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9일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 도전 공식 선언 첫날 330억 원을 쓸어 모으며 선거운동에 돌입했다. 민주당 쪽에서는 이미 24명의 후보들이 대기 중이다. 우리가 24명 모두를 알 필요는 없다. 박상현 미디어 디렉터(사단법인 코드)가 미국 대선 관전 포인트와 알아두면 좋을 민주당 후보를 정리했다. 일단 이 정도만 파악해도 막이 오른 2020 미국 대선 레이스를 팔로업 하기 무리 없을 것이다. <피렌체의식탁>은 지속적으로 미국 대선 소식을 업데이트할 예정이다. [편집자]

 

1. 트럼프, 그냥 트럼프

지난 19일 수요일 트럼프 대통령이 2020년 대선을 위한 선거운동을 시작했다. 공화당 의장 맥 대니얼은 트럼프가 선거운동 시작을 알린 지 24시간 만에 2480만 달러라는 선거운동 모금 기록을 세웠다고 발표했다. 우리 돈으로 290억 원에 달하는, 상상을 초월하는 액수다.

이 모금액이 주는 충격은 과거의 기록과 비교해봐야 알 수 있다. <폴리티코>에 따르면 이제까지 대선 후보가 초기에 달성한 모금액의 최고 기록은 오바마 대통령이 재선을 시작하면서 모금한 8800만 달러이지만, 4개월 동안 기부약속을 받은 것이다. 트럼프는 그 액수의 1/4이 넘는 금액을 단 하루 만에 약속 받은 것이다. 당시 오바마의 모금액을 두고 언론이 “충격과 공포”라고 했을 만큼 가공할 양의 실탄이었음을, 그리고 오바마가 그 자금을 이용해 넉넉하게 재선에 성공했음을 생각하면, 트럼프의 재선 가능성은 커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선거는 자금만으로 이기지 못한다. 2016년 대선에서 힐러리 클린턴은 트럼프의 두 배에 가까운 돈을 모금했지만 결국 트럼프에게 패배했다. 기성 정당이 배출한 최초의 여성후보이지만 동시에 전통적인 정치인인 힐러리의 정공법 선거운동에 맞서 트럼프는 “나는 텔레프롬프터를 쓰지 않는다”고 선언하며 때로는 코미디언처럼 청중을 웃기고, 때로는 연설주제가 뭐였는지 모를 만큼 횡성수설하기도 하면서 과거 미국 정치에서 볼 수 없었던 선거운동을 벌였고, 그 결과 백악관 입성에 성공했다. 그랬던 그가 이제는 인컴번트(incumbent), 즉 현직 대통령이라는 유리한 지위에서 선거에 임하게 된다.

2. 힐러리 패배 원인에서 답을 찾는다

무려 24명이 출마 의사를 밝힌 민주당 대통령 후보들이 바로 그런 후보를 상대해야 한다. 트럼프의 선거운동 방식에 대해서는 이미 잘 알려져 있고, 트럼프의 지지기반 역시 잘 분석되어 있다면 민주당 경선에서는 그 24명의 후보들 중에서 그를 이길 승산이 가장 높은 후보를 선택하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한다.

이는 상대당 후보가 누가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당의 대표 주자를 고르는 작업보다는 훨씬 쉬워 보일 수 있다. 2016년 대선 운동 초기(2020년 대선을 기준으로는 지금쯤에 해당한다)만 해도 민주당에서는 젭 부시가 공화당 대선후보가 될 것으로 조심스럽게 예상하고 있었고, 젭 부시를 상대로 힐러리는 제법 유리한 고지에 있다고 생각했다.

