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를 둘러싼 대외 환경이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일본 아베 정권의 대 한국 무역 제재 때문에 우리 시야에서 잠시 벗어났을 뿐, 미중 무역 분쟁은 여전히 세계 질서를, 특히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정세를 결정지을 중대한 변수다. <수축사회>의 저자 홍성국 혜안리서치 대표는 “일본과의 갈등에 매몰돼 전 세계 정치‧경제 환경 변화를 놓치는 실수를 저질러서는 안 된다”고 조언한다. 그에 따르면 신자유주의를 기반으로 한 세계화, 자유무역의 시대는 저물고 정치적 목적에 의한 보호무역주의가 지배하는 새로운 형태의 냉전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그런데 과거 냉전 시대와 다른 점은 ‘피아 구분’이 어렵다는 점이다. 그에게서 변화의 원인과 추세, 우리의 대응 전략 등을 들어봤다. [편집자]

배타적 애국주의의 확산: 냉전 2.0

일본의 무역제재 위협에 이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WTO에서 한국의 개발도상국 지위에 문제제기를 하는 등, 자유무역 환경이 날로 악화되고 있다.

“한국은 신자유주의에 의한 무역 장벽 해소 덕분에 수출로 경제성장을 해왔다. 자유무역의 혜택을 가장 많이 받은 나라 중 하나다. 그런데 지금은 역사적 변곡점에 와 있다. 세계 정치‧경제의 판이 변하고 있다. 보호무역주의 강화도 그 중 하나다.”

보호무역주의가 강화되는 이유는?

“한 마디로 양극화 때문이다. 미국 상위 10% 납세자가 차지하는 소득 비중이 46%다. 또한 상위 1600명의 부자가 국민 전체 부의 90%를 소유하고 있다.(Ellen Ruppert, <The Job>) 제프 베이조스, 빌 게이츠, 워런 버핏 등 미국 3대 부자의 순자산 가치는 하위 1억3000만 명의 부와 동일하다.(Jared Diamond, <UPHEAVAL>) 경제‧사회 시스템이 양극화로 붕괴되면서 국내 갈등이 심해지니까 대외 관계 속에서 문제를 풀려고 한다. 이런 맥락 속에서 미중 무역 분쟁을 이해할 수 있다. 양극화 문제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전세계적 공통 현상이다. 일본이 이번에 한국을 공격하는 것도 일본 내 양극화 갈등에 따른 정치적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한국을 굴복 시키려 하는 것이다.”

양극화 해소의 방법이 보호무역주의만 있는 것은 아닐 텐데.

“양극화가 심화되면 두 가지 방향의 압력을 받게 된다. 하나는 ‘소셜리즘’이고 또 다른 하나는 ‘포퓰리즘’이다. 미국을 예로 들면 세금을 인상하는 샌더스 식 소셜리즘과 배타주의를 강화하는 트럼프 식 포퓰리즘을 들 수 있다. 엘리자베스 워런, 버니 샌더스 등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들은 양극화 해소 방안으로 세금 인상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은 국내 세금 인상이 아니라 해외에 청구서를 내밀고 있는 양상이다. 관세 장벽을 높여 ‘미국과 무역을 하려면 돈을 내’라고 하는 것이고, ‘그게 싫으면 미국 안에 와서 생산해’라고 하는 것이다. 또한 세계의 경찰 노릇을 해왔으나 한국, 일본, 나토 등 동맹국에 안보 개입을 줄일 수 있다고 협박 하면서 막대한 안보 비용을 청구하고 있다.”

아베 정권도 트럼프식 포퓰리즘을 따라 하는 건가?

“프리덤하우스의 자료를 바탕으로 블룸버그가 분석한 바에 따르면 G20 국가들의 GDP를 기준으로 2008년 금융위기 이전에는 G20 내에 전통적인 민주주의 국가가 차지하는 GDP 비중이 83%였는데, 2018년에는 32%까지 떨어졌다. 반면 포퓰리즘 국가의 GDP는 4%에서 41%로 급증했다. 미국, 브라질, 인도, 이탈리아 등이 포퓰리즘화 됐기 때문이다. 여기에 영국도 보리스 존슨 총리가 취임하면서 포퓰리즘화 돼 가고 있고, 일본 아베 정권이 하는 짓을 보면 포퓰리즘에 추가될 가능성도 있다. 포퓰리즘은 ‘배타적 애국주의’의 형태로 나타난다. 점점 더 많은 나라들이 애국주의를 고무시켜서 양극화 문제를 은폐하려 할 것이다. 트럼프의 배타주의는 이민자와 외국 모두를 향해 있는데, 일본은 단일민족 국가이기 때문에 아베의 배타주의는 ‘한국 때리기’와 같은 민족주의적인 애국주의로 나타날 것이다.”

