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시위 사태가 4개월을 넘어섰다. 홍콩은 물론 중국에서도 보기 힘든 최장(最長) 시위 기록이다. 홍콩 정부가 지난 5일 ‘복면 금지법’을 시행한 뒤 시위 양상도 과격화하고 있다. 홍콩 경찰의 과잉 진압 논란과 함께 중국의 대응 역시 거칠어졌다. 한 마디로 출구(出口)가 보이지 않는 국면이다. 그러면서 중국 지도부, 특히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리더십은 큰 타격을 받고 있다. 미중 무역전쟁과 홍콩 시위 사태는 시 주석이 당 총서기에 취임한 후 집권 7년여 만에 부딪힌 복합 위기라고 할 수 있다. 위기의 확대재생산이다. 중국의 역대 왕조는 내부 위기가 격화되면 바깥을 때려 위기 돌파의 모멘텀을 찾아내곤 했다. 시진핑 주석은 과연 어떤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을까. [편집자]

대만서도 일국양제에 “NO”

중국 지도부는 두 개의 위기, 즉 미중 무역전쟁과 홍콩 반중 시위를 계기로 사상 통제, 언론 통제, 인터넷 통제를 강화하면서 이른바 ‘민감 사안’을 물샐 틈 없이 단속하고 있다. 인터넷 검열에는 수십만 명이 투입돼, 공산당이나 시진핑 체제를 비판하는 글과 사진들은 금방 삭제되고 추적 대상이 된다. 중국 대륙에서 시진핑의 권위에 도전하는 세력이나 집단은 사실상 사라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국 측은 국제 사회의 홍콩 시위 지지 동향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중국중앙TV(CCTV)가 산하에 있는 스포츠채널의 미국 NBA 경기 중계를 잠정 중단한 것도 그 때문이다.

홍콩 시위의 불길은 중국 바깥으로 확산되고 있다. 그런 차원에서 대만 총통선거는 초미의 관심사다. 중국이 대만인들을 향해 주창해온 일국양제(一國兩制) 통일방식을 정면으로 거부하는 민심을 드러내고 있어서다. ‘홍콩의 자유·민주가 탄압당하면 다음 차례는 대만’이라는 순망치한의 연대감이 엿보인다. 일국양제는 원래 양안 통일을 염원하던 덩샤오핑(鄧小平) 시대의 ‘점진·평화’ 통일론이다.

차이잉원, 連任선거서 기사회생

1·11 총통선거를 세 달 앞둔 대만은 정치적으로 홍콩 시위의 가장 큰 영향을 받고 있다. ‘대만 독립론’과 ‘홍콩 시위 지지’를 표방한 민진당의 차이잉원(蔡英文) 총통은 그 덕에 기사회생(起死回生)했다. 재선을 노리는 차이 총통은 지난 4월만 해도 여론조사 지지율이 두 명의 야당 후보에게 밀려 3위를 면치 못했다. 민진당 내부에선 후보 교체론까지 나왔다. 당시 지지율은 27.5%. ‘양안 통일론’을 지지하는 국민당 한궈위(韓國瑜) 후보(지지율 35.8%)는 물론 무소속 커원저(柯文哲) 타이베이 시장에게도 뒤진 수치였다.

그러나 차이 총통은 지난 9월 말 여론조사에서 47.4%의 지지도를 과시하며 확실한 선두를 차지했다. 다섯 달 새 20%포인트가 급상승한 것이다. 반면 국민당 후보는 35.3%. 제자리걸음이다. 대만의 바닥 민심이 홍콩 시위 사태, 일국양제 반대, 반중 정서의 바람을 타고 민진당 쪽으로 결집한 것이다. 대만에선 요즘 홍콩 시위를 지지하는 반중 집회가 수시로 열린다. 민진당 정부는 한술 더 떠 향후 홍콩 시위가 유혈 진압될 경우 시위 주동자들의 정치적 망명을 허용하겠다고 밝혔다. 대만인들은 정치성향에 관계없이 자유·인권·민주가 없다면 중국과의 양안 통일에 반대하겠다는 정서가 강한 편이다.

