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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바이스: 딕 체니와 네오콘 ‘영원한 제국’의 그림자

by | 2019년 5월 10일 | 정치

요즘 극장에서 상영 중인 영화 이야기를 할까 한다. 1000만 명이 넘게 본 <어벤져스: 엔드게임>은 아니고, 13만 명이 본 영화 <바이스>다. 기본적 서사구조는 비슷하다. <어벤저스>가 ‘캡틴 아메리카’를 리더로 한 수퍼 히어로들이 악당에 맞서 지구를 지키는 이야기라면, <바이스>는 미국 부통령을 리더로 한 네오콘들이 ‘악당에 맞서 미국을 지키는’(?) 이야기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어벤저스>가 판타지라면 <바이스>는 실화라는 점. 이 영화의 제목 <바이스>는 Vice President, 즉 부통령을 말하고 주인공은 2001년부터 2009년까지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 집권 시기 ‘실세 부통령’이었던 딕 체니이다.

딕 체니

딕 체니의 일생을 간략하게 정리해보자. 1941년생인 딕 체니는 예일대에 진학했으나 적응하지 못하고 술로 세월을 보내다 퇴학당했다. 이후 공사판 막노동으로 생계를 꾸려갔으나, 모종의 결심을 하고 와이오밍 대학을 다시 나온 뒤 1969년 하원 인턴십 프로그램으로 정계에 발을 들였다. 그 때 만난 인물이 도널드 럼즈펠드이다. 밑도 끝도 없이 “할 일이 있어. Yes or No?”를 묻는 럼즈펠드에게 언제나 “Yes”라고 답하는 충직한 보좌관이었던 체니는 럼즈펠드와 함께 백악관에 입성한다.

영화에서 럼즈펠드는 딕 체니에게 “조용해서 마음에 든다”며 세 가지를 요구한다.
①입을 다물고 있을 것 KEEP YOUR MOUTH SHUT
②시키는 대로 할 것 DO AS YOU’RE TOLD
③언제나 충직할 것 BE ROYAL

“헌신적이고 겸손한 권력의 시종”이었던 체니는 닉슨의 사임과 함께 부통령이었던 포드가 대통령에 오르며 기회를 얻는다. 키신저에게 밀려나 유럽으로 쫓겨났던 럼즈펠드가 복귀하며 체니는 포드 백악관의 비서실장이 된 것. 당시 체니의 나이 35세였다.

럼즈펠드와 함께 ‘제국’을 건설할 줄 알았건만 포드가 1976년 대선에서 카터에게 패배하며 체니는 백악관을 떠나야했다. 대신 와이오밍에 출마해 하원의원으로서의 정치 경력을 이어간다. 마침 레이건 대통령이 등장해 그 역시 하원에서 승승장구 했고, 조지 H.W. 부시(이른바 ‘아버지 부시’) 대통령 시절에는 국방장관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다 1992년 빌 클린턴이 등장하며 체니는 정계에서 물러나 석유 채굴 기업 핼리버튼의 CEO로 가게 된다.

그에게 다시 정치적 기회가 온 것은 2000년 조지 W. 부시가 대통령에 당선 되면서였다. 아버지(조지 H.W. 부시)에게서 인정받고 싶었고, 그늘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부시는 딕 체니를 부통령으로 영입했고, 딕 체니는 ‘실권’을 요구했다. 그러다 2001년 9.11 사태가 터졌다. ‘미국 역사상 가장 강력한 부통령’이었던 딕 체니는 국방장관 시절 ‘완성’하지 못했던 걸프 전쟁을 이라크 전쟁으로 이어간다.

보수 이데올로기의 베이스캠프와 확산 경로

영화의 내용을 일일이 소개하다 보면 미국 현대사를 다 다뤄야 하기에, 대한민국의 현재적 시점에서도 눈여겨 볼만한 대목 몇 가지만 소개하고자 한다.

