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서가는 자기최면 경계해야: 책에서 짐승을 만나라
  • 『고기로 태어나서』: 우리는 과연 먹어야 하는가
  • 『한국, 남자』: 20대 남성의 문재인 지지철회 이유가 궁금하다면
  •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 틈만 나면 훼방 놓는 남자들 이야기
  • 『말이 칼이 될 때』: 50대 이상 남성들은 언어 사용법을 새로 익혀야
  •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장애인의 삶에 대한 새로운 시각

중세 유럽에서 인쇄술이 보급된 이후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린 책이 마르코 폴로의 여행기였다고 합니다. 여행이 자유롭지 않던 시절 여행기를 통해 우리는 미지의 다른 세상을 간접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제도적으로 경제적으로 여행이 비교적 자유로워져서 일까요? 여행기의 인기는 예전만 못합니다. 하지만 ‘미지의 세계’를 여행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책은 여전히 유효한 매체입니다. 세상이 점점 복잡해지면서 우리는 우리가 발 딛고 있는 현실조차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출판편집인 장은수 대표가 우리의 현실을 일깨워 줄 책 5종을 추천합니다. <편집자>

[장은수 / 출판편집인, 문학평론가]

“자신이 잘못된 길로 가고 있는 것이 아닌지를 의심해 보지 않은 존재는, 개인이든 집단이든 시스템이든 언제든지 괴물로 변할 수 있다.”

2018년 최대의 화제작 중 하나인 한승태의 『고기로 태어나서』(시대의창)에 나오는 말이다. 독서가가 가장 경계할 것은 무엇보다 자기최면이다. 책을 통해 자신을 한 번 더 길들이는 일, 주문 외듯 평소의 생각을 독서로 반복하는 일, 세상에 이처럼 무용한 짓은 없다. 그러나 책에서 짐승과 마주치는 것이 아니라 천사를 만나려 하는 것은 어리석다. 책을 읽어 또다시 자신을 보려고 하기보다 차라리 명상을 하거나 산책을 하거나 음악을 들으면서 ‘머리를 비우는 것’이 창조성을 되돌려 받는 확실한 실천일 것이다.(닐스 비르바우머, 외르크 치틀라우, 『머리를 비우는 뇌 과학』, 메디치미디어) 독서는 무엇보다 ‘괴물이 되지 않는 법’을 배우는 실천이어야 한다.

흔히 독서를 대화라고 하는데, 대화는 자신과 하는 게 아니라 연인이나 친구나, 때로는 적들과 하는 것이다. 사람들의 일반적 착각과 달리, 대화의 필요는 후자로 갈수록 강렬해진다. 연인이나 친구와는 침묵 속에서도 달콤한 시간을 얼마든지 보낼 수 있지만 적들과는 대화하지 않는다면 한 순간도 함께 있을 수 없다. 연인이나 친구는 책을 통하지 말고 직접 얼굴을 맞대는 쪽이 더 낫다.

줄리아 크리스테바는 말한다. “삶은 그 자체로 가치를 갖지 않는다.” 가치는 오로지 ‘차이’로부터 나온다. 2018년 12월 31일과 2019년 1월 1일에 떠오르는 태양이 다르다고 생각지 않는다면 어떠한 문명도 존재하지 못한다. 자기 삶의 현존을 확인하는 일은 타자의 얼굴을 만날 때 비로소 가능하다. 따라서 독서는 살아온 삶의 방향을 흔드는 깊은 적대 속에서 행하는 게 최선이다. 자신의 경험을 넘어선 통찰을 가져다주는, 또는 영혼을 불안에 빠뜨리는 불편함을 일으키는, 또는 알아야 하지만 외면하고 싶은 현실을 직시하도록 하는 책들을 읽으면서, 자신의 선호가 분명해지고 입장이 확실해지면서 우리는 자신이 누구인지 알게 된다. 이 때문에 프란츠 카프카는 책을 “내면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뜨리는 도끼”라고 불렀다.

문제는 한 해 8만 종씩 쏟아지는 책들 중에서 어떤 책이 금도끼인지 알기 힘들다는 점이다. 이 글은 가능하면 2018년에 나온 최신 금도끼들을 소개할 작정이지만, 도구는 자신이 잘 아는 법이다. 스스로 신간을 구입해서 사유의 도구를 선별하는 사람이야말로, ‘괴물’이 되지 않는 지름길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고기로 태어나서』는 우리가 먹는 고기를 생산하는 생생한 현장으로 사유를 데려간다. ‘일하는 고기’로 살아가는 인간이 닭, 돼지, 개 등 ‘먹는 고기’를 생산하는 전국의 농장 아홉 곳에서 겪은 일을 담았다. 무엇을 입고, 어디서 자고, 어떻게 먹느냐가 달리 인간의 기본이라고 하는 게 아니다. 먹을거리를 만들어내는 이 현장은 우리 삶의 적나라한 실질을 보여준다. 이들 고기농장(이라고 쓰고 공장이라고 읽는다)에서는 살아 있는 생명을 한낱 사물처럼 취급한다.