훗날 큰 문제가 되어 당원들을 실망시킨 민주당 지도부의 노골적인 힐러리 클린턴에 대한 지지는 한 편으로는 힐러리의 당내 입지를 보여주는 것이었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맞수였던 버니 샌더스가 너무 급진적이어서 중도표를 가져오기 힘들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2016년은 과거와는 전혀 다른 선거였고, 좌우 양쪽에서 중도표를 얼마나 끌어올 수 있느냐가 아니라 가장 열렬한 지지기반을 얼마나 흥분시킬 수 있느냐가 중요한 선거였다. 그 기준으로 봤을 때, 오바마의 등장으로 열광했던 민주당 지지자들의 눈에 힐러리가 만족스러울 리는 만무했고, 많은 젊은층이 아예 투표에 나서지 않았다.

3. 러스트벨트 백인 남성, 트럼프 대신 바이든???

현재 민주당 후보 중에서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후보는 오바마 시절 부통령을 지낸 조 바이든이다. 일찌감치 출마의사를 밝혔을 뿐 아니라, 상원의원으로 무려 36년을 지낸 민주당 중진에 미국 정치의 베테랑이다.

비즈니스 인사이더의 조사에 따르면, 민주당원들은 바이든이야 말로 트럼프를 이길 가능성이 가장 높은 후보라고 생각한다. 힐러리가 트럼프에게 패하는 과정을 지켜봐야 했던 민주당원들이 바이든에게 기대하는 이유는 그가 트럼프 지지자들, 즉 중서부의 블루컬러 백인 남성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정치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조심스럽게 해석해야 한다. 우선, 바이든이 민주당 후보들 중에서 블루컬러 백인 남성들에게 가장 인기 있다는 것과 그것으로 트럼프와 대결해서 그의 지지자들을 데려올 수 있다는 것은 다른 얘기이다. 그런 기대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블루컬러 백인 남성들이 트럼프에 대해 실망했고, 그 대안을 찾기 시작했다는 가정이 있어야 하는데, (비록 엇갈리는 보도가 있기는 해도) 적어도 현재로서는 트럼프의 중서부 지지기반이 심각하게 흔들린다고 보기는 힘들다.

<복스>의 에즈라 클라인은 (특정 후보의) ‘당선가능성’이란, 조사대상이 된 사람이 그 후보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이 아니라, 그 사람이 짐작하는 다른 유권자들의 생각이라고 설명한다. 따라서 바이든의 당선가능성은, 심하게 말하면, 민주당원들이 짐작하는 중서부 백인들의 생각일 뿐일 수 있다.

4. 트럼프의 왼쪽 데칼코마니, 샌더스

바이든을 바짝 추적하고 있는 또 다른 후보는 버니 샌더스다. 지난 번 대선 때 힐러리 클린턴과 맞붙어서 젊은층으로부터 가장 뜨거운 지지를 받았지만, 앞서 설명한 것처럼 민주당 중진과 기반세력(establishment)의 배척으로 대선후보가 되지 못했다. (적어도 그의 지지자들의 생각에는 그렇다). 사실 그는 원래 민주당원이 아니었고, 민주사회주의자를 표방해온 사람이다. 대선을 위해 민주당에 입당한 탓에 선거운동 중에도 그를 어떻게 분류해야 하는지로 논란이 많았기 때문에 우리나라를 기준으로 보면 선거 직전에 입당해서 당내 결선 끝까지 갔다는 것도 대단한 파워이기는 하다.

아직도 많은 민주당원과 젊은이들이 민주당이 샌더스를 내세웠더라면 지난 대선에서 승리했을 것으로 믿고 있고, 바로 그런 기대 속에서 샌더스는 이번에도 출마 선언을 할 수 있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더구나 샌더스의 매력은 그가 트럼프 지지자들에게도 인기가 있다는 데 있다. <민주주의는 어떻게 무너지는가>의 저자들은 트럼프의 당선이 공화당의 중진 그룹과 기반세력이 과거와 같은 후보 필터링에 실패한 결과라고 주장한다. 트럼프와 같은 선동가들은 항상 존재했고, 그런 후보에 열광하는 그룹 역시 항상 존재했지만, 미국의 정당제도는 그들이 메이저 정당의 티켓을 움켜쥐지 못하도록 필터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1972년 이후 서서히 변화한 미국 선거제도로 인해 트럼프처럼 당내 기반세력이 동의하지 않는 후보가 당을 대표하게 된 것이다.

