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종해 한국노총 광주지역본부 의장, 이용섭 광주광역시장, 문재인 대통령, 이원희 현대차 대표이사(왼쪽부터)가 31일 오후 시청 1층 시민홀에서 열린 '광주광역시-현대자동차 투자협약식'에 참석해 협약서에 디지털 서명을 마친 뒤 손을 맞잡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광주광역시

  • 정의선 부회장은 광주형 일자리 협약식에 왜 안 왔을까
  • ‘자동차로 매력적인 도시’, ‘미래 자동차 선도 도시’ 가야 하는데
  • 자동차 산업도시 포부가 임금협상으로 변질
  • 협약에 전기차 핵심 부품 공장 빠져
  • OO형 일자리 확산? 현대차 광주 공장 유치는 20년 노력의 결실
  • 4~5년 정치권력 업적이 아니라 기업의 고민 이해해야
  • 일자리는 일거리를 만들면 따라오는 것

오랜 기간 표류하던 ‘광주형 일자리’ 사업이 지난 1월 31일 협약식을 열고 닻을 올렸다. 이제 막 출항했을 뿐 아직 가야할 길이 멀다. 그런데 협약식에서 두 명의 주역이 보이지 않았다. 정의선 현대기아차 부회장과 신재형 전 광주시 자동차산업밸리추진위원회 상임부위원장(현 SeaNergy 대표)이다. 신 전 부위원장은 2018년 초 물러났지만 사실 이번 협약이 체결될 때까지 거의 모든 일을 추진해온 숨은 주역이다. 1~2년 진통을 겪다 이번 협약이 체결된 것 같지만 사실 지난 20년의 노력이 있었다. 신재형 대표를 만나 추진 과정과 소회, 아쉬운 점, ‘OO형 일자리’를 새로이 추진하는 다른 지자체에 대한 조언 등을 들어봤다. 1부에서는 이번 협약의 아쉬운 점과 제언을 인터뷰 형식으로 전하고, 2부에서는 20년에 걸친 현대차 광주 유치 과정을 구술 형식으로 엮었다. [편집자]

신재형 대표는 자리에서 물러났으니 그렇다 치고, 1월 31일 광주 협약식에 대통령이 참석하는 자리임에도 정의선 부회장 모습이 보이지 않아 의아했다.

“1960년대에 정주영 회장이 울산에 자동차 공장을 지을 때는 울산 시민들이 성공을 기원했고, 정몽구 회장이 1998년 외환위기 때 기아자동차를 인수할 때는 광주 시민들이 기아차의 회생을 기원하며 환영했다. 전해 듣기로는 정의선 부회장은 광주 새 공장 투자를 검토하면서 ‘가려면 크게 간다’, ‘가면 미래로 간다’고 말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정의선 부회장은 나름 과감한 결단을 내렸는데, 할아버지 아버지 때와는 달리 먹튀 취급을 하고 있으니 나라도 협약식에 가고 싶지 않았을 것 같다.”

광주형 일자리가 ‘반값 임금’이라고 노조 측이 거세게 반발했다.

“당초 2017년 12월에 협상을 마무리하고, 2018년 연초에 발표해 분위기 띄우고, 동계올림픽이 끝나면 바로 착공식을 하는 걸로 일정을 잡았었다. 그런데 그 해 현대차의 노사 임단협이 길어지면서 일정이 미뤄졌고, 그 사이에 광주시 내의 노조 측 목소리가 커지면서 임금 문제가 쟁점으로 떠올라 다시 협상하며 올해 까지 넘어 온 것이다.”

원래 합의된 임금안은 뭐였나.

“당초 합의안은 주 52시간 노동에 고졸 기준 초임 연 3000만 원 5년 보장이었다. 얼핏 보면 가혹한 조건 같지만, 여기에 청년내일채움공제 혜택이 3년간 2400만 원이니까, 연 800만 원을 더하면 실질 소득이 연 3800만 원이 된다. 그리고 주택 제공 등 각종 사회적 투자를 생각하면 가처분 소득이 그리 낮다고 볼 수는 없다. 일본의 기타큐슈에 도요타의 렉서스 생산 공장이 있는데, 나고야 공장보다 임금이 적다. 하지만 부동산과 물가가 상대적으로 싸기 때문에 고부가가치 고급 차종의 지속적인 생산이 가능했던 것이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에 취직했다고 보자. 강남역 주변 실평 5평도 안 되는 원룸 월세가 150만 원이다. 초임 4500만 원 받으면 뭐하나. 집세로 연 1800만 원 나가면 실질 연봉은 2700만 원이다.”

