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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올 청와대 대변인에게…

By | 2019년 4월 12일 | 정치

  • 대변인은 언제나 대통령과 함께: 카메라 앞에 서는 일은 대변인 일의 5%
  • 대변인이 반응을 잘해야 대통령 말이 신난다
  • “3번 카메라 뒤의 서기만 바라 보세요”
  • 눈빛 농도 조절로 대통령에게 전달할 수 있어야
  • 대통령 발언 미세조정 능력과 권한 행사해야
  • 문민 정치는 총과 돈이 아닌 말과 글로 집권
  • 대변인의 권위는 친소관계가 아닌 정확한 전달과 해석에서
  • 언론인보다 홍보맨 출신이 더 낫다

[김현종 / 피렌체의 식탁 발행인]

필자는 청와대 대변인을 취재원으로서, 때로는 같은 조직 내의 관계자로서, 뉴스 소비자로서 30년 정도 보아왔다. 그중에는 개인적 친분이 있는 사람도 있다. 최근 문재인 정부 3년차와 새 대변인 물색기를 맞아 청와대 대변인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본다.

청와대 대변인은 몇 가지 일을 동시에 수행한다. 대통령이 참석하는 회의와 행사에 같이 참석해 오간 얘기를 텔레비전 카메라 앞에서 기자들에게 전하는 것은 맨 마지막 일이다. 그의 첫 번째 업무는 모든 현장에서 대통령을 격려, 고무, 조절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 예컨대 총리, 장관, 비서실장, 수석은 회의와 행사 내용에 따라 참석할 수도 있고 안할 수도 있다. 그들은 그들의 일을 가지고 있다. 대변인은 모두 참석한다. 대변인은 대통령과 함께 하는 게 업무의 절반 이상이다. 대통령과 대변인은 상하관계이지만 서로 간에 한명 밖에 없는 ‘발언을 통한 업무공간의 공유자’다.

대통령은 대개 비서진에서 준비한 원고를 가지고 말을 하지만 즉석 발언이나 반응도 많다. 어떤 경우든 대통령은 대변인을 의식하며 말과 표정에 영향을 받는다. 이때 반응을 잘해야 대통령이 신이 난다.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동의를 받을 때 말과 표정은 좋아진다. 만일 대변인을 의식하지 않는 대통령이 있다면 그 대통령은 독불장군이다. 대변인 입장에서는 자기 업무영역을 지키지 못하는, 노마크 슈팅찬스를 수시 허용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대변인은 이처럼 대통령을 상황에 따라 순간적으로 치어 업(cheer up)하는 일이 으뜸가는 역할이다. 정국이 불안정하고 불투명할 때 특히 그렇다. 대변인은 대통령 앞에 놓인 환경이 불안정하고 불투명할 때 대통령 또한 일반인처럼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대통령도 사람이다. 참모들은 대통령이나 대통령 후보에게 “발언하실 때 카메라를 보고 얘기하라”고 하지만 그건 리더의 가슴 속에 들어가 보지 않은 ‘무례한’ 조언이다. 카메라는 반짝이지만 차갑다. 사람은 사람의 얼굴, 그것도 매일 보는 친근한 사람의 얼굴을 보고 얘기할 때, 아울러 그가 표정으로, 눈짓으로 자기 말에 동조해줄 때 말이 잘 나온다. 노무현 대통령이 민주당 후보로서 TV토론을 치를 때 TV토론팀에서는 팀의 서기 역할을 하던 친구를 중앙의 3번 카메라 뒤에 앉혀놓았다. “이 친구만 바라보고 발언하시라”는 주문과 함께. 이 방법은 마음이 불안한 리더들의 현장 치유책으로 지금도 쓸 만하다. 참모, 특히 대변인은 이런 것까지 감안할 수 있어야 한다.

진화한 대변인은 아주 미세한 의사표시로, 동조하는 눈빛의 농도 조절을 통해 대통령에게 수위 조절을 주문한다. 단 주인공이 놀라 흔들리지 않는 범위 내에서의 미세 조정이어야 한다. 누상에 나간 주자와 런너코치, 또는 현장에서의 판단력 코치라고 할 수 있다. 클린턴이나 오바마, 트럼프 같은 탤런트형 대통령은 카메라를 보고 연기에 가까운 언행을 하지만 그건 어려서부터 토론과 연설을 통해 다져진 미국 대통령 얘기다. 트럼프만 해도 ‘어프렌티스(Apprentice)’를 통해 방송인으로 이미 자리 잡았던 사람 아닌가.