미·대만 향한 정치·군사적 압박↑

중국 측은 민진당 정부를 겨냥해 경제적·외교적 압박의 고삐를 조이고 있다. 먼저 대만으로 가는 중국인 관광객 규모를 대폭 제한했다. 지난 8월부터 47개 도시 주민의 개인 여행을 중단시킨 것이다. 한국의 사드 배치를 전후한 경제보복과 비슷한 맥락이다.

또한 대만과의 수교국을 중국 쪽으로 끌어당기는 외교적 고사(枯死) 전략을 펼쳐왔다. 그 결과 지난해에 5개 국가가 대만과 단교조치를 취했다. 지난 9일 베이징에서 시진핑 주석은 이들 나라 중 하나인 남태평양 솔로몬제도의 총리를 만나주면서 경협 확대를 약속했다.

중국은 두 개의 위기를 계기로 미국을 겨냥한 군사적 강경 자세를 숨기지 않는다. 지난 1일 국경절(國慶節) 행사에선 차세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 중거리 탄도미사일, 초음속 드론, 무인잠수정 등을 공개하며 막강한 군사력을 과시했다. 대만 섬은 물론 오키나와, 괌, 일본, 미국 본토까지 위협하는 첨단무기들이다.

中, 대만해협서 ‘무력 위협’ 가능성

시진핑 주석이 펼칠 대책 가운데 주목해야 할 것은 군사·외교 분야다. 중국의 ‘힘의 과시’가 동아시아에서 가시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홍콩발 태풍이 대만을 거쳐 한반도로 북상하는 모양새가 될 가능성이 크다.

먼저 대만해협이다. 중국이 미사일 발사시험을 하거나 해군 함정을 파견해 대만·미국과의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킬 수 있다. 1996년 대만 총통선거 당시 ‘대만 독립과 유엔 가입’을 주장하던 리덩후이(李登輝) 후보의 당선이 유력하자, 중국은 1995년 7월 대만해협에서 두 차례의 미사일 발사시험을 강행한 바 있다. 당시 미국은 “(중국이) 대만을 공격한다면 심각한 결과를 보게 될 것”이라고 경고함으로써 중국 측 도발을 억제했다. 당시 리덩후이 총통이 압승한 후 대만 언론은 ‘선거 승리의 일등공신은 중국 미사일’이라고 평했다.

하지만 요즘 상황은 20여 년 전과 많이 달라졌다. 무엇보다 중국의 경제력이 세계 2위로 올라섰다. 군 병력을 ‘300만’에서 ‘200만’으로 감축했지만 해·공군 첨단 전투력은 미국을 빼곤 동아시아에서 최강 수준으로 올라섰다. 핵·미사일 능력은 미국에도 결코 꿀리지 않는다는 자신감을 드러낸다. 중국은 지난 30여 년간 두 자릿수의 국방비 증가율을 바탕으로 2050년까지 세계 최강 군사대국으로 부상하겠다는 야망을 감추지 않는다.

中 군부 불만 쌓여 폭발 일보 직전

그런 가운데 ‘하나의 중국’ 원칙을 훼손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 미국의 대만에 대한 첨단무기 판매, 대만의 인도태평양 전략 가세 등으로 중국 군부의 불만은 폭발 일보 직전이라고 전해진다.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의 군사적 위협이 커지자 지난 7월 대만에 M1A2 에이브럼스 전차, 스팅어 방공미사일 등 모두 22억 달러(약 2조6000억 원)의 첨단무기 판매를 승인했다. 이어 8월에는 F-16V 전투기 66대(약 9조6000억 원 상당)의 판매를 결정했다. 역대 미국 대통령이 중국을 의식해 무기 판매를 억제해왔던 것과 대조적이다.

이에 고무돼 대만은 미국이 추진하는 인도태평양 전략에 적극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하고 있다. 인도태평양 전략이란 미국이 주요 동맹국 및 우호국을 결속시켜 중국의 팽창과 위협에 대응하겠다는 구상이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추진했던 대중국 견제 구상의 연장선상에 있다. 대만으로선 뜻밖의 군사·외교적 소득을 얻을 기회다.

