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중심이 된 ‘사법농단’을 계기로 촉발된 사법(법원)개혁 논의가 김경수 경남도지사에 대한 판결을 계기로 거대한 파도가 돼 상륙했다. 이 파도는 사법개혁 논의를 수면 위로 끌어 올릴 수 있을까? 이범준 경향신문 사법전문기자는 1부에서 사법이 정치화된 원인에 대해 설명했다. 2부에서는 '사법농단' 사태의 배경이 된 '정치의 사법화'에 대한 이야기이다. <편집자>

[1부(사법의 정치화) 보기]

2부: 정치의 사법화법원은 ‘정점’이 아니라 ‘최후’여야 한다

사법부와 관련된 문제 중 다른 축의 문제는 ‘정치의 사법화’다. 우리나라 정치권이 갈등을 지나치게 사법부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사실 새만금 개발 논란이나 행정수도 이전 문제 같은 정책 사안도 정치적 갈등 조정이 아니라, 사법부의 판결과 결정으로 종결돼 버렸는데.

“법정에서 대법관이나 헌법재판관들이 준엄하게 선고하면 그럴 듯 해 보이지만, 그 다음날부터 해당 사안에 대한 논쟁이 아예 중단되는 것을 보고 굉장히 후진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할 일을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 받은 적이 없는 법관들의 결정에 그냥 끝내버리는 게 과연 옳은 일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얼마 전 미국 스티븐 브라이어 연방대법관을 인터뷰 할 때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한국은 온갖 사회적 문제가 법원에서 종결된다’고. 질문을 하고 ‘아차’ 싶었다. 사실 미국은 동성결혼 등 연방대법원이 다 결정하지 않나. 대법관 임기도 종신이다. ‘엉뚱한 사람에게 물어봤나’ 싶었는데, 브라이어 대법관의 대답은 ‘법원은 법원이 할 일을 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헌법에 인종차별을 금지한다고 그 즉시 인종차별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마틴 루터 킹 목사 같은 사람들이 거리에서 데모도 하고, 저널리스트들이 계속 문제제기를 하는 기사를 쓰는 등 다양한 분야에서 문제를 바로 잡기 위해 활동하면서 사회가 변화는 것인데, 법원이라고 빠질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입법부가 민의를 모아 법률을 만들고, 행정부가 집행을 하다가 안 되거나 문제가 생기면 사법부가 ‘최후의 심판’을 할 수 있지만, 이는 ‘최후’여야 하는 것이지 정책이나 정치적 결정의 ‘정점’에 있어서는 안 되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사법부는 정점에 올라 있다.”

‘정치 사법화’의 또 다른 축은 검찰이다.

“과거부터 권력을 유지하고 작동하는 방법을 보면, 박정희 정권 때는 군대가, 전두환‧노태우 정권 때는 경찰이 지탱해 오다가 김영삼 정권 때부터 검찰이 정권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역할을 해왔다. 어느새 우리 사회는 정치적 올바름을 검찰에서 판가름 받고 있다. 그렇다면 인사권을 가진 여당에 당연히 유리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꼭 그렇지는 않다. 노태우‧김영삼 정권 때까지만 해도 검찰을 이용해 자신의 권력을 공고화 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검찰은 ‘미래의 권력’에 충실한 집단이다. 모든 정권은 집권 4~5년차가 되면 검찰의 공격을 받았다. 사실상 권력을 검찰에 갖다 줘서 우리 사회의 심판자가 되게 했다.”

‘사법농단’으로 인해 검찰 개혁 논의는 사라진 것 같다.

“이번 사태로 가장 득을 본 곳이 검찰 같다. 문재인 정권 초반에만 해도 곧 문을 닫아야 하는 줄 알았는데. 하루아침에 이야기가 사라질 줄이야.(웃음)”

문재인 대통령은 검찰 개혁에 적극적이었던 것 같은데.

