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조국 정국’ 이후 정치 풍향계는 어떻게 움직일까. 가깝게는 내년 4월 총선, 멀리는 2022년 대선까지를 놓고 봤을 때 몇 가지 의문이 떠오른다. 조국 전 법무부장관은 과연 정치적으로 부활할 것인가, 이낙연 총리는 여의도 정가로 돌아가 차기 주자로서 총선을 지휘할 것인가, 여권의 차기 구도는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로 압축된다. 이번 주 ‘금요 집담회’는 이런 의문을 중심으로 진행됐다. 자유롭고 솔직한 대화를 위해 역시 필명으로 내용을 전한다. [편집자]

총리사임 보도... 해프닝? 천기누설?

허생
여권으로선 ‘조국 정국’의 내상이 예상보다 훨씬 컸다. 여론조사야 오르락내리락 하지만 조국 전 장관이 낙마한 후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반등했다. 리얼미터와 tbs가 17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문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은 전주보다 4.1%포인트 오른 45.5%로 나타났다. 하지만 부정평가는 여전히 높은 편(51.6%)이다.

가오리
조국 전 장관은 2010년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와 함께 <진보 집권 플랜>을 출간한 이후 고도로 정치화된 인물로 볼 수 있다. 즉 민정수석이 되기 전부터 ‘정치를 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진보진영의 문제점과 장점은 무엇인가, 대한민국의 과제는 무엇인가’를 생각해온 사람이다. 한 달 넘게 두드려 맞다가 사퇴 기자회견을 했을 때의 절제된 태도를 봐도 그렇다.

피터팬
조국 전 장관은 강남 좌파의 한계를 보여준 사례다. 이번 파동을 보면서 앞으로 웬만한 강남 좌파는 국회 청문회에 오를 생각을 못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문재인 대통령의 고민은 이제부터일 것이다. 14일 문화일보가 ‘이낙연 총리 사임’을 보도했다가 삭제하는 일이 있었는데, 일종의 천기누설이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야구경기를 하는 감독이 자기 팀 포수의 사인을 읽힌 기분일 것이다.

관심은 ‘총리 교체’에 담긴 대통령의 의중이다. 언론에서 ‘조국 대전’이라고 부르는 최근 두 달간의 파동은 사실은 진보진영의 ‘조국 내전’이나 마찬가지였다. 문재인 정권의 기본 지지층은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를 찍은 41%, 심상정 후보를 찍은 8%의 합(合)인 49%다. 이들이 이번에 둘로 나뉘었다. 여론조사 결과를 들여다보면 대략 3대2 비율이다. 문 대통령과 함께 조국도 지지하는 사람이 30%, 문 대통령에 대해 지지 또는 중도 입장에서 조국 장관 임명에 반대하거나 조기 사퇴를 원한 사람이 20%라고 분석된다.

가오리
그렇다. 편의상 이를 A그룹, B그룹으로 나눠서 부른다면 문 대통령과 여권은 이제 B그룹을 다시 집토끼로 돌리는 작업이 선결과제다. B그룹을 하나의 그룹으로 묶기에는 그 성향이 다양한데 ‘공정성 담론’에 좀 더 민감하거나 이념적으론 중도, 또는 대선 때 비판적 지지를 보낸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이낙연 총리가 물러나 더불어민주당으로 돌아간다면 중도 성향 및 안정 희구세력을 다시 문재인 정권에 대한 지지로 돌려놓는 게 주 임무다. 즉 문 대통령의 손길이 안 닿는 곳을 어루만져주는 역할이다. 차기를 노리는 ‘정치인 이낙연’으로서 비로소 본격적인 역할과 공간이 열리는 셈이다. 이 역할을 잘해낸다면 차기 주자 1위라는 위치가 명실상부하게 굳혀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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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노·친문 진영으로서는 총선 후 2022년 3월 대선까지 23개월이 남았는데 ‘이낙연 1강 체제’가 조기에 굳혀지는 것이 큰 부담일 것이다.

두 가지 측면에서 그렇다. 첫 번째는 ‘이낙연 1강’으로 가다가 보수 진영의 집중 공세를 받고 무너지는 경우다. 이번 조국 파문에서 나타났듯 고위공직자에 대한 검증 수위는 갈수록 올라가고 엄격해지고 있다. 이 총리 측에서는 여러 번의 공직 선거를 통해 검증받을 만큼 받았다고 하겠지만 엄격히 말해 전남지역에서의 (총선과 도지사) 선거에서 검증받은 것이다.

