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통계청이 경기종합지수 개편 결과를 발표했다. 한국 경제가 ‘2017년 9월’에 경기순환 국면의 정점을 찍고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게 확인되었다는 것이다. 이후 실물경제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2017년 9월이 역사상 가장 길었던 54개월 확장기의 끝이라고 하니, 현재 우리가 통과하고 있는 수축기도 덩달아 길어질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을 품는다.

물론 그런 예감은 틀렸다. 1970년대 이후 한국 경제가 모두 11차례의 경기순환을 겪어 왔지만, 확장기와 수축기가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확장기가 수축기보다 두 배 이상 길었던 기간도 있고, 그 반대였던 기간도 있다. 대내외 여건과 경제정책, 그리고 경제주체들의 대응방식에 따라 확장-수축의 시간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한국 경제가 ‘경기 수축기’와 함께 선진국 경제의 무기력증, 즉 부정맥증후군을 앓고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향후 경기를 되살리고 혁신 체질로 바꿔나갈 방법은 없을까. 이 대목에서 강조돼야 할 것이 금융의 역할과 혁신이다. 정부의 경기 진작책이 제대로 작동되려면 정책자금의 집행방식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편집자]

경기순환의 핵심은 주기보다 진폭

경기순환(business cycle)이라는 단어는 경제현상을 자연현상에 빗대어 만든, 가상의 개념이다. 계절의 변화나 시계추의 움직임처럼 경제활동도 주기적으로 반복된다는 상상을 토대로 만든 말이다. 그러나 마크 트웨인의 말처럼 “역사는 반복하지 않는다. 다만 운율이 있을 뿐이다(History does not repeat itself, but it rhymes)”.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전 세계의 경제학자들이 경기변동의 주기와 진폭, 그리고 원인을 캐기 위해서 부지런히 연구한다. 각종 기초자료를 가공하여 독특한 지표를 만든 뒤 그것으로 미래를 전망한다. 16세기에 갈릴레오와 뉴턴이 직접 망원경을 만들어 천체를 관측했던 것과 비슷하다. 하지만, 순환하지 않는 것의 주기와 진폭을 연구하는 데는 모순과 허망함이 숨어 있다.

경제 움직임에 운율이 있다고 가정하면, 정작 우리가 걱정해야 할 것은 확장과 수축의 시간이 아니라 진폭일 것이다. 산이 높을수록, 골도 깊기 때문이다. 좋은 예가 1990년대 후반의 한국 경제다. 1인당 소득 3만 달러의 마술피리에 홀려서 흥청망청하다가 맞이한 외환위기의 고통은 너무나 컸다. 작금의 경기침체가 얼마나 깊이 진행될지 걱정부터 하는 사람이 많은 이유다.

‘경기 진맥’조차 어렵게 진폭 작아져

그런데 지금은 이런 걱정마저도 쓸 데 없다. 산이 높기는커녕 너무 낮은 것이 문제이기 때문이다. 2013년 3월 시작된 제11차 순환기는 역사상 가장 진폭이 작다. 유난히 길었다는 경기 확장기를 느끼지도 못한 채 수축기로 접어들 정도다. 정점을 지난 지 2년 뒤에야 통계청이 이를 인지한 것도 이번 순환기가 워낙 뜨뜻미지근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도 진맥(診脈)하기가 무척 힘들었던 것이다.

경기확장기를 제대로 느끼지 못했던 만큼 수축기도 덜 고통스러울지 모른다. 그것이 당장은 위로가 될 수 있겠다. 경제 정책 담당자 입장에선 경기변동의 진폭이 작았으면 하는 게 하나의 소망이기도 하다.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들은 경기흐름과 반대로 돈줄을 조절해서 경기 진폭을 낮추려고 노력한다. 그런 노력을 선제적 정책(preemptive policy)이라고 한다.

미국의 ‘금융정책 수장’이었던 앨런 그린스펀은 특유의 ‘촉’을 세워서 선제적으로 대응한 결과 1990년대 미국 경제를 ‘골디락 경제(goldilocks economy)’로 만든 것으로 유명하다.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은, 완만한 장기 호경기였다. 그렇게 본다면, 장기간에 걸쳐 경기 진폭을 느낄 수 없게 만든 우리 정부와 한국은행은 일단 높이 평가받아야 할지 모른다.

‘부정맥증후군’, 작은 충격에도 휘청

과연 그럴까? 아마 과거라면 그럴 만하다. 하지만 현재는 그렇다고 말하기 힘들다.
경제를 생명체에 비유한다면, 경기 변동은 맥박과 같다. 맥박은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의 상징이다. 강한 심장을 가진 성장기의 경제는 맥박이 분명하다. 확장기에는 눈에 띄게 성장하고, 짧은 수축기에는 휴식하는 모습이 뚜렷하다.