신흥국 부를 빼앗아 미국 중하위층에게

트럼프가 대중 무역 분쟁을 통해 얻는 이익은 무엇인가?

“트럼프의 보호무역주의 강화에는 또 다른 목적이 있다. 브랑코 밀라노비치의 ‘코끼리 곡선’을 보면 알 수 있다. 미국과 같은 고소득 국가의 중하위층의 소득증가율은 계속 줄어든 반면, 중국과 같은 글로벌 신흥국 중산층의 소득증가율은 계속 높아졌다. 트럼프는 무역 장벽을 세우고 관세를 통해 신흥국 중산층의 부를 미국 중하위층에게 옮기겠다는 것이다. 지금 1차 타깃은 중국인데, 일본, 한국, 베트남 등 미국에 수출하는 거의 모든 나라에 비슷한 공격을 할 것이다.”

그 덕분에 지금 미국 경기가 호황인가?

“착시 현상이다. 미국 실업률이 역사상 최저라고 하는데, 미래 성장성을 보여주는 지표들은 대부분 하락하고 있다. 지금 미국에서 늘어나는 일자리도 대부분 저임금 불안정 노동 일자리이다. 구매력으로 볼 때 미국에서 시급 8달러면 공식 환율로는 우리나라에서 9600원이지만 물가 등을 감안하면 실질적으로는 5000원 정도에 불과하다. 이런 일자리가 늘어나는 걸 결코 양질의 일자리라고 볼 수 없다. 그래서 샌더스가 문제제기를 하니 아마존이 시급을 두 배 올리는 거다. 또한 보호무역주의가 계속 되면 미국 내 피로도가 높아질 것이다. 관세를 인상하면 처음에는 견딜만해도 비용이 소비자에게 누적되면 나중에 상당한 부담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미국이 미중 무역 분쟁을 지속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미국은 다차원적인 패권을 갖고 있었다. 미국의 패권을 세부적으로 민주주의, 군사력, 소프트파워, 과학기술, 기축통화, 금융자본의 독점, 원자재 독점, 세계화, 신자유주의 등 9가지라 보면, 이 중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는 흔들리고 있고 가장 중요한 핵심 패권이 기축통화와 과학기술이다. 중국 입장에서는 이 두 가지 패권을 장악해야 이길 수 있다. 그리고 미국이 위협을 느끼기 시작했다.”

미중 패권전쟁의 3가지 전선: 무역-과학기술-환율‧금리

중국이 이길 가능성이 있나?

“패권 대결의 3가지 핵심 전선은 첫째 무역전쟁, 둘째 과학기술전쟁, 셋째 금리와 환율 등 복합경제전쟁이다. 우선 무역전쟁부터 살펴보면, 지금은 미국이 관세 장벽을 높이면서 중국을 압박하고 있지만 지속 가능할지 의문이다. 미국의 수입품 중 중국산 의존도를 품목별로 보면 통신음향 장비의 59.4%, 컴퓨터 및 사무용품의 54.8%가 중국산이다. 신발, 가구도 50%가 넘는다. 미국이 울타리를 높게 쳐 두고 5년 후에는 이런 것들을 자체 생산할 수 있을까? 가격 경쟁력을 위해서는 히스패닉 등 저임금 이민자들이 필요한데 이들도 막고 있지 않나. 게다가 관세 인상 피로도가 점점 쌓이고 있다. 관세를 절반만 인상했는데도 미국 소비자 부담이 200억 달러 이상 늘었다. 이건 누적되는 것이기 때문에 오래 가기 어렵다. 특히 트럼프의 표밭인 농업 쪽 불만이 크다. 미국 경제가 좋아 보이는 것은 다른 나라들 보다 덜 나빠져서 상대적으로 좋아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내년 11월 미국 대선 전에 무역 전쟁은 어느 정도 완화될 거라고 본다.”