두 번째 고민은, 문 대통령이 이낙연의 후원자가 아니라 거꾸로 이낙연이 문 대통령의 후원자처럼 보이는 경우다. 일종의 연립처럼 보이면 총선 이후 통치권 누수현상이 빨리 올 수 있다. 김대중(DJ) 대통령의 5년 임기를 보면 그런 현상이 드러난다. 2000년 총선 뒤 이회창 전 총재가 국회를 틀어쥐고 ‘이회창 대세론’으로 사실상의 대통령처럼 행세한 적이 있다. 당시엔 여야 간의 경우였지만, 이번에 그런 현상이 빚어진다면 여권 내부의 일이다. 권력 내부의 매우 미묘한 갈등이 될 수 있다.

총선 전후 ‘차기 주자’ 판 바뀐다

가오리
친노·친문 세력으로선 이 정부의 안정을 위해서나 차기 정권의 재창출을 위해서나 여러 명의 차기 주자가 함께 경쟁해줘야 한다. 문 대통령 취임 초기부터 친노·친문 그룹이 김영삼 전 대통령 시절의 ‘9룡 체제’ 같은 걸 만들려고 한 것이 그런 이유에서다. 지금까지 거론돼온 차기 주자들, 예컨대 박원순·이재명·안희정·김경수 같은 광역단체장, 이낙연·김부겸 같은 지역 연고가 확실한 사람들이 그 대상이었다. 그런데 알다시피 안희정이 낙마하고 이재명·김경수가 재판을 받게 되면서 이 구도가 퇴색됐다.

양자
내년 총선을 전후해서 여권의 차기 주자들이 일부 ‘물갈이’되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다. 새로운 주자들로는 조국 전 장관, 임종석 전 비서실장, 유은혜 교육부총리,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박영선 중기부 장관 등을 꼽을 수 있다. 민주당 계열에서는 직전 정부에서 장관이나 청와대 수석을 지낸 사람이 유력 주자였거나 차기 후보가 되었다. 노무현 해양수산부 장관,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 정동영 통일부 장관, 문재인 민정수석 및 비서실장이 다 그런 경우다. 또 하나 변수가 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강력해진 젠더 열풍을 반영해 ‘여성 대통령론’이 호응을 받을 수 있다.

허생
차기 후보군으로 조국 전 장관이 가능하겠는가.

가오리
불가능은 아니라고 본다. 조 전 장관은 일단 A그룹에 확실한 지지 기반을 갖게 되었다. 물론 A그룹이 전부 조국을 차기 후보로 지지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좋든 싫든 인지도가 확실히 올라갔다. 조 전 장관이 사퇴하던 날 전국적으로 많은 술자리가 벌어졌는데, 이 자리에서 비분강개하거나 눈물을 글썽인 사람은 그를 지지할 잠재적 가능성이 있다고 봐야 하지 않나. 수십만 명을 눈물 흘리게 한 정치인은 나중에 보면 대개 부활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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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전 장관에게 아직 그런 가능성을 논할 단계가 아니다. 당장 가족 관련 수사를 봐야 한다. 개인적으로 이 고비를 통과하는 게 발등의 불이다. 서울대 커뮤니티에서도 교수직 복귀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다. 검찰 수사망을 돌파하고 난 뒤에 조국 대망론을 따져야지, 지금은 우물가에서 숭늉 찾는 얘기다.

허생
항간에는 윤석열 검찰총장이 퇴진한 다음, 조국 수사도 유야무야되지 않겠느냐 하는 시나리오가 있다. 지금까지 나온 거로 보면 구체적 범죄 혐의가 약한 것 같던데. 윤 총장이 재직하는 한, 검찰도 있는 힘을 다해 수사하겠지만, 수사 장기화에 대한 피로도 역시 생각할 수 있고…. 부산 말로 ‘그만 해라, 마이 묵었다 아이가’ 심리가 퍼질 수도 있다. 어쨌든 최근의 ‘조국 대전’을 통해 ‘정치인 조국’은 이미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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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전 장관에 대한 PK(부산·경남) 지역에서의 여론이 좋지 않다. 정치를 하려 했다면 장관을 안 가고 민정수석 사임 후 호흡조절을 하는 편이 훨씬 좋았을 것이라는 여론이 많다. 본거지에서 호응 여론이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게 한국 정치 아닌가.

