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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트남을 형제국가 삼자
  • 주변 4강만 보기에 한국은 체급이 달라졌다
  • GFECA를 제안한다
  • 베트남에도 '개인'이 크고 있다: 불붙은 성장
  • '베트남 편중론'은 시기상조: 권역 거점으로 아직 매력적
  • 충효 유불교 국가 친연성 강점
  • 처음이지만 익숙한 나라
[김현종 / <피렌체의 식탁> 발행인]

1. 베트남을 형제국가 삼아 교류협력의 새 틀을 모색하자

지난 주말부터 3박4일의 짧은 일정으로 베트남의 옛 수도 사이공, 지금은 호치민으로 불리는 남부의 경제 거점도시를 다녀왔다. 피렌체의 식탁이 대안 중심 매체임을 감안해 대안부터 말하자면 인구 1억, 평균 나이 30세의 청년국가 베트남과 향후 100년을 바라보고 형제국가의 인연을 맺기를 제안한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우선 한국을 둘러싼 인접 국가들과의 관계가 영 편치 않는 요즘 정세와 관련이 있다. 중국은 큰 덩치에 야심만만한 청소년 같고, 일본과는 역사의 상처를 아직 해결하고 있지 못하고 있으며, 러시아는 극동이라는 꼬리를 붙잡고 얼마나 교류협력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태평양 건너의 미국은 한국을 스무 명 중의 하나쯤으로 대하며, 다소 위력적이다. 서서히 은원의 비중이 변화하고 있다.

반면 한국의 위치는 이미 세계 10위권을 지나가고 있다. 경제력이나 인구력, 문화력 모두 상위권이다. 한반도 주변 4강을 외교, 국방, 경제, 문화의 교류 상대로만 보고 국가를 운영하기에는 너무 많이 커졌다. 체급이 달라지면 처신도 달라져야 하고 이웃도 더 널리 사귀어야 하고 사회운영방식도 새로 도입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베트남을 생각해보면 FTA 자유무역협정을 뛰어넘어 ‘전반적 자유교류협력협정(General Free Exchage and Cooperaion Agreement, GFECA)’을 맺으면 어떨까. 제도가 없으면 만들면 된다.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북한에 대해 보이고자 하는 성의와 노력, 협력과 혜택을 30~40%쯤 베트남에 적용하면 된다. 이처럼 베트남을 배려하고자 하는 까닭은 한국은 무역중심 국가로서 주요 권역별로 해외 거점국가가 몇 필요하며, 베트남과는 유교적 가치관, 한자 문화권을 통해 문화적 친연성이 높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 나라는 젊고, 활력이 넘친다. 하고자 하는 의지와 국가적 자존심이 적절한 수준으로 보인다.

메콩 삼각주
호치민의 서남쪽에 있다. 중국에서 발원해 내려오면서 풍부한 수량을 자랑한다. 인도차이나반도의 동남쪽에 위치한 베트남은 물 부자 나라다. 메콩 삼각주에서 생산되는 쌀의 양은 베트남 전체 생산량의 45%쯤인 1천1백만톤에 이르며 이 생산량만으로도 한국과 일본의 쌀 생산량 합계보다 많다.(김현종)

