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에 부는 '소셜리즘' 바람. JP모건 CEO가 경계하고 나선 이유는
  • 세계 최고 자본가의 '자본주의 수정'에 대한 고민
  • 소득 불평등, 무너진 교육: 아메리칸 드림은 살아 있는가
  • 17~24세 미국 청년 70%, 비만과 당뇨로 군대도 못 가
  • "기업은 감세, 부자는 증세"
  • 최저임금 인상 대신 근로소득세액공제 확대를
  • 뛰는 등록금, 늘어나는 학자금 대출, 졸업 후 빚더미
  • JP모건 체이스의 '디트로이트 프로젝트' 성공 자신감
  •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지역 사회에 대한 투자로
  • 기업은 부자, 국민은 가난... 한국 현실은?
  • "한국에서 기업은 어떤 존재인가" 토론할 '진짜 자본가' 있나
[김하영 / 피렌체의 식탁 편집장]

최근 미국 최대 은행 JP모건 체이스(JPMorgan Chase)의 CEO 제이미 다이먼(Jamie Dimon)의 주주서한이 국내에서도 화제가 됐다. “美서 사회주의 유혹 막으려면 新마셜플랜 필요”(매일경제), “성공한 대기업 없이 부강한 국가는 없다”(한국경제)는 등의 제목으로 국내 언론에 간략하게 소개됐다. <한국경제>는 다이먼의 주주서한에 박병원 경총 명예회장의 발언까지 더해 “‘한국에서 기업은 어떤 존재인가’ 진지하게 토론해보자”는 사설까지 더했다. <한국경제>는 사설에서 “일자리와 국부(國富) 원천인 기업들은 최저임금 급속 인상, 획일적인 근로시간 단축 등 반(反)기업·친(親)노조 정책 탓에 해외로 내몰리고 있다”며 문재인 정부의 경제‧기업 정책을 비난했다. <매일경제>도 제이미 다이먼을 인용하며 “규제개혁과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이 시급한데 이를 대기업 특혜로 몰아가는 정서가 여전히 팽배해 있으니 답답할 뿐”이라고 정부를 힐란했다.

그런데 51페이지에 달하는 다이먼의 주주서한 내용과 JP모건 체이스의 사회투자 사례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렇게 ‘아전인수’식으로 아무데나 갖다 붙여도 되나‘라는 느낌이 들어 민망하다. JP모건 체이스는 미국 최대의 은행이다. 미국 최대이면 아마 세계 최대의 은행일 것이고, 그 회사의 CEO라면 세계 최고의 자본가일 것이다.(여기서 말하는 ‘자본가’는 단순한 ‘부자’와는 다른 의미이다.) 세계 최고 자본가가 자본주의를 지키기 위한 의견을 내놓는 것은 당연할 터. 그런데 그의 주주서한 내용을 보면 자본주의를 지키기 위한 노선 수정에 대한 수많은 고민과 집요함의 흔적이 녹아 있다. 대한민국의 ‘자본가’, 혹은 ‘자본주의자’들의 각성과 고민을 촉구하며 제이미 다이먼의 고민을 소개한다.

배경: 트럼프식 내셔널리즘과 샌더스식 소셜리즘... 자본주의의 길은?

다이먼은 주주서한에서 묻는다.

“자본주의 때문인가? 그렇다면 사회주의는 더 나은가?”

다이먼이 이렇게 직설적으로 묻는 이유는 최근 미국 내에 ‘소셜리즘’ 바람이 거세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소셜리스트의 아이콘으로 지난 대선에서 바람을 일으켰던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다시 대선 레이스에 뛰어들었고,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은 구글‧아마존과 같은 거대 테크‧유통 기업에 독과점법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하원에서는 코르테스와 같은 젊은 사회주의자들이 부각을 나타내는 등 미국에서는 젊은 층(밀레니얼), 민주당을 중심으로 ‘사회주의적 정책’들이 주목 받고 있다. 트럼프 집권 후 오히려 축소되는 사회 복지에 대한 반발이다.