금융과 관련해서는 미국은 1985년 ‘플라자 합의’를 통해 일본과 독일을 굴복시킨 사례가 있다.

“플라자 합의 이후에 일본은 ‘잃어버린 30년’에 접어들었고, 독일은 통일까지 겹쳐 1990년대에 이른바 ‘독일병’으로 고생을 했다. 일본은 엔화 강세에 접어드니까 부동산 투기하고 수입 물가 싸지니 소비가 늘고 해외여행도 많이 가면서 국내 경기 침체에 버블만 키웠다. 그런데 당시 일본, 독일과 지금의 중국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첫째, 플라자 합의 당시 일본과 독일은 냉전 시대 미국 중심의 자유민주주의 진영 안에 있었다. 미국의 위기 해소를 위해 협조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했다. 중국은 그런 부채 의식이 없다. 둘째, 보호무역주의와 환율을 동시에 쓰기가 어렵다. 중국이 경제가 어려우니 미국 채권 매입 규모를 계속 줄이고 있다. 중국이 미국 채권을 팔면 위안화가 절상돼야 하는데, 오히려 떨어지고 있다. 그렇다고 절하하기도 쉽지 않다. 중국이 미국의 관세 25%를 상쇄하기 위해서는 위안화 환율이 달러당 7.93까지 가야 한다. 미국 입장에서는 보호무역의 효과가 없기 때문에 그대로 두지 않는다. 또한 중국은 국가가 환율을 통제한다. 천하의 조지 소로스도 위안화 공격했다 실패했다. 금리 전쟁도 쉽지 않다. 미국 중앙은행이 금리를 올리면 중국 기업들이 피해를 보겠지만 미국도 기본적으로 부동산과 주식 시장이 부채 경제이기 때문에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전투가 벌어지기 쉽지 않은 구조다.”

그렇다면 당분간 미국의 달러화 기축통화 패권에는 문제가 없나.

“미국이 구축한 세계 경제 지배 시스템을 이해해야 한다. 미국은 일본, 중국, 한국 등 외국에서 공산품을 수입하고 달러로 결제를 한다. 그럼 그 외국들은 미국 채권을 구입하는 등 달러 표시 자산에 예금을 한다. 미국은 그 달러를 받아 해외 자산에 투자를 한다. 이와 같이 글로벌 불균형 체제를 통해 달러를 기축통화로 만들었다. 이 기축통화 패권 시스템은 당장은 문제없어 보인다. 이게 무너지면 우리나라는 정말 큰 일이 난다. 10년 전 미국발 금융위기 때 중국이 고속성장 하면서 위안화가 기축통화로 떠오를 거라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웃기는 얘기였다. 위안화의 위상은 그 후 계속 약화됐다. 문제는 과학기술전쟁이다.”

중국의 과학기술이 미국을 위협하는 수준인가.

“중국의 과학기술력이 빠르게 올라오고 있다. 상위 500대 수퍼컴퓨터 보유 대수를 보면 중국이 219대를 갖고 있고 미국은 116대다. 미국의 F-35스텔스 전투기에 맞서는 J-31 전투기를 만들었다. 뉴스위크의 보도에 따르면 중국이 애플과 아마존의 서버에 스파이 칩을 심었다고 한다. 요즘 군사력에서 과학기술이 차지하는 비중이 날로 높아지고 있다. 과거 냉전 시대에는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경쟁을 벌였는데, 서로 요격 미사일 시스템을 제한하도록 합의(ABM조약)해 ‘공포의 균형’이 유지됐다. 그러나 미국이 이를 파기해버렸다. 미사일 요격에 자신감이 생겼기 때문이다. 패트리어트, 사드 등의 요격 시스템을 만들었다. 그러자 러시아나 중국은 음속의 16배의 속도로 날아가는 미사일, 하강 시에 회피기동을 하는 미사일 등을 개발하며 요격 시스템을 무력화 하고 있다. 앞으로는 과학기술이 군사력을, 나아가 정치력을 규정하게 될 것이다. 미국은 중국이 과학기술을 훔쳐가고 있다고 본다. 그래서 중국 유학생의 비자도 제한하고, 중국이 미국 첨단과학기술 회사에 투자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특히 화웨이 문제가 첨예하다. 미국은 ‘FAANG(Facebook, Amazon, Apple, Netflix, Google)’과 같은 기업들을 통해 네트워크 권력을 쥐고 있다. 마음만 먹으면 전세계를 감시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앞으로 사물인터넷(IoT)시대가 돼서 초연결의 사회에 진입하게 되는데, 화웨이가 가성비를 무기로 시장을 장악하면 미국은 네트워크 권력을 빼앗기게 된다. 미국 입장에서는 도저히 그냥 둘 수 없는 것이다.”

