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S President Donald Trump (C), Japanese Prime Minister Shinzo Abe (R) and South Korean President Moon Jae-in pose for photos before attending the Northeast Asia Security Dinner at the US Consulate General Hamburg on the sidelines of the G20 Summit in Hamburg, Germany, July 6, 2017. Leaders of the world's top economies will gather from July 7 to 8, 2017 in Germany for likely the stormiest G20 summit in years, with disagreements ranging from wars to climate change and global trade. / AFP PHOTO / SAUL LOEB (Photo credit should read SAUL LOEB/AFP/Getty Images)

일본 아베 신조 정권이 첨단 산업 부품.소재의 우월적 지위를 바탕으로 한국에 대한 노골적인 압박을 개시했다. 한국은 이를 어떻게 해석하고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한승동 피렌체의 식탁 편집인은 전혀 위축될 필요가 없다고 충고한다. '징용공' 문제 제기에 대한 역사적 정당성에서 우위에 있고, 일본 내에서도 식민지배와 전범기업의 관계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있다. 무엇보다 미중 무역 분쟁이라는 지정학적 구도에서도 일본은 한국과 소원해져 유리할 게 없다. '샌프란시스코 체제'라는 미국의 우산 아래에서 번영을 이뤄온 일본에게 이 점은 치명적 약점이기도 하다. 이번 갈등의 역사적 맥락과 국제정세를 동시에 살펴봤다. [편집자]

미쓰비시는 옛 식민주의시대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일제(日帝)의 중추로 기능했으며, 장사(사업)의 가면 뒤에서 송장 고기(死肉)를 먹어치우는 일제의 중심 기둥이다. 이번 다이아몬드 작전은 미쓰비시를 보스로 둔 일제의 침략기업・식민자에 대한 공격이다. ‘(, 늑대. 훈독으로는 오오카미. 동아시아 반일무장전선의 조직)’의 폭탄에 폭사하거나 부상당한 인간은같은 노동자무관한 일반시민도 아니다. 그들은 일제 중추에 기생하면서 식민주의에 참여하고, 식민지 인민의 피로 비대해진 식민자들이다. ‘는 일제 중추지구를 끊임없는 전장으로 만들 것이다. 전사를 두려워하지 않는 일제의 기생충 외에는 신속히 그 지구에서 철수하라. ‘는 일제 본국 내, 그리고 세계의 반일제 투쟁에 떨쳐 일어서고 있는 인민에 의거해 일제의 정치・경제 중추부를 서서히 침식해서 파괴할 것이다. 또한신대동아공영권을 향해 또다시 책동하는 제국주의자=식민주의자를 처형할 것이다. 최후로 미쓰비시를 보스로 삼은 일제의 침략기업・식민자들에게 경고한다. 해외 활동을 전면 중지하라. 해외자산을 정리하고, ‘발전도상국에 있는 자산은 모두 포기하라.”(일본 좌익급진세력동아시아 반일무장전선의 성명, 1974)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소재부품과 관련한 아베 신조 정권의 한국 제재로 인한한일 무역전쟁의 끝은 어떻게 될까? 여러 가지 손익을 꼼꼼히 계산한 뒤 회심의 일격을 날린 아베 정권이 초전에 기선을 제압한 듯 보인다. 하지만 마지막까지일본 승리를 구가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좀 더 과감하게 예측하자면, 일본에게 결코 낙관적이지 않다. 오히려 그 반대일 수도 있다.

아베 정권이 여러 부작용을 예상하면서도 미쓰비시중공업 등에서 강제노역을 당한 징용공 재판과 관련한 한일간 갈등을 기화로 한국 제재에 나선 제1차적 이유는 이번 달 21일로 예정된 참의원선거다. 아베 정권은 이번 참의원 선거에서 압승을 거둬야 한다. 그래야 개헌을 정점으로 한 아베 정권의 모든 정치적 어젠다가 살고 정권기반도 다질 수 있다. 거꾸로 얘기하면, 압승을 하지 못하거나 신통찮은 성적을 거둘 경우 자민-공명당 연립정권의 정치적 어젠다는 물론 2012 12월 제2차 집권 이후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아베 정권의 존립 자체가 위태로워질 수도 있다.