적당히 떨어진 거리에 있는 선진-중진국이 바람직한 협력관계를 맺은 사례는 세계적으로, 세계사적으로 잘 보이지 않는다. 사실 이 점이 도전의지를 불붙이는 대목이다. 전쟁에 없어진 세상에서, 상호 영토적 욕심 없이, 국가와 국가가 형제의 관계를 맺고 상호보완의 이점을 나눈다는 것은 평화기 외교의 극치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의 사례로 보면 독일과 터키는 2차 대전 후 부터 독일의 노동력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게스트워커를 받아들이면서 터키사람 700만 명쯤이 독일에 거주하며 독자적 종교와 문화, 집단거주 형태를 유지한다. 이는 터키의 일방적인 노동력 수출에 해당한다. 독일인 입장에서 이슬람교를 믿는 터키 사람을 오래 거주했다는 이유만으로 독일국민으로 인정하기 어렵다. 한 베트남관계는 유교와 불교라는 친연성이 있다는 점에서 여건이 좋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독일 내 터키인들처럼 한국 내 베트남인들이 게토를 형성하고 거주하기는 바라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경우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요즘 국경 장벽으로 화제가 되고 있는 미국-멕시코 관계는 어떨까. 이 두 나라는 물리적 거리가 너무 가까워서 제도를 통한 통제가 어렵다는 점이 있다. 백인 중하류층에 기반한 트럼프의 신 만리장성 구상도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다. 멕시코는 미국경제의 하부기지화가 심하다. 두 나라 국민은 교육수준과 성취동기도 차이가 크다. 한-베트남 관계는 적절한 물리적 거리, 둘 다 교육을 통한 상승을 꿈꾼다는 점에서 미-멕시코 관계보다는 확장 가능성이 있다고 하겠다.

프랑스 내 알제리인 공동체, 영국 내 인도인 파키스탄인 중국인 등 다문화사회, 일본과 일본 내의 한국인, 중국인 사례 역시 한 베트남의 미래와는 다르다. 이들 국가의 소수사회는 식민 통치의 산물이다.

2. 오토바이 행렬에서 개인을 보다

오토바이로 가득 찬 베트남 거리(위키미디어)

베트남에는 오토바이가 많다. 1억 인구에 등록된 오토바이만 4300만 대(2016년 기준)라니 두 사람 당 한대 꼴이다. 많이 들은 이야기지만 출퇴근길이나 주말 저녁 시간대에 오토바이 행렬 속으로 운전하거나 걸어가려면 마치 거대한 송사리 떼 속을 뚫고 가는 느낌이다. 동행인은 “저 많은 사람이 다 배달의 민족도 아닐 것이고,,,”라며 우스개를 던졌다. 한국에서는 일단 배달용으로 타고 다니는 오토바이가 베트남에서는 생활용으로 자전거보다 흔하고 승용차보다 요긴해 보였다.

이번 여행에서 눈에 두드러진 건 여성들의 경우 얼굴에는 마스크, 허리에는 얇은 담요 같은 걸 두르고 탄다는 점이다. 자세히 보니 허리 뒤춤에 단추 같은 것이 하나 있다. 이런 차림은 햇볕에 그을리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다. 같은 동양인이면서도 얼굴 하얗고 키가 큰 한국 연예인에 대해 큰 동경이 있겠다 싶었다. 아마도 자외선 방지용 마스크나 포대기보다는 한류 같은 대중문화가 먼저 상륙하고 범람했을 것이다.

호치민이나 하노이의 아침이 오토바이 대열과 함께 시작한다는 뉴스는 거의 20여 년 전부터 봐왔다. 오토바이는 이제 이들에게 생활의 일부로 자리 잡았다. 생활의 편의 다음에 오토바이가 이들에게 미친 영향을 무엇일까 생각해보았다. 뭘 얻었을까?

편리성도 있지만 이동의 자유, 나아가 사생활의 자유라고 생각된다. 1990년대 자가운전 대중화 시기에 한국인들도 비슷한 자유를 얻었다. 현대 베트남 인들의 소득과 행동반경을 감안하면 오토바이는 출퇴근, 등하교, 아이 픽업 등의 용도와 함께 이웃 친지 방문, 근거리 여행, 모임과 친교, 데이트, 부모나 자녀 방문 등에 골고루 쓰일 것이다. 음주 오토바이 운전사고도 많다고 한다. 이동의 자유, 사생활의 자유는 어찌 보면 개인의 탄생을 의미한다.

1인당 국민소득 3000달러쯤의 개발도상국에서, 충과 효의 유교적 전통이 강한 나라에서 개인의 탄생은 뜻밖이었다. 밀물처럼 밀려왔다가 썰물처럼 흩어지는 오토바이 행렬에서 레밍을 연상하기는 쉽다. 1시간쯤 바라보고 있자니 그렇게만 보는 건 속단일 것 같았다. 이 오토바이들은 무질서 속의 질서를 유지하며, 차선과 인도를 구분하는 등 규칙적이라는 점에서 일체성을 읽을 수 있었지만 그게 다는 아니었다. 노선과 행선지, 목표와 느낌이 다 다른 개인들이었다. 얼굴 표정이나 옷차림, 체격, 피부색깔, 선호색상 등이 따로따로였다.

