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올해 73세이고, 그에게 도전하는 민주당 조 바이든 후보는 77세, 버니 샌더스 후보는 78세다. 그 뒤를 쫓는 엘리자베스 워런 후보도 70세다. 아직까지는 70대가 두각을 나타내고 있지만, 카말라 해리스(54세), 베토 오루크(46세), 앤드류 양(44세), 털시 개버드(38세), 피트 부티제지(37세) 등 젊은 도전자들도 여럿이다. 그 중 뉴욕 태생의 대만계 인물 앤드류 양을 주목할만하다. 단지 ‘젊기’ 때문만은 아니다. 박상현 사단법인 코드 미디어 디렉터가 앤드류 양에 대한 이야기를 전한다. '밀레니얼'에 대한 정치적 해석에 애먹고 있는 우리나라 정치계에 시사하는 점이 적지 않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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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애틀랜틱>에서는 2020년 미국 대선에 출마한 민주당 대선후보 앤드류 양(Andrew Yang)에 대한 기사가 실렸다. 그 내용을 차치하고 20명이 훌쩍 넘은 많은 후보들 중에서 정치인으로서의 경력이 하나도 없는 동양계 후보를 <애틀랜틱> 같은 매체에서 다뤘다는 것 자체가 흥미로운 일이다.

미국에서 흔히 양당의 대통령 후보가 될 만한 자격을 이야기할 때 현직, 혹은 전직 주지사 경력과 전현직 상원의원을 꼽는다. 소위 공직의 수장(executive) 경력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하원의원이나 도시의 시장들이 출마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인디애나 주의 사우스 벤드라는 도시의 시장 피트 부테제지(Pete Buttigieg)나, 뉴욕시장 빌 드블라지오(Bill de Blasio)도 출마해서 당당하게 겨루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앤드류 양의 경우는 아예 공직의 경험이 없는 사람이다. 사업을 했지만 거대 기업의 대표도 아니고, 스타트업을 세우거나 키우는 역할을 했던 사람이다. 그런 정도의 경력을 가지고 미국 대선에 뛰어든다는 건 무모한 행동에 가깝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시선을 받았다. 그런데 앞서 언급한 <애틀랜틱>의 기사 제목은 “앤드류 양의 비관주의가 가진 매력”(The Pull of Andrew Yang’s Pessimism)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비관주의는 미국의 사회, 경제적 미래가 아주 심각한 변화를 겪을 것이고, 많은 노동자와 국민들 중에 엄청난 피해자가 속출할 거라는 그의 경고다.

앤드류 양은 그런데 어느 후보도 그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고 한탄하고, 자신은 그 이야기를 하러 출마했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런 비관주의적인 경고가 왜, 어떤 유권자들에게 매력(pull)으로 작용할까?

바로 밀레니얼 세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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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 년 간 한국사회는 ‘4차 산업혁명’ 논의에 빠져 있었다. 독일에서 출발한 이 4차 산업혁명 논의는 유럽과 아시아에서 큰 인기를 끌었고, 비록 지나치게 상업화되거나 공허한 논의가 되기는 했어도 정치인들과 정책 입안자들이 기술 격변이 가져올 미래를 준비하게 하는 중요한 키워드로 작용한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미국에서는 이 단어 자체를 들을 일이 없었다. 일부 전문가들이 사용하기는 했어도 대중화된 적은 없었다. 거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그 중 하나가 4차 산업혁명의 주도하거나 가장 유리한 고지에 있는 기업들이 실리콘밸리에 있는 미국 기업들이기 때문이다. 클린턴-고어 시절부터 시작된 실리콘밸리 기업에 대한 자유방임정책은 조지 W. 부시를 지나 오바마 행정부 까지 변함없이 이어졌고, 그 결과 미국인들 사이에는 실리콘밸리의 테크 기업들은 가만 놔두면 알아서 잘 한다는 생각이 있다.

반면 한국을 비롯한 대부분 국가에서 4차 산업혁명 논의는 정책적인 접근이 절대적으로 강하다. 따라서 접근 방식 자체가 다른 미국에서 이 단어를 듣기 힘들었던 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일반 미국인들은 대선에 출마한 동양계 사업가 앤드류 양의 입에서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을 처음 듣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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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밀레니얼 세대는 다르다. 비록 미국의 청년실업률은 다른 나라에 비해 낮은 편인 것은 사실이지만, 소위 비정규직 긱(gig) 노동이 확산되어 부모세대(베이비부머)나 X세대와 같은 대학졸업에서 은퇴까지 이어지는 전통적인 미래 계획을 할 수 없는 세대라는 점에서는 다른 나라의 밀레니얼 세대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 그들에게 앤드류 양의 ‘보편적 기본소득’(Universal Basic Income) 공약은 솔깃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앤드류 양은 단순히 UBI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진보적인 경제관을 가진 건 분명하지만, 엘리자베스 워런이나 버니 샌더스와는 분명하게 선을 긋는다. 샌더스는 노동자의 임금을 걱정하고 부자에 대한 과세를 강조하는 동시에 미국 내 일자리를 빼앗아 간 무역협정을 공격한다.(특히 무역협정 문제는 트럼프의 지지층과 샌더스의 지지층이 겹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앤드류 양은 그건 과거의 틀에서 접근하는 착각이라고 지적하고 “일자리가 해외로 건너가는 게 문제가 아니라, 자동화가 문제”라고 지적한다. 해외로 건너간 일자리를 가져오겠다는 트럼프의 주장이 얼마나 의미 없는 주장인지는 이미 지난 몇 년 동안 밝혀지고 있다. 생산 공장을 미국으로 옮겨도 생산을 하는 것은 로봇이지 노동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한계비용이 0으로 수렴하는 자동화의 세상”에서는 전통적인 논리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주장을 가장 잘 이해하고 동의하는 것은 전통적인 일자리가 주어지지 않는 밀레니얼 세대인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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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드류 양의 지지자들을 가리키는 “Yang Gang”은 그렇게 탄생했다. 미래를 직시해보면 기술을 이해하지 못하고 전통적인 좌우대립이나 “트럼프 까기”로 표를 모으는 민주당의 다른 후보들에게서는 답이 나오기 힘들다는 것을 깨달은 밀레니얼들이다.