첫째, ‘폭스뉴스채널’의 등장. 딕 체니는 닉슨 대통령 시절 언론 자문이었던 로저 에일스로부터 ‘보수파 뉴스 설립’에 관한 아이디어가 담긴 문건 하나를 건네 받는다. 럼즈펠드는 “로저는 TV나 알지 정치를 모른다”고 무시했다.

세월이 흘러 레이건 행정부 시절, 하원에서 권력을 쥔 체니는 방송 규제 하나를 제거한다. 이름하여 ‘방송의 공정성 원칙’(Fairness Doctrine). 1940년대 만들어진 법으로 방송에서 어떤 의견을 다룰 때는 반대 견해도 반영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이로 인해 사회적 갈등 사안에 대해 보도할 때 방송사들은 항상 반대 의견 청취에도 신경을 써야 했다. 이 원칙은 보도뿐 아니라 광고에까지 적용될 정도로 엄격했다.

체니가 이를 없애면서 등장한 방송이 ‘폭스뉴스채널’이다. 미디어 재벌 루퍼트 머독이 세운 이 우익 뉴스 채널 설립을 진두지휘한 이는 바로 닉슨의 언론 자문으로 아이디어를 제안했던 로저 에일스다. 우리는 보통 뉴스채널 하면 CNN을 떠올리지만 폭스뉴스채널에 비교가 되지 않는다. 폭스뉴스채널은 시청자 수에서 CNN, MSNBC 같은 보도 채널은 물론 스포츠 채널인 ESPN도 앞지를 정도로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영화에서 딕 체니는 부통령이 된 후 까칠한 성격의 럼즈펠드를 국방장관으로 불러들인 뒤 이렇게 말한다.

“20년 만에 백악관에 왔군요. 시대가 변했어요. 지금은 부드러운 태도가 필요해요. 보수 방송이 대신 소리를 질러주니까.”

폭스뉴스채널의 활약은 지금도 여전하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CNN 등 비판적인 언론에 대해 ‘가짜뉴스’라며 반복적이고 집요하게 공격하고 있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이 폭스뉴스채널을 보면서 마음에 드는 인사들을 발탁한다는 소문이 나면서 폭스뉴스채널에는 출연을 원하는 보수계 인사들이 줄을 서고 있다. “백악관이 폭스뉴스채널의 스튜디오가 됐다”는 비아냥이 나올 정도다.

둘째, 보수 싱크탱크를 통한 인재 육성 및 재생산이다. 베트남 전쟁이 끝난 후 집권한 민주당 카터 대통령은 수많은 개혁을 시도한다. 그 중에는 태양열과 같은 신재생 에너지 활성화 정책도 있었고, 인권 강화 정책도 폈다. 재벌들은 반발했다. 코크 형제, 쿠어스와 같은 보수 재벌들이 “돈을 싸들고 워싱턴D.C로 진격해 우익 싱크탱크에 돈을 뿌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케이토(CATO institute), AEI(American Enterprise institute), 헤리티지재단(The Heritage Foundation) 등이 돈벼락을 맞았고, 보수적인 이데올로기들을 생산해 미국 전역에 살포했다. 카터는 재선에 실패했고, 레이건이 등장했다. ‘상속세’는 ‘사망세’로 바뀌어 “죽은 것도 서러운데 세금도 내야 하냐”는 말을 퍼뜨렸고, ‘지구 온난화’는 ‘기후 변화’로 대치돼 사람들의 경각심을 누그러뜨렸다. 조지 W. 부시의 유명한 독트린, ‘악의 축’(Axes of evil)이라는 말을 만든 것도 AEI 출신의 데이비드 프럼이었다.

백악관은 물론 국무부, 국방부에 수많은 보수 싱크탱크 인사들이 배치됐고, 정권이 바뀌면 베이스캠프인 싱크탱크에서 전열을 재정비한 뒤 다시 입성하는 패턴을 반복하고 있다. 보수 재벌들의 지원은 ‘티파티’와 같은 풀뿌리 운동에까지 확장되고 있다.