가오리
그러나 수사 결과가 유야무야되고, 차기 대통령감을 묻는 여론조사에서 12월쯤 10%정도의 지지를 받는다면 PK 여론도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 일단 PK 권역의 총선 기둥이 없다. 문 대통령 지지율로만 자기 지역구에서 총선 승리를 만들기 어려운 후보들이 대다수다. 민주당의 PK권 인사들은 여전히 간판타자를 필요로 한다.

그런 경우에는 조국보다 김경수 지사가 낫지 않을까. 11월 있을 재심 결과가 좋게 나오면 김경수 지사가 다시 잠재 주자로 떠오를 것 같다. 최근 발표한 메가시티론(論)은 그런 준비작업 같다. 부산·울산·경남을 묶어 서울에 버금가는 메가시티를 만들자는 내용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지방분권 구상이 1.0 버전이라면 이제 김경수가 지방분권 2.0 버전을 만들겠다’는 게 인터뷰의 골자였는데 착점(着點)을 잘 잡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김현미, 박영선, 유은혜...'여성 대통령'론?

허생
문재인 정부에서 여성 장관을 대거 기용한 것이 여성 대통령론으로까지 발전할 수 있나.

가오리
결과를 떠나 논의가 활발해질 수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는 다르다. 박 전 대통령은 ‘대통령의 딸’이라는 인상이 강했다. 이는 정치인 박근혜에게 대단한 ‘시드 머니’였다. 지금의 여성 장관들은 다르다. 앞에 열거한 유은혜, 김현미, 박영선은 모두 국회의원을 거쳤고, 현재 자기 부처를 어느 정도 잘 관리하고 있고, 무엇보다 자기 실력과 대통령의 발탁으로 그 자리까지 갔다. 한 단계 한 단계 승진한 커리어 우먼들이다.

피터팬
여성 대통령이 쉬운 것은 아니지만 불가능한 것도 아니라고 본다. 여권 핵심 세력으로서는 최근 20대 남성의 보수 성향을 눈여겨 볼 것이다. 젊은 남성 유권자의 특징은 보수라기보다 반(反)북한 성향, 20대 여성에 비해 자기들이 차별받고 있다는 인식이 특징인데 이런 경향성은 앞으로 지금의 10대가 유권자가 되어도 계속될 것이다. 진보진영으로서는 숨어있는 큰 위기다.

그렇다면 젠더 의식으로 각성된 2030 여성, 현재 각종 여론조사에서 가장 진보적으로 나타나는 3040 세대, 586 세대를 잘 묶어야 할 것이다. 지역적으로는 수도권과 호남을 굳히고 여기에 PK권과 충청권을 잡아당기는 형태의 새 연합을 구상해볼 수 있다.

잠재적인 여성 후보가 노무현 같은 중산층·서민의 성향을 가진 사람이면 더 좋을 것이다. 2022년 대선이 아니더라도 ‘여자 노무현’ 같은 후보를 내야 진보의 득표력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구상이 여권 일부에서 회자되고 있다.

허생
남북 관계나 정치력, 여권 내 인사들과의 교분 등을 감안하면 임종석 전 비서실장이 재등장할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 임 전 실장이 실체보다 저평가된 것은 사실이다. 본인도 조용히 있으려 하는 것 같고…. 임 전 실장의 재기는 북핵 문제의 향방, 종로 지역구 문제의 타결 등이 관건이 될 것이다.

가오리
임종석 전 실장까지 갈 가능성보다는 이낙연 총리의 향후 활동이 초미의 관심거리다. 민주당 국회의원 가운데 80%가 친노·친문 계열인데 과연 이 총리가 총선을 계기로 얼마나 당내 기반을 확장하게 될지 의문이다. 이 총리로서는 친노·친문에 업혀가는 모양새도 바람직하지 않고, 그렇다고 비문(非文) 계열 의원들과 가까워지는 것도 부담이다. 아마도 탕평책 비슷한 입장을 취하겠지만 최선의 해결책은 아닐 것이다.