베트남의 개인은 어디로 향하는가. 신분상승 욕구로 갈 것 같다. 베트남은 제조업을 바탕으로 경제가 살아 있고 여성의 취업률도 낮지 않다. 돈을 벌면 처음에는 기쁘고, ‘탕진잼’을 누리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합리적 소비를 하고 싶고, 미래를 준비하고 싶어지는 게 사람이다. 베트남은 1990년대 초부터 대외개방 정책을 추진했지만 미국의 절차와 점검에 따라 21세기 들어서야 세계경제에 본격적으로 편입됐다. 그 사이 오토바이 사용을 생활화하면서 자본주의 수업을 착실히 밟은 사람들이다. 그리고 불이 붙었다. 교육을 통한 부의 축적, 교육이 지식이 되고 지식이 돈이 되는 사슬구조에 쉽게 편입될 것처럼 보인다. 공부를 중시하는 유교문화권의 전통도 있다. 하노이 대학, 호치민 대학 등 명문대 개념도 강하다고 한다.

지금은 삼성전자와 그 계열사가 베트남의 대외 수출액에서 27%를 차지한다. 즉 베트남의 수출은 임가공이거나 임노동 형태인 것이다. 현재는 외국인 직접투자(FDI)를 환영한다. (한국은 차관을 들여와 정부가 나눠주는 형식으로 국내 기업을 키웠다.) 머잖아 베트남 자체 기업들의 역량이 커지고, 합작 투자가 권장되고, 외국 유학파 베트남인들이 기용될 것이다. 그러면서 교육을 통한 신분의 세습, 당대 축적한 부를 과시하는 부동산 개발 붐, 외국에 견줘 미흡한 사회간접자본의 확충 등이 있을 것 같다. 부동산 개발 붐은 이미 한창이다. 상하이 푸동지구처럼 호치민 2군 지역을 신개발지로 조성하는 공사와 입주가 한창이었다.

3. 베트남 편중론과 집중론

기사 하나를 소개한다.

<신남방도 좋지만… 베트남 '편중'에 경고음>CBS노컷뉴스 홍제표 기자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0일 국무회의에서 "몇 가지 통계만 보더라도 아세안(ASEAN)과 인도는 우리의 미래가 걸려있다고 할 정도로 중요하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특히 베트남을 "이미 우리에게 중국과 미국에 이은 제3의 수출시장"이라 언급하는 등 신남방 전략을 거듭 강조했다.

실제로 지난해 베트남으로의 수출은 478억 달러로 2014년과 비교해 불과 3년 사이에 2배 이상 급증했다.

우리 제조업의 국가별 해외직접투자 비중을 보더라도 베트남은 2000년대 5.7%를 차지하던 것이 지난해에는 17.7%로 껑충 뛰어올랐다. 이 기간에 중국 비중은 44.5%에서 27.6%로 줄어들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22일 이런 내용의 발표자료에서 베트남의 투자유치 정책으로 우리 제조업의 해외투자 중심이 중국에서 베트남으로 옮겨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우리 수출 및 투자가 중국·미국 일변도에서 동남아 등으로 다변화하는 것 자체는 환영할 일이다.

미·중 수출 의존도는 2010년 35.7%에서 2017년 36.7%로 오히려 높아져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또는 사드(THAAD) 파동 같은 중국의 지경학적 리스크에 노출될 가능성도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대중국 수출은 2010년대 전체 수출의 25%에 이를 만큼 의존도가 심화돼 여러 우려를 불러왔다.

다만 탈(脫) 중국 다변화 전략이 이번에는 베트남 편중 현상으로 이어지는 것은 또 다른 차원에서 경계할 대목이다.