2006 9월에서 2007 8월 말까지 1년 정도 이어진 아베의 제1차 집권이 무너진 것도 그해 7 29일 치러진 참의원선거에서 자민당이 과반수를 잃는 참패가 주요 원인이었다. 그때 자민당 참패에 큰 영향을 준 것이 그 무렵 발생한, 공적 연금 가입자들 납부기록 전산화 과정에서 그 기록이 대거 누락된 사건이다. 그 사실이 들통 나면서사라진 연금에 대한 일본사회의 비판여론이 들끓었고, 아베 정권 지지율을 더욱 끌어내렸다. 아베는 어쩌면 그때의악몽이 이번 참의원선거에서도 비슷하게 되풀이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보도로 잘 알려져 있듯이 모리토모 학원, 가케 학원 등 아베와 가까운 사설학원들의 파격적 토지불하 등 특혜 의혹들이 불거졌고 그것을 은폐하고 얼버무리기 위해 재무성 등 담당 정부부처가 관련 공문서들을 몰래 개작한 사실까지 드러났다. 측근들의 여성비하 발언이나 아베 표 모으기에 유리한 지역사업을알아서허가해준 고위관료의손타쿠사건 등 여러 부패사건들도 계속 불거졌다. 잘 나간다고 했던아베노믹스’ 6년 기간에도 대기업 등을 제외한 전체 임금노동자들의 실질소득은 늘기는커녕 오히려 줄었다는 사실이 통계수치로도 입증됐고, 미중무역전쟁의 여파 속에 수출이 크게 줄어드는 등 대규모 완화(국채 발행 등을 통한 돈 뿌리기)에 토대를 둔 아베노믹스 자체의 성과에 대한 회의도 커지고 있다. 게다가 공적 연금만으로도 노후생활은 보장된다고 했던 아베의 큰소리가 노후 30년을 제대로 보내려면 2000만 엔(2억여 원)이 부족하다는 사실이 정부기관 자체의 조사결과 드러났고, 그 사실마저 의도적으로 숨겼다는 의혹까지 불거졌다. 그런 여러 이유로 아베 정권 지지율은 6월 중순 이후 초순의 48%보다 6%포인트나 떨어진 42%로 급락했다.(<NHK> 6 24일 방송)

북한 못 때리니 한국 때리기

예전엔 정치적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곧잘 일본인 납치문제, 북의 호전성과 전쟁도발 가능성을 부각시키면서 지지율을 끌어올렸던 아베 정권은, 지난해와 올해 북미 정상회담 이후 북과의 무조건 대화 쪽으로 대북정책을 선회하면서 대신한국 때리기로 시종해 왔다. 문재인 정부 등장 자체를 친북좌파라는 철지난 이데올로기 공세를 펴며 극도로 경계하던 아베 정권은 한일 정부간위안부합의 사실상 파기, 특히 한국 대법원의 징용공 판결 이후 해상 자위대 초계기 레이더 조준 시비, 후쿠시마 원전사고 관련 일본산 수산물 수입금지 WTO 심의 패소 등을 거치며 한국 때리기 강도를 높여왔다. 이번 소재부품 관련 한국 제재는 그 연장선상에 있다. 여기에는 징용공 재판 등 과거사문제와 관련해 70%가 넘는다는 일본인들의 아베 정권 정책 지지율이 배경에 깔려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에 단호한 태도를 보일수록 지지율이 올라갈 것이고, 그것은 참의원선거 승패까지 가를 수 있다는 계산을 아베 정부는 했을 것이다. G20 오사카회의 직후 남북미 세 정상의 사상 첫 판문점 회동에 맞춰 제재 발표를 한 것도, 한반도 긴장 완화가 불러올 정치적 마이너스 효과와 그 프로세스에서 일본만 소외당하고 있다는 아베 정권외교 치적의 치명적 결함 부분을 일본국민들 시야에서 일시적으로 차단하려는 계산 끝에 나온 일종의작전내지 정치공작이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아베 정권은 한일 무역전쟁 초반전에서 이런 노림수들에서 일단 소기의 성과를 거둘 공산이 크다. 하지만 그 초반전 승기가 그대로 계속 이어질 수 있을까? 전망은 부정적이다.

