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대일로’, ‘중국제조 2025’ 등 야심찬 슬로건을 내걸며 탄탄대로를 걷는 것으로 보였던 중국 시진핑 주석이 최근 안팎으로 도전과 시련을 겪고 있다. ‘시 황제’로까지 불리는 그의 권력은 안녕하신가. 이양수 피렌체의 식탁 편집주간이 중국 최고위 권력층의 현 상황을 살펴봤다. [편집자]

중국의 최고 권력자 시진핑(習近平·66) 국가주석이 장고(長考) 끝에 두 개의 위기 대응책을 내놓고 있다. 두 개의 위기란 홍콩 시위사태, 미중 무역전쟁이다. 시 주석은 지난 6월 초 홍콩에서 대규모 반중 시위가 발생한 이후 공개 행보를 자제해왔다. 지난 달 19일 간쑤(甘肅)성 시찰에 나선 게 그나마 한 달여 사이에 주목받을 만한 행사였다.

당·정·군의 권력을 완전히 장악한 시 주석에게도 두 개의 위기는 골칫거리다. 안으로는 홍콩 시위사태, 밖으로는 미중 무역전쟁이 ‘3연임(15년 집권)’으로 향하는 절대 권력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 시 주석의 권위가 상처받고 있는 내우외환 국면이다.

시 주석의 구상은 지난 3일 당 간부들을 상대로 한 중앙당교(中央黨校) 연설에서 분명하게 드러났다. 그는 “지금 세계는 100년 동안 볼 수 없던 ‘대변화 국면(大變局)’이며 우리는 좀체 얻기 힘든 역사적 기회와 함께 중대한 위험 및 시련을 맞이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각종 투쟁은 단기적인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것”이라고 역설했다.

시 주석의 연설문은 마치 전쟁에 나가는 출전 선언처럼 ‘투쟁’, ‘승리’란 단어로 뒤덮여 있다. 중국이 핵심이익으로 분류하는 주권, 안전, 발전이익을 해치는 세력을 방관치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과시했다. 내년 11월 대선을 치러야 하는 트럼프 대통령을 겨냥한 화살이다.

그는 이날 연설에서 ‘두 개의 백년 꿈’으로 당내 결속을 호소했다. 공산당 창당 100년(2021년), 공산정권 수립 100년(2049년)을 내다본 중국몽(中國夢)을 다시 한 번 정치적 슬로건으로 앞세웠다. 이를 위해 공산당 간부 및 당원은 ‘투쟁의 방향, 입장, 원칙’을 굳게 지키라고 몇 차례나 촉구했다.

시 주석의 위기 대응책은 무엇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미중 무역전쟁에 대해선 장기적인 전쟁 태세를, 홍콩 시위에 대해선 강온 양면책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국내적으로는 내부 단속과 통제, 검열을 강화하는 움직임이 뚜렷하다. 10월 1일 국경절(공산정권 수립 70주년)을 앞두고 시 주석이 상황 정리에 나선 것이다. 이런 추측을 뒷받침하듯 시 주석의 중앙당교 연설을 전후해 중국 지도부에선 두 개의 움직임이 포착됐다.

첫째는 왕이(王毅)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의 북한 방문이다. 시진핑 주석의 6월 방북을 지렛대 삼아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10월 방중을 성사시키고 북·중 결속을 다지려는 것이다. 이에 앞서 시 주석은 6월 초 러시아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에 참석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만난 바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맞서기 위해 북·중·러 연합 구도를 강화하고, 신(新)냉전 구도를 주도하겠다는 구상에 따른 것이다. 신·구 패권국가 간에 벌어지는 이른 바 ‘투키디데스의 함정’을 무릅쓰고라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결기가 엿보인다.

둘째는 홍콩과 가까운 중국 광둥 지역에 시 주석의 최측근인 왕치산(王岐山·71) 국가부주석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홍콩 시위사태는 원래 한정(韓正·65) 부총리 겸 정치국 상무위원(당 서열 7위)이 처리해야 할 사안이다. 홍콩·마카오 공작소조(小組)를 맡은 한정은 홍콩 시위 초기인 6월 중순, 홍콩 옆 선전에 가서 캐리 람 홍콩행정장관을 만났다. 이 자리에서 ‘(범죄인 인도 조례를) 무기한 연기하되 포기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전했다고 홍콩 언론은 보도했다. 하지만 사태가 진정되기는커녕 오히려 시위 규모가 200만 명으로 확대되고 시위 양상도 지하철·공항·공공기관 점거 농성 등으로 격화돼왔다. 시간끌기용 미봉책을 택했다가 양쪽에서 정치적 신뢰를 잃은 오판을 한 셈이다.