“병아리들을 처리할 때에는 죽인다, 잡는다고 하는 대신 ‘불량품을 도태시킨다’고 중얼거린다. 하자 생긴 물건을 처리하는 거다.” 한국사회가 식량자원인 먹을거리를 끔찍하고 비윤리적으로 생산하는 중이라면, 인적 자원인 인간이라고 다르게 대할 리 없지 않은가. 물음이 솟아난다. ‘고기’를 만드는 시스템을 이토록 폭력적으로 유지하면서까지 우리는 과연 먹어야 하는가. 현장은 질문을 낳고 사유는 거기에 답하는데, 이러한 현실을 모르는 체하는 법이란 도대체 무엇이고 정치는 어디에 있어야 하는가. 인간다움을 어떻게든 잃지 않으려고 저자가 때때로 구사하는 유머가 아니었다면, 이 책을 읽는 이들은 모두 채식주의자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고기’를 생산하는 과정 탓에 어쩔 수 없이 채식을 택해야 하는 땅에서 살아가고 싶지 않다.

20대 남성의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철회한 이유가 궁금하다면, 약간 윗세대 이야기를 다루었지만, 최태섭의 『한국, 남자』(은행나무)부터 읽어야 한다. 젊은 한국 여성들의 절망과 분노는 『82년생 김지영』(민음사)에서 분출한 바 있지만, 84년생 청년 남성들의 인생 감각은 이 책에서 논의할 수준의 정체성을 획득했다. 저자는 현재 한국 남자를 규정하는 감정을, 한마디로 ‘곤란함’이라고 정의한다. 달리 말하면 ‘억울함’이다.

남아 선호의 세상에서 태어나 ‘귀남이’로 애지중지 자랐는데, 군대나 회사 등 남자사람 사회는 여전히 시대에 뒤쳐져 ‘반인권적’, ‘반개성적’ 세상이다. 그러나 학업이나 취업이나 승진과 관련된 각종 시험 등에서 여자들한테 밀려나 소외당하는 실제 삶은 아무도 몰라주고, ‘한남충’이니 뭐니 해서 가부장제의 가해자 또는 공범이라는 죄책감 속에서 현실을 살아가야 한다. 유리천장의 혜택을 누린 적도 없는데, 유리천장의 설치범이 되어 있는 것이다.

저자가 파악하는 진짜 문제는 가부장제 혜택을 누릴 만큼 누린 기성세대가 변화한 현실에 걸맞은 ‘제대로 된 남성상’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점이다. 한쪽에선 ‘아버지의 위기’니, ‘군 가산점 부활’이니 하는 철지난 소리나 지껄이고, 다른 쪽에선 분출하는 여자들 목소리를 이해하는 척 슬쩍 숟가락을 얹거나 상관없다는 식의 무관심 전략을 구사하면서도 후세대인 청년 남성들을 타박만 하는 것이다. 국가적 의무는 과거 그대로 다 얹힌 상태이고, 가부장제의 사회적, 정신적 압박은 여전한데, 현실적 탈출구는 전혀 없는 상황, 이것이 청년 남성들이 좌도 우도 다 싫은 상태에서, 때때로 여혐 등 혐오의 정치로 빠져드는 이유다. 이들한테 기성세대는 닮고 싶은 ‘멋있는 남성’이 전혀 아니다. 우리한테는 새로운 ‘한국, 남성’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실제로 남성들이 차별당하는 걸까. 물론 사실이 아니다. 과거보다 여성의 사회진출이 활발한 것은 맞지만, 여성 차별이 아직도 훨씬 심각하다. 여성가족부에서 조사한 여성경제활동인구 및 참가율 조사에 따르면, 2017년 한국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은 52.7%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을 밑돌며, 남녀 사이의 경제활동참가율 격차도 20%포인트 내외로 상당히 높은 편이다. 노동을 통한 자아실현 욕구는 늘어나는데, 육아 등의 사유로 인한 일하는 여성의 경력단절 문제는 극히 심각하다.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2018년 11월을 기준으로, 20대 전체의 경제활동참가율은 63.7%이다. 흥미로운 지점은 20대 남성의 참가율은 61.8%, 여성의 참가율은 65.6%라는 점이다. 군대 등으로 사유로 인해 20대에서는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이 높게 나온다. 그러므로 20대 남성의 분노에 경제적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30대로 접어들면서 사태가 완전히 달라진다. 30대 전체의 경제활동참가율은 78.1%인데, 남성은 92.7%에 이르는 반면 여성은 62.4%에 그친다. 남녀 간 참가율이 역전되는 것이다. 따라서 혜화역에 여성들을 모이게 만드는 현실적 동력이 존재한다. 둘 모두 옳다는 말이다.(물론 제자들한테는 잘 모르겠으면, 사회적 약자인 여성이 옳다고 가르친다.) 이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면, 스스로 ‘아저씨’라고 불러도 좋다.