피터팬
지금 단계에선 조국의 운명이 더 관심이다. 율사 출신인 문 대통령에게는 검찰개혁, 사법개혁이 남다른 애착을 갖고 있는 과제인데, 조국 전 장관이 장외에서 검찰개혁, 사법개혁을 주창하면 민주당 핵심 지지층인 A그룹에게는 작지않은 울림이 생길 것이다. 즉 검찰은 조국의 목을 겨누고 있고, 조국 또한 검찰의 목을 겨누고 있는 형국이다. 이는 장관 퇴임 이후에도 여전하다. 적어도 이 문제에 관한 한 그는 빅 마우스(big mouth)라고 할 수 있다.

이낙연의 마라톤...30km 구간 통과 중

허생
사실 검찰 인맥의 중핵(中核)은 서울법대 출신인데, 서울법대이나 비(非)사시 출신인 조국 전 장관이 검찰개혁에 앞장섰다. 그렇다면 같은 서울법대에 비 사시 출신인 이낙연 총리의 해법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양자
그 점이 비공식 관전 포인트 중 하나다. 이 총리로서는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않겠지만, 문재인 정부는 무언가 해보려는 의지가 충만하고, 현장 경험은 많지 않은, 그래서 일각에서 아마추어라고 비판받는 교수·정치인들이 주류이고, 세대로는 586이 대다수다. 이런 성향의 인사들을 발탁한 게 문 대통령 임기 전반부 국정운영의 특징이라면, 이 와중에 가장 점수를 딴 사람은 선공(先攻)을 취하지 않는 이낙연 총리다. 앞서서 나간 사람은 다치고, 중간에서 안전운행에 힘쓴 사람은 덜 다친 형국이다.

가오리
이 총리로서는 총리 사퇴 이후 내년 총선까지가 본격적인 정치실험대다. 마라톤으로 치면 25∼30km 구간이다. 여기서 단독 선두로 통과하면 대세론, 대안 부재론 같은 게 생길 수 있다. 그는 일찍부터 자신도 큰 판의 주인공이 되고 싶어 했다. 이 총리가 2007년 대통합민주신당 대선 후보 선출 국면에서 시·도별 후보연설회 사회를 많이 봤는데, 그때 사회자로서 이런 말을 했다. “저는 사회주의자가 아닙니다만 자꾸 사회를 보고 있습니다.” 일종의 허무 개그였지만, 당시 경선 후보로 등록한 정동영, 이해찬, 손학규, 유시민에 비해 ‘내가 이 사람들보다 못한 게 무엇인가’ 하는 결기가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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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낙연 총리가 차기 경쟁 구도에서 앞선 게 사실인 것처럼 본인의 권력의지도 확실하다. 하지만 현 단계는 중국이 힘을 키우기 전까지 대외적으로 지켜왔던 도광양회(韜光養晦) 국면이다. 때를 기다리며 실력을 키우는 자세라고나 할까. 총리직에서 떠난 다음에야 본인의 개성과 색깔을 확실히 드러내지 않을까. 문 대통령과 친노·친문 세력이 과연 이 총리를 어디까지 받아들이느냐가 향후 차기 경쟁 구도의 핵심 포인트라고 본다.

허생
문 대통령의 정국 반전 카드는 무엇일까? 아마도 경제 이슈는 아닐 것이다. 대통령과 집권 세력 입장에서 경제는 챙겨야 하는 대상이지 선거 쟁점으로 삼아서 이득을 볼 이슈가 아니다. 패스트트랙에 오른 정치·선거제도 관련 법안의 추이를 보면서 사회 분야, 즉 노동이나 복지 이슈를 내세우지 않을까? 임기 후반부 구상이 현재로선 잘 보이지 않는다.

가오리
그런 점에서 야당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야당은 달과 같은 존재다. 반사체라는 말이다. 정부·여당이 잘하면 달빛은 흐려지고, 반대일 때 달은 환하게 빛난다. 선거가 코앞인데 준비가 많이 늦었다는 얘기가 있다. 지역구 100곳 가까운 곳에 당협 위원장이 없거나 있어도 유명무실하다는 것이다. 지상전 준비가 영 안 돼있다는 지적이 많다.

피터팬
여야 모두 마음은 다 뽕밭에 가있는 형국이다. 이래저래 올해 정기국회는 유명무실해지고 있다. 대선·총선 직전 해의 정기국회는 별 볼일이 없다는 속설이 있는데 이번에도 역시 틀리지 않은 것 같다. 언론의 감시와 독려가 좀 더 필요하다.

피렌체의 식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