다이먼의 ‘소셜리즘’ 비판은 이와 같은 현상에 대한 반응이다. 다이먼은 “사회주의는 필연적으로 경기 침체와 부패를 야기하고 권위주의적인 정부 관료들을 양산해 재앙이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그렇다고 그가 현재의 자본주의 시스템을 전적으로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규제되지 않는 자유방임적 자본주의의 옹호자가 아니”라는 다이먼은 “자본주의가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경제체제이지만 그대로 둬도 된다는 말은 아니다”면서 “강력한 사회 안전망을 갖추는 것은 필수적”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그는 이를 시장 경제와 사회 안전망을 성공적으로 결합한 ‘사회 민주주의’라고 부르며 국가가 생산 수단을 완전 통제하는 전통적인 사회주의와 구분하고 있다. 즉 과거 소련식의 국가 사회주의를 거부하는 것이지, 현대 유럽과 같은 사회민주주의까지 부정하는 것은 아닌 셈이다.

진단: 소득 불평등, 자본주의 이대로 두면 안 된다!

그의 이와 같은 인식은 현 미국 상황에 대한 분석과 인식을 기초로 한다. 다이먼의 주주서한의 한 대목이다.

“…미국은 자연의 축복을 받았다. 충분한 식량과 물, 에너지, 자연적 국경인 대서양과 태평양, 캐나다와 멕시코와 같은 멋진 이웃 등. 또한 건국의 아버지들로부터 특별한 선물을 받았다. 언론‧종교‧기업의 자유, 평등과 기회의 약속 등이다. 이는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경제로 이어졌다. 크고 작은 그리고 몇몇 뛰어난 대학과 활기찬 기업들을 육성해냈고, 혁신과 과학, 기술을 위한 환경이 조성됐다. … 물론 미국에는 항상 결점이 있었는데, 최근에는 소득 불평등, 임금 정체, 기회 균등 상실, 이민, 의료 접근성 부족 등이 이슈가 되고 있다. 나는 이에 대한 불평을 들을 때 반사적으로 거부하기보다는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중산층 소득이 수년간 정체되며 소득 불평등이 심해졌다. 미국 노동자의 40%는 시간당 15달러 미만을 받고 있고, 정규직의 5%는 최저임금 이하를 받고 있다. 생계를 이어가는 데 부족한 금액이다. 게다가 미국인의 40%는 의료비나 자동차 수리비와 같은 예상치 못한 비용을 처리할 400달러조차 갖고 있지 않다. 2800만 명 이상의 미국인은 의료보험이 전혀 없고, 이들 중 25%는 다양한 연방 지원 프로그램을 받을 수 있음에도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하고 있다. 교육 시스템을 통해 모든 미국인에게 평등한 기회가 부여된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그러면서 최근 미국 시스템 ‘결함’의 구체적 사례를 지적하며 대안까지 내놓고 있다. 한국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1. 비효율적인 교육 시스템다이먼은 불평등과 기회 부족의 가장 큰 원인으로 무너진 교육 시스템을 꼽고 있다. 지역별로 차이가 있지만 일부 도심 지역에서는 고등학교의 졸업률이 60% 미만이다. 고등학생 10명 중 4명은 중도 퇴학을 하고, 빈곤층으로 전락한다. ‘커뮤니티 칼리지’(지역 기반 전문대학)의 쇠퇴도 큰 골칫거리다. 커뮤니티 칼리지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역 장병들에게 무료로 교육의 기회를 부여했고, 전후 두터운 미국 중산층 형성에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최근 제조업 등 전통 산업의 쇠퇴와 기술 혁신에 따른 일자리 변화에 커뮤니티 칼리지가 따라가지 못하며 산업과 교육이 괴리되는 결과를 낳고 있다. 다이먼은 독일의 직업 교육 시스템을 예로 들며, 지역 기업과 커뮤니티 칼리지(또는 고등학교)가 산학 협력을 통해 직무 기술 훈련 프로그램을 만들고 인턴십 제도를 통해 적극적으로 기업에 필요한 인재를 육성하고 취업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이먼은 더불어 일부 국가에서 실시 중인 ‘3세 아동 의무교육(유치원)’을 도입해 보육 부담을 덜고 장기적 교육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2. 급증하는 의료비용미국은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의료비용이 두 배 이상이다. 그렇다고 의료 서비스의 질이 두 배 이상 뛰어난 것도 아니다. 문제는 비만과 같은 만성 질환이다. 비만은 심장질환, 당뇨, 암, 뇌졸중, 우울증과 같은 많은 질병을 유발한다. 전체적인 의료비 상승으로 저소득층은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미국은 모병제 국가인데, 군대에 지원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읽기와 쓰기 등 최소한의 기초 학력과 건강한 신체 조건을 갖춰야 한다. 그런데 17~24세 미국 청년층의 70%가 비만과 당뇨 등으로 인해 군 복무 부적격이라는 것. 다이먼은 불투명하고 불필요한 의료 서비스 체계를 개선해야 하는 한편, 특히 학교에서 건강과 영양에 대한 교육을 강화하고 운동을 가르쳐 질병을 예방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3. 규제 완화다이먼에 따르면 과도한 규제로 인해 미국은 중소기업 창업이 30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한다. 이는 경기 침체에 의한 것인지 규제에 의한 것인지 논쟁의 소지가 있지만, 수많은 서류 등 행정 비용이 높다는 것만은 공통된 인식으로 보인다. 다이먼은 ‘훌륭한 규제’까지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미국 최대 은행 CEO 답게 모기지 시장 규제는 보다 완화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담보가 부족한 저소득층이 대출 규제로 인해 적절한 기회를 제공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이먼은 금융위기 이후 10년이 지난만큼 리스크 관리가 가능한 범위 안에서 대출 규제를 완화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JP모건 체이스는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 때 무분별한 모기지의 위험을 미리 간파해 살아남아 미국 최대 금융기관이 될 수 있었다.

