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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재창출을 위한 ‘차별화’, 정권교체를 위한 ‘안정감’

by | 2019년 5월 24일 | 정치

  • 혼자 대권 마라톤 하는 황교안. 여당에서는?
  • 2016년 새누리당 총선 참패 원인: 실종된 ‘차기’
  • 박근혜, 정권재창출 싹을 모조리 자르다
  • 절대 차기 대통령이 될 수 없는 유일한 사람은 현직 대통령
  • 양정철의 ‘친문 주자 띄우기’ 해석은 단견
  • 정권 재창출 키워드는 ‘차별화’: 노태우, 노무현, 박근혜
  • 비갈등 차별화, 노태우 케이스 가능할까?
  • 정권 교체 키워드는 ‘안정감’: DJ, MB, 문재인
  • 야권 주자, “사람 달라졌네” 소리 들을 수 있어야
  • 다가오는 총선, 기획이 시작된다

대통령 임기 중 보통 1~2번의 총선이 치러진다. 노태우 정권에서 2회(1988, 1992), 김영삼 정권에서 1회(1996), 김대중 정권에서 1회(2000), 노무현 정권에서 1회(2004), 이명박 정권에서 2회(2008, 2012), 박근혜 정권에서 1회(2016) 치러졌다. 이중 대선과 가까운 시기에 열리는 총선은 ‘차기 정권’을 향한 대권 주자 경쟁이 벌어지기 마련이다. 1992년 총선에서는 YS가 당권을 확실하게 쥐었고, 1996년 총선에서는 DJ가 정계에 복귀했다. 2012년 총선에서는 박근혜가 차기 대권을 굳혔다. 2016년 총선에서 ‘차기’를 내세우지 못한 채 참패한 새누리당은 결국 ‘탄핵’을 맞이했다. 2020년 총선은 문재인 정부가 막 후반기에 접어드는 다소 애매한 시점에 열린다. 과연 ‘잠룡’들 경쟁이 펼쳐지게 될까.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이 역사적 사례를 통해 정권재창출과 정권교체의 함수 관계를 분석했다. [편집자]

[윤태곤 / 더모아 정치분석실장]

지난 5월 9일은 문재인 대통령 취임 2주년이었다. 따지고 보면 임기의 40%밖에 지나지 않은 셈이다. 그렇지만 이제 시간의 속도는 점점 빨라질 것이다. 이 여름이 지나면 임기 반환점(11월)이 보이고 그 반환점을 지나면 2020년 4월 총선이 눈앞이다. 총선 이후엔 바로 취임 3주년, 그 정도면 차기 대선도 눈에 들어오게 된다.

벌써 대선을 내다보는 사람들이 있다. 대선 레이스라는 마라톤에서 혼자 스타트를 끊고 달리는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그렇다. 어쨌든 야당과 그 지지자들은 대선에서 패배한 날부터 차기 대선을 생각하기 마련이니 이상할 것도 없다. 정권을 되찾아올 의지를 내비치지 않는 야당 지도자를 어디 써먹겠나?

여권은 좀 더 복잡하다. 일단 지지자들의 눈과 기대는 아직 현직 대통령에게 머물러 있고, 그들은 차기에 대한 구체적 언급을 ‘불충’으로 간주하기 마련이다. 레임덕으로 연결되기 십상인 차기 권력 타령을 좋아하는 현직 대통령도 없다.

하지만 대통령의 잔여임기와 비례해 줄어들 수밖에 없는 국정장악력을 지속적으로 유지, 강화하는 유일한 방법은 정권재창출의 가능성을 높이는 것뿐이다.

다가오는 총선 역시 마찬가지다. 기본적으로 ‘정권 심판 vs 국회/야당 심판’의 프레임이 작동할 것이지만 차기 대선에 대한 지평도 그만큼이나 주요한 변수다.

지난 2016년 20대 총선이 그랬다. 총선을 앞둔 그해 초 청와대는 대단히 특이한 모습을 보였다. “정쟁에 빠져 민생 법안을 처리하지 않는다”고 대통령이 국회를 질타하는 것이야 지금도 비슷하지만,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직접 길거리로 나가 ‘민생구하기 입법 촉구 천만 서명운동’에 참여하며 자필 서명까지 했다.