대한민국은 어떠한가. 2009년 이명박 정부는 미디어법을 통과시켜 보수 언론의 방송 진출을 허용했다. JTBC가 손석희를 영입하면서 나중에 의도치 않은 결과를 낳긴 했지만, 나머지 종편들은 폭스뉴스채널 못지않은 ‘아무말 대잔치’를 벌이며 보수층의 이데올로기를 탄탄하게 다져가고 있는 중이다. 진보 진영에서도 ‘진보 종편’을 만들어야 한다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시도조차 못 하고 있고, 차세대 미디어의 총아인 유튜브에서도 밀리는 양상이다.

싱크탱크의 문제는 어떠한가. 대한민국 싱크탱크는 정부, 대학, 기업 3대 축으로 구성돼 있다. 정부 싱크탱크는 정권의 성향에 따라 오락가락하고, 대학의 싱크탱크 기능은 교수들 각개 돌파에 의존하고 있으며, 기업은 기본적으로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 진보 진영에는 버젓한 싱크탱크가 없어 진보 연구자들은 생계 불안에 시달리는 처지이다. 우리에게는 마이클 블룸버그나 하워드 슐츠, 빌 게이츠 같은 온건한 ‘부자’들 조차도 없다.

‘행동하는 양심’, ‘깨어 있는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서지만 안정적인 진보 이데올로기와 인재를 생산할 베이스캠프는 보이지 않는다. ‘실력 없는 진보’ 소리가 오해로만 들리지 않는 이유다. ‘민주화’라는 명분의 시대가 막을 내리면서 ‘열정과 사명감’ 넘치는 유능한 인재를 끌어들일 유인은 옅어지고 있다.

영원한 제국

영화 <바이스>는 딕 체니라는 인물의 권력의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사실상 정치자금 후원이 자유로워 대놓고 정경유착이 이뤄지는 미국의 상황과 우리의 정치 지형을 단순 비교하는 데에도 무리가 있다. 또한 미국 보수진영도 백인민족주의, 글로벌 금융자본, 석유 등 산업자본, 패권주의 네오콘 등으로 다양한 세력이 서로 경쟁하고 협력하며 복잡한 지형을 그리고 있다. 딕 체니의 ‘선택’을 단순히 선악의 구도에서 보는 것도 무리이다. 그가 권력의 화신이 돼서 사익을 추구했을지언정 ‘테러’라는 괴물과 싸운다는 명분이 지배하던 시절이었다.

오히려 우리가 눈 여겨 봐야 할 것은 그들이 탄탄하게 구축해 놓은 ‘영원한 제국’의 초석들이다. 싱크탱크에서 이데올로기를 만들고 미디어를 통해 확산시키며 대중들을 유혹하는 구조가 탄탄하다. 오바마 8년에 ‘이단아’ 트럼프가 등장하며 네오콘이 많이 약화됐다고 하나, 이라크 전쟁의 조력자 마이크 펜스가 부통령을 하고 있고, AEI 부소장 출신의 존 볼턴이 여전히 백악관을 휘젓는 등 네오콘은 여전하며, 폭스뉴스채널의 영향력은 날로 확산 중이다.

영화 시작과 함께 아담 맥케이 감독은 관객에게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던진다.

“세상이 혼란스러워질수록 우린 코앞의 일에만 집중하고, 인생의 흐름을 바꿀 거대한 힘은 무시한다. 일하는 시간은 늘어나는데 월급은 줄어드는 사람들에겐 아무리 시간이 비어도 이런 화제는 질색이다. 복잡한 정부 이야기, 로비, 국제 무역 협약, 세금. 그러니 당연하게도 무던하고 관료주의적인 부통령이 득세한 것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그가 잡은 권력은 미국 역사상 찾기 힘든 강력한 것으로 역사의 흐름을 바꿔 수백만에게 영향을 끼쳤다. 그는 이 일을 유령처럼 해냈다. 대부분은 그가 누구인지 어디 출신인지도 모른다.”

영화 <바이스>는 우리에게 묻고 있다. 깨어 있는가.

김하영 / <피렌체의 식탁>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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