중국 지도부는 이 과정에서 미묘한 노선 갈등을 겪었다고 한다. 권력 핵심인 정치국 위원(25명)과 정치국 상무위원(7명) 자리를 시진핑 측근그룹(習家軍·시자쥔)이 독식하다시피 했지만 물밑에서 뜻밖의 세력 다툼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지난 5월 하순 베이징에서 열린 일대일로 포럼 행사장. 각국의 정상급 인사 4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시진핑은 “지식재산권 보호 강화는 기업의 합법적 권익을 지키는 것은 물론 국가의 질적 성장을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가 보조금 문제 해결, 외국기업 투자 장려, 위안화 환율 안정, 미중 합의 관리를 위한 기구 설립도 언급했다. 미국이 줄기차게 요구해왔던 사안들이다. 외신 기자들은 이를 ‘미국의 핵심 요구 사항을 수용하겠다는 뜻’이라고 해석했다. 이때만 해도 미중 무역전쟁이 조만간 끝날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이 우세했다.

이후 상황을 중국 사정에 정통한 익명의 전문가는 다음과 같이 전했다.

“원래 미중 무역협상은 5월 하순 거의 다 타결됐다. 시 주석의 경제 책사이자 대미 온건파인 류허(劉鶴) 부총리가 협상 대표를 맡았다. 경제 분야를 총괄하는 리커창(李克强) 총리로선 기분 나빴을 수 있다. 시 주석의 측근이 자신을 제치고 대미 무역협상을 주도하는 양상이었기 때문이다. 류 부총리가 정치국 상무위원회에 협상 타결안을 보고하자 뜻밖에도 비(非)경제 분야 담당인 한정 부총리가 ‘(합의 내용이) 주권 침해나 마찬가지’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결국 협상 타결안은 물 건너가고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 폭탄을 때렸다.”

한정은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의 측근 그룹인 상하이방(上海幇) 출신이다. 역대 상하이 시장 가운데 최연소(49세), 최장수(10년) 타이틀을 갖고 있다. 하지만 시진핑 주석이 상하이시 당 서기(2007년)를 맡았을 당시 남다른 성품과 실력으로 시 주석의 각별한 신임을 얻었다. 한정이 상하이방으로도, 시진핑 측근 그룹으로도 분류되는 이유다.

그런데 뜻밖에도 최고 지도부인 정치국 상무위원(7명) 가운데 또 다른 인물이 한정의 반발에 가세했다. 바로 공청단 출신이자 경제통인 왕양(汪洋·64) 인민정치협상회의(政協) 주석이다. 익명을 요구한 전문가는 “왕 주석이 ‘외부 압력을 내부 개혁의 동력으로 삼자’며 반대 의사를 밝혔다”고 전했다. 상하이방 출신인 한정의 주장에 공청단 출신 왕양이 동조한 것이다. 굳이 따지자면 비(非)주류 요소가 섞여 있는 인물들이다.

한정·왕양 말고도 공청단 그룹의 간판 격인 리커창 총리까지 반발할 경우 시 주석으로선 자칫 당내 반대파에게 결집 명분을 줄 수 있는 상황이었다. 시 주석을 겨냥해 ‘시 황제(진시황을 비유하는 말)’라고 비꼬는 말이 나도는 현실에서, 장쩌민 계열(상하이방), 후진타오 계열(공청단)의 불만도 그만큼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대미 협상 굴욕론’은 중국 인민의 국수주의 정서를 자극해 그 불똥이 어디로 튈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중국 당국이 지난 20여 년간 전개한 애국주의 교육 때문에 반일 정서는 물론 반미 정서도 휘발성이 강한 이슈로 급부상했다.