결국 이번 협약에는 주44시간 연 3500만 원으로 합의가 됐다.

“자동차 산업도시 광주를 건설하겠다는 계획이 신설법인 임금협상으로 변질됐다.”

임금 문제를 제하고 보면 신설 공장의 생산 규모와 품목 측면에서도 아쉬운 점이 많다는 지적이 있다. 윤장현 시장 시절에는 자동차 100만 대 생산 공장 유치가 목표였다. 이번 협약에서는 ‘경형 SUV 10만 대 생산 라인’ 밖에 안 보이는데.

“원래 30만 대 생산라인 두 세트를 주야 2교대로 돌리면 100만 대 캐파(capability)가 나온다. 이걸 목표로 했고 어느 정도 합의도 있었다. 그런데 10만 대로 축소시킨 것은 현대차 나름의 고민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배터리-모터-인버터 등 친환경 자동차 부품 공장이 빠졌다는 점이다.”

당초 합의에 친환경 자동차 부품 공장이 있었나.

“완성차 라인은 일단 경형 SUV로 하되, 배터리, 인버터, 모터 등 친환경 자동차 부품을 만드는 공장을 세우는 게 핵심이었다. 자동차 생산 라인의 조립 차종은 엔진과 미션만 들어내면 언제든 개편이 가능했기 때문에 차종이 경형 SUV로 결정된 건 큰 문제는 아니었다. 그래서 친환경 자동차 부품 공장이 핵심이었고 만족했던 것이다. 원래 모터와 인버터는 연간 10만 대로 시작해 30만, 80만 까지 늘리고, 배터리는 3만 세트에서 시작해 10만, 30만 까지 늘리는 계획이었다. 배터리는 다른 회사의 물량도 있기 때문에 모터, 인버터에 비해 적게 잡았던 것이다.”

현대차가 최근 수소차와 연료전지 생산에 큰 투자를 하기로 했는데, 그러고 보니 이 계획에서 광주가 빠졌다.

“수소 허브 도시는 2015년 광주가 이미 제시했던 것이다. 현대차에 ‘광주가 중앙정부를 설득해 수소 충전소 인프라를 까는 등 수소 허브 국가 대한민국을 추진할 테니 광주에 수소차 생산 라인을 세우자’는 제안했었다. 현대차도 수소차 연구를 활발하게 진행할 때이니 관심을 보였다. 그래서 광주시에서 예비타당성조사 사업으로 선정한 것도 ‘친환경자동차 클러스터’ 사업이었고, 수소 허브가 되기 위한 정책을 추진했었다. 그런데 친환경자동차 부품은 빠져 버린 것이다.”

원래 그림은 친환경 자동차 생산의 메카였던 건가.

“처음에 그렸던 그림은 ‘자동차로 매력적인 도시 광주’라는 더 큰 그림이었다. ‘미래 자동차’를 위해서 전기‧수소차와 빼놓을 수 없는 게 자율주행이다. 자율주행이 되기 위해서는 기술 발전 외에도 수많은 제도적 정비가 필요하다. 만약 자율주행차가 사고가 나면 자동차 소유주의 책임인지, 자동차 제작사의 책임인지, 자율주행 네트워크를 연결한 통신사의 책임인지 등 책임 소재를 가를 아무런 제도적 준비도 안 되고 있다. 자율주행이 제대로 되기 위해서는 도로와 표지판 등 교통 시설물도 모두 사물인터넷으로 연결이 돼야 하고, 고속도로, 일반도로, 국도, 시내 도로, 외곽 도로, 농로, 골목길 등등 다양한 테스트 환경이 있어야 한다. 이런 다양한 환경에 대한 테스트를 시행하고 조례 개선을 통해 제도에 즉각 반영할 수 있는 곳이 인구 150만의 도농복합도시 광주다. 광주가 이런 시스템을 갖추게 되면 현대차가 선도하고 전세계의 미래 자동차 개발 메이커들이 다 광주로 몰려 올 것이다.”

신재형 대표. ⓒ피렌체의 식탁

이건희 회장의 ‘수퍼카 콜렉션’ 유치도 추진했다던데.