4. 인프라 투자다이먼이 흔히 하는 말이 있다. “달에 사람을 보내는데 8년이 걸렸지만, 지금은 새로운 다리 하나 건설하는 데도 10년이 걸린다.” 다이먼은 “미국은 고속도로, 교량, 공항, 상하수도 등에서 뒤쳐져 인프라 상위 20개국 순위에도 못 들게 됐다”며 “인프라 투자를 통해 일자리 창출과 경제 성장을 촉진하면 1달러 투자에 4달러의 수익을 얻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예로 독일과 캐나다의 대규모 인프라 투자를 들고 있으며, 연방과 주, 지역으로 분산돼 있는 심사를 단일화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5. 감세다이먼은 두 가지 감세를 이야기한다. 첫째는 ‘기업 감세.’ 다이먼은 “지난 20년 동안 전세계가 세율을 낮추는 동안 미국은 그렇지 않았다”며 “자본 투자가 감소하고 생산성이 저하되며 임금 정체를 낳았다”고 비판했다. 다만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법인세 감세 등이 실시됐고 다이먼은 이로 인해 기업의 투자와 고용이 증가했다고 평가했다. 둘째는 ‘근로자 감세.’ 다이먼은 ‘근로소득세액공제(EITC)’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미국 근로인구 1억5000명 중 2100만 명이 시급 7.25~10.10달러를 받고 있다. 이는 맞벌이를 해도 생계를 유지하기 힘든 돈이다. 다이먼은 “최저임금 인상은 실업률이 증가하지 않게 국지적이고 신중하게 이뤄져야 한다”며 “근로소득공제가 더 효과적”이라고 했다. 다이먼에 따르면 시급 9달러(연간 환산 2만 달러)를 받는 아이 둘의 미혼모는 연말에 5000달러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는데, 자녀가 없는 남성은 세액 공제를 받지 못한다. 다이먼은 모든 저소득 근로자에게 근로소득세액공제를 극적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고 다이먼이 최저임금 인상에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다이먼은 “행복한 직원이 고객들을 행복하게 한다”며 12~16.50달러이던 JP모건 체이스 2만2000명의 직원들의 시급(지역별로 다름)을 지난해 15~18달러로 인상했다. 다이먼은 또한 무조건 감세만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교육과 인프라 투자에 들어가는 재원을 위해 “부자들에게 더 많은 세금을 부과하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며 “이로 인해 사회와 경제가 개선된다면 혜택은 부자들이 얻게 될 것”이라고 한다. 즉 기업 활동의 자유를 높이되 부자들의 사회적 책임은 강조하고 있다.