일본이 한국 제재로 얻는 것 이상으로 잃는 것도 많을 것이라는 점을 우선 꼽을 수 있을 것이다. 한국으로부터의 직간접적인 반격과 그로 인한 일본의 손실을 먼저 생각할 수 있다. 그 손실은 한국 정부쪽의 대응제재로 인한 것일 수도 있고, 기업 또는 민간의 불매운동, 더 길게는 일본과 일본제품에 대한 부정적 관념 확산에 따른 중장기적 손실일 수도 있다. 정치적 알력에도 불구하고 연간 750만을 넘긴 한국인 일본관광객 급증(일본인 한국관광객은 지난해 295), 일본의 제3차 한류붐 등에서 보듯 증대 일로의 양국간 민간 차원 교류나 교역도 한일 무역전쟁이 본격화할 경우 악영향을 피할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일본이 칼을 빼들었기 때문에, 이제까지 미국이 주도한 2차대전 이후의 동아시아 질서가 보장해 주었던 한국 핵심산업의 대일 의존체제가 흔들리면서 장기적으로 한국산업 및 한국의 탈일본화가 진행될 수밖에 없게 됐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글로벌화 이후 거의 모든 분야가 그렇지만, 특히 반도체 등 첨단산업 분야는 그 제조공급망과 수요가 국경을 떠나 전 세계적 차원에서 철저히 수평분업화돼 있기 때문에 그것을 교란하는 아베 정권의 이번 조치가 부를 부정적 파장도 클 것이다. 특정 국가별로 특화돼 있는 기술이나 공정에 문제가 발생할 경우 공급·수요망 자체가 경색되고 연쇄적인 차질을 빚으면서 글로벌 산업 전체의 전면적인 침체나 파국을 부를 수 있다고 각국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아베 정권은 그것을 알면서도 정치적 단기효과를 노려, 그리고 중국 등 외부에서 지적하듯 일본을 추월할 기세의 한국 반도체산업 자체의 성장을 저지하고 한국을 공급·수요망의 선두그룹에서 아예 배제시키기 위한 더 칙칙한 목적으로 상대적 약자인 한국을 골라 때렸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자유·공정·무차별의 교역을 선언한 G20 정상회의 의장국이 선언 불과 며칠 뒤에 그것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얄팍한 조치를 취한 것은 분명 일본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다. 지금이 1907년의헤이그 밀사사건때와 같은 세상도 아닌데, 아베 정권은 제국주의 열강들끼리 모여평화를 자기들 마음대로 재단하며 피식민 약소국 대표들을 문전박대할 수 있었던 시절로 착각한 것인가. 아베 정권이 한국과 한국 정부를 너무 얕보고 있다는 일본 안팎의 지적들이 나오고 있다. 지금은 한국과 중국을 일방적으로 소외시키고 미국과 일본이 전후 처리와 새 질서 수립을 자신들 마음대로 할 수 있었던 1951년의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시절도 아니다.

아베는 결국 후퇴할 것이다

하지만 일본에겐 이런 모든 것들보다 더 치명타가 될 수 있는 약점이 있다. 그 약점 때문에라도 아베 정권은 막상 제재 조치를 끝까지 실행에 옮기기 어려울 것이다

앞서 잠시 언급했듯이, 일본이 제재의 칼을 빼든 상황에서 한국이 취할 수 있는 길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당장의 약세를 인정하고 머리를 조아림으로써 예전과 같은 일본의은혜를 계속 누리는 백기투항이다. 다른 하나는 맞대응하며 싸우는 것이다. 이도 저도 아닌 제3자 개입에 의한 중간의 어정쩡한 타협책도 있을 수 있지만, 그것조차 한국이 맞서 싸우지 않는 한 확보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한국은 어차피 맞서 싸울 수밖에 없다.