결국 시 주석은 7월 하순 대미 강경파인 중산(中山) 상무부장을 협상 테이블에 투입했다. 류허 부총리와 함께 투톱 체제로 협상을 벌이도록 한 것이다. 미국 측 상대는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과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무역대표부 대표였다.

이후 미중은 기업 제재→관세 폭탄→맞보복 순으로 한 치의 양보 없이 전선을 확대하고 있다. 관세폭탄 전쟁의 다른 한편에선 미국 정부가 중국의 화웨이, ZTE, 푸젠진화(福建晉華·JHICC) 등 첨단 IT기업들을 기술절취 혐의로 제재하거나 법원에 기소하고 있다. 중국 역시 뒤질세라 마이크론 제품에 대해 판매 금지 조치를 내리고 미국 제품 불매운동을 벌일 태세다. 관영 매체인 인민일보는 “관세 몽둥이로 중국의 발전을 막지 못한다”고 날을 세웠다.

중국은 미중 무역전쟁 과정에서 ‘북한 카드’를 활용할 가능성이 크다. 북·중 밀착은 한반도 정세를 바꿀 변수다. 국제사회가 가하는 대북 제재 조치를 약화 내지 무력화시킬 경우 트럼프로선 북·미 핵협상의 동력이 크게 떨어질 수 있다. 북·중 국경 사이에는 제재를 피해 물자나 사람이 얼마든지 넘나들 수 있는 공간이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한일 충돌 속에서 한·미·일 공조는 금이 가고 있다.

그런데 홍콩 시위사태는 중국 지도부의 갈등 전선에 또 다른 변수를 던져 주었다. 홍콩·마카오를 맡은 한정 부총리가 미중 협상 때와 달리 수세에 몰린 것이다. 홍콩 시위 초기만 해도 한정은 홍콩 관료와 재계·친중파 인사들을 두루 접촉한 뒤 시간을 두고 사태를 해결하자는 온건론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러나 홍콩 시위는 꼬일 대로 꼬이면서 한정의 기대와는 정반대로 전개됐다. 한정을 제치고 왕치산 국가부주석이 홍콩 사태 해결사로 등판한 이유다.

왕치산은 자신의 광둥 행에 대해 ‘역사문화 유산을 방문하고 국제농구연맹(FIBA) 월드컵대회에 참석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홍콩 언론과 외신은 다르게 해석한다. 홍콩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시 주석이 왕치산을 급파했다는 것이다. 그는 시 주석에게 그야말로 측근 중 측근, 복심 중 복심이다. 시 주석이 한정 부총리로는 사태를 해결하지 못하겠다는 불신의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왕치산은 누구인가. 아시아 금융위기(1997년), 홍콩과 중국 대륙을 휩쓴 사스(SARS) 사태, 글로벌 금융위기(2008년) 당시 소방수 역할을 했고 시진핑 체제에서는 ‘부패와의 전쟁’을 주도하며 정적(政敵)들을 제거하는 데 앞장섰다. 경제 부총리, 정치국 상무위원, 당 기율검사위 서기를 거치면서 시진핑 주석의 분신(分身)이나 다름없었다. 1948년생인 그는 2017년 고위직 연령(68세) 제한에 걸려 명예직인 국가부주석으로 물러났을 뿐이다. 그는 1989년 톈안먼 사태의 강경 진압을 지지한 야오이린(姚依林) 전 부총리의 사위다. ‘철혈 재상’으로 불린 주룽지(朱鎔基) 전 총리의 맥을 잇는 경제관료 출신이다.

왕치산 국가부주석이 광둥성에 왔다는 소식과 함께 홍콩 언론은 자오커즈(趙克志) 국무위원 겸 공안부장, 이강(易綱) 중국인민은행장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광둥 지역을 방문했다는 사실을 알렸다. 이들은 각각 치안과 금융을 담당하는 실무 책임자다. 중국 고위 관료들은 홍콩에서 민감 사안이 터지면 홍콩이 아니라 광둥성 주요 도시에서 홍콩 지도층 인사들을 면담하며 대책을 지휘해왔다. 홍콩 자치를 존중한다는 취지에서다.