그들의 견해에 동의하든, 하지 않든 별개로 그 과정에서 평소 공화당에, 아니 정치에 관심이 없던 많은 사람들이 공화당 경선에 몰려와서 트럼프를 지지한 것이 사실이다. 그렇게 새롭게 들어온 “트럼프 공화당원”들은 전통적인 공화당 어젠다에 큰 관심이 없고, 무엇보다 미국사회의 엘리트와 기득권 세력에 큰 반감을 가지고 있다. 그들에게는 젭 부시와 힐러리 클린턴이 별로 다른 사람들이 아니다.

그 말은 힐러리 클린턴에 반대한 트럼프 지지자들에게 샌더스는 차선책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고, 실제로 지난 대선에서 트럼프가 후보가 되지 못하면 샌더스를 지지하겠다는 백인 유권자 그룹이 존재했다.

5. 나이든 백인 남성, 지겨워

하지만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바이든과 샌더스 모두 70대 백인 남성이라는 사실이다. 현 대통령인 트럼프가 73세로,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나이에 대통령이 된 인물인데 (그 전에는 69세에 대통령이 된 로널드 레이건이 가장 많은 나이였다), 샌더스는 77세, 바이든은 78세다. 두 사람 모두 대통령이 되면 첫 임기가 끝나기 전에 80세를 넘긴다.

트럼프에게 일격을 가했다는 지난 해 중간선거에서 가장 눈에 띈 현상은 여성의원들의 대거 진출이었다. 특히 그 선거를 통해 하원의원이 되어 계속해서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르테즈(AOC)는 유색인종 여성일 뿐 아니라, 하원에서 가장 나이가 어린 29세다. 지난 해 선거에서는 단순히 눈에 띄는 인물이 당선되었다는 정도가 아니라, 미국 하원의 역사상 가장 많은 여성의원이 탄생한, 역사적인 선거다.

많은 민주당 지지자들은 이것을 독립된 현상이 아닌 중요한 변화의 흐름으로 받아들인다. 특히 같은 선거에서 공화당의 여성의원들은 오히려 줄어들었다는 점에서 민주당 지지기반을 열광시킬 수 있는 후보들은 이제 남성보다 여성, 백인보다 유색인종, 나이든 후보 보다는 젊은 후보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변화하고 있는 미국의 인구구성을 생각하면 당연한 귀결이라고 할 수 있고, 공화당이 점점 나이든 백인남성들의 정당이 되어간다는 주장과도 관련이 있다.

그렇다면 바이든과 샌더스가 과연 적절한 후보인가에 대한 의구심이 들 수 있다.

6. '급부상' 워런, "힐러리와는 달라"

지난 대선에서 많은 사람들이 출마를 기대했지만 힐러리 클린턴을 지지하면서 포기한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과 카말라 해리스 상원이 주목을 받는 것이 바로 그런 맥락에서다. 특히 워런은 민주당의 젊은 베이스를 흥분시킬 수 있는 후보임을 일찌감치 증명한 후보다.

오랫동안 소비자보호를 주요 어젠다로 삼아왔고, 그런 시각에서 페이스북을 비롯한 미국의 대형 테크 플랫폼의 독점을 지적하고 분리해야 한고 주장한다는 점에서 샌더스의 지지자들도 (샌더스가 질 경우) 대안으로 생각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젊은 여성들에게도 인기가 있다는 점에서 힐러리와 다르다.