아베는 왜?

그런데 일본 아베 정권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아베 입장에서는 환율에 목숨을 걸 수밖에 없다. 아베 총리 취임 전에 환율이 달러당 80엔 수준이었다. 아베가 취임 후 돈을 막 뿌려서 120엔 까지 갔다. 지금 110엔 수준인데, 우리나라로 치면 1180원 하는 환율이 1500원, 1600원까지 가고 있다는 얘기다. 일본은 엔화 약세를 유지하면서 수출 경쟁력을 유지해 근근이 버티고 있다. 그래서 아베 총리가 굴욕적이라고 보일 정도로 트럼프 대통령에게 온갖 아부를 떠는 것이다. 환율에 의한 이득이 크기 때문에 생존을 위해서는 일본은 미국에 바짝 붙어 있어야 한다.”

일본도 상황이 어려운데 한국과 무역전쟁을 일으킨 이유가 뭘까?

“아베 정권이 참의원 선거 승리 등 정치적 목적을 위해 배타적 애국주의를 고무 시킨 것이고, 더불어 경제 분야에서 한국 추격의 싹을 꺾어야겠다는 의도도 있을 것이다. 2010년 중국과 일본 사이에 조어도(日센카쿠열도 中댜오위다오) 분쟁이 있었다. 당시 중국이 일본에 희토류 수출을 금지하고 일본이 부품소재 제재를 가하는 등 무역 갈등으로 번졌다. 이 때 중국의 일본 부품 수입 증가율이 2년 만에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이후 중국의 일본산 부품소재 수입 의존도가 2010년 16%대에서 2016년 12%대로 줄어들었다. 한국의 경우를 보면, 대일본 무역수지 적자가 계속 커지다가 2010년을 기점으로 줄어드는 추세다. 부품과 소재 중 부품 자립도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직 정밀화학 같은 소재 부문은 일본에 많이 뒤쳐져 있다. 일본 입장에서는 더 쫓아오기 전에 싹을 잘라 한국이라는 큰 수출 시장을 유지하고 싶었을 것이다. 현재의 갈등이 정치적으로 해결되더라도 한국 기업들은 부품‧소재 자립 및 공급원 다변화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일본 때문에 미중 무역 분쟁이 잠깐 시야에서 사라졌다. 미중 무역 분쟁이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한일 갈등이 뜨겁긴 하지만 여기에만 매몰돼 시야가 좁아지면 안 된다. 더 넓은 시야를 갖고 세계 질서의 판이 완전히 바뀌고 있음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과 중국 외의 국가들의 힘이 세다면 각자도생 하는 완전 분열의 시대이겠지만, 미국과 중국의 힘이 월등한 상황에서 이 두 나라가 갈등 상황에 놓이면 나머지 나라들은 선택을 강요받는 상황이 되고 있다. ‘냉전 2.0’이라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한국 경제 구조는 냉전 시대에 만들어진 낡은 시스템이다. 미국 중심 진영의 보호 속에 자유 무역의 혜택을 누려왔다. 따라서 보호무역주의가 강화되는 현재의 변화에 아주 취약한 시스템이다. 특히 우리 경제의 중국 의존도가 높다. 한국의 중국 수출 비중이 홍콩과 대만을 더하면 31% 정도 되는데 이게 전부가 아니다. 원자재 생산국인 브라질, 아르헨티나, 호주, 뉴질랜드, 중동, 아프리카 등 우리의 주요 교역 상대국들이 모두 중국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아세안 등 동남아 경제도 궁극적으로 중국과 연결되어 있다. 중국 경제가 무너지면 원자재 생산국과 동남아 국가들의 경제도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이들 나라까지 더하면 우리 수출에서 차지하는 중국 비중이 60~70%정도 된다고 볼 수도 있다. 중국 경제가 무너지면 원자재 생산국들의 경제도 무너지고 우리 경제도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외국에서는 한국을 중국 경제와 한 묶음으로 보고 있다. 그래서 한국 시장 환율과 금리의 방향성이 중국과 똑같이 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 망해라’며 중국을 맹목적으로 적대시 하는 사람들을 보면 한심하다. 현실을 냉철하게 인식해야 장기적 관점의 대책을 세울 수 있다.”