‘콘크리트 지지층’에다가 우리나라 특유의 反국회 정서가 결합되면 총선을 돌파할 수 있다는 전략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박 대통령은 야당 뿐 아니라 여당도 싸잡아 공격하는 과감성을 보였다. 문재인의 더불어민주당과 안철수의 국민의당으로 야당이 분열된 상황, 여당 내 아무도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지 못하는 상황이 박 대통령의 자신감을 더했다.

하지만 결과는 모두가 아는 바대로다. 총 300석 중 여당인 새누리당은 122석을 얻는데 그쳤다. 이것이 얼마나 궤멸적 결과냐면, 여야의 개념이 지금처럼 정립된 4대 국회 이래 총의석수 대비 여당 의석수 비율로는 최소 기록일 정도다.

이같은 대패의 원인을 단순히 정리하긴 어렵다. 그렇지만 거기서 ‘차기’라는 키워드를 빼놓을 순 없다.

정권재창출 싹을 스스로 자른 박근혜

박 전 대통령은 총선 훨씬 전부터 여당 차기 후보군들을 노골적으로 핍박했다. 당대표인 김무성은 ‘패싱’ 당하거나 압박당했고 대통령과 정책적 차별성을 바탕으로 대중적 주목을 받기 시작했던 원내대표 유승민은 아예 여당에서 축출했다. 그렇다고 여권 주류의 후계자를 키운 것도 아니었던 것이 ‘진박’ 총선 후보들은 대체로 자기 목소리를 내지 않는 공무원, 청와대 비서 출신들이었다.

박 전 대통령은 차기 대권, 즉 정권재창출을 대비하려는 자생적 노력을 돕지 않았다. 무관심 한 것도 아니었다. 아예 용납 하지 않았으며 방해했다. 유신 정권 시절 후계 구도를 언급하고 다니다가 축출당한 윤필용 수경사령관처럼 여긴 것이다. 여당 지지자들은 총선에서 이런 대통령을 용납하지 않았다.

그의 전임자 이명박은 달랐다. 임기 중반까지는 정운찬, 김태호 등 박근혜가 아닌 대선주자를 인큐베이팅하려는 노력을 기울였지만 곧 현실에 순응해 박근혜를 중심으로 한 정권재창출 준비를 수용했다. 이명박 임기 마지막 해 총선은 철저히 박근혜 중심으로 치러졌다.

정권 심판 프레임이 아니라 ‘미래 권력 vs 미래 권력’의 틀이 짜여졌다. 결과는? 민주당과 통합진보당이 전면적 야권연대로 맞섰지만 새누리당이 과반을 넘기며 낙승을 거뒀다. 그 여세를 몰아 대선에서도 승리했다.

정치권 주요 인물 가운데 절대 차기 대통령이 될 수 없는 유일한 사람은 현직 대통령이라는 점을 박근혜는 잊고 있었지만 이명박은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이명박 대통령 취임 후 2달 만에 벌어진 18대 총선이나 노무현 당시 대통령의 탄핵 와중에 벌어진 17대 총선을 제외하면 민주화 이후 모든 총선은 차기 대선의 자장(磁場)과 연결되어있었다.

김대중과 김영삼에게 재기의 발판을 마련해 준 13대 총선, 3당 합당 이후 거꾸로 김대중에게 힘을 실어준 14대 총선, 이회창과 박찬종 등 ‘포스트 양김’의 무대를 마련해준 15대 총선, 이회창이 대선 재수 자격증과 非동교동 여당 후보 필요성을 드러낸 16대 총선이 다 마찬가지였다.

정권교체 희망 vs 정권재창출 기대

이번 총선이라고 다르리란 법은 없다. 정권 교체에 대한 희망을 보여주지 못하는 야당이나 정권재창출에 대한 기대감을 보여주지 못하는 여당은 패배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5월 18일이라는 상징적인 날에, 광화문 광장이라는 상징적인 장소에서, 벌어진 ‘노무현 대통령 서거 10주기 시민문화제’라는 상징적인 행사에서, 양정철 민주연구원장이라는 상징적인 인물이 “우리 당에는 다음 대선에 잠재적으로 활약할 수 있는 분들이 차고 넘치지만, 유시민·조국이 가세를 해서 열심히 경쟁하면 국민들 보기에 얼마나 안심이 되겠느냐”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대선에 대한 전망을 보여야 총선에서 이길 수 있고, 총선에서 이겨야 정권재창출의 교두보가 만들어지는 순환 구조는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니다. 두 사람의 대통령을 만들었고 세 번째 대통령은 만들어내라는 기대를 받고 있는 양정철이, 아니 정치권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모를 리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양정철의 조국, 유시민 언급을 ‘친문주자 띄우기’로 해석하는 것은 너무 단순한 풀이다. “우리도 다음을 본다”는 시그널 자체가 중요한 거다.