6. 변덕스럽고 낭비적인 소송 시스템미국은 소송의 나라다. 그런데 도가 지나쳐 ‘낭비’ 수준이라는 지적이다. 다이먼에 따르면 미국의 소송비용은 GDP의 1.6%로, OECD 평균(0.6%)보다 거의 세 배에 달한다. 다이먼은 대안으로 소송 사전 심리 강화, 분야별 전문 법원 을 통한 소송 시간과 비용 감축을 주장하고 있다.

7. 이민트럼프 정부 들어 미국 국내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다. 다이먼에 따르면 과학과 기술, 수학 분야에서 박사 학위를 받는 외국인 유학생 40%(매년 약 30만 명)가 비자를 못 받아 미국을 떠나고 있다. 이러한 추세는 점점 더 강화되고 있다. 주로 멕시코 국경을 넘는 저소득 불법 이민자는 물론이고, 주로 IT/테크 등 전문직 분야의 인재들을 끌어들이는 H-1B 비자 거부율이 올해 1분기 3분의1에 달했다. “미국에서는 미국 제품과 미국인 고용을”이라는 트럼프 정부의 정책 기조 때문이다. 다이먼은 초당적인 합의를 촉구하고 있다.

8. 노동 시장의 문제다이먼에 따르면 1990년대 중반 최저임금을 받는 근로자 중 20%만이 1년 후에도 최저임금을 받는 직장을 갖고 있었으나, 최근에는 60%가 여전히 최저임금 상태에 놓여 있다. 다이먼은 근로소득공제를 확대해 실질 소득을 올려주고, 직무 기술 교육을 통해 더 나은 일자리를 가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전과자의 취업 제한을 완화해 재기의 기회를 부여하고 오피오이드(opioids: 마약성 진통제) 중독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9. 학자금 대출다이먼에 따르면 학자금 대출이 1000달러 증가하면 졸업 후 주택 소유율이 1.8% 감소한다. 학자금 대출이 졸업 후에도 막대한 부담으로 남아 경제 활동을 제약한다는 것이다. 이는 치솟고 있는 대학 등록금과 연관이 있다. 미국 가계의 연소득 중간값은 6만1000달러인데, 4년제 사립대학 등록금은 연 5만 달러를 훌쩍 넘었다. 지난 10년 동안 정부의 학자금 융자 규모는 5배 커졌다. 다이먼은 ‘비전문가적인’ 정부의 직접 대출이 부실 금융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다이먼은 더불어 학자금 대출 경감 프로그램을 만들 것을 제안한다.

10. 적절한 예산 편성 및 계획다이먼은 정부가 예산을 편성할 때 장기계획을 갖고, 정책 효과가 어떤 것인지를 국민들에게 설명해야 하며, 민간 부분과 같은 방식으로 비용과 편익 분석을 철저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내가 하루 왕이 된다면: 교육과 인프라!

다이먼은 “내가 만약 하루 동안 왕이 된다면, 국민들의 장기적인 건강과 성장을 극대화하기 위해 인프라와 교육에 투자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이먼이 매년 주주서한을 통해 ‘공공정책’에 관한 과감한 의견을 낼 수 있는 것은 직접 사회 개발에 투자해 성공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 실전 경험을 바탕으로 ‘교육과 인프라’를 과감하게 내세우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디트로이트 프로젝트(Invested in Detroit)다. 자동차 산업의 쇠퇴와 함께 2013년 파산을 선언한 도시 디트로이트 재건을 위해 2014년부터 지금까지 1억5000만 달러(약 1700억 원) 이상을 투자해오고 있다.