역사적 변곡점, 시대정신이 필요하다

미중 무역 분쟁은 언제까지 지속될까?

“과거 정경분리가 금과옥조로 여겨지던 신자유주의 시대가 끝나고 지금은 보호무역주의가 우세한 정경융합의 시대다. 그러나 보호무역을 통한 승자 독식이 불가능하다. 지금 세계는 글로벌 분업에 의해 상호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중국은 수출의 43%를 외자기업이 담당하고 있다. 중국은 담을 쌓으면 당장 43%가 쪼그라들게 돼 있다. 중국은 수출을 해서 경제성장률을 유지하지 않으면 정권 자체가 위험해진다. 성장이 멈추는 순간 망가지는 나라다. 미국도 사정이 호락호락하지 않다. 예를 들어 아이폰을 뜯어보자. 디스플레이는 한국, AP와 센서는 미국‧영국‧스위스, 통신 부품은 미국, 메모리는 한국‧일본, 조립과 배터리는 중국 등 전세계가 함께 만들고 있다. 거의 모든 상품이 글로벌 분업에 의해 생산이 된다. 단순히 연결돼 있는 게 아니라 상호의존적 연결이다. 어느 한 쪽이 무너지면 공멸의 길로 간다. 미국 또한 재정, 고령화 등의 문제를 안고 있기 때문에 자기 파괴적 분쟁을 장기간 이어가기 어려울 것이다. 결국 현재의 갈등 체제는 10년 정도 갈 것이라고 본다.”

기업들은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나.

“패권 대결의 세 가지 전선 중 무역전쟁은 협상에 의해 완화될 것이고, 복합경제(환율, 금리)전쟁은 중립적으로 보면 된다. 과학기술전쟁이 계속 확산될 것이다. 우리가 준비해야할 것은 자생력이다. 부품‧소재 등 수요품을 자체 개발하거나 다변화해야 한다. 서로 이해관계가 맞는 나라들끼리 연합할 필요도 있다. 관세와 특허 장벽을 뛰어 넘기 위한 창의적인 제품도 개발해야 하고, 글로벌 규제에 대한 대비도 필요하다. 이번 코오롱 인보사 사태도 미국 FDA발로 드러났다. 배기가스 등 국제적인 환경 규제도 더 강화될 것이다. 국제 규제를 기업들이 대충 넘어가서는 안 된다.

정부와 정치권에서는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

“지금은 역사적인 변환기임을 엄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우리가 신자유주의적 자유무역 환경 속에서 고도성장을 해온 것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다. 그 시대에는 가장 효율적인 방식이었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었다. 수축사회에 진입하면서 저성장 국면에 접어들었는데 보호무역주의 강화 추세 때문에 교역량도 줄어들고 있다. 신자유주의 시대에는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지 않는 것이 미덕이었는데 지금은 장기적인 비전과 전략을 세우고 경제와 산업에 체계적으로 개입해야 한다. 나라마다 보호무역주의를 강화하고 있는데 남 탓이나 하고 있으면 안 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에 비해 정부의 시장 개입에 우호적인 분위기가 있는 나라라는 점이다. 정책의 지속성을 위해 상대 정파라도 비전을 공유한다면 과감하게 영입도 해야 한다. 리더 그룹이 현실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멀리 봐야 한다. 어느 때보다 시대정신이 필요한 때다.”

인터뷰: 김하영 / 피렌체의 식탁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