둘째로 대변인은 대통령 발언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미세조정의 능력과 권한을 행사할 줄 알아야 한다. 대통령의 발언에 오류나 보완이 없다고 생각하는 대변인은 소신과 능력이 의심된다. 평면적으로 나열형 전달에 그친다면 그는 배달부다. 예수의 말은 바울의 재해석과 숱한 공의회를 거쳐 성경이 되었고, 석가의 말 또한 가섭을 필두로 한 여러 제자와 왕들의 결집(結集)을 통해 불경이 되었다. 하물며 현실 속에서 현실을 얘기하는 대통령의 말이 늘 올바르거나, 정확하거나, 현재 시각의 합당성을 100% 함유했다고 할 수 없다. 대통령의 말은 2시간 전에 있었지만 그새 새로운 상황이 돌발, 추가, 삽입되었을 수 있다. 흑을 백이라고 하면 안 되지만 채도와 명도를 한두 클리크 이동시키거나 한두 마디를 추가해 대통령의 말을 늘 때에 맞게 리뉴얼할 줄 알아야 한다. 매번은 아니겠지만 필요하면 간단한 전화 한통으로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야 한다. 그런 관계가 되어야 한다. 철이 산소와 만나면 서서히 산화하듯이 말 또한 공중에 나온 순간부터 낡아 가는데 이걸 리얼타임으로 따라잡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그게 대변인의 일이다.

영국에서 유래한 개념으로 스핀 닥터(spin doctor)가 있는데 대변인의 역할은 그러한 스핀 닥터라기보다 ‘순간 보정자’에 가깝다. 일해 본 사람은 알지만 큰 걸 고치기보다 작은 걸 고치기가 더 어렵다. 대변인은 그걸 매일 직업으로 해야 하는 사람이다. 본질을 건드리지 않으면서 더 맛있게, 멋있게, 꽂히게 해야 한다. 민간인 출신 정치인은 총과 칼, 돈이 아닌 말과 글을 통해 집권한다. 대변인은 그런 집권자의 말이 계속해서 싱싱한 꽃다발처럼 보이도록 눈에 보이지 않게, 맥락을 건드리지 않으면서, 조력해야 한다.

대통령과 함께 있을 때와 언론 앞의 대변인은 같은 사람이지만 페르소나가 다르다. 대통령과 함께 있을 때가 조신하면서도 다정한 동생처럼 처신한다면 언론 앞에서는 대변(代辯)의 권위가 있어야 한다. 권위는 정확한 전달과 틀림없는 해석을 통해 생겨난다. 김대중과 박지원의 관계가 그랬다. 대통령을 격려하기 위해 미세 조정하기 위해 보냈던 달콤한 눈빛은 언론 앞에서 거둬야 한다. 그렇다고 대통령을 대신해 다투는 게 대변인의 일은 아니다. 그런 일은 더 큰 틀에서 이루어져야지 기자실에서 기자들과 갈등하는 건 잘하는 일은 아니다. 특히 대통령이 언론을 자신 없어 하거나 감정으로 대할 때 대변인은 그 반대편에서, 자신 있게, 이성적으로 일해야 한다. 이게 대통령과 대변인의 바람직한 2인3각이다. ‘모택동 하기’보다 ‘주은래 하기’가 훨씬 힘든 법이다.

대변인의 덕목에서 관계형성 및 유지능력은 전공이 아니라 기본이다. 요즘은 기업에서 사람을 뽑을 때에도 능력보다 품성,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더 중히 여긴다. 하물며 대변인이 먹는 욕은 대변인이 아니라 대통령에게 돌아간다.

관계를 잘 유지하는 사람은 기자들에게 무조건 잘해주는 사람이 아니라 판단과 평가에 절도가 있는 사람이다. “칭찬과 꾸중은 정확하고 현실적이며 객관적이어야 한다.” 어느 여성 CEO의 책상에 있는 구절이다. 대변인이 CEO는 아니지만 언론인들과의 관계에 있어 감사, 또는 항의의 뜻을 표현할 때 필요한 자세라 할 수 있다. 정확할 것, 현실적일 것. 객관적일 것.

아마도 이보다 더 필요한 능력은 대변인과 기자라는 프로 직업인들끼리의 세계에서 대등함의 확보일 것이다. 갑의 자세도, 을의 자세도 마땅찮다는 뜻이다. 직업으로 치면 늘 사물과 사람을 재단하고 평가하는 직업 출신은 바람직하지 않다. 판사나 앵커, 펜기자 출신을 말함이다. 당료나 공무원 출신, 나아가 광고회사나 여론조사 회사, 공-사기업의 홍보실장 출신이 더 낫다고 본다. 어느 직업에 종사했든 누군가를 ‘모셔본’ 경험이 중요하다. 굴종 유경험자가 아니라 조화 유경험자가 필요하다.

청와대 대변인은 사실상 대통령 대변인이다. 보이는 것보다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보이지 않는 많은 일을 해야 한다. 그의 업무에서 세상 사람들의 눈에 노출되는 것은 5% 정도다.

김현종 /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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