그래서 왕치산-자오커즈-이강의 광둥 방문 조합은 우연이라고 말하기엔 너무나 딱 맞아 떨어지는 역할 분담이다. ‘책임PD 왕치산, 치안PD 자오커즈, 금융PD 이강’의 그림을 떠올리게 한다. 2003년 홍콩판 국가보안법 제정 당시에도 홍콩의 50만 반중 시위에 봉착하자 중국 당국은 이번과 비슷한 대응 패턴을 보인 바 있다.

왕치산이 광둥에 왔다는 다음날인 4일, 공교롭게도 캐리 람 홍콩행정장관은 ‘범죄인 인도 조례’를 폐기하겠다고 선언했다. 홍콩 사태에 중앙정부가 직간접으로 개입한 결과라고 풀이된다. 홍콩을 잘 아는 소식통은 “베이징의 다음 수순은 캐리 람 행정장관의 사퇴, 시위 주동자 검거, 홍콩 민심 수습책일 것”이라고 예측했다. 공산당 창당 70주년을 맞아 어느 때보다 성대하게 치러질 10·1 국경절 행사를 앞두고 속전속결 가능성이 크다.

중국의 강온 양면 대책 속에서 홍콩 시위대가 요구해온 홍콩의 고도자치 보장, 행정장관 직선제, 민주적 정치 개혁 등은 묵살당할 수밖에 없다. 시진핑 체제가 결코 수용할 수 없는 금단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중국의 개발 독재와 초민족주의(hyper- nationalism) 앞에서는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다.

결국 한정 부총리는 두 개의 위기를 거치면서 승승장구하던 정치 역정에서 커다란 변곡점을 맞은 셈이다. 시진핑 그룹으로선 반대 세력을 쳐낼 명분을 잡았다. 2022년 ‘3연임’을 앞둔 시진핑 그룹은 위기 속에서 기회를 잡았다고 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한정과 비(非)시진핑 세력을 정치적 희생양으로 삼을 것인지 주목된다.

이와 함께 시진핑 체제는 내부 통제의 고삐를 바짝 당기고 있다. 예컨대 월스트리트저널(WSJ)의 중국 주재 기자가 최근 시 주석의 친척 비리 의혹을 보도한 뒤 기자증을 발급받지 못해 강제로 중국을 떠나게 됐다. 기자증이 없으면 취재 비자를 못 받는 제도를 활용해 중국 정부가 사실상 추방조치를 내린 것이다. 지난해엔 미국 인터넷 매체 기자가 비슷하게 중국을 떠난 바 있다.

이를 감안한 듯 요즘엔 반중 성향의 홍콩 언론도 부쩍 몸을 사리는 분위기다. 중국을 자주 오가는 한 소식통은 “외국 언론이든 중국 언론이든 검열·통제가 너무 심해 취재 자체가 불가능한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중국 주재 한국 외교관들도 운신 폭이 줄어 개업휴업이나 마찬가지다. 한국의 1000만 관객 영화 <기생충>이 중국에선 ‘기술적 이유’로 상영 허가를 받지 못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중국 정부를 비판하거나 반중 정서나 내부 갈등을 조장하는 외국인에 대한 압박도 노골화되고 있다. 오죽하면 비행기를 타고 중국 땅에 내리면 ‘숨이 막힌다’는 이야기가 나돌 정도다. 내부 통제가 너무 심해지자 중국 기자 사회에선 ‘이럴 바엔 돈이나 벌자’며 광고·컨설팅 같은 관련 업계로 떠나는 사례도 많아졌다고 한다.

중국 전문가들의 전언에 따르면 중국은 치안 분야를 통틀어 연간 2000억 달러(약 20조원)가 넘는 돈을 쓴다고 한다. 인터넷 검색·검열에만 수십만 명이 동원되고, 여론을 뒤흔들 민감 사안의 확산을 막기 위해 인터넷과 언론에 대한 사전 검열은 물론 검색 자체를 막는 ‘인터넷 만리장성’이 일상화돼 있다는 것이다.

시진핑 시대의 중국몽(中國夢). 시간이 누구 편을 들지 모르겠지만, 내부 통제를 통한 결속, 그리고 강철 같은 단일 대오야말로 시진핑 체제를 받쳐주는 최대 버팀목일지 모른다.

이양수 / 피렌체의 식탁 편집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