김혼비의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민음사)에 ‘아저씨들’ 이야기가 나온다. 축구를 사랑하는 데 성은 필요 없다. 당연하다. 물론 현실은 완전히 다르다. 축구는 여전히 남성들의 운동이고, 남성만의 운동이다. 이 책은 남성의 전유물인 ‘축구’에 푹 빠져서 선수로, 심판으로 뛰는 저자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여자 축구의 세계를 그려내지만, 프로 축구선수 앞에서 심심하면 끼어들어 훈수를 놓으려 하는 동네 아저씨들 이야기도 에피소드로 담고 있다. 이로써 이 책은 ‘여자 축구’ 이야기인 동시에 스스로 선택한 삶을 통해 자신을 즐기려 하는 한국사회 여성 전체의 이야기요 이를 틈만 나면 훼방 놓는 남자들 이야기가 된다. 여성이 인생을 사랑하기만 하면 어디든지 남성이 몰이해의 얼굴을 하고 나타나는 것이다. 수전 팔루디는 이를 『백래시』(아르테)라고 불렀다. 백래시란, 사회적 가치 변동 탓에 살아가기가 예전만 못하다고 여기는 이들이 혐오 등의 감정을 표출하면서 변화에 반발하는 것으로, ‘반동’ ‘반격’ ‘반발’ 등으로 옮길 수 있다.

무엇이 ‘혐오’에 해당하는 것일까. 표현의 자유가 타인을 모독할 자유로 떨어지지 않으려면, 홍성수의 『말이 칼이 될 때』(어크로스)를 읽어야 한다. 저자에 따르면, 혐오 표현은 “사회생활을 하는 데 실질적 위협과 불안을 가져오는 말”이다. 가령, ‘맘충’은 엄마가 아이를 데리고 외출하는 것을 꺼리게 만드는 전형적 혐오표현이다. 이처럼 특정 사회그룹의 정체성에 비정상의 표지를 붙이는 일이 아우슈비츠 학살을 불러왔던 역사적 경험이 적은 탓인지, 한국사회는 ‘빨갱이’ 등 표현을 제외하면, 차별 언어 사용에 완전히 둔감한 편이다. 이른바 ‘사회 주도층’으로 사회 전반적으로 특권을 누리기에 자기 발언이 가져올 약자의 상처에 민감하지 않은 50대 이상 남성들은 만날 이해를 구할 것이 아니라 변화된 언어 사용법을 새로 익혀야 할 필요가 있다. 신지영의 『언어의 줄다리기』(21세기북스)도 분명히 도움이 될 것이다.

일급 지적 장애인으로 살아온 김원영 변호사의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사계절)은 장애인의 삶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담고 있다. 이 책은 “태어나선 안 될 존재, 잘못된 삶, 불쌍한 삶, 모자란 삶의 상징”인, 제목 그대로 “실격당한 삶”으로 여겨지는 장애인을 위한 뜨거운 변론을 펼친다. 이 책에 따르면, 장애인은 ‘도움이 필요한’ 대상화된 존재가 아니라 ‘세심한 무관심’을 통해 동등하게 함께 살아가는 존재다. ‘세심한 무관심’은 특별한 관심이 필요 없다는 뜻이 아니라 가족이나 친지의 ‘착함’과 ‘희생’에 기대지 않고도 장애인이 일반인과 똑같이 살아갈 수 있도록, 건물구조를 바꾸고 시험제도를 변경하는 등 삶의 환경을 근본적으로 변혁하는 것이다. 장애인 정책은 장애인을 돕는다는 ‘시혜적 시선’에서 다루어지면 안 되고, 일반인이 하는 정치, 사회, 문화적 행위를 어떻게 장애인들도 큰 불편 없이 행할 수 있도록 사회 전체를 바꾸는 것이다. 이는 장애인이 살아가기 편한 세상이 모두가 살아가기 편한 세상임을 인지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 책들은 모두 분출된 현장의 언어를 담고 있다. 이것이 현재 한국 출판의 최전선이다. 오늘날 책들은 고상한 교양주의의 틀을 벗어던지고 있다. 편집자들은 현장의 경험을 정련해 지혜를 얻거나, 지식을 현장으로 데려가서 통찰을 짜내는 일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여기에 세상을 바꾸는 힘이 있다. 현장에서 나오되 현장을 넘어서는 언어만이 새로운 사유를 가능하게 만든다.

『고기로 태어나서』의 한 구절을 함께 읽으면서 글을 맺고 싶다. “차별은 혐오로 시작해서 사랑으로 완성된다. ‘다른’ 존재에 대한 혐오와 ‘우리 편’에 대한 사랑.” 촛불은 여기에서 벗어날 것을 우리한테 명령한다.

장은수 / 출판편집인, 문학평론가