반대로 활력을 잃고 쇠잔해 가는 경제는 맥박이 약하다. 호경기에도 그 기운이 ‘임종 환자의 콧김’ 정도로 느껴진다. 수백 년간 성장을 못했던 중세 시대의 경제가 그러했다. 그러므로 경기 진폭이 작아진 것을 두고 정책당국의 승리라고 환호할 수만은 없다.

경기 진폭이 작아진 것은 한국 경제뿐만 아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주요 선진국들은 일제히 과거와 전혀 다른 경험을 하고 있다. 경기 진폭이 눈에 띄게 줄어든 반면, 빈맥(頻脈), 즉 경기변동의 잔파동이 늘었다. 작은 충격에도 경제 상황이 급변하는 허약체질이 된 것이다. 신체에 비유하자면, ‘부정맥증후군’이다. 수차례의 유럽 재정위기와 미국의 재정절벽 위기가 그 예다.

이런 현상을 놓고 많은 사람들은 아직 세계경제가 정상체력을 회복하지 못한 증거라고 말한다. 모든 경제변동은 결국 실물부문에서 일어나는 생산·소비, 수요·공급 사이의 변화다. 그러므로 민간의 주도로 투자, 생산, 소비가 정상을 되찾아야 경제의 맥박도 원상을 되찾는다.

한국 경제, 10년 전부터 早老현상

2008년 금융 부문에서 시작된 글로벌 위기는 전례 없이 확장적인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이라는 또 다른 금융충격으로 간신히 막아 놓은 사례다. 금융충격의 맞불로써 불을 껐지만, 내일에 대한 확신이 없어 불안하다. 그러므로 민간의 생산, 투자, 소비가 정상일 리 없다. 그것이 각국의 경제 움직임이 부정맥 증세를 보이는 최대 원인이다.

유감스럽게도 우리 경제에는 이 말이 절반밖에 맞지 않는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것도 아니었고, 눈에 띄는 양적완화로 버틴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경제의 부정맥 현상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눈에 띄게 심해졌다.

요컨대 한국 경제의 부정맥과 빈맥 현상은 선진국보다 더 심하지 않지만 선진국의 그것과 비슷해졌다. 경제의 조로(早老)현상이다. 그것은 T.S. 엘리엇(‘Hollow Men’)이 말한 종말의 모습이기도 하다. “세상은 한 번에 풀썩 망하지 않는다. 콜록거리며 조금씩 시들어간다(This is the way the world ends/ Not with a bang but a whimper).”

부정맥 증세는 ‘무기력증+과잉반응’

경제의 부정맥 증세는 인체의 그것과 똑같다. 무기력증에 시달린다. 투자를 통해 고용과 생산을 더 늘리고 더 도약해야 하는데, 우울한 현실을 무덤덤하게 받아들인다. 서양에서도 ‘뉴노멀(new normal)’이라는 이름으로 미미한 성장률, 낮은 투자율, 눈덩이처럼 늘어난 국가채무를 당연하게 여긴다.

두 번째 현상은 과잉반응이다. 어느 나라에서나 작은 일만 생기면, “R의 공포”니, “D의 공포”니 호들갑을 떤다. 그러면서 금리를 낮추거나 정책자금을 풀어주기만 기대한다. 그럴수록 민간의 혁신과 구조조정 노력은 늦어지고, 부정맥 증세는 심해진다.

부정맥 환자에게 휴식은 임시방편일 뿐이다. 궁극적으로는 심장에 ‘작은 자극’을 줘서 정상 맥박을 되찾도록 해야 한다. 경기의 바로미터인 고용, 생산, 소비, 투자, 무역 활동에서 민간의 자율, 창의성, 의욕이 지배하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궁극적 치료책이다. 그것은 정부 주도로 성장 촉진제를 투입해서 덩치를 키우는 것과는 다르다.

금융 지원, 민간 창의성·의욕 높여야

실물경제 활동에서 민간의 창의성과 의욕이 지배하려면 공정경쟁이 필수적이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다는 데 대한 의구심이 생기면, 그것들이 생길 리 없다.

그런데 기회의 평등이 결과의 평등으로 비쳐지거나, 공정의 기준이 쉽게 변해서는 곤란하다. 그렇게 되면, 경제활동 참가자들의 도덕해이(moral hazard)를 불러 모든 것을 정부에 의존하는 사회가 된다. 민간의 창의성과 의욕을 북돋우려던 정부가 오히려 그것을 삼켜버리는 ‘리바이어던(Leviathan)’이 된다. 그러면 경제의 무기력증과 부정맥증후군은 더 심해진다. 이처럼 정부의 시장개입에도 기회비용이 따른다. 그래서 준칙과 절도가 필요하다.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는 방법 중 하나는 금융지원이다. 금융지원은 가격과 비용을 왜곡하기 때문에 기회의 평등 및 과정의 공정을 깨뜨리기 쉽다. 그래서 아주 조심해야 하고 실효성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실효성이 없는 금융지원은 없느니만 못한 독(毒)이 되기 쉽다. 1998년 외환위기 전에 우리 정부는 농업 경쟁력을 높일 요량으로 경운기 구매자금은 물론 기름 값과 수리비까지 지원했다. 그때 실효성을 따져본 사람은 없었다. 그 결과 지금 남은 것은 많은 농가에서 내버려 놓다시피 하는 경운기와 늘어난 농가 부채뿐이다.