정리하자면 홍콩 시위 사태 이후 대만 독립파인 차이잉원 총통의 연임(連任)이 유력해지고, 차이 총통은 대미 관계를 강화해 대중국 견제의 한 축으로 대만을 자리매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중국 군부로선 결코 좌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대만 총통선거를 전후한 시기에 어떤 식으로든 군사적 행동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북핵·한반도는 대미 압박 카드

중국 지도부에게 한반도와 북핵 문제는 대만해협 못지않게 위기 국면을 타개할 지렛대로 인식될 가능성이 크다. 김정은 체제가 북미 회담에서 완강하게 버티고, 북핵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지고 있어서다. 중국은 대북 제재 고삐를 늦추는 방식으로 북중 관계 개선 및 대북 영향력 확대를 꾀할 수 있다. 북·중·러가 연합해 미국의 동아시아 포위망을 깨뜨릴 가능성은 상수(常數)로 인식되고 있다. 미중 대립이 격화될수록 한반도 위기지수는 높아지는 셈이다.

서울경제신문의 최근 분석에 따르면 중국 해군은 2015년 이후 주변 해역에서 모두 30번의 대규모 군사훈련을 실시했는데, 그중 한반도와 가까운 서해 및 보하이(渤海)에서 무려 15번이나 실시한 것으로 나타났다. 북핵 못지않게 중국의 군사적 위협이 현실화되고 있다는 방증이다. 중국이 만에 하나 대만해협에서 위기 국면을 조성할 경우 주한미군 평택기지가 있는 한반도 역시 무풍지대가 될 수 없다고 생각된다.

아베는 중일 관계 복원에 성공

이 상황에서 주목해봐야 할 부분은 일본의 대중국 외교다. 아베 신조 총리는 두 번째 총리직에 취임한 후 ‘미국과는 밀착 강화, 중국과는 협력 복원’을 실천해왔다. 중국 입장에서도 미중 무역전쟁이 격화되고 있는 마당에 굳이 일본을 적대시할 필요가 없었다. 중일 관계를 악화시킨 변수였던 과거사 문제, 센카쿠열도(중국 명은 댜오위다오) 영유권 분쟁은 물밑으로 가라앉았다. 양국은 2012년 9월 일본의 센카쿠 국유화 조치 이후 일촉즉발의 충돌 위기까지 치달은 바 있다.

중일 관계는 요즘 뚜렷하게 복원되고 있다. 5년 전인 2014년 11월 베이징에서 열린 아태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당시, 시진핑 주석이 아베 총리를 외교적으로 홀대한 장면을 좀체 연상하기 어려울 정도다. 당시 일부 외신에서 ‘두 정상이 서로의 양말 냄새를 맡는 표정’이라고 표현할 만큼 중일 관계는 꼬여 있었다. 아베는 내년 봄 있을 시진핑의 국빈 방문에 맞춰 양국 관계를 격상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동아시아 정세 불확실성 대책은?

홍콩 시위 사태는 이제 동아시아 판을 흔들 변수로 부상했다.

중국 지도부가 강경 진압에 나설 경우 미중 간에 한판 싸움은 불가피하다. 트럼프는 최근 홍콩 시위에 대해 ‘인도적인 해법을 보고 싶다’거나 ‘(홍콩에서) 나쁜 일이 생긴다면 이는 협상에도 나쁜 영향을 끼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맞서 중국은 일찌감치 미국의 개입을 ‘내정 간섭’이라고 규정해왔다.

홍콩 시위에서 시작한 갈등과 위기는 현재진행형이다. 여기에다 한일 관계는 복원 자체를 거론하기조차 힘들다. 동아시아 정세가 불확실성 속으로 빠져드는 현실에서 우리의 외교안보 라인이 어떤 대응책을 갖고 있는지 정말 궁금하다. 한중 관계는 안녕하신가?

이양수 /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