“문재인 대통령은 검찰 개혁에 관한 책도 냈고, 검찰 개혁에 관한 아이디어가 많은 사람이 조국 민정수석이다. 다른 중차대한 일이 많아서라고 생각하고 싶다. 사실 검찰 개혁이 쉬운 일은 아니다. 남북관계나 경제 문제에 비해 집권 5년의 성과로 내기에는 들어가는 에너지에 비해 성과가 작은 일이다. 공수처 등 개혁안을 내놓으면 엄청난 논쟁이 붙을 텐데, 정책 우선순위에서 밀렸을 거로 본다. 수험생으로 치면 공부해야 할 양과 난이도에 비해 배점이 작은 시험 과목 같은 거다.”

실종된 검찰개혁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로스쿨 도입 등 사법개혁이 주요 아젠다로 추진되기도 했었고 성과도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본인이 판사, 변호사를 하던 시절에 느낀 여러 문제를 개혁하고 싶었던 것 같다. 노 대통령이 사법시험 합격할 때만 해도 아주 소수의 인원만 선발하던 때인데, 법조계가 서울법대 출신, 그것도 모자라 경기고까지 나와야 이너서클이 되고, 나머지는 이류, 삼류 취급하는 분위기를 부조리하다고 봤던 것 같다. 그런 기득권을 해체하기 위해 (지금은 논란이 있지만) 로스쿨 등을 도입해 학벌을 없애고 법조인 배출 수를 대폭 늘렸다. 또한 당시에는 ‘더는 할 게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이용훈 대법원장이 공판중심주의 등 사법개혁을 많이 추진하기도 했다.”

사실 그 후로 이명박, 박근혜 정부 10년 동안은 사법개혁에 관한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그랬던 것 같다. 진보 진영에서도 검찰 개혁에 관한 논의는 많았지만 법원에 대해서는 ‘이 정도면 잘 가고 있다’고 봤던 것 같다. 다만 ‘판례가 보수화 되고 있다’는 정도의 생각은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도 김인회 교수와 함께 <검찰을 생각한다>는 책을 낼 정도로 검찰개혁에 대한 관심은 많았지만 법원에 대해서는 그런대로 잘 가고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 2009년에 헌법재판소에 관한 책을 쓰면서 문재인 대통령을 인터뷰한 적이 있는데 그 때도 엘리트 법관에 의한 ‘판례의 보수화가 문제’라는 정도의 인식만 있었던 것 같다. 사실 법원 내부에서 이 정도까지의 일이 벌어지고 있으리라 생각한 사람들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실현 여부를 떠나 검찰에 대해서는 개혁 논의가 계속 있었지만 법원에 대해서는 개혁 논의가 아예 실종되면서 사법농단 사태에까지 이른 것 같기도 하다. 법원에 대한 개혁 논의도 다시 시작돼야 할 것 같은데. 재판 업무 과중에 관한 문제는 여전하다.(인구 10만 명당 판사 수는 독일이 약 25명, 미국이 10명인데 비해 한국은 5명 수준이다. 판사 1인당 연간 사건 수도 한국은 609건으로 독일(210건), 미국(416건)은 물론 일본(353건)에 비해서도 많다.)

