 출범 인수위 때 ‘장관만 혼자 가서는 관료 사회를 장악하지 못 한다’는 문제제기가 있어서 장관 정책보좌관 제도가 생겼다. 하지만 아쉬움이 남는다. 정책보좌관은 변방에만 머물 뿐, 정책결정구조 속으로는 못 들어간다. 보다 핵심적인 자리를 개방했어야 했다.”

그러나 정치인의 관료사회 진출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정치는 나쁘고, 관료는 공익적’이라는 선입견이 있어서 둘 사이를 최대한 떨어뜨려 놓으려는 분위기가 있다. 하지만 우리 정도의 경제 규모와 민주주의를 실시하고 있는 나라에서 정치와 관료는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다. 미국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수많은 자리에서 교체가 일어난다. 일종의 엽관제라 그런지 젊을 때부터 훈련을 받은 참모 인력 풀이 풍부하다. 30대의 젊은 나이에 정당에 들어가 훈련을 받은 뒤 집권을 하면 정부에 참여한다. 40대에 정권이 교체되면 다시 당에서 자기 할 일을 하다가, 50대 때 다시 정부로 들어가고, 이렇게 양쪽을 오가며 일한다. 이런 구조를 만드는 것도 공공기관 개혁의 일부라고 할 수 있다. 그럼 정당 구조도 튼튼해질 수 있다.”

청와대는 관제탑, 참모 역량 강화 필요

이른바 ‘조국 사태’를 거치며 대통령 지지율이 많이 떨어졌다. 청와대 참모들이 책임을 느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통령제 하에서 여권의 가장 큰 전략자산은 대통령이다. 대통령이 대중의 사랑을 놓쳐 버리는 순간 정국 운영이 어려워진다. ‘커먼 터치’(common touch, 대중 감화력), 즉 서민들이 ‘대통령이 우리 편이구나’라고 느끼는 공감을 놓치면 안 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기본적으로 커먼 터치를 갖추고 있고 그게 가장 큰 장점이다. 참모들이 좀 더 분발했으면 좋겠다.”

이철희 의원은 여권에서 대표적인 ‘전략통’으로 평가받는다. 지금 시점에서 참모진에게 어떤 조언을 해줄 수 있나.

“공항의 관제탑 기능은 ‘어느 비행기는 이륙하고 어느 비행기는 착륙하라’고 조정해주는 것이다. ‘어느 비행기는 누가 조종하고, 어느 비행기는 누가 조종하라’고 하지 않는다. 청와대는 관제탑과 같은 곳이다. 큰 틀에서 관제를 해야 한다. 이게 기획의 영역이고 그 다음이 판단과 조율인데, 기획 영역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것 같다. 5년 임기라면 1년 단위 계획은 어떤 것인지, 주요 어젠다는 어떻게 배치할 것인지, 어느 분야에 어떤 사람이 필요한지 치밀하게 전략을 세워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성품상 이런 ‘작전’에 비중을 크게 안 두는 스타일이다. 그렇기 때문에라도 참모들이 더 깊게 고민을 해야 한다.”

‘100년 뒤에도 읽힐 책을 쓰고 싶다’고 했다.

“내가 품은 욕심 중 하나다. 삼국지를 보면 이문열, 황석영 등 여러 작가의 버전이 있다. 주로 유비나 조조와 같은 리더 관점에서 쓴 책들인데, 나는 삼국지를 볼 때 제갈공명, 순욱, 주유와 같은 참모들 위주로 본다. 만약 참모들을 주인공으로 해서 삼국지를 쓴다면 나는 제갈공명보다 순욱을 더 높게 칠 것이다. 유비의 제갈공명은 졌고, 조조의 순욱은 어쨌거나 이겨서 천하란 판을 바꾼 사람이다. 내 꿈은 리더를 리드하는 참모다.”

미국 TV의 정치드라마를 봐도 주로 참모들이 주인공인 것 같다. 아직 우리나라는 그런 풍토가 약한 것 같다.

“대통령제에서는 시스템 오퍼레이터인 비서실장에게 정권의 성패가 달려 있다. 레이건 대통령의 1기 비서실장이 베이커일 때 백악관이 잘 돌아갔다. 2기에는 베이커가 재무장관으로 가고 재무장관이던 리건이 비서실장으로 자리를 맞바꾸었다. 그런데 리건 때 이란콘트라 스캔들이 터지는 등 많이 삐걱거렸다. 닉슨 정부의 키신저처럼 미국 역사를 바꾼 참모들이 많다. 미국 언론의 선거철 르포를 보면 전략가 참모에 초점을 둔 기사들이 많다. 참모들을 보면 선거 승패는 물론 집권 후 국정운영 스타일과 방향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이 되려는 식으로 해선 안 된다. 미국처럼 롤 모델이 생겨 좋은 전략가, 좋은 홍보전문가, 좋은 기획가들을 열망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면 정치도 발전하고 국가 발전에도 도움이 될 거라고 본다.”

국회 밖 사회적 자본 쌓는 정치 필요

우리나라는 참모를 하더라도 종착역은 국회의원 같은 리더 아닌가?

“무슨 공(功)이든 리더에게 몰아주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우리 역사를 보면 정도전 없는 이성계, 김유신 없는 김춘추가 존재할 수 있었을까. 한나라 유방은 천하를 통일한 뒤 이런 취지의 말을 했다. ‘지략은 장량보다 못하고, 나라 살림은 소하보다 못하며, 용병술은 한신에 미치지 못한다. 그런데 어떻게 내가 황제가 됐겠는가? 이 인재들을 적절하게 쓰는 용인술이 뛰어났기 때문이다’. 중국에서도 오랫동안 참모들의 역할을 인정해주고 평가하는 정치 문화가 정착돼왔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그렇지 못하다. 내 정체성은 참모에 더 가까운 것 같다.(웃음)”

불출마 선언을 했는데 향후 계획은?

“아직 국회의원 임기가 반년이나 남아 있다. 남은 기간 동안 민주당이 총선에서 승리하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그 다음에는 국회의원이 되기 전과 비슷한 활동을 할 것 같다. 책도 쓰고 대학에서 학생들도 가르치고… 예전처럼은 아니지만 방송도 조금씩 하지 않을까? 국회 밖에서 사회적‧정치적 자본 형성에 기여할 것이다.”

인터뷰 / 김하영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