워런의 파워를 잘 아는 트럼프는 상대후보도 아닌 워런을 오래 전부터 조롱해왔다. (공개적이고 무례한 조롱은 트럼프가 사용하는 가장 유용한 무기다). 그렇게 조롱하면서 워런에게 붙인 별명이 ‘포카혼타스’다. 디즈니 만화영화로도 만들어진 유명한 인디언 여인의 이름을 별명으로 사용한 이유는 워런이 자신이 인디어 피를 물려받았다고 자주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워런이 거짓말을 한다며, 유전자 검사를 해서 인디언 후손임이 증명되면 워런이 지정한 자선단체에 1백 만 달러를 기부하겠다고 약속했다.

워런은 정말로 유전자 검사를 했고, 6-10대 전에 인디언 피가 섞였다는 결과를 받았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에 시작됐다. 미국의 인디언들은 단순히 피가 섞여있다고 부족(tribe)의 일원이라고 인정하지 않는다. 부족으로 인정될 경우 재산권 등의 다양한 특권을 인정받기 때문에 부족과 직접적인 교류가 없었던 사람이 피를 나눠가졌다고 해서 부족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워런이 검사결과를 발표하자마자 체로키 부족은 “워런은 인디언 부족이 아니다”고 반박했다.

워런은 자신이 부족의 일원이라고 주장하기 위해 검사한 것이 아니라고 해명했지만, 트럼프와 그의 지지자들의 조롱은 물론, 워런의 지지자들로 부터도 정치인으로서 어설픈 실수를 허용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7. 게이 대통령은 어때?

하지만 어느 후보나 그런 실수를 한다. 상당히 신중한 성격의 오바마도 선거 중에 실언과 실수로 곤욕을 치렀지만, 결국 극복하고 지지율을 만회했다. 워런 역시 인디언 논란이 불거졌던 작년 이후로 서서히 지지율을 회복해서 지금은 샌더스와 대등한 수준까지 올라왔다는 평을 받는다.

마지막으로 워런과 함께 급격하게 부상하고 있는 후보를 하나 추가하자면 피트 부티제지다. 워낙 특이한 이름(Buttigieg)이라서 유권자들이 제대로 발음하지 못하는 약점을 가지고 있지만 오히려 그것을 자신을 알리는 방법으로 활용하고 있다. 부티제지는 바로 그런 후보다. 자신의 약점으로 보이는 모든 것을 강점으로 활용한다.

미국의 대통령은 대부분 주지사나 상원의원 중에서 나오고, 드물게 하원의원들 중에서 도전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부티제지는 인디애나 주의 사우스 벤드라는 크지 않은 도시의 시장이다. 다른 쟁쟁한 후보들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이유는 그런 약점이다. 또한 커밍아웃한 게이로 대선에 도전하고 있기 때문에 보수층에 어필할 수 있을지 의심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하버드 대학교를 나오고, 유명한 로즈 장학생으로 옥스포드에서 공부했을 뿐 아니라, 미 해군으로 아프가니스탄에서 근무한, 미국 정치인으로서는 엘리트 중 엘리트 자격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그의 정체성은 대중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거기에 뛰어난 연설실력으로 최근 들어 언론의 관심을 크게 끌고 있고, 그를 바탕으로 24명의 후보군에서 상위로 뛰어 올랐다.

여기까지가 현재 트럼프의 재선을 저지하려는 민주당 주요 후보들의 면면이다. 이 글에서 설명하지 않은 후보들이 급부상할 가능성은 항상 있지만, 확률로 보면 위의 후보들 중 하나가 내년 11월 대선에서 트럼프와 맞붙게 될 것이다. 그 때까지 많은 후보들이 실수를 할 것이고, 실수에서 회복을 하는 후보도, 만회하지 못하고 사라지는 후보도 있을 것이다. 급부상하는 신인 후보가 티켓을 쥘 수도, 현재 상위에 있는 기성 정치인이 무난히 본선에 진출할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위의 인물 중 누구도 아직 ‘대통령감’은 아니라는 거다. 미국의 대통령은 기나긴 선거운동을 통해 만들어진다.

박상현 /  미디어 디렉터, 사단법인 코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