“1차적으로는 판사를 늘려야 하는 것은 맞다. 인구에 비해서도 판사 수가 적고, 판사 1인당 사건도 매우 높은 편이다. 다만 판사를 늘린다고 무조건 해결될 문제만은 아닌 것 같다. 그보다는 우리 사회가 법원 외에 분쟁을 해결할 시스템이 부족하다는 점을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예를 들어 내가 5000만 원의 전세금을 못 받게 된 상황이 생겼다고 하면, 소송을 걸 때는 ‘5000만 원을 반드시 받아내겠다’는 생각 외에 ‘누가 나쁜 놈인지 가려보자’는 심리가 깔려 있다. 외국에는 ADR(Alternative Dispute Resolution: 대체적 분쟁 해결)이라고 해서 법원이 아닌 민간 영역에서 화해와 조정, 중재, 협상을 하는 시스템이 발달돼 있다. 그 전에 계약서를 잘 쓰는 문화도 정착돼 있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는 분쟁이 생기면 일단 법원으로 가져간다. 예를 들어 내가 5000만 원의 전세금을 못 받게 된 상황이 생겼다고 하면, 소송을 걸 때는 ‘5000만 원을 반드시 받아내겠다’는 생각 외에 ‘누가 나쁜 놈인지 가려보자’는 심리가 깔려 있다. 이런 상황에서 법원에서 패소를 하게 되면 자신의 인격이 부정을 당하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인생이 망가지고 사법 피해자라는 의식을 갖게 되는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정치도 마찬가지다. 사법부에 너무 많이 의존하고 있다.”

최근 대법원의 ‘스마트법정’ 입찰에 관한 문제제기를 하기도 했다. 법원의 행정에 대한 감시와 견제가 부족한 것 같다.

“대법원 행정에 대한 감사는 사실상 내부에서 하는 방식이다. 외부의 감사를 받게 되면 사법부의 독립성을 위협 받는다는 취지인 것 같은데, 법관 출신이 감사관을 맡기 때문에 아무래도 감사 전문성은 떨어진다. 무엇보다 ‘같은 식구’이지 않나.”

삼권분립은 ‘분립’이지 ‘분리’가 아니다

이번 사법농단 사태에서도 드러났지만 일선 법관 인사 시스템에는 ‘엘리트 코스’라는 것이 존재한다. 이것도 개선해야 할 과제 같은데.

“지금은 고등법원 부장 승진 제도 폐지 등 많이 없애가고 있다. 또 한 가지 지적되는 것은 2년에 한 번 인사를 통해 서울 등 수도권과 지방을 오가는 식으로 인사를 하고 있는데, 여기서 더 좋은 지역에 배치받기 위한 인사 경쟁이 발생한다는 시각이다. 미국이나 독일처럼 지역에서 법관을 선발하고 근무하게 하는 지역 법관 제도를 주장하기도 하는데, 법원 내부에서는 꼭 그게 최선이라고 보는 것 같지는 않다. 미국과 독일은 연방제 국가이기 때문에 가능하지만, 우리나라처럼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가 뚜렷한 상황에서는 우수한 인재가 수도권에만 몰릴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또한 법조일원화에 의해 10년 이상 경력의 변호사와 검사 등이 판사로 임용되게 되는데, 여기에 대한 우려도 있다. 이전에는 사법연수원 성적 우수자들이 법원에 바로 선발돼 훈련을 받는 방식이었는데, 10년 이상 경력자를 선발하게 되면 이들이 판사 업무에 적응하는데도 시간이 걸릴 것이고, 변호사로 잘 나가는 우수한 인재들이 판사 지원을 하겠느냐는 걱정들도 한다. 우리의 현실을 고려한 대안을 만들어야 할 것 같다.”

사법개혁. 갈 길이 너무 먼 것 같다. 세부적인 대안 마련도 중요하지만 가장 시급한 것은 무너진 사법부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것 같다. 이탄희 판사는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삼권분립은 ‘분립’이지 ‘분리’가 아니다. 사법부가 무너졌다면 시민들이 일으켜 세워야 한다”고 했다. 사법개혁을 추진하는 주체들을 위해 조언을 하자면.

“앞서 얘기했듯이 사법부 구성원들의 사고와 논리를 이해해야 한다. 사법부가 애초에 선거라는 시스템을 두지 않는 근본적인 이유가 있는데, 단순히 다수의 의견이니 여론몰이 식으로 따르라고 하면 사법부 구성원 대부분이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을 설득할 수 있는 전문적이고 논리적인 이유가 필요하다.”

인터뷰 / 김하영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