“원스톱 자동차 쇼핑 테마 파크도 만들고 싶었다. 우리나라는 자동차를 구매할 때 영업사원이 보여주는 팜플릿을 보고 사는 구조다. 그러지 말고 광주에 대단위 자동차 쇼핑 단지를 건설해서 전 차종을 전시해서 직접 만져보고 시승해보고 구매를 할 수 있게 하는 거다. 1층에는 각 브랜드의 역사관을 만들고, 2층에는 신차를, 3층에는 브랜드 인증 중고차를 파는 거다. 누가 광주까지 와서 자동차를 구매하겠냐고 하지만, 자동차는 5년에 한 번 정도 구매하는 매우 신중한 일이다. 온 가족이 와서 자동차 구경도 하고 쇼핑도 하고 테마파크에서 즐기다가 차를 출고해서 몰고 집에 가는 거다. 코어 콘텐츠도 있어야 합니다. 이건희 회장 수퍼카 콜렉션을 기증 받아서 전시도 하고 시승도 할 계획이었다. 또 광주에서 해남까지 속도 무제한 테스트 도로도 만드는 거다. 지금도 신차를 집에서 받으려면 탁송료가 10만 원 넘게 붙는다. 이렇게 광주가 자동차 자체로 매력이 있는 도시가 돼야 자동차 산업도 탄력이 붙는 것이지, 단순히 공장 하나 유치하는 데서 더 나아가 이런 큰 그림을 그려나가야 할 것이다.”

기업 유치에 대한 지역의 경쟁이 치열하다. 이번에는 경기도 용인이 새 하이닉스 공장 후보지로 유력하다는 보도가 나와 타 지역의 반발이 크다.

“반도체 산업을 키우기 위해서는 고급 인력을 확보해야 한다. 조선 산업 같은 경우에는 바닷가에 있을 수밖에 없지만 솔직히 누가 지방에 가기를 원하겠는가. 기업들은 이런 현실을 잘 알기 때문에 최대한 수도권에 가깝게 있으려는 것이다. 기업의 속사정에 대한 이해와 자기 지역의 특성에 대한 검토 없이 지역의 요구만 내세우면 정치 싸움에 갇히고 기업들의 외면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하이닉스 팹 용인 결정은 잘한 것이다.”

광주형 일자리 협약 후 구미, 군산, 울산 등 타 지역에서 너도나도 ‘OO형 일자리’를 하겠다고 손을 들고 있다.

“이번 현대차 광주 공장 신설은 1~2년에 이뤄진 게 아니다. 내가 광주를 위해 현대차 관계자들 만나고 다니기 시작한 게 외환위기 직후 현대차의 기아차 인수 때부터다. 6만 대 수준이던 광주 기아차 공장 캐파를 62만 대까지 늘렸다. 20년 가까이 공부하며 비전을 세우고 사람들을 만나면서 설득하고 다녔다. 4~5년을 내다보는 정치권력이 100년을 내다보는 기업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시각 자체를 바꿔야 한다. 기업은 미래 자산을 어떻게 키울지 고민하고, 공무원들은 현재 자산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분배할까 고민하는 사람들이다. 고작 4~5년 보장해주는 인센티브로 100년짜리 투자를 할 기업은 없다. 기업에 특혜를 줘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기업이 진짜로 원하는 게 뭔지 파악하고 그 해법을 제시해야 실현 가능한 정책이 나온다.”

기업 투자 유치 사업의 본질이 뭘까.

“광주형 일자리의 본질은 임금을 싸게 하기 위한 게 아니다. 나는 노동이 존엄하지 않은 사회는 국가로서 존재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 하루 8시간 주 5일 열심히 일을 하면 의식주 등 자신과 가족의 생존 문제와 자녀 교육 문제에서 해방될 수 있는 시스템을 국가가 만들어 줘야 한다. 옛날에 우리나라 집값이 2000만 원 하던 시절에는 월급을 30만 원 받으면 누구나 집을 살 수 있었지만, 집 한 채가 10억이 된 사회에서는 월급을 400만 원 받아도 집을 못 산다. 국가와 지방정부가 기본 주거를 책임져야 한다. 그래서 광주가 그걸 해보자고 한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 기업의 투자를 유치한 것이다. 그게 사업의 본질이다.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해서 일자리가 생기지 않는다. 일거리가 생기면 그 결과로 일자리가 따라 생기는 거다.”

인터뷰 / 김하영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