아베 정부가 한국 제재 칼을 빼들었다는 것은, 그 결과가 어찌되든 앞으로 일본이 정치적 필요에 따라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한국에 대해 아프거나 치명적일 수 있는 유사한 조치를 발동할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이번의 경우처럼 그런 일본에게 핵심 소재·부품을 의존해 온 기업들은 대안을 모색할 수밖에 없다. 자체 개발을 하든지 일본 외의 다른 공급망을 찾아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생사여탈권을 일본에게 맡기겠다는 것과 같다.

이 부분이 일본 전문가들이 가장 우려하는 부분일 수 있다. 한국 반도체 기업이 일본 소재부품에 많이 의존해 온 것은 일본의 기술 우위 탓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국제분업체제가 보장해 준 각자의 비교우위를 활용한 수평적 공급망을 통해 서로 이득을 보는 윈윈체제가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컨대 한국 기업이 첨단 화학공정을 자체 개발하거나 다른 대안 공급체제를 모색하지 않은 것은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며, 그것이 가장 싸고 안전한 이상 대안 찾기에 막대한 비용을 들일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베 정권의 이번 조치로 그 체제가 흔들렸고, 특히 한일관계에서 이제 다시는 과거로 돌아가기 어려운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면, 한국으로서는 싫어도 비용이 더 많이 들어도 다른 길을 찾을 수밖에 없게 된다. 당장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그렇게 갈 수밖에 없다. 이제 더는 정치적 필요에 따라 급소를 치고 들어오는 일본을 믿을 없게 된 것이다. 그러면 일본의 부품소재 산업도 위축되고 비교우위가 사라지면서 돌이킬 수 없는 손실을 보게 될 수 있다. 지금 체제를 유지하면 적당한 기술 우위를 유지하면서 상대가 추격할 마음을 먹지 않게 하면서 안정적이고 양호한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신뢰에 바탕을 둔 구조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아베 정권은 스스로 죽이는 선택을 한 결과가 될 수 있다. 일본 업계와 전문가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 중의 하나는 이것이 아닐까.

한일간의 알력 심화와 한국의 탈일본 움직임은 2차대전 뒤 미국이 주도한샌프란시스코 체제하에서 그 체제의 근간인 미일 안보동맹과 그것을 떠받치는 한미동맹, 그리고 한미일 삼각 안보공조체제의 동요로 직결될 것이다. 미국이 이를 방치할까.

오바마 정권 때의 아시아 중시정책으로의 회귀(Pivot to Asia)도 그러했지만, 거대 중국의 등장이라는 정세급변 속에서, 미국은 냉전 붕괴와 동아시아 국가들의 부상(일본의 상대적 지위 약화) 등으로 수명을 다해 가는 샌프란시스코 체제를 재강화하면서 호주와 인도까지 끌어들여중국 봉쇄에 매진하고 있다. 미중 무역전쟁도 이 장기 헤게모니 쟁투에서 터져 나온 파열음이다. 이른바투기디데스의 함정에 빠질지 여부는 두고 봐야겠지만 두 나라는 총성 없는 장기 전쟁에 이미 돌입했다.