여권 구성원이나 지지자들 중 정권재창출을 원치 않는 사람이 있을 리 없지만 ‘어떻게’에 대한 생각은 조금씩 다를 것이다. 그런데 과거 정권재창출의 사례에서 ‘어떻게’를 잘 들여다보면 일반적 통념과 상당히 다른 양상을 발견할 수 있다. 대통령을 안 닮은 사람들만 성공했다.

정권 재창출의 키워드는 ‘차별화’

대통령 직선제 부활 이후 정권 재창출, 즉 여당 대선 후보의 승리 사례는 모두 4번이다. 1987년 대선(전두환->노태우), 1992년 대선(노태우->김영삼), 2002년 대선(김대중->노무현), 2012년 대선(이명박->박근혜)

현직 대통령과 차별화에 성공한 여당 대통령 후보들은 승리했다. 뒤집어 말하면 자신과 차별화를 용인한 대통령은 정권 재창출에 성공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왜 그럴까?

임기 말 지지율이 임기 초보다 높은 대통령은 없다. 대통령들이 하나같이 이상해서가 아니라 원래 그런 거다. 임기 초에는 원래 지지층에 새 시대에 대한 희망과 기대를 가진 사람들이 가세하고 임기 말에는 원래 지지층에서도 각종 정책으로 손해를 봤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빠져나간다. 그럭저럭 했다고 평가해도 지겹지도 않은 건 아니다. 나이 들면 관절이 약해지고 주름과 흰머리가 늘어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러니 그 임기 말의 대통령과 같은 느낌을 주는 후보를 뽑을 유권자들이 다수일 가능성은 높지 않은 것이다.

노태우의 경우, 군복을 벗고 정치를 시작하면서부터 전두환과 차별화의 길을 걸었다. 겉모습이나 행동거지가 무골(武骨)인 현직 대통령과 다른 인상을 주는데 주력했다. 자신의 큰 귀를 강조하며 잘 듣는 사람, 보통 사람의 이미지를 내세웠다. 크게(태) 어리석다(우)고 이름 풀이를 하고 서류가방을 직접 들고 다녔다. “본인은~”으로 말문을 여는 전두환과 “저는~”하고 입을 떼는 노태우는 상당히 달라 보였다. 게다가 6.29 선언 건의로 종지부를 찍었다.

노태우는 민정당의 약한 반대자나 스윙보터 혹은 부끄러운 지지자에게 “그래도 전두환하고는 달라서”라는 지지의 알리바이를 주기 충분한 인물이었다. 만약 노태우 자리에 전두환 닮은 꼴 이자 경호실장, 안기부장 출신 장세동이 있었다면? 아마 1988년에 정권교체가 됐을 것이다.

1992년 노태우와 김영삼의 차별화는 별다른 설명이 필요 없을 것 같다. 그냥 원래 둘은 달라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영삼은 대선 기간 동안 ‘강한 대통령론’을 내세우며 ‘물’ 소리 듣던 노태우와 더 강한 차별화를 시도했다.

2002년 상황도 현재의 통념과는 상당히 다르다. 노무현은 계승이 아니라 차별과 새로움을 내세워 대선 경선에서 승리했다. 노무현 캠프의 선봉장격인 유시민은 국민의정부 동안에도 야멸찬 비판자였다. 노무현 본인 역시 후보가 된 이후 동교동계와도 사이가 더 벌어졌다. 그로 인해 어려움도 겪었지만 ‘부채 없는 노무현’은 이회창을 따돌릴 수 있었다.