정부 개입 잘못하면 병세만 악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 개의 정부에 걸쳐 여러 산업 및 부문에 많은 정책자금이 풀렸다. 하지만 그 실효성은 자신하기 어렵다. 실물부문에서 생산, 투자, 고용을 이끌어내지 못한 금융지원은, 피가 손끝까지 이르지 못한 채 심장만 펄떡이는 부정맥증후군을 일으킨다. 이처럼 정부의 시장 개입에도 기회비용이 따른다. 그래서 준칙과 절도가 필요하다. 옛날 일이지만, 매년 봄 농촌에 지원되었던 영농자금이 ‘효도 관광’ 재원으로 쓰인 것이 좋은 예다. 그 무렵 농업 생산성은 급격히 떨어졌다.

물론 이제는 그런 일이 없다. 오히려 그와 정반대다. 요즘 웬만한 정책자금을 대출받으려면, 지자체나 신용보증기금, 기술보증기금 등이 발급하는 각종 자격증과 확인증이 필요하다. 그래서 기업들은 기술 개발보다도 대출 자격을 얻는데 신경을 쓴다. 개인들은 신용등급에 신경을 쓴다. 입시경쟁과 취업시장에서의 ‘스펙 쌓기’가 금융시장에서도 만연한 것이다. 여기에 또 다른 함정이 있다.

정책자금 따먹는 ‘스펙 쌓기’ 만연

정책자금의 출발점은, 지자체나 공공기관이 발급하는 ‘혁신기업’ 자격증과 ‘혁신기술’ 확인증이다. 어느 공신력 있는 기관으로부터 ‘유망 중소기업’이나 ‘우수 기술’을 인정받은 지방의 기업주는 자신이 가진 서울의 아파트(혹은 부동산)를 담보로 대출을 받아 자녀 유학자금을 송금하기가 아주 쉽다. 정부와 한국은행은 그런 기업에게 실시된 대출을 정책금융지원이라고 파악한다. 그리고 곧 지방경제와 실물경제가 좋아질 것을 기대한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돈이 이렇게 뿌려지는 지 아무도 모른다.

정책자금만 그런 것은 아니다. 은행들은 운전자금을 취급할 때 대출자격과 담보부터 열심히 챙긴다. 반면 대출의 원인행위 즉, 구매·생산·판매·고용 등 기업활동의 실체는 확인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신용카드사보다도 못하다.

신용카드사만도 못한 대출 관행

신용카드사는 고객이 식당, 택시, 영화관에서 쓴 돈을 일일이 확인하고 나서 신용을 제공한다. 푼돈밖에 안 되는 신용카드사의 신용공급도 이렇게 실물거래와 직결되는데, 몇조 원의 정책자금과 은행 대출은 실물거래를 면밀히 확인하지 않은 채 투입된다. 은행이 운전자금이라는 유량(flow·流量)을 다루면서도 부동산 담보라는 저량(stock·貯量)에 신경을 쓰는 것이다. 운전자금으로 기름을 샀는지, 밀가루를 샀는지, 인건비를 지급했는지는 사후에 형식적으로만 들춰볼 뿐이다. 여기에 큰 구멍이 있다.

참고로 1990년대 이전에는 지금과 달랐다. 정책자금을 공급하거나 은행이 여신할 때는 상업은행 할인이나 무역금융처럼 실물거래와 직결되는 방법을 썼다. 거래내역이 분명하게 확인되므로 담보요구가 지금보다 훨씬 적었다(필자는 어음은 실물 거래를 추적할 수 있는 훌륭한 장점이 있다고 강조하고 싶다).

금융 ‘일처리 방식’ 바꿔야 체질 개선

결론적으로 경기 정점을 지났다는 통계청의 발표에 걱정할 필요는 없다. 우리의 노력에 따라서 경기수축의 기간과 강도는 얼마든지 달라진다. 중요한 것은, 체질개선이다. 우리 경제가 왜 조로현상을 보이는지, 왜 부정맥 증세가 있는지 점검하고 ‘작은 자극’을 통해서 젊은 심장을 회복해야 한다.

금융 측면에서는 금융과 실물경제 간의 연계성을 높이는 것이 대안이다. 담보와 스펙(대출자격)을 중시하는 시스템은 폐기해야 한다. 그것이 경제 무기력증과 경기 부정맥증후군을 탈피하는 근본 치유책이다. 정부는 기회의 평등과 과정의 공정이라는 형이상학적 목표 외에 일처리 방식(modus operandi)의 혁신이라는 실무적 목표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차현진 / 한국은행 인재개발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