더이상일본을 위한 한국은 없다

징용공 판결에 따른 이번 한일간 알력사태처럼 지금까지도 그 후유증을 심하게 앓고 있는 1965년 한일협정과 2015년 박근혜-아베 신조 정권간의위안부 문제 12·28합의같은 사례들에서 보듯, 미국은 미일동맹과 한미일 삼각공조를 위한 한일 유착이 필요할 경우 늘 일본을 중심에 두고 한국을 으르고(협박) 달래는 방책으로 일관해 왔다. 미국의 절대적 지원 속에 미국의 이익에 절대적으로 복무한 한국의 역대 권위주의 정권들은 그런 미국의 방책에 맹종했다. 하지만 1987 6월항쟁을 정점으로 한 민주화운동과 연이은 민주정부의 등장으로 사정은 달라졌으며, ‘촛불시위로 권위주의 정권을 몰아낸 시민혁명으로 집권한 문재인 정권 등장으로 그런 추세는 그야말로 불가역적인 시대가 됐다. 한국 중국의 성장과 일본의 상대적 약화도 빠질 수 없는 요인이다. 한국은 한일협정이나 12·28합의 때처럼(아니 1905년의가쓰라-태프트 밀약이래) 미일동맹과 한미일공조(나아가 한일 군사동맹까지)를 요구한 미국의 압박에 고분고분 머리를 숙이며일본을 위한한국이기를 더는 용인하지 않을 것이다. 용인할 필요도 없고 용인할 수도 없는 세상이 됐다. 한국은 여전히 상대적으로 약하고 국토가 분단까지 돼 있는 취약점을 안고 있지만, ‘일본을 위한한국을 거부할 수 있는 힘이 있고 거부해야만 하는 사정을 안고 있다. 아베와 차기 대권까지 노린다는 스가 요시히데 등 아베 정권 수뇌부는 그런 한국과 한국 정부를 불편해 하고빨갱이라는 시대착오적인 이데올로기 공세까지 펴면서 거의비열하다고 할 정도의 태도로 혐오하고 비방해 왔다. 한국의 탈일본은 한미일공조의 파탄, 미일동맹의 동요, 나아가 샌프란시스코체제의 해체를 촉발할 수도 있다. 아마도 이게 미국이 가장 걱정하는 점이 아닐까. 한국에게는 그만큼 예전보다 선택지가 많아졌다고도 할 수 있다.

게다가 미국은 삼성 등 아베 정권이 겨냥한 제제 대상인 한국 대기업들에 직접적인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 미국 자본이 많은 지분을 갖고 있는 삼성은 한국의 기업이라기보다 초국경의 다국적 기업에 가깝다. 일본의 제재로 인한 삼성 등의 손실은 글로벌 공급망으로 얽힌 애플, 구글, 퀄컴 등 미국에 본사를 둔 거대 다국적기업들에게도 막대한 손실을 안겨 줄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의 독주를 미국이 예전처럼 그냥 눈감아 주거나 지지할 수 있을까. 아베 정부는 그런 점을 미리 계산해아부하고아첨한다는 세상의 모욕까지 감수하면서 노골적으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호감을 사려 애썼다. 댜오위다오(센카쿠 열도) 사태 이후 한때 견원지간이던 중국 시진핑체제와도 손을 잡고, 심지어 북 때리기도 중단했다. 일본의 이런 움직임은 참의원선거 직후로 미뤄 놓은 미국과의 무역협상(사실상의 FTA 협정)을 염두에 둔 것이기도 하다. 미국과의 무역협상에서 아베 정권은 일제 자동차 관세 인상, 방위비 분담금(미군 지원비) 증대 외에 일본 농산물시장 개방이라는, 자민당 정권 지지기반을 흔들 수 있는 중대 사안에서 일정한 양보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트럼프 방일 때 이미 약속한 것으로 보인다) 그럴수록 힘 센 미국에게 빼앗기는 점수를 상대적 약자인 한국 때리기로 벌충해야 할 처지라고 해야 할까.