우리나라의 대베트남 누적 투자액은 192억 달러로 인도네시아(105억 달러)와 말레이시아(52억 달러), 태국(26억 달러)에 대한 투자액을 모두 합한 것보다 많다.

베트남 정부에 따르면, 한국은 지난 7월 현재 베트남에 유입된 해외투자의 18.5%를 차지하는 최대 투자국이다.

베트남 시장에서 중국, 일본 등 경쟁국과의 경합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않는 지혜가 요구되는 상황이다.

한국무역협회는 14일 발표한 '한·일 차이나플러스 전략 비교연구 및 시사점'을 통해 "베트남에 집중된 투자를 주변국으로 분산해 의존 리스크를 줄이고, 아세안경제공동체 출범 등 아세안의 경제통합 추세에 맞춰 역내 진출 전략을 재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보다 먼저 동남아 진출에 나선 일본도 처음에는 태국에 집중하며 거점으로 삼았지만, 점차 역내 분업체계를 구축하며 리스크를 분산한 것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

나는 이 기사의 관점에 절반만 찬성한다. 일본도 태국을 거점국가화하고 난 뒤에 확산전략을 구사했다. 권역 진출 전략에서 거점국가 마련이 알파요 오메가는 아니지만 필요하다. 비빌 언덕을 먼저 만들고 옆에 비벼야 한다. 균형발전은 발전을 이루고 난 뒤에 추구해도 늦지 않다. 바람직하기는 쌍방 간 인적 교류도 가속화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전체 인구의 2%쯤이 상대국 언어를 할 줄 알거나 경제활동을 하거나 교류하는 걸 1차 목표로 잡아볼 수 있다. 그 정도는 되어야 상호 거점국가, 형제국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은 100만 명, 베트남은 200만 명 수준이다.

호치민 시내의 야경
서울의 종로구에 해당하는 호치민시 1군 지역. 구도심으로서 여러 행정기관이 자리잡고 있다. 밤이면 젊은이들로 가득하고 차없는 거리도 운영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프랑스 식민지 시대의 도시계획에 따른 것이다. 개발로 인해 도심 설계 당시의 녹지공간은 많이 줄어들었다. (김현종)

4. 처음이지만 익숙한 나라

돌아가신 어머니는 밀수품 행상을 하셨다. 미제나 일제 물건을 가지고 다니며 교사나 공무원들에게 파는 걸로 이혼녀의 경제적 자립을 시작했다. 1970년대의 일이다. 어머니의 판매물품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파월 제대 장병이나 휴가 장병으로부터 사들인 소형 텔레비전, 라디오, 다리미 같은 가전제품이었다. 이문이 남았으니 팔았을 게다.

한국군의 베트남전 참전은 황석영의 <무기의 그늘>, 박영한의 <머나먼 쏭바강>, 안정효의 <하얀 전쟁>으로 한국 문학에도 일정하게 기록돼 있다. 어느 작품인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세 작품 중 하나에는 매일 삶은 계란 열 개와 오렌지주스 열 잔을 마셔야 직성이 풀리는 한국군 상사가 묘사돼 있다. 배고파서 갔고, 가난해서 간 전쟁이었다.

잊고 있던 베트남에 2019년에야 처음 갔다. 지구촌 40개 나라쯤을 2년 정도에 걸쳐 이리저리 돌아다녔지만 동남아시아는 처음이었다. 안가도 빤히 알 수 있는, 알고 있는 나라들이라고 미뤄놓았던 거다. 막상 보니 여러 느낌이 오락가락했다. 이들에게 한국은 되고 싶은 미래였고, 우리에게 베트남은 잊고 싶은 과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무엇보다 나라 전체에 힘이 넘쳤다. 한국이 빠르게 선진국으로 들어가며 잃어버린 활력과 의지, 초롱초롱하고 재빠른 눈짓, 몸짓이 거리에 넘쳐났다. 이런 나라와는 길게 보고 잘 사귀어야 한다. 한국도 이제 어른국가 아닌가.

김현종 /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