특히 세계 최대의 소셜 뉴스 사이트인 레딧(Reddit)에서 살다시피 하는 미국의 밀레니얼들은 일찌감치 YangForPresidentHQ라는 서브레딧(https://www.reddit.com/r/YangForPresidentHQ/)을 만들어 활발한 지원활동을 하고 있었다. 미국의 메이저 언론사들이 이런 흐름을 읽지 못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밀레니얼들은 매스미디어 보다 소셜미디어에 몰려있고, 이 두 영역은 여간해서는 겹치지 않는다.

그 결과 전통적인 매체에서 조사할 때에는 군소후보에 불과한 양이 (밀레니얼들에게 인기 있는) 나우디스(NowThis) 같은 매체가 유튜브에 올려놓은 민주당 후보들과의 인터뷰에서는 두 번째로 많은 ‘좋아요’를 받는 선두권에 들어있다. 실제로 그가 사용하는 화법을 들어보면 레딧에 있는 밀레니얼들만 알아들을 수 있는 표현을 사용해서 윙크를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처음에는 매스미디어가 아무런 관심을 갖지 않다가 혜성같이 떠오르며 다음번 토론회 참여를 보장받은 (반면 주지사들은 이미 경쟁에서 낙오를 하고 사퇴를 선언하고 있다) 배경에는 이미 소셜에서 탄탄하게 존재하고 있는 밀레니얼 지지세력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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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드류 양은 밀레니얼들의 상징적인 후보다. 하지만 이 말을 잘못 해석해서는 안 된다. 상징적인 것과 가장 많은 지지를 받는 것은 분명하게 다르다. 그는 밀레니얼 세대의 생각을 잘 표현하고 있는 것이지, 그들이 가장 지지하는 후보는 아니다. 여전히 많은 진보적인 밀레니얼들이 샌더스와 워런을 지지한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미국과 한국에서의 세대 간 갈등의 차이를 이해해야 한다. 엄밀하게 말해 미국에서는 한국식의 세대 간 갈등은 존재하지 않는다. 비록 밀레니얼들이 자신들을 키운 부모세대인 베이비부머들을 싫어하고, 베이비부머들은 밀레니얼들이 게으르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그것을 한국 수준의 갈등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무리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미국은 문화적으로 ‘젊은 세대는 경험이 없고 어리다’고 무시하거나 기회를 빼앗는 사회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미국 건국 이래 45명의 대통령이 나왔는데 그 중 9명이 40대에 대통령이 되었다. 무려 5분의 1이 40대에 국가의 리더라는 중책을 맡은 것이다. 이에 반해 한국은 쿠데타를 통해 집권한 군인출신들을 제외하고는 50대에 대통령이 된 사람은 노무현 한 명 뿐인 나라다.

한국인들에게는 역설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40대가 얼마든지 대통령이 될 수 있는 나라에서는 젊은층이 70대를 대통령으로 지지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다. 즉, 나이로 차별을 하지 않는 사회에서는 젊다고, 혹은 나이가 많다고 더 가산점을 주는 것도 아니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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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앤드류 양은 일부 열성적 밀레니얼 지지층을 넘어 더 많은 지지자들을 모을 수 있을까? 물론이다. 빠르게 성장하고 있고, 관심이 갈수록 더 나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당분간 지지율은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샌더스나 바이든, 워런을 물리치고 트럼프와 상대할 민주당 후보가 될 것으로 생각하기는 힘든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한 언론에서는 앤드류 양을 “밀레니얼 세대의 로스 페로”라고 부른다. 로스 페로는 1992년 대선에 나온 기업가 출신의 무소속 후보로 돌풍을 일으켜서 조지 부시의 표를 상당수 끌어가면서 빌 클린턴의 당선을 도왔다는 평가를 받는 사람이다.

보도에 따르면 실제로 민주당 선두주자들의 캠프에서 앤드류 양의 주장이 너무나 매력적이어서 표가 분산될 위험을 인지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것이 앤드류 양의 치명적인 매력이다. 문제는 그 매력이 미국 밀레니얼 세대의 정치세력화를 어디까지 조직화할 수 있느냐이다. 상징이 되는 것과 세력화는 다르다. 미국의 밀레니얼 세대는 어느 쪽을 선택할지 지켜볼 일이다.

박상현 / 사단법인 코드 미디어 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