여전히 샌프란시스코체제의 보스 지위를 유지하고 있는 미국이 그런 계산을 하고 있는 일본의 위험한 독주를 지원하거나 묵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아메리카 퍼스트를 부르짖기에 이른 미국 자신이 그로 인한 부작용들을 떠안고 갈 만한 여유가 없다. 한국이 자신의 태도를 분명히 하면서 부당한 조치에 맞서겠다는 결의를 보이는 한 미국이 과거처럼일본을 위한 한국이기를 더는 강요할 수 없는 시대가 됐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자신을 지켜주지 못하는 샌프란시스코체제를 한국이 계속 감수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게다가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처럼 3층 구조로 된 세계의 맨 밑바닥 계급역할을 한국에 떠맡긴 샌프란시스코 체제 자체가 힘에 의해 지탱돼 왔을 뿐, 원천적으로 정당성이 없는 마당에

아직처리되지 않은 전범 기업들의 범죄

서두에서 인용한 1974동아시아 반일무장전선의 성명을 인용하면서 일본 정치학·사회사상 연구자 시라이 사토시白井는 저서 <국체론>에서 이런 해설을 달았다.

그들의 주장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대일본제국의 제국주의는 패전으로 타격을 받았지만 그 죄의 청산과 보상의무를 모호하게 얼버무렸다. 그것은 미일 안보체제의 비호 아래 부활했고, 예전의 식민지제국의 판도 내에서 다시 그 인민과 자원을 착취하고 있다. 전후 일본의 경제적 발전은 바로 그 (착취의) 성과에 지나지 않는다.

(“미쓰비시가 곧 국가라는 의식을 갖고 있던) 미쓰비시 중공업이나 미쓰이 물산이 표적이 된 것은 그들 재벌자본이 메이지유신 이래 일본판 군산복합체의 중핵을 차지하는 기업이고, 저 전쟁을 일으켜 이익을 본 책임을 물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무사히 다치지 않고 살아남았으며, 전후에도 또한 일본자본주의의 중핵적 기업 그룹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또 제네콘(대형건설) 기업들이 다수 표적이 된 것은 그들 건설업자가 아시아로 다시 진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전시 중에 하나오카 사건(花岡事件)을 일으킨 가시마(鹿島)건설로 대표되듯 식민지 주민이나 포로의 노예적 사역, 때로는 학살을 자행하면서 그 책임을 회피해 온 일본기업의 대표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전후 일본은세계 제국주의의 중추에 자리잡은제국주의국가이고, 그 주민은 설사 소시민이라 해도일제 중추에 기생하고 식민지주의에 참여했으며, 식민지 인민의 피로 비대해진 식민자이므로, 자신들의 폭탄에 살상당하더라도 무고한 희생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아베 정권의 한국에 대한 무역제재가 정치·경제외적으로도 부도덕하고 불순한 것은 이 좌익급진세력의 성명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내부 노선투쟁을 벌이며 동료들을 집단살해한아사마 산장사건 등으로 자멸한 연합적군 등 일본 신좌익의 오류를 비판하면서도 그것을 닮아간동아시아 무장반일전선의 폭력적 범죄행위가 정당화될 순 없겠지만, 그들이 처절하게 저항했던 일본 자본주의의 실상과 범죄행위에 대한 첨예한 인식은 지금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한국징용피해자들이 평생 용서하지 못했던 미쓰비시와 일본제철 등의 일본 전범기업들, 아베 정부가 한국과의 무역전쟁까지 불사하며 보호하려는 그 기업들은 어떤 기업이었던가.

반일무장전선이 애초에 노렸던 것은 미쓰비시 중공업이 아니라 쇼와(히로히토) 천황이었다. 그들은 그때 천황이 탄 열차를 철교 위에서 폭파하고 암살하는 테러(‘무지개 작전’)을 기획했다가 실패하자 그때 만들어 둔 폭탄을 미쓰비시중공업 폭파에 썼다. 그들에게 쇼와 천황은 예전 대일본제국의 제국주의 상징임과 동시에 전후에도 군림함으로써 재건된 일본 제국주의의 상징이었다. 그것을 살해하는 것은일제의 역사, 일제의 구조 총체에 대해뒷처리를 하는으로 인식됐다.