2012년 박근혜의 차별화는 1992년 김영삼의 그것과 흡사하다. 이같은 정권재창출의 네 경우에서 빠뜨리지 말아야 할 것은 현직 대통령의 용인이다. 전두환-노태우나 김대중-노무현의 경우에는 전략적 역할분담의 공감대가 형성된 면이 있었지만 노태우나 이명박은 “당신이 나 말고 대안이 있냐”는 식으로 거칠게 나오는 대선 후보의 차별화를 감수했다.

여당 대선 후보의 차별화는 어느 정도 성공했지만 정작 대통령의 ‘용인’이 부재했던 케이스가 1997년 김영삼-이회창의 조합일 것이다. 차별화도 용인도 아무것도 없었던 것이 2007년 노무현-정동영 조합.

정권교체 키워드는 ‘안정감’

그렇다면 정권 교체는 ‘어떻게’ 이뤄질 수 있었을까? 1997년 대선(김영삼->김대중) 2007년 대선(노무현->이명박) 2017년 대선(박근혜->문재인)의 세 경우에서도 유의미한 공통점이 보인다.

승리한 야당 후보 세 사람의 공통점은 안정감의 강화 혹은 거부감의 약화다. 모두 여권의 약한 지지자, 혹은 야권의 약한 반대자, 그리고 스윙보터에게 “그래 전하고는 달라졌네”라는 알리바이를 주는데 성공했다.

유신 본당이자 3당 합당의 한 축이었던 김종필과 DJP연합을 구성한 김대중이 대표적 경우다. 김종필 뿐 아니라 박태준의 손을 잡았고 마이클 잭슨, 서태지를 캠페인에 활용했다. 1987년과 1992년의 검은 두루마기와 사자후 자리는 멜빵 바지와 ‘DJ와 함께라면 든든해요’라는 로고송이 차지했다. 캠페인은 비토 정서를 줄이는데 집중됐다.

2007년 대선을 앞두곤 청와대 인사들도 공공연하게 “한나라당 이명박이 당선된다고 나라 망하는 것도 아니다”라고 말하고 다녔다. 이명박 역시 언론과 인터뷰에서 “사실 이회창보다 노무현 스타일에 가깝다”고 말했었다. 실적과 실용주의를 트레이드마크로 내세운 이명박의 강점은 강한 지지층이 아니라 약한 반대층이었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이라는 특수성이 있었지만 2017년 문재인도 마찬가지였다. 탄핵 국면에서도 광장의 선두 자리는 이재명 때로는 안철수에게 내줬다. 민주당 경선에서 압승한 이후에도 자기 왼쪽의 심상정을 적절히 활용했다. 전 정부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었고 ‘국민통합’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다. “사람 많이 달라졌다”는 말을 듣는데 성공했다. 그 성공은 당선으로 이어졌다.

총선, 기획이 시작된다

현재 여권과 야권의 상황은 위의 성공사례들과는 상당히 거리가 크다. 청와대와 정책적으로 다른 목소리를 내는 초선의원들 조차 강경 지지자들의 철퇴를 맞는 마당에 전략적 차별화는 아직 요원해 보인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경우 지난 경선에서부터 확실히 ‘다름’을 증명했지만 아예 정치권에서 사라졌다. 이재명 경기지사도 ‘다름’은 한몫 하지만 이제 겨우 한숨 돌리는 상황이다.

김영삼(노태우에 대해)이나 박근혜(이명박에 대해) 같은 공격적 차별화가 아니라 노태우(전두환에 대해) 같은 비갈등적 차별화에 성공하는 사람을 찾을 수 혹은 만들어낼 수 있을까? 그 기획은 이번 총선부터는 시작될 것이다.

황교안 대표 혼자 달리는 형국인 한국당도 마찬가지다. 정권 교체에 성공한 이명박도, 정권 재창출에 성공한 박근혜의 공통점은 단순하다. 좌파, 종북, 독재 이런 단어들하고 가까웠을 땐 어려움을 겪었고 거리를 두고 “사람 바뀌었다” 소리 들었을 땐 대통령이 됐다.

이 법칙이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졌을 이유는 없다. 이 법칙은 대선 만큼은 아니지만 총선에서도 상당히 적용될 수 있다. 특히 수도권에선 더욱 그러할 것이다.

윤태곤 / 더모아 정치분석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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