다이먼의 철학은 이렇다.

“일자리가 없으면 집을 가질 수 없다. 반대로 집이 없어도 일자리를 구하기 힘들다. 또한 취업에 필요한 기술이 없으면 일자리도 없고 집을 살 수도 없다. 모든 측면이 유기적으로 이어져야 한다.”

JP모건 체이스의 지역 사회 개발 투자는 중소기업 지원, 직무 기술교육, 지역 개발, 재무상담 4가지 분야가 동시에 진행된다. JP모건 체이스는 디트로이트에서 1만5000여 명에게 새로운 기술 교육을 제공했고, 1800개 이상의 중소업체를 지원했으며, 2000개 이상의 일자리를 만들어냈다. 도시재생사업에도 많은 투자를 했다. 비어 있는 백화점 건물이나 학교를 1층에는 레스토랑과 커피숍 등 상업시설이, 2층 이상에는 사무실과 주거 공간으로 꾸민 주상복합건물로 리모델링하는 등 주거 환경을 개선에 투자하고 있다. 이를 위해 JP모건 체이스는 디트로이트 시정부 및 지역 비영리단체와 협업 시스템을 만들어 투자금이 가장 효율적으로 집행될 수 있게 했다. 소규모 창업도 적극 지원했다. 담보가 없어 은행권에서 대출을 받기 어려운 저소득층을 지원했다. 특히 소수 인종을 우선적으로 지원했다.(Entrepreneurs of Color Funds · EOCF) 투자도 단순 기부 형태가 아니라 대출 등 최대한 투자 형태를 유지하고, 재무상담을 적극적으로 해 수익이 재투자 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고 있다. “물고기를 주지 말고, 물고기를 잡을 수 있는 낚싯대와 피시앤칩스 레스토랑을 창업할 초기 자금을 지원”하는 것이다. 물론 JP모건 체이스 혼자만의 노력은 아니었다. 모기지 업체인 퀴큰론(Quicken Loans)과 부동산 개발업체인 베드록 디트로이트(Bedrock Detroit)는 100여 개 이상의 부동산을 매입해 재개발했고, 도심 한복판에 지상 트램 전차를 깔기도 했다.

그 결과 매년 1만 명씩 줄던 디트로이트 인구가 더 이상 줄지 않게 됐고, 고용 증가율도 2%로 미국 평균 수치를 넘어섰다. 무엇보다 소규모 창업을 지원한 덕에 다양하고 개성 넘치는 거리가 형성됐고, 최근에는 ‘르네상스 도시’라는 별칭을 얻어 소위 ‘힙’한 도시로 주목 받으며 관광객이 증가하고 있다. 자동차 산업이 번성하던 시절과는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인종 차별’의 대명사 같았던 도시가 다양성이 살아 있는 문화 도시로 탈바꿈되고 있다. 매력적인 도시가 되자 새로운 기회가 생기고 있다. 아마존 물류센터가 들어오고 마이크로소프트 미래기술연구센터를 유치했으며, 포드는 디트로이트의 미시간 중앙역을 매입해 미래자동차연구센터로 리모델링하고 있다. 구글은 웨이모 자율주행자동차 개조 공장을 짓기로 했다. 구글이 오자 전기차 및 자율주행 관련 기술 스타트업들도 실리콘밸리를 떠나 속속 디트로이트로 모여들고 있고, 이들을 따라 벤처캐피탈 업체들이 이전을 하거나 지점을 내는 등 새로운 활력이 생겨나고 있다. 결국 이들은 지역 최대 은행인 JP모건 체이스와 거래를 하게 된다. 다이먼은 디트로이트 투자가 결국 안정적이고 큰 수익이 될 것을 확신하고 있다.

다이먼은 디트로이트의 성공을 바탕으로 투자 모델을 시카고, 뉴욕 사우스 브롱크스(South Bronx), 캘리포니아 베이에리어(BayArea)로 확장한 데 이어 대서양 건너 파리 북부의 빈곤 지역인 샌느생드니(Seine-Saint-Denis)에도 투자를 결정했다. 여기서도 디트로이트와 마찬가지로 지역 사회와 협력해 직업 기술 교육과 중소기업 지원 프로그램을 실시할 예정이다.