미쓰비시 중공업 폭파사건으로 통행인을 포함해 8명이 사망했으며, 350명 이상이 다쳤다. 1995년 옴 진리교의 도쿄 지하철 독(사린)가스 테러사건이 일어날 때까지 그것은 전후 일본 최대의 피해를 낸 테러사건이었다.

그들은 체포당할 때까지 미쓰비시 외에 미쓰이 물산, 데이진(帝人), 다이세이(大成)건설, 가시마(鹿島)건설, 하자마구미(間組), 오리엔탈 메탈 등 모두 6개사의 본사나 관련시설 등을 공격했다.

위 성명에 나오는하나오카 사건 1945 6 30, 일본 북부 아키타현 기타아키타군 하나오카쵸의 하나오카 광산에서 중국인 노동자들이 가혹한 노동과 굶주림을 견디지 못해 봉기했다가 대거 학살당한 참혹한 사건이다. 당시 가시마 건설이 모집해 광산에 투입한 중국인은 1944 7월 이후 986명이었으며, 그 중에서 1945 6월까지 137명이 사망했다. 그 달 30일 밤 800명이 봉기해 일본인 보도원 4명 등을 살해하고 도망가려 했으나, 7 1일 헌병과 경찰, 경방단이 출동해 구타, 고문 등으로 419명을 죽였다. 주검들은 그 뒤 10일간 방치된 끝에 역시 징용당한 조선인들 손에 의해 묻혔다. 그 뒤에도 7월에 100, 8월에 49, 심지어 일본이 항복한 뒤인 9월에도 68, 10월에 51명이 사망했다.

가시마 건설은 한국의 징용 피해자들이 일본기업에 손해배상을 요구한 15건의 소송에서 가해 기업으로 지목된 70여 개의 일본 기업 가운데 하나다

기타규슈의 아소(麻生)탄광에서도 1932 7월에 대규모 봉기가 일어났고 그 주역은 조선인 징용 피해자들이었다. 지금 일본 재무대신이자 부총리이며 아베 총리의 정치적 동지로 제2인자라고 할 수 있는 아소 다로麻生太가 바로 그 탄광으로 큰 돈을 번 아소 시멘트 등의 아소 재벌 계승자다. 탄광은 전시 중의 일제에게 중요한 산업이어서 헌병들이 배치돼 있었으나, 그해 7 25일 대규모 노동쟁의가 일어나 탄광이 있던 후쿠오카현의 지쿠호(筑豊) 지역 전체로 퍼져나갔다. 당시 그 지역에는 조선인 탄광노동자와 그들과 비슷한 처지의 피차별부락민들이 미쓰비시 계열 탄광에서 가장 많이 있었고 그 다음으로 아소탄광에 많았다.

당시 아소 탄광은 위험하고 고된 노동에도 불구하고 임금을 인근의 다른 탄광의 절반 정도밖에 주지 않았으며, 조선인 노동자들에게는 거기서 다시 20%를 깎고 주었다. 식사나 주거 조건 등 생활환경도 최악이었고, 폭력이 일상다반사로 일어났으며, 조선인 노동자들에게는 아예 휴일도 주지 않았다. 봉기가 일어나자 일제는 경찰과 폭력단원, 특별고등경찰(특고)를 동원해 9 3일에 진압을 끝냈다. 1939년 무렵 아소탄광에는 1000여 명의 조선인 노동자들이 있었는데, 다이나마이트 폭파 등의 위험한 작업으로 하루에 1~2명씩 죽어나갔다. 1940년대 이후에는 조선인 노동자들이 크게 늘었으나 임금도 제대로 주지 않았고 열악한 환경에 일상적인 폭력 때문에 1944년 후쿠오카 현이 작성한이입 반도인(조선인) 노동자에 관한 조사표에 따르면, 아소 광업 전체 노동자 7996명 가운데 61.5% 4919명이 일터에서 도망쳤다. 당시 아소 탄광에는 약 300명의 연합군 포로들도 강제노역을 했다. 2009 4, 동료 2명이 사망하는 등 탄광에서 피해를 당한 호주인 3명이 당시 총리였던 아소 다로에게 사죄와 보상을 요구했다.

일본 최대의 조강생산능력을 지닌 일본제철의 전신은 메이지 시대인 1901년에 설립된 관영 야하타(八幡) 제철소인데 또 다른 재벌인 스미토모 금속과 합병해 신일철주금이 됐고 올해 4월부터 다시 일본제철로 상호를 바꿨다. 야하타 제철은 2차대전 때 일본 철강생산량의 절반 이상을 제조했다.

정치권력 거머쥔 일본 전범의 후예들

조선인들에게 강제노역을 시키고도 약속했던 노예적 임금마저 제대로 주지 않은 그들은 단 한 번 진심으로 사과한 적도 없이, 1965년 미국의 종용 아래 한일 정부 당국자들끼리 합의한 협정으로 그 모든 문제들이 해결됐다고 주장한다. 외부세력의 개입 하에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세력과 정치적으로 타결한 합의는 시대변화에 따라 폐기되거나 재조정돼야 하며, 과거보다 더 나은 방향으로 다시 합의하는 게 발전적이고 두 나라 모두의 미래를 위해 좋은 일이다. 그럼에도 이를 앞장서서 막고 있는 것이 일본 정부다. 그것이 자신들의 정체성(아이덴티티)에 부합하기 때문인가. 아베 정권은 한국 정부가 제안한 기금방식, 지금까지도 피해자 배상·보상을 계속해 온 독일이 활용하고 있는 양국 협력 기금 방식 제안도 거부한 채 한국의 굴복을 압박하고 있다. 설사 일본 정부 뜻이 관철된다 하더라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기금 방식으로 해결하려 할 경우 필요한 돈은 양국 경제규모를 생각하면 지불하기 곤란할 정도로 큰 금액이 아닐 것이다. 일본은 이 문제가 매듭지어지지 못한 채 계속 터져나오는 데에 짜증이 났을 수 있고, 계속 거론되는 것 자체가 대외적으로나 국가 및 국민의 정신, 위신에 부정적 효과를 주는 데에 화가 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법적인 청산이 완결됐다는 형식에 집착할 것이다. 하지만 미일동맹과 군사정권의 정치·안보적 필요에 의해 피해 사실 파악조차 제대로 하지 않고 서둘러 봉합해버린 그런 형식의 처리 자체가 애초에 한계를 갖고 있었다. 그런 형식에 집착하지 말고 독일처럼 피해자들에게 진심으로 사죄하고 긴 시간을 두고 가능한 범위 내에서 최대한 보상하고 위로하는 방식을 취했다면 이 문제는 벌써 해결됐을 것이다. 문제는 결국 자존과 믿음의 문제다. 성의껏 보상하고 사죄했다면 피해자들은 일본의 진의를 의심하지 않고 신뢰했을 것이고, 합리적 근거가 없거나 무리한 배상·보상 요구는 자연 정당성을 상실했을 것이며, 한국 내 여론도 그런 쪽으로 움직여 갔을 것이다. 아베 신조 총리의 전후 70년 담화문 등을 보더라도 일본 지배층의 과거사 인식은 과거 일본의 전쟁범죄 행위와 피해자들의 고통을 제대로 인식하지도과오를 흔쾌히 인정하지도 않고 있다. 예컨대 러일전쟁 등을 서구열강의 침략으로 고통 받는 아시아민족 해방을 위한 일본의 성전 쯤으로 치부하는 주장은 일본의 과거사 인식이나 사죄의 진의를 근본적으로 의심하게 만든다. 애초에 진심으로 사죄하고 최대한 성의껏 보상했다면(적어도 1965년 시점에서 고도성장기의 일본은 충분히 그럴 여유도 있었고, 피해자들에 대한 도덕적 채무도 갖고 있었다), 징용공과위안부문제 등 과거사는 그야말로 벌써 과거사가 됐을 것이다

한승동 / 피렌체의 식탁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