미국은 ‘자본주의 재정립’ 논쟁이 한창인데

미국에서는 최근 ‘자본주의 재정립’ 논쟁이 한창이다. 제이미 다이먼의 주주서한 외에도 주식 투자로 억만장자가 된 레이 달리오 역시 최근 “자본주의가 재정립(reform)돼야 한다”고 나서며 논쟁을 달구고 있다. 배경은 명확하다. 미국에서 지난 30년 동안 상위 10%의 소득이 배 이상 증가하는 동안 하위 60%의 소득은 그대로라는 ‘소득 양극화’, 그리고 자녀 세대(밀레니얼)는 부모 세대(베이비부머)에 비해 소득이 절반 밖에 안 된다는 ‘저성장’ 국면 두 가지이다. 달리오는 “부자 대 다른 모든 사람들이 대립하는 극단적 구도가 미국 자본주의에 대한 실존적 위협이 되고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디즈니의 상속자 애비개일 디즈니 역시 “CEO들의 연봉이 너무 많다”며 연 500만 달러 이상 소득을 올리는 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걷어 저소득층 주거 및 사회 인프라에 투자하는 펀드를 조성하자고 제안하고 있다.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도 “대부분의 미국인들이 수입과 지출을 맞추기 위해 고군분투 하는 동안 갑부들은 특별한 세금 혜택을 누려왔다”며 부자 증세를 주장하고 있고, 마이크로소프트 빌 게이츠도 자본 소득에 대한 세율을 2배 이상 올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중산층에서 하위층으로 전락한 백인들이 트럼프를 탄생시켰다면, 저소득 일자리에 내몰리고 있는 밀레니얼들에게 민주당 일각의 ‘소셜리즘’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위기감을 느낀 제이미 다이먼이나 레이 달리오, 워런 버핏 같은 ‘진짜 자본가’들이 주도적으로 ‘자본주의 재정립’을 주장하는 형국이다. ‘효율성’을 무기로 공공정책의 영역까지 파고드는 자본가에 대해서는 더 깊게 토론할 여지가 있지만, 제이미 다이먼이 은행의 경영 철학 자체를 바꾸며 사회 투자를 확대하는 모습은 신선하다.

자 그렇다면 대한민국은 어떠한가. 우리나라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고 하면 생색내기용 재단 하나 만들어 자선 사업을 벌이거나, 정부의 압력에 마지못해 공장 하나 더 지어 자사 고용을 늘리는 정도로 인식되고 있다.

우리 기업들에게 고객이나 주주는 투명인간에 가깝다. 기껏해야 한두 장짜리인 주주서한은 언제나 ‘다가올 변화와 위기’를 운운하는 래퍼토리를 반복하며, 주주 배당에는 인색하고 사내 유보금만 잔뜩 쌓아 놓고 있다. 2018년 기준 10대 재벌의 사내 유보금은 759조 원이었다. 같은 해 국내 3700개 기업의 설비투자 규모는 181조 원이었다. 이 투자도 그나마 대부분 호경기였던 반도체이거나 노후 설비 개선에 쓰였다. 고용 없는 투자인 셈이다. 돈이 계속 쌓이니 기업의 예금은 해마다 늘어 가계 예금 증가율을 앞섰다. 소득 격차는 계속 벌어지고 있다. 중소기업 노동자의 임금은 500인 이상 대기업 노동자의 54% 수준이다.

제이미 다이먼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고객과 주주, 지역사회가 없으면 은행도 없다.”

<한국경제>는 사설을 통해 “‘한국에서 기업은 어떤 존재인가’ 진지하게 토론해보자”고 했다. 대환영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에 ‘자본주의’에 대해 진지하게 토론할 수 있는 ‘진짜 자본가’와 ‘진짜 자본주의자’가 있